'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시리즈 ‘눈빛사진가선’은 

한국인이 살아 온 삶의 흔적을 기록 표현한 사진집이다.

 

일관된 주제로 작업해 온 국내사진가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유 무명을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완성도와 작품성 위주로 만들어진다.

 

‘눈빛사진가선’은 이제 사진인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책이 안 팔리는 현실에 양성우의 ‘청춘길일’과 조문호 ‘청량리588’은

재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서적이 되었다.

 

1호로 나온 구본창씨의 'DMZ'가 2014년도에 출판되었으니,

7년 가까운 사이 무려 64권이 발행되었다.

‘눈빛사진가선’ 시리즈에 거는 출판사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한국사진계의 대표적 작가들이 망라된

‘눈빛사진가선’은 한국사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지침서다.

 

그동안 한국사진가들이 외국 사진가들의 작품집을 구해보며

서구의 가치를 따라 배우기에 급급하였으나,

사라져가는 우리의 모습이나 현실은 뒷전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추어 사진인의 의식전환도 절실한 시점이다.

아직도 사진작가협회에 가입하기 위해 공모전사진에 급급 하는가?

이 사진집 시리즈를 살펴본 후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야 한다.

작품해설과 작가노트도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할 것이다.

판형이 작아 휴대하기도 편하지만, 가격도 12,000원이라 부담 없다.

 

독창적인 국내 사진가들의 작업을 통해

한국사진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눈빛사진가선’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구독을 바랍니다.

 

글 / 조문호

 

지난 23일 정오무렵,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눈빛출판사’ 북 스토어 '예술산책'에 들렸다.

작년 11월 28일 ‘예술 산책’ 개장과 함께 차려진

장터 사진가 ’정영신의 책상‘을 철수하기 위해서다.

 

'경의선 책거리'는 2016년 마포구에서 조성한 책 테마 거리로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있다.

와우교까지 250m 거리에 마치 기차 객실 같은 책방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정영신씨는 ‘장에 가자’를 펴낸 후 약4개월 가까이

‘예술산책’에서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 닫을 때가 더 많았으나

처음 마련된 책상이라 좋은 경험이었다.

 

책상이 마련되어 여러 차례 들렸는데, 주말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산책코스였다.

책방을 찾는 손님도 제법 많았다.

올 때마다 진열된 사진 책을 둘러보지만,

아무리 보아도 반갑고 흐뭇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이처럼 소중한 사진들이 파묻힐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니,

어렵사리 운영해 온 이규상씨의 노력이 새삼 고마웠다.

 

갈 때마다 새로 나온 사진집도 만날 수 있지만, 몰랐던 사진집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는 이광수교수가 '눈빛사진학개론' 2편으로 펴낸 ‘붓다와 카메라’를 발견했다.

2015년 발간되었는데, 왜 여지 것 몰랐을까?

그래서 이런 전문서적 북 스토어가 필요한 것이다.

그 외도 소장하고 싶은 사진집들이 많았으나

주머니 사정으로 ‘붓다와 카메라’ 한 권만 구입했다.

 

이런 저런 사진집을 살펴보는 중에 이규상대표와 사진가 전민조씨가 나타났다.

전민조씨는 ‘손에 관한 명상’ 재 전시를 앞두고 사진집 재고를 알아보기 위해 왔단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문선호씨 유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정식선생 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영신의 책상' 다음 작가는 다큐사진가 김지연씨다.

연변과 일본 등지에 흩어져 사는 조선인들을 찾아다니며

20여 년 동안 기록해 온 취재기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출판되었다는데,

김지연의 책상은 3월 24일 부터 4월 11일까지 마련된다.

 

지루한 코로나로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즈음, 경의선 책거리에 봄바람 쐬러 가자.

보석 같은 사진집 만나는 기쁨이 봄바람에 비길소냐?

 

사진, 글 / 조문호

 

공유 공간 ‘마인’은 말 그대로 문화를 나누는 곳이다.

 아산시 온천동 상가에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곳에서 기획, 추진하는 일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뭉친 젊은이들의 생각도 올곧지만 의욕도 대단했다.

머지않아 지역문화를 꽃피우며

지역과 지역을 잇는 문화 메신저로서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왜 문화 예술이 서울에 집중되어야 하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문화 예술은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단다.

