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재갑은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온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강제징용 ‘잔혹사’를 기록한 ‘일본 속 한국풍경’, 경산 코발트 광산사건의 진실을 기록한 ‘잃어버린 기억’, 베트남전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현장을 찾아다닌 ‘하나의 전쟁, 두개의 기억‘ 등 사회가 기억하지 못하는 골 깊은 역사를 파헤쳐 왔다.

 

이번에 선보인 '어느 특별한 동행'전은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배타적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 온 혼혈인들과 함께한 전시다. 그들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우리 이웃의 또 다른 초상이다.

주명덕 선생께서 기록한 혼혈아, ‘섞여진 이름’이 발표된 지가 1965년이었니, 어느듯 반세기가 지났다. 그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무도 되돌아보지 않았던 삶을 이재갑씨가 조명한 것이다.

 

지난 10일 오후5시 무렵, 모처럼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여태 전시 보는 것 자체를 피해 온 것은 전시리뷰나 이런 저런 글을 쓰기 싫어서다. 글로 인해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는데, '씹 대주고 뺨 맞는' 격이었다. 개인적인 감상문에 불과한 글을 느낀 대로 쓸 수 없다면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분이 쓴 전시리뷰나 서문으로 소개를 대신 하기는 했으나, 평론가의 고충을 알만했다.

작품만 보고 전시리뷰는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싫은 소리는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속에 넣어두고 배겨나지 못하는 성질머리를 어쩌겠는가?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더 속 편했다. 그런 일로 많은 사람을 잃어버린 ‘미운 오리 새끼’신세가 되었는데, 심지어 가까웠던 친구나 가족까지 등 돌렸다. 잘 못 쓴 글이 아니라면 절대 내리거나 수정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재갑씨의 ‘동행’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전시였다. 전시가 열리는 ‘KP갤러리’가 동자동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기도 하지만, 기대했던 전시라 통풍이 도져 아픈 다리를 끌고 찾아간 것이다. 예술지상주의의 허접한 사진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재갑씨 만한 사진이 드물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사진도 기록한다고 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아니다. 아무런 작가의식 없이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넝마주이 사진이라 한다. 작년에는 원로 사진가 두 분이 찍은 60년대 중반 무렵의 사회기록사진들이 서랍 속에 잠들다 반세기만에 빛을 본 적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다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이었고, 그 이후부터 상업사진이나 문화재사진으로 전향한 형태도 비슷했다.

 

그 당시는 임응식선생이 주창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영향을 받아 거리의 스냅사진이 성행할 무렵이었는데, 세월의 무게에 실려 작가의식과 상관없이 소중한 역사적 사료가 된 것이다. 요즘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처럼 아름다운 풍경만 쫓아다니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만, 작가라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찍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주명덕선생의 ‘혼혈아’나 최민식선생의 ‘인간’, 그리고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처럼 사람 속으로 파고 든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기록이다.

 

또 한 가지 사진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는 한 분은 표준렌즈로 찍었고, 한 분은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많다는 점이다. 망원렌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나, 동작을 포착하는 스포츠사진에나 활용되는 렌즈라 다큐멘터리 사진에는 적절치 않은 렌즈다. 망원렌즈로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사람 속으로 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몰래 찍는 도둑 사진이나 다름없다. 요즘은 초상권 침해에 걸려 마음대로 발표할 수가 없어 그런지, 거리스냅 하는 사진인도 사라져버렸다.

 

가끔 사진가들의 프로필 사진에 대포 같은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자랑스럽게 목에 건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난 사진가가 아니라 사냥꾼’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요즘 렌즈들은 광각에서 망원까지 사용할 수 있는 줌렌즈가 장착되어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카메라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재갑의 "어느 특별한 동행"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아 갔더니, 전시 작가 이재갑씨와 전시기획자 이일우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시된 작품은 작가가 혼혈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들의 평범한 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초상사진과 단체기념사진들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사진으로도 볼 수 있으나, 작가와 당사자와의 끈끈한 교감이 느껴졌다.

 

‘동행’이란 전시제목처럼, 그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 지난 시간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흔적이 역역했다. 전시장에 찍힌 당사자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재갑씨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사진에 앞서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람을 찍는 다는 것은 그 사람과 얼마나 소통하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으니, 그냥 찍은 사진과는 격이 달랐다.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인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게, 함께 걷기 -

 

‘한 배를 타다(be in the same boat)’라는 표현은 한국어와 영어에서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 같은 운명이나 처지에 놓이다. 모든 이의 운명이 완전히 똑같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처지가 비슷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사용하고 의지하며 위안을 얻는다. 사진가 이재갑은 혼혈인들의 일상 속에 시선을 멈추어,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들의 평범한 시간을 포착한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야유회를 떠난다. 사진 속에 담긴 일상은 한국인들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주 약간의, 외모적인 차이가 언뜻 엿보일 뿐이다. ‘아주 약간의 차이’, 그들이 탄 배의 이름이다.

