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국 17인 국제판화전,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1월 29일까지 열려...

 

Nittaya Hernmek, THE RESIDENT OF MIND 2, woodcut, 84x120cm(2019) <사진제공=통인화랑>

정교하면서도 거친 표현이 붓질과는 또 다르다. 다채로운 판화의 매력을 담뿍 담은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통인화랑이 국내외 유명작가들을 초대하는 제 4회 국제판화전(International Handprinted Edition)을 4일부터 29일까지 연다. 지난 2019년부터 시작한 전시로 올해는 7개국 17명이 함께 한다. 세계적인 판화공모전에서 수상한 작가들이 예술적 깊이와 다양한 기법을 뽐낸다.

한국 목판화를 대표하는 김상구는 풍부한 회화성과 판화의 기술적 공정을 통해 극도로 절제된 간결함과 탄력있는 구성을 표현했다. 김서울은 에칭기법으로 고립과 충만을 동시에 표현해 관람객들과 공감하려 한다. 민경아는 리노컷 기법 입체작품을 통해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들이 충돌하여 빚어내는 낯선 감성을 드러낸다. 박정원은 현대 도시인의 양가적 감정을 표현했고, 이언정은 토끼를 통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한다. 이영애는 아쿠아 틴트 기법으로 회화적 감성을 표현했고, 정승원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지친 마음에 치유의 선물과 평화로운 휴식을 제공한다.

 

김서울, ‘a box for work’ (2019) etching_50x40cm <사진제공=통인화랑>
민경아, ‘책거리-프리다칼로 theme’ linocut 3D collage, acrylic on canvas. 45.5x33.3x7cm (2022) <사진제공=통인화랑>

방글라데시의 압둘라 알 바시르는 우드컷 기법으로 무기력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내면의 슬픔을 표현했고, 아크히누 빈테 알리는 화려했던 어린 시절을 표현해 작가 자신이 완벽한 자유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태국의 니타야 험·파라윈 피앙촘푸·티라왓 캄온·티퐁 홍스리누앙은 우드컷 작품을 나란히 선보여 눈길을 끈다. 전통과 결합한 평화로운 상상력을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Chris Pig, ‘Barbers’, wood engraving, Chine Collé, 35X50cm, Oxford (2020) <사진제공=통인화랑>

영국의 크리스 피그는 이발소와 햄버거 가게 등 일상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포자티는 우드컷과 다양한 색깔로 인간관계를 주제로 다루었고, 수잔나 도치올리는 종이를 접거나 오려서 그림이 튀어나오는 듯한 리노컷으로 유희적이면서도 시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핀란드의 투카 펠토넨은 우드컷 작품에서 화려한 옷과 헤어스타일을 보여준다.

 

Tuukka Peltonen, Unknown Passage, woodcut, 79 cm x 59 cm (2022)

이계선 통인화랑 대표는 “이번 국제판화전은 각기 다른 기법과 각 나라가 가지는 독특한 문화와 판화의 가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이다”라고 밝혔다.

[매일경제 / 이한나기자]

방방곡곡 / 노포기행

골동품점에서 뉴욕갤러리까지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골동품 가게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2대째 경영
이제는 우리 문화 알리는 문화메카로

 

20일 서울 종로구 통인화랑에서 김완규 대표가 1층 공예품 판매점인 '통인가게'를 소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서 안국동을 잇는 ‘인사동 거리’가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부터다. 식민통치로 벼슬길이 끊긴 경복궁 일대 양반들이 생계를 위해 내놓은 세간살이 중 귀물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골동품 상점으로 몰려들었고, 때로는 양반들이 직접 가게를 열기도 했다.

 

오늘날 인사동길에서 가장 많은 골동품을 보유하고 있는 통인화랑의 전신인 통인가구점도 1924년 통인동에서 문을 열었다. 뼈대 있는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 고생이라곤 모르고 살 줄 알았던 12세 소년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작한 골동품 가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한 외국인의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 고미술을 알리는 문화공간이 됐다. 지금의 관훈동으로 옮겨 온 이후엔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 됐다.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통인화랑은 2019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100년 가까운 역사 동안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를 지켜 온 통인화랑을 20일 찾았다.

 

1대 김정환 대표에 이어 아들 김완규 대표가 2대째 운영..한 세기 가까운 역사

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통인화랑. 최주연 기자

통인화랑은 인사동길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중심도로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1층의 ‘통인가게’에선 나전칠기를 비롯해 도자기와 장신구 등 각종 공예품이 방문객을 반긴다. 지하 1층과 지상 5층은 공예품과 회화를 전시하는 갤러리로, 지상 4층은 골동품을 보관∙판매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계단을 이용하는 손님이 많지 않지만, 붓글씨 작품 등이 벽면에 빼곡히 걸려 있어 한 층 한 층 구경하며 걸어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이야 7층 건물이 흔하지만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린 1973년만 해도 인사동 일대에서 홀로 우뚝 선 고층 빌딩이었다고 한다. 2대째 가업을 잇는 김완규 대표는 “1972년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이 가게를 방문했다가 급하게 화장실을 찾길래 하는 수 없이 동네 푸세식 변소를 알려줬는데 경악을 하던 상황이 두고두고 민망했다”면서 “우리나라 문화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공간부터 품격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통인화랑 4층에 수집된 고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최주연 기자

한국 예술에 대한 김 대표의 강한 긍지와 책임감은 통인화랑을 세운 아버지 김정환씨 영향이 컸다. 미술 공부는커녕 마땅한 관련 서적도 없던 일제강점기에 가게를 차린 소년 김정환은 물건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행상을 하던 노인을 따라다녔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 유물 출토 현장을 찾아 구경했다. 그렇게 습득한 기술로 손님들에게 항시 가장 좋은 물건만 내놓았고, 직접 수리까지 했다. 그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배운 김 대표가 한국 문화 애호가가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국내외 유명인사들의 단골 가게...갤러리에선 신진 작가 발굴

 

20일 서울 종로구 통인화랑 5층 갤러리 공간에 전시 중인 작품들. 최주연 기자

정직을 모토로 삼은 통인화랑에는 사람이 몰렸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한국화학 설립자 김종희 회장, 중요무형문화재를 제도화하는 데 앞장선 언론인 예용해, 체이스 맨해튼 은행 총재를 역임한 데이비드 록펠러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 한국의 대표 원로화가 권옥연은 하도 자주 가게를 드나든 탓에 “통인가게에 값을 치르려면 그림을 칠해 놓고 말릴 새도 없이 팔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했다.

