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어 노숙하는 부랑자들은 몸 부칠 곳이 없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짐은커녕 그 흔한 우산하나 지니지 않는다.

신출내기들은 이것저것 챙겨 다니지만, 점차 하나하나 버리게 된다.

살다보면 아무 것도 없는 무소유의 편안함을 깨닫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그 많던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몸 피할 곳은 물론, 밥 얻어먹을 곳도 마땅찮다.

다들 음습한 곳으로 숨어들어 물에 빠진 새양쥐처럼 오들오들 떤다.

 

비가 그친 지난 3일에서야 서울역광장에 다들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비를 피하다 왔는지, 끼리끼리 만나 잡담을 나누었다.

몇 몇은 지하철 통풍구를 평상처럼 더러 누워 젖은 몸을 말렸다.

 

서울역광장 쪽에서 누가 불렀다. “조기자! 사진 한 판 찍어줘”

계단에 이기영씨와 홍홍임씨가 앉아 있었다.

웬일로 나왔냐니까,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왔단다.

하기야! 쪽방에 있어보았자 덥고 답답하기만 할 텐데,

서울역이라도 나오면 다양한 군상들을 만날 수 있어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요즘 안 보이는 노숙인이 많아 쓸 만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 사용동의서를 받아두는 것도 일이다.

다들 좋아서 찍어 시비 걸 사람은 없겠으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받아두라는 주변의 충고 때문이다.

 

이기영씨도 삼년 전 겨울에 찍은 사진이 생각나, 동의서를 내 밀었다.

사진집에 당신 사진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두 말 않고 사인해 주었다.

여지 것 10여명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한 사람도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거절은커녕, 다들 “어떤 사진이냐?”며 좋아했다.

 

여지 것 출판을 서둘지 않는 것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문화재단의 출판지원이 없다면 무리해서 만들 필요가 없다.

최소한 자기 사진이 실린 분들에게 책 한권은 증정해야 할 것 아닌가?

다행스럽게 정영신씨의 ‘장터문화답사기’는 지원책에 선정되어 곧 출판된다고 한다.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다들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사진집으로나마 추억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정선 땅을 팔아서라도 캠핑카부터 구할 작정이다.

필요한 짐을 차에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사진찍다 길에서 죽는 것이 꿈이다.

처음이고 마지막인 내 꿈은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사진, 글 / 조문호

 

코로나는 밖에도 못나가게 겁주고, 날씨까지 후덥지근해 죽을 지경이나.

쪽방촌 사람들은 곰처럼 비좁은 골방에서 잘도 버텨낸다.

방이 답답해 밖에 나와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일찍부터 자리 깐 노숙인 몇몇이 지하도에서 시간 죽였고,

공원에는 고작 술 취해 잠든 정씨와 술친구를 기다리는 유씨를 만났을 뿐이다.

 

차라리 그 얼굴에 그 얼굴이지만, 옆 방 사람들 만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담배 한 갑 사들고 다시 쪽방에 올라갔으나 문 열린 방이 별로 없었다.

다들 더운 날씨에 방문 걸어놓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기껏 티브이 채널이나 돌릴 텐데, 마치 사랑 놀음 하듯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 사람 둘만 방문을 열어 놓았는데,

몇 달 전 이사 온 박상민군은 고장 난 지포라이터 분해하느라, 들여다보아도 안중에도 없었다.

박군은 올해 24살인데, 한창 공부할 나이에 왜 쪽방에서 빈둥대는지 궁금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부모의 허락을 얻어 쪽방 생활을 한다는데, 아마 정박아인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이 것 저것 물어보니, 말없던 평소와 달리 친근하게 대했다.

쪽방 사는 젊은이들을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하고 논다”며 손가락질 하지만,

대개 정박아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인생 막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들 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다.

 

저녁때가 되어 라면을 끓이려니, 열흘 전에 동사무소에서 준 식권이 생각났다.

복날 먹으라고 ‘한강오리’에서 준 삼계탕 식권인데, 후암시장까지 가기가 귀찮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쪽방 촌에 있는 가난한 노인들에게 다 주었으니 몇 백 장은 족히 되었을 텐데, 얼마나 혼잡할까 싶었다.

여지 것 경험으로 맛보다는 끼니 때우는 식권으로 여기며 찾아갔다.