 

미군정기(美軍政期)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외국인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혼혈인이 생기고 그 수가 늘어났지만, 한국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국가주도로 단일민족(Monoethnicity)이라는 신화를 기조로 삼아 민족의 우수성을 공교육에서 강조하고,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동안, 외모가 다르거나 혈통이 다른 이들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묶여 한국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아야 했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타자(the other)’로 규정하는 동안, 혼혈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한국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교류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혼혈인들은 다른 혼혈인 가족과 기꺼이 시간을 나누고 가족끼리 교류하며 서로의 근황을 나눈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과 행사에 드러난 얼굴을 기록한다. 타자로 규정된 얼굴들이 따로 또 같이 기념사진을 위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동질감을 강조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을 타자로 규정하고 거리를 두는 것은 가장 편리한 방법일지 모른다. 나와 같은 존재만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일에는 많은 생각의 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는 같고, 어느 정도는 다르다. 제각기 다른 뿌리와 직업, 사고방식, 환경을 가지고 있는 혼혈인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느슨한 연대를 만듦과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한국사회에 기꺼이 ‘동일자(the same)’로 자신들의 자리를 만든다.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와 선을 스스로의 존재로 지우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전체성과 무한』을 통해 타자를 집에 맞아들이는 ‘환대(hospitality)’가 우리 삶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말한다. 내 테두리 밖의 ‘타자’는 익숙하지 않기에 낯선 자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지워질 수 없고 내 옆에 있으며, 함께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이웃’이기 때문이다. 환대. 이웃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 이런 측면에서 이미 혼혈인들은 각자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거대하고 불친절한 이웃을 환대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세계로 또 다른 타자를 초대한다. 낯선 카메라에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자신들의 일상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벌거벗은 얼굴들’은 바로 우리 이웃의 초상이다.

 

이재갑의 사진전 “어느 특별한 동행”은 한국이라는 배타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혼혈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사진에 담긴 이들의 시선은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함께 걸어갈 것(동행)’을 제안한다. ‘아주 약간의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탄 배에 동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은 같고, 조금씩은 모두 다르다.

 

글 / 레 나(LENA)

 

KP 갤러리가 2023년 새해 첫 전시로 선정한 “어느 특별한 동행(同行)” 이재갑 사진전은 3월 4일까지 열린다. 

 

2016년 한해 동안 '갤러리브레송'에서 진행한 '이 땅의 고수를 찿아서..'


2018년 03월 12일 (월) 03:02:24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지난 2016년부터 매달 두 번씩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국내사진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이광수 교수가 한국현대사진가 열 두 명의 작가론을 묶은 ”카메라는 칼이다“를 펴냈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제대로 된 국내 사진가론이 전무하였다는 사실이다. 평론가들이 외국사진가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해가며 거론하였지만, 정작 국내 사진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품이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사진을 무기로 사진에 대한 신화를 깨었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없애고, 패거리도 없애는 대동의 사진세계에서 멋지게 노는

이 땅의 진정한 고수를 찾는 놀이로 시작되었다"고 저자 이광수 교수는 말하고 있다.


'카메라는 칼이다'저자 이광수교수 Ⓒ정영신


사진을 전공하는 교수와 작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가론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학자로써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역사가 있기에 우리가 존재하듯 각자 자기의 고유한 역사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평생 우리나라 문화와 생활상을 기록해 온 사진가들의 작가론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 '카메라는 칼이다'의 사진가들과 저자인 이광수교수, 갤러리브레송 김남진관장 Ⓒ정영신


다른나라 사진가론은 줄줄 외면서 우리나라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해오고 과거의 진실을 어떻게 발견해 왔는지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에 통분했다. 사대주의적 발상이 아니었다면 국내 사진가에 대해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여 이광수 교수가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이 최민식 작가론이다.





이광수 교수는 끊임없는 동어반복적인 시간이 응축된 사진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내었고, 그의 예리한 집도에 의해 작가들의 심중에 묻힌 비장의 언어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는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인도사를 연구하는 교수이자 사진비평가로. 사진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10여년 넘게 사진비평에 혼신을 쏟아왔다.



▲ 강정효작가의 '유해발굴'



이광수 교수는 “작품이 왜 좋은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어떤 사회적, 문화적 효과를 내고 있는지 평가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작가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해 작가론을 쓰기시작 했다”고 말했다.



▲ 권철 작가의 '가부키초'


또한 인맥이나 학력등을 배재한 채 50대 이상으로 30년 가까이 고독하게 자기작업만을 고집하는 사진가를 찾아내는 일은 '갤러리브레송' 김남진관장이 맡았다. 그야말로 이 땅에 숨겨진 ‘사진’ 고수를 찾아 소개하는데 꼬박 1년이 걸린 셈이다. '


김남진 관장은 사진가를 찾아내고, 이광수교수는 매달 50매에 달하는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갤러리 브래송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를 진행한 것이다.



▲ 김문호 작가의 '온더로드'


비평가의 책무는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 해석하는 것이다. 허나 우리 사진계에 이렇다 할 작가론 한권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광수교수의 ‘카메라는 칼이다’는 의미가 있는 책으로 사진보는 것을 넘어, 사진을 읽게 함으로써 책에 나온 사진가의 진면목을 독자스스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김보섭 작가의 '청관'


3부로 구성된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1부는 ‘시대와 시간을 기록하다’에 권철, 신동필, 최영진, 강정효작가, 제2부는 ‘사람과 역사를 바라보다’에 조문호, 김보섭, 문진우, 김문호, 이재갑, 이영욱작가, 마지막 제3부에는 존재와 예술을 그리는 파인 아트작가로 고정남과 이수철작가를 논했다.



