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핫팩


얼마 전 인터뷰 촬영이 있었습니다.

‘팔십 명도 아닌 여덟 명 일정 맞추는 게 뭔 대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처럼 입주 작가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 달에 채 하루나 날까 싶은 귀한 시간이었지요.


늦가을로 접어들어 실내에도 제법 냉기가 서렸건만, 촬영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온기와 웃음이 넘쳤습니다.

누군가 최신형 핸드폰을 자랑스레 매만지자,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며 맞은편 작가가 실토합니다

“얘한테 넘어가서 나도 바꿨어요.” 그러자 신을 냅니다.

“선생님도 폰 바꾸셔야겠네! 공모전에 쓸 사진도 찍고, 아이디어도 바로 메모하고 얼마나 좋아~”


어제 같이 밥 먹은 작가, 서로 열흘 만에 본 작가도 있을 텐데 서로 모르는 근황도, 장난에 농담에 거리낌도 없습니다.

단독 인터뷰를 앞두고 심호흡에 여념이 없는 어느 작가. 떼 지어 문틈으로 엿보던 다른 작가들이 키득거립니다.

“진지 너무 잡수셨네.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생업과 작업, 서로 다른 일상으로 바삐 엇갈리는 와중에도

오며 가며 삼삼오오 다져 온 친분과 우정이 또렷이 느껴집니다.


입주 작가 생활에 친분이 늘 긍정적일 순 없겠지요.

파벌이 생겨 ‘친목질’을 부를 수도, 특정 작가 간 갈등의 빌미가 되어 오히려 작업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때 “웃고 떠들다가도, 언뜻언뜻 서로의 작업을 보면 자극받곤 한다.”


“먼저 와서 나중에 일어나는 누군가를 보면, 전시 소식에 들뜬 모습을 볼 때면,

‘열작’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늘 다짐한다.”라며 주억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마도 이게 바로 시너지이며

입주 작가 생활을 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약력 한 줄 늘어나는 것 말고도 말이지요.


그리고 이번 《2020 CRE8TIVE REPORT》는 여덟 명이 그 시너지를 여러분께 자랑하는 자리입니다.

불안정한 위치, 불분명한 방향, 불확실한 태도…거대 사회 속 왜소한 현대인 대부분이 느끼는 자신일 것입니다.


김선영 작가는 이런 스스로를 외면하는 대신 부릅뜨고 마주보려 애씁니다.

알 수 없는 동네, 쓰임을 잃고 널브러진 무언가, 흔들리고 움츠러든 풍경들은 생김새가 단지 사람이 아닐 뿐

일종의 자화상입니다.


어떤 작가나 작업은 종종, ‘내면을 담았다’는 둥, 딱히 와닿지 않는 설명으로 외면받거나 오해를 사곤 합니다.

 ‘나를 닮은 녀석’이라 보면 쉽습니다. 나약한 내 꼴과 속과 겁을 꿋꿋하게 응시하는 작업이지요.

작품을, 같은 박자로 닳고 늙고 성숙하는 분신으로 애틋하게 바라보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김선영의 ‘성숙’은, 불안을 깨고 밟고 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감싸 안아 원동력으로 키울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세상 생김새가 모두 그럴싸한 건 아닙니다.

사랑은 불멸 아닌 필멸이고, 봄꽃 가을꽃은 서로 만날 겨를이 없으며, 달의 뒤통수를 볼 수도 없습니다.


김수연 작가는 세상을 반죽해 입맛대로 다시 빚어냅니다.

사랑은 다시 다듬어 더욱 굳건히 하고, 개나리가 코스모스를 만나며,

보름달 같은 대가들의 숨은 그늘을 전면에 꺼냅니다.


‘대가’라 하면 으레 유명세나 웅장한 작업이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색색의 조각들이 기하학적으로 공중에 사열한, 칼더의 ‘모빌’같은 것들 말입니다.

누구나 아는 그의 작업 말고, 작업실은 어떤 모양새일까요?

