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이야기


시 : 황인철 / 사진 : 조문호


인사동 거리를 걸으면 
사랑하는 가슴 하나만으로는 다 품고 오지 못할 
하늘과 그림이 있고 
시가 있고 
산문에 피는 꽃향기가 있다 
찻집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떠돌다 
비밀이 되어 
인사동에 가면 
너를 생각하게 되고 너를 생각하면 
여기저기 골목마다 들려오는 
묵향 그윽한 노래가 된다 
인사동은 비밀을 감추지 않아 
스스로가 비밀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차 한잔 나누면 알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도시는 진화(進化)한다.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도시가 진화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르게 세우고 정책의 물꼬를 잘 터주어야 한다.
인사동도 자연스럽게 진화해야 한다.
상업주의에 물든 난개발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언제까지나 현상 유지만 고집할 수는 없다.
이제 진지하게 방향을 생각할 때가 왔다.

인사동이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략이 필요할 것인가.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워’, 인사동에 그리도 많이 모여드는가.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그리워, 인사동에 온다고 생각한다.
인사동의 작은 골목길에는 세월이 퇴적되어 있다.
그리고,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 이끼처럼 덮혀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나지막하고, 정겹고, 따스하다.
마치 시골 누이와도 같다.

인터넷 세상도 결국은 사람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사는 세상의 작은 ‘이야기’가 그리워, 사람들은 인사동을 찾아온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해법은 스스로 분명해진다.

인사동 거리는 점차 잊혀가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정겹게 들려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진화의 방향이다.
점차 잊혀져가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곳? 바로, 박물관이 그런 곳이다.
나는 인사동에 작은 박물관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믿는다.

방법은 있다.
서울시가 매년 시예산으로 백여평의 땅을 사고, 기업에서 작고 이쁜 박물관을 지어주면 된다.
일단 땅이 있고, 건물이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흔연히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한 복판인 인사동에 작고 이쁜 박물관이 지어지면, 기쁜 마음으로 평생모은 소중품을 내어놓을 소장자들은 많다.
그 분들은 평생을 다해서 한 분야의 물건들을 모아왔지만, 교통이 좋은 곳에 박물관을 지을 돈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 사실을 항상 안타까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면 열 개의 박물관들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맑고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이 들려올 것이다.
서울시는 예산을 생산적으로 쓰는 셈이 된다.
그 땅이 서울시의 소유이기 때문에 시유지를 사두는 셈이 되고, 건물과 소장품도 덤으로 생기니 손해볼 것이 없다.
우리 옛 지도 박물관, 한지 박물관, 국악 박물관…

외국 관광객들이 오면 인사동에서 우리 문화의 빛깔과 아름다움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난초가 멀리까지 그 향(香)을 전하듯이,열 개의 박물관은 인사동 전체의 품격(品格)을 만들어 가는 추진축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천년의 화두는, 어쩌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일 것이다.
1조 5천억불의 자본이 투기 자본화하여 빛의 속도로 지구를 휘감고 도는 이 미친 ‘돈 황제’의 세상에,

인사동에 작고 이쁜 박물관 열 개를 만드는 것.
이것이 나는 국가와 서울시 정부가 추진해야 할 ‘문화전략’이라고 믿는다.


글 / 이두엽(문화전략연구소장·주식회사 문화전략21 부사장)



인사동의 대표적 작가로 꼽을 수 있는 강찬모씨 초대전이 9월 4일부터 17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3층 특별관에서 열리고 있다.




어느 작가인들 인사동을 드나들지 않는 작가가 있겠나마는
강찬모씨를 인사동 작가로 지칭하는 것은 젊은 시절 창작의 허기를 인사동에서 메우며 길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인사동 사람들도 인사동에 거주해서가 아니라 군을 이루어 인사동 골목골목의 대폿집에서 낭만을 구가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정신적 뿌리를 인사동에 둔 작가들이다.
이미 세상을 등진 작가들로는 강용대, 김용태, 김영수, 문영태, 여 운, 이존수씨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60년대 명동에서 관철동으로,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아지트를 옮겨 온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씨 등 문인들이 첫발을 디뎠지만,

그 뒤를 이어 많은 작가들이 인사동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인사동이 삭막해진 것은 층을 이룬 다양한 작가 군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풍미했던 낭만이 인사동의 풍류요, 인사동의 정체성이 아니던가?




지금의 강찬모씨는 술과 고기를 멀리하는 스님처럼 살지만, 그도 한 때는 두주불사였다.
인사동을 풍미했던 그의 기행은 전설이 되어 인사동을 떠돌 뿐이다.



