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무렵, 오사까로 신혼여행 떠난 시나리오 작가 최건모씨로부터
신부 채연희씨와 녹번동으로 방문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최건모씨는 코 구멍만한 집을 몇 차례 와 보았지만, 신부에게 보여주긴 민망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론, 그들도 가난한 신혼살림을 차려야 하니, 어쩌면 위안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름도 모르는 과자를 선물로 사왔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입에 살살 녹았다.
찾아 온 손님에게 접대할 것이 없어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싶어 
가까운 기사식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밥 값마저 최근모씨가 내 버렸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건모씨는 늦복이 터졌는지, 시집 온 신부가 예쁘고 착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대개의 젊은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따로 살려고 안간 힘을 쓰는 세태에,
시부모 사시는 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40이 넘도록 장가들지 않고 버텨 온 보람은 있는 것 같았다.





신혼부부가 돌아간 후, 급한 일이 있어 인사동에 나갔다.
그런데, 인사동 거리는 바닥재 교체공사로 어수선했다.
그동안 인사동 길바닥 자재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모른다.
멋지게 만들려고 기와처럼 구운 자재에서부터 별의 별 자재를 다 깔았으나,
머지않아 깨지거나 망가져 교체하기를 밥 먹듯 했다.





아무리 인사동에 사람이 많이 다닌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 고급 바닥재를 사용 했으나, 차가 다니지 않을 수 없다.
전시할 액자나 짐을 옮기는 차량에다 얌체족 차까지 있는데, 어찌 견뎌낼 수 있겠는가?





고육지책인지 모르지만, 이번엔 난생 처음 보는 바닥재가 깔리고 있었다.
성벽에나 사용될 듯한, 메주 덩어리보다 더 두터운 석재로 인사동 바닥을 바꾸고 있었다.

단단하기야 하겠지만, 넘어져 머리라도 찧는다면 예사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쉽게 깨지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돈이 남아 도는가?




 
돈 많아 계속 교체하는 것이야 누이 좋고 매부좋은 일인지 모르지만,
그냥 일반 도로처럼 아스팔트를 까는 것이 어떨까?

아스팔트를 오방색으로 페인팅하거나, 인사동을 사랑하는 화가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답답해 하는 소리지만, 이미 저질러졌으니 어쩌겠는가?

그 날 지켜 본 인사동 거리는 외국인들이 많아 그런지, 국제도시 같았다.

골목길도 가게 앞을 단장하느라 분주했으나, 정겨운 모습도 있었다.





30여 년 동안 인사동 행상을 해 온 권경선씨가 돌턱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미 관광객에 밀려났으나 인사동을 떠나지 못하는데, 그 날 모처럼 단골손님을 만난 것이다.

참기름 한 병과 참깨 약간을 팔았는데, 참깨 값은 받지 않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이러한 상거래가, 야박한 인사동에서 아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같았다.





그동안 인사동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를 입이 아프도록 외쳐왔으나,
쇠귀의 경 읽기에 다름없었는데, 현 상황에서라도 조금씩 개선 발전시켰으면 한다.
상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큰길이야 어쩔 수 없겠으나,
인사동의 매력으로 꼽히는 갤러리와 골목이라도 좀 신경썼으면 좋겠다.






제발 국제적 관광지가 되어버린 인사동을 더 이상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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