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의 절반은 알콜 중독자로 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차가운 날씨에 술이 취해 잠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들이 술을 자제하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면

강제 수용하여 치료받게 하는 방법뿐이다.

 

지난 23일 정오 무렵, 산책하러 동네로 내려갔더니,

송범섭씨가 마치 장물애비처럼, 손목시계를 몇 개나 들고 있었다.

한 개 오천 원에 판다는데, 쪽방 촌에 시계 필요한 사람이 있겠는가?

필요하다면 밥 얻어먹는 시간이라도 알아야 할 핸드폰 없는 노숙자들뿐인데,

그들에게 무슨 돈이 있단 말인가?

 

새꿈공원으로 올라가니 주차장 모퉁이에서 노숙하던 병학이 일행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리가 깨끗하게 청소된 걸 보니, 어디로 쫓겨난 듯 했다.

멀리 공원 안쪽에서 누군가 노숙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보니, 쫓겨 난 그들이 공원 안으로 자리를 옮겼더라.

병학이는 이불 속에 파묻혀 자고 있었고, 옆에 있던 봉남이가 반색을 했다.

 

술이 고파 물주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주머니엔 천 원짜리 한 장 뿐이었다.

“천원 가지고 무슨 술을 사?‘라며 시큰둥했다.

병학이가 자서 심심했던지, 날더러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니네 가족은 서울에 사냐?고 물었더니, 사연을 줄줄이 쏟아냈다.

 

운전면허증부터 꺼내 놓으며 집에서 이혼 당해 쫒겨 나온 이야기를 했다.

택시기사로 일하며 살았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운전해야 할 사람이 술을 너무 좋아해 일 나가지 않는 날이 많으니, 누가 그를 쓰겠는가?

결국 직장 잃은 가정불화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 사연을 털어놓았다.

“자식은 없냐?”고 물었다니, 갑자기 딸년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슬피 울어대는지 옆에 있는 나까지 눈물이 나더라.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쓸데없는 걸 물어 초상집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리가 민망해 일어나니, 대뜸 하는 말이 “천원만 더 갖다 줘”란다.

자식이 보고 싶어 그렇게 슬피 울다가도 술값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술이 무섭기는 무서웠다.

이제 오십대 중반이면 한창 일 할 나이인데, 보통 일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 때 비명에 간 용성이도 술 때문에 죽었는데,

술 값 구걸에 못 이겨 술값 준 적 있는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속히 알콜중독자를 강제 수용하더라도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매일같이 국회에서 개지랄만 떨지 말고 사람 살릴 걱정 좀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모처럼 한정식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동안 사람 만나기를 피하셨는데, 준비한 사진 산문집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오찬 약속으로 정영신씨와 함께 서초동 자택을 방문했다.

함께 투병하고 계신 사모님의 건강은 확연히 좋아졌지만,

선생님의 모습도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단지, 불면증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로 지탱한다는 거다.

그건 소심한 성격에 의한 마음의 병이었다.

 

주변에서 용하다고 추천하는 병원도 다녀보셨지만, 아무 소용없다고 했다.

내가 볼 때는 의사가 고칠 병이 아니라 선생께서 다스려야 할 병인 것 같았다.

 

선생님 댁에 여러 차례 와 보았지만, 언제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장성한 자식과 귀여운 손자들이 함께한 유복한 모습이 부러웠다.

한 평생 사진을 위해 살아왔지만, 작품사진보다 가족사진이 먼저였다.

하기야!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날은 새로 나온 사진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를 한 권 받았는데,

주옥같은 선생의 사진과 산문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투병하기 전에 인사동 작업실을 오가며 기록한 사진들도 보여 주었다.

암울한 도시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기존의 작품과는 또 다른 울림이었다.

컴펙트 카메라라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마무리 했으면 좋으련만,

이제 안 된다는 체념에 가까운 말씀에 가슴이 아팠다.

 

정영신씨도 이번에 출판한 ‘장에 가자’를 한 권 드렸는데,

까다로운 선생의 눈에 찰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오찬은 외식을 하며, 동네 산책도 빠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날은 생선구이 집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나보다 더 잘 드셨다.

그 정도면 자동차로 가고 싶은 곳을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차마저 처분하셨단다.

여기저기 다니신다면 왜 잠이 오지 않겠는가?

 

부디 마음의 병을 고쳐 편안한 여생이 되도록 간절히 빈다.

 

사진, 글 / 조문호

 

한정식선생의 사진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초창기 사진으로 엮은 ‘사라지는 풍경, 사라진 풍물’이라 부제를 단 산문집에 눈이 번쩍 띄었다.

