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화의 개인전 'Once Upon a Time (옛날 옛날에)‘가

오는 9월2일부터 11일까지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이번에 보여주는 '옛날 옛날에'는 '삼국유사'를 뼈대로

건국 신화부터 영웅의 탄생과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고대 풍속을 화폭에 끌어냈다.

2018년 이인성미술상 수상 기념전이 열린 대구에서 첫 선을 보였으나, 이 작업만 모은 전시는 처음이다.

 

최민화, 호녀, 2020_캔버스에 유채_90.9x72.7cm

 

.60여점의 회화와 40여점의 드로잉 및 에스키스 등, 이 작업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낯설었다. 최민화 그림 같지 않았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한 현실과 실존적 고민을 형상화해온

민중미술가의 작품으로는 획기적인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최민화, 천제환웅 신시에 오다, 2018,캔버스에 유채,_97x130.3cm 

 

더구나 대형 상업 화랑인 ‘갤러리현대’와 손을 잡았다.

‘갤러리 현대’를 끌어가는 박명자씨가 바로 70년대에 인사동 최초의 상업화랑을 열어

인사동이 미술의 메카가 되도록 바람 일으킨 여장부가 아니던가?

 

최민화 '대궁단인', 2020,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이전에 보여주었던 '분홍' 연작과는 달리 신화적 황금빛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색이 주조를 이루었다.

일련의 작업들은 오래전부터 해 왔던 숨겨진 작품이었다.

20여년에 걸쳐 신화적 서사를 리얼리즘의 시선으로 형상화해 왔던 것이다.

불화 또는 민화에서 부터 인도의 힌두 미술과 서구의 르네상스 회화 등

온갖 잡신들이 어울린 신화이며 역사화였다.

 

최민화 '주몽, 엄체수를 건너다', 2020, 캔버스에 유채, 91x116.8cm

 

저항적인 이전 작품과는 달리, 고대의 신전을 거닐 듯 평온함이 느껴졌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고,

동서고금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는 점이다.

한국 고대사를 다뤘지만, 동서양의 정서와 기법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최민화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일했는데,

84년 운동권 선후배들과 '서울미술 공동체'를 만들며 민중미술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본명은 최철환 이었으나 ‘민중은 꽃’이라는 '民花'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치열했던 시대를 그냥 살지 않고 이름까지 바꾸어가며 온몸을 던졌다.

 

그의 작품들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증언이었다.

1976년 선보인 '부랑' 연작이 첫 시위를 당겼다.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부랑자’의 모습을 강렬한 색채로 그려냈다.

 

절망과 분노가 범벅이 된 오래된 부랑자 작품 한 점이 떠 오른다.

세월이 흘러도 그 그림이 뚜렷한 것은 그만큼 울림이 컸다는 말이다.

 

그가 유명세를 탄 건 이한열 열사 영결식이었다.

이한열 노제에서 사용되었던 걸개그림 '그대 뜬 눈으로'가 주목받은 것이다.

가로 7m 세로 2.3m의 대작인데, 당시 그림을 앞세우고 종로통을 행진하던 장면은

내가 기록해 둔 ‘87민주항쟁’ 사진첩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의 작업도 변해갔다.

'부랑'(1988) 연작에 이어 '분홍'(1999) 연작을 발표했다.

자유를 억압하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 인간의 조건을 성찰한 작품이었다.

 

술 때문에 한 때 방황하기도 했으나, 90년대 말부터 여행을 시작하며 민간신앙에 관심을 가졌다.

그게 작업과 연결되어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고대 시공간을 넘나들게 된 것이다.

2003년부터 발표한 '조선 상고사 메모' 연작은 그야말로 역사를 증거 하는 메모였다.

대량 생산된 이미지 위에 유화 물감으로 웅녀와 해모수나 '서동요'의 주인공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50대인 2005년에는 '회색 청춘' 연작도 발표했다.

동 시대 청춘들이 도시를 방황하는 모습으로,

짙은 회색빛이 쓸쓸한 분위기를 정점으로 끌어 올렸다.

 

이번에 보여 준 그의 그림에는 동서양 미술사의 수많은 이야기가 두루 뒤 섞였다.

경계가 해체된 이미지의 조합과 변주, 그리고 생성은 최민화 특유의 어프러치다.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력으로 베일에 싸인 한국 고대사의 주인공들을 그려냈다.

 

그의 그림에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환웅이 웅녀에게 마늘과 쑥을 건네는 단군 신화의 장면은

이브가 사과를 먹자며 아담을 유혹하는 성서의 한 장면과 중첩된다.

어떤 형상은 선화 공주와 서동의 모습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공무도하가'의 주인공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화가 전시장 1층을 메웠다.

 

2층에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사가 펼쳐진다.

천제 환웅이 신시에 내려온 장면,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는 순간,

해모수 전투와 주몽 등의 신화적 장면들이 전시장을 메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인왕산을 배경으로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 속의 인물이 한 화면에 놓이는가 하면,

달빛 아래 밀애를 나누는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회화 속 근육질의 남성상과 민화를 장식한 아름다운 길상문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특정 색채를 사용한 것과 달리 이번 연작에서 보여 준 노란 빛은

우리의 전통 오방색과 힌두 문화의 색감을 혼합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엷고 섬세한 세필로 처리해, 고대의 시공간이 살아나는 분위기다.

 

최민화 '가섭원 가는 길'. 2020, 캔버스에 유채, 91x116.8cm

 

최민화 작가는 신과 인간의 소통을 회화적으로 풀어냈다.

역사 속 문명을 리얼리즘적 시각으로 재구성해낸 신화였다.

 

최민화 '달달박박' 2020, 캔버스에 유채, 116,8 x 91cm

 

 “역사화, 인물화 등의 정통 구상회화의 잠재력을 부각하려는 첫 시도”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숨은 그림찾기'처럼 신화의 인물을 발견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1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최민화, 웅녀, 2020_캔버스에 유채_116.8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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