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아트센터’ 지하전시장에서 김수영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거대한 뿌리’전이 지난 22일 개막되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성탄절에서야 짬을 낼 수 있었으나 전시장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전시장에서 꼼꼼하게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태호, 김정헌, 김진하, 강경구, 임옥상, 박재동, 신학철, 노원희,

박 건, 민정기, 박영균, 손기환, 이명복, 이인철, 이흥덕, 정정엽 작가 등

기라성 같은 민중미술가들과 가수 정태춘 등 30여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출품 작가마다 서사와 주제에 따른 표현이 다양했고,

김수영을 그린 초상화의 표정도 다채로웠다.

 

전시작을 돌아보며 김수영 시인의 시가 떠오르거나

생전의 모습이 생각나는 등 오로지 김수영시인만을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전시는 27일 까지라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2021.10,6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민중미술의 거장 신학철선생의 포토꼴라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질곡의 한국현대사로 엮어 낸 포토꼴라주 작품은 지난 10월 6일부터 오는 11일 1일까지 열린다.

 

‘나무아트’와 ‘유목민’을 오가며 벌어진 보름 동안의 전시로 녹초가 되었으나 쉴 수도 없었다.

이어지는 전시가 신학철선생의 포토꼴라주 전이기 때문이다.

 

신학철 선생은 아직도 청년처럼 피가 끓는다.

얼마 전 '인사동 사람들' 사진을 찍기 위해 어렵사리 인사동에 나오시게 했는데,

그 날 핸드폰으로 보여 준 최근작 두 점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현대사와 연결된 ‘갑돌이와 갑순이’ 시리즈로, 춘화도 그처럼 힘찬 춘화는 여태 보지 못했다.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 그게 바로 신선생의 열정이고 에너지의 소산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두 남녀의 사랑에 의해 민족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까지 만들었다.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희망찬 앞날을 기대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리고 선생의 얼굴에는 항상 짙은 그림자가 깔려있다.

우리의 근대사가 가슴 아프듯 선생의 삶 또한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거다.

그 가슴 아픈 한이 그림 속에 배어들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한때 공안당국에 의해 압류된 전시작품 ‘모내기’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도 있지만,

이미 선생의 독보적인 작품세계야 잘 알려져 신학철 선생을 모르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선생의 작품세계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굴곡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번에 보여준 포토콜라주 작품들은 선생의 자전적 체험과 역사의식을 담아낸 소중한 전시임이 틀림없다.

사료로서 사진보다 더 진실성을 가진 매체가 어디 있겠는가?

사진을 채집하고 맥락을 연결하거나 축소 또는 확대의 복사과정을 거치는 등,

종이에 흑백 사진을 오려 붙여 가며 누적된 역사의 층위를 이루어 낸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형성된 틀이 캔버스에 옮겨지며 완전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 포토꼴라주는 캔버스에 옮겨지기 전의 작품으로, 사진으로 치면 필름 원판에 해당하는 셈이다.

선생의 작품가격은 서민들이 꿈도 못 꿀 정도로 비싸지만,

소장 가치가 높은 포토꼴라주 소품 한점이 250만원 정도라니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전시가 시작되는 지난 6일 오후 다섯 시경 전시장에 들렸는데, 생각보다 덜 붐볐다.

어느 방송 팀이 촬영을 하고 있었고, 신학철, 이효상 선생 내외분은 손님을 맞고 있었다.

김진하관장을 비롯하여 이종승, 송 창, 정영신씨도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아는 작품도 있었으나 처음 보는 작품이 많았다.

역사적 팩트와 작가 내면의 무의식을 긴밀하게 콜라주한 작품에서

작가의 치열한 정신력과 탁월한 조형적 능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개인에게 판매할 작품이 아니라 역사박물관에서 일괄 소장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

아무리 거리두기로 외출을 삼가해도, 틈내어 꼭 한번 관람하시길 바란다.