‘북촌’과 ‘흔적’에 이어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집으로는 세 번째인데,

50여년 전의 도시풍경으로 구성된 사진 산문집이었다.

 

된장이나 와인처럼 세월에 의해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성남의 허허벌판에 들어 선 복덕방들이나 포니 승용차에 무탈하길 빌며 고사 지내는 장면 등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면의 사진도 많았다.

칠순이 넘은 나 역시 리어카에 사진관 배경 막을 실고 다니는 장면은 처음 보았다.

사진 기록성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절감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엮은 산문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서울대 문학도였던 선생의 글 솜씨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감칠맛 나는 산문이 사진의 품격을 더해주었다.

더구나 선생께서 투병 중에 집필한 글이라 더욱 가슴 시리다.

 

사진이나 글이나 한 치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 선생의 빈틈없는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이 산문집도 편집자 실수로 사진 한 장이 빠져 다시 찍었다고 한다.

 

 

그 사진들을 살펴보며 예술사진에 밀려난 기록의 한국 사진사를 다시 되돌아본다.

초창기에 활동한 원로사진가들은 대부분 기록에 초점을 맞추셨다.

임응식선생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이어 ‘세계적인 사진전 ’인간가족전‘ 유치와

사진평론 하셨던 이명동선생이 관여한 ’동아일보‘ ’동아사진콘테스트‘ 바람에

스트레이트한 사진이 날개를 달았던 때다.

 

주명덕선생의 ‘혼혈아’나 최민식선생의 ‘인간’ 등 리얼리즘 사진이 주도했지만,

사진 본연의 기록성이 예술이란 겉멋에 현혹되어 어떻게 하면 그림을 닮아갈까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작가의 주관도 없는 아름다운 풍경사진에만 매달리는 수많은 아마추어를 양산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진가 없는 공룡 집단 ‘사협’의 존재가 그 대표적이다.

 

한정식선생께서도 일본에서 사진유학 한 후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사진과 결별하게 된다.

선생의 깨우침에 의한 ‘고요’라는 주제에 천착해 일가를 이루었으나

리얼리즘 사진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한정식선생 뿐이겠는가? 주명덕선생도 어두운 톤의 풍경사진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일관되게 작업해 온 최민식선생의 '인간'이나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이

그런대로 우리나라 대표적 리얼리즘 사진으로 남았다.

 

물론, 예술사진에 대한 집착이 사진의 다양성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세월이 흐르면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오죽하면 사진의 기록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눈빛’ 이규상대표가 출판을 위해 보내 온

한정식선생의 사진원고를 보며 “최고의 역작”이라 감탄했겠는가?

 

아직까지 사진작업의 방향을 정해지 못했거나, 갈팡질팡하는 사진인이 계시다면

다시 한 번 현실적 기록성에 주목하기 바란다.

하기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예술로 포장해 사기를 쳐야 살아남지...

 

한정식선생의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를 강력하게 권합니다

책값은 18,000원

 

글 / 조문호

 

사진가 정영신씨가 3년 간 작업해 온 ‘장에 가자’가 ‘이숲’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장에 가자’는 시골장터와 그 지역 문화유산을 탐방한 책으로

장터에 문화의 옷을 입히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장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인근 유적까지 돌아본다면 유익한 여행길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동안 정영신씨가 장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바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시골 오일장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장터와 유적을 연관시켜

장터가 문화 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각 지역별 역사와 인물, 특산물 등 일곱가지 주제로 분류해 전국 22개 장터를 소개했다.

찍어둔 기존의 장터 사진이 아니라 다시 발품 팔아 찍은 최근 사진들이다.

출간을 기념해 2020년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사진 전시회도 열린다.

 

‘장에 가자’ 책은 10월30일까지 SNS를 통해 판매한다

책을 주문하신 분에게 장터 사진(5x7인치) 한 장을 서명하여 증정한다.

아래 장터사진 5장 중 번호를 선택해 주시면 책과 함께 우송해 드린다.

전시회기간 중에 구입하는 분은 장터 엽서(5매)를 증정한다.

