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6시, ‘리얼 포토’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준비모임이

인사동 ‘푸른별 이야기‘에서 있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옛 사우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더구나 대전에 은둔하는 이석필씨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 날은 쪽방 관리인 정씨가 같이 갈 때가 있다며 저녁식사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어 방문을 열어보니 파리똥이 미끄러질 정도로 내 구두를 빤짝 빤짝 닦아 놓았다.

정씨가 빙그레 웃으며 ‘옛 친구 만나는데 구두가 더러워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난, 빤짝거리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아 여지 것 아무리 더러워도 구두 닦는 일은 없었는데,

닦아놓으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마 정씨는 군대 내무반시절 선임들 구두깨나 닦아준 것 같았다.

 

초라한 행색에 구두만 반짝거렸으나, 서둘러 나갔다.

 인사동에서 약속 있을 때마다 늦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라 늦장부리다 매번 시간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10분이나 빨랐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도 없어 약속장소가 바뀐 줄 알고 술집에서 나와버렸다.

김문호씨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뭔가 잘 못된 것 같아 돌아서려는데,

좁은 벽치기 골목에서 김문호씨와 이석필씨가 등장했다.

 

김문호씨야 전시장에서 가끔 만나지만, 이석필씨는 만난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술집에 먼저 자리 잡았는데, 이석필씨는 비슷한 연배지만 아들처럼 젊어보였다.

이 친구의 건강비결은 술을 마시지 않고 밥을 잘 먹는데 있지만, 본래 야생의 체질이다.

야생화 찍으려 산을 숱하게 돌아다녔는데,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며

물을 더럽힌다고 비누는 물론 세수도 잘하지 않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질이 생겨 그런지 비누를 사용한다고 했다.

 

막걸리와 소주에다 김치찌게를 시켜 한 잔하고 있으니 안해룡씨가 나타났다.

김봉규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일이 있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네 사람이 만나 한 잔하는 자리가 오붓하기는 했으나, 왠지 씁쓸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는데,

기념전을 어떤 식으로 치룰 건지 의논하는 자리였으나,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작업을 소환하느냐 아니면 지금 작업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압축되었는데,

그야 당연히 지금의 작업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떤 공동주제를 내세워 짧은 시일이지만 집중적으로 작업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왜 중요한 모임에 다들 참석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면 모를까 별로 관심 없는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결론도 얻지 못한 체 케케묵은 이야기나 근간의 사진계 이야기를 안주로 술만 마시다

대전까지 가야 할 이석필씨가 먼저 일어났다.

 

술값 품앗이로 돈을 냈더니, 안해룡씨가 슬쩍 돌려주었다. 고맙긴 하나 마음은 편치 않더라.

소주 한 병이면 주량보다 좀 과하게 마셨으나, 그냥 집에 가기는 싫었다.

지척에 있는 ‘유목민’에 들렸더니, 전활철씨가 반겨주더라.

술보다는 시원한 콜라 한 잔 얻어 마시고 녹번동 가는 3호선을 탔다.

언제나 술이 취하면 동자동으로 가지 않고 녹번동 가는 이유는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서다.

다만 마스크 쓰고 지하철 타는 시간이 길어 곤욕스럽기는 하나 정영신씨 만나는 기쁨도 크다.

 

난,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지고, 쪽팔리는 것도 잘 모른다.

술 값 돌려받은 돈으로 꽃집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산 것이다.

정영신씨에게 알랑방귀 뀌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가 너무 섹시해서다.

초라한 늙은이가 꽃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문을 들어서니 세수하던 정영신씨 표정에 미소가 감도는 걸 보니, 쪽팔렸지만 잘 했다싶다.

 

오늘의 결론은 안 하고 입 닦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고,

하려면 의미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자리에 누워 뒤척인 긴 시간의 피로를 걷어내려 촛불 아닌 카메라를 잡았다.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지난 5일 오후3시 무렵, 지하철 서초역에 도착했다.




