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막사발 미출관' 관장인 도예가 김용문씨



세계막사발 미술관터키로 옮겨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완주군의 폐관 통보로 오갈 때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지 한 참인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터키 하제테페대학교 측에서 옮겨 가겠다고 한단다.

 

세계막사발미술관은 폐역이 된 삼례역사를 보수하여 2011년 개관되었다.

괴산에 있던 세계막사발미술관을 어렵사리 옮겨 운영해 왔는데,

완주군에서 느닷없는 폐관을 결정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 정형적인 관료의 횡포다.

 

지자체에서 예술가들을 이용해 먹고, 내 팽개치는 짓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청도군에서 세운 철가방극장과 화천군의 감성테마문학공원이 대표적이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도록 한 전유성씨는 쫓겨났고, 이외수씨는 쫓겨날 처지에 있다.

이건 해도 너무하다. 예술가들이 무슨 공무원들의 밥인가?

 

도예가 김용문씨는 오로지 막사발을 고집해 온 가히 전설적인 장인이다.

나는 막사발이다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반 평생을 막사발에 전념해 왔기에,

김용문 하면 막사발이 떠오르고, 막사발 하면 상투를 튼 김용문이 연상될 정도다.

 

그는 홍대미대 공예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통 옹기에 빠져 다양한 옹기 작품을 탄생시켰고, 막사발에 승부를 건지는 30여년이 되었다,

 

경기도 오산, 충청도 괴산, 전라도 삼례 등지로 세계 막사발 미술관을 옮겨가며

세계막사발축제36년 동안 이끌어 왔다.

또한 세계막사발심포지엄 19, 국내외의 개인전도 45회나 개최했다.

지금은 터키 국립 하제테페대학교 도예과 초빙교수로 터키와 삼례를 오간지 9년째다.

 

그의 예술세계는 막사발에 한정되지 않고, 퍼포먼스와 글과 그림까지 전방위 작가다.

그러한 다양한 작업들도 막사발을 위한 부대작업에 불과했다.

그동안 막사발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중국 산동성과 터키 앙카라를 떠돌며 막사발 세계화에 온 힘을 쏟아왔다.

그런 노력의 성과를 어떻게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최고의 찻 사발로 떠받들어 진지가 400여년이 넘었다.

옛날 한국적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달항아리가 관요에서 만들어진 반면

막사발은 지방의 민간가마에서 구워졌기에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대개 막사발을 천한 그릇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데,

국어사전조차 막사발을 품질이 나쁜 그릇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그러한 서러움을 무릅쓰며 투박한 질감의 우리 막사발에 목을 매고 살았는데,

갑작스런 폐관 통보에 어찌할 바 몰라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터키 하제테페대학교 측에서 세계막사발박물관을 건립하여 옮겨 가겠다지만,

김용문씨의 생각은 달랐다. 막사발 본가는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사발이 우리민족의 유산이지 터키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세계막사발미술관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자체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맥을 이을 해결 방안은 없는지, 많은 분들의 관심과 조언을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가 마치 통한의 눈물같았다.

 

박인식, 이세희씨와 노마드에서로마네꽁티로 옮겨가며 퍼 마셨다.

더 이상 인사동에 미련을 버리고 싶었.


내일 있을 김금화만신의 서해안풍어제에서 한 번 빌어 볼까보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 부근에서 '갤러리카페 더'를 운영했던 화가 문 숙씨가 변해가는 인사동에 넌덜머리를 내고 퇴촌으로 떠 난지 한참 되었다.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계곡 옆에 새로운 갤러리카페를 만들었는데, 개관을 기념하여 가수 이동원씨의 콘서트를 연다는 연락을 받아

아내와 함께 찾아 나섰다.

 

오후7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고 하였으나 차가 밀려 한 시간이나 늦어버렸다.

누구의 노래인지 모르지만 재즈음악이 휘 감은 ‘히든 벨리’의 빨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히든 밸리' 주변을 감싼 천막 안 공연장에는 대략 한 200여명의 관객들이 몰려 있었다.

그 골짜기에 그 만한 사람들을 모우는 것이 간단치 않은 일이기에 참 용타싶었다.