 

1973년 가게를 물려받은 청년 김완규는 '잘나가는 골동품 가게'에 만족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소유로 그치는 골동품에 한계를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우수한 공예품을 즐길 수 있어야 국가 전반의 문화예술 수준이 올라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악한 대량 생산품에 반기를 들고 영국에서 공예운동을 일으킨 윌리엄 모리스의 이론이 김 대표의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1980년대 통인가게를 찾은 록펠러(오른쪽) 전 총재의 모습. 통인화랑 제공

1975년부턴 이름을 ‘통인화랑’으로 고치고 갤러리를 열었다. 초기엔 동양미술품을 주로 전시하다 유행이 서양화로 바뀌자 현대미술로 콘셉트를 바꿨다. 지금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박서보가 1976년 첫 개인전을 연 곳이 통인화랑이다. 윤광조와 허건, 피에스탁만 등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하면서 공예∙회화 전문화랑으로 저변을 넓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작가들의 문의가 쇄도해 한 달에 두어 번씩 전시 내용을 바꿔야 겨우 소화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세계로 진출하고 사업 영역도 확장...강화도 아트단지도 추진

더 많은 외국인을 화랑에 끌어들이기 위해 김 대표가 40년간 분기에 한 번씩은 개최한 게 판소리와 오페라 공연이다. 많은 외국인과 교류하며 한국문화의 저력을 체감한 김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한국 사람들에겐 인기 없는 작가라도 작품만 우수하다면 외국 시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1980년대엔 홍콩에서, 2002년엔 뉴욕에서 갤러리를 열었다. 각각 15년과 8년간 운영하며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 냈다. 그가 세웠던 갤러리가 이제는 ‘한국홍보대사’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통인화랑에서 열린 판소리 공연. 통인화랑 제공

미술품을 잘 다루기 위한 김 대표의 노력은 관련 사업으로까지 연결됐다. 국내 최초로 포장이사서비스를 도입한 ‘통인익스프레스’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과거엔 신문지로 물건을 싸서 배송했는데, 록펠러가 ‘가게 수준에 비해 포장 서비스가 뒤떨어진다’며 미군부대에서 버리는 종이로 포장해보라고 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해외화물수출입 업체인 통인인터내셔날과 국내 최대 규모 문서 보관 회사인 통인안전보관도 미술품을 안전하게 배송하고 보관하기 위한 김 대표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백발이 성성해진 김 대표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부친이 사용하던 통인화랑 7층 작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그는 현재 인천 강화도에 아트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화도에 변변찮은 문화체험 시설이 없다는 아쉬움에 10개 미술관을 새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화랑은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좋은 전시를 했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라며 "앞으로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우리 예술을 알리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아침

 

류장복展 / RYUJANGBOK / 柳張馥 / painting 

2022_0518 ▶ 2022_0612 / 월요일 휴관

 

류장복_4.18 1857_리넨에 유채_53&times;116.8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통인화랑

TONGI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2(관훈동 16번지)

Tel. +82.(0)2.733.4867

www.tongingallery.com

 

아침.. 반투명한 노란 꽃병에 꽃들이 짐짓 아무렇다. 아침 햇살에 흔들리는 꽃 그림자가 스티브 라이시의 음악을 타고 흐른다. 케이르스마커의 춤이 잇따른다. 무표정한 동작이 태엽이 풀린 듯 되풀이된다. ● 줄창 반복된다. 먹고 자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 먹고.. 전쟁 중에도 먹고 자는 일이 대부분이다. 단 하루 동안 혹은 몇 시간의 전투로 생사가 갈리기 전까지 반복된다. 전우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울음을 그치고 먹는다. 먹고 다시 울음을 이어간다. 일상이란 게 그렇다. ● 하루를 마치고 얼마간의 잠을 자고 나면 다시 해가 뜨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이 온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삶의 대부분이다. 일상은 지루하다.

 

류장복_11월_리넨에 유채_45.5&times;45.5cm_2020
류장복_꽃병의 야생국화_리넨에 유채_45.5&times;45.5cm_2018~22
류장복_꽃이 피니 봄이 온다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times;91cm_2022
류장복_당신에게_리넨에 유채_45.5&times;45.5cm_2021~22
류장복_마스크를 쓴 자화상_리넨에 유채_33.4&times;21.2cm_2020
류장복_맑음_리넨에 유채_90.9&times;65.1cm_2017~22
류장복_봄비_리넨에 유채_72.7&times;90.9cm_2021~22
류장복_사월_리넨에 유채_72.7&times;90.9cm_2021~22
류장복_삼청동, 오후_리넨에 유채_116.8×53cm_2022
류장복_선물_리넨에 유채_65.1×53cm_2021~22
류장복_아침_리넨에 유채_45.5×45.5cm_2019~22
류장복_용미리에 봄_리넨에 유채_53×116.8cm_2022
류장복_정발산동 늦은 오후_리넨에 유채_90.9×72.7cm_2021~22
류장복_정발산동 오후_리넨에 유채_90.9×72.7cm_2021~22
류장복_초가을에_리넨에 유채_45.5×45.5cm_2020~21
류장복_팔판동, 봄_리넨에 유채_116.8×53cm_2022
류장복_한남동, 이른아침_리넨에 유채_116.8×53cm_2022
류장복_홍매_리넨에 유채_45.5×45.5cm_2022
류장복_흰 날에_리넨에 유채_116.8×53cm_2022