▲ 문진우 작가의 '내 마음속의 다큐 한 장'


‘독대’의 권철사진가는 “도꼬다이.... ‘홀로’의 의미가 강해 사진가 권철을 일컫는 말로 이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고 쓰고, 이어 신동필작가를 논하면서 “신동필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다. 그는 투사로서 민족, 자주, 반미, 통일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리지도, 시비 걸지도 않고 대의를 따라 함께 걸었다”고 평하고, 최영진작가론은 “그대로 그렇게 그 모태를 재현하고 있다며, 죽어 말라 버린 물고기 한 마리 이미지가 쉬 사라지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고 최영진이 따르는 자연의 미와 추에 대해 생각한다” 고 했다.



▲ 신동필작가의 '또 다른 가족'


풍경, 민속 그리고 역사를 담은 강정효는 “유채꽃 노란 물결에 배어 있는 농민들의 땀을 읽어 주십사 하는 목소리를 낸다. 강정효는 제주의 모든 것을 담되, 그 안에 사람이 우선되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고 했다.



▲ 이수철작가의 '화몽중경'


인본을 이야기하는 조문호작가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진가라며 조문호에게 이말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을 나는 찾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오브제로 기록하는 감성적 민족지를 보여준 김보섭 작가는 “그는 사라져 가는 세계를 당당하고 아름답게 본다. 그 위에서 그가 만든 포토제닉한 이미지는 감성으로서 독자들이 과거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더 크게 열어 젖힌다”고 쓰고 있다.



▲ 이영욱작가의 '자유공원'


카메라불사 카메라 40년의 문진우 작가는 “사진의 작품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바로 오래됨에 있다며 찍어놓고 보면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에 오래됨이 생긴다. 누구든, 그 오래된 사진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나만 혼자 바보가 되네’의 김문호 작가는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 많고, 사유가 깊은 다큐사진가일수록 그 재현 방식의 이동 폭 이 넓다. 김문호 작가가 그 대표적인 사진가다”고 작가론을 펼쳤다.



▲ 이재갑작가의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


“아픈 역사를 이면과 기억으로 엮는 서사시”의 이재갑작가는 “기록할 수 없는 그렇다고 토해낼 수도 없는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 이 기억에 대한 담론을 사진으로 작업한다”고 평했다.


사진으로 사진에 대한 신화를 깨다의 이영욱 작가는 “이영욱 사진은 기록에 대해 시비를 거는 메타기록이다. 경험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해석에 의한 기록이 아닌, 세계본질에 대한 기록이다”고 쓰고 있다.



▲ 최영진작가의 '서해안'


‘끊임없는 기억의 흐름에 정해진 것은 없다’의 고정남작가는 “답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가치와 의미로 된 규정도 없고, 모두가 있는 작은 곳곳의 자리에서 나 자신만의 세상을 누벼보는 것이다. 사진은 찍는 이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보고 나누는 이의 것이기도 하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레퀴엠’의 이수철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때로는 합성을 통해, 때로는 덧칠을 통해, 때로는 타 매체와의 협업을 통해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레퀴엠을 바친다”고 논했다.


▲ 조문호작가의 '동자동 노숙인'



카메라는 칼이다’의 저자 이광수교수는 “기계가 만들어내는 사진의 역사가 1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하늘 아래 새로운 사진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겠는가? 사진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라도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가치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오래됨’이라고 했다.


이 땅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숨어있는 현대사진가 12명의 작가론을 해석하고 비평한 이광수교수의 ‘카메라는 칼이다’ 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지난 22일 오후3시, 강남 ‘스페이스22’에서 사진가 엄상빈씨와 함께하는 ‘또 하나의 경계’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작가 엄상빈씨의 작품 이야기뿐만 아니라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와 사진가 이재갑씨의 감상평도 들었다.


‘스페이스 22’의 정진호, 오윤택, 이은숙씨를 비롯하여 김보섭, 안미숙, 정영신, 곽명우, 남 준씨 등

4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작가의 사진세계를 돌아보며, 그 뒷이야기 듣는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질문과 답변 듣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버렸다.

광화문으로 달려갔으나, 노동악법철폐를 위한 예술인대회‘가 끝났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사진전 이해한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이 전시는 5월2일까지 이어지고, ‘눈빛출판사’에서 ‘또 하나의 경계’ 사진집도 출판되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지난 14일 열린, ‘광화문미술행동’의 네 번째 프로젝트 ‘응답하라! 1987’이 시민들의 참여속에 진행되었다.

체감온도가 영하13도에 이르는 한파가 시민들의 몸을 얼어붙게 하였으나,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려는 강한 투지는 한파를 견뎌내게 했다.





이날은 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를 겸했는데,

박종철열사의 대형 사진과 그 당시 그림들은 30년 전의 민주항쟁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지 현수막 걸개그림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지지대가 풀려나가 다시 끌어 메는 등 작가들이 고생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와 연대한 추모제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탁 치니 억하며 죽었다”는 그 때의 말도 그렇지만, 청문회나 특검에서 오리발 내며 거짓말로 일관하는

오늘의 상황이 더 지능적이고 악랄하다.