 

전시 뒤풀이 장소로 정해진 ‘유목민’으로 갔더니

김정헌, 장경호, 박윤호, 황경애씨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춘천에 계시는 황효창화백 내외분도 오셨으나

술 한잔 드시지 못하는 불편한 몸이라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박불똥, 조경연 내외를 비롯하여 송창, 나종희, 방기식, 김진하,

김구, 박세라, 김세균, 장의균, 장 춘 노광래, 최효준, 김이하, 조준영,

황정수, 우문명, 조명환, 이인섭씨 등 많은 분이 오셨더라.

 

반가운 분들이 많은 이 좋은 날, 몸이 편치 않아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쉽지만 줄행랑쳤다.

사진, 글 / 조문호

 

 

 

 

 

 

 

 

‘현실과 발언’ 창립 40주년을 맞아 노년의 민중 화가들이 다시 뭉쳐 세상에 말 걸고 있다.

 

암울한 유신시절이었던 80년도 창립된 ‘현실과 발언’은

81년 ‘도시와 시각’전으로 서울을 비롯한 광주와 대구에서 순회전을 가진바 있다.

이듬해에는 ‘덕수미술관’에서 ‘행복의 모습’전을 열었는데,

‘그림과 말’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 때인 82년이었다.

10년 동안 활동하다 90년 해체되었지만, 작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화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 토론하고 연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미술(美術)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 케테 콜비츠의 말처럼,

미술에서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다.

자유롭게 발언하는 소통의 기능을 통해 삶의 맥락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당대의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미술로 표현하며 시대와 소통했다.

 

당시 회지 제호였던 '그림과 말'을 그대로 내 건

'그림과 말 2020'展이 지난 1일부터 삼청로 ‘학고재’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 판화, 설치, 사진 등 106점을 내건 전시에는

작가들의 청년기 작품과 최근작을 비교할 수도 있는데,

다들 젊은 시절의 열기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용태, 최민씨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윤범모씨가 빠진

강요배,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박불똥, 박재동, 성완경, 손장섭, 신경호,

심정수, 안규철, 이태호, 임옥상, 정동석, 주재환씨 등 열여섯 명이 참여했다.

 

‘코로나19’ 광풍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피하기에 개막식엔 참석 못하고,

지난 7일에야 전시장에 들릴 수 있었다.

 

본관 중앙에는 심정수씨의 조각 ‘사슬을 끊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억압받는 청년의 초상으로,

사슬과 장벽을 끊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다른 전시와는 달리 전시 공간 한 곳에 ‘진행형 프로젝트 룸’을 설치하여

작가들이 작업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라.

 

그 날은 전시작가인 김건희, 노원희, 박불똥, 박재동씨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취재 나온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와 사진가 양시영씨도 만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룸은 전시가 진행되는 한 달 내내 작가들이 오가며

작품 활동을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공간이다.

 

작가들이 동시다발로 프로젝트 룸에서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데,

나온 작가가 자기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앞사람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고,

재해석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임옥상씨는 전시 기간 동안 "내달려라, 그림!"이라는 주제의 관객 참여 형 작업을 펼친다.

즐겨 다루는 흙 위에 드로잉을 하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겨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관람하는 것 외에도 참여 작가를 여럿 만날 수 있어 좋다.

작업을 지켜보거나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간 날은 박재동화백이 관람객의 초상화를 그리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원희 작가는 관람객에게 바느질 작업을 지도했다.

그 날은 먹을 복이 있는지, 한 쪽에서 김건희, 박불똥씨가 피자 파티를 준비했더라.

 

전시장을 둘러보니, 현실사회를 향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으나,

민주화 영향인지 표현 방식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진보 성향인 민중미술가들의 이념적, 정치적 색채가 잘 드러났다.

 

신경호씨의 '꽃불(화염병)-역천(逆天)‘과

5월18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작품 '넋이라도 있고 없고-초혼'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빨갱이의 상징 깃발 같다'며 압류 당하여 20여년 만에 돌려받은 작품이었다.

 

1980년 군사정권의 공포를 그 당시 나온 ‘쭈쭈바’의 광고 문구로 풍자한

‘얼얼덜덜’을 선보인 김건희씨는 지난해 그린 촛대바위 연작을 내 걸었다.

 

김정헌씨는 폐공장을 배경으로 버티고 선 큰 나무를 그렸다.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란 제목을 붙였다.

