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영의 ‘낙성대 산다’ 사진전이 오는 27일까지 관악구청 앞 ‘가득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는 거창한 무엇을 찾아나서지 않고, 가까이 있는 주변을 기록하는 사진가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눈에 익은 것들에 소홀 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적 소재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등 붙이고 사는 가족이나 터 잡고 사는 마을보다 잘 아는 게 어디 있겠는가?

잘 아는 것과 생소한 것 중에 뭘 찍어야 좋은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양시영은 자신이 사는 낙성대를 오래 동안 기록해 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시사철 스치는 주변을 관찰하며 순간을 포착한다.

대상과의 교감을 이루기 위해 큰 소리 내지 않고 소곤소곤 말한다.

 

그래서인지 양시영의 사진은 보는 사람을 참 편안하게 만든다.

긴 세월동안 기록한 양시영의 낙성대 이야기는 이제 역사가 되어 켜켜이 쌓여간다.

사진 속에 사람 냄새나는 따뜻함과 멋도 풍긴다.

 

그는 힘든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주변의 가난하거나 소외된 자를 돕는데도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며 함께 찍어왔다.

사진이 더불어 사는 방편인지도 모른다.

 

장애인 자립센터 사진반도 만들었다.

'사진으로 마을에서 놀기', '난곡난향 도시재생 별별사진' 등

이웃과 어울려 전시를 하며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에는 사람의 온기가 묻어난다.

 

요즘들어 여러가지 이유로 전시장에 잘 가지 않지만, 이 전시는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작가의 성실하고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 나고 작품 나는 것이다.

 

이 전시는 27일까지 열리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가득갤러리’[02-877- 3348]는 관악구청 앞에 있다.

 

글 / 조문호

 

 

지난 25일은 ‘말하고 싶다’ 전시 지키러 인사동 가는 날이었다.

집 나오며 페북에서 본 미투 소식에 억장이 무너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공공장소에서 무슨 성추행을 한단 말인가?

어 다르고 아 다를 수 있으나, 한 식구로서 친밀감에 비롯된 언행이 아니겠는가?

 

양심적인 박원순 시장 죽음에도 쌍심지를 켜더니, 또 일을 쳤구나.

 갈아 치워야 할 적폐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메갈이 도대체 뭐길래 그것만 물고 늘어지는가?

그런 몰인정한 인간들이 정치판에 득실거리니, 어찌 정치가 개판이 아니겠는가?

 

인사동 거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으나 내 눈에는 잿빛으로 보였다.

버스킹 나온 번개는 때 이른 ‘봄비’를 청승스럽게 부르고 있었고.

또한 젊은이의 ‘베사메무쵸’ 연주가 어찌 그리 애잔하게 들리는지 콧잔등이 시리더라.

내 평생 '베사메 뮤쵸' 선율에 슬퍼한 적이 있었던가?

 

‘나무아트’에 올라가니 김진하관장이 먼저 와 있었다.

노트북을 챙겨왔으나 도저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박재동씨 만평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시중인 박재동씨와 하일지씨도 가짜 미투에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도대체 무슨 억한 심정으로 돌을 던졌는지 모르지만,

돌 맞은 자는 아직까지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궁지로 몰아넣어야 성이 차겠는가?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감정으로 상대를 미투로 매장시키는 짓을 밥먹듯이 하는데,

더 열 받는 것은 좋을 땐 죽자 살자 자빠지다 다른 목적으로 뒷다리 거는거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문제 삼아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장 시키는 무서운 무기로 성을 이용한다. 

그 사랑 놀음을 남자만 좋아하는 것이더냐? 인간의 본능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일손을 놓고 있었으나, 관람객은 띄엄띄엄 들어 왔다.

작품들을 돌아보다 이하씨의 “두환이를 살려내라“ 앞에서는 하나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마루'에서 전시 중이라는 안병남씨는 박건씨의 작품을 관심있게 살펴보더니,

작가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도 했다. 

 

사진가 양시영씨와 박윤호씨는 전시장을 두 차례나 들렸다.

고맙게도 양시영씨가 내 사진을 사겠다며 돈을 주었으나, 반갑지도 않더라.

 

다섯 시 무렵, 김진하관장이 들어옴에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 나왔다.

'유목민’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약속도 했지만, 도저히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골목 어귀에 접어드니, 멀찌감치 사진가 김수길씨와 ‘샘터’ 이종원 편집장 모습이 보였다.

김수길씨야 가끔 만나지만, 이종원씨는 너무 오랜만이었다.

 

술집에는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최석태, 장경호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뒤이어 최민화, 임경일, 박윤호, 최원규, 이인섭씨 등 많은 분들이 들어 왔다.

 

다들 얼마 만이냐? 마치 코로나 시절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더구나 최민화씨는 같은 동네 후암동 살지만, 몇 년만에 만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전활철씨가 김기덕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라트비아에서 화장한 유골을 가져와 몇 몇 지인들이 조촐하게 장례를 치루었단다.

그 역시 미투에 매장되어 외국을 떠돌다 전염병에 걸려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국위를 선양한 그의 예술성을 그처럼 무자비하게 짓밟아야 했는가?

 

술을 제법 마셨지만, 취하지도 않았다.