어쩌면 빨강 검정 노랑이 공중을 둥둥 떠다니고, 원색을 사냥해 오와 열이 잘 맞게끔 꼬치에 끼워 익히고,

잘 익은 녀석을 다듬어 ‘모빌’로 출고했을는지도 모릅니다.

달의 뒷면엔 절구에 걸터앉은 토끼들이 ‘담배 타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요.


김천수 작가는 사진을 전공한 ‘정규 사진가’입니다.

그리고 그의 진짜 관심은, 반듯하고 진지한 정통보단 그 주변의 ‘삐침머리’나 ‘허점’을 기웃거립니다.

테러 현장 디지털 사진의 데이터 일부를 ‘테러하여’ 기괴하게 변형합니다.

카메라 센서 오류로 흔들린 사진을 바닥에 깔고,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재개발 현장에서 쓰는

먹줄을 가져와 먹선을 칩니다.


무척 낡고 바랜 스키장 사진, 색이 날아가고 곳곳이 박락된 표면을 계속 바라보면 문득 불꽃놀이라도 하는

광경처럼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최근에 찍은 사진입니다. 폐 건물에 덩그러니 남은 ‘사진을 사진 찍은’ 것입니다.

낚였다 헛웃음을 칠 게 아니라, 데이터를 마치 재료나 오브제처럼 사용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유린하며 유희하는 그의 엉뚱함과 과감함에 주목해 봅시다.


각자가 사는 서로 다른 세상, 땅을 디딘 사람 수만큼의 세상을 콜라주한 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닐까 합니다.

이질적인 것들, 서로 다른 눈높이와 원근, 모순과 갈등이 마치 원래 한 덩어리의 장면인 것처럼 천연덕스레 얽혀 있지요.


염지희 작가는 서로 다른 시공의 사람과 풍경, 시집을 읽으며 받은 영감 조각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직조합니다.

시선도 스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사는 인물들, 소실점을 소실하며 뒤섞여 버리는 풍경을 엮었음에도

의외로 화폭은 자연스럽습니다.

적당히 성글게 짠 화면 곳곳 틈새를, 감상자 저마다의 경험과 상상으로 채우며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별 기억 조각’과 ‘기억 덩어리’는 좀 다릅니다.


임지민 작가의 작업은 일종의 ‘기억 타래 memory collage’입니다.

실타래와 달리 기억 타래는 알 수 없는 논리-그렇다고 또 ‘무논리’는 아닌-로 뒤얽혀 있습니다.

기억 조각들은 분명 내 것임에도 때론 낯설고 새삼스럽습니다.

한 몸이었던 기억이 파편화하고, 다른 기억에 치이고 짓눌리며,

정처 없이 떠돌다 색과 맛이 변하고, 심지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건만 다른 기억에 가리었습니다.

굴절되어 전혀 새롭게 현재로 소환되기도 합니다.


‘손’은 기본적으로 강한 지시성 의도성을 띠는 대상인데,

특히 그의 작업 전반에서 인물과 정황을 제시 혹은 암시하는 효과적 장치로 활약합니다.

상황을 그대로 담거나, 처지 혹은 감정을 우화적으로 풀어내는 등 기억 못지않게 변화무쌍 다채로운 표현도 돋보입니다.

수십수백 년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나 웅장한 산세는 경이롭습니다.

전형적인 멋이죠. 반면 정재원 작가는 자연의 이면적인 매력을 찾아냅니다.


인적이 끊긴 재건축 현장은 을씨년스럽습니다. 주차 문제로 옥신각신하던 주민,

자전거 타다 넘어진 아이의 울음으로 번잡했던 시절이 불과 수 년 전일 텐데,

적막과 바삭한 낙엽 울음, 퀴퀴한 바람이 대신 들어찬 그곳의 첫인상은 사뭇 쓸쓸하고 공허합니다.

한편 미처 함께 이주하지 못하고 유기된 원래 주인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잎새는 더욱 짙어지고 수풀 사이로 이름 모를 온갖 식물들이 기다렸다는 듯 티격태격 세를 겨루기 시작합니다.