1982년 작품은 미래를 위해 달리는 건강한 노인의 모습을 담은 '행복을 찾아서'가 걸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씨는 '바이러스' 연작으로 방송인 김어준씨를 그리기도 했는데,

검찰, 언론개혁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모든 그림은 말을 한다. 속삭임으로든 침묵으로든. 그러나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의 아픔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범죄였다.”

 

민정기씨의 ‘1939’에는 절정의 색채를 뽐내는 인왕산에

‘천황폐하 만세 조선총독부교무국’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캔버스에 음각으로 표현된 문자의 주변은 상처처럼 불그스름하게 표현했다.

일제 만행의 아픔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신관 입구에 들어서면 이름 없이 목숨을 잃는 근로자를 기리는

이태호씨의 '무명 사망 근로자를 위한 비'를 만날 수 있다.

작품 중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에게 수여한

반어적 의미를 담은 '상패' 연작과 짱돌도 전시되어 있다.

 

임옥상씨는 흙에 귀의 한 듯하다.

대지를 닮은 배경 위에 먹선을 힘차게 그은 ‘흙’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구작 '신문-땅굴'은 제3땅굴을 발견하여 보도한 신문을 재료로 만들었다.

신문 콜라주 위에 성에 낀 듯 뿌연 막을 씌워, 국민의 눈을 가리려 한 군부독재의 만행을 비꼬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 4·3항쟁을 알리는 역사화 연작을 그려온 강요배씨는 

가을 제주 오름에 핀 물매화와 들꽃의 자줏빛을 표현한 ‘노야(老野)’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역사 이념논쟁을 비판한 박불똥씨, 신목(神木)과 자연 풍경을 추상화한 손장섭씨,

휴지와 폐비닐 등을 사진으로 담는 성완경씨, 빈 액자를 내 건 주재환씨 등 볼만한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전시기간 동안 부대행사도 열린다.

오는 11일은 이태호씨 진행으로 '1980의 발언과 2020의 발언' 1차 토론회가 열린다.

25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2차 토론회가 열린다.

 

이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5일 재불화가 강명희씨 전시가 열리는 '인디프레스'에 프랑스 전 총리였던 도미니크 드 빌팽씨와 그의 일행들이 방문했다,

특별 손님을 위해 기존 전시외에도 보안여관 신관과 3갤러리 등 세 곳으로 전시를 확대했는데,

대작을 보여주기 위해 갑작스럽게 마련된 별도의 전시는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준비했다고 한다.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서 열리는 류연복씨 전시 뒤풀이를 마다하고 '인디프레스'로 달려갔다.

전시장에는 김정대관장을 비롯하여 최석태, 김정헌, 신학철, 민정기씨 내외 등 반가운 분들이 여럿 와 있었다.

뒤 이어 성완경씨와 담양의 박문종씨가 나타났고, 윤범모, 김정업, 오경환, 장경호, 박불똥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강명희씨는 1972년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가로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코르틀리에 시립미술관', '갤러리 드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액스포' 등지에서 자연을 주제로 한, 시적 작품 세계를 펼쳐 온 열혈작가다.


 

그는 80년대 서울미술관을 운영했던 화가 임세택씨 부인으로, 영화배우 신성일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지금은 파리와 제주에 화실을 두고 바람처럼 떠다니는 여류작가다.



전시된 강명희씨 작품은 세계 여행 중에 접한 사막이나 오지에서 만난 자연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재현했다.

이번에 방문한 도미니크 드 빌팽씨와는 자연과 인간현상에 대한 단상을 담은 시화전을 중국과 한국에서 같이 열기도 했




그의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눈 밭에서 사물들이 스물 스물 기어 나오는 것 같다.

아니, 안개 속에서 시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떤 작품에서는 슬픔이 왈칵 밀려왔다.

화폭 위에 번진 색들의 날숨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느끼기도 했다.


 

북녘 정원이란 뜻의 대형 작품 북원앞에 서 있으니, 그 황홀함에 가슴이 벅찼다.

대자연을 노래한 시어들이 물안개처럼 아롱거리는 장관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신학철, 민정기씨와 술 한 잔하며 환담을 나누고 있으니,

작가 강명희, 임세택 부부와 도미니크 드 발팽씨 일행들이 밀어 닥쳤다.