 

가끔 시장 갈 때 지나치던 음식점이지만, 처음 가는 식당이었다.

들어가며 식권부터 내미니, 계산대의 젊은 아낙이 반색을 한다.

편한 자리를 안내하며 살갑게 대하는데, 마치 평생 가보지 못한 딸네 집에 들려 밥상 받는 기분이었다.

정갈한 밑반찬에 삼계탕이 나왔는데, 삼계탕은 얼마나 맛있는지. 밥알 하나 남기지 않았다.

들어갈 것 다 들어간 정성이라 맛있을 수밖에 없는데다 주인의 따뜻한 마음까지 느껴지니,

어찌 그 감동의 맛을 말로 다 하겠나?

생각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선이었다.

 

“오랜만에 감동 무운 삼계탕 맛, 지기더라.

인자 동자동 누가 오마 여 모실끼다.

삼계탕에 감동 무니, 그 감동 디게 오래가네.“

 

후암시장 입구 있는 ‘한강오리’삼계탕 기억하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에는 오랜만에 '눈빛출판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80년대 농민들의 삶을 기록해 둔 정영신씨 사진집 출판을 타진하는 자리에 따라 갔는데,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여지 것 갈 때마다 승용차를 끌고 갔으나 이번에는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더니, 같은 건물인데도 들어가는 입구를 몰라 한참을 헤매는 촌극이 벌어졌다. 세 차례나 사무실에 전화를 걸고 여기 저기 물어보는 등 완전 시골 노인 행세를 단단히 한 것이다.

 

어렵사리 구멍을 찾아 올라갔더니 이규상씨가 입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 간 사진파일을 검토하는 동안 책상위에 늘린 사진집들을 살펴보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사진집이 가 편집된 양승우의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였다. 미처 글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강열한 사진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한정식선생께서 준비하는 포토에세이에 들어 갈 사진원고도 보여 주었는데, 여지 것 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기회도 얻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씨 내외와 성윤미씨, 그리고 정영신씨와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데, 담배 피우러 간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성매매를 반대한다는 어느 단체에서 ‘청량리 588’사진집을 두고 시비를 걸더라는 것이다. 이미 40여년이 지난 사진이고, 본인의 동의하에 찍은 사진이라며 설득하였다고 한다. 미투가 사회쟁점화 되니 별 것으로 다 시비를 건다. “책도 팔리지 않는데, 문제 한 번 만들어 책이나 좀 팔자”는 농담을 했으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평소 이규상씨와 술자리만 하다 모처럼 커피 마시는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그이의 구수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뜻밖의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SNS가 성행한 10여 년 전부터 책보는 사람이 줄어들어 책이 팔리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보니 책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진집이 아니라 주로 인문서적이 잘 팔린다지만... 코로나가 세상질서를 많이 바꾸고 있었다.

 

이제 정영신씨만 바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하는 일이 많아 얼굴보기 힘든데, 오래된 필름사진 수정하랴 그 당시 이야기 풀어 쓰랴 똥오줌 못 가리게 되었다. 늙어가며 편하게 살 생각은 않고 계속 일만 만드는 그가 안쓰럽지만, 어쩌겠는가?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짝에 쓸모없다는 내 말은 한 낱 메아리에 불과했다.

“노세노세 늙어 노세, 죽고 나면 못 노나니...”

 

사진, 글 / 조문호

한국전쟁 중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 현장을 기록한 ‘그해 여름 노근리’전이 지난 17일 후암동 ‘K.P Gallery’에서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불행한 과거사와 진실을 쫒아 작업 해온 사진가 김은주씨와 만화가 박건웅씨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KP갤러리'는 동자동과 가까워 전시 개막일만 피해 가려했으나, 미안한 생각이 들어 미루어졌다. 며칠 전 정영신씨를 통해 제안해 온 초대전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동사무소에서 마스크 얻어 오는 길에 잠시 들렸는데, 전시 기획자를 만나 거절한 이유라도 변명하려 했으나 만나보지 못했다.

 

사진가 김은주씨가 기록한 노근리 쌍굴 다리의 흰 동그라미 표식들은 당시 숨져간 원혼들의 비명인 냥 가슴에 내려 꽂혔다. 인물의 장소성에 초점을 맞춘 사진에서 그 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피해자 증언으로 현장을 묘사한 만화가 박건웅씨의 그림도 당시 상황재현에 일조했다.