혼잡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으나,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태극기부대가 남용해 혐오감을 느껴 온 태극기를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로터리를 중앙으로 사방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전체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되지만,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어야하지만 협력할 ‘광화문미술행동’ 팀도 찿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밀려다니느라 자리 옮기기가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판화를 찍고 있는 김구씨를 찾았다.
판화 찍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신없었다.
한 쪽에 보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따라 들어가니, 서예 퍼포먼스는 이미 끝난 후였다.

강병인, 정고암선생께서 글을 쓴 모양인데, 주위에선 풍물패가 신명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글 써놓은 현수막에 드러누워 악을 써는 여자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손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난번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여기자 성추행 비판을 염두에 둔 해프닝인 것 같았다.
경찰도 손댈 수 없어 결국 여경들을 불러와 끌어냈다.




그 곳에서 반가운 분들을 줄줄이 만났다.
김진하씨를 비롯하여, 김진열. 류연복, 박윤호, 정영신, 이재민, 장경호씨를 현장에서 만났고,
또 다른 곳을 지나다 김재홍씨와 손기환씨를 만났다. 뒤늦게는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도 만났다.
페북에서 만나자고 한 기국서씨와 신윤택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곳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사진가 하형우씨를 만나 김문호씨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수철, 정영신, 박윤호씨 등 사진가 여럿명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



나오다보니 편의점 앞 탁자에 반가운 분이 앉아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정덕수시인이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류연복, 김이하, 김진열씨도 찾아왔다.



시골에서 온 정덕수씨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오기에
“오늘 집회서 받은 일당 받은 것 다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일당은 커녕, 일 제쳐두고 찿아 오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오로지 개검들 조지고 싶은 충정 하나로 돈 써가며 몰려 온 사람들이니까...




검찰개혁을 외치는 함성이 서초동 일대를 뒤 덮었다.
그 함성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며,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은 기라도 보태려 나왔으나, 오히려 기를 받아 힘이 흘러 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세가 하늘을 찌르니, 어찌 힘이 솟지 않겠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조국장관 수호에는 이견도 있다.
그분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정치검찰로 목숨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조국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 때를 떠 올린 것이다. 
군중들의 손에 잡힌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가 잘 말해주었다.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대표적인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로 두 사안은 붙어 다녔다.
무대에는 소설가 이외수씨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했다.

신나는 공연도 이어졌는데, 그 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탈 없이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준 대단한 국민이었다.




지난 10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국기 집회와, 5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수도 서초동이 더 많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자유한국당에서 동원한 집회와 자발적인 집회라는 차이점이 분명하고,
정당이 표면에 나선 것과 시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달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폭력에 의한 분노가 일었고, 한 쪽은 평화로운 놀이마당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세우는 논리나 어휘의 차원이 달랐다.
태극기부대에서 내세운 구호이긴 하지만 “문재인을 단두대로, 박근혜를 청와대로”란 현수막도 있었다.
이런 저질의 구호는 자유한국당 얼굴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태극기부대와는 거리를 두지만...
허구한 날 빨갱이 타령으로 덕 보더니, 저들 하는 짓이 빨갱이와 다를 게 뭐 있는가?
괜히 맛 불 놓는다고 돈만 쏟아 붙지만 헛짓 그만해라. “국 쏟고 뭐 디이는 격이다“




이제 보수정당과 연대한 정치검찰과 부패언론의 더러운 권력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긴 세월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다, 그 이후는 양놈에 달라붙어 죄 없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제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라. 꼴통보수 정치인이건, 부패 검찰이건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7일은 고 노회찬의원의 영결식이 있던 날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엉뚱한 일로 무산되고 말았다.

용산경찰서사이버수사대에 출두하여 조사받는 날과 겹쳐진 것이다.


 

3년 전 수난 당하는 동강할미꽃, 최초 발견한 사진가는 이석필씨다.”란 글을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뒤늦게 야생화 사진작가 김정명씨가 명예혜손으로 고소장을 접수시킨 것이다.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지가 숱한 시일이 지나도록 감감소식이었는데,

뒤늦게 주소지인 용산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가 찍어 발표한 동강할미꽃 사진이 야생화의 생태를 헤치는 잘못된 방법이라는 점과

알려 진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을 바로잡기 위해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실과 달리 동강할미꽃 최초촬영자로 나서며 정선군의 명예군민증까지 받지 않았던가?