도미니크 드 빌팽씨는 주미 프랑스대사, 외무부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내무부장관을 거쳐

총리에 오른 인물로 문학평론과 정치수상록 등 많은 책을 펴냈다.

세계 평화와 인류애를 주제로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한데,

강명희 작가와는 절친한 친구이자 그림과 시로 소통하는 오랜 동료이기도 하다.


 

그날 도미니크 드 빌팽씨의 축하인사에 이어 강명희씨와 서울대 미대 동문이었던 화가 김정헌씨,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관장, 미술평론가 성완경씨가 차례대로 나와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를 축하했다.


 

노벨상 단골후보 시인 아도니스가 강명희씨 작품에 바친 시다. 

"이 신기한 색채 속을 여행하면서/ 두 눈은 파리의 가을에 취하고/ 두 손은 몽골의 얼굴을 만지는 듯하네/

본래 대자연을 읽어온 나지만/ 화가의 그림은 만물을 꿈속으로부터 불러내네."



강명희 작품전은 216일까지 통의동 인디프레스에서 열린다.

 

사진, / 조문호






























































































 




“김종영미술관”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원로작가를 초대하는 전시에
김정헌씨의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가 열린다는 소식을 진즉에 들었다.
보고 싶었으나, 더 이상 전시장을 기웃거리며 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기에 난감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것이다.
지난 29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리는 김윤수선생 묘비제막식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그 전시를 보게 된 것이다,




묘비 제막식이 끝난 후 버스가 김윤수선생 추모식이 열리는 평창동 ‘가나아트’로 갔는데,
지척에 있는 “김종영미술관”에 잠시 들렸다 간다는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교통 불편한 곳까지 찾아가기도 귀찮았지만, 스스로 다짐한 일에 핑계거리가 생긴 것이다.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닌가.




전시를 보지 않은 분들만 차에서 내려 ‘김영종미술관‘으로 갔는데, 약 30여명 되는 것 같았다.

전시장에는 성완경, 공선옥씨 등 먼저 와서 관람하는 분도 많았다.
전시 작품은 신작도 많지만, 100호가 넘는 대작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라는 전시 제목은 작가의 삶을 함축했다.
우연이냐 필연이냐의 제목이 내포한 뜻은 작품을 말하는 것이지만,
작가의 다양한 이력이 말하듯이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것 같다.




김정헌은 진보진영 미술계의 대부다.
1979년 민중미술의 모태인 ‘현실과 발언’ 동인을 시작으로 공주사범대 미술교육과 교수,

전국민족미술인연합 대표, 문화연대 상임 공동대표,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회 위원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등 미술의 사회적 참여 현장에 항상 그가 있었다.

지금은 4·16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작업의 완성도에서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으나, 생각의 차이다.

그의 작품들을 단순한 이미지나 시대를 명멸한 사조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
김정헌만의 회화적 팩트이자 화면 구성력이며, 조형적 완성도고 감각의 세계다.




초창기의 소품에서 부터 팝아트 느낌을 주는 80~90년대 현실 비판적 작품은 물론
폐공장이나 폐기물 등 버려진 풍경이나 쪼그려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린 신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 아직도 서 있는…’

대작 옆에는 1994년에 쓴 작가의 육필 노트도 재현해 두었다.
산동네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에 가로등이 비치는 ‘귀가’나

푸른빛의 연작 ‘달빛이 주목나무를 주목하네’, ‘달빛과 주목나무’ 같은 서정적인 그림도 있었다.




특정 양식으로 재단되지 않는 작품들은 특유의 개념과 감흥으로 작가의 회고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단아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에 글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특징이다.



 
기발한 구성으로 환경 위기를 말하는 신작들은 산업화 너머에 주목하고 있었다. 

때로는 민중의 삶이나 광주항쟁 같은 격변기의 풍경을 결합시켜 현실을 말하고,
익살적인 풍자로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기도 했다.

시대상을 담은 필력의 깊이와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작가는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리게 된 그림들이
어찌 보면 자신의 삶이 그렇지 않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품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전시는 1월5일까지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에서 전시된다.