 

책값 입금하실 곳 : 하나은행 593-810222-39907 (정영신) 

정영신 전화 010-2955-8926 카톡이나 메신저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주문 받은 책은 매주 목요일 일괄 보내드립니다.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

-목차-

 

1장. 느림의 미학을 만나는 오일장

담양장, 대나무 소리 들린다

예천장, 조상의 숨결을 담다

영암장, 남도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월출산

 

2장. 여인 삶의 향기가 밴 오일장

청양장, 콩밭 매는 아낙네가 부르는 칠갑산

순창장, 고추장으로 버무린 살풀이

남원장, 춘향이의 고장

 

3장. 자연 특산물과 만나는 오일장

강경장, 백제의 옛 터전 황산벌

광천 토굴 새우젓 시장, 은근하게 발효된 자연의 맛

남해 이동장, 가천 다랭이 마을

금산장, 인삼의 고장

 

4장. 개화기 인물을 만나는 오일장

정읍 샘고을 시장, 동학농민운동의 발생지 말목장터

영덕장, 블루로드 영덕대게의 고장

구례장,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은 땅

 

5장. 옛 성현과 함께하는 오일장

광양장,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실의 고장

영주장, 소백산 자락에 깃든 선비의 고장

송정리 오일장, 정(情) 한 보따리가 이야기꽃으로

 

6장. 역사 이야기와 함께하는 오일장

울산 언양장, 우리나라 근대화의 진열장

부안장, 산과 바다와 땅의 특별한 조화

무주 반딧불 시장, 나제통문

 

7장. 문화의 숨결이 오일장 속으로

옥천장, 정지용 시인을 만나다

고창장, 세계 최대 고인돌 유적지

보성장, 판소리 가락 초록 융단 휘 감는가

완주 고산장, 산중에 핀 한 송이 꽃, 선암사

 

-증정 사진 1-

-증정 사진 2-

-증정 사진 3-

-증정 사진 4-

-증정 사진 5-

 

-추천사-

사람냄새나는 ‘장에 가자’, 문화유산은 덤이다.

 

사진가 정영신씨의 시골장터와 지역 문화유산을 연결한 ‘장에 가자’를 펼쳐보니, 잊었던 고향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자주 듣던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약장사의 구수한 구라가 재현되는 등 그리움이 밀려왔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람답게 살아 온 노인들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된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마디로 로봇의 세상에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 같았다.

 

이 책은 34년 동안 장에 미쳐 쫓아다녔던 정영신의 장터 사랑이 이루어 낸 또 하나의 결실이다. 그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빠짐없이 찍고 장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등 여러 권의 장터 책을 펴냈지만, 이 책이 기존 책과 다른 것은 장터 인근에 있는 문화유적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며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옛 선인이나 유적인들 장터와 관계없을 수가 없지만, 사람 만나는 장소가 장터고 사람 사는 게 문화니 자연스러운 조화인 것 같았다. 이왕 장에 간 김에 인근에 있는 유적지도 함께 돌아본다면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장터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찾았다. 현실적 부정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장터사람들이 전하는 구수한 사투리도 정겹지만, 감칠맛 나게 풀어가는 이야기 전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기계화되어가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근원적 향수를 자극했다.

 

“워메 줄 것이 한나도 없는디, 요 무시라도 하나 깍아드릴께라. 먼디서 온 손님인디.”라는 남원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인정이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갈퀴 같은 손을 내밀며 “꼭 소가죽 같제라. 그래도 이 손으로 새끼덜 먹이고 갈쳤제”라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인데, 다 어디가 있는가?

 

영암장에서는 따뜻한 믹스 커피 한잔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할매들의 수다가 요란했다. 도갑사 해탈문 이야기, 도갑사를 지키는 나무 이야기, 영험한 월출산 이야기 등 장보따리 풀 듯 풀어낸다. 장터에 “봄에는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풋풋한 초록 푸성귀를,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 아래 농익은 과일과 채소를,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들판에서 익어간 곡식을 가져온 여인네들의 삶이 아름다운 색과 냄새와 맛과 소리와 함께 진열된다.”고 적고 있다.

 

청양장에는 당근 네 개 달랑 들고 나와 자리를 편 할머니 이야기도 있었다. “이거라도 놔야 사람 구경을 마음껏 허지유. 산중에 살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유.”라는 말에 외로움이 절절하다. 농산물 팔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구경 온 할머니에서 심각한 오늘의 농촌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정영신의 사진과 글은 아무런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는다. 따스한 인정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골 할아버지의 등짐에, 아줌마의 봇짐에 감춘 사연 사연들을 장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 사진들이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개가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는 등, 주변을 정리해 기록적 가치를 망가트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그런 하잘 것 없는 장애물도 역사적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배경을 택해 장꾼을 연출시키는 기존의 사진들에 비해, 이 처럼 장꾼들과 소통하며 찾아 낸 감정묘사나 장마당의 혼잡한 분위기가 주는 가치나 울림이 훨씬 오래간다. 사진을 찍기 전에 물건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 또한 그만의 어프로치다.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보다 몇 배로 값진 장꾼과 사진쟁이의 소통된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영신식 색깔의 장터세계고 작품세계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사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현장성에 의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있다. 인정이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영신의 사진에서는 된장처럼 구수한 냄새도 베어나고 잘 익은 막걸리 맛도 난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각박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조문호 (사진가)

