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송 기획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아홉 번째 강제욱이 지난 21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김남진 관장이 기획한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우리 시대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해  8월 양승우씨를 그 첫 번째 사진가로 내세우며 시작되었다.

 

사진비평가 이광수 교수가 작가론을 쓴 본 기획전에는 양승우씨를 비롯하여 강재구, 김동진, 김은주, 서준영, 최치권, 모지웅, 박찬호, 강제욱씨 등 모두 아홉 명이 선정되었다. 매월 한 차례씩 한 작가의 지난 사진에서 부터 현재 작업에 이르기까지 전체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시대의 목격자로서 인간 중심이라는 기본적인 정신을 계승하며 사회 부조리와 인간관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분노할 줄 아는 사진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지막 작가로 참여한 강제욱씨는 ‘The Lost Land’, ’‘민국(民國) 100’, ‘The Wall’,  ‘The Planet’, ‘Thinguniverse’ 20여 년 동안의 작업을 주제별로 보여주었다.

 

사진가 김영호씨의 사회로 시작된 강제욱개막식에는 부산에서 올라 온 이광수교수의 시원한 사진비평이 있었다.

 

강제욱은 역사를 우주의 시간 속에서 찾는다. 이성과 논리가 아닌 우연과 감성의 시간 속에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 버린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역사를 사진의 시간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 명쾌한 이교수의 강의는 귀머거리에 가까운 내 귀에도 속속 들어왔다.

 

강의가 끝날 무렵, 사진가 김문호씨가 이번 기획전에 대한 전체 평가를 물었더니,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을 점검할 좋은 기회였다며,

사진이 너무 자극적이고 독한 사진이 많았다고 한다. 관객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변사가 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한바탕 웃고 넘어갔으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밋밋한 화면에 변화를 주어 시선을 끌기 위한 방법이겠으나, 마치 유행처럼 너도 나도 어둡고 자극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만의 어법에 고민하며, 진정성 있는 접근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이어 강제욱 작가가 작업에 대한 과정과 앞으로의 지향점을 들려주었고, 기획전을 마무리하는 김남진 관장의 소회도 들었다.

 

아무튼,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기획전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사진의 얼개를 살펴볼 수 있는 장이었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두루 돌아보는 좋은 전시였다.

내가 보기로는 첫 전시였던 양승우론과 두번째 강재구론, 그리고 마지막 전시인 강제욱론이 인상적이었다. 

이 전시는 4월30일까지 열리니, 시간나면 한 번 가보시라.

 

전시를 추진한 김남진 관장의 노고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시종일관 작가론을 써가며 먼 길을 오간  이광수 교수의 노고와 열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열정적인 분으로 우리나라 사진계에 보석 같은 존재다.

 

지난 2016년에는 매달 두 차례씩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국내 주요 사진가를 인터뷰하여 작가론을 쓰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듬해 결과물로 한국현대사진가 열두 명의 작가론을 묶은 카메라는 칼이다눈빛출판사에 펴내기도 했다.

 

카메라는 칼이다1부는 시대와 시간을 기록하다로 강정효, 권 철, 신동필, 최영진이 참여했고, 2사람과 역사를 바라보다는 김문호, 김보섭, 문진우, 이재갑, 이영욱, 조문호가, 3부인 파인아트 에는 고정남, 이수철의 사진을 논했다.

 

그 외에도 인도 사진가 일곱 명과 최민식선생을 비롯한 한영수, 김기찬, 이주용, 이재갑, 노순택, 조문호 등 국내 사진가 일곱 명의 논문을 마무리하여, 곧 두 권의 논문집도 출판한단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제대로 된 국내 사진가론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진학자들이 잘 알려진 외국 사진가들만 반복해가며 짜깁기하지만, 정작 국내 사진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면, 밑천이 짧아 그런걸까?

 

이광수씨는 부산외국어대학에서 인도사를 연구하는 교수로 정년을 일 년 가까이 남겨두고 있다. 전공인 인도사는 물론 정치평론에서 사진 비평에 이르기까지 팔방미인인데, 사진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진 비평에 힘을 쏟고 있다.

그의 그침 없는 바른 말에 주눅 들어, 이단아처럼 기피하는 기득권 세력도 있다. 끼리끼리 사진판을 좌지우지해 온 그 자들의 짓거리가 더 웃긴다.