활기가 떠난 곳에 싹튼, 또 다른 활기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각축일 수도, 인간 사회의 이해관계 틈새에서 건진 자연의 어부지리일 수도 있지만

이 ‘역설적 황홀’은 여전히 그곳을 지킵니다.


그림을 보다 보면 가끔은, 장면을 열어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정진 작가의 그림은 곳곳을 열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트리 빵처럼 물리적 그림 층을 지녔지요.

뚫린 틈새로 엿보이는 또 다른 레이어는 보다 과감한 재료와 형식 변화도 너끈히 어루만지며

마치 한 화면의 확장처럼 자연스레 소화합니다.


틈새 너머 무한한 다른 시공을 암시하며 내용은 무궁무진 다방향으로 전개합니다.

만화에서 본 듯한 효과선을 회화 연출에 적극 활용하고, 동서양의 캐릭터나 설화를 거리낌 없이 호출합니다.

한정된 면적의 캔버스는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의미 밀도를 블랙홀처럼 계속 높입니다.

우주의 끝을 찾듯 회화의 의미, 역할, 가능성의 끝을 구도하는, ‘다채널 회화 실험실’이라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구석, 그늘, 언저리, 이면, 부작용, 모호함…정철규 작가의 눈길은 초점에서 소외된 것들을 어루만집니다.

‘사랑’ 하면 따뜻하고 황홀한 이미지부터 떠오르지 엇나간 혹은 과도한 ‘사랑이 부르는 갖은 부작용’이

주인공을 맡는 건 드물지요. 사랑은 때때로 상위 구조나 권력의 변호인이나 전위대, 하수인 노릇을 합니다.


“널 생각해서,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야!”

선의를 가장한 강요, 따뜻한 윽박지름에 도리 없이 아스러지는 연약한 존재들이 식물이나 돌멩이 등

작은 물체로 무대 중앙에 섭니다.

잊히고 버려진 것들은 트로피로 환생해, 오히려 이젠 ‘모시고 기릴’ 대상이 됩니다.

분명함을 강요받던 자신은 스스로 어중간하고 모호한 색상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미묘한 사람답게 감 색도 배 색도 아닌 중간색에 당당히 머뭅니다.


가끔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옵니다. 작업만 보면 이번 기수 작가들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다릅니다.

그러면서 또 어느 때보다 서로 잘 살려줍니다. 일종의 ‘인문학적 색채 대비 효과’같은 걸까요?

부디 이 화기애애의 불씨엔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로 고이 모셔다 미술계에 활기를 주는 큰 불씨,

9기 여덟 입주 작가 모두 서로 다른 색상과 모양새의 미술계 핫팩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영기 (OCI미술관 선임큐레이터)




기해년 간다고 마시고 경자년 온다고 마신 연말 술로 몸이 말이 아니다.
동자동과 녹번동을 오가며 이부자리 감고 살았던 셈이다.
오래된 년식이라 몸이 삭아 철철하는데도, 겁 없이 마신 벌이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해가 바뀜에 따른 스스로의 자책이었다.
안 좋은 건 모조리 씹어 돌렸으니, 사람을 많이 잃었더라.
잘 못된 것을 고치고 싶은 말이었지만,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이다.
상대의 마음만 다친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다쳤다.
그래서 올해 다짐한 것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보는 습관이다.



지난 토요일에 나선 인사동 외출은 일주일 만이었다.
점등식 한 태화관 터의 ‘3,1독립선언광장’을 재확인할 일이 있어서다. 
나간 김에 인사동을 다시 살펴 볼 속샘도 있었다.

포기했던 인사동이지만, 부정적 시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보고 싶었다.
가는 세월을 누가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안국역 4번출구로 나가니, 한 젊은이가 큰 소리로 구걸했다.
“선생님! 천원만 주세요~. 누님! 천원만 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주지 않았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고 너무 상습적인 냄새를 풍겨서다.
이젠 구걸을 해도 연기를 잘해야 얻어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 거리는 활기찼으나, 골목은 한산했다.
‘인사마루‘의 신나는 풍물소리에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연세 듬직한 분이 드나 들었던 ‘통인가게’에 젊은이들 행열이 이어지는 걸 보니,

이 곳도 서서히 세대교체가 되는 것 같았다.