각설하고, 강찬모씨의 작품을 가만히 쳐다보면 마음에 밀려오는 뭉클함이 있다.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설산의 세계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진다.
선연한 블루의 하늘과 히말라야 설산의 깊은 풍경에서
자연의 근원적 순수함과 생명의 숨결, 그리고 강인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채색화를 전공한 화가답게 색의 마술사다.
한지에 전통채색 방식으로 그린 대작들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짙푸른 청색이 주는 신비로움은 자연 속으로 푹 빠져들게 한다.




작가는 자신의 영적 체험으로 얻어 낸 기운을 화폭에 쏟아내고 있다.
그의 명상이 물감으로 번지며 드러낸 설산은 차가운 한기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사랑의 빛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곳에서 '히밀라야 블루'를 발견했어요. 그 푸름에 뭔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히말라야 블루'는 영원을 향하는 소망, 무한한 사랑을 향한 날카로운 기도입니다”
그의 말처럼 그림에 나타난 것은 무한한 사랑에 의한 기도이니, 이미 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강찬모씨 그림을 본 프랑스 평론가 Jean-Louis Poitevin의 말을 들어보자.
“우주의 하늘이 사유의 하늘을 만난다. 깨달음의 색채가 인간의 기다림 위로 열리고 둘이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며
시각적으로 탐미적인 여정에 초대하는 것이다. 무관심으로 단절된 사람과 사람, 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난다.
강 찬모의 그림 세계는 절대적인 체험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사람들이 화폭을 마주하고 눈물을 떨구는 까닭이다.
인상적인 것은 색과 형 등의 시각적 요소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가의 철학적이고 심오하며 인간적인 우주의 통찰에 있다.
강 찬모는 하늘이 우리 가까이 있고, 내면의 눈이 외면의 눈을 통하여 화폭으로 다가가 무한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이해한 독보적인 화가다”




강찬모씨는 요즘 뜨는 작가에 속한다.
수시로 초대전이 열리고, 프랑스 루브르 국립살롱전을 비롯한 해외 전시회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해외 아트페어 에서 전 작품이 완판 되는 이변도 보였으며, 2013년에는 프랑스 보가드성 박물관 살롱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막식이 열린 9월 4일은 내가 태어 난 날이 아니던가.
강찬모씨 전시 오프닝 상차림을 생일 상으로 여기며, 오후 6시 무렵 찾아갔다. 
전시 작가를 비롯하여 김명성, 조준영, 정복수, 송일봉, 박미산, 신성준, 조명환, 고중록, 김영국씨 등 많은 분들이 축하하러 왔더라.
돌아오는 길에 벽치기 골목에 들려 조해인, 김수길씨도 만났으나,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혼비백산 도망쳤다.


이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02-736-6347)에서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전 정영신씨로 부터 인사동 사진집 출판에 대한 제안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판사 ’ZININZIN’ 김태진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는데,
김태진씨는 이광수교수 강의 때 한 두 차례 만난 적도 있지만,
정의당원인데다 페친 중의 한 분이라 관심 두고 지켜 본 분이다.




얼마 전 페북에 인사동 사진집을 년 말까지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밝힌 적은 있지만,

어떻게 절묘하게 출판 제안이 맞아 떨어졌는지 궁금했는데, 아마 이광수교수의 입김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지난 3일 오후6시경 정영신씨를 만나, 김태진씨와 약속했다는 인사동 ‘툇마루’로 갔다.
귀가 어두운데다 말이 어눌해 소통이 어려울 것 같아 정영신씨에게 모든 걸 위임한다고 했으나,

처음 상의하는 자리라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안경까지 깨져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진데, 자리만 지키는 로봇 신세였다.




안국역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벽치기 골목은 한적했고,
‘조금’ 앞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기념사진 찍느라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인사동 박람회가 끝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아 청사초롱이 훤하게 불 밝혔는데,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김태진씨가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었다.




‘툇마루’에서 된장비빔밥에다 막걸리와 빈대떡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나,

대화 내용을 대충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꾸어다놓은 보리자루처럼 밥그릇만 비웠다.




 김태진씨와 오래전에 명함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인사동이야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고 했다.
아마 인사동 이야기 출판에 관한 전체적인 가닥은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진인진’은 그동안 고고학이나 미술사학 등 학술지출판이나 학술정보DB개발에 주력해 온 출판사지만,

이번에 사회문화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작업 중인 책은 역학에 관한 만화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 만들 책이 인사동 사진집이라 한다.