현수막전에는 신학철선생의 ‘초혼가’, 조문호의 ‘87민주항쟁’,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등

그 때 그 시절의 이미지들이 내 걸렸으나 추운 날씨 탓인지 정치적 한기를 더욱 체감케 했다.

‘한국민족춤협회’에서는 ‘백년의 바람 춤’을 추었는데, 백년만의 바람인지 엄청 난 북풍이 몰아쳤다.

그 바람찬 광장에서 지켜보는 시민들은 이를 악물며 결기를 다지게 했다.






시민참여 인증샷 ‘그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와 차벽공략에 설치될 그림판 작업도 진행되었다.

사진가들이 찍어주는 인증샷에 참여하며, 굳은 얼굴을 펴기도 했고,

작가들과 시민들은 언 손을 녹여가며 글이나 그림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김준권, 류연복, 김진화, 윤병권, 장경호, 이인철, 정영신씨 등 많은 작가들이 고생했으나,

이 날은 대구에서 올라 온 이재갑씨가 인증샷과 사진기록을 돕기도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윤병권씨가 이재갑씨의 어린 시절 고향친구라는 것이다.

우연히 이산가족 만난 듯한 반가움에 얼었던 얼굴을 활짝 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이광군, 남 준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오후4시부터 다른 일과 겹쳐 잠시 떠나야했다.

그 시간의 기록은 정영신씨의 사진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오후6시가 지나서야 현장으로 복귀하니, 시민들은 종각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우렁찬 함성은 영하의 날씨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청와대 문고리 잡고 발악하는 박근혜나 자기 잇속 차리느라 잔머리 굴리는 정치꾼들을 보며,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이제 민심을 그르치는 정치꾼은 발 붙이지 못하게 모두들 눈 똑바로 떠야 할 것 같다.






작업을 마무리한 “광화문 미술행동”팀들은 ‘남원추어탕’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먼저 본 작가 외에도 김진열, 김 억, 최병수, 이재민씨 등 많은 분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자리가 파하여 장경호, 최병수씨와 차 한 잔하는 자리에서 사진가 곽명우, 남 준씨를 만나기도 했다.

다들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느라 늦은 시간 까지 고생하고 있었다.







오는 21일 열릴 ‘광화문 미술행동’ 다섯 번째 프로젝트 ‘차벽을 넘어 광장으로‘의 주제는 “동녘이 밝아 온다”다.

정오부터 ‘서울민미협’의 깃발전을 시작으로 ‘광장 갤러리’ 설치, ‘세화 목판화 찍기(김준권, 류연복)’,

‘서예 퍼포먼스(정고암, 강병인, 여태명)’ ‘시민과 작가가 함께하는 그림, 글쓰기’, ‘인증샷 사진촬영 등

다양한 미술행동이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뒤편과 미대사관 앞에서 펼쳐진다.





오랫동안 끌어 온 집회의 누적된 피로와 추위로 시민들이 완급을 조절하고 있으나,

다음 집회에서 다시 한 번 동력을 끌어 모아야 한다.

그 걸 악용하여 뒤집기를 시도하는 ‘박사모’ 잔당들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은 박사모 잔당보다, 박근혜 무리가 척결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과의 싸움이다.

13차 촛불집회에는 모두 나서서, 끝장을 내자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조문호사진































































정영신사진




















조문호사진






















지난23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이재갑 사진전 ‘역사, 사진을 만나다’ 개막식에 갔더니, 전시와 함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란 사진집이 나왔더라. 난, 가난한 사진쟁이라 비싼 사진집은 엄두도 못내지만, 전시 때는 10,000원에 팔아 꾸준히 구입해 온 사진집이다. ‘눈빛사진가선’시리즈로 나오는 이 책은 내용도 알찬데다 판형 도 적어 휴대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을 펼쳐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사진집은 베트남전에서 학살된 원주민들의 증오비를 찾아 기록한 책이었다. 한국에는 월남전 참전 기념비가 백여 개나 되지만, 대신 베트남 학살지에 세워 둔 증오비도 숱하게 많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세대야 월남전에 직간접으로 관여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원주민들이 한국군을 증오하는 것은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끌어들인 것도 그들이지만, 원주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마을 수색작전은 대부분 한국군에 맡겼다고 한다. 반공이념이 확고한 국가관과 낯선 환경, 그리고 전쟁이라는 긴장감 속에 전개된 수색작전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각 지에 세워진 증오비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만행에 대한 기록과 죽은 이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사건을 천대만대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내용이라 한다. 물론 참전한 한국군도 오천여명이나 사망하고 만 여명이 고엽제와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죄 없는 원주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당시 한국군 학살 유형 가운데 전략촌 학살이라는 것이 있었다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략촌이란 게릴라가 아닌 순수한 양민들을 전략촌이라 부르는 철조망 안으로 몰아넣고, ‘철조망 밖은 모두 게릴라라는 흑백논리로, 주민을 힘으로 다스리기 위한 강제이주정책이었다. 1962년부터 시행된 이 전략촌은 마을이라기보다는 포로수용소처럼 만들어 운영하였다고 한다. 한국군이 원주민을 많이 죽인 유형의 하나였던 전략촌 학살은 비참했다. 한국군이 사상을 당하면 전략촌내에 수용된 열 명을 끄집어내 보복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의 심리적 효과를 노려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증오심에 불타게 했던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비실비실한 보충역이라 실전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친구들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들로부터 한국군의 용맹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 친구는 베트콩을 많이 죽인 포상으로 특별휴가까지 왔다며 선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그 때만해도 격전 속의 전과라고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많이 죽였다고 포상과 함께 특별휴가까지 보내 준다는 것은 그만큼 학살을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잔인하게 죽였다는 무용담을 입버릇처럼 자랑한 것으로 보아 학살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집에 실린 구수정씨와 유이탄 학살의 생존자인 찐프억의 구술 인터뷰를 보니 더 귀가 막혔다. 한 번 들어보라.