가끔 사건이 튀어 오른다. 한 끼를 거르거나, 빙판길에 고꾸라지거나, 문득 쳐든 얼굴에 내려앉는 따스한 햇살을 눈부셔하며 한줄기 존재의 눈물을 흘리거나, 공사판 옆을 지나가다가 일꾼이 떨어뜨린 망치를 머리에 맞고 기절하거나.. 작고 큰 사건들이다. 그런 사건들의 나머지, 거대한 나머지가 일상이다. ● 매번 다른 아침을 궁리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에 어제와의 이별이 있다. 아침은 사건이다. 볕이 쨍쨍한 날, 손갈퀴 사이로 흘러내리는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반짝거리는 아침을 눈 끔뻑거리며 찾아 나선다. (2018.12.22 작가노트) ■ 류장복

 

Vol.20220518g | 류장복展 / RYUJANGBOK / 柳張馥 / painting

▲ 인사동 쌈지길 앞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거리인 인사동의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700m 거리에 예술가들의 자취·혼 가득

“여덟 사람이 앉아 있다/두 사람은 시인이고/두 사람은 화가다/한 사람은 조각가고/한 사람은 무용가/저쪽 구석에 앉은 두 사람은 작가라는데 /무슨 작가인지 알 바가 아니다/시인은 기타를 치고/화가는 손뼉을 치고”

이생진(1929~) 시인의 시집 ‘인사동’(우리글·2006년)에 수록된 ‘시인과 화가1’이다. 2000년 겨울부터 2005년 겨울까지 쓴 65편의 시에 인사동의 민낯을 담았다. 인사동 곳곳에는 예술혼이 잠겨 있다. 예술가의 자취가 묻어 있다. 이들이 보고 듣고 즐긴 것들이 서울미래유산이 돼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 서울의 중심점 표지석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인사동에서 운영한 카페 ‘귀천’은 서울미래유산이다. “귀천에 목 여사는 없고/걸레스님만 걸려 있다/천 시인은 목 여사와 나란히 앉은 사진틀에서/생진아, 너 아직 스무 살이제이 한다/내가 쉰한 살 때 하던 소리다/지금은/내가 먼저 하늘에 왔데이 하고 웃는다/천 시인은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먼저 하늘에 왔다고 자랑한다” 목씨 사후 조카 목영선씨가 2호점을 내 명맥을 잇고 있다.

오래된 서점 통문관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이생진 시인의 시에 등장한다. “통문관 앞을 지나는데/노란 은행잎 속에서 이겸노 옹이 바스락거린다/그의 생애가 인사동이다” 인사동의 중앙통인 인사동길에 있는 통문관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 출입문은 대개 닫혀 있다. 창에 붙은 서화 틈새로 기웃거려 보지만 천장까지 쌓은 책 때문에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통문관 주인 이종운씨는 이겸노씨의 손자다. ‘월인석보’, ‘청구영언’ 같은 보물급 전적을 비롯해 수많은 고서를 발굴·수집한 할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수많은 자료 중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기관지로 발행한 항일투쟁지 ‘상해독립신문’ 창간호 등 170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여든여덟 살이 되셨을 때 ‘통문관책방비화’라는 책을 냈는데 나도 그 나이쯤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 구하산방
▲ 통인화랑

●조선의 근대가 태동한 문화·정치 일번지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 구하산방은 ‘첩첩산중 신선들의 집’이라는 뜻이다.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13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 온 필방에는 종이, 먹, 붓, 물감 등 2000종이 넘는 서화 재료가 가득하다. 필방에는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에서부터 전국의 화가들이 몰린다. 홍수희 대표는 “우리 집 모르면 작가가 아니지”라고 말한다. 본래 일본 상인이 개업한 가게였으나 우당 홍기대 선생이 1935년에 점원으로 들어가 광복 이후에 인수했다. 3대인 홍수희 대표는 2대 홍문희씨의 동생이다.

서울미래유산 수도약국은 광복 직후인 1946년 8월 15일 임명용씨가 개업했다. 약국에서 심부름하다 약종상 면허를 취득했으니 적수공권으로 자수성가한 약업계 1세대다. 세간에 “수도약국에는 없는 약이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됐지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약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적도 있었다. 약국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약사는 셋째 아들 임준석씨다.

종로구 인사동 194 하나로빌딩 1층에는 서울미래유산 서울중심점 표지석이 말없이 서 있다. 1896년 한양의 중심 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고종이 세웠다. 101년 전 3·1운동의 주역인 민족대표 33인은 태화빌딩과 하나로빌딩 사이 주차장 자리인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독립선언을 했다. 서울이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흘러간 옛 중심점이다.

이 밖에 인사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조선중앙일보 옛 사옥, 보신각 지하철 수준점, 낙원악기상가, 허리우드극장, 이문설렁탕, 낙원떡집, 유진식당, 빈대떡전문 열차집 등이 있다. 인사동은 서울의 근대가 태동한 곳이다. 서울의 첫 대학로였고, 서울의 첫 정치 일번지였으며, 서울의 예술과 음식문화가 잉태된 곳이다. 서울의 미래유산 집결지대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 수도약국
▲ 카페 귀천
▲ 통문관

●일제강점기 몰락한 왕족 고미술품 팔아

인사동은 서울에서 가장 고풍스런 거리이자 미술품과 골동품의 향기가 진동하는 공간이다.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거리여서 외국인 친구나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교포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장소이다. 서울의 명소이자 예술가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골동품과 도자기, 고서 등 한국의 전통 상품이 거래되는 상징적인 동네이면서도 ‘중국산 짝퉁’이 소비되는 자본주의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인사동길은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에서 관훈동 136번지로 이어진다. 삼청동~관훈동~인사동~청계천 광통교까지 흐르는 개천을 복개하면서 생긴 신작로다. 북쪽으로는 관훈동, 동쪽으로는 낙원동,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 그리고 서쪽으로는 공평동과 접하는 700여m의 길이다. 일반적으로 인사동이라고 하면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 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인사동 인접 지역을 통칭한다.