노근리 사건은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이고 증언이었다.

전시된 작품에서 아픈 기억들이 되 살아났는데. 전시장 모퉁이에서 상영되고 있는 피해자의 증언을 듣다보니 재차 분노가 치밀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들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 폭격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며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7월 25일 밤부터 7월29일 까지 자행되었다. 기밀 해제된 미국문서에 의하면 전선을 넘는 피난민까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숨어있을 것을 우려했겠지만, 아무런 방비도 없이 무리지어 피난을 떠나는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라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비밀 해제된 미 제1기병사단 군 작전명령에는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참전병사 조지 얼리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소대장이 미친놈처럼 소리 질렀다고 한다. "총을 쏴라. 모두 쏴 죽여라." 총을 겨누는 곳에 어린이도 있다고 했으나, "목표물이 뭐든지 상관없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장애인이든." 아무리 전쟁 통에 눈알이 뒤집혔다 해도 어찌 이처럼 짐승만도 못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

 

당시의 폭격과 기관총 난사로 사망자 135명, 부상자 47명 등 모두 182명의 희생자가 확인되었는데, 400여명의 희생자 대부분이 무고한 양민이었다. 지금은 겨우 20여명이 살아남았으나, 그 마저도 눈을 잃었거나 온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긴 분들이다.

무차별 사격에 가족을 잃은 정은용 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이 펴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1994,4)와 학살사건을 고발한 영화 “작은 연못”(2010,4)이 제작되어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전쟁 기록 문서를 찾아 전 세계에 알린 세 명의 AP기자는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건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4년에는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인 노근리 사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유족들은 미국정부와 상 하원, 그리고 한국정부와 국회에 손해배상과 공개사과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어떤 배상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의례적인 ‘깊은 유감’ 이란 말만 들었을 뿐이다.

 

미군들의 만행은 노근리에 끝나지 않았다.

1950년 8월, 여수 남면 '이야포'와 '두룩여' 에서도 노근리와 비슷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부산에서 피난민 수백 명을 태운 피난선이 여수 안도에 도착했는데, 당시 미군이 피난선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해 150여명이 숨졌고, 당시 해상에 있던 어부들 까지 숨진 것이다.

 

그리고 1951년 1월에는 미군들의 네이팜탄 폭격과·기총사격으로 민간인 360명이 희생된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도 빼 놓을 수 없다. 당시 미 전투기 10여대가 영춘면 느티마을 일대와 곡계굴을 집중 폭격한 것이다. 곡계굴에 피신해 있던 피난민들은 네이팜탄 공격에 대부분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마저 총을 난사해 사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 밖에도 순천, 광양, 곡성 등 전남 10여 곳에서도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다수가 숨졌지만, 기록이 부족해 인정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때죽음이었지만, 비극의 진상은 오랜 시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살았지만, 한 통속인 이승만정권과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날의 진실을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했으나, 유가족이 원하는 보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참하게 양민을 학살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해 여름 노근리’전은 오는 8월1일까지 열린다. 다시 한 번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자.

 

그리고 오는 7월29일 오전 10시부터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원혼들을 추모하는 기념식도 열린다. 당초 한국전쟁 70주년의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글 / 조문호

 

 

오래 전 신파극에나 나왔던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대사가 생각나는 시국이다.

 

정치건, 성이건 모든 걸 편 갈라 등 돌리고 사는 세상이라 그럴 것이다.

가끔 SNS에서 안면 바꾼 날 선 공방을 보며, 이제 갈 때가지 갔다는 생각이 던다.

 

비운의 삶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정치공방은 구역질 난다.

티브이에 자주 등장하여 여성을 대변한다는 뻔뻔스런 상판대기들 보는 것도 지겹다.

속 보이는 짓거리가 부끄럽지도 않을까?

 

나 역시 한 때 미투에 지목될 만큼 여자를 좋아했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이젠 여자가 무섭고 싫어졌다.

오죽하면 처와 딸을 가진 사내로서 여성에 혐오감을 가지겠는가?

 

그 가슴 두근거리던 아름다움과 처연했던 감정을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기나긴 세월, 남자는 늑대로 여자는 여우로 치며 잘 어울려 살았다.

 

이제 그만 끝내라. 제발 죽은 사람 두 번 죽이지 마라.