사진, 글 / 조문호




















‘한국민예총’ 드디어 서광이 비친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한국민예총)의 창립이 어언 30주년을 맞았다.

한국민예총은 예술인들의 공동실천으로 사회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기여하고,

민족문화 창달에 헌신할 목적으로 19881223일 창립한 예술단체다.

현재는 지역별로 분권화한 형태지만, 가닥을 잡아 갈 본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민예총30년 동안 민주화와 문예부흥을 위해 크게 기여해 왔으나,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다,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어려운 처지에 있다.

오랜 부채를 해결하여 다시 일어서기 위해 역대 이사장단을 비롯하여

신학철, 이철수, 유순웅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재를 털어  재기하려 노력해왔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격이었다.



   



창립 때부터 인간적인 관계를 더 중요시 했는지 모르지만,

많은 회원을 대표하는 단체 운영에 그런 사심이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사무총장 뜻에 따라 이사장이 추대되는 모순이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이루어져 왔다는데 있다,

그러니 자신을 내 세워 준 실세더러 누가 감히 메스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사무총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올 2월부터 화가 박불똥씨가 이사장을 맡으며,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사무총장을 해임하여 새 집행부를 구성했으나 당사자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장부까지 움켜 지고 배 째라 식으로 버티는데,

더 웃기는 것은 일부 지역 민예총을 조종하여 내분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제 제발 그만하라.

회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뭉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법적 조치도 불사해야 한다.

단체를 끌어 가는대는 절대 인간적인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한 선례를 들어 보겠다.

오래전 민예총산하단체인 민족사진가회’(민사협) 창립에 사진가 김영수씨를 도운 적이 있다.

그 단체가 주저앉게 된 원인이, 바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독재에 의한 것이라는데 있다.

초대 이사장으로 작고하신 홍순태선생을 로봇 이사장으로 앉혔으나,

이사회나 회계절차도 형식일 뿐, 모든 게 한 개인의 뜻대로 움직여졌다.



 


창립시 내가 사무국장 직책을 맡았으나 그것도 이름 뿐이었다.

인사동에 사무실을 내려는데, 보증금이 없어 잘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

홍순태 이사장 명의의 차용서를 써 주고 빌려와 입주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만 바보가 되었다.

뒤늦게 민예총본부 사무실로 이전했으면 보증금은 돌려줘야 할 것 아닌가?

 


 


가까운 친구라고 덮어주고 변명해 주다보니, 결국 단체 자체가 문을 닫도록 만든 것이다.

박정희보다 더 지독한 독재로 좌지우지 했으니, 어느 회원이 남아 있으려 하겠는가?

유령 회원을 이끌고 가내수공업 식으로 끌어가다, 본인이 죽고 나니 결국 문을 닫더라.



 


문제는 박불똥이사장이 정영신씨를 조직국장으로 내 세워 조직을 다시 복원시키려 했으나,

그 불신의 골이 깊어 대개의 사진가들이 머리를 흔든다는데 있다.

이제 민족이란 자도 단체명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조직에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모두 화합하여 잘 못된 것을 과감히 개혁하여 우리나라 문화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 개혁에 나선 박불똥 이사장을 믿는다.

원칙주의자인 그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사협에 진저리를 내어 오래 동안 방관하고 살았기에, 민예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차 몰랐다,

마침 사무국장을 맡은 서인형씨와 정영신씨가 쥐꼬리만큼의 보수로 일한다기에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이다.




 

유순웅 부이사장 도움으로 사무실을 얻어 어렵사리 꾸려가지만 살얼음 판 같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어렵기야 하지만, 그러나 희망이 보이더라.

이제 단합하여 협력하는 일만 남았다.



 


일반인들에게 받는 CMS도 계속 들어오고 있고, 기금 마련전에도 많은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기금마련전도 여지 것 해 왔던 것처럼 무조건 작품을 내 놓는 것이 아니었다.

