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 삼월이 다 가건만 꽃구경은커녕, 마음은 한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이년 넘게 끌어온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다

무차별 살상하는 우크라 전쟁시국이라 뉴스보기도 무섭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 돌아가는 우리나라 정세는 어떤가?

대형 산불로 피해 입은 이재민들은 살길이 막막한데,

대권 잡은 윤석렬씨는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우긴다.

 

그 밑에 달라붙어 부채질하는 정치 파리 떼가 더 밉다.

백발의 능구렁이까지 끼어 알랑방귀 뀐다.

 

하필이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의 국방부에 가려는 속내가 궁금하다.

청와대 터가 무서운가? 아니면 선제타격에 앞장서겠다는 건가?

 

그렇게도 용산에 살고 싶다면, 내가 사는 쪽방촌으로 오라.

빈민들 사는 걸 보면 그 따위 허튼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도둑놈 대통령에다 바보 대통령까지 나오더니, 이젠 무대뽀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군인 정치에 몸서리를 쳤는데, 검찰 권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지난 16일은 일주일 만에 코로나 증상이 사라져 외출을 했다

사비나갤러리에 들려 그림 구경도하고 모처럼 외식까지 했는데,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양성이 나와 또 격리해야 된다네.

가만 있었으면 괜찮을 일을, 귀가 얇아 문제를 만들었다.

 

22일 오후 무렵, 격리된 정동지 집을 나와 동자동에 복귀했다.

 열흘 만에 찾아 간 쪽방이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쪽방 관리하는 정선덕씨는 할멈 염색해 주느라 정신없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정씨가 죽은 서방 만난 듯 반겼는데,

코로나에 격리되어 있다 왔다니까 눈이 둥그레 진다.

다 나았다고 했으나, 그래도 검사 한 번 받아 보란다.

 

정씨는 벌어먹기 위해 까탈스럽게 굴어도 인정스러운 사람이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워 수시로 방문을 열어 먹을 것을 챙겨준다.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 그 이만 할멈과 오순도순 살아간다.

 

정신장애가 있는 옆방 상민군의 방안을 들여다보니 만물상처럼 펼쳐놓았더라.

사진 한 장 찍었더니, 자기가 찍은 사진이 더 멋지다며 자랑이다.

 

걱정하는 정씨 말이 마음에 걸려 서울역광장으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갔다.

출 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몰려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오후 세 시 무렵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검사를 마친 후 서울역 주변의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왔다.

 

동자동 새꿈 공원에는 처음 보는 전도사가 듣는 사람도 없는

텅 빈 마당에서 열심히 설교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때 마침 옆 골목의 봉사단체 이에수즈 핸즈에서 밥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시장 끼가 돌아 끼어 섰는데, 그 날의 메뉴는 버섯 덮밥인지 버섯 죽인지 헷갈렸다.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와 식사를 했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몇 술 떠다 말았다.

 

문제는 다음 날 양성판정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또 다시 일주일동안 격리되어야 한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일 만들지 말고, 방구석에 처 박혀 푹 쉬라는 말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갇혀 독수공방 하려니, 좀이 쑤셔 못 견디겠다.

사진 몇 장 꺼내 놓고 콩팔칠팔 지껄임을 널리 양해하시길...

 

사진, / 조문호

 

I Saw You

 

조성현展 / JOESUNGHYUN / 趙星現 / photography 

2022_0310 ▶ 2022_0330 / 일,월,공휴일 휴관

 

조성현_I Saw You, Berlin#05_180×150cm_2019

초대일시 / 2022_0310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www.kpgallery.co.kr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에서 2022년 3월 10일부터 3월 30일까지 'I Saw You' 조성현사진전을 개최한다. 조성현은 패션사진가이자 자신만의 색깔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으로 주목받는 밀레니얼 사진작가이다. 그가 낯선 세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한다.