팀장인 김선우씨만 50대지, 나머지 세 사람은 20대였다.

정영신씨 말에 의하면 김선우씨 주 특기가 들이대는 것이란다.

아직까지 수익이 없어 다들 무임금으로 일하는 게 안타까웠는데,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절실했다.

 

난, 공유공간 ‘마인’ 팀과 만나기는커녕 전화도 한 적 없었다.

정영신씨와 협의한 일이라 내용도 모른채, 시키는 대로만 했다.

꼬장꼬장한 영감쟁이라 쓰리쿠션을 친 모양인데,

밥이라도 한 술 얻어먹으려면 정동지 말에 어떻게 토 달수 있겠나?

 

어느 누가 자기 전시한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아마 직접 제안 받았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전시할 형편도 되지 않지만, 문제는 어느 한 가지에 집중된 내용이 아니라,

마치 유작전 같은 백화점식 전시라는 것이다.

내 사진은 잘 못된 것을 개선하기 위해 알리는데 목적을 둔 사진들이라

이 것 저 것 떠벌리는 전시는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기획팀들이 어디서 찾아 냈는지, 보낸 이미지가 대략 30여장 되었다

 이미지 목록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원고도 제법 섞여 있었다.

스캔 받지 않은 것도 더러 있었는데, 필름은 손 댈 여력이 없었다.

다시 보내 온 이미지마저 수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몇 명이 달라붙어 내 자료를 샅샅이 뒤진 것 같았다.

 사진집은 물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 까지 뒤져, 모든 것을 알았다.

여러 명이 찾아낸 이미지를 펼쳐놓고 협의하여 선택한 사진이라 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선택하였으니, 어쩌면 더 객관적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사진을 모두 찾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일을 추진하는 그런 열성에 어찌 감복하지 않겠는가?

 

나야 시키는 대로 이미지를 찾아주는데 그쳤지만,

정동지가 프린트하면 내가 잘라야 하고,

액자 맡기러 가면 따라가야 하니 같이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비용 줄이려고 삼각지 액자집에 맡겼다.

사업 전모는 뒤늦게 알았지만, 협력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사진 사이즈가 크지 않아 아담한 전시가 되겠지만,

타지역으로 이어가며 계속 다른 전시로 확대시키는 릴레이 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도 추진하고 있단다.

이번에는 지자체에서 작품제작비 정도 지원했다지만,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업이 틀림없었다.

 

타 지역도 마찬가지다.

큰 미술관이 아닌, 사람들이 쉽게 드나드는 곳에 공간을 만들어

작은 예산으로 지역민과 예술이 친숙해져,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드디어 공유공간 ‘마인’팀과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지난 27일, 맡겨 둔 액자 찾아 가는 길에 경의선 책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김선우 팀장 따라 온 김 온 군과 양햇살 양도 믿음직했다.

일찍 장가갔으면 딸과 손자 뻘 되는 어여쁜 청춘이었다.

다들 싱글 벙글 웃어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지껄여 실수는 안 했는지 모르겠다.

기념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었다.

다섯 명이라 두 팀으로 나누어, 땀을 흘려가며 육계장을 먹었다.

 

오랜만에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눈빛출판사’ ‘예술산책’에도 들렸다.

'마인' 전시공간에 작가의 책은 물론 좋은 사진집도 함께 전시, 판매한단다.

사진집 목록에 따라 책 구입을 한다지만, 책 구경 하러 간 것이다.

 

'예술산책'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제법 많았다.

전시장 입구에는 새로 나온 사진집도 진열되어 있었다.

김보섭씨의 ‘자유공원’사진집이 눈에 띄었다.

‘그 곳에서 정영신의 ‘장에가자’ 전시가 진행 중이라, 장터 책도 골고루 구입하더라.

 

이제 ‘공유공간 마인’이 하는 사압에 불 지필 일만 남았다.

“자! 돌리고 돌리자, 코로나 이놈을 문화예술로 녹여버리자“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최치권의 ‘구미호-불리지 않은 신화'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67’호로 발행되었다.

출판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지난1월 15일부터 24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으나 차일피일하다 포스팅이 늦어버렸다.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시장 출입을 꺼리는 시절이라

사진집을 구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늦게나마 소개하게 되었다.