“두려워서였을 거야. 그러니까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마구 총질을 해댄게지. 반대로 베트콩들은 침착했어. 그들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명중에 확신이 설 때만 방아쇠를 당겼지. 총알 하나라도 아껴야만 했으니까. 총소리만 들어도 한국군인지 베트콩인지 알 수 있었어. 베트콩 총소리는 ”따콩!“했는데 한국군 총소리는 ‘드드드드득 꽝’하고 들렸지. 미군들은 항상 통역병을 달고 다니며 베트콩 용의자를 가려내 포로로 잡아갔지. 그러나 한국군들은 확인도 않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갓난아이든 가리지 않고 쏘아 죽였어”

“어차피 당할 학살이었다면 차라리 미군에게 당하는 편이 낫지.. 밀하이에는 미국에서 동네마다 학교도 세워주고 병원도 지어주고 개인 보상도 다 했어. 아, 말해 뭐해. 밀라이 위령제는 미국 참전 군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고 시민들도 줄줄이 와서 참배하고... 우리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도 어떻게 한국 사람은 45년 동안 코빼기도 한 번 비치질 않냐고!”

부끄러웠다.
나라가 반 토막으로 갈라지며 생겨 난 이데올로기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민족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 것인가? 제주4,3사건에서 부터 여수반란사건 등 모든 잔인한 학살은 거기서 비롯된 것 아니던가?
늦었지만 과오를 반성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주민들에게 사죄하자. 그 참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진집도 구입하고, 베트남에 갈 기회가 있다면 증오비를 찾아 추모의 꽃송이도 올리자. 우리민족이 그토록 잔인한 민족은 아니잖은가?




글 / 조문호 (사진집에 게재된 이재갑 작업노트와 정훈 해설에서 일부 옮김)










지난23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이재갑 사진전 ‘역사, 사진을 만나다’ 개막식에 갔더니, 전시와 함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란 사진집이 나왔더라. 난, 가난한 사진쟁이라 비싼 사진집은 엄두도 못내지만, 전시 때는 10,000원에 팔아 꾸준히 구입해 온 사진집이다. ‘눈빛사진가선시리즈로 나오는 이 책은 내용도 알찬데다 판형이 적어 휴대하기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을 펼쳐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사진집은 베트남전에서 학살된 원주민들의 증오비를 찾아 기록한 책이었다. 한국에는 월남전 참전 기념비가 백여 개나 되지만, 대신 베트남 학살지에 세워 둔 증오비도 숱하게 많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세대야 월남전에 직간접으로 관여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원주민들이 한국군을 증오하는 것은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끌어들인 것도 그들이지만, 원주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마을 수색작전은 대부분 한국군에 맡겼다고 한다. 반공이념이 확고한 국가관과 낯선 환경, 그리고 전쟁이라는 긴장감 속에 전개된 수색작전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각 지에 세워진 증오비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만행에 대한 기록과 죽은 이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사건을 천대만대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내용이라 한다. 물론 참전한 한국군도 오천여명이나 사망하고 만 여명이 고엽제와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죄 없는 원주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당시 한국군 학살 유형 가운데 전략촌 학살이라는 것이 있었다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략촌이란 게릴라가 아닌 순수한 양민들을 전략촌이라 부르는 철조망 안으로 몰아넣고, ‘철조망 밖은 모두 게릴라라는 흑백논리로, 주민을 힘으로 다스리기 위한 강제이주정책이었다. 1962년부터 시행된 이 전략촌은 마을이라기보다는 포로수용소처럼 만들어 운영하였다고 한다. 한국군이 원주민을 많이 죽인 유형의 하나였던 전략촌 학살은 비참했다. 한국군이 사상을 당하면 전략촌내에 수용된 열 명을 끄집어내 보복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의 심리적 효과를 노려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증오심에 불타게 했던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비실비실한 보충역이라 실전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친구들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들로부터 한국군의 용맹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 친구는 베트콩을 많이 죽인 포상으로 특별휴가까지 왔다며 선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그 때만해도 격전 속의 전과라고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많이 죽였다고 포상과 함께 특별휴가까지 보내 준다는 것은 그만큼 학살을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잔인하게 죽였다는 무용담을 입버릇처럼 자랑한 것으로 보아 학살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집에 실린 구수정씨와 유이탄 학살의 생존자인 찐프억의 구술 인터뷰를 보니 더 귀가 막혔다. 한 번 들어보라.