사무국과 작가와의 계약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출품작가의 뜻에 따라 판매대금 분배와, 끝난 후의 작품반환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출품 작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몰랐던, 그 전의 주먹구구식 기금마련전이 아니라

작가와 단체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획전이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기획한 민족예술, 다시 날아오르다기금마련전에는

신학철, 황재형, 임옥상, 김정헌, 민정기, 김진열씨 등 내 노라 하는 작가 4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미 작품이 팔려 나간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 19일 오후5시 인사동 관훈갤러리전관에서 개막된 민족예술, 다시 날아오르다

기금 마련전에는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대 성황을 이루었다.



    


개막 행사는 유순웅 부이사장의 사회로 이성호 경기민예총이사장의 비나리 공연에서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의 북춤으로 신명을 일으켰다.

박불똥 이사장의 인사와 백기완선생의 축사, 그리고 유홍준씨의 격려사로 이어졌다.



 


이어 마임이스트 유진규씨의 무언극은 마치 민예총의 아픔을 대변하듯 절절했다.

손병휘 서울민예총이사장의 노래에 이어

임진택 명창의 김구선생 탈출기를 담은 창작 판소리가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수 정태춘씨가 나왔는데,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늙어가는 모습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목소리는 더 깊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관훈갤러리가 생겨난 이후 최고의 관객이 몰렸다.

3층 공연장에 다 들어 올 수 없어, 입구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2층에 마련된 조촐한 다과로 환담을 나누었고,

낭만에 마련된 뒤풀이에서 밤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판화가 김준권씨 100만원, 박종관 한국문예진흥위원장 100만원, 화가 김정헌씨 50만원 등,

독지가들이 줄을 이어 민예총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다음해 16일까지 열리는 민예총기금마련전은 꼭 볼만한 전시다.

유명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 민중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신학철씨가 88년에 제작한 목판화 한국현대사-유월항쟁도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으로 민중미술을 이끌어가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구입하지 못하더라도 작은 금액의 CMS 한 구좌라도 적어주길 바란다.

작은 물방울이 내를 이루듯, 작은 힘이 모여 민예총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참여 작가는 다음과 같다.

 

작고작가) 박생광 김영수 문영태 김구한

 

강연균 강요배 김영진 김재홍 김정헌 김진열 김천일 김현철 나규환 노원희 두시영 민정기

모노리 박불똥 박재동 박흥순 변승훈 손장섭 송 창 성낙중 신학철 심정수 안경진 안창홍

양형규 여태명 이영선 이명복 이원석 이종구 이종희 이철수 이태호 임옥상 장경호 정비파

조문호 주재환 최병수 황재형

 

사진, / 조문호





































































 




손기환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 2부작이 오는 51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들은 기민한 만화적 순발력을 회화에 끌어들여,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 타타타타타이 얼마나 간단명료한 메시지인가?

무장헬기의 굉음을 소리로 나타낸 이 글은, 시각적 재미와 함께 문학적 요소도 가미되었다.

위로는 군화발이 부각되고, 아래로 몇 명의 군인들이 메 달려 지나가는 낯설지 않은 풍경은,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는 군사문화의 폐해를 한 마디로 정리한 걸작이다.


 

기울어져 있는 잠실 롯데타워 옆에 새떼와 전투기가 함께 나는 풍경도 있다.

녹색의 지평선과 주홍색의 하늘이 어긋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성남비행장 활주로의 방향을 틀어 가며 빌딩을 세우게 한 정경유착을 꾸짖는 비판적 시선에 있다.


 

그리고 희뿌연 ‘DMZ 풍경은 마치 안개 낀 정국을 보는 것 같다.

풍경 위로 GP(초소)OP(관측소) 그리고 GOP에 관련된 일렬번호와 지뢰표시만 표기하므로,

추상적 현실을 구체적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남북대치정국의 실감나지 않는 비현실적 현실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그 그림은 비현실적 공간이 돼버린 DMZ의 오늘에 대한 고발이며 응전이었다.


 

‘DMZ-마주보기시리즈에는 권력자들이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김정은과 이명박도 있고, 박근혜도 있다. 이들이 보고 싶은 것이 도대체 뭘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빅 카드라도 찾고 싶었나? 아니면 유치한 야동이라도 보고 싶었을까?

한 마디로 보여 주기 위한, 국민을 기만하는 쇼에 불과하다.