요즘은 인사동 나와도 전시장에 들리지 않으니 갈 곳이 없다.
반가운 인사동 사람을 만나거나, 전시장에서 작품 감상할 일이 아니라면 인사동이 무슨 소용이랴?




통기타나 마술로 행인들의 관심을 끄는 버스커도 다들 열심히 놀며 살아가더라.
태화관 터 골목어귀에 있는 헌책방이 그나마 옛날 인사동 냄새를 풍겼다.




지난 년 말  ‘3,1독립선언광장’ 점등식에 갔으나, 밤이라 자세히 보지 못해 다시 찾은 것이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비스듬한 광장 바닥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광장 바닥을 걸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광화문광장’으로 행선지를 바꾸려 ‘부산식당’있는 '인사동11길'로 접어드니,

한 동안 부푼 기대와 안타까움을 차례로 안겨 준 ‘아라아트’가 눈에 들어왔다.
김명성씨가 전관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공 들인 건물인데, 결국 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 넓은 전시관에 ‘미래의 꿈, 게임에 담다’는 한 가지 전시만 열리고 있었다.
잠시 지난 날의 회한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반가운 사람이 나타났다.
인사동과 사연이 깊은 사진가 김수길씨 였다.




술 한 잔 하자며 유혹했건만, 그 날은 술이 무서웠다.
'광화문광장' 갈 일로 아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사동을 돌아 다닌 두 시간 동안 아는 분이라고는 김수길씨 딱 한 사람 만난 것이다.




조계사 앞 길에서도 아는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치매환자다.
이제부터 인사동의 오래된 추억은 물론, 악연도 잊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뒤늦은 소식이다.

지난 12월 23일 서울시가 인사동 태화관 터에 ‘3․1 독립선언광장’을 조성하여 기념하는 조명 점등식’을 가졌다.

'3·1독립선언광장'에는 백두산과 한라산, 하얼빈과 카자흐스탄 등 국내외 곳곳에서 운반해온

자연석과 소리 음향에 반응해 여러 가지 패턴을 연출하는 330개의 조명으로 조성됐다.





소리에 반응하는 조명은 ‘꽃망울이 터지고 풀이 자라는 봄’, ‘빗방울이 광장에 떨어져 퍼지는 여름’,

‘바람이 불고 낙엽이 쓸려 날아가는 가을’,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이 조명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번 점등식 행사에는 퍼포먼스 그룹 오'의 뮤지컬 '영웅' 공연 퍼포먼스와 비올리스트 김남중 엔클래식 앙상블 연주도 있었다.




태화관은 본래 중종이 순화공주에게 지어 준 순화궁 자리인데, 일제강점기의 매국노 이완용의 별장으로 사용했다,

이완용이 살다 팔아넘긴 자리에 태화관이라는 여관건물이 들어섰고, 1917년에는 유명한 요정 명월관의 별관이 되었다.

왕실 사당건물인 순화궁이 매국노 별장에서 요정으로 전락했던 것도 별나지만,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것도 특별하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길선주, 김병조, 유여대, 정춘수를 제외한 29명이 태화관에 집결하여

오후 2시부터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는 모임을 가졌는데,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영향으로

태화관이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요정 태화관은 다음해인 1920년 기독교 남감리회에 매각되어, 1937년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태화여자관’을 신축했다.

그 후 1980년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옛 건물이 다시 철거되고, 12층짜리 태화빌딩이 들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날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천도교,·기독교,·불교 등 3대 종교계가 뜻을 모아

100년 전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으며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도 가졌다.

기념비에는 '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도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은 3.1운동은 우리 역사의 빛입니다.

근대 도시는 빛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도시는 캔버스입니다.

