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사진 책만 만들어 온 ‘눈빛출판사’가 인사동에 사진 전문 갤러리 ‘인덱스’를 개관했다.
지난 11일 오후3시 무렵, 인사동에 있는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전 날 마신 술에다 감기까지 걸려, 술자리를 피하고 싶어 차를 끌고 나간 것이다.
옛 '수희제' 자리인 '도채비도 반한 찻집'을 거쳐가는 32계단의 사진산책이었다.
전시장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를 비롯하여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
아트디렉터 김지연씨, 사진가 김보섭, 엄상빈, 정영신, 이은숙, 임재천씨도 있었다.
개관 첫 전시로 걸린 사진은 어느 미군병사의 눈에 포착된 1948년 겨울의 서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란 제목처럼 애잔한 그리움이 몰려오는 정겨운 풍정이었다.
그때는 한반도에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해, 민족분단의 서막이 오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 겨울이 지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남과 북은 갈라지고 말았다.
전시된 사진들은 75년의 세월을 되돌린 소중한 기록이었다.
설빔 입은 아이들의 옷 색깔이 한층 아름다운 것은, 그 때 사진들은 흑백으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기개 넘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한 가닥 희망도 엿보였다.
‘눈빛아카이브’가 소장한 슬라이드 필름은 촬영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진에 미군정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군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추정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원판이 어떤 경로를 통해 경매에 흘러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75년 전의 사진이라면 내가 태어난 이듬해다.
사진 속의 어린이들이 살아 있다면 팔순이 넘었을텐데, 전시된 사진을 본다면 알아볼까?
그리고 전시된 사진 외에도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사진서적도 700여종이나 진열되어 사진의 진가를 골고루 찾아 볼 수 있었다.
둘 곳도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지만, 사진 책만 보면 욕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2년 전에 펴낸 이형록선생 작품집을 정동지 책 사는데 꼽사리 끼어 한 권 구입한 것이다.
오래전 부터 사고 싶었지만, 다른 책에 밀려 번번히 사지 못했던 원을 기어이 풀었다.
책 속의 보지 못한 사진 한 장만으로도, 스스로 준 새해 선물로는 최고였다.
많은 사진 중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개관전에 내놓은 것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유명작가의 내용 없는 작품보다 무명작가의 시대적 기록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글이다.
“내용 없는 사진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또 우리가 제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얼마나 탐해왔는가를 오히려 미군정기 틈입자의 시선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식민과 전쟁(태평양전쟁)을 겪은 조선인들이 이방인의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의젓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또 얼마나 발랄한가. 그해 겨울 ‘종이거울’ 속의 사람들은 나라를 잃었어도 기개를 버리지 않았고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았으며 혹한 속에서도 그 어떤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사진은 전한다.”
이 전시는 2월13일까지 이어진다.
어쩌면 '눈빛출판사'와 '인덱스갤러리'의 융합은 시대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사진 소장자가 점차 늘어나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출판과 전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던가?
단지 불경기란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솔직히 말해, 사진인의 한사람으로서 ‘눈빛출판사’에 대한 부채의식도 지울 수 없다.
‘눈빛’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기록, 아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남아 있겠는가?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 보는 사진책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진의 가치 이전에 장인정신의 귀결이다.
다들 시간 내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전시도 보고, 진귀한 사진집도 구입하자.
전시된 작품과 함께 한국사진을 골고루 살펴 볼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인사동 눈빛사진산책 ‘인덱스갤러리’가 우리나라 기록사진의 전당이 되길 축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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