 

 

 

-작가노트-

움직이는 박물관, 시골장터

 

내가 어릴 적에 장(場)이 열리는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은 잔칫날처럼 들썩거렸다. 안동 아재의 소달구지가 동구 밖에 이르면 깨순이 엄마 보따리가 제일 먼저 실렸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 보따리가 하나둘 올라가면 사방이 초록으로 덮인 신작로 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따라가다가 돌아왔다. 봄이면 들판에 앉아 있던 자연도 덩달아 장에 나와 그 지역만의 삶 이야기를 초록빛으로 품어냈다.

 

후미진 장 골목에서는 갈퀴와 도리깨, 체와 쟁기를 만들었고, 정월 보름을 앞두고 농악놀이에 쓸 짚신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다. 대장간 앞에는 날이 무뎌진 호미와 낫을 벼르려고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나온 박씨 아짐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였다. 또한 장터 끝 골목에는 엄마 따라온 삼식이가 새끼 돼지가 도망갈까 봐 새끼줄을 붙들고 동그마니 앉아 있었고, 털북숭이 복숭아를 머리에 이고 온 순덕이, 소금물에 우린 감을 베어 먹던 주근깨투성이 깨순이도 있었다.

 

이렇게 장은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살아 있어 움직이는 박물관이 되었다. 지금 장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이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가는 농민 장터가 살아나야 한다. 장은 단순히 뭔가를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장을 통해 소통하는 백성의 삶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왔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일장은 점점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34년째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장터답게 만들 계기는 무엇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사진 한 컷 촬영하지 못하고 파장 무렵까지 장꾼들과 장에 나온 농민들과 이야기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는지 책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5년 전 신문과 잡지에 전국 장터를 2년간 연재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모든 자료를 갖고 있지만, 새로운 장터 사진과 소식을 전하고 싶어 매번 다시 들렸다, 그 때는 장터의 변화된 모습과 또 다른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 장터 주변에 숨어 있는 문화 유적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장터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뭔가 두고 온 것이 있는 것 같아 다시 같은 장터를 찾곤 했다.

 

이 책,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는 내가 이전 책들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장터와 지역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여기 소개한 장 말고도 작업 중인 장이 숱하다. 30여 년 전 흑백필름으로 작업했던 예전 장터 모습과 요즘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30년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나 장에 오는 사람들이나 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더 크게 말하자면 장에 오는 사람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불과 55년 전인 1965년에는 버스비가 1원이었고, 쌀 한 말 값이 360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장터에 가면 고향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을 느끼고 싶어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장을 몇 바퀴나 돌며 헤집고 다닌다. 어떤 물건이 새로 나왔는지, 난전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고 싶다. 계절 따라 파는 물건이 다르기에 사계절 모두 장에 가봐야만 그 생리를 알 수 있다. 겨울철 구례 산동장에 가면 산수유 열매로 장 안이 온통 새빨갛다. 이처럼 장터는 그 지역의 삶이 그대로 펼쳐진 한 폭의 풍속도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면서도 인정 넘치는 백성의 문화 공간이다. 내게 남은 숙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장의 특색을 잘 살려낼 고유한 문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네 시골장은 선조들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재이자 아이들의 미래다.

 

정영신 (사진가, 소설가)

 

작가소개

​​정영신은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34년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 600여개를 모두 기록한 장터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장터에서 만난 우리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각 지역의 역사적 자취를 찾아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농사짓는 초기부터 유통되기까지의 전 과정과 한국어머니들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해 왔다, 장마당의 풍정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장터 인근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문화유산과 장마당을 고리지어 사진과 글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 (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 (2012, 덕원갤러리)

‘장에 가자’ (2015, 아라아트)

‘장에가자프로젝트2’ (2015 정선시외버스터미널 문화공간)

‘장날’ (2016, 아라아트)

‘정영신의 한국의장터전’ (2017, 전국5일장박람회)

‘장터에서 백만 가지 표정을 담다’ (2018.정선고드름축제장)

 

단체전

<순실뎐> (2017 나무화랑), <병신무란 하야제> (2017 아리수갤러리), <촛불 역사전> (2017 광화문광장) 등

 

출판

‘시골 장터 이야기’ (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 (2012 눈빛아카이브)

‘정영신의 전국 5일장 순례기’ (2015.눈빛)

눈빛사진가선 29 ‘장날’ 정영신사진집 (2016.눈빛)