시끄러운 식당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울 것 같아 찻집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김태진씨가 너무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옆에 있는 사람이 군침이 돌 정도로 드셨는데, 큰 복 하나 타고난 것 같았다.
한 조각남은 빈대떡까지 싸 가지고 찻집 ‘수요일’로 자리를 옮겼다.




책 내용은 내가 먼저 정리할 일이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출판계약서를 전달 받는 등 가닥만 잡았다.
아무래도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 위주로 책을 만들고 싶겠지만, 출판사는 팔리는 책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여지 것 책을 만들 때는 일체 간섭하지 않고 출판사에 위임해 왔다.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가 외면하면 쓰레기에 불과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작가의 의향을 존중해 그런지 별 말씀이 없었다.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여러 가지 조언을 줄 것으로 여겨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삼개월 가까이 인사동 작업에만 주력해야 할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인사동 풍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이며, 인사동다운 환경이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 할 작정이다.
아무쪼록 인사동의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는 좋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바라며, 내년 초에 선보이게 될 인사동 사진집을 기대하시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1일 오후3시 무렵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화려한 궁중의상 한복 패션쇼가 펼쳐졌다.






'인사동 국제문화 박람회' 부대행사인 한복패션쇼는 우리나라 시대별 궁중의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인사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본 박람회 행사였다.

드라마에서나 보아 왔던 화려한 궁중의상을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뜻밖에 볼거리를 만난 외국관광객들은 “원더풀”을 연발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인사동에서 궁중의상 패션쇼가 처음 열린 것은 아니지만, 인사동 박람회 중 가장 돋보이는 행사였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주관으로 열린 '인사동 국제문화 박람회'는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5일 동안 인사동 전역에서 열렸다.

첫 날 '비빔밥 행사'를 시작으로 열린 전통음식 축제', 도예 및 전통 장식품 만들기 체험,

'취타대 퍼레이드', 인사동의 고미술과 현대미술로 이루어진 아트페어 등 다양하게 치러졌으나

홍보부족으로 박람회를 보기위해 찾아 온 관광객은 더 물었다.






박람회 기간동안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북인사마당에서 전통 장식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열렸다.

전통도예와 장명루, 솟대, 장승, 노리개, 엽서, 한지, 연꽃 등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이 열렸으나, 관광객의 관심은 저조했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인사아트센터' 앞에서 열린 전통 차 음식 행사는 공짜라 그런지  인기를 끌었다.

향긋한 차 내음을 맡으며 다양한 전통음식을 시식 해 볼 수 좋은 기회였지만, 대기한 사람의 줄이 너무 길었다.

동자동에서 수시로 줄 세우는 것에 진절머리난 나로서는, 배가 고팠지만 포기해야 했다. 






이번 인사동 박람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의 작품을 ‘인사아트센터’전관에 집약시킨 특별전이다.

1층에 ‘인사동 고미술 아트페어’, 2층에 인사동 공예 아트페어, 3, 4층에 ’인사동 현대미술 아트페어‘, 5층에 ’인사동 국제문화전‘ 등

인사동 문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특별전이었으나, 홍보부족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 모우는 데는 실패했다. 



 


아프리카미술 전문가인 정해광씨를 ‘통큰 갤러리’ 부스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인사동 아트페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은 작가들의 협조와 전문가들의 자문아래 이루어진 치밀한 기획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인사동의 정체성을 알리는 박람회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제 인사동을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인사동에 흩어진 수많은 갤러리들의 특성화, 전문화가 요구되기도 하지만,

인사동 전 구역을 연결하는 인사동 갤러리 지도를 만들자.

좋은 전시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매주 발행하여 홍보안내소에 비치하는 것은 어떨까?

뭘 알아야 전시장을 찾을 것 아닌가.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이 인사동 아닌 것 같다.



거리는 젊은 사람들이 오가고,
관광객들이 사진들을 찍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뭔가 구멍 뚫린 듯 허전하다.




인사동, 인사동, 노래 부른 강민선생이 떠나서 일까?
인사동 터줏대감이 사라진 허전함 같았다.
날씨까지 비가 왔다 갔다 지랄 같았다.




인사동의 거리도 낯설고 사람들도 낯설다.
옛 시인이 한탄한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가 아니라
“산천도 인걸도 모두 간 데 없네”가 되고 말았다.




세월 따라 인사동은 또 바뀔 것이고,
거리를 메우는 사람도 쉼없이 바뀔 것이다.
그게 필연이나 하나는 지켜야 한다.




인사동 정신과 풍류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한 원로시인 강민선생께서 지난 22일 오전 6시 55분 먼 길을 떠나셨다.
이제 천국에 잘 도착하여 사랑하는 이국자선생님도 만나고,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신봉승, 심우성선생 등 먼저 가신 친구들 만나
인사동 이야기들 하시느라 바쁠 것이다.