 

강제욱론 전시 개막식에 함께한 사진가는 김문호씨를 비롯하여 이윤기, 정영신, 김영호, 정윤배, 나인석, 김동진, 서준영, 모지웅, 최치권, 오철민, 고옥룡씨 등 많은 분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이광수씨는 인도사 유튜브 강의 동영상을 찍기 위해 일찍부터 왔다는데, 일이 끝난 후 나에게 페북 메시지를 보내왔으나, 또 뒷북을 쳤다.

페북은 컴퓨터에서만 볼 수 있어 밖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뒤풀이는 충무로 김삼보에서 했는데, 모처럼 반갑고 즐거운 술자리가 되었다.

이교주의 통쾌한 구라에 술이 술술 넘어갔다.

 

술자리에서 최민식선생 아카이빙을 위한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 주었다.

모처럼 최민식 선생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번에 마무리한 내 사진 논문은 철학자 니체와 관련이 있다는 말도 했다.

니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거나 신은 죽었다정도밖에 모를 정도로 무식한데,

어떻게 관련 있는지 공부 좀 해야겠다.

무려 2년에 걸쳐 논문을 썼다는데, 이 원수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부산행 열차를 타기 위해 밤 열시 무렵에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몇몇은 맥주집으로 이차를 간단다.

매번 아무런 대가도 없이 먼 길을 달려와 애쓰시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안 서러웠다.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열어보니, 페북에 글이 올라왔다.

부산 가면서 취중에 올린 글 걑은데, 진짜 내가 오래 살아야 한다.”란 열한 자가 적혀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맞는 말이다. 그가 없으면 한국 사진의 미래는 없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포토마가 주최하는 제2FNK PHOTOGRAPHY AWARD 순수부문 수상자 초대전인

손은영의 밤의 집2’가 지난 12일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오후 여섯시에 시상식이 있다기에 사람들을 피해 한 시간이나 빨리 갔는데,

일찍부터 사진가들이 여럿 와 있었다.

 

작가 손은영을 비롯하여 주최측인 '포토마' 하춘근대표,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관장,

사진가 엄상빈, 정영신, 김영호, 곽명우씨 정도는 알겠는데,

다들 마스크 때문에 잘 모르겠더라.

 

빨리 빠져 나오려고 사진부터 돌아보았는데,

지난 번 보여 준 밤의 집보다 좀 더 정형화 된 것 같았다.

 

어둠이 깃든 집의 구조가 마치 집들의 초상사진처럼 존재를 드러냈다.

이전에는 어렴풋이나마 집에서 인적, 즉 사람의 체취가 감지되었으나,

이번에는 자로 잰 듯 수평과 수직으로 그려 진 구조물이

독특한 저마다의 색깔에 의해 마치 무대세트처럼 다가왔다.

 

의도된 작위였다.

점점 각박해지고 규격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촬영할 때부터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었다.

마땅한 집을 찾아내어 화면 구성에서 색조에 이르기까지...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은 손은영씨, (손은영씨 페북에서 옮겼다)

촬영 후 후보정을 통해 또 다른 분위기의 집으로 바꾼 것이다.

사진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다시 말해 기록의 예술에서 표현의 예술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번에 발행된 손은영의 '밤 의집2' 사진집 표지 (손은영씨 페북에서 옮겼다)

우리전통가옥은 초가 능선처럼 어딘가 곡선이 있으나

서구의 건축들은 대개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령 같은 수직의 아파트가 점령한 현실에서 본 집의 형태는

옛날 달동네 집이나 마찬가지다.

 

포근한 인간의 정서가 풍기는 달동네를 대신하여

경제성장으로 발전한 삭막한 오늘의 달동네인 것이다.

시대성이 담긴 주택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적인 기록의 가치보다

작가의 주관에 따라 예술사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예술사진 또한 시대적 달동네를 조명하는 기록의 한 축이기도 하겠다.

 

작가는 오랜 나날을 밤에는 찍고 낯에는 후보정하며 올빼미처럼 작업했다.

다시 말해 밤에는 사진 찍고 낯에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색의 조화는 물론 창에 백열등 불빛을 삽입하는 등 미적 요소까지 끌어들였다.