‘정영신의 장터이야기1’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2’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3’ (2019 라모레터)

 

작품소장

서울시립미술관 2점 소장

바람아 불어라. 변순철 전국노래자랑

Let the Wind Blow, Byun Soon Choel: National Song Contest

변순철展 / BYUNSOONCHOEL / 邊淳哲 / photography

2020_1015 ▶ 2020_1206 / 월요일 휴관

 

변순철_전라남도 목포시 신안비치호텔 야외특설무대 Shinan Beach Hotel, Mokpo-si, Jeollanamdo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40×105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908k | 변순철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성곡미술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시각예술창작산실_서울문화재단_서울시진행 /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한주령 학예연구원_손민정 학예인턴)

주최,기획 / 성곡미술관

 

관람료 / 일반(만19세~64세) 7,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5,000원 / 어린이(만4세~12세) 3,000원

국가유공자, 장애인, 만65세 이상 5,000원 / 20인 이상, 문화가 있는 날 20% 할인

(증빙자료 미지참시 현장에서 차액 지불)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전시종료 30분전 매표 및 입장 마감

 

 

성곡미술관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0)2.737.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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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오락프로그램인 KBS의 '전국노래자랑'을 무려 15년 이상 추적하며 촬영한 변순철 작가의 「전국노래자랑」 초상사진을 소개하며, 한국 대중의 역동적이고 생생한 모습과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접하고자 한다. 또한 사진의 속성인 다큐멘터리와 초상사진, 그리고 아카이빙에 대한 변순철 작가의 입장을 소개하며, 그의 4번째 초상사진 시리즈인 이번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초상사진에 대한 수많은 편견을 넘어, 진정한 작가 정신을 발휘한 변순철의 예술적 휴머니즘이 드러나도록 기획한 전시이다. ● 변순철은 모델과 사진가, 그리고 잠재적 관객들 사이의 관계에 천착하며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는 초상사진 작가이다. 이번 『바람아 불어라: 변순철 전국노래자랑』은 변순철의 네 번째 초상사진 시리즈로, KBS '전국노래자랑'의 출연자들을 15년 이상 현장에서 촬영한 「전국노래자랑」 시리즈를 총 결산한다. ● '전국노래자랑'은 방영을 시작한지 거의 40여 년에 이를 정도로 장수한 프로그램이니, 그 대중적 인기도와 친밀도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변순철은 바로 이 무대에서 각양각색의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를 공연의 주역으로 탈바꿈하며 드러내는 생경함과 낯선 감정, 그리고 평소의 사회적 자아 뒤에 가려져 있던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시도한다. ● 작가는 잘 훈련되고 절제된 그야말로 근사한 공연이 아닌 과장된 제스처와 미숙함, 그를 동반한 우스꽝스러운 실수, 과도한 자기과시욕, 그리고 싱싱한 동물적 욕구와 이에 따른 즉흥적 행위 등을 카메라로 잡아낸다. 변순철은 이러한 우리 이웃들의 낯선 모습을 통해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바로크적 공연과 함께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에 접근하고자 새로운 예술 형식에 도전한다. ● 또한 변순철은 소위 완벽한 이미지를 위한 사진 촬영의 한계를 뛰어 넘어 그저 가벼운 기념사진을 찍듯 촬영함으로써 그의 모델들을 예술적 작업에 참여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즉 이번 작업의 주체는 작가가 아닌 모델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는 뜻이다. 이 과정을 통해 평범한 기념사진을 예술사진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작가와 모델 사이의 주체적 관계가 역전된다. 일반적으로 연출된 초상사진의 경우, 모델은 작가의 전문적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이 요구하는 것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동화되고자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작가는 의상부터, 배경, 조명, 촬영의 각도 등 모든 것을 기획하고 명령한다. 그러므로 모델이 스스로를 나타낼 여지가 없다. 반면 「전국노래자랑」의 모델들은 사진 작업의 능동적 주체가 된다. 변순철 작가가 제안하는 하얀 백지에 모델 스스로가 글쓰기를 하며, 모델 한 명 한 명이 자유와 탈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또한 그의 작업은 즉각적으로 대중의 소비 대상이 되어, 자신의 실제로부터 소외되는 초상 광고사진과도 차이가 있다. 오히려 정반대로 「전국노래자랑」의 모델들은 자신의 인격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과시하는 주체가 된다. 변순철은 자신의 모델이 이러한 자기 발견과 완성을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제안하고 기록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예술적 실천을 경험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변순철의 예술적 휴머니즘이라 할 것이다. 변순철의 「전국노래자랑」 작업은 사진에 동반되는 하위 장르나 키치적이라는 피상적 편견에 대한 작가의 의도적인 도전임을 알 수 있다. 이 도전 정신이야 말로 사진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예술가의 진정한 작가 정신일 것이다. ■ 이수균