오늘은 3․1독립선언광장을 캔버스로 만들어 시민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날입니다”라고 말했다.

조문호















지난 30일 오후6시부터 ‘툇마루’에서 ‘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의 송년회가 있었다.
그 날 여러 곳 모임이 겹쳐 일찍부터 술이 취해 좀 늦어버렸다.
‘툇마루’에는 민건식 회장님을 비롯하여 김완규, 강윤구, 김근중, 박일환, 선우영,
송재엽, 전병태, 조용해, 황성준씨 등 열 명이 나왔더라.




황성준씨는 ‘통인화랑’에서 열렸던 전람회를 끝내고 왔다고 했다.
통인의 전시메일을 받아 일찍부터 알고 있었으나,
전시장 다니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약속에, 보고 싶어도 지나쳐 버린 것이다.
작품도 궁금했으나, 당사자를 만나니 송구스럽기 까지 했다.




‘통인’ 김완규회장으로부터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통인화랑’이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근·현대 서울의 발자취가 담긴 유무형 문화유산 16개를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인화랑’이란다.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통인가게’는 4년만 지나면 100주년이고,
같은 건물에 있는 통인화랑은 1975년 개관했다고 한다
일찍부터 미술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하여 선정되었단다.
급속하게 바뀌는 인사동 현실에서 ‘통인’이라도 살아남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가천 예술대학 회화조소 교수로 있는 김근중씨는 정년이 되었다는 소식도 주었다.
시원섭섭한 일이지만, 이제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된장비빔밥을 안주삼아 급하게 마시고는 일어나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원로변호사이신 민회장께서 나에게 물었다.
“자네 좌빨이라며?”
오기 전 내 이야기가 나온 모양 인데, 미처 대답을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드려야겠다.




“예! 맞습니다.

난, 좌쪽 젓만 빠는 좌빨인데, 우측은 섞어 냄새가 나서 못 빱니다 
회장님 같은 분은 보꼴이라 하지요.
말 나온 김에 어디 까놓고 한 번 이야기 해보입시더.


솔직히 이승만을 비롯하여 역대 보수정권의 대통령이란 자들 꼬라지 한 번 보세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하나같이
인간 같은 놈이 어디 있습니까? 다 독재자 아니면 살인마, 도둑놈들입니다.
천벌 받아 총 맞아 뒈졌거나, 줄줄이 교도소 들락거린 놈들 아닙니까?


긴 세월 죄 없는 국민은 또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
보도연맹이나 여순, 제주4,3항쟁, 광주항쟁에 이르기 까지 숱한 양민을 살육한 것을 회장님께선 잊으셨습니까?
난 친일파 쓰레기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며 빨갱이로 몰아 죽인 걸 생각하면, 너무 분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보수정권에서 빌어먹은 쪽바리와 양놈들은 어떻습니까?

죽어 마땅한 짓을 한 쪽바리들은 반성은 커녕 무역보복으로 맞서고,
양놈들은 우리나라를 생화학무기 실험장으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방위비분담금으로 바가지 씌우려는, 날 강도짓을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회장님께서 영남출신이지만, 최고 에리트 교육을 받은 분이
사리 분별보다 지역감정에 치우치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경상도 놈이라 고향친구는 물론 형제간에도 정치문제만 나오면 열 받아.
정치 정자도 꺼내지 않습니다.

제발 냉정하게 지난한 역사를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20여년간 선생님을 큰 형님처럼 모셔왔는데, 정치적 견해로 심려를 끼친 점 죄송합니다.
새해에는 정치적 잣대도 몸도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조문호 올림

















정영신사진


살아 생선 강민선생께서 주도하신 인사동 오찬 모임이 오랜만에 다시 열렸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부터 서서히 잊혀져갔는데,
강민선생은 차지하고라도 김승환, 방동규선생 등 다른 분마저 뵐 수 없었다.
언젠가 자리 한 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서정란씨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이다.