 

▲ '이문설농탕
▲ 낙원떡집
▲ 낙원악기상가

안국역이나 종로3가역에서 들어오는 두 갈래 통로로 이뤄진 인사동의 몸통 인사동길은 모두 11개의 실핏줄 같은 골목을 통해 이웃 동네와 연결돼 있다. 인사동의 역사는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계사 바로 옆 터에는 화가를 양성하고 선발하던 도화서가 있었다. 도화서에는 전국의 화원 지망생이 몰려들었고 지필묵을 파는 가게들이 생겼다.

인사동에 처음 고미술품 시장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이때부터 인사동은 ‘한국 전통 문화재 유출의 현장’이 됐다. 몰락한 왕족과 양반들이 고미술품을 일본인에게 내다 판 시기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인 대신 미군과 유럽인들로 고객이 바뀌었다. 1970~80년대부터 인사동에 화랑·표구사 등의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화랑이 들어섰다. 필방이 속속 진을 쳤다.

“인사동에 와서도 인사동을 찾지 못하는 것은/동서남북에 서 있어도/동서남북이 보이지 않기 때문/그렇게 찾기 어려운 인사동이/동은 낙원동으로 빠지고/서는 공평동으로/남은 종로2가에서/북은 관훈동으로 사라지니/인사동이 인사동에 있을 리가 없다…”

이생진 시인은 시집 ‘인사동’에 인사동의 역사와 상처를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혼이 상혼에게 혼을 빼앗긴 지 오래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미 14년 전의 일이다.

[서울신문 / 스크랩] 글 :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 사진 : 김학영 연구위원

인사동이 변하고 있다.

가게들이 바뀌고 낭만은 사라졌다.

지루한 거리두기로 거리가 지루하다.

 

그래도 인사동은 인사동이다.

변하는 것은 미워도 인사동은 미워할 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가던 곳이 한 번가고,

이젠 한 번도 못갈 때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다.

전시 작품보다 정 나눌 사람이 없다.

 

예술가 만나기도 쉽지 않고 대폿집 풍류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 죽일 놈의 코로나가 부채질한다.

 

 

몸은 멀어도 마음마저 멀어질 수는 없다.

영원한 추억의 저장고기 때문이다.

 

 

미국 가신 최정자 시인이 생각난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서울로 서울로’를 노래했다.

그 시집 나온 지가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몇 년 전만해도 생활비 줄여 만든 돈으로

일 년에 한 번은 빠지지 않고 오셨으나,

힘들어 못 오신지가 사 오년 된 것 같다.

 

한번 갔다 오면 며칠 동안 앓아눕는다더니

이젠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신단다.

 

인사동이 그리워 틈틈이 블로그나 찾았는데,

영영 인사동과 작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 최정자 시인뿐이던가?

강 민시인은 저승에서 '인사동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인사동 사람들이 한 분 한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인사동을 그리는 인사동 사람들이 있다.

멀리서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들려 향수 달랜다.

내가 거리풍경을 찍어 올리고 인사동타령을 해대는 이유다.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려고 출판사 계약서 받은 지가 일 년이 가깝지만,

 아직도 원고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마침표가 될 사진집이 내 발길을 멈추게 할까 염려되어서다.

 

요즘은 세상이 뒤숭숭해 인사동도 잘 나가지 않는다.

동자동에서 녹번동 가는 길에 잠시들려 안부나 묻는 정도다.

인사동 거리를 기웃거리지만,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엊그제도 지나치는 길에 인사동에 잠깐 들렸다.

미친 코로나에다 폭염까지 겹쳐 거리는 한산했다.

 

일주일 만에 본 인사동 거리지만 계속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추억 지우느라 안달하는 것 같았다.

 

전통적 상품을 거래하던 매장들이 옷가게로 바뀌고 있다.

민예품이 놓였던 진열대는 옷과 마스크가 대신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부터 문 닫았던 ‘보물창고’가

더디어 새 주인을 만났는지 실내장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쌈지 건물 벽에는 임금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궁녀 설화가 담긴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치 누굴 기다리 듯 애잔하다.

 

‘통인화랑’은 ‘미술관 속 그림과 조각전‘이 열렸고,

‘나무화랑’은 인사동활성화를 위한 신진작가 공모전이 열렸다.

 

전시장마다 작품은 걸렸지만, 반가운 사람이 없다.

인사동을 사랑했던 인사동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몽유병 환자 같은 늙은이만 거리를 떠돈다.

 

인사동의 봄은 요원한 것인가?

아! 그 때 그 사람이 그립다.

 

사진, 글 / 조문호

 

화론 on Flora and Painting 展 

 

2021_0324 ▶ 2021_041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1_0324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제민_허보리_신수진_이창남

김정선_이광호_이만나_한수정_이정은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통인화랑

TONGI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2(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B1,5층

Tel. +82.(0)2.735.9094

www.tongingallery.com

 

 