 

조성현_I Saw You, Iceland#01_180×150cm_2018

조성현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든 것에 솔직하다. 사실 이런 그의 성향은 자신의 이야기를 오픈하는 것에 소극적인 기성세대에게는 부러움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낯선 세계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즉흥적이고 현실도피로 보일 수도 있는 일탈, 하지만 조성현은 스스로 혼자이기를 원했고 본인이 선택한 고립을 통해 자신의 깊은 곳을 바라보고 그에게 필요한 삶의 호흡을 다시 찾으려 하였다. 때문에 'I Saw You' 전시는 낯선 여행길에서 찾으려 했던 것에 대한 조성현의 독백이자 사진들은 독백을 통해 발견된 결과물이다. 그는 마치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확인하듯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감각과 인식의 눈을 다시 오픈 하고 세계를 마주하며 경험한 것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였다.

 

조성현_I Saw You, Iceland#17_180×150cm_2018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나' 와 '존재하기 위한 나' 사이에 있는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여행이 지친 마음과 몸을 추스르고 현실에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듯이 KP 갤러리는 'I Saw You' 전시를 통해 어쩌면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 KP 갤러리

 

조성현_I Saw You, London#01_120×100cm_2018

2018년, 사랑하는 사람과 내게 소중한 것들을 뒤로한 채 런던으로 훌쩍 떠났다. 나는 '홀로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야만 온전히 나와 내 눈앞에 마주하는 순간들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의 나의 삶은 가슴 한켠에 존재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을 채우기에 부족하였다. '홀로 걷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것이 ' I Saw You' 작업의 시작이었다.

 

조성현_I Saw You, Iceland#05_180×150cm_2018
조성현_I Saw You, Iceland#18_150×180cm_2018
조성현_I Saw You, London#09_120×100cm_2018
조성현_I Saw You, London#02_50×60cm_2018

여행은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고 현실의 삶에서 무뎌진 나의 감각을 깨우는 촉매제의 역할을 해 주었다. 나의 눈이 열리고 한숨 한숨의 호홉을 느끼고 세계에 존재하는 나를 느끼게 한다. 나는 주변 공기의 온도를 느끼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내가 세상에서 마주한 작은 순간 순간들이 가슴 한켠에서 요동을 친다. 때로는 외로움으로 , 때로는 그리움으로 , 때로는 사랑으로. ● 사진 안의 피사체가, 공기가, 작은 빛 한 줌이 각각의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 조성현

 

Vol.20220310e | 조성현展 / JOESUNGHYUN / 趙星現 / photography

담양의 옛 공간과 시간의 기억들을 불러 모은 ‘담양뎐_ 기억의 시간’이

지난 3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담양 ‘담빛예술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담빛예술창고’와 사진전문지 ‘포토닷’ 공동 기획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담양의 역사와 자연을 담은 다섯 명의 사진가가 찍은 120여 점을 선보인다.

 

지역 작가로는 故 이해섭 선생이 수집한 담양 100년사 사진아카이브를 비롯하여

전오남, 라규채, 송창근씨가 기록한 담양의 삶의 기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장터사진가 정영신씨가 기록한 80년대 담양죽물시장도 한 몫 했다.

 

잔잔한 삶의 풍경에서부터 고고한 선비의 멋이 전시장을 풍미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섯 작가의 기억이 세월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풍경에 관람자의 기억이 더해져 보는 사람의 감회도 달라진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담양 장터의 시끌벅적한 장마당이나,

선비의 멋이 서려있는 소쇄원 풍경도 정겹다.

 

아래는 전시를 기획한 박이찬씨의 전시서문 앞부분이다.

 

“사람의 기억은 마법 같은 특징이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 하고 그 기억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기억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지기도 때로는 슬퍼지기도 한다.

이처럼 기억은 경험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은 기억의 조각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의 관계를 연결해주고

또, 연결되기를 원하며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기억이 사라진다는 가정은 인생의 길을 잃은 것과 같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정자 사진을 선보인 라규채씨는 비움과 무욕, 절제를 주제로 했다.