 

그동안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눈빛사진가선’은 책자가 적어 소장이나 휴대하기도 좋지만,

책값도 12,000원 정도의 부담 없는 금액이라 아무리 돈이 없는 나도 빠짐없이 구해보았다.

여지 것 다섯권의 사진집을 냈으나 ‘눈빛사진가선’으로 출판한 ‘청량리588’만

유일하게 재판을 찍었다는 것만으로 ‘눈빛사진가선’의 인기도를 알 수 있다.

 

그 사진집은 출판사에서 엄선하여 발행하는 책이라

신진 사진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데다,

'눈빛사진가선'이 우리나라 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난, 페친인 최치권씨가 사진가인지는 몰랐다.

그 날 전시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여

서일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한다는 것과

‘대한민국 전도’,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등 여러 차례 비슷한 주제의

사진전을 가졌다는 것도 사진집에 적힌 이력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진들은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최치권만의 어법으로 형상화한 전시였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예리하게 채집하여 그만의 내러티브를 담아냈는데,

욕망과 탐욕이 이글거리는 인간 내면의 암울한 해학도였다.

 

구미호란 전설에 나오는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를 말하나,

인간성을 잃어 사악해진 인간을 빗댄 말이다.

물질문명의 탐욕에 휩싸여 영악하기 이를 데 없으니,

늙은 여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작가는 거리에 흩어진 이미지를 채집하는 사냥꾼에 다름 아니었다.

지나치는 거리 모퉁이에 놓인 사물이나 간판 등 하잘 것 없는 오브제를 언어로 끌어들였다.

조간신문의 한 문구나 이미지마저 자신의 메시지로 활용했다.

다들 숨은 그림처럼 못 알아채고 지나쳤던 것들을 찾아 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포착한 도시의 풍경이나 피사체가 낯설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치다 부딪친 대상을 적절히 잘라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적 센스가 날카로웠고,

피사체를 관조적으로 보는 시선도 남달랐다.

 

 80년대 초반 내가 서울 올라 온 후, 한동안 외도한 적이 있었다.

물질문명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은유적인 소재로 기계 이미지를 택한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민식선생의 영향으로 줄 곳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당시는 대상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찍히는 문제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기계를 통해 물질문명을 비판하며 인간성 회복의 기치를 세우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청계천 주물상가나 마장동 폐차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차겁고 육중하거나 날카롭게 보이는

형상들을 채집하여 사진잡지에 연재하기도 했으나, 그 역시 성에 차지 않았다.

다시 돌아선 것은 반대어법의 소구력이 약해서였다.

스스로 아무리 강한 느낌을 받아도 상대가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작가의 주관적 작업보다 사료로 남을 수 있는 객관성에 무게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이 정리된 단편적인 오브제는 그 울림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한계도 느꼈다.

 

아무튼, 다시 사람을 찍으며 적극적인 방법으로 접근했으나,

상대와의 소통을 위해 함께 어울리다 보니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그런 경험이, 최치권씨의 ‘구미호’가 남달리 다가 와서다.

 

작가가 던지는 전체적인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었고,

몇 몇 사진에서는 발길을 멈추게 하며 다시 한 번 사람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의도가 적중했다는 말이다.

 

‘최치권 스타일 다큐’라는 제목의 해설을 쓴 오혜련씨의 마지막 글로 마무리한다.

 

“‘구미호-불리지 않은 신화’시리즈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다움, 인간 가치에 대해 묻는다.

작가는 그의 작업노트에 ‘구미호’에는 그것을 보고 있는 구미호가 있고,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가 있다.“라고 얘기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반은 인간이고 반은 여우인 구미호는 인간인가? 여우인가?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는 인간인가? 여우인가?

가치혼돈의 요지경 시대에 우리의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우리도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사진, 글 / 조문호

 

손은영의 ‘밤의 집’은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다.

모든 작품이 다 그렇지만, 관람자의 눈높이나 생각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밤의 집' 손은영 사진집 표지 / 눈빛출판사 / 값 12,000원

 

 

며칠 전 정영신의 ‘장에가자’ 전시에서 다음 전시작가 손은영씨 작품을 알게 되었다.