화(花)론 : 그림과 꽃 그리고 자본주의 ● 불황기에는 마르스크스주의가 인기라고 한다. 코로나로 생활경제는 최악을 갱신하는데도 나름 성실히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에게 연일 들리는 집값과 주가 폭등의 뉴스는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가져온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울분은 질병이 창궐중인 기형적 사회와 그 인프라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저항으로 이어진다. 150년 전 탈고한 매그넘 오퍼스 속에서 마르크스는 우리를 비웃는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조차도 평생 스스로의 부르주아적 정신성을 탈피하지 못한 채 삶을 마무리했다. ● 『자본론 1』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가 지본주의를 지탱한다고 논파한다. 원료(raw material)를 공장에서 가공하여 상품으로 만들어 팔 때, 생산 라인에서 노동자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입함으로써 비로소 이전에는 없던 유용성과 수요의 가능성이 만들어져 '사용가치' 나 '교환가치'가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노동을 통해 원료의 가격을 넘어서는 '잉여가치 surplus value'가 생산되고, 이 잉여가치의 축적이 자본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를 결정할 때에는 대부분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 분 이상으로 일한 노동시간이 실질적 잉여가치로 환산이 되는 직설적 방식이 적용된다.1) ● 미술작품을 생각해 본다. 구조적으로는 미술작품 역시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과정(labor-process)에 견주어 볼 수 있다. 회화의 예를 들자면, 작가들은 물감, 캔버스, 용매 등 원료를 가지고 자신의 시간과 기술, 노력을 쏟아 부어 작품을 만들어낸다. 작품을 '하'거나 '그리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마르크스적 '상품'으로 대입하여 생각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런데 여기서 잉여가치, 즉 작품의 가치를 가늠하고자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상품의 경우 원료에 노동력과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직설적인 가치의 증식을 예측할 수 있는 반면, 미술작품의 경우 이 예를 따를 수는 없다. 미술작품이 생성되는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력' 속에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시간이나 기술, 숙련도와는 많이 다른 추상적 역량들이 응축되어 있으며, 이것이 잉여가치의 형성을 좌우하면서 '사용가치' 나 '교환가치'로 정의될 수 없는 그 너머의 궁극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 가치들은 단순한 환금가치의 공식을 넘어 우리의 가슴과 오감, 두뇌 속에 담을 수 있고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초월적인 보상들이다. ● 이번 전시에 모인 작품들과 이에 담긴 작가들의 '노동'의 성격을 생각해본다. 이 작가들의 노동의 근간에는 적게 어림하더라도 20년, 대부분 30년 이상의 전문적인 화가로서의 기량과 경험이 담겨있다. 단순히 '전문적'이란 단어로 수식하기 부족한 이유는 이들이 동세대 최고역량의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화업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들은 이미 최단 5년에서 10년이상의 미술교육과정을 거쳤다. 질풍노도의 10대를 하루 종일 화실에서 불편한 의자에 걸터 앉아 허리를 세우고 팔을 뻗어 죽은 로마인들의 조각을 그리며 숱한 질타와 좌절을 달게 견뎌내 온 결과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연필 한 자루로 하얀 석고상을 하얀 도화지에 옮기는 것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불가능한 작업 같지만 이들은 이 난제를 수도 없이 풀며 수 백권의 스케치북을 메꿨고 점차 이들의 연필 끝에서 나오는 선은 정확도를 넘어 생명력이나 설득력, 자신감과 지혜까지도 머금게 되었을 것이다. ● 물리적인 내공은 이들을 빚어낸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 어디에서도 화가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무엇에 비할 수 있지. 흔치 않은 선택에 대한 불안감과 소외감, 비일상적인 하루에 대한 타인들의 눈총과 포기 등 아마도 10대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소용돌이 치는 듯한 심리전은 화가들을 때로는 뒤흔들고 때로는 북돋우며 정신적으로 무장시켰을 법하다.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진실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들은 이집트시대 이래의 미술사를, 철학과 포스트모더니티, 그리고 색채학이나 질료에 대해 연구한다. 의사면허증이나 변호사자격증은 그들을 찾는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화가들에게 면허나 자격은 순전히 내적으로 충족되는 조건들이다. 국가고시라면 종이한장으로 귀결되지만 내적 간절함은 충족되기 어렵다. 이들이 캔버스에 임할 때 이런 조건들이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단순한 노동시간과 노동력의 공식 같은 척도로 이들의 예술작품의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이번 전시에 모인 작품들은 모두 꽃과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꽃은 로마시대부터 선호되던 가장오래된 회화의 소재중 하나이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도무스 등에서는2) 바닥과 벽을 꽃과 식물의 모자이크와 벽화로 장식했던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꽃그림은 동서고금 아름다움의 가장 간결한 표현이다. 르네상스에서는 꽃들은 장식의 의미를 넘어 상징과 암시의 결정체로 활용되었다. 크리스찬 전통을 이어 인물에 곁들여진 꽃들이 사랑, 순수, 절개 등 의미를 담게 되었고 플랑드르 같은 북유럽지역 정물화 속 만개한 꽃다발이나 시들어가는 봉우리들은 부패, 배신, 그리고 죽음과 교훈을 상기시키려는 메멘토 모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술과 열매의 구조에 주목하면 성기나 성적 재생산, 생명의 잉태 등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조건들은 배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꽃의 클리셰를 만들어내고 있다. ● 이 전시의 작가들은 꽃과 꽃그림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으나, 모든 것이 디지털 컨텐츠로 뒤덮인 이 시점에서 의식적으로 꽃이라는 화제畵題를 선택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꽃의 클리셰를 거부하고 있다. 이제 아름다움의 기준은 걸그룹이고 상징과 암시의 결정체는 에모지이지 않은가. 이들에게 꽃은 과거에 유래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흐릿한 기억의 일부이자 회화적 지속성의 구실이며 지극한 현실의 투영이다. 대리석만큼이나 영속성을 보장받는 캔버스라는 화면에 수십년의 내공을 가지고 그려낸 꽃그림은 한편으론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사실은 가장 신선한 반전의 오브제인 것이다. 벽면에 육박해가는 초대형TV 화면과 손바닥 속에 접혀 들어가는 스마트폰 화면 사이에서 벽에 걸린 예술가의 꽃그림 만이 우리 옆에 실존하는 이미지이다. 이 회화들은 우리와 이미지와의 원천적 관계를 상기시키고 화가의 눈과 손길 그리고 사상과 현재까지도 노출시키고 있다. ● 꽃그림의 소장은 하나의 경험이다. 작품이 집안으로 들어와 벽에 걸리는 순간 그 공간은 마른 물감 특유의 옅은 휘발성 향기로 채워질 것이다. 창의 위치나 조명, 벽의 구조에 따라 서서히 캔버스의 물리적 존재감이 떠오르게 될 것이며, 꽃의 이미지에로 눈이 갈 때쯤 비로소 화가의 역량은 캔버스의 존재감을 뚫고 그 자리에 각인될 것이다. 꽃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애처롭고 위태로운 생명력을 표상하며 그 어떤 사진이나 영상과는 견줄 수 없는 소장가의 탁월한 안목을 지지할 것이다. 소장가들은 작품을 구입해 벽에 거는 행위를 통해 예술이라는 개념을 취득하게 된다. 소장의 행위 속에는 경제, 사회적 안정이 기반이 된 감성, 문화적 호기심과 지적 허영심이 포개어져 있다. 부인할 필요도 없이 예술의 흥망성쇠는 자본과 밀착되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메디치라는 은행가가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현대미술에서 역시 주요 미술관의 컬렉션은 굴지의 기업의 자본이 불가결하다. 마르크스의 예견처럼 자본의 운용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하지만 축적된 자본만이 바라볼 수 있는 노동 너머의 가치는 일고一考의 중요성이 있다. 수많은 유한한 노동의 대가에 비해 꽃그림은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가치를 지탱할 것이다. ● 계몽주의가 300년이상 '핫' 했던 이유는 인간의 긍정적 발전가능성인 지식의 축적과 근면성실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여기에 방법을 제공했다. 농노農奴로 태어나 농노가 될 자식을 남기고 죽어가던 절망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것이다. 예술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내적 발전가능성을 자극한다.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는 생활은 편리하지만 허탈할 것이다. 내 앞의 꽃그림은 나의 배를 채워주거나 웃음을 주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나를 허탈하게 방치하지 않는다. 사각형의 표면을 통해 일상을 아주 조금 초월한 곳에서 내가 생각하게 만들고, 곧이어 내가 속한 사회, 경제적 조건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고민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잠재되어 있음을 깨닫게 할 것이다.