 

변순철_대구광역시 달성군 옥연지 송해 공원

Okyeonji Songhae Park, Dalseong-gun, Daegu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98cm_2016

 

 

작가와의 대화 Q&R1. 전시 제목이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이다. '바람아 불어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바람이 가볍게 부는 모양을 '살랑살랑' 이라고 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설레는 따뜻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선들선들' 건들바람은 뜨거운 여름이 지난 가을에 가볍게 부는 바람을 일컫는다. 즉, 바람은 계절마다 다른 모양으로 이뤄진다. 이처럼 '바람'은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바람은 꿈이다. 꿈은 이루고자 하는 각자의 목표 혹은 희망, 비현실적인 이상향이 될 수 있다. 나는 작은 가능성을 내포한 그 꿈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각자에게 '새로운 바람'이 되어 가슴속에 불기를 바란다. 이 '바람'이 평범한 소시민들의 바람이 되지 않을까?

 

변순철_경기도 수원시 Suwon-si, Gyeonggi-do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6.5×45.5cm_2019

 

2. 오늘날 현대미술과 대중소비문화의 만남은 낯선 조합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들 수 있다. ● 「전국노래자랑」 시리즈가 대중소비문화와 관계 맺는 방식은 질문의 작가들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들의 작업은 그 시대의 미술의 한계성을 철저하게 풍자하거나, 전복의 느낌이 강하다. 「전국노래자랑」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 관객, 출연자, 진행자와 함께 그것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모두가 군중의 얼굴을 담고 있다. 나는 '대중'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그들이 반영하고 있는 사회의 단면, 풍속, 심리적 코드, 시대의 정서를 읽어내고자 했다. 결국, 내 작품에 담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은 '인간'이다. 출연자들의 낯선 노래와 어색한 춤이 담고 있는 아마추어들의 신선함이 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더불어 송해 선생님의 걸출한 입담에 울고 웃는 출연자들의 자발적인 행위이자, 비일상 즉, -체하기(only pretending) 놀이를 하며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 혹은 도전이 된다. 이러한 공동체의 '놀이'는 한바탕 축제가 되어 현대사회가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놀이 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일깨워준다. 이것이 「전국노래자랑」이 가진 힘이다.

 

변순철_강원도 횡성군 섬강둔치 Seomgang Dunchi, Hoengseong-gun, Gangwon-do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40×105cm×2_2017

 

3. 이전의 「뉴욕」, 「키드 노스탤지어」, 「짝-패」 초상사진 시리즈 속 인물들과 「전국노래자랑」의 모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달라졌는가? 긴 시간 초상사진 작업에 임하며 작가로서의 변화가 있다면? ● 전형적인 초상 사진의 무표정한 형태를 뛰어 넘고 싶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작업이 초상 사진이 가지고 있던 형식적인 예술을 뛰어 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전 작업들과 현재 작업까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적은 없다. 다만, 각 시리즈에 담고 있는 소재만 다를 뿐이다. 전작들과 현재 작업들의 큰 줄기는 일맥상통하다. 초기 작업은 유학시절 느꼈던 그 사회에 깊숙하게 들어갈 수 없는 이방인, 경계를 표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얼굴에서 사회의 얼굴로 외연이 확장되었다. 이것은 '초상'이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개인적 아픔의 초상이 되기도 하고, 시대가 가진 단면의 초상, 군중의 초상이 되기도 한다. 「전국노래자랑」이 담고 있는 군상의 얼굴은 현 시대를 반영한 대중문화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면 근본적인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 앞으로 진보해 나갈수록 보다 궁극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릴 때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이 향하는 근본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말이다.

 

변순철_경상북도 울릉군 도동항 Dodong Port, Ulleung-gun, Gyeongsangbuk-do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98cm_2019

 