 

사진들은 도식적이면서도 서정적이었다.

도식적인 형태가 정형화되긴 했으나

포근한 색감과 직선의 미가 어울려 관능적으로 다가왔다.

 

사진 속은 잠잠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과 조형감각이 돋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듯, 21일까지 열리니 구경 한 번 하시라.

 

사진, / 조문호

 



얼마 전 독방에 갇혀 있을 때, 다짐한 것이 여럿 있었다,
휴대폰과 페북에서 해방되는 것과 전시장을 멀리 하는 것 등인데,
쓸데없는 일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 일만 열심히하며 재미있게 살기위해서다.

그 중 유일하게 페북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중독성이 강하기도 하지만,
그 마저 없다면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될 것 같아 하루에 한 차례만 접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들락거리던 전시장 출입을 삼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며칠 전에는 파주 헤이리에 간적이 있었다.
정영신씨 따라 잘 아는 분 전시에 갔는데, 나만 들리지 않고 차에서 기다린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멀리까지 와서 안 볼 일은 아니었다.


전시장에 들리면 전시리뷰 쓰는 버릇 때문인데, 보아도 안 쓰면 될 것 아닌가?
전시 작가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성질이 모질지 못해 하던 일은 쉽게 끊지 못한다.
더구나 인사동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는 알려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도 따른다.




문제는 열심히 취재해 소개해주어도, 칭찬은커녕 욕이 바가지라는 점이다.
속된 말로 국 쏟고 뭐 데이는 격이라 진즉부터 그만두고 싶었던 일이다.
대개 작품에 대한 칭찬은 좋아하지만, 쓴 소리는 원수되기 십상이다.

사실 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비판할 자격도, 할 필요도 없다.
작업노트나 서문 등의 보도자료에 근거하거나 직접 인터뷰하여 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월급 받는 기자도 아니면서, 입에 발린 소리는 하기 싫은 것이다.
이제 글을 쓰더라도 보도자료 대로 소개할 뿐 사견은 달지 않기로 했지만,

청탁에 의한 글이라면 사정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씨 전시가 열리는 것은 페북을 보고 알았지만,
정선에서 농사 준비하느라, 전시가 끝나는 지난 토요일에야 부랴부랴 찾아갔다.
그것도 급하게 오느라  정선 집에 가방을 두고 와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그의 치매수준이지만, 그 먼 길을 다시 갈 수야 없지 않은가?
오월 초순 모종 심으러 갈 때 가져올 생각으로 돈과 카메라를 빌려야 했다.



김동진씨 전시작품이 궁금하여 구경만 할 작정으로 갔으나, 습관차럼 글을 쓰게 된다.

이미 전시는 끝났으나, 안내 글이라기 보다 그동안의 일기에 불과하다.


'갤러리 브레송'으로 가다 전시장 입구에서 사진가 김영호씨를 만나기도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으나, 작품은 일찍 철수해 버렸더라. 

포장하던 작품을 다시 한 장 한 장 꺼내 보여주었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비린내 물씬한 인간들의 광기어린 욕망이 꿈틀대는 사진이었다.
‘눈빛사진가선’ 63호로 출판된 김동진 ‘해운대’사진집이 잘 말해 준다.


-눈빛사진가선63 / 김동진사진집 / 해운대 / 가격12,000원-


시인 김수우씨가 쓴 사진집 서문 일부로 대신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태어난 해운대는 몸의 중력으로 가득했다. 바다는 근원을 묻지만, 현대인은 근원에 익숙하지 않다. 근원에 익숙하지 않는 현대인에게 ‘정체성’이란 정말 애매한 개념이다. 작가의 사진 속 몸의 실재들도 애매했다. 그 불투명과 애매함은 곧 통증이었다. 통증은 어디선가 투명한 진실이 긴 발톱을 내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 앞에선 누구나 쉽게 벗고 쉽게 맨발이 된다. 제 몸뚱이를 항상 날것으로 내놓는 물결 때문일까. 옷이라는 중력을 벗으면서 원래 자기가 되었다고 착각한다. 벗는 방식도 살아온 방식만큼이나 비슷하지만 다양하다. 닮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다르고 싶지도 않은 현대인은 자기분열로 인한 갈등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 몸을 던지기도, 눕히기도 하면서 모래알처럼 데리고 놀다가 날아오르듯 물결 속으로 뛰어든다. 몸이 근원적인 자연일까. 벗은 몸이 자신의 본래일까. 문제는 그것이다.”