 

김정선_마지막 눈 the last snow of the season_캔버스에 유채_34×53cm_2019

 

김정선_지금 여기 right here right now_캔버스에 유채_150×194cm_2021

 

기억산업(memory industry)에 대한 기대치가 치솟고 있다. 인간의 뇌가 감당하는 기억량의 슬픈 한계를 짐작한 메모리나 클라우드 산업의 눈부신 수직성장을 보면 우리의 기억에 대한 욕심과 막상 따르지 않는 육신의 한계,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이 가져온 결과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스마트폰 속 수천장의 사진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지만 정작 우리 자신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기억하는 장면은 얼마나 될까. 김정선의 화면 속 거대하게 확대된 꽃들은 기계적 기억이 아닌 우리의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기억을 되뇌게 한다. 땅바닥에 달라 붙은 먼지 낀 잡초 사이에 애써 변명하듯 솟아오르는 노란 민들레들을 고개를 꺾고 허리를 꺾어 바라보던 그 순간 작가를 지배한 생각과 그를 스쳐간 바람, 냄새, 소리, 습도, 그리고 감정상태야 말로 민들레 그림('지금 여기에1', 2018-9)의 주인이다. 몽롱한 시각은 오히려 그 외의 감각에 대한 선명함으로 대체되면서 오랜만에 나도 허리를 수그려 팔을 뻗어서 가는 꽃대를 꺾을 때의 질깃한 저항과 진액의 냄새, 끈끈함을 느끼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줄기 사이로 장난감 구슬이 보이는데 이는 작가가 저장해둔 자신만의 기억들일 것이다. '배꽃' (2016)에서 유난히 하얀 배꽃을 휘감는 파랗고 검은 배경은 잉크를 머금은 얼음처럼 투명하지만 깊고 견고하게 냉기와 아릿한 통증을 저장하고 기억한다. 그림은 대체될 수 없는 기억매체다.

 

김제민_무심한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90.8cm_2020

 

김제민_무심한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_65×90.6cm_2021

 

잡초가 주인공인 슬랩스틱에서 상황이 추가된 파르스(farce)로 이어지던 김제민의 식물과의 교감은 그의 허를 찌르는 유머감각과 날 선 위트, 그리고 그 이면의 건조하고 어두운 심상을 풀어내 왔다. 뿌리 채 뽑힌 잡초가 작가의 자화상인 듯 감이 오기 시작한 후로는 웃어도 되는지 고민스러울 정도의 시니시즘이 독보적이었다. 개그나 상황이 강렬하긴 했지만 일회성의 장르라면 이를 뒷받침해온 그의 필력은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해 아마도 쭉 같이 갈 수단이자 목적이 될 것이다. 얼핏 보기는 모노톤의 낙서화 같은 최근작들은 숲이라기 보다는 계속되는 테마인 잡초나 수풀들이 무성한 숲의 언저리나 도입부 또는 공터를 화면에 빽빽하게 근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심한 풍경' (2021)은 무성한 잡초밭에 서서 시야를 가리는 키 큰 풀들 너머로 아련한 수목들을 조망하듯 펼쳐지는 화면이다. 화면 상단에는 옅은 수묵화 같이 농담이 느껴지면서 서정성을 풍기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바로 앞 중심부에는 작가 특유의 만화와 정밀묘사 사이정도 될 캐리커쳐적 선들이 돋보인다. 화법의 차이에 혼란을 느낄 수 있겠지만 혼돈 속에서도 이질감은 없다. 십 수년을 식물을 관찰하고 그려온 여유가 만들어낸 회화적 기술이다. 물감과 먹이 엉킨 한 켠에는 제법 명암이 드리워져서 기존의 드로잉에서는 무관하던 회화적 풍부함을 느끼게 한다. 처음으로 그의 화면에서 공간이 시작된다.