동강할미꽃 사진은 그가 촬영하기 10년 전 태백의 야생화사진가 이석필씨가 먼저 찍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1999년 동강환경사진집에 실린 이석필씨의 동강할미꽃 사진만 하더라도 김정명씨가 만든 야생화 달력보다 앞서고 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찍었냐보다 동강할미꽃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거나 꽃에 붙어있는 마른 풀을 뜯어내는 등

생태환경을 파괴하여 내 놓은 그의 사진에 있는 것이다.

야생화사진을 심사할 위치에 있는 중견사진가의 꽃 사진이 그러할진데,

어찌 사진 배우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그의 사진을 따르지 않겠는가?

그 글을 올린 것도 따라하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만행을 근절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야생화사진이란 생태를 파괴하는 것 보다,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지,

김정명씨 개인에 대한 감정이 있거나 명예를 혜손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변명으로 일관된 고소장을 읽어보며,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몇 가지 챙겨간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조사시간이 세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며 동자동으로 돌아왔으나, 곧 바로 인사동 유목민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모처럼 인사동에서 술 한잔하자는 사발통문을 받은 것이다. 

반가운 인사동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야 마다할 수 없지만,

노회찬의원의 영결식이 있는 27일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스스로의 약속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동안 술자리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술을 사양해 왔고,

그제 밤에는 어머니 제사를 지내면서도 음복 한 잔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약속장소에는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조해인, 장경호, 공윤희, 전활철, 박혜영, 김상현씨가 먼저 와 있었고,

뒤늦게는 유진오, 정영신, 이인섭, 이 현, 황예숙, 박상하씨도 나타났다.



모임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때로는 당사자의 반감으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들을 했으나,

잘 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데 어찌 친분을 따질 수 있겠는가



오는 8월25일 아들 햇님이 장가 갈 걱정에서 부터, 속도위반으로 손자를 얻어 일타 쌍피를 쳤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하필이면 사돈 될 두 내외가 16년 전 영월 천포문학회에서 거시기 퍼포먼서로 난리 친, 그 집 주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조준영교수는 한 수 더 떠 내가 찍은 그 때 사진을 핸드폰에서 보여 주었다.



조준영교수는 쪽 팔린다며, 부인의 투정을 털어 놓기도 했다.

화가 이청운을 검색해보니, 죄다 조준영씨와 술 마시는 사진만 나오더라는다.

"이젠 같이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너무 탓하지 마시라요."



사실 사진판이나 문화예술계는 물론 즐겨 찍는 인사동이나 동자동 사람들 대개가

가깝거나 잘 아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부터라도 정신차려야 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며 더 이상 쪽팔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중엔 왕따가 되어 외로워지더라도 내가 할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노회찬의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피할 수 없는 관심이었다.

문대통령이 문상은 가지 않으면서 장례기간 중에 광화문 호프집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맥주 쇼를 벌였다는 이야기다.

정치 자체가 쇼를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정치적 동지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기야 박원순 시장까지 옥탑방에서 쇼를 벌이고 있지 않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쇼에 넘어가는 순진함에 있다는 것이다.


 

장경호씨는 인사동 모임을 묵사모로 하자고도 했다.

민초연대로 하면 참여할 사람이 많겠지만, ‘묵사모가 더 좋다는 것이다.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默思의 뜻은 좋으나 단번에 묵사발이란 말부터 떠올라 좀 그랬다.

하기야 모임의 진정성이 더 중요하지 그까짓 이름이야 무슨 소용이랴!

단지, 술 마시고 노는 모임에서 인사동을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모임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말았다.

고인도 그 시간엔 편히 영면에 들었겠지만, 숱한 시름을 술잔에 풀어놓고 말았다.


 

부디 이 땅에 진보정치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늘나라에서나마 잘 지켜주소서!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열길 벼랑에 처량하게 핀 동강할미꽃이 슬프다.