그런데, 기념사진이라도 몇 장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으나, 빌려 온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마치 전시장은 들리지 않는다는 초심을 지키라는 저항 같았다.




작가 김동진씨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김영호, 류현동씨와 함께 ‘사랑방’이라는 백숙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축배를 들며 전시를 마무리했는데, 좌우지간 술만 들어가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 큰일이다.

요즘 술상에 자주 오르는 오거돈시장 덕분에 색깔 섞인 이야기가 튀어 나왔는데, 자나 깨나 입조심해야 한다.


좋은 시간 만들어준 김동진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한 번 전시를 축하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의 ‘Another City 2’ 사진전이 열렸다.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개인주의로 치닫는 심각성을 비판하며 고발하고 있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때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마저 혼란스럽다.

삶의 구조가 비정상으로 치닫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인간이 규정해 길들어 온 것이겠지만, 그 기준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일 것이다. 




소외와 박탈, 욕망, 갈등 등 현대인들의 심리적 불안상태와 비정한 도시의 단면을 형상화하여,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개막식에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문호, 이수철, 이윤기,

김영호, 정영신, 함인선, 하춘근, 이세연씨 등 20여명이 참석했지만,

같은 시간대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된 중국사진가 왕칭송 전시에는 200여명이 참석하였단다.

너무 대조적이다. 그 전시는 3개월이나 열린다는데...




이수철, 이광수, 김문호, 김남진씨가 차례대로 나와 사진에 대한 감상평과 격려의 말을 전해 주었고,

작가 김동진씨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서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전시작이 작년에 전시된 사진보다 더 좋아진 것은 틀림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 평을 해 주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진비평가 이광수씨의 표현으로는 사진이 더 독해졌다고 말했고, 김문호씨는 사진이 진득하게 찰지다고 표현했다.


 

난, 김동진씨가 주제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되었다.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인지라 모든 게 찍을 대상이 아니겠는가?

사진가 김문호씨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업도 비틀어진 사회상의 기록이지만, 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주제는 비슷하나 김문호씨의 사진이 동적인 편이라면 김동진씨 사진은 정적이다.




개막식이 끝난 후, 다들 충무 해물탕 집에 몰려 가 뒤풀이를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도 부산사람이지만, 이광수씨도 부산서 올라 와 더 반가웠는데,

이광수교수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기로 한 이규상씨가 빠져 다들 아쉬워했다.

바쁜 분이 후배들 사진전을 위해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는데, 다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김남진관장이 이차로 안내한 곳은 후미진 골목 안쪽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골목인데, 분위기가 오붓해 좋았다.

더구나 술 마시며 담배까지 피울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고정남씨도 찾아 왔는데, 술 마시다 사진 촬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초상권 문제로 사람은 물론 거리스냅도 어려운 실정이 아니던가?

김문호씨는 카메라 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는 노 파인더 기법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이젠 숙련되어 대부분 의도한 화각을 얻어낼 수 있단다.




가로등이 조는 어두컴컴한 골목 풍경도 김문호씨가 놓칠 리 없었지만,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사랑 놀음하는 남녀가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 날 김동진씨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자리했었는데, 결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남편 될 김동진씨의 사진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니, 찰떡궁합인 것 같았다.

다들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김남진관장과 김동진씨가 나란히 앉았는데, 찬찬이 살펴보니 너무 닮았더라.

이름까지 비슷한데, 혹시 숨겨 논 아들이나 동생은 아닐까?




다들 술이 취했으나 삼차로 호프집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이 앞으로 추진할 사진기획을 말했는데, 이광수교수도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계속 마시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 전철이 끊어 질 시간이었다.

부산사람들은 여관을 잡아 놓았으나, 멀리 가야할 김문호씨가 걱정이었다.

택시비로 주머니 좀 털렸을 거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안 보면 손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8일의 인사동엔 방배추로 불리는 조선의 삼대구라 중 한 분인 방동규선생과
강민 시인께서 나와 오랜만에 진득한 사람냄새 나는 인사동이 되었다.