 

-2막-

 

“돗자리를 따르자니 돈이 울고, 선풍기를 따르자니 몸이 운다“

쪽방 주민들에게 선풍기와 돗자리 나누어 주던 날, 줄 선 서씨가 뱉은 말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니,

돗자리가 필요하지만 값 비싼 선풍기가 탐이나 하는 말이다.

 

작년 여름에도 선풍기를 주었으니, 고장나지 않았다면 다 있다.

비좁은 쪽방에 모셔 둘 자리도 없건만, 대개 선풍기를 가져간다.

기껏 팔아야 오천원 남짓 받지만, 단 돈 오천원에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지난 17일, 모처럼 새꿈공원에 줄서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마트’에서 선풍기 300대, 서울시 50플러스센터 직원들이 대자리 380개를 후원해

동자동 쪽방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공고였다.

 

줄 세워 나누어주지 말라고 몇 년 동안 나팔 불어도 시정되지 않더니,

‘코로나19’ 덕에 그나마 고쳐진 줄 알았다.

물론 많은 분량의 물자를 지하로 내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시간 있을 때 찾아가는 방법이 별 탈 없이 정착되어가는 중이라 당혹스러웠으나,

한 편으론 반가운 면도 있었다.

 

다들 꼼짝 않고 방에 쳐 박혀 살아, 사람이 그리웠다.

미운 정 고운 정 같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더냐?

 

모처럼 만난 벗들의 반가운 눈 꼬리가 초생 달처럼 징거러운데.

다들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 알아채고 끈적댔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싱글 벙글하는 분위기에 다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행렬은 4년 간 지켜 본 중에 가장 긴 줄이었다.

정해진 낮 2시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 선 사람의 행렬은 골목골목을 돌아 오백 미터가 넘었다.

 

선풍기도 선풍기지만, 다들 사람 만나고 싶어 나왔을 것이다.

처음엔 마스크를 썼으나, 코로나에 의한 거리두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다닥 다닥 붙어서서, 마스크를 벗어버리거나 반쯤 걸친 사람이 더 많았다.

자칫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쪽방 빈민들 줄 초상 날 지경이었다.

 

더운 날씨에 줄은 줄어들지 않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니,

노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는 쪽 쪽 번호표를 줬으면, 이렇게 무더운 땡볕에 줄 설 일은 없지 않느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두 군데로 나눠야 할 것 아니가? 씨발 넘들아!”

 

얼마나 “서울역쪽방상담소“ 욕을 많이 해대는지, 내가 할 욕을 잃어버렸다.

제발! 너희들 편리보다 주민을 먼저 생각하라.

“우리가 남이가?”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은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무더운 쪽방에서 버텨야 하는 빈민들의 삶은 비참하다.

짐승도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바람을 돌리는 선풍기 소리가 숨통을 조여 온다.

컴퓨터 열기에 온 몸이 후끈거린다.

 

나야 나가 있거나 다른 데서 잘 때가 많지만

쪽방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차라리 쪽방조차 없는 노숙인은 그나마 낫다.

병 걸려 죽는 것조차 두렵지 않으니 외롭지도 않다.

 

요즘 밖에서 쪽방 사람들 만나기는 어렵지만,

노숙인들은 매일같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인다.

무료급식소 줄어든 게 탓이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다.

막걸리로 허기 메우며 자유롭고 즐겁게 지낸다.

 

가끔 여성 노숙자도 있는데, 그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 역시 말 걸기도 어렵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세상에 노출되기 싫은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서울역 노숙자 성비 통계에 의하면 3.3%에 불과하니,

가뭄에 콩 나듯 만나기도 어렵다.

요즘은 미투 폭풍으로, 여자 노숙인은 대하기조차 두렵다.

이 날도 우산 두 개로 몸을 숨긴 여성 노숙인을 보았다.

 

남편 폭력이나 정신병 등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겠지만,

남자에 비해 노숙생활이 힘든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원인은 돈이 원수다.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는 처지라

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코로나에 다들 벌어먹기 어렵지만, 영향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돈 많은 부자야 말할 것도 없으나, 건물 임대 업자들은 안전 빵이다.

장사가 안 되던, 살기가 어렵던, 임대료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지만

한 번 올라간 임대료는 내릴 줄 모른다.