2018년 04월 06일 (금) 01:33:23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정선의 동강할미꽃이 피어나야 강원도의 봄은 시작된다.

정선읍 귤암리의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가 마련한 제 12회 ‘동강할미꽃축제’가

지난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동강생태체험전시관’일원에서 열려, 봄나들이 한 상춘객들을 맞이했다.



▲ 귤암리 벼랑에 피어있는 동강할미꽃 Ⓒ정영신


‘동강할미꽃’은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애틋한 연인의 연모가 조양강 뼝대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강할멈과 할아범에 대한 그리움이 동강할미꽃으로 피어난다는 소문도 있으나 아무런 근거는 없다.

꽃이 알려진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전설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해, 자칫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 ‘동강할미꽃보존회’최완순 회장 Ⓒ정영신


동강물줄기를 굽어보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동강할미꽃은 머리카락 같은 미세한 뿌리가 바위틈에 들어가 자생하는 꽃으로,

마치 강원도 산골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애착이 간다.

산소에 피어나는 고개 숙인 할미꽃과는 다르게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동강할미꽃에서 신비로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 내빈축사하는 신주호 정선부군수 Ⓒ정영신


동강할미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88년 야생화 사진가 이석필씨가 최초로 촬영할 당시에는 강을 건널 땐 다리가 없어 헤엄을 쳐서 건너갔다고 했다.

이석필씨는 그 당시 들꽃이 살아가는 환경 차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후에 사진가 조문호씨가 이끌어온 '환경사진가회' 일원으로 활동하며

최초에 찍은 할미꽃 사진을 환경사진집에 발표한 것이다.

그 이후 1997년 김정명씨가 동강할미꽃을 찍은 꽃 달력 사진을 본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박사가

2000년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달아 세계 유일종으로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 1988년 4월 야생화사진가 이석필씨가 최초로 찍은 동강할미꽃

(1999년 발행된 '동강' 환경사진집에서 스크랩)



한국특산종인 보랏빛 나는 ‘동강할미꽃’은 정선, 영월, 삼척, 태백 등, 석회암지대에서만 서식하는데,

그 중 굽이굽이 절벽으로 이어진 정선 귤암리의 아름다운 경관 속에 피어나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그 이후 귤암리 주민들이 협력하여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가 만들어지며, 2008년 정선군 군화로 지정된 것이다.

또한 동강할미꽃은 2,000년 동강댐 건설 백지화 결정에도 크게 기여한 식물이다.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 최초의 신종으로 추정되는 7종의 동식물과 20여종의 멸종위기동식물 보호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동강 댐 설치를 막은 것이다.





▲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공연 Ⓒ정영신


구구한 세월동안 석회암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 온 이름 없는 야생화가 세상에 알려지며,

사진인들이 몰려드는 등 오히려 수난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또한 꽃이 피는 4월이 되면 야생화를 사진에 담으려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사진인 들이 많이 생겨난다.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꽃의 습성이나 주변여건까지 함께 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꽃만 부각시키기 위해 꽃을 보호하는 주변의 마른 풀을 다 뜯어내고,

심지어 꽃잎에 물을 뿌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제12회 동강할미꽃 축제'에 참석한 내빈들모습 Ⓒ정영신


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의 모임인 ‘동강할미꽃보존회’에서 생태계를 보호하려 공을 들이고 있다.

야생화가 있는 모습 그대로 자랄 수 있도록 둬야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축제로 인해 자연생태환경이 몸살을 앓아 온 것도 사실이다.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은 인간의 숨소리와 입김마저도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 귤암리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 Ⓒ정영신


강원도 문화관광해설사인 서덕웅씨는 “사진을 예쁘게 찍으려고 잎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손을 타기 때문에 수정되지 않는다.

분별한 사람들의 행동이 자연을 죽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덕웅씨는 지역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동강할미꽃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 동강할미꽃지킴이 서덕웅님 Ⓒ정영신


이날 열린 ‘제 12회 동강할미꽃축제‘ 개막식은 정선 군립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동강할미꽃보존회’ 최완순 회장의 개막선언과 신주호 정선부군수 등 내빈의 축사가 이어진 후,

다양한 공연과 전통놀이 마당, 동강할미꽃 심기 등의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다.