“두려워서였을 거야. 그러니까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마구 총질을 해댄게지. 반대로 베트콩들은 침착했어. 그들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명중에 확신이 설 때만 방아쇠를 당겼지. 총알 하나라도 아껴야만 했으니까. 총소리만 들어도 한국군인지 베트콩인지 알 수 있었어. 베트콩 총소리는 ”따콩!“했는데 한국군 총소리는 ‘드드드드득 꽝’하고 들렸지. 미군들은 항상 통역병을 달고 다니며 베트콩 용의자를 가려내 포로로 잡아갔지. 그러나 한국군들은 확인도 않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갓난아이든 가리지 않고 쏘아 죽였어”

“어차피 당할 학살이었다면 차라리 미군에게 당하는 편이 낫지.. 밀하이에는 미국에서 동네마다 학교도 세워주고 병원도 지어주고 개인 보상도 다 했어. 아, 말해 뭐해. 밀라이 위령제는 미국 참전 군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고 시민들도 줄줄이 와서 참배하고... 우리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도 어떻게 한국 사람은 45년 동안 코빼기도 한 번 비치질 않냐고!”

부끄러웠다.
나라가 반 토막으로 갈라지며 생겨 난 이데올로기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민족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 것인가? 제주4,3사건에서 부터 여수반란사건 등 모든 잔인한 학살은 거기서 비롯된 것 아니던가?

늦었지만 과오를 반성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주민들에게 사죄하자.
그 참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진집도 구입하고, 베트남에 갈 기회가 있다면 증오비를 찾아 추모의 꽃송이도 올리자. 우리민족이 그토록 잔인한 민족은 아니잖은가?

글 / 조문호 (사진집에 게재된 이재갑 작업노트와 정훈 해설에서 일부 옮김)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다섯 번째 사진가,
이재갑의 ‘역사, 사진을 만나다“ 전이 지난 23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전시와 함께 ‘눈빛사진가선 24호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도 출판됐다.

지난 23일 오후6시30분부터 열린 개막식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김남진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씨를 비롯해 구자호, 엄상빈, 정진호, 김문호, 박신흥, 성남훈, 이상엽,

강제욱, 마동욱, 방종모, 하지권, 이경문, 정재열, 노승장, 이은숙, 윤승준, 남 준, 곽명우,

이한구, 오혜련, 이혜숙씨등 많은 사진가 들이 참여해 전시를 축하했다.

개막식에서 사진비평가 이광수, 이규상대표가  말했듯이. 사진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들이 독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일제의 잔재와 한국전쟁에 의해 희생된 동족의 처참한 학살현장,
베트남에서 저지른 잔혹행위와 우리민족 치욕의 현장들을 샅샅이 찾아냈다.


이재갑의 사진들은 자극적이거나 이상적으로 치장되지 않고,
조용히 대상을 관조하며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사진작업들은 하나같이 역사의 이면을 조명했다.
정면에 기록된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묻힌 침묵의 역사였다.
바로 국가가 감춘 치욕의 역사였다.


또한 사족을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울림이 더 크다.
울분을 삼켜야 했던 사진가의 감정이 보는 이에게 바로 전달되었다.
이건 예술지상주의에 빠진 사진가들에 대한 일대 경종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부터 광대들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의 쓸쓸한 풍경을 보여주며 사진판에 등장했다.
모두들 무대의 화려함에 관심 가질 때, 그는 뒤에 숨겨진 것들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적 소수인 혼혈인 역시 냉담하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세상에 항변했다.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현장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과 일본에 흩어진 조선인들의
유산 작업, 베트남의 증오비 등 하나같이 패자의 한을 들춰냈다.

그는 머리로 찍은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작업해 왔다. 
상처투성이의 현장과 정면으로 맞서는 아픔 또한 컸을 것이다.
그 트라우마에 벗어나려 시작한 ‘뇌안의 풍경’ 역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건 기록과 기억의 역사를 넘어 개인의 주관적 기억을 담은 역사였다.   

가슴아픈 역사를 담은 대 서사시,  이재갑 ‘역사, 사진을 만나다“ 전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눈빛출판사 발행, 12,000원














개막식과 뒤풀이의 이모 저모










































































































2016년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다섯번째 '이재갑 론'이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시된다.


글 /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대교수)


사진가 이재갑의 작업은 과거와의 대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금까지 30년을 이어 왔다. 그가 대면하는 과거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여러 작은 목소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일반화 할 수 없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그마저도 글이나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질적이고 중층적인 과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록과 기억 그리고 역사의 재구성에 관해 분명하고 확실한 인식이다.

이재갑 작업은 세 개의 솥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역사'다. 역사 가운데 아픈 역사, 그 아픈 역사는 사람을 억압하고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식민과 전쟁에 관한 역사다. 그가 구성하는 역사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면에 등장한 것은 승리의 역사고, 환호의 역사일 뿐이다. 아픈 역사는 드러나지 않고 묻혀버린 침묵의 역사다. 이면의 역사, 이것이 이재갑 작업의 두 번째 솥발이다. 세 번째는 기억이다. 기록할 수 없는, 그렇다고 토해낼 수도 없는 트라우마. 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 이 기억에 대한 담론을 사진으로 작업한다. 이 셋이 모여 이재갑의 사진을 이루니 그것은 '아픈 역사를 이면과 기억으로 엮는 서사시'다.