 

빈민들로서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빈부 격차도 날이 갈수록 벌어져, 한 번 거지는 영원한 거지다.

상대적 박탈감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동자동에도 문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식당 문 닫은 자리에 자동차 정비소가 들어섰다.

그것도 외제 승용차를 주 고객으로 하는 정비소다.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은 대개 힘들지만,

부자를 고객으로 하는 장사는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밥은 집에서 먹는 것이 안전하지만,

이동수단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찾는 이유도 있겠다.

 

이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다들 거리로 나와 노숙해야 할 것 같다.

구차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 낫다.

 

사진, 글 / 조문호

 

What a Coincidence.

 

남현범展 / Hb Nam / 南賢汎 / photography

2020_0717 ▶︎ 2020_0828 / 일,공휴일 휴관

 

남현범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311b | 남현범展으로 갑니다.

남현범 블로그_blog.naver.com/hbnam2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젤리스톤갤러리 개관展

관람시간 / 11:00am~07:00pm

일,공휴일 휴관상황에 따른 관람인원 제한 및 문진표작성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젤리스톤갤러리

Jellystone Gallery

서울 강남구 언주로133길 20 1층

Tel. +82.(0)2.3441.3111

www.instagram.com/jellystonegallery

 

 

젤리스톤갤러리는 인테리어 전문회사 (주)계선의 아이덴티티를 비주얼 아트로 표현하고자 설립한 All-Around 예술공간입니다. 젤리스톤은 인테리어에 있어 높은 품질과 기술을 선보여 온 (주)계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작품과 그에 맞는 공간 컨셉 스타일링을 동시에 제안합니다. 2020년 7월 17일 시작하는 개관전은 스트릿패션 포토그래퍼 남현범과 함께합니다. 『What a Coincidence.』에서는 기존에 해외에서 많은 호응을 얻은 패션위크 사진 뿐 아니라,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공간을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작가의 신작도 공개됩니다. 우리의 일상적 풍경 속에서 남현범 작가가 찾아낸 우연한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재현한 전시공간에서 작가의 시선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전시기간 중에는 남현범 작가의 폴라로이드 사진촬영 이벤트 및 사인회가 진행됩니다. 신청방법 및 일정은 추후 젤리스톤갤러리 인스타그램(@jellystonegallery)에 공지 예정입니다. ■ 젤리스톤갤러리

 