▲ 동강할미꽃 심기 Ⓒ정영신


축제가 펼쳐진 생태공원에는 수필가 우애자씨가 준비한 한복체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복과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느 지역을 가보아도 똑같은 행사를 진행해 지역적인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줄 모르고, 타지의 가수를 초청해 흥을 즐기는데,

차라리 정선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 정선아리랑을 관광객과 함께 배우는 시간이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 떡매치기 하는 관광객 Ⓒ정영신


이번 축제엔 필자의 ‘장터 사람들’과 조문호씨의 ‘산골 사람들’ 사진전이 열려 멀리서 지인들이 찾아왔는데 다들 불편하고 불쾌감을 호소했다.

축제장으로 올 수 있는 교통편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손님을 맞을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정선터미널에서 축제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야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대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산골사람들'사진전시에서 만난 사진의주인공 이선녀씨와 사진가조문호 Ⓒ정영신



요즘은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축제의 전성기다.

그러나 지역적인 특색은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행사로 관광객들을 식상하게 한다.

지역축제는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소중한 체험을 통해 지역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7일 정오 무렵, 박노철씨의 “폐광, 그 흔적을 묻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류가헌‘을 찾았다.
폐탄광의 환경오염을 오년 동안 기록한 전시였는데, 여지 것 붉은색의 황변현상은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하얀색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은 처음 보았다.

마치 물감을 뿌린 듯 아름답게 채색되어, 환경오염이 아름답게 보이는 아이러니도 엿보았다.

비록 폐광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만이 아니라 이미 환경오염은 지구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폐광의 환경오염을 안타까워하며 현장을 누비고 다닌 작가의 집념어린 노고가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태백은 산업 고도화에 발맞춰 수십 년 동안 자원개발을 통해 국민들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으나,

광부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주변 환경의 수질 및 토양에 심각한 오염현상을 유발하였다.

‘청정지역을 오염시키는 폐탄광 중금속 오염원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며 작가의 문제의식을 표출하기도 했다.

카드뮴, 비소 등 중금속에 오염된 폐탄광의 폐수는 물에 녹아 있는 탄산칼슘이 고체 상태로 석출되어

흰색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과, 엽록소 생성에 필요한 원소의 결핍으로 황변화현상이 발생한다는데,

흐르는 하천만이 아니라 지하수의 오염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작가는 환경오염을 고발하거나 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기록했으며,

이번 사진집 출판과 사진전도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환경오염을 개선하는 학술적 자료로서의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 했다.

박노철씨를 처음 만난 지는 20여 년 전 ‘동아국제사진전’ 태백 순회전 때, 이석필씨를 통해서다.

그 뒤 정선에서도 만난 적이 있으나, 세월의 흘러 그를 잊어버렸는데, 아직도 젊은 그대로였다.

지금은 ‘사협’ 태백지부장을 맡아, 자기 작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대개 공모전 위주의 사진을 선호하는 ‘사협’회원들을 제대로 된 사진가로 여기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작업에 열성인 작가가 있다는 것도 박노철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태백에는 탄광전문 사진가가 여럿 나왔다. 오래전에 찍은 주동호, 이석필씨를 비롯하여 김재영, 박종호씨,

그리고 이번에 전시를 연 박노철씨,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유명세를 떨친 박병문씨,

현역광부로서 탄광을 찍고 있는 전제훈씨 등 많은 탄광 전문가를 배출했다.

오래전에는 태백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모여 탄광에 대한 기획전도 열었다는데, 그 전시도 궁금했다.

태백은 작은 소도시지만, 사진 열기만은 뜨거운 지역이다.

전시를 관람하며 반가운 분들도 만났다. 작가를 인터뷰하러 온 ‘서울문화투데이’기자 정영신씨와

대전의 김은환씨, 그리고 90년도 초반 ‘사진집단 사실’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인들도 여럿 만났다.