1. 역사를 공유하는 방식

사진가 이재갑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작업은 논리적으로 매우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이 땅에 미국이 주둔하며 생겨난 혼혈인들에 대한 사진 작업으로 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혼혈인'으로 출발한 그의 아픈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기원을 찾는 방향으로 가면서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과 일제강점기 그들이 이 땅에 남기고 간 건축물 유산에 대한 작업과 일본 내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 연행과 관련된 유산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으로 간다. 그는 역사를 말하되 아픈 역사를 말하고, 아픈 역사를 말하되 그것이 남기고 간 유산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 유산이라는 것은 여러 역사가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것들이다. 그것을 국가가 정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잊어라 해서 잊히는 것도 아니다. 이재갑이 사진으로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그 아픈 역사에 담긴 중첩과 이질의 여러 면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그리는 아픈 역사는 항상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혼혈인'은 국가가 자유를 수호했다는 '국민'이 갖는 시선이 가려버리는 또 하나의 다른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미군이 공산당 빨갱이들의 침략을 지켜내는 은혜를 베풀어주었다는 국가 중심의 거시사에 던지는 의문이다.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 관한 두 개의 시선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작품,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남의 나라 민간인을 몰살한 것에 대해 이쪽에서는 영웅으로 기념을 하고, 저쪽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증오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개의 시선은 반드시 특정한 시선 둘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정된 둘이 아닌 드러나지 않은 여럿을 의미한다. 그것이 '혼혈인'에 관한 것일 때는 그들을 비정상 존재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된 그 피해자들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말하는 아픈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중첩되어 있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들의 문제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역사를 표상하는 대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할 뿐, 작가로서의 메시지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사진은 중의적이다. 보여진 그 이미지에는 보여진 것과 감추어진 것, 그 둘의 의미를 동시에 담는다. 역사를 다루되 아픈 역사를 다루고 그 아픔을 사진가가 웅변하지 않고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사진가가 그 아픔을 우선 가져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다.

사진가에게는 작업 때마다 부닥쳐야 하는 고통의 대면이다. 치부든 연명이든 자신의 사진이 삶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스러울 정도의 작가 정신을 가진 터라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그래서 아픈 역사를 다룬 사진가가 못내 아프다. 그의 사진을 읽는 독자들도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2. 이면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

아픈 역사는 이면에서 침묵하고 있는 역사다. 침묵하다 보니 존재하지 않는 듯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하다. 크고 강하고 진지한 다수의 목소리에 눌려 작고 약하고 사소한 듯한, 여러 목소리들이다. 사진가는 그것들을 듣고 싶어한다. 사진가 이재갑의 첫 작업은 무대 뒤의 모습을 담은 1991년의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이 보여주는 그 화려함에 관심을 가질 때 그는 그 뒤에 숨겨진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러운 연습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군상들의 모습이다. 그것이 무대든, 전쟁이든, 식민이든 이재갑은 드러난 것, 앞면, 승자의 모습 등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것, 기록이 아닌 기억, 기록이 언급하지 않으나 분명 실재한 것들, 사건이 남기고 간 이면에서 역사를 찾는다. 






  역사의 이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7년에 발표한 '혼혈인, 내 안의 또 다른 초상'부터다. 이 작업은 전쟁을 하러 (혹은 못 하게 하러) 온 미군이 남기고 (혹은 버리고) 간 그의 '사람'에 대한 작업이다.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의 이면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혼혈인'에 대한 존재론적 기록인데, 그 기록의 형식과 제기하는 문제의 깊이가 시간이 가면서 바뀐다. 초기의 작업은 혼혈인의 일상을 중심으로 찍었다. 사진의 초점은 얼굴 모습이나 그들 생활의 주변성에 맞추어진다. 1992년 2월부터 작업한 이 작업은 15년의 작업 끝에 '또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2006년에 발표된다. 사진은 냉담하고 무표정한, 메시지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재현했다. 어떻게 보면 토종 한국인이고 어떻게 보면 백인이거나 흑인이기도 하는 듯한 모습들이다.

그들이 순종과 잡종, 도덕과 부도덕의 이분법에서 후자로 분류되고 그래서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취급되어 '우리' 아닌 '남'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혼혈의 문제를 이른바 정체성의 문제로 올려 한국 사회의 병리를 지적함과 동시에 한강의 기적을 가져다 준 천조국 미국의 은혜에 묻혀 애써 쉬쉬했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낸 작업이다. 그런데 얼굴 사진 밑에 그 '혼혈인'이 소지하는 주민등록증이 제시되어 있다. 주민등록증은 공식적 정체성의 표상이다. 공식적 기록으로 명토 박아준 그의 한국인임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이재갑이 역사를 다루면서 처음 대상으로 삼은 혼혈이나 현재 가장 치열하게 작업하는 기념물의 공통점은 역사가 남긴 흔적 즉 이면이라는 사실이다. 사진가가 이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라는 건 전면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이면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승자의 기록이 진실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패자의 말, 기억의 말, 기념의 말 등이 모두 진실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재갑의 이면의 역사학은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사진가가 찾아가는 '진실'을 찾으러 떠나는 과정을 함께 보여줘야 사진의 역사학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라는 것이 그에게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독자가 진실을 찾는데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그 전시 안에는 사진가가 작업한 즉 진실과 만나러 갔던 길에서 사용했던 여러 가지 오브제가 설치된다.