강민선생 시집 출판을 기념하여, ‘나주곰탕’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강민,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김명성, 김상현, 조준영, 정영신씨가 함께 했는데,
술잔에 녹인 이야기는 노익장 방동규선생의 치열한 삶이었다.





팔순을 넘긴 연세지만, 요즘도 공장에 일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삼일이지만,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손톱에서 피가 흐르는 피땀의 시간을 보낸다고 하셨다.





가방 하나 만드는데, 몇 십원 정도이니 받아보았자 얼마 되지 않는 돈일게다.
그 돈으로 체육관을 드나들며 육체미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 본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해라.






‘나주곰탕’에서 커피 마시러 ‘유담’으로 가는 중에 사진가 김영호씨를 만났다.

김상현씨와는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라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가워했다.
‘유담‘’에서 커피로 한 숨 돌린 후, ‘유목민’으로 옮기는 이차가 이어졌다.
강 민선생은 먼저 일어 나셨지만 방동규선생께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날따라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대훈, 노인자 내외가 왔다기에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산에 사는 김진규씨가 반색을 했다.
그 자리에는 임경일, 임계재씨를 비롯하여 처음 보는 미녀도 두 분이나 있었다.
김진규씨가 부산에서 전시하러 왔다는 화가 황보 연이씨와 최숙희씨를 소개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털니라도 끼고 나올 걸, 후회막급이었다.






두 분이 ‘인사아트’에 있는 ‘부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최숙희씨는 '욕망에 대한 몸의 사유'라는  전시 리프렛을 주었고,

황보 연이씨는 '그리움은 너야만 했다'라는 리프렛을 건네주었는데, 둘 다 제목이 야릇했다.

정선 갈 일로 전시를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애석했다.



 



낮술에 쥐약인 놈이 일찍부터 빨았으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본색을 드러내 미투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돈도 권력도 없으니, 미투도 아무나 하는 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뒤늦게는 공윤희, 임태종, 이인섭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날 밤엔 인사동 악사들의 연주도 골고루 이어졌다.
전활철씨와 김상현씨의 노래에 이어 김진규씨의 하모니카 연주도 한 몫 했다.
무슨 기생도 아닌 주제에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홀짝거렸으니,
완전 맛이 가버렸다.






이틀 날 새벽부터 정선 갈 생각하니, 더 이상 죽칠 형편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 방동규선생께서 자리하고 계셨으나, 삼십육계 줄행랑쳐야 했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
 노래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유행가 자락을 뱉으며...


글 / 조문호
























































충무로 상권이 을지로를 비롯한 주변지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와 사진을 대표한 충무로였지만, 요즘은 밤만 되면 한산하단다.



 


지난 11일 충무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남진씨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술 한잔하자며 630분까지 갤러리로 오라기에, 전시 오프닝이 있는 줄 알았다.



 


전시장에 들렸더니, 박승만, 송석우, 정휘동씨 삼인전이 열렸는데, 작가들은 보이지 않고 반가운 분만 여럿 있었다.

오늘 오프닝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어제였다며 오늘은 술 한 잔 하기 위해 모였단다.




 

먼저 전시된 사진부터 돌아보았다.

박승만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사물에 대한 존재 이유를 나름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송석우씨는 살면서 겪는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정체성의 키워드로 풀어갔다.

바다를 찍어 화면을 분할시킨 정휘동씨는 삶의 공허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 보였다.

젊은이들의 아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공통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진 작업에 고민이 많은 분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사진가들은 꼭 한번 볼만한 전시였다.




 

이 날 전시장에 모인 분은 브레송김남진 관장을 비롯하여 비움갤러리김상균씨, ‘꽃피다갤러리 김유리관장 등

충무로에서 사진갤러리를 운영하는 세 분이 모여, 의외로 생각되었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이규상씨와 사진가 김문호, 김영호, 이수철씨도 와 있었다.



 


다들 충무로에 있는 중국집 서동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동관은 오랜만에 갔지만, 20여 년 전에는 자주 들린 단골집이다.

삼성카메라클럽에서 현대사진가회로 바뀌며서 옮겼던 사무실이

지금의 해물탕집인 조방낙지 맞은편에 있었기에 종종 들린 것이다.