 선생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틀린 말이지 예?

 그 곳은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가 있는 차별의 세상도 아니고요.

설사 차별이 있다 해도 집사님 빽으로 지옥에 내치지는 않겠지요.

머지않아 선생님 좋아하시는 복분자술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 가신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눈물이 말랐네요.

고마웠다는 인사도. 먼저 떠나 섭섭하다는 원망도,

모두 바람에 날아 가 버렸습니다.


선생님! 사람 사는 게 바람처럼 이렇게 가벼운 것입니까?

요즘 부쩍 눈물이 자주 흐르는 걸 보니, 나도 늙었나봅니다.

후회가 더 많은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인사동은 불 꺼진 등불입니다.

누가 선생님처럼 가슴 아파하며 골목골목을 찿겠습니까?

외로운 친구들과 사랑하는 제자들 불러내어 곰탕 건대기 건져놓고

소주 잔 부딪히는 그런 시간을 어찌 만나겠습니까?

또, 김승환선생과 방동규선생은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인사동을 방황하던, 골목골목의 가게들이 생각납니다.

단골로 드나드셨던 나주곰탕을 비롯하여 귀천’, ‘인사동 사람들’, '여자만'

포도나무집’, ‘유목민어디를 가도 선생님을 뵐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막막합니다.



선생님의 시에 대한 지조를 사랑했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선생님의 노래 인사동 아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주인 바뀐 황량한 인사동 골목 어디에선가 선생님의 시가 흘러나올 것이다.

선생님의 슬픈 인사동 노래가...


 

그동안 미친 망둥이처럼 날 뛰는 나를 보며 마음은 또 얼마나 졸였겠습니까?

부디 용서하십시오.

돈에 눈이 멀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더러운 세상, 어찌 미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선생님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전시 사진 들고 동오리 찾았을 때 일입니다.

그 날 선생님 내외분의 행복한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네요.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기어이 끌어 앉혔는데,

이국자 선생님께서 끓어주신 된장국은 콧등이 시리도록 맛있었습니다.

문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은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어쩌면 행복이란 것 자체가 슬픈 것일까요


 

 

그리고 천상병선생 20주기 맞았을 때 일입니다.

인사동 봄 소풍 잔치 때도 오직 선생님만 걱정에 걱정을 하셨습니다.

여기 저기 구걸하여 만들어 준 그 돈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말씀은 없지만, 그 따뜻한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돌아 가실 때마다 선생님 뒷모습이 얼마나 슬퍼 보이는지,

아마 선생님은 속울음을 삼키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 잊으시고 편안하게 잠드십시오.


 

못난 조문호가 큰 절 올립니다.


 

 강민 선생의 장례식은 지난22일부터 24일까지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국제 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 한국작가회의에서 주관한 문인장으로 열렸는데,

824일 오전 930분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식도 열었다.

8241030분에 발인하여 용인, ‘양주 장충동산에 안장되었다.




 

지난 23일 오후 4시경 정영신씨와 분당 장례식장을 찾았다.

입구에서 담배 피우던 김명성씨와 김상현, 김상윤, 전태수씨를 만났는데.

장례식장에는 정승재, 조준영, 서정란, 김가배, 이도연, 김이하, 정복수, 전활철, 노광래,

서정춘씨가 있었고 뒤늦게 구중서선생님도 오셨다.




- 강민 시인이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시-  


<이승의 간이역>

내 떠나야 할
인생의 간이역은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꽃밭이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 난 강민 시인은 1962자유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보다’, ‘미로(迷路)에서’, ‘외포리의 갈매기와 공동시화집 , 파도, 세월’,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를 펴냈다 공동 산문집 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도 있다.

전쟁과 분단, 독재로 이어진 현대사를 몸소 체험하며 삶의 애환과 고통스러운 저항의 노래를 불렀다.

시 동인지 현실과 드라마 동인 네오 드라마에도 참여했다.

고인은 학원을 비롯해 주부생활편집국장, 금성출판사 상무이사 등 출판계에 몸담았고

많은 문인과 교류해 걸어 다니는 한국 문단사로 불렸다.

윤동주문학상, 동국문학인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4,3 퍼포먼스 군중 앞에서, 광화문광장



선생님!
이제 눈물도 말랐습니다.
잘 가셔서 사모님께 안부 전해 주이소.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어 가슴 아팠습니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만 사람냄새가 안 납니다. 유령의 도시입니까?



언젠가 한 번은 가야할 길,

뒤돌아 보지 않는 어연함이 가슴 아픕니다. 

