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여름감기에 걸려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허리협착증에 감기까지 더해 녹번동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월말이라 ‘서울아트가이드’ 9월호를 얻기 위해 인사동을 경유했다.
전시장 찾는 일은 자제하기로 다짐했지만, ‘나무화랑’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브레멘 예술대학 디자인 학부 졸업작품을 선보이는 유철균의 사진전이 궁금해서다.
전시작가를 비롯하여 판화가 류연복씨와 김진하 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가와는 첫 대면이었으나 외모는 물론 섬세한 끼까지 아버지를 닮았더라.
전시 중인 유철균의 ‘친밀’전은 비대면 시대를 맞은 젊은이들의 일상을 포착했다.
비대면 시대에서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던지며,
주변 공동체의 내밀한 일상을 그만의 어법으로 보여주었다.
거리두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간관계가 아니던가?
사회가 놓친 예민한 문제를 유철균이 끄집어낸 것이다.
거창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은 나른한 일상의 단면을 담담하게 포착해 낸 시각이 신선했다.
유철균의 문제의식은 비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9월6일까지 열리는 유철균의 ‘친밀’전을 꼭 한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녹번동에 갔더니, ‘눈빛출판사’에서 보낸 두 권의 사진집이 도착해 있었다.
안장헌의 ‘소소한 일상’과 임지훈의 ‘예멘’ 사진 시집이었다.
문화재전문 사진가인 안장헌의 ‘소소한 일상’은
고려대 ‘호영회’에서 활동했던 60년대 후반에 찍은 진귀한 사진이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잠자던 작품이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그 때 그 시절, 우리가 살았던 아련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기록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 소중한 사진집으로 소장가치가 높다.
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사진전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9일까지 열린다.
임지훈의 ‘예멘’ 사진 시집은 뜨거운 햇살 아래 살아가는 예멘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사진 설명 대신 쓴 시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진과 시는 대상을 즉관적으로 잡아낸다는 동질성이 있으나, 사진 시집을 펴낸 작가는 처음이었다.
사진 한 장은 시 한 편이고, 시 한 편은 사진 한 장이었다.
이미지와 심상은 사진에도 있고 시에도 있었다.
감기약을 챙겨 먹고 자리에 누우려니, 정동지가 손님 온다며 손을 내 저었다.
저질러 놓은 일에만 정진하기로 명세 했건만,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녹번동 온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인사동 물귀신들이 처들어 온 것이다.
술과 민어회를 사 들고 위문 공연왔다는데, 어찌 마다하겠는가?
전활철, 공윤희씨에 이어 김수길씨 까지 찾아와 술자리가 어울렸다.
술이 약인가? 술이 들어가니 아픈 몸이 슬슬 풀렸다.
담근 지 팔 년 된 상황버섯주 까지 꺼내 마셨다.
인사동 골동상들이 벌인, 웃지 못할 사연을 술안주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죽고 사는 문제는 다음 문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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