 


주인도 그대로였지만, 오래된 집기까지 눈에 익었다. 골동품에 가까운 금성에어컨이 아직까지 붙어 있었다.

모든 게 수시로 바뀌는 세태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오래된 것들은 가게나 물건이나 모두 정겨웠다.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니 정영신씨도 왔는데, 충무로에서 50여년을 살았다는 손필수씨가 나타났다.

중부거북상조회회장이라 적힌 명함을 돌렸는데, 충무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애쓰시는 분이었다.



 


아마, 김남진씨에게 충무로 사진축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자리를 주선한 것 같았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사진갤러리 운영하는 분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사진 인들이 힘을 뭉쳐 충무로에 사진바람을 다시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때는 충무로가 사진인들의 메카가 아니었던가?

필름현상에서부터 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이 충무로에서 이루어졌는데, 사진이 디지털화되며 사진인들 발길이 점차 줄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반가운 사진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나, 요즘은 가뭄에 콩나기 수준이다.



201512월 이해선사진상을 수상한 구와바라 시세이선생과 함께한 김한용선생, 오른쪽은 윤주영선생

 


충무로 사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돌아가신 김한용선생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누구인가?

한 평생을 충무로에서 광고사진을 위해 몸 바친 분이다.

선생께서 사용하신 연구소 자체가 우리나라 광고사진의 역사며, 충무로 역사다.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김한용, 정범태, 이명동선생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집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으시던 선생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건물이 매각된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는데,

김남진씨 말에 의하면, 45억에 팔려 철거되었고, 이미 신축건물 완공이 목전에 있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으나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최봉림, 김한용, 강운구, 이명동, 한정식선생

 


그런데 서동관식사비를 손필수씨가 모두 계산해 버려 부담스러웠다.

그 밥 값을 위해서가 아니라, 충무로 사진축제를 비롯하여 충무로가 다시 사진의 메카로 발돋움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리가 파하여 김남진씨가 생맥주 한 잔씩만 더 하자지만 사양했다.

통풍으로 맥주는 못 마시지만, 과음하면 숨이 가빠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집에 돌아왔으나, 사라진 김한용선생 스튜디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일찍 서울시에 청원을 넣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살펴보려, 이튿날 아침 다시 충무로에 나갔다.





큰 길 가의 건축물은 마무리 중이었고, 선생의 스튜디오가 있던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꿈의 공장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 곳에 있던 집기나 장식물은 다 어디 갔는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김한용선생께서 임종할 무렵에 스튜디오가 있었던 골목길


 

그 곳은 광고사진의 대부이신 김한용 선생께서 60여 년 동안 희망을 키워온 꿈의 공장이며,

우리나라 광고사진의 요람이었다.

선생의 사진 속에는 추억의 스타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고, 우리나라 산업 발전사가 담겨있다.

사실, 그 건물은 서울시에서 구입해 광고사진 박물관으로 영구 보존해야 했다.



 


돈 앞에는 역사고 인륜이고 모두 무너지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이제부터라도 사진 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사진가들의 권익을 찾는 것은 물론, 우리 사진의 역사는 우리가 지키자.

 

사진, / 조문호

    

















김한용 선생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을 찿아 보았다.


2016년 5월29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김한용선생께서 운명하신 해 겨울, 충무로 스튜디오를 찾았다.

굳게 닫긴 정문 앞에는 낙엽만 딩굴었는데, 김남진,이규상, 엄상빈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정영신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장사익씨와 환담을 나누는 김한용선생

20133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홍순태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주명덕,강운구,이완교,황규태,홍순태.김한용,구본창,한정식선생

20133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홍순태선생 개인전에서..

김녕만씨가 찍은 사진으로  왼쪽부터 윤세영, 권태균, 김남신, 이완교, 조문호, 강운구,

황규태, 송영숙. 민병헌, 홍순태, 김한용, 주명덕, 한정식, 구본창, 박영숙, 최봉림씨



 



박춘화의 "홀씨, 빛을 머금다"



지난 토요일은 근육통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 충무로에 갔다.
한가하게 전시장 돌아다닐 처지가 아니건만, 약속을 마루는 것도 편치 않아서다.
박춘화씨의 ‘홀씨, 빛을 머금다“전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김용철의 ’추억으로 간 기차‘는 반도갤러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경의선을 찍은 김용철의 ‘추억 속으로 간 기차’는 제목처럼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 까지 10년간 한 가지 주제로 기록한 끈기도 대단하지만,

주제를 바라보는 사진가의 시선이나 전시된 사진 프린트 까지 빈틈 없었다.