전에 본 사진과는 또 다른 울림이 있었는데, 마침 인사동 갈 일이 생겨 충무로부터 들렸다.

사진전이 막을 올리는 날이라, 손님 몰리기 전에 빨리 보고 올 속셈이었다.

 

텅 빈 전시장에서 사방을 돌아보니 각양각색의 집들이 마치 무대세트 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인적 끊긴 집의 형태에서 텅 빈 무소유를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떤 이는 밤의 집에서 사람의 체취나 온기를 느낀다고도 했으나

인간애가 담긴 삶의 공간으로서 보다 문명비판적 시각이 더 앞섰다.

 

요즘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집값 아니더냐?

벌집 같은 아파트 한 채가 몇 십억을 호가하니, 이미 집은 주거공간에 앞서 부의 상징이다.

사진을 보는 분의 평가도 다르듯이, 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 보일 수밖에 없다.

 집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납작한 지붕의 슬라브 집이 꿈의 궁전처럼 보일 것이고,

돈 많은 부자의 입장에서는 측은하면서도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작 작가는 아무런 단정 없이 감상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내가 볼 때 손은영의 ‘밤의 집’은 기록에서 예술로 승화시킨 작업이다.

단순한 집의 외관을 통해, 삶의 회억에서 부터 사회적 경제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며 반성의 단초를 제공한다.

 

마치 건축도면처럼 깔끔하게 보정한 작업에서 엿볼 수 있듯이,

차거운 톤을 이룬 밤의 색조와 집의 조형미가 어우러져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같았고.

집에 대한 향수도 집에 대한 욕심도 아닌 물질문명에 망가진 인간의 자화상이었다.

하나의 도구로 사진을 채용했을 뿐, 작가의 묵시적 메시지다.

 

작가는 한 때 고성에서 산불 난 집을 찾아다니며 찍은 적도 있고, ‘길에서 만난 사람’도 찍었다.

사람조차 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많았는데, 유독 집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불 타버린 건물의 앙상한 자취를 특유의 인화로 황량한 느낌을 강조하기도 했고,

이 땅에 의지해 살아 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강인한 정신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또 다른 시도였다.

창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에서 희망의 여지는 남겨두었으나

어둠 속에 감도는 무거운 침묵, 바로 그 것이 이 사진의 매력이다.

 

작가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여린 여성의 입장에서 밤 고양이처럼 밤에만 쫓아다녔다.

나즈막한 슬라브 집들을 초상사진 찍듯 다박다박 찍어 낸 것이다.

마치 파파라치가 사람 몰래 촬영하듯 남의 집들을 밤에만 기록했다.

그리고는 집의 조형미에 따라 도식화시켰다.

 

티끌 한 점 남기지 않는 후 보정 작업으로 사적인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 버린 것이다.

색깔도 창백한 톤으로 정리하는 등, 인간과의 연결고리나 단서조차 말끔히 지워버렸다.

집에서 번져오는 희미한 불빛으로 여운을 남겼는데,

그 여운은 작가가 부여잡고 싶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손은영씨처럼 작업 한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늦은 밤까지 기다리다 지쳐 술부터 한 잔 마셨을 것이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집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진다.

 

다들 깊이 잠든 늦은 시간에 공부하느라 머리를 싸맨 학생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집은 불꽃 튀기는 사랑의 전쟁을 벌이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달콤한 생각에 이르니, 옛날 파출소 부근에서 민방위 보초 서던 시절이 떠오른다.

한 밤 중 보초서다, 신음소리에 끌려 보았던 귀가 막힌 장면이 생각나서다.

한 쌍의 야생마 같은 부부의 뒤틀린 몸짓과 거친 숨결에 온 몸이 달아올랐다.

그 깊고 오묘한 장면 장면을 어찌 세치 혓바닥으로 다 이야기 하겠나?

 

갑자기 이런 잡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잡놈은 잡것만 생각나고, 돈에 중독된 놈은 돈만 생각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작가는 오로지 작품만 생각한다는 말이다.

 

바로 손은영씨가 보여 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집은 무언의 시대적 증언이다.

물질문명에 의해 인간성이 상실된 오늘의 사회상이고, 묵시적 가르침이다.

비록 후 보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지만, 생각이 한 발자국 앞 선 것이다.