선비 문화의 산실인 담양 정자들을 매개로 자연의 ‘비움’,

선비들의 삶의 ‘절제’, 자연과 함께하는 선비들의 자연관을 담았다

 

송창근씨는 비 온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소쇄원을 찾았다고 한다.

대봉대에 발을 올려 사방을 둘러보면 광풍각이 지척이고 제월당이 저만큼 있었단다.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은 높직한 바위를 가로질러 한 필의 비단 폭포란다.

 

전오남씨는 죽물을 이거나 짊어지고 가는 행렬에서부터

쌍교 밑 소하천 모래 속에서 찜질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이르기 까지

아스라하게 잊혀 진 삶의 풍경을 소환하며 기억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정영신씨의 담양장은 담양만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장마당 풍경이다.

눈 오는 새벽녘, 대나무소쿠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정담 나누는 모습은 이제 풍경이 되었다.

 

수 십 년 동안 장터를 떠돌아다닌 사진가 정영신씨가 말한다.

“수많은 얘깃거리가 장바닥에 쏟아졌고, 국밥집에서는 막걸리잔 위로 농사 이야기를 부려놓았어요.

이제 시끌벅적한 장마당은 보이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장꾼도,

아이들의 시선을 붙들던 약장수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 전시의 백미는 고 이해섭선생께서 수집한 담양 100년 사진아카이브였다.

 

사진 수집을 위해 40여년동안 애써왔으며, ‘사진으로 본 담양 백년사’를 펴내기도 했다.

누구의 사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담양의 소중한 역사적 사료였다.

 

담빛예술창고는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전시는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지난 2일 정영신씨와 담양 ‘담빛예술창고’에 사진전 보러 갔다.

오후세시 무렵 도착했는데, 서울에서 곽명우씨가 먼저 와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박이찬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별관에는 고 이해섭선생이 수집한 담양 100년 사진아카이브전이 열렸다.

 

기획자 박이찬, 참여 작가 라규채, 정영신, 사진가 곽명우와 어울려 차도 한잔 했다.

고맙게도 ‘죽녹원’ 팬션 예향당에서 하루 묵었다.

또 다른 담양의 기억을 만든다.

 

사진, 글 / 조문호

 

몇시간 후면 판가름 나겠지만,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그동안 대선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검찰 권력에 정치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재명후보가 되어야 더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와 멀어 그렇지, 마음은 심상정후보에 가 있었습니다.

비명에 떠난 노희찬씨나 정의당에 적을 둔 아들 햇님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약자를 위해 발 벗고 나설 사람은 심상정이기 때문입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보여준 진정한 마음은 진작 알았습니다.

 

이제, 이재명후보를 찍을까? 심상정후보를 찍을까?

더 이상 망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역 사전투표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심상정후보를 찍는 소신투표는 했으나, 안 될 줄 알면서도 찍었으니 무효표에 가깝습니다.

이제, 거대양당이 좌지우지해 소신을 펴지 못하는 정치구조는 끝내야 합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정치를 무시한 이상 정치의 허망함보다

한국정치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동지들의 결의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전투표를 마치고 서울역광장으로 내려왔습니다.

노숙인들이 여기 저기 힘없이 쓰러져 있고,

한 끼의 컵라면을 받기위해 많은 노숙인들이 줄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거에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허덕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가 이런 것인가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당선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3일은 정선 만지산 불난 집터 측량하는 날이었다.

아산의 김선우씨가 일주일 전부터 신청해 둔 측량이라, 모처럼 정동지와 함께 정선 간 것이다,

 

오전10시에 출발했는데, 차를 교체한 후 첫 장거리 운행이었다.

‘투싼’은 승차감도 좋았지만, 확 터인 시야라 지난 번 ‘크루즈’보다 훨씬 편했다.

양평을 경유하여 네 시간 만에 도착했는데, 측량시간이 오후2시라 한 시간 정도 남았더라.

 

불난 집터만 보면 속이 뒤집어져 창수네 집부터 올라갔다.