세월의 무게가 실린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장에 가는 할머니와 연인들, 휴가 나온 군인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아득한 추억을 불러들였다.



김용철의 ’추억으로 간 기차"



대개의 다큐사진가들이 먼 훗날을 의식하며 찍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용철씨의 사진을 둘러보며 느낀 생각은 마치 오늘을 내다 본 듯 보였다.

왜냐하면 사진 한 장 한 장에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전을 소개하는 텍스트에 나란히 붙여놓은 승차권도 뒷 받침했다.

사진을 찍기 위했거나, 연애를 걸거나, 직장을 가거나,

기차 탈 때 구입한 승차권을 보관해 둔 것이다. 마치 역사학자처럼...

그 열차표에 찍힌 역명과 요금, 개찰 때 펀치로 찍은 승차권 구멍까지, 그 시절로 되돌렸다.

열차요금도 170원에서 250원 등 도착역에 따라 다양했다.


“그래, 좋은 사진이란 바로 이런거야!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소소한 삶을 일깨우고 잔잔한 감정을 건드리는...”


전시작을 돌아보고 나오며 한 가닥 기대도 가졌다.

"문산역에서 끈긴 경의선이 평화무드에 편승해 신의주까지 가는 날을 생전에 볼 수 있지 않을까?"



박춘화의 "홀씨, 빛을 머금다"



‘갤러리 브레송’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전시장을 지키고 있던 사진가 박춘화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분과의 첫 만남은 ‘민족사진가협회’ 회원전에서 처음 만났으니, 2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지난 해에는 ‘닿음 내림’이란 제목 처럼 다소 난해한 전시를 열었고,

이번에 보여주는 전시는 마치 민들레의 생태사진 같은 ‘홀씨, 빛을 머금다’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생태사진이 아니라 홀씨의 외형을 통해 작가의 종교적 사유를 담고 있었다.


김용철씨의 ‘경의선’이 객관적인 사진이라면 박춘화씨의 사진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작업노트는 물론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아 관객에게 불친절하기도 이를 데 없다.

당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작년에 보여준 작품들은 말라비틀어진 나목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허무주의로 이끌었고,

이번의 ‘홀씨’전은 또 다른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박춘화의 "홀씨, 빛을 머금다"



‘홀씨’전에 등장하는 소재는 대체로 네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즉 민들레 홀씨와 해, 그리고 십자가와 나비다.

홍순원 목사의 말처럼, 해는 하나님이요 십자가는 예수, 나비는 부활을 뜻할게다.

홀씨는 바람타고 자유로이 날아가 곳곳에 전파되는 성령이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생명을 의미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몇 장 사진으로 크게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대부분의 홀씨가 어둡게 묘사되어 있었다. 지옥도 같은 오늘의 현실을 말하는 것일까?

아무튼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사진이다.





박춘화 “홀씨, 빛을 머금다“전은 8일까지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김용철의 ”추억으로 간 기차“는 14일까지 ‘반도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리고 ‘눈빛출판사’에서 김용철의 ‘경의선’ 사진집도 나왔다.

132쪽에 100여점 실린 사진집 가격은 20,000원이다.




 
전시장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일거리를 만들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약속도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사정없이 무너진다. 어떻게 술만 들어가면 그렇게 용감해 질 수 있을까?

그래서 요즘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음주사진이다.






이날 저녁에는 전시작가 박춘화씨를 비롯하여 ‘브레송’의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영호씨가 어울려

충무로 해물탕(옛 조방낙지)에서 한 잔 했다.


그 넓은 가게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뿐 이었는데, 날씨가 더워 그런지 요즘 장사 되는 집이 별로없다.

그런데, 환장하겠더라. 나보다 더 잘생긴 문호가 아니라 문어가 안주로 나왔는데, 

문어 킬러 김남진씨와 김영호씨 한 테 문어 좆 돼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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