일 년 넘게 고생하며 이룬 손영은의 또 하나의 성과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손은영 ‘밤의 집’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사진은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 비근한 소재에서 찾아낼 수 있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지점을

예민하게 지각시켜주는 사진이다.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들고 규정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과 모종의 기운이 어둠 속에서 밀도 있는 공기의 층으로,

몸으로 휘감기는 안개처럼 잔뜩 피어오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전염병으로 전시장 다니기가 불편하시다면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눈빛사진가선 시리즈66호 손은영의 ‘밤의 집’ 사진집을 보라.

 

사진, 글 / 조문호

 

난,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는 체 하는 꼰대 짓을 곧 잘 하지만,

홍대 가까이 ‘경의선 책거리’가 있는 것도 몰랐다.

그것도 만들어진지가 4년이 되었다는데....

 

 2016년 10월, 마포구에서 조성해 놓은 '경의선 책거리'는 책 테마 거리였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부터 와우교까지 약 250m 거리에

마치 기차 객실처럼 만들어진 책방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젠 기차역이 아닌, 산책로와 책거리로 살아났지만,

옛 느낌을 그대로 살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그지 그만 이었다.

역 모양의 플랫폼도 있고, 다양한 조형물이 볼거리를 더했다.

 

책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산책 코스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눈빛출판사‘ 전용 북 스토어 '예술산책'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 곳에 장터 사진가 ’정영신의 책상‘이 마련된 것이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장에 가자’ 출판기념전에 이은 자린데,

그동안 발행된 정영신씨의 책과 사진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책방 전시다.

 

지난 28일, 준비할 때 빠진 작품을 챙겨 다시 나갔더니,

사진가 김수길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십 년동안 기록해 온 ‘낙산아랫동네이야기’사진집을 전해주려 온 것이다.

좀 있으니, 인천의 김보섭씨도 들렸다.

 

 반가운 사진가와 좋은 책을 두루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흔히 만날 수 없는 좋은 사진집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

김운기씨의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사진집을 만났다.

잊혀가는 고향과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나는 사진이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갖고 싶은 책 한 권사는 재미를 알랑가 모르겠다.

 

차려놓은 '정영신의 책상'에는 그동안 출판된 여러 권의 저서가 모아졌고,

책방 요소요소에 정영신씨의 ‘장에 가자’ 사진들이 내 걸렸다.

 

그런데,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정영신의 장터순례기'도 보였다.

창고 정리하다 나온 10여권 뿐이라는데, 끝날 때까지 남으면 저자가 구입할 책이다.

 

작가의 포토 포트폴리오도 내 놓아, 마음에 드는 작품은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했다.

운이 좋으면 저자나 이규상씨도 만날 수 있고...

 

‘정영신의 책상’은 12월 13일까지 열린다.

휴관일인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오전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나와, 나온 방향으로 100m 지점이다.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예술산책'으로 구경 오세요.

모든 서적은 10% 활인 판매됩니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사진, 글 / 조문호

 

 

한정식선생의 사진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초창기 사진으로 엮은 ‘사라지는 풍경, 사라진 풍물’이라 부제를 단 산문집에 눈이 번쩍 띄었다.

‘북촌’과 ‘흔적’에 이어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집으로는 세 번째인데,

50여년 전의 도시풍경으로 구성된 사진 산문집이었다.

 

된장이나 와인처럼 세월에 의해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성남의 허허벌판에 들어 선 복덕방들이나 포니 승용차에 무탈하길 빌며 고사 지내는 장면 등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면의 사진도 많았다.

칠순이 넘은 나 역시 리어카에 사진관 배경 막을 실고 다니는 장면은 처음 보았다.

사진 기록성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절감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엮은 산문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서울대 문학도였던 선생의 글 솜씨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감칠맛 나는 산문이 사진의 품격을 더해주었다.

더구나 선생께서 투병 중에 집필한 글이라 더욱 가슴 시리다.

 

사진이나 글이나 한 치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 선생의 빈틈없는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이 산문집도 편집자 실수로 사진 한 장이 빠져 다시 찍었다고 한다.

 

 

그 사진들을 살펴보며 예술사진에 밀려난 기록의 한국 사진사를 다시 되돌아본다.