그리운 사람 만나려 모든 고통 참아낸 인내가 존경스럽습니다.



시대의 협객 방배추선생과 인사동 씨궁창 여관 골목에서...


광화문광장에서 4,3의 원혼들과 대면한

강민 선생님의 사진 한 장이 생각났습니다.
짙은 그림자가 깔린 사진들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납니다. 


얼마나 분했습니까? 그 날 광화문 광장을 메운 4,3 원혼의 외침에...
 
온통 인사동 사랑에 서러워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인사동은 바로 그리움의 고향입니다.



선생님 시집 나와 '나주곰탕'에서 밥 먹었지 예! 좌로부터 김상현.김명성,강민, 방동규, 조준영씨


‘인사동 연가’ 시사전을 하자는 말도,
때로는 선생님 호출에 나서지 못한 죄송함도 밀렸다.


동시에 작별인사를 하니 사내보다 여인이 먼저네. 그거야 당연하제, 여인천하가 아니가?

이제 인사동은 희미한 등불마저 꺼져버린
불 꺼진 항구나 마찬가지다.


신경림시인 뒤에 연극연출가 기국서씨도 있네요. 야! 인사동 거물 총 출동이야~


인사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으나,
선생님처럼 온 몸으로 사랑하신 분은 없다.


인사동 찻집 '귀천' 앞에서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한 강민선생님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아이구! 한 분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옆에는 김가배시인과 이행자시인 인데..."죽어면 늙어야지" 인사동 '포도나무집' 앞에서..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만난 모습이 너무 슬퍼보입니다.

선생님, 기어이 손가락이 뻣뻣해 전화 못 하셨습니까?


인사동 '툇마루'에서 황명걸, 구중서선생과 된장 비벼 막걸리 한 전 하셨습니다.

부디 가셔서 정의로운 세상 되도록 힘 좀 써 주시고,

사모님 만나 알콩 달콩 재미있게 사십시요.

따라가면 이국자선생님이 보글보글 끓여주신 옛날 된장국 맛도 볼 수 있겠네요.

안부 전해주이소.


연극배우 이명희씨 머리 위에 귀신 붙은 것 한번 보세요. 심우성선생께서 눈독들이시네..


선생님 앨범에 담긴 몇 장을 추려내어 강민 선생님을 추억합니다.


김승환선생 뒤에 방배추 선생님이 뻬꼼 내다 보네요. 술맛 나는 꼽꼽한 날, 분위기 좋습니다.


행자 누부야~ 우짜꼬?

강민 선생의 시 ‘인사동 아리랑2’ 황혼 편이다.


'외포리 갈매기' 시집출판연에서 찍은 사진이네요. 뒷 모습으로 보이는 분은 구중서선생님과 민영 시인입니다.


“붐비는 인파 속에도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오늘도 인사동 걷기는 허전하다

추억처럼 불빛이 켜지고 있다

열이 오르며 목이 마르다

잃어버린 불모의 사랑이 허공을 맴 돈다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종로 쪽 멀리 남산이 다가오고

차츰 어둠의 장막도 깔린다.

나 이제 또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리

그이의 아지트였던 찻집<보리수>도 없어졌다

진공의 거리어디선가 그리운 이들 목소리 들리는 것 같다

돌아가리돌아가리그런데 이 끝없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눈물의 의미와 그리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 밤의 공동(空洞)이 두렵다“


인사동 벽치기골목에 있는 유담커피집에서 두 귀신선생께서 여인네들 데려갈라 꼬시네요.


'토포하우스'에서 정승재교수 전시할 때 사진입니다.


저승 선배인 신봉승선생님 만나 술 한잔 하시겠네 예


'인사동사람들' 마담과 참 잘 어울립니다. 수줍어 얼굴이 붉히네요.

뽀뽀 한 번 해 주었습니까?


김승환선생님과 강민선생을 바라보는 여인내 눈길이 아릇하도다. 송상욱 선생은 돌부처인가?


아! 이때만 해도 청춘이셨는데... 그 많은 여인네들 눈도 삐었지..


뮤지션 김상현씨와 조준영 시인이 어울려 건배를 하네요. 뭔가 의기투합해 사고 칠 것 같지 않습니꺼?


아이구! 저 칠떡이는 왜 나와 어물전 망신 시키나? 사진은 정영신씨가 찍었다.


역전의 용사들이 처들어간다. 좌로부터 조준영, 강민, 심우성선생



선생님! 사는 게 별거 아니지요?  

선생님의 사랑은 뜨거웠습니다.

사람이던, 인사동이던, 시던...

사랑합니다. 선생님

조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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