조문호샘 올해 가기 전에 송년회 한 번 해요. 강민 선생님과 친분 있는 분들이랑요

그래서 "얼씨구나" 만들어진 자리가 지난 30일 정오에 뭉친 나주곰탕오찬모임이다.

인사동 툇마루일층의 나주곰탕은 강민선생 단골이기도 했지만,

탕 속에 고기가 푸짐해 술안주로 안성마춤인 밥집이다.


 


약속장소는 손님이 꽉 차, 다들 그 옆에 있는 찻집에 앉았는데,

방동규, 김승환 선생님을 비롯하여 박희연, 서정란, 이명옥,

이은정, 전태수씨 등 여러 분들이 자리 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보면 반갑고, 앉으면 빨고 싶은 분들이 아니던가?

강민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 말인가?

서정란씨 이야기가 오늘 점심은 돌아가신 강민선생님이 산다는 것이다.

모임이 정해지고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았는데, 강민선생 아드님이었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자주 만났던 분들께 인사동에서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이심전심이었다.

이건 분명 강민선생님께서 저승에서 아들에게 지령내린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기국서씨가 '나주곰탕'으로 급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가서 찻집으로 데려 왔는데, 차라도 한 잔 하며 여유롭게 즐기라는 계시였다.

다들 연말이라 모이는 곳이 많은 모양인데, 뒤늦게 이행자시인도 나타났다. 

뚜꺼비 같은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인증 샷만 찍고 도망치셨다.




 나주곰탕’에서 자리 비었다는 전갈에 다들 밥집으로 옮겼다.

소주 한 잔하며 탕 그릇에서 건져 놓은 수육을 보니, 돌아가신 강민선생님이 생각났다.

술 안주로 건져놓은 수육을 매번 슬며시 내 접시로 옮겼는데, 마치 죽은 울 엄마 같았다.

불의에는 칼날처럼 매서웠던 강민선생님의 그 자상한 모습이 떠오르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눈물이 탕 그릇에 떨어지는 거야 괜찮으나, 누가 볼까 쪽팔려 미치겠더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 지,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요량도 못한 채 취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밀정원으로 차 마시러 갔다.

, 까발리는 걸 좋아하는데, 다들 비밀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비밀정원에 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한 탕 뛰고 온 김명성씨가 나타났.

기국서씨는 술이 부족했던지, 보드카처럼 생긴 독주 한 병을 사 왔다.

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두 잔만 마셨는데, 그 술을 혼자 홀짝 홀짝 다 마셨다.


 

오늘은 빠질라고 작정하고 왔어요’라고 했던 귀엣말이 생각났다.

기상천외의 퍼포먼스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자리에서 일어 나 남녀가 약속이나 한 듯 갈라졌다.

방배추선생께서 기국서, 김명성씨등 꼬봉들을 거느리고 유목민을 습격한 것이다

가보니 송일봉씨가 입구에서 뭔가를 정탐하는 것 같았고,

안쪽에는 시인 정동용, 기타리스트 김광석, 발렌티노김도 보였다.


 

여기 저기 다니며 사진 찍을 일도 많은데, 방배추선생 구라 듣느라 퍼져버린 것이다.

방동규선생이 누구더냐?

백기완, 황석영씨와 더불어 조선의 삼대구라로 꼽히는 분이 아니던가.

방배추선생은조선의 주먹등 최고로 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노동판에 일하러 가고, 체육관에 다니며 체력 관리하는 분이다.

, 한마디로 선생님을 義人이라고 생각한다. 옳지 못한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태극기부대나 가셔야 할 분이 촛불집회마다 쫒아 다니신다.

얼마 전 김정헌씨 작품 보러 간 영종미술관에서 그림 보며 내려오다 굴러 떨어져

엠블란스에 실려 갔다는 소식도 뒤늦게 들었다.


 

그 날 하신 말씀도 놀랄 노자다.

여지 것 청년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노인이 된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살아온 그 소설 같은 실화를 기국서씨 더러 극화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그 날 이야기만도 밤 샐 것 같아 말머리를 돌려야겠다.