초창기에 활동한 원로사진가들은 대부분 기록에 초점을 맞추셨다.

임응식선생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이어 ‘세계적인 사진전 ’인간가족전‘ 유치와

사진평론 하셨던 이명동선생이 관여한 ’동아일보‘ ’동아사진콘테스트‘ 바람에

스트레이트한 사진이 날개를 달았던 때다.

 

주명덕선생의 ‘혼혈아’나 최민식선생의 ‘인간’ 등 리얼리즘 사진이 주도했지만,

사진 본연의 기록성이 예술이란 겉멋에 현혹되어 어떻게 하면 그림을 닮아갈까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작가의 주관도 없는 아름다운 풍경사진에만 매달리는 수많은 아마추어를 양산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진가 없는 공룡 집단 ‘사협’의 존재가 그 대표적이다.

 

한정식선생께서도 일본에서 사진유학 한 후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사진과 결별하게 된다.

선생의 깨우침에 의한 ‘고요’라는 주제에 천착해 일가를 이루었으나

리얼리즘 사진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한정식선생 뿐이겠는가? 주명덕선생도 어두운 톤의 풍경사진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일관되게 작업해 온 최민식선생의 '인간'이나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이

그런대로 우리나라 대표적 리얼리즘 사진으로 남았다.

 

물론, 예술사진에 대한 집착이 사진의 다양성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세월이 흐르면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오죽하면 사진의 기록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눈빛’ 이규상대표가 출판을 위해 보내 온

한정식선생의 사진원고를 보며 “최고의 역작”이라 감탄했겠는가?

 

아직까지 사진작업의 방향을 정해지 못했거나, 갈팡질팡하는 사진인이 계시다면

다시 한 번 현실적 기록성에 주목하기 바란다.

하기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예술로 포장해 사기를 쳐야 살아남지...

 

한정식선생의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를 강력하게 권합니다

책값은 18,000원

 

글 / 조문호

 

지난 23일에는 오랜만에 '눈빛출판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80년대 농민들의 삶을 기록해 둔 정영신씨 사진집 출판을 타진하는 자리에 따라 갔는데,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여지 것 갈 때마다 승용차를 끌고 갔으나 이번에는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더니, 같은 건물인데도 들어가는 입구를 몰라 한참을 헤매는 촌극이 벌어졌다. 세 차례나 사무실에 전화를 걸고 여기 저기 물어보는 등 완전 시골 노인 행세를 단단히 한 것이다.

 

어렵사리 구멍을 찾아 올라갔더니 이규상씨가 입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 간 사진파일을 검토하는 동안 책상위에 늘린 사진집들을 살펴보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사진집이 가 편집된 양승우의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였다. 미처 글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강열한 사진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한정식선생께서 준비하는 포토에세이에 들어 갈 사진원고도 보여 주었는데, 여지 것 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기회도 얻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씨 내외와 성윤미씨, 그리고 정영신씨와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데, 담배 피우러 간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성매매를 반대한다는 어느 단체에서 ‘청량리 588’사진집을 두고 시비를 걸더라는 것이다. 이미 40여년이 지난 사진이고, 본인의 동의하에 찍은 사진이라며 설득하였다고 한다. 미투가 사회쟁점화 되니 별 것으로 다 시비를 건다. “책도 팔리지 않는데, 문제 한 번 만들어 책이나 좀 팔자”는 농담을 했으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평소 이규상씨와 술자리만 하다 모처럼 커피 마시는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그이의 구수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뜻밖의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SNS가 성행한 10여 년 전부터 책보는 사람이 줄어들어 책이 팔리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보니 책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진집이 아니라 주로 인문서적이 잘 팔린다지만... 코로나가 세상질서를 많이 바꾸고 있었다.

 

이제 정영신씨만 바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하는 일이 많아 얼굴보기 힘든데, 오래된 필름사진 수정하랴 그 당시 이야기 풀어 쓰랴 똥오줌 못 가리게 되었다. 늙어가며 편하게 살 생각은 않고 계속 일만 만드는 그가 안쓰럽지만, 어쩌겠는가?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짝에 쓸모없다는 내 말은 한 낱 메아리에 불과했다.

“노세노세 늙어 노세, 죽고 나면 못 노나니...”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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