이석필씨와 김문호씨,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김봉규씨를 한꺼번에 만났다.


이석필씨는 그동안 찍은 수많은 필름들을 모조리 불태웠다는데, 왜 그랬을까?

그렇다고 사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풍수지리에 관한 사진에 전념한단다.

좌우지간 그의 삶은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지만, 깨우칠 점도 많은 사람이다.

지붕 위에 깃대만 꽂으면 영락없는 도사인데, 상대방의 사주팔자까지 꽤고있다. 


다들, 흐르는 세월 따라 늙어가고 있지만,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진가들이다.

늦은 오찬을 함께 하고 나오는 길에 사진가 엄상빈씨도 만나는 반가운 하루였다.






이 전시는 서울 ‘류가헌’ 전시에 이어 7월15일부터 18일까지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도 열린다.

또한 ‘눈빛출판사’에서 오늘의 다큐5집’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 박노철 사진집(25,000원)도 펴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 정영신과의 데이트는 대전으로 향했다.

유성 계룡산 입구에 자리 잡은 이석필씨 작업실로 찾아 간 것이다.

 

전국에 있는 정자를 찍어 온 조유성씨 사진집 발문을 쓰 달라는 부탁으로 갔는데,

신판 도사의 작업실은 엄청 현대화 되어 있었다.


컴퓨터 다섯 대가 놓여 있는 방에는

디지털 프린트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어여쁜 처자를 둘이나 거느리고 있었던 것이다.

 

늦은 저녁 먹으러 가서 말했다.

 

그 사진집의 글은 내가 쓸 것이 아니라,

정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학자에게 맡기고,

난 전시를 하게 되면 전시리뷰나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돌필 도사는 하늘과 교신을 수시로 한단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한 가지 물어 보았다.

박근혜 교도소 들어 갈 날자가 언제고?

너무 깝치지 마라.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그 다음 문제는 아직 교신이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난데없는 놈이 끼어 차, 또 말아먹을까?

 

사진, / 조문호












정영신의 ‘장날’ 사진전이 열리는 동안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첫 날은 한꺼번에 오시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그 다음 날 부터는 마치 순서대로 오시는 것처럼,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8일의 인사동은 가랑비가 오는 듯 마는 듯, 술 마시기 좋은 촉촉한 날씨였습니다.








전시장에는 이런 시간부터 울산 오세필씨를 비롯해 국민은행의 여성임원들이 찾아왔습니다.

엊 저녁 유목민에서 뵌 분이나, 전시를 보러 다시 왔다는 것입니다.

좀 있으니, 그저께 다녀 간 가수 최백호씨가 다시 왔습니다.

최백호씨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그는 다재다능한 후배입니다. 노래 뿐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고, 시인 못지않게 글도 잘 씁니다.

오래동안 라디오에서 MC 일을 맡다보니 말도 구수하게 잘하는데다, 공연기획에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토탈 아티스트인 셈이지요.

오래전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제작비가 큰데다 주위의 만류로 좌절했으나,

이제 그 문제점을 해결한 후, 다시 꿈을 펼쳤답니다.














그의 새로운 영역 개척에 큰 기대를 걸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화가 허미자씨와 공윤희씨가 왔습니다.

그리고 페친이며 사진하는 후배 홍윤하씨도 왔습니다.

미아리에서 열리는 텍사스 프로젝트를 보고 왔다는 정보를 주었습니다.









이 '텍사스 프로젝트'는 작년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전시한 588전시 때, 동참의 제안을 받았으나,

일정이 임박한데다 야외 설치라 사진손상을 우려해 거절한 일이 있어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오세필씨가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기에 정영신, 공윤희, 홍윤하, 연극하는 처녀 한 분과 여자만'으로 갔습니다

일인분 45,000원이라는 정식에 술 까지 마셨으니, 괜히 부담 되더군요.