 

기국서씨는 귀가 어두워 여기 저기 귀 기울이는 꼴을 보더니, 날 더러 탐색가라 했다.

내 귀에는 색을 탐하는 자로 들렸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두 번째 툇마루에서 열릴 인사모시간이 늦어버렸다.

정동용씨 더러 있으라 해놓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달려갔는데,

가서 된장비빔밥에 술말아 또 한 잔 걸친 것이다.

반가운 분들과 노닥거리니, 시간은 잘도 갔다.


 

작별 인사하기가 무섭게 유목민으로 달려가니, 이미 술꾼이 바뀌었더라.

방동규선생을 비롯한 잔당은 물론 정동용, 발렌티노김, 김광석씨도 다 사라져버렸다.

새로 등장한 이인섭선생을 비롯하여 사진하는 이정환, 성유나씨가 있었다.

금주 한지가 두 달이 넘었다는 이정환씨는 소주잔에 음료수를 따라 마셨다.

그 술 좋아하는 사람이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그나저나 긴장이 풀려 그런지, 술이 슬슬 올랐다.

쪽방 계단 오를 일이 겁나 줄행랑쳤는데, 인사동 밤거리는 축축했다.

어떤 미친 할매라도 납치되고 싶었다.



쇼윈도를 올려다보니, 처녀귀신이 잡아먹을 듯 내려다보았다.

네 이놈!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탐색하냐?

강민선생께 일러바쳐, 저승 오면 곤장이 백대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사진






































지난 28일은 인사동 가는 길을 소녀상이 있는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잡았다.
나올 때 치를 떨며 보았던 위안부 사진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도 천막 안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사진은 위안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주변을 보지 못하도록 트럭에 장막을 쳤다.
잠시 멈춘 트럭 주변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여성은, 일본놈 완장인 것 같았고,
트럭 안에서는 한 여인이 뭔가 적은 쪽지를 전달하고 싶어 안달했는데,
그 안타까운 마음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이런 걸 보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 놈들은 사람새끼가 아니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과는 상종을 말아야 하니,
소녀상 철거가 아니라, 일본대사관을 철거해야 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북인사 마당으로 옮기니, 인사동 상징 조형물이 좆처럼 서 있었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다른 때보다 사람도 적은데다 거리도 낯설었다.
큰 길가의 상점도 바뀐 곳이 많지만, 골목 안 술집 간판도 많이 달라졌다.
그중 아쉬운 건, 추억이 오롯이 남은 ‘인사동 사람들’이 곰탕집으로 바뀌었더라.




가게가 바뀌고 술집이 바뀌는 건, 주인이 바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사동 풍류가 사라지고, 사람들 마음이 바뀌는 게 더 서글펐다.
온 종일 거리를 헤매었으나,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고,
가고 싶은 찻집이나 술집도 없었다. 마치 무인도에 홀로 선 것처럼...




밤에는 누군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백상사우나’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백상사우나에 가도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었지만,
거기에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탕 안에서 가만히 생각하니, 헛 웃음만 나왔다.
대관절 무엇을 찾는 것인가? 누굴 기다린단 말인가?




실연한 사람처럼 밤거리를 휘적거리다, 지하철을 탔다.
마침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형 뭐해? 저녁이나 같이 먹지” 김명성씨 전화였다.
인사동에서 녹번동으로 발길을 옮겼드니, 조해인씨와 김광만씨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유산슬 요리시켜 고량주 한 잔 했다.
독립운동사를 훤히 꿰고 있는 김광만씨와 김명성씨가 뭉쳐
큰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 우연히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니의 편지도 읽었다.
또박 또박 써 내려간 피눈물 나는 사연에 가슴이 미어졌다.




잊으려 해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어디 인사동뿐이더냐?
아! 졸라 슬픈 하루였다.




30일 정오에는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방배추선생과 기국서씨를 만나고,
그 뒤 인사동을 돌아다니다, 저녁 여섯시에는 '툇마루'에서 ‘통인’ 인사모 팀과 술 마시고,
일곱시가 넘으면 ‘유목민’에서 놀다, 인사동을 마무리하련다.