남현범이 포착한 계획된 우연 ● 작가가 카메라 렌즈 너머로 거리를 구경하던 중, 빨간색 간판 상점 앞을 바쁘게 걸어가는 한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셔터를 누를 것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작가도 여자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일어나도록 정해져 있던 계획된 우연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졌다. ● 이렇게 사진가가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을 포착하게 된다면 그 사진 속 상황은 그저 우연일까, 아니면 정해져 있던 일일까.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는 말처럼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작가의 습관이 좋은 사진을 남기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많은 준비가 갖춰질수록 좋은 우연이 발생할 확률도 증가하는 것일까. 과연 좋은 우연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곤 하는 것이 인생이긴 하지만 어떤 우연을 만나든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떤 기회로 만들어 낼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역할에 달려 있기 마련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0년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로 데뷔한 순간부터 남현범의 작업방식은 늘 우연한 상황을 순간포착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모든 사진은 작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자칫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순간들을 담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어느 시점에 어느 장소에 가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점은 작가가 만족하는 사진들이 대부분 뜻하지 않게 일어난 우연들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음에도 그것들이 소위 업계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작가는 그저 보기에 재미있는 우연이 포착되면 셔터를 누를 뿐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우연을 기다리는 상황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꾸준히 쌓아온 우연들이 모여 성공적인 결과로 드러난 상황조차 작가에게는 하나의 우연에 불과하다. 어쩌면, 무언가가 시선을 잡아 끌기 직전까지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큐레이터한테 또 잔소리 듣지 않으려면 오늘은 사진 좀 찍어야 되는데"정도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남현범에게 아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존 크럼볼츠(John D. Krumboltz, 1929~2019)의 계획된 우연 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에 의하면, 예기치 못한 우연적 요인들은 인간의 진로형성에 있어 80%의 영향을 끼치며,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다가온 우연을 기회로 만든 사람들이다. 크롬볼츠는 우연적 사건이 기회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단순히 우연이 아닌 계획된 우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우연들을 자신에게 유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호기심, 인내심, 유연성, 낙관성, 위험감수성의 5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는 호기심,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기다리는 인내심, 피사체를 제한하지 않는 유연성, 일의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낙관성,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패션계를 벗어나는 위험감수성이 내가 인지한 남현범 작가의 강점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어쩌면 그의 성공은 애초에 계획된 우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남현범이 사진작가의 길을 걸은 지도 올해로 만 10년이 되었다.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며 만나는 무수한 우연을 대하는 가치관이 작가의 오늘을 만들었다. 사람, 사물, 현장에 대한 기억, 선입견, 무지, 사건정보 등 그의 사진에는 하나의 우연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다. 결국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란 계속해서 맞닥뜨리는 우연의 순간들을 그저 살아내는 것, 그래서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것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끔 인과관계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사실 사전적 의미의 우연이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일어난 일을 의미하기 때문에 남현범의 사진은 엄밀히 말하면 우연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남현범의 사진이 우연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포착해낸 것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통해 전해지는 일종의 기대심리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5년 만에 남 작가를 만났던 날, 그는 이왕 학동역 사거리까지 나왔으니 근처 거리를 돌아보고 들어가야겠다고 말했다. 케이스를 씌우지 않고 사용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흠집투성이인 카메라를 목에 건 채였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 나도 모르게 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 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 언제나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상인 우리네 삶에서 정해진 목적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가는 일은 비생산적이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매 순간 끌리는 것에 충실하며 취사선택을 반복하는 것 또한 하나의 살아가는 방법이기에, 앞으로의 작가의 행보에 가능한 걸림이 없기를 빌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와 내가 마주칠 우연들에 대해,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그것이 어떤 계획으로 완성되어 있을지에 대해 예상해 보았다. 'What a coincidence!'는 젤리스톤의 개관전임과 동시에 작가의 신작이 첫 선을 보이는 중요한 자리이다. 내심 이번 전시가 작가의 커리어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획된 우연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어쩌면 그리 특별할 것 없이 그저 각자의 인생을 구성하는 수많은 우연들 중 하나로 남고 말겠거니 싶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 장서윤

 

Planned Happenstance Captured by Nam Hyun Bum ● While the photographer browsing the street through the camera lens, he spotted a woman scurrying while passing by a store with red signage. It took him less than one second to decide to shoot and to click the shutter. Neither the photographer nor the woman expected the encounter. However, it was planned happenstance that meant to happen at that time at the place. The moment is now left as a photo. ● Is it a coincidence or a destiny when a photographer captures a group of people in a photo who are in one place coincidently but at each scheduled plan of their own? As the saying "All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 the photographer's habit of bringing cameras everywhere obviously greatly assisted him in seizing those moments in photos. That says, is it really the more you wait the greater the chance for a good happenstance? What is a good happenstance? It is needless to say that the life flows as it may wish to flow, but I think it is on the hand of each individual to accept and challenge whatever coincidences the one encounter to make it as opportunities. ● Nam Hyun Bum debuted in 2010 as a street fashion photographer. Capturing the moment of coincidence has always been Nam's work style. All the photos he takes seize a moment that no one, not even the photographer himself, anticipated. Nam says that it is impossible to predict a specific place that would give him just the right scenes to capture. The interesting thing is that most of Nam's favorite photos come from happenstance and still, the series of happenstances lead to one success and another for Nam. Nam just clicks the camera shutter when he finds interesting encounters in front of his lens and he does not give particular meaning to those scenes. He simply moves on to the next coincidence awaiting for him. All these haps stack up to be one great success but that path also is just mere coincidence. Perhaps, all Nam thinks about before he spots a scene to seize might be "I should shoot some photos today to avoid nagging of the curator." ● I am not saying the un-planning accidentally trapped Nam into a successful result. According to the Planned Happenstance Theory by John D. Krumboltz (1929-2019), unanticipated coincidences take up 80% of people's lives, and people who successfully make the coincidences as their opportunities. Krumboltz uses the term "Planned Happenstance" because of the possibility that the happenstance may turn into opportunities for some people. To make the happenstances as their own, people should face them with 5 attitudes: curiosity, patience, flexibility, optimism, and risk-taking. What I found to be Nam's strengths; the curiosity to explore the new venue, the patience before clicking the shutter, the flexibility in choosing the objects to shoot without limitation, the optimism in enjoying the course of the work and not only the result and the risk-taking by stepping out of his comfort zone, in which the field of fashion. His attitudes contributed to Nam's success as his own planned happenstance theory. ● This year is the 10th anniversary of Nam's debut as a photographer. He untied himself from his previous studies and valued every second of the happenstances. And that has led him where he is today. For a happenstance to become something tangible, it has to have various factors such as people, objects, memories of the scenes, stereotype, information of the incident, and Nam's photo contains them all. For him, taking photos means boldly facing the moment of happenstances he encounters every day endlessly. When he looks back, all the dots are connected to one complete causality. The lexical definition of happenstance is an incidence without any causality. So, Nam's photo may not be so perfect fit for the lexical meaning of happenstance. Nonetheless, we still perceive his photos as naturally seized moments because everyone expects something tangible when they hear the words happenstance. ● I met Nam in five years in April. When we were saying good-bye, he told me he would stroll around the area of Hakdong Station just because he is here while a hand-stained camera without case hanging in his neck. On my way back to the office, I was, without noticing, humming "Still Dream" by Autumn Vacation. ● "Strolling should never have a set destination. We always just walk wherever it would take us to go. We may encounter one or visit a place just b'cause. Without a plan or strings attached to it, we just move on." ● We live in a world where setting targets, making plans, and putting efforts for successes are the norms of life and where aimless walking is often perceived as unproductive. Nevertheless, there is got to be other ways to live like clicking your life on and off by only listening to your heart. That is why I only wish the best for Nam's next click. While getting ready for this exhibition, I wondered how all these happenstances will become a complete plan in the end. "What a coincidence!" is meaningful for both Jellystone and the photographer, as it is the opening exhibition of Jelleystone and the first introduction of Nam's new collection to the public. I sincerely hoped this exhibition to bring something special planned happenstance to Nam's career. But I also thought this could be just one of many passerby coincidences he encounters. Thoughts collided and I was left without a conclusion. ■ Seoyoon Chang