4. 모델의 관점 : 그러니까 그로부터 초상화를 이끌어낸 이 모델이란 누구인가? (어원적으로 "초상화 portrait "란 "위하여"와 "끌어내다"로 구성된다 - 그렇다면 우리는 모델로부터 무엇을 끌어 내는가? ● 현재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초상은 이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고유의 아우라는 사라졌다.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전국노래자랑」 작업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이들 모델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생경함과 우리의 인식에 고착화되어 있지 않은 다른 세련됨의 희열을 느낀다. 또한 이 작품 속 인물을 통해 그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누구나 내 작품을 보면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밀한 부분들이 사회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5. 사진작가의 관점 : 작가는 자신의 모델을 예견했는가, 아니면 그를 갑자기 습격했는가? 그는 자신의 방식을 가해 셔터를 누르는 현실에 무엇을 더하였는가? ● 대상을 사진으로 찍는 그 순간은 아주 잠깐의 시간, 즉 찰나이다. 그것은 예측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 예견할 수도 없을뿐더러, 나와 모델이 발 딛고 서 있는, 공간과 시간만이 있고 모델 그리고 나의 호흡이 섬세하게 밀착되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나의 초상 사진은 대상과 주어진 환경에 온전히 빠져들어 몰입하는 그 지점에 집중한다. 또한 내 작업을 하는 방식과 태도는 끊임없는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전국노래자랑」도 우리 민중놀이로서 여기에 등장하는 특정화 된 초상을 통해 대한민국의 사회 현상을 읽어보려 시도한 것인데, 이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변순철_충청남도 천안시 천안종합운동장 Cheonan-si, Chungcheongnam-do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40×105_2017

 

6. 관객의 관점 : 이러한 초상 사진 또는 사진 초상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는가? ● '초상'의 역사적인 배경을 깊이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관심은 결국 대상의 기록 혹은 기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대중은 특정적인 권위가 아닌 예술을 확장된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아와 타자의 끊임없는 관계성을 고민하며 바라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상이라는 의미는 인물, 건축물, 동∙식물 등 다양하게 확장된다. 이처럼 다양한 피사체의 각각의 개별적인 개념 속을 들여다보는 각자의 경험이 내포되어 있듯이,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각자의 삶과 사고를 바탕으로 감상할 것이다. 즉, 사회에서의 시간과 장소가 드러나는 관계성과 압축된 시간성이 초상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각자의 유일한 읽기, 주관적인 느낌이다. 개별적 자아가 어떤 낯선 현상과 마주쳤을 때 느끼는 무력감일 수도 있고, 동요일 수도 있는, 명확한 용어로 단정지을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오는 반응이다.

 

7. 노래자랑 촬영 시 어떻게 촬영하는지? ● 초기 「전국노래자랑」 작업을 할 때는 로케이션 스트로보(STROBO LIGHT) 조명을 가지고 8X10 대형 카메라 또는 4X5 카메라를 사용하여 작업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주로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중형 포맷에 디지털 카메라(645포맷)를 사용하여 작업을 했다. 「전국노래자랑」이 가지고 있는 움직임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지만 대상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인식의 지점을 좀 더 직관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 중형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성곡미술관_변순철

 

 

Vol.20201015c | 변순철展 / BYUNSOONCHOEL / 邊淳哲 / photography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 졌다.

빈민들이야 코 구멍 한 쪽방이라도 있지만 노숙하는 부랑자가 걱정이다.

지난 화요일의 ‘새꿈공원’에는 몇 명 안 되지만, 쪽방주민보다 노숙자가 더 많았다.

썰렁한 공원에서 웅크려 자는 이도 있고, 몇몇은 술로 몸을 데우고 있었다.

웅크려 자는 머리 위에 걸린 ‘비주택 거주자 주거 상향사업’이란 현수막이 무색했다.

 

쪽방 밀집지역에 사는 ‘비 주택 거주자 이주지원을 위한 주거상향사업’이 시작 된지 몇 개월 되었으나

동자동 쪽방주민들에게 외면 당 하고 부랑자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쪽방 촌에 사는 대부분의 빈민들은 가구도 없이 몸뚱이 하나뿐이라 외곽의 임대 아파트를 원치 않는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방만 넓으면 뭐하냐?‘는 것이다.

 

교통 요충지인 동자동에서야 어디든 쉽게 나 다니지만, 외딴 곳에 가면 외출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

또 하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그동안 줄 세워 구호물품으로 생색내며 빈민들을 길들여 온 탓이다.

그러니, 동자동에서야 굶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임대아파트에 가면 얻어먹을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괄적으로 시행하지 말고, 사정에 맞는 다변화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

영등포 쪽방촌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기 바란다.

 

당장 잘 곳도 없는 부랑자는 그 사업에 해당 되지도 않는다.

된다 해도 주민등록상의 문제나 단절된 가족 때문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신세다.

아무리 좋은 복지정책을 펼쳐도 빈민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으면 헛수고일 뿐이다.

 

하기야! 정치라는 게 본래 그런 거지 뭐...

집이 없어 길에서 얼어 죽는 사람 걱정보다, 생색내어 표 얻는 것이 먼저니까.