집에 아무도 없어 전화를 걸었더니, 밭에서 옻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부지런함은 여전한데, 일을 마무리하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정 식구들이 몰려와 몇 날 며칠 동안 술파티를 벌였다는 이야기에서부터

큰아들 창수가 속 썩인 일까지 구절구절 풀어댔다.

 

지난 해에는 고추농사는 짓지 않고 고사리 농사에만 공을 들여 팔백만원이나 벌었고,

다른 집에서 일 해주고 받은 품삯도 오백만원이 넘었는데, 

자식이 사고를 쳐 한 입에 털어 넣고 말았다는 것이다.

 

큰 아들 창수가 갑자기 정신 장애를 일으켜 큰 사고를 냈다고 한다.

 보상해 준 돈만도 만만찮은데, 카드로 주문한 책이 산더미처럼 왔다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가면 모두 구입한 것 같은데, 책 값만 몇 백만원이 된다고 했다.

대부분 필요 없는 책이라 새 책을 폐품으로 파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단다.

“자슥 놈이 웬수야! 웬수~”라는 창수 엄마의 하소연에 한이 맺혔다.

 

농막에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는데, 아산에서 출발한 김선우씨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집터 측량하러 왔다는 말에 창수엄마도 따라 나섰는데,

측량기사도 네 분이나 왔지만, 김선우씨는 김창복씨와 함께 왔더라.

 

아산의 김창복씨는 농지에 관한 행정이나 농막 관례에 해박한 전문가로

지난 해 불 난 직후에도 모시고 와 도움을 받았는데,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하루 종일 차 속에 시달릴 걸 생각하면, 자기 일이라도 쉽게 나서지 못할 일이 아니던가?

 

측량 기사들은 측량하느라 왔다 갔다 했지만,

선우씨 일행을 비롯한 동네사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웅성거렸지만, 불 낸 옆집에서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측량 결과가 나왔는데, 20년 전 측량한 것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리 집터에서 동쪽으로 2미터 정도 밀려 난 것 외에도

북쪽에서도 2미터 정도 남쪽으로 내려와 창수네 밭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지켜보던 창수엄마의 낯빛이 편치 않아보였다.

 

그 땅은 창수가 아무 일을 못해 둘째 아들 용순이를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용순이 집터로 정한 땅이라며 난처해했다.

오죽하면, 다시 측량하게 되면 위쪽으로 올라 갈 것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아산 김창복씨가 문제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옆집과 경계를 이룬 남쪽지점과 북쪽 지점에 눈금을 대 보고는

옆집에서 지은 농막이 집과 집사이의 5미터 틈을 두지 않았고,

한 쪽 지붕 끝이 이쪽 땅을 침범했다고 한다.

새로 지은 농막을 보호하기 위해 이쪽 땅에 돌 턱을 쌓은 것도 잘 못이란다.

 

이 문제는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농막 규모도 여섯평을 한참 초과했고

집도 한 채가 아니라 대형 저장고까지 세동이나 되었다.

그래도 부족한지 빈터에 건축자재를 잔뜩 쌓아 놓았더라.

우리 집터는 오래전부터 옆집의 주차장이고 자재 보관소였다.

문제점을 따지고 싶었으나, 사람이 나오지 않아 민원을 제기할 수 밖에 없었다.

 

불난지 1년이 지났건만 보험회사는 물론, 불 낸 사람도 전화 한 통 없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속담처럼, 상대를 열 받게 해 스스로 나가길 바랄까? 

솔직이 사람이 보기 싫으니, 정선 만지산에 대한 애착도 사라졌다.

 

군청에 가서 알아보자는 손님 말씀도 있었지만, 읍내 나가 밥부터 먹어야 했다.

군청과 읍사무소에 들렸다가 시장 곤드레 밥으로 허기를 메웠다.

차 한 잔 나누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선에서 못 살것 같았다.

홧병으로 목숨을 재촉할 것아 다른 곳에 집터 알아보라고

모든 일을 정동지와 김선우씨에게 넘겨버렸다.

 

사실은 6년 전 정영신씨와 이혼할 때, 위자료조로 정선 집을 준다고 했으니 정동지 집이다.