 

Vol.20200717b | 남현범展 / Hb Nam / 南賢汎 / photography

간밤에 비가 쏟아져 쪽방에서도 시원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라면 끓이며, 서랍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핸드폰을 거는 전화로만 사용해 걸려온 전화를 가끔 확인해 본다.

거리두기의 한 방법이나, 이틀 동안 걸려온 전화는 한 통밖에 없었다.

 

요즘은 전시장 개막식은 물론 사람 모이는 술자리는 잘 가지 않는다.

숨쉬기가 힘들어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나, 사람들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입력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더니, ‘용산주거복지센터’란다.

용건은 LH공사를 통해 전세자금을 대출해 줄테니, 이사할 의향이 없냐는 것이다.

그 것도 무려 구천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대출해 준다고 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전세 값이 그렇게 많이 올랐는지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그 돈으로 집을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신용불량자에게 큰돈을 대출해 준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세금을 담보해 두면 떼일 염려야 없겠지만, 이자는 갚아야 할 것 아닌가?

 

짐작컨대, 동자동 쪽방 촌 재개발을 앞두고 외곽으로 몰아내기 위한 방법 같았다.

짐도 없이 혼자 사는 빈민들이 임대주택이나 전셋집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대충 먹어 치우고 공원에 나가 보았다.

간밤에 내린 비에 노숙하는 병학이가 어떻게 잤는지 궁금했다.

 

잠자리에 가보니 깔판을 텐트처럼 쳐 놓고 있었는데,

끼니는 뭘로 해결했는지 돌 팍에 숟가락만 놓여 있었다.

술친구와 어울려 밤새 젖은 몸을 술로 말렸다.

 

공원을 북적였던 쪽방사람들은 한 둘 뿐이고, 빈자리를 비둘기가 차지했다.

어떤 이는 쪼그려 커피 한 잔에 시간 죽이고, 어떤 이는 빗자루 춤을 췄다.

머지않아 다들 쫓겨날 텐데, 이제 남은여생을 어떻게 보낼 건가?

 

재개발 하려면 주민 대책부터 세우고 추진해야 할 것 아닌가?

 

전셋집이나 임대아파트 같은 넓은 집은 필요 없다.

정붙이며 살아 온 외로운 사람들, 함께 살게 해다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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