 

사진, 글 / 조문호

 

‘사내가 애를 업고 다니냐?’

 

지금은 남자들도 애를 보지만, 옛날에는 쪽팔리는 일이었다.

조롱하는 친구의 동작과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 너무 정겹다.

등에 업힌 어린애의 눈길 한 번 보라.

이게 사는 재미고, 이게 사진이다.

 

1972년 이수종선생께서 찍은 사진을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서 옮겼다.

 

 

동생을 업고 공부하는 학생

 

학교에서 동생을 등에 업고 공부하는 걸 생각이나 해 보셨나요?

모두들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힘들게도 배웠다.

너무 많이 배워 탈인 요즘 보니, 아픈 추억도 그 때가 그립다.

 

부천의 김수열선생이 1974년 낙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서 옮겼다.

 

 

고삐 풀린 소

 

소 몰고 나온 소녀에게 이변이 생겼다.

왜 소의 고삐가 풀렸을까?

안간힘을 다해 소꼬리를 움켜진 소녀의 표정은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다.

 

1968년 장지영선생께서 포착했다.

‘동아사진컨테스트 입상 작품집’에서 옮겼다.

 

 

한정식선생의 “Don’t go!”

 

이 사진은 한정식선생께서 아마추어로 활동하시던, 1968년에 찍은 사진이다.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동아사진콘테스트’에 입상한 사진이다.

지금은 선(禪)에 가까운 사진을 하는 선생의 사진세계를 헤아린다면,

너무 재미있는 사진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해학적인가?

특히 외래어 쓰는 것을 싫어하는 선생께서 “Don’t go!”라는 사진 제목을 붙인 것도 이례적이다.

 

‘동아사진콘테스트 입상 작품집’에서 옮겼다.

 

 

봄 사건 났네.

 

모처럼의 봄나들이에 마냥 즐겁다.

봄바람에 치마만 날리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날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1966년 봄에, 진주의 이영달선생께서 찍은 사진이다.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서 옮겼다.

 

 

꽃 팔러가는 처녀들

 

아침 햇살을 머리에 이고 꽃 팔러 나서는 처녀들의 뒷태가 너무 정겹다.

70년 전 임응식선생이 찍은 사진으로,

사진 속의 처녀들은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셔도 백수가 가까운 할머니들이다.

임응식 선생께서 부산 계실 때는 주로 광복동에서 활동하셨으니,

아마 국제시장으로 국화 팔러 가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임응식회고 사진집'에서 옮겼다.

 

 

그 시절이 그립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풀풀 날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그 당시는 길을 오가며 흙먼지께나 뒤집어썼다.

때로는 자동차바퀴에 튄 자갈에 맞아 이마가 터지기도 했지만...

 

1962년 부산의 김복만선생께서 찍은 사진으로 '한국현대사진60년'도록에서 옮겼다.

 

 

해방의 순간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1945년 사진가 현일영선생께서 찍은 감격의 순간이다.

 

"광복60년, 사진60년 / 시대와 사람들"도록에서 옮겼다.

 

 

여기는 마포 종점이 아니라 마포 나루터다.

 

1945년도 정남영선생께서 찍은 사진이다.

.

'한국사진역사전' 도록에서 옮겼다

 

 

북녘, 도심의 한 모습이다.

 

유령의 도시처럼 텅빈 거리와,

군복을 입은 아버지 가슴에 안긴 애기의 모습에서 찡한 인간애를 느낀다.

 

1997년 평양에서 찍은 Martin Parr 사진이다.

-PRESTEL- 'A YEAR IN PHOTOGRAPHY'에서 옮겼다.

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저질러 놓은 일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정선은 물론 동자동과 인사동마저 물리치고 싶지만

무슨 악연이 있는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기가면 저기 생각, 저기가면 여기생각, 숨겨둔 첩 처럼 뒤가 밟힌다.

 

해가 서울역 머리 위로 기울며,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요즘은 전시장이나 사람 모이는 곳을 잘 가지 않으니

정선과 녹번동, 그리고 동자동만 다람쥐 채 바퀴처럼 돈다.

하는 일도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러다 멍청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만사가 귀찮아지는 걸 보니 아마 갈 때가 된것 같다.

 

내일 새벽일찍 정선 떠나려면 녹번동으로 가야했다.

가기 전에 인사동서 소주나 한 잔할까?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약속 없는 혼 술이 싫어서다.

 

지하도에는 요구르트로 허기 메우던 노숙자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휴게소에는 밥집 문 열기만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지루함이 엿 보인다.

나도 밥 얻어먹기 위해 녹번동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래도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복은 많은 놈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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