집터 압류가 풀리지 않아 명의 이전을 못하고 서약서만 남겼으니,

내가 결정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도움주신 분들과 함께 사용할 에술창고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해

어디든 적당한 부지를 찾아보라는 부탁은 했다.

매사가 분명치 못하니 김선우씨가 모든 일을 해결해 주는데,

그 많은 도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선 만지산은 25년 동안 정들었던 제2의 고향이었다.

자연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순박했던 동강 원주민들이 더러 세상을 떠나기도 했지만,

산골까지 파고든 물질문명으로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

 

정선과의 인연을 끝내려니, 한 마디로 시원섭섭하다.

“잘 있거라. 정선아! .”

 

사진, 글 / 조문호

 

 

25년 동안 기록한 작업들을 돌아 보며 정리해 둔다

 

-축제-

동강변 주민들을 위한 굿마당 2000, 9 / 구 귤암분교

제1회 만지산 서낭당 축제 2007, 10 / 만지산 사진굿당

제2회 만지산 서낭당 축제 2008, 9 / 만지산 사진굿당

 

-전시-

동강환경사진전, 1999. 10 / 서울, 충무로 갤러리

‘동강백성들’사진전, 2001, 11 / 서울, 충무로 지하철역과 혜화역 지하철 전시장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 2004, 12 / 서울, ‘덕원갤러리’

찾아가는 예술여행 ‘두메산골 사람들’전 2005 / 정선, 평창, 영월 산골마을 분교 10곳

‘신명’ 설치 사진전, 2005, 9 / 만지산 사진굿당

강원다큐멘터리 특별전, 2005, 7 / ‘동강사진박물관’

‘산을 지우다’ 사진전, 2008, 9 / 서울, ‘통인옥션갤러리’

‘산골 사람들’ 사진전, 2018, 5 / 정선, G갤러리

 

 

-출판-

‘동강백성들’ 포토에세이 발간 / 2000, 9 /도서출판 명상

‘동강’환경사진집(한국환경사진가회) 2000, / 도서출판 포토뉴스

‘두메산골사람들’ 사진집 발간 / 2004, 12 / 눈빛출판사

 

 

용산역 철도정비창 빈터에도 사람이 산다.

15년 전부터 노숙인이 하나 둘 모여들어, 속칭 ‘용산역 텐트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20여명의 노숙인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이곳은 용산역과 고층 호텔 사이의 빈터로, 숲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다.

땅거미처럼 숨어있어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용산미군기지 개발 계획의 한 카드로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금싸라기 같은 서울 요지에 문패도 없는 텐트를 쳤지만,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으니 짐승우리나 다름없다.

텐트도 공공이 해야 할 일을 인근 교회에서 지원했다.

가끔 사회단체에서 온정의 손길도 보내주지만, 추위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처음엔 이슬이라도 피할 수 있는 텐트가 생겨 좋아했으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더란다.

노숙할 때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는데, 바늘구멍에서 황소 같은 바람이 들어 와

온 몸은 물론 얼굴까지 파묻고 산단다.

 

박씨는 요즘 일거리를 못 구해 하루종일 텐트에서 지낸다.

그 흔해빠진 핸드폰이나 티브이도 없으니, 먹고 싸는 시간외는 하루 종일 이불 속에서 딩군다.

희망이나 재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허무한 망상으로 시간 죽인다.

 

용산역 텐트촌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언젠가는 봄이야 오겠지만, 날씨 따라 걱정도 따라온다.

주민들의 민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물론 음식찌꺼기 버릴 곳도 없으니, 어찌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용산구청 청소과 담당자에 부탁한다.

‘용산역 텐트촌’에 쌓인 쓰레기부터 좀 치워다오.

재활용 분류까지 해둔 쓰레기를 구청에서 수거하지 않으니,

악취에 시달려야 하는 주민들이 어찌 그냥 두고 보겠는가?

 

이제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시선도 거두어다오.