‘히든벨리’ 오픈 기념 콘서트라 이름붙인 그 날의 음악회는

그 곳에 자신의 상설무대를 차린 가수 이동원씨가 친구 전유성씨와 후배가수들을 불러 마련한 자리였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된 콘서트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김현식의 노래 ‘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가사처럼 감미로운 노래 소리에 실려 어린 아이처럼

파란 추억의 바다로 달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구수한 입담으로 끌어가는 전유성씨의 잡담 쇼가 좌중을 웃음판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동원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 였다.

허스키한 성량의 이동원씨 만이 낼 수 있는 절창이었다.

그 외 박강수, 유미경씨도 여름밤을 흐느적거리게 열창했지만, 한 때 ‘하사와 병장’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경우씨가 나와 목화밭을 비롯한 여러 곡을 불러 잊혀져가는 추억을 끌어냈다.

 

정해진 공연이 끝난 후 손님들이 꾸며가는 아마추어 무대도 재밌었다.

노래방이 보급된 이후 전 국민의 가수화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기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전 국민이 사진작가가 되듯이,

이젠 스스로의 개성으로 뭉쳐 자신만의 어법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요정의 집처럼 좁게 들어선 빨간 건물 ‘히든벨리’주변에는 은행나무들이 길게 늘어 서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빨간 건물을 뒤덮을 즈음이면 정말 장관일 것 같았다.

 

‘히든 벨리’ 2층에 개관한 ‘갤러리 문’에서는 서양화가 황학만씨의 개인전이 8월16일까지 열린다.

 

사진,글 / 조문호

 

 

 

 

 

 

 

 

 

 

 

 

 

 

 

 

 

 

 

 

 

 

 

 

 

 

 

 

 

 

 

 

 

 

 

 

 

 

 

 

 

 

 

 

 

 

 

 

 

경북 고령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 온 조선백자 장인 백영규씨의 달항아리 ‘조선달 月’전이,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3층에서 열린다.

방송인 전유성씨가 기획하여 추진한 '조선달'전에 소설가 박인식씨가 나섰는데, 전시도록의 발문 내용도 좋았지만 표제로 쓴 “조선달 月”이란 글이 너무 멋졌다. 돈 안 되는 소설가보다는 서예가로 나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5일 오후6시에 시작된 개막식에는 작가 백영규씨 내외를 비롯하여 전유성, 박인식, 무세중, 무나미, 송상욱, 서수남, 신영수, 김호근, 심철종, 최일순, 권순철, 이명희, 김정남, 노광래, 편근희, 이상철, 정영신, 인오스님 등 많은 분들이 전시를 축하하며, 달항아리의 멋에 흠뻑 빠졌다.  풍만한 몸체를 가진 달항아리 절정의 원숙미에 취해....

개막행사의 하나로 행위예술가 심철종씨의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멀쩡한 달항아리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것이었다.
조그만 사발 하나 값도 만만찮다는데, 그 돈의 가치를 깨부수는 통쾌함을 다 함께 맛 보게 한 것이다.
심철종씨에 따라 전유성씨도 항아리를 깼으나, 백영규씨가 깨는 소리에 비교될 수가 없었다.
둔탁한 소리가 난 두 분에 비해, 소리의 파장이 훨씬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항아리를 깨트려 온 백영규 장인의 관록을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인사동 '유목민'에서 '로마네꽁띠'로 옮겨 간 전시 뒤풀이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사진,글 / 조문호

 

 

 

 

 

 

 

 

 

 

 

 

 

 

 

 

 

 

 

 

 

 

 

 

 

 

 

 

 

 

 

 

 




안승일씨의 ‘불멸 또는 황홀’ 백두산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24일 오후6시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렸다.

전시장은 작품 감상하러 온 축하객들과 내빈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인식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대부분의 시간을 내빈들의 인사와 축사에 할애해야 했다.
시인 민 영선생을 비롯하여 송 현 시인, 산악연맹 이인정회장, 원로언론인 임재경선생, 김종규이사장,

행위예술가 무세중씨, 서양화가 김용태씨,‘아라아트’ 김명성대표, 방송인 전유성씨, 김영환의원,

박원순시장의 축사가 이어진 후 안승일씨의 인사말이 있었다.

 

"남들은 다들 고생했다고들 하지만 자신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학교종이 땡땡” 교장 했던 인생개그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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