온 종일 인사동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만 찍을 작정이니,
시간 있으신 인사동 사람들은 모두 나와 함께 추억합시다.
약장사 말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사동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년 말이 다가오니 사방팔방 술 마실 일 뿐이다.
문제는 몸이 받쳐주지 못하니 탈이다.




지난 19일은 인사동 ‘유목민에서 망년회가 있었다.
연극연출가 기국서씨 시상식에서 뒤풀이도 마다하고 달려갔더니‘
일찍부터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시인 조준영씨, 화가 김 구, 장경호, 전강호, 조경석씨,
미술평론가 유근오, 최석태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연출가 강경석씨
사진가 정영신씨, 중문학자 임계제씨 문화기획가 서인형씨,
안쪽에는 불화가 이인섭씨와 사진가 이유홍씨도 있었다
그 외에도 안원규, 전활철, 김대웅, 노광래씨 등 많은 분을 만났지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분도 많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 만났으니, 기분 좋아 술이 술술 넘어갔다.
기분 좋게 즐긴 건 좋았으나, 그 다음 날 죽어났다.
술자리에서 실수도 많이 한 것 같은데, 필름이 끊겨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자에 달라 붙은 김치조각이나, 튀어 나온 정영신씨 입을 보니 알만하다.


정영신사진


귀가 간지러운 걸 보니, 누군가 욕을 하는 모양이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으니 할 말도 없다.
차라리 술 마시다 뒈져 버렸으면 이런 낭패는 없을텐데...



정영신사진


주머니를 뒤져보니, 김구씨 전시 엽서가 한 장 나왔다.

내년 1월3일부터 1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화인'에서 열린단다.

'갤러리 화인'은 옛날 '평화 만들기'자리에 있고,

개막식은 1월3일 오후5시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오늘은 '브레송'에서 사진인들 망년회라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술 마시다 죽는 건 주사인가? 아니면 순직인가?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연극연출가 기국서씨가 뒤늦게 상복이 터졌다.
얼마 전에는 문화훈장을 받아 축하연까지 가졌는데,
이번에는 ‘한국연출가협회’에서 주는 ‘2019 올해의 연출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9월 공연한 ‘엔드게임’이 원로 연극인 지원작으로 결정되어
내년 2월부터 재 공연된다고 한다.




지난 19일 오후5시 무렵, 대학로 좋은공연 안내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시상식에 축하하러 갔더니, 기국서씨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영 느낌이 안 좋아요. 상을 계속 주는 걸 보니 연극 그만하라고 밀어내는 것 같아요”
별 말씀을... 밀어낸다고 밀릴 사람인가.
노장은 살아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거지요.




‘한국연출가협회’에서 매년 연말에 시상하는 ‘올해의 연출가상’은
그동안 많은 연출 작업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해왔고, 당해 연도까지 두각을 나타내며

대한민국 연극발전에 공헌한 연출가에게 매년 시상하는 상이다.
올 해부터 '젊은 연출가상'이 새로 생겨 그 상은 이기쁨씨가 받았다.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상금도 주어진다기에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는데, ㈜로드워크가 후원한단다.




‘올해의 연출가상’에 선정된 기국서씨는 1976년 ‘극단76’을 창단하면서
연출 작업을 시작한 이래,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치 않는 연극열정은
보여 많은 연출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특히 올해 공연한 ‘엔드게임’은 관습에

안주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와 공명하는 기국서 연출의 일관된 연극관과 연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한결같은 청춘으로 쉼 없이 연극을

만들어내는 기국서 연출을 ‘올해의 연출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윤우영 이사장이 말했다.




축하연이 있다지만, 인사동의 망년회모임에 쫒겨 도망쳤더니, 전화가 빗발이다.

기국서씨는 상복이 터졌지만, 나는 년 말이라 술 복이 터졌다.


아무튼, ‘올해의 연출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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