그들의 삶에도 저마다의 까닭이 있다.

 

그들도 사람이다.

같은 국민이며 이웃이고 가족이다.

 

사진, 글 / 조문호

 

 

푸른 잎사귀 Bright Leaf 明葉

 

한문순展 / HANMOONSOON / 韓文順 / photography 

2022_0217 ▶ 2022_0226

 

한문순_Go round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6/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1:00am~06:0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0)2.2269.2613

gallerybresson.com

 

 

체르노빌(Чернобыль)은 '검은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현재 우리는 이 단어를 '검은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외국어로 생각하지 않고, 핵재앙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지역의 핵발전소 폭발사고의 여파 때문이다.

 

 

한문순_Hallway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6/2022

2차 세계대전 이후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Atoms for Peace) 덕분에 원자력 발전은 전기 에너지를 값싸게 무한정 공급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우라늄 1kg이 석유 200만 리터 또는 석탄 3000톤의 에너지와 필적하는 원자력은 인류가 역사상 지금까지 보유한 에너지원 중에서 최고의 출력을 갖고 있어, 고질적 인류 문제의 하나인 에너지 부족 현상을 완전히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북쪽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인류는 최초로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고 등급인 7단계 방사능 누출을 경험하게 됐다.

 

한문순_Window_피그먼트 프린트_91×61cm_2016/2022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으로 인해 현재의 인간 기술력은 아직 원자력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질 못했음이 민낯으로 드러났고, 인류는 스스로 과학에 대한 맹목적 맹신에 빠졌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인간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체르노빌 지역을 도망치듯 쫓겨나왔고 발전소 일대 지역은 방사능 오염 구역으로 봉인되었다.

 

한문순_Classroom_피그먼트 프린트_61×91cm_2016/2022
한문순_Court_피그먼트 프린트_61×91cm_2016/2022

세슘 방사능 반감기인 30년이 지나고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체르노빌 지역은 여전히 자기 이름만큼이나 검고 우울한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인간이 만든 각종 구조물만이 검고 우울한 모습을 띠고 있을 뿐, 체르노빌 지역은 이미 자생하는 식물에 의해 복원과 치유가 진행 중에 있었다. 더 이상 검은 잎사귀로 뒤덮인 지역이 아닌 오히려 밝고 선명한 생명의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한문순_Pool_피그먼트 프린트_61×91cm_2016/2022

인간의 죄악을 씻어 내고, 더 이상 인간의 해악이 범접할 생각이 들지 못하게끔 당당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곳은 벌써 소도(蘇塗)와 같은 성지이자 마룬(Maroon)과 같은 자유구임이 선언됐던 것이다. 이런 점은 이 지역 일대의 곰, 늑대, 사슴, 순록 등 많은 종류의 야생 동물의 수가 사고 이전보다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방사능이 야생동물에 좋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 인간이야 말로 야생 동물들 입장에서는 방사능 물질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죽을 정도의 방사선 수치가 아니라면 차라리 체르노빌이 다른 곳보다 훨씬 안전한 장소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문순_Ride_피그먼트 프린트_61×91cm_2016/2022

인류에게 인식의 대상보다는 소유의 존재로 여겨졌던 식물. 그런 식물의 위대함이 파괴된 자연을 훌륭하게 치유함으로써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식물의 위대함이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최악의 범죄 현장에서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흔적을 남긴다. ■ 한문순

 