 

신수진_On the Verge_캔버스에 혼합재료_140×145cm_2021

 

신수진_Yellow Breeze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58cm_2020

 

모든 생명체의 기본 전제는 재생산과 확산이다. 인간사회는 복잡해져서 이번 생이 마지막인양 욕망과 희로애락에 휘둘리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생물학적 사명을 망각하기 쉽다. 그에 비해 동식물의 삶은 심플한 만큼 목표가 뚜렷해서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일에 충실하다. 모래알 만한 꽃씨 하나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꽃잎이 솟은 다음 수백개의 씨앗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번 생은 잘 산 것이다. 생산과 반복, 이를 통한 지속성이 자연의 핵심이라면 신수진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이런 자연의 근원적 힘과 맞닿아 있다. 날카로운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연필과 붓, 니들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행위를 통해 그 어느 씨앗에도 지지 않을 만큼의 수많은 꽃잎과 생의 단위들을 정연하게 생산한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연 속 작은 타원의 존재들을 재현하는 작가의 작업은 자연이 의도한 것처럼 끝이 없고 멈춰질 수 없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무한한 반복을 통해 결과를 집적해 나가는 데서만 얻을 수 있는 도덕적 만족감마저 느끼게 한다. 작업의 과정은 더 없이 현실적이지만 그 결과는 환영적이다. 한 곳에 중첩되거나 때로는 확산되면서 유기체적 가능성을 내포한 이미지들은 열정에 대한 감탄과 함께 작은 숭고를 불러일으킨다.

 

이광호_Untitled 1303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20

 

이광호_Untitled 4677_캔버스에 유채_140×130cm_2020

 

이광호의 캔버스를 마주하며 직시하고 서기가 머뭇거려진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정면에 서자마자 그의 화면 속 공기가 나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버릴 것만 같은 현실감 때문일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이 공간과 저 평면 속 공간이, 분명 평면인데도 불구하고, 얼핏 동질적으로 느껴지면서 조금은 초현실적으로 거대 선인장의 존재감에 나의 감각이 압도당할 뻔한다. 이미지와 나의 감각, 시각과의 줄다리기 속에서 자꾸만 이미지의 설득력에 이끌려가려는 유혹에 휘말리는 것이다. 상상이 가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화가일지라도 공기를 그릴 수는 없다. 공기를 제외한 그 밖의 모든 요소, 사물, 명암, 그림자 등 모든 부분을 탄탄하고 밀도 있게 그려 넣었을 때 비로소 그 사물이 실존의 근거를 얻게 되면서 서서히 사물 주변에 공간감, 그리스인이 말하는 에테르와 같은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마치 영원히 실을 뽑아 직물을 짜는 아라크네처럼 이광호의 붓 역시 쉴 새 없이 화면 속 공간감을 직조해 가는 것이다. 선인장 끝 섬뜩하게 앙증맞은 꽃봉우리들도 그 공간 속에서 호흡을 이어간다. 환영의 힘이다.

 

이만나_기둥 A Pillar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14

 

이만나_달밤 I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4

 

우리가 자연을 자연이라고 실감하는 것은 단편적 개체로서가 아닌 엄습하는 덩어리로 마주할 때가 아닐까. 아무리 풍성한 꽃꽂이도 또 단지내 가꿔 놓은 조경도 하나의 객관화된 단위로 다가온다면 인지가능하고 명명할 수 있는 꽃이고 관목이고 덤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만나의 화면 속 인공적인 초록색의 테니스코트를 염탐하듯 내려다보며 울타리를 가리는 살아있는 것 같은 초록색 덩어리나, 그 뒤 포진하며 도려내어진 사각형의 코트 면적을 다시 잠식하려는 듯한 숲의 존재는 은근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지배적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또 '달밤' (2014)에서 어둠 속 어렴풋이 달빛에 비춰진 나름 당당한 모습의 건물을 그 보다 한참 위에서 굽어보며 양팔을 들고 에워싼 검은 초록빛 장벽 같은 숲은 내가 쉽게 명명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저항할 수도 없이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생명의 거대한 집합체이다. 그가 본능적으로 포착하는 도시와 공존하는 자연 또는 식물들의 혼돈과 혼돈 속에 내재된 에너지는 깊고 어두우며 무한하지만 결코 초조해 하거나 주장하지 않은 채 인간의 흥망성쇠를 방관한다. 우리는 자연을 가꾸고 보호하며 보존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자연은 가꾸어지거나 보호될 만한 만만한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이들은 형태를 바꾸며 반복되는 영속적인 조건에 더 가깝다.

 

이정은_엄마, 생일 축하해요_장지에 채색_70×97cm_2020

 

이정은_열매맺는 계절_장지에 채색_105×72cm_2020

 

그림이 그림이여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면 이정은의 작품 같은 경우이다. 반들거리는 껍질을 자랑하는 탐스러운 붉은 사과 한 바구니와 한층 더 짙은 선홍빛깔의 열매를 단 남천가지. 시선이 머무르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도자기 화병과 그 표면에 수놓은 듯 그려진 그림 속 꽃그림, 그리고 화병을 받치고 있는 동서양의 화집들. 그 너머에는 뭔가에 홀린 듯 돌연 윗몸을 일으켜 세우며 경계를 시작하는 그림 같은(!) 갈색 고양이의 자태가 이 직사각형의 공간에 시간과 장소 그리고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 모든 심미적 대상들이 각각 자신의 최고의 컨디션을 뽐내며 잘 짜여진 구도 속에서 동시에, 즉,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 순간에 포착되는 것은 회화적 행운일 수 밖에 없다. 그림이 소중한 이유는 몇 번이라도 보고싶은 최애의 대상을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대로 화가의 눈과 손을 느끼며 음미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크린이 접히고 말리고 하는 시대가 도래해도 화가가 한 잎 한 잎 촘촘히 그린 만개한 꽃그림을 소유하고 만끽하는 감각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사실적 이미지를 통해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합하거나 도록에 실린 국보급 도자기에 계절의 꽃을 꽂아 바라볼 수 있도록 연결하는 상상력은 비현실을 현실화하는 필력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그림을 즐길 능력을 기르는 것은 화가들의 이런 내공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이창남_A Plant_캔버스에 유채_27×27cm_2020

 