그의 설치 전시가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말하는 장르의 크로스 오버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사진을 '진실'을 드러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거기에서 다른 오브제도 반드시 사용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재갑은 예술 지상주의에 철저히 떨어져 있는 사진가가 된다.

3. 기억을 끄집어내 상생하는 방식

이재갑의 이면으로 하는 역사 작업은 기억 문제로 연계된다. 기억을 문제 삼아 사진 작업을 하는 것은 대개 사건의 현장이나 유물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여주거나 기념물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이나 유품과 같은 1차 자료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불규칙적이고 이질적인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시도이다. 유물이나 유적이 가해자의 것이든 피해자의 것이든 그 역사적 경험을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기념물 같은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국가나 관(官)이 기억을 배제하고 역사를 하나의 기록으로 지배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재갑은 이 두 가지의 방식을 모두 사용하였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식민 일본이 한국에 남기고 간 적산가옥과 일본에 남긴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의 유산에 대한 작업이다.



역사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적산가옥과 서대문형무소 등 일제가 남긴 유산을 작업하면서 이재갑은 그 역사 안에 있을 한(恨)과 아픔을 기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서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역사의 현장에서 기억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 작업은 2008년의 한국전쟁 중 경북 경산의 한 코발트 광산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잃어버린 기억'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후 2012년의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 문제를 그들이 남긴 유적을 촬영하여 다룬 '상처 위로 핀 풀꽃'에서 그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그 사진들은 모두 어둡고, 음산하다. 대상이 어둡고 음산하여서가 아니다. 국가에 의해 학살되거나 국가가 방치한 채 끌려가 죽고 잊힌 그 죄 없는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사진가가 어둡고 음산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들의 비명이 있고, 물속에 수장돼버린 징용자들의 피울음이 있다. 동굴과 돌무덤에 갇혀 버린 한 맺힌 절규가 있다. 멈춰선 나가사키의 괘종시계에는 추모라는 이름 아래 애도는 없고 의례만 남은, 망각해가는 훼손된 역사의 시간이 있다.

이재갑은 2015년에 발표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을 통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 문제를 작업하면서부터는 기념물을 대상으로 기억의 역사를 작업하기 시작한다. 아픈 역사가 기념의 대상이 되면 그것은 이제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순간 이후부터는 각 개인의 잡다한 기억들은 모두 망각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된다. 사진가 이재갑은 바로 이 국가에 의한 역사 독점이 갖는 폭력성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에 이 시대의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추구하는 어떤 특별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기념물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사진가는 별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대상 그 자체가 국가주의의 폭력성을 충분히 갖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극적인 어떤 요소들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다.





이 맥락에서 이재갑이 굳이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게 있다면, 베트남 전쟁을 놓고 한국과 베트남 두 국가가 역사를 어떻게 이미지화 하고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삼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 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지만,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갖추지도 않는다. 결정적 순간을 담은 이미지도, 일부러 비틀어보는 프레이밍도 없다. 구조를 버리고 미시와 일상에서 역사성을 찾으려는 방편 같은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예의 이재갑만의 독특한 컬러를 쓰지만, 화각이나 앵글 등 사진을 구성하는 물성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베트남 기념물을 찍은 경우 일부에서는 셔터 스피드를 길게 잡아 마치 어떤 혼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정도가 다를 뿐, 기본적으로 둘의 재현 양식은 동일하다. 기념물은 권력의 이데올로기이다.

그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재현하고 구축해내는지를 독자들이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하는 두 나라의 기념물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서 보면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국가가 전유하여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국민을 의식화 하는 행위는 한국의 경우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기념물로 영웅 신화 만들기에서 한국이 훨씬 탁월함을 사진가가 드러내주는 것이다.

참전 군인이 아기를 안고 걸어 나오는 장면 같은 게 기념물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 아주 좋은 예다. 사진가는 그 장면을 그냥 찍어 보여줄 뿐, 특별히 다른 메시지를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때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사진가가 굳이 다른 짓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재갑이 20년 넘게 천착해 온 식민과 전쟁은 결국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사진가로선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으로 매우 힘든 작업이다. 역사가 말해주지 않고 국가가 묻어버린 그 아픈 과거의 한(恨)에 대한 기록을 20년 동안 작업해 왔다는, 그것도 역사학자들이 하듯 냉정한 이성으로 한 것도 아니고 뜨거운 가슴으로 해왔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더 이상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만큼 정신적으로 한계에 당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는 최근 '나'에게 다가서는 중이다


'뇌(腦) 안의 풍경', 사회와 역사에 대한 사진가로서가 아닌 '나'에 대한 주체로서의 사진가가 보는 풍경을 작업하는 중이다. 사진가 이재갑 개인이 주관적으로 하는 기억을 담은 풍경이다. 그의 뇌는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사진가의 그 풍경들은 이성을 떠나 보고, 듣고, 느끼면서 철저히 자기 자신만의 감정들을 자아낸 것들이다. 기록의 역사에서 기억의 역사를 넘어 '나'의 역사로 가는 사진가의 길,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 누구도 밟지 않은 길에 이재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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