노동자시인 김신용씨의 시어처럼 , , ~”,


 

손기환의 이미지 저장고는 수많은 시각적 기억들로 넘쳐난다.

오래된 사진 이미지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딱지, 만화, 카툰, 민화, 책표지 등

이미 기호화된 대중적 이미지를 끌어들여 다양한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적절한 이미지로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며,

만화와 회화와 판화가 지닌 표현기법과 양식적 특성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풍경을 연출해 낸 것이다.


 

작가가 분단과 DMZ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실향민 2세라는 성장 배경과 DMZ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군대 생활도 연관 있다고 한다.

전쟁 직후 태어 난 세대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반공을 세뇌시키는 획일화된 교육환경과 유신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광주학살의 만행으로 이어지는 암울한 시대를 체험하며 자라난 저항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전시 작품이 압수되고 구속되는 수난을 겪으며 이마에 별을 달기도 했다.

그런 몸소 겪었던 체험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녹아 난 것이다.


 

손기환은 파인아트에서 기피하는 시각물을 가감하게 끌어들여 대중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데, 고급문화의 속성을 거부하는 측면도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색도 노란색이나 보라색 등 약간 병적인 색깔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그런 팝적 요소를 구축하여 성공적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손기환이 누구인가? 주재환, 신학철, 김정헌, 민정기, 박불똥 등 우리나라 민중미술을 이끌어 온 몇 안 되는 용병 중 한 사람이다.

다채로운 형식으로 정치적 모순을 비판하며 권력에 저항해 온 역전의 용사다.

지금은 국제 만화에니메이션 페스티벌 SICAF의 집행위원장과 잡지 만화정신의 발행인으로 화단보다 만화계에서 많이 활동하는데,

상명대학교 만화에니메이션과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2부 전시가 시작된 18일 오후5시 무렵, 화가 김정헌씨가 포장된 액자 하나를 들고 전시장에 나타났다.

사연 인즉, 김정헌씨가 옛날에 손기환씨와 화실을 같이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정헌씨는 대학원생 시절이고, 손기환씨는 균명중학교 3학년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손기환씨가 김정헌씨에게 사례로 드렸다는데, 그 그림을 46년 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찍부터 손기환씨의 작가적 기질을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전시를 축하하러 오며 아득한 추억 하나 챙겨 왔는데, 손기환씨는 46년 전의 감상에 젖는 또 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맺은 기나긴 세월의 정이 너무 아름다웠다.


 

작품집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고착된 기존의 제도적, 조형적 미학적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손기환의 작업은 작업내용 뿐만 아니라 생태적인 면도 정치와 유사해 보인다. 또 기존에 제도화된 작가 중심의 미적 기득권의 고착된 위계를 해체하기 위해, 미적 근거를 대중적 의 영역에 두고, ‘적 언어를 차용해서, ‘적으로 관객과의 감각과 인식의 평등한 대면과 연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랑시에르적 감각의 분배도 일정정도 떠 올리게 한다. 자신을 포함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제도화, 권력화된 미적 이데올로기나 위계에 대한 파열을 시도하며, 관객들 개별적인 감각으로의 수평적인 소통전략을 취하는 미적 태도다.“고 적었다.


 

이 전시는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51일까지 열린다.

전시와 함께 손기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작품집(가격50,000)나무아트에서 발행되었다.

276면의 방대한 자료집이라 소장가치도 높다.

 

/ 조문호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 정 나누는 날이다.
인사동 어디서든 반가운 사람들이 인사도 나누고, 차나 술 한 잔하는 날이다.
일 년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인사동을 견우와 직녀가 만난 오작교로 생각하고 많이 들 나오시길...






지난 18일의 수요일엔 원로 문인과의 오찬 약속이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있었다.
강 민, 구중서, 방동규, 김승환, 장봉숙씨가 나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곰탕 건더기를 안주로 소주 한 잔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한항공’ 오너 집안의 갑 질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께서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에 이어,
모든 원인은 가정교육이 잘 못되어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부모가 자식의 거울인데,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갑 질을 너무 많이 보아 온
자식들이 모두 체질화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가정교육은 잘 못되어도 한 참 잘못되었다.
자기 자식만 소중한 줄 알고 남을 배려하는 인성교육이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대개의 사람들이 개인주의에 빠져 사회 전체가 개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방동규선생께서는 가벼운 운동을 습관화 하라는 좋은 말씀도 주셨다.
옛날 새마을 운동처럼 틈만 나면 온몸을 푸는 운동을 하라는데,
순서나 요령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들은 몸의 각도를 어떻게 하라는 등 이런 저런 규칙을 정하지만,
몸에 익지 않으면 자기 편한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지개를 펴는 것도 하나의 운동이라고 말씀하셨다.