이창남의 회화에는 고유한, 특징적이면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심리적 감각이 내재되어 있다. 단순히 노스텔지어나 슬픔, 또는 황홀감이 아니고 특유의 촉촉하고 우울한 복합적 감수성이다. 이런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오직 바랜 듯한 색감이나 겹친 붓자국들의 미묘한 흔들림만도, 화면의 투명함을 호소하는 흰 하이라이트 때문만도 아니다. 특징적 감각이 일관되는 것을 보면 분명 그의 내면에 잠재하는 어떤 성분에서 유래하는 것 같고, 그의 눈에 이 세상은 이런 황혼에 젖은 빛과 공기로 비춰지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 정도이다. 화가들은 수십년간 기술을 쌓고 고민을 누적시켜 발전한다지만, 타고난 감각은 누적의 원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예민하게 지탱하며 군더더기를 에어내가는 세련洗鍊의 과정으로 지켜내어져야 한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화가들의 고충이다. 동양의 난초 답지 않게 활짝 여러 봉우리가 펼쳐진 모습 속에는 빛을 내다보면서도 어둠에 잠식된 가라앉을 듯한 먹먹함이 지배적이다. 지기만을 기다리는 만개한 꽃은 강렬한 죽음의 상징이다. 단지 아름답기만 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한수정_97peony_캔버스에 유채_65×80cm_2020

 

한수정_98peony_캔버스에 유채_65×80cm_2020

 

확대된 꽃과 그 주변부의 묘사를 통해 한수정은 현실과 허구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우리의 시선을 기만하다. 두 눈이 캔버스위의 '그려진' 면적을 따라가면서 환영으로 인식할 채비를 하는 것을, 칼로 도려낸 듯한 흰 빈터들이 석고의 단면처럼 차갑고 납작한 평면에서 튕겨내듯 반사한다. 꽃 이름을 단서로 시각과 지각이 연동되어 로르샤흐의 얼룩을 읽듯 이미지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 순백색 토끼나 고래? 새우? 날개를 펼친 닭? 들이 자꾸만 방해하는 것이다. 시선은 꽃의 깊은 수술과 암술사이, 꽃과 이파리 사이의 어둡고 아늑해 보이는 공간으로 다녀오고 싶은데 불편하게 유기체적 형태를 한 면적들이 눈치 없게도 이를 방해한다. 환영에 대한 고질적인 의심이며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눈감을 수 없고 그치지 않는 각성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패턴들은 고집스럽지만 너무도 솔직하다. 캔버스란 원래 그런 곳이다. 빠져들고 싶을 만큼 잘 그려진 환영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좌표 아래에는 팔림세스트(palimpsest)처럼 항상 백지로 되돌려지는, 화가들의 원죄(Original Sin) 같은 근원적 평면성(Original Flatness)이 잠재하는 것이다.

 

허보리_고기리1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20

 

허보리_능내역1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20

 

오랜 미술의 역사를 생각할 때, 익숙한 회화장르에서 익숙함을 앗아가는 능력은 값진 재능이다. 아무리 포스트모던이다, 미술사에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없다, 자포자기한 듯 말해도 과거의 답습이나 심화만으로는 (대중의 사랑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비평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는 힘들다. 허보리의 꽃그림들은 꽃을 주제로 삼고는 있지만 '꽃그림'이라 부르기에는 진화된 새로운 지점을 찾아 나선다. '능래역 1'(2020)과 '고기리 1'(2020) 모두 지역명이 제목이지만 화면은 '흐드러지게'라고 표현하는 것을 기다리는 듯한 꽃과 이파리들로 꽉 채워져 있다. 작가의 붓질은 그러나 이들이 꽃-다움이나 줄기-스러움을 애써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무심하거나 무던하다. 무엇보다 붓놀림의 속도감때문에 꽃그림 특유의 매만지는 듯한 애착이 배제되어 있어 상쾌하다. 굳이 꽃의 생물학적 조건이나 또는 인문학적 상징, 그로 인한 감상적 영역에 접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홀가분하면서, 내 감정의 자유를 허락하는 '의미의 공백'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회화적으로는 원근이 억제되고 공간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색감 위주의 패턴이나 추상화과정으로 단순화 될법도 한데, 화면을 종횡무진하게 달리고 뻗고 호흡하는 에너지의 기세 때문에 결국 '흐드러지게' 핀 꽃그림임이 드러난다. 새롭게 발견된 익숙하지 않은 꽃그림이 반갑다. ■ 정신영

 

* 각주1) 마르크스의 표현에 따르면 C'=c+v+s, 즉, 생산물가치=불변자본(constant capital)+가변자본(variable capital)+잉여가치(surplus value). 자본론 1,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참조. p2802) Domus Romana. 고대로마 상류층의 주거양식. 실내정원과 주택이 완비된 형태로, 벽면과 바닥에 빈틈없이 장식된 회화와 화려한 모자이크가 특징.

 

 

Vol.20210324c | 화론(on Flora and Painting)展



강경구씨의 ‘달아 세상 끝까지 멀리멀리 비추어다오’라는 제목의 전시가
지난 3월18일부터 인사동 ’통인화랑‘5층에서 열리고 있다.




화가 강경구씨는 서울대 회화과 출신으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 체험을 통하여 직관과 느낌을 주관적으로 그려내는 화가이다
그동안 도시의 감수성과 미의식을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찾아내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삶의 무의미, 환희와 절망, 고뇌와 고독, 아픔과 희열 등
스스로의 궤적을 화폭에 담아 오늘의 시대상을 대변해 왔다.




동네풍경이나 귀가 길의 모습 등 소소하고 비근한 일상의 모습을 친근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삶에 의한 구체적인 감성을 바탕에 둔 묘사라 더욱 친숙하다.




얼핏 보면 삽화나 가벼운 스케치 풍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구수한 해학과 정취가 농밀하게 담겨 있다.



호방한 필치에 의한 대담한 축약과 형태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후련한 느낌을 준다.



강경구씨의 화풍은 무엇보다 대담함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칠고 중후한 필선이 때로는 중첩된 농묵으로 대상을 화면에 집약시킨다.




작가는 작품을 놀이처럼 자유롭게 해석하며 묘사한다.



절망과 고독으로 점철된 오늘의 시대미감을 드러내고 있는 
강경구씨의 ‘달하 노피곰 도다샤’전은 오는 4월12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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