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정동지와 함께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김선우 산채에 갔다.

봄에 텃밭을 일궈 주어 야채를 심었으나 자주 갈 형편이 못되어,

한번 가면 잡초 뽑느라 카메라 꺼낼 틈조차 없었다.

 

이번 나들이는 일박이일의 일정이라 한결 여유로워 사진도 찍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지천에 늘린 블루베리 따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블루베리는 유독 정동지가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가격이 비싸 사먹을 수 없었다,

그 날 블루베리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귀가 막혔다.

 

혈압과 암을 비롯한 갖가지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에다 피부까지 좋아지는 약이었다.

더구나 눈의 피로를 풀어주어 시야를 맑게 하는 등 몸에 유익한 열매라,

다 같이 달라붙어 블루베리 따느라 다른 곳은 손댈 겨를이 없었다.

 

  따 모은 블루베리가 한 바가지도 아니고, 큰 대야에 가득한데,

손 큰 선우가 그 많은 블루베리를 모두 차에 실어 주어, 정 동지 입이 찢어졌다.

 

그 날 밤은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이 전시된 백암길185미술관에서 묵기로 했다.

그동안 농장에 여러 차례 갔으나 매번 당일치기라 술 한잔 마실 수 없었는데, 오래된 원을 풀 좋은 기회였다.

처음으로 전시장에 여장을 풀고, 그 곳에서 김창복, 김선우씨와 함께 만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금방 따온 상추에다 맛있게 삶아 낸 수육을 싸 먹었는데, 선우 음식솜씨에 또 한 번 놀랐다.

술 마시며 산채의 환경친화적인 활용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술이 들어가니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느라 시간 다 보냈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정동지 말처럼, 그 주책은 고칠 수가 없다.

 

  그 이튿날은 잡초 뽑는 일에 매달려야 했.

20여 년 동안 그 넓은 땅에 제초제는 물론 농약과 화학비료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김창복씨와 김선우씨의 집념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들이 흘린 땀을 모은다면 저수지를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덕분에 자연과 땅이 온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김창복씨는 오래 전부터 한살림에서 유기농을 해 온 영농지도자였다.

씨앗도 토종만 사용할 뿐 아니라 농장에는 없는 작물이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농사 뿐 아니라  '이거 큰일났군' 동화를 펴낸 동화작가이기도 했다.

 

  말이 쉬워 유기농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처음 정선 갔을 때는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갈 때마다 숲을 이룬 잡초와의 전쟁에, 삼년을 넘기지 못하고 손 들고 말았다.

이십년 동안 제초제를 끼고 살다, 2년 전 살던 집에 불이 나는 통에 그만 둔 것이다.

 

  대신,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선우 산채에 내가 머물 농막을 짓기로 했다,

그 사이 농지법이 바뀌어 농막에서 사람이 잘 수 없게 된데다,

건축규제마저 까다로워, 집 짓는 일은 시작도 못했다.

김창복씨는 산림청 허가를 받아야 되는 산막을 짓기 위해 임야 조성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려면 올 가을에나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농막은 6평으로 제한하지만, 산막은 15평까지 된다니 더 잘된 일이었다.

 

다른 곳은 손 댈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내가 일구는 텃밭과 집터라도 잡초를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동지와 선우는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체, 아침부터 잡초와 씨름했다.

한 나절에는 너무 더워 숨이 턱턱 막혔으나, 참고 견뎌야 했다.

선우가 그만 두라고 몇 번이나 찾아왔으나 알았다는 말만하고 일어서지 않으니, 정동지를 보내 재촉했.

 

여기만, 여기만. 하다 일어나니 어지러웠다.

선우가 타 준 시원한 얼음커피에 한 숨 돌렸으나, 아무래도 더위 먹은 것 같았다.

읍내에서 양햇살양을 만난 후 맛있는 냉면까지 사 주었으나, 먹는 것까지 귀찮았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어떻게 서울까지 운전해 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한결 나아졌으나, 정동지의 극성은 못 말린다.

정선에서 농사지을 때는 두릅이나 옥수수를 따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블루베리를 배달해야 한다며 봉지, 봉지 싸 놓은 것이다.

하기야! 장에 나가 파는 것보다 나누어 먹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나저나, 아산에서 농사 지어려면 매주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동자동에서 지내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녹번동 정동지 일을 도왔는데, 아무래도 주말은 인주면 산채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이중생활에서 삼중생활이 된 셈인데, 개뿔도 없는 주제에 혼자 바쁘게 생겼다.

 

사진,/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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