식사가 끝난 후, ‘허리우드’에서 커피 한 잔했는데,
모든 계산을 장봉숙 선생께서 해버렸다.
점심은 쏘겠다고 일찍부터 말씀하셨지만, 찻값은 내가 내야 할 텐데,
낮술에 맛이 가, 허풍떠느라 놓쳐버린 것이다.




그 다음 일정은 ‘나무화랑’에 들려 손기환씨 전시를 관람하기로 했다.

가는 도중 임영주선생을 만나기도 했고, 40년 동안 인사동에서 행상하신 권경선씨도 만났다.

지팡이 짚고 4층까지 오르시느라 다들 고생 하였지만, 좋은 전시를 보게 된 것이다.
김진하관장이 반갑게 맞아주며 친절하게 작품설명을 해 주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떠나신 후, 저녁까지 기다리기 난감하여 사우나탕에 들려
물장난이나 치고 올 생각이었으나, 사진가 김수길씨를 만나 그를 따라 나서게 되었다.
‘부산식당’ 앞을 막 지나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술평론가 최석태씨의 반가워 하는 모습이 너무 정겨웠다. 몸까지 줄 것 같은...
화가 장경호씨와 ‘부산식당’에서 한 잔하다 지나가는 우리를 본 것 같았다.
그 자리에 퍼져 있다, 다시 ‘나무화랑’에 올라간 것이다.




전시 작가 손기환씨는 그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지만,
김정헌씨를 비롯하여 박불똥, 박진화, 윤진섭, 이래훈, 김보중,
한상진, 송 창씨등 많은 화가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김정헌씨가 포장된 액자 하나를 김진하관장에게 전해주었다.
그 그림은 손기환씨가 46년 전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사연 인즉, 김정헌씨는 옛날 손기환씨와 화실을 같이 사용했다고 한다.
김정헌씨는 대학원생 시절이고, 손기환씨는 균명중학교 3학년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손기환씨가 김정헌씨에게 드린 그림을 여지 것 보관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찍부터 손기환씨의 작가적 기질을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전시를 축하하러 오며 아득한 추억 하나 챙겨 왔는데,
손기환씨의 입장에서는 46년 전의 감상에 젖는 또 다른 감회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정겨운 모습이었다. 그림으로 맺은 정의 기나 긴 세월이...




좀 있으니, 학교 수업을 끝낸 전시 작가 손기환씨가 등장하였고,
화가 홍태림씨가 어여쁜 김은진씨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 날 김은진씨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가져온 것이다.
처음 알게 된 가족연이지만, 홍태림씨가 가수 홍민씨의 차남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르는 분을 위해 결혼 날자와 예식장을 알려드리오니,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시면 고맙겠다.
5월 19일(토) 낮12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 5층 조병두국제홀’입니다.




술시가 되어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화가 정복수내외가 오랜만에 등장하였고,
미녀 김정숙씨도 만날 수 있었다.
술자리에는 사진가 김수길씨, 조해인 시인, ‘샘터’ 이종원 편집장이 자리 잡았고,
주인장 전활철씨는 찾아오는 손님 맞느라 분주했다.




조해인씨는 오래 전 방송국 구성작가로 활동할 때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느라 입에 침을 튀기고 있었는데,
정영신씨의 고향인 함평 손불면 이야기라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귀가 신통찮아 대략은 짐작이 가지만,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 글도 쓸 수 없지만, 정영신씨에게 옮길 수도 없구나.




그 날의 술값은 물론, 돌아 갈 여비까지 김수길씨가 챙겨 주었는데,
이 원수를 살아생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 달에는 더 많은 분들 뵙기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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