한문순_Hotel_피그먼트 프린트_61×91cm_2016/2022

Chernobyl is a word that means "black leaf." Currently, we don't think of this word as a foreign language meaning "black leaf," but use it as a word meaning nuclear disaster. This is due to the aftermath of the nuclear power plant explosion in the Chernobyl region in 1986. ● Nuclear power was considered to be capable of completely solving the energy shortage, one of the chronic human problems, as it had the best output ever in history. However, on April 26, 1986, the 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No. 4 reactor, located in the north of Kiev, Ukraine, exploded, and mankind experienced the highest grade of the 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 (INES). The Chernobyl nuclear explosion revealed bare face that the current technology was not yet fully capable of controlling nuclear power, and it served as important to realize and reflect on mankind's blind faith in science. ● Eventually, humans were chased out of Chernobyl area contaminated with radioactivity, and the area around the power plant was sealed as a radioactive contamination area. When I visited the accident site 30 years after the half-life of cesium radioactivity, I expected that the Chernobyl area would still be as black and gloomy as its name. However, contrary to my expectations, only various human-made structures were black and gloomy, and the Chernobyl area was already undergoing restoration and healing by native plants. It was no longer an area covered with black leaves, but rather a sacred place with a bright and vivid color of life. ● It was confident enough to wash away human sins and no longer allow human harm to come across. It has already been declared a sacred place like Sodo and a free slave zone like Maroon. Plants were considered possessions rather than objects of recognition to mankind. However, the greatness of such trivial plants is revealed by healing of the destroyed nature. ● To remember the ironic situation in which the greatness of plants is revealed in the worst crime scene of mankind, I leave a trace with pictures. ■ Han moon soon

 

Vol.20220217b | 한문순展 / HANMOONSOON / 韓文順 / photography

사진의 만찬

 

정영희_최경덕 2인展 

2022_0204 ▶ 2022_0213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수철주최 / 미학적사진학교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공휴일_11:00am~06:0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0)2.2269.2613

gallerybresson.comcafe.daum.net/gallerybresson

 

내게로 부터 ● 인생에서 가장 많은 집중력을 발휘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가녀린 생명을 보살피고 양육하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새봄이 시작되었다. 따스한 햇살과 보드라운 봄바람으로 미소 짓기도 하고, 때로는 변덕스러운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도 했던 봄날들. 봄이 언제나 짧은 것처럼 나의 새봄도 그러했다.

 

정영희_봄날 001_종이에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75×100cm_2021
정영희_봄날 002_종이에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100×50.75cm_2021
정영희_봄날 004_종이에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100×50.75cm_2021
정영희_봄날 005_종이에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75×100cm_2021

 

이제는 누구의 돌봄이 필요치 않은 인격체로 성장했고, 자기 자신만의 방향키로 각자 다른 모습으로 인생 여정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새봄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뒤를 돌아보는 것조차 잊은 채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 이전에 자식이었던 나 또한 그 시절 뒤돌아 부모님을 보기보다는 내 앞에 펼쳐진 세상만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부모님에게서 멀어져 가듯이 나의 아이들도 멀어져 간다. 내 인생의 새봄을 떠나보내며 가을 햇살 가득한 넓은 마당처럼 그 자리에 있어야겠다. ■ 정영희

 

Into the Picture ● 카메라 속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가끔은 그들의 공간과 시간을 나의 프레임으로 끌어들이기도 하며, 사진 속 프레임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 그들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발을 내딛기도 한다.

 

최경덕_사진 속 사진 #001_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바느질_56.6×85cm_2021
최경덕_마음읽기_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바느질_66.6×100cm_2021
최경덕_뮤직뱅크_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바느질_56.6×85cm_2021
최경덕_하모니_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바느질_56.6×85cm_2021

나의 카메라는 종종 미술관에서 프레임으로부터 해방된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뭔가를 속삭이듯 재잘거린다. 딸아이가 그림 속 어딘가에서 서성인다. 순간 카메라 셔터음과 동시에 그곳의 그림과 딸과 나는 같은 공간 속,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한 프레임 안과 밖을 오가며 딸과 함께하는 사진을 찍고, 종이 위로 잉크가 스며들어 사진이 출력되고, 그 위로 딸아이의 사진을 바느질할 때 비로소 나의 딸과 함께한 시간은 완성 되어진다. 예단할 수 없는 결과가 나의 손을 거쳐 가고 사진 속 사진이 완성되어 갈 즈음... 그것은 마치 종교의 의식처럼 위로로 다가온다. ■ 최경덕

 

Vol.20220204b | 사진의 만찬-정영희_최경덕 2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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