    





그 이틑 날인 29일에는 지하철 종로3가에서 내려 인사동으로 들어오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춘천의 김대영씨 전시 보러, '백송갤러리'부터 갈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에 작가는 없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고감도 필름에서에서나 볼 수 있는 조립자로 그린 자연 형상들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장날' 전시장에 들리니, 김중호, 심지윤씨가 지키고 있었고, 오프닝 때 도와 준 음식 장식 전문가 최소연씨도 왔습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할 계획인 양동 쪽방 사람들에 도움 줄 시나리오 작가 최건모씨와 사회복지사 김성규씨도 왔어요.














잇따라 화가 김하은, 황정아씨도 찾아왔고, 원로사진가 황규태선생과 사진가 Area Park이 다녀갔고,

미국에 거주하는 전기작가 이충렬씨도 왔습니다.

이충렬씨는 간송 전형필을 비롯하여 한국미의 순례자에 이어 , 김수환추기경을 펴낸 작가지요.


얼마 전 각종 메스컴에서 김수환추기경 책 소개가 대서특필되었지만,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데,

이번에는 전국의 성당을 돌며 김수환추기경의 사회정의와 인간존엄이란 주제로 강연을 합답니다.

제일 먼저 잡힌 일정은 오는 922일 오후8시부터 10시까지 불광동성당에서 갖는다니,

시간되는 분들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기록하러 갈 예정입니다.

 

























마지막에 나타난 친구는 사진하는 이돌필과 김은환씨 였는데, 이석필씨는 사진보다 심령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짐작키로 아무도 찍어보지 못한 심령사진을 염두에 둔 듯 했습니다.

화가 서길헌씨와 유카리관장 노광래씨가 나타나 하루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유목민에서 여러명이 만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돌필대사가 계산을 해 버렸습니다. 오늘 복채 좀 받았던가?

골목을 지나치던 사진가 안영상씨와 화가 장경호씨를 만나, 마지막 술 잔을 나누었지요.

다행스럽게도 같은 방향인 노광래씨가 차까지 태워 줘 편안하게 귀가 했답니다.

    











전시 철수하는 날인 30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나갔습니다.

충주에서 지용철씨도 오기로 했고, 태백의 박병문씨도 오기로 했거던요.

전시장에 도착하자 말자, 지용철씨가 여성 한 분과 오셨고, ‘나무화랑 김진하관장도 왔습니다.

모두들 철수하기 전에 서둘러 왔다는 것입니다.









뒤 이어 박병문씨가 찾아 와 함께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는데실내장식하는 최영문씨가 나타나 갈팡질팡하게 만드네요.

최영문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박병문씨와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와 참치구이로 식사를 했습니다.

두 시무렵, 전시를 철수하여 짐을 옮기고는 다시 인사동에 나와야 했습니다.

    







조준영시인과 메비우스관장이었던 기획가 김권선씨와 저녁 약속이 있었거든요.

인사동 마중에서 만나 술 한 잔 했지요. 

마중의 막걸리는 맛은 있으나 빨리 취하는 술입니다. 술 취해 돌아오다 유목민에 잠시 들렸더니

김명성, 전인경, 공윤희, 오세훈, 이상훈씨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딱 한 잔만, 딱 한 잔만, 하다 맛이 가버렸네요.

 

















이상으로 보고를 끝 냅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청량리588'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시인 강 민, 이행자씨, 서양화가 김영덕, 박불똥씨, 미술평론가 박용숙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오마이뉴스 박 건 시민기자, 전통염색인 이명선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지만,

다른 개인전 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진가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느라 바쁘고, 일하느라 바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우들을 요즘 이산가족 만나 듯 만난다.

그동안 사는 곳은 물론 전화번호까지 몰라 연락주지 못했으나, 어떻게 알았는지 모두들 찾아 온다.

지난 7일에는 대전에 사는 이석필씨와 그의 조카 이주영씨를 비롯하여  박옥수, 양재문, 신동필,

유성준, 최영규씨를 만났고, 사진평론하는 최건수씨는 많은 아마츄어 사진인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지척에서 룩스갤러리를 인수하여 운영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늦은 시간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엄상빈, 이젬마, 김지연씨를 모시고 와 즐거운 주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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