이런 기분이면 사고치기 딱 좋은 상황이라, 아쉽지만 먼저 빠져나왔다.

 

이제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여자 보기 무서버 어느 놈이 기집 가까이 가겠나?

이러다 인간 멸종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웃의 삶과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집들이 몇 달 동안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인간관계를 이어가며 마을의 역사를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숨은 노력의 결과다.

 

대표적인 사진집으로 수몰을 앞두고 찍은 마동욱씨의 ‘아! 물에 잠긴 내 고향’이다.

20여년 전 장흥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된 장흥군 유치면 일대

수몰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집이다

 

정들었던 집이 포클레인으로 부서지는 장면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의 

눈물이 담긴 장면 장면들이 2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세상에 나온 것이다.

 

수몰지역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얼마나 그립고 반가웠겠나?

그건 누가 시켜 한 것이 아니라 한 사진가의 고향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진을 기록한 마동욱씨는 수몰지역 외에도 탐진강을 비롯하여 장흥, 영암, 강진, 보성 등지를

기록하여 여러 권의 사진집을 펴낸바있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이번에 출판된 마동욱씨의 ‘아! 물에 잠긴 내 고향’ 사진집 (가격12,000원)은

눈빛출판사의 '눈빛사진가선 065'로 발행되었다.

출판기념전이 장흥읍 평장리 새마을 창고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두 번째는 한센인 정착촌인 강원도 대명원 만종마을 주민들이 직접 찍은

‘만종' 사진집도 나왔다.

 

사진가 노은향씨를 주축으로 결성된 '좋은 사진 모임 포트인' 회원들의 지도와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김동한, 김연태, 김정희, 신순재, 전석권, 제갈귀자, 이종애, 윤순심, 허정자씨 등

아홉 명의 주민이 직접 기록한 의미있는 사진집이다.

 

절망에서 희망의 삶으로 바꾸게 된 만종마을 주민 뒤에는

노은향씨를 비롯한 사진가들의 따뜻하고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외부와 단절되어 소외된 삶을 살아온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가 그리 쉬웠겠는가?

 

지난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만종, 60년만의 외출’이란 제목의 전람회도 개최한 바 있다.

 

사진 기록에 참여한 주민들이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 나오는 성황을 이루었는데,

그동안의 노력과 보람에 따른 고마움에 눈물짓는 정겨움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서울 이화마을을 기록한 사진가들이 ‘낙산 아랫동네 이야기’ 사진집을 펴냈다.

 

재개발에 의해 서울의 골목이 하나 둘 사라지고

오래된 집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진가들의 노력에 의해서다.

 김수길씨가 주축이 되어 이대형, 이정은, 이용민, 최재현씨가 나선 것이다.

 

서울시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진행한 ‘낙산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김수길씨를 비롯한 사진가들이 합류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십년 간의 기록이 집대성되었다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쉼 없이 기록해 온 사진이라 그 가치가 더 큰 것이다.

 

그동안 해마다 동내에서 빨래줄 전시를 열어 주민들과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어 왔다.

동내 관광화에 따른 주민들과의 갈등을 풀어가며 이룬 성과라 그 의미도 남다르다.

 

네 번째 사진집은 사진가 양시영씨 지도로 난곡 주민들이 직접 기록한 ‘난곡난향‘ 별별 사진책이다.

 

2018년부터 양시영씨를 비롯하여 김미숙, 김숙희, 박우인, 서민경, 오순환, 유순덕, 유현만,

이양자, 전영석씨등 열 명의 주민이 참여하여 난곡 난향마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곡난향 도시재생사업에 힘을 얻기는 했지만,

사진가 양시영의 마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정경과 마을사람의 삶의 무늬를 담아낸 난곡난향 사진집에는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사랑과 사진기록에 대한 자부심도 담겨있었다.

지속적으로 이어 간다면 먼 훗날 난곡마을의 소중한 사료집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일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19’로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세태에 나온

마을 공동체 사진집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에 출간된 마을 사진집 외에도 '구룡마을', '동자동' 등 소외지역을 기록하는 사진가도 있다.

이웃 사랑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노력과 성과에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글 / 조문호

 

‘낙산 아랫동네 이야기’ 사진집에서

‘만종, 60년만의 외출’ 사진집에서



촛불이 광장을 뒤덮을 때마다 앞장서서 축제의 마당으로 이끄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된 ‘광화문미술행동’이다.



‘시민나팔부대’가 나팔과 풍물로 신명을 끌어 낸다면,
‘광화문미술행동’은 예술 행위로 집회의 격을 높이며 시민 행동에 자긍심을 심어준다.



시민들에게 찍어 주는 판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역사적 사료로 자리 할 것이고,

예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다.




3년 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시작된 ‘광화문미술행동’은 참가 작가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정치적 논쟁만 터지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 사태가 마무리되면 흩어진다.

회비도 회칙도 없는 자생조직이다.



핵심적인 일은 판화가 김준권씨와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맡지만.
80년대 민주항쟁 시절부터 온 몸으로 싸워 온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었다.




1980년대 미술을 통해 현실에 저항해 온 노력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괘를 같이한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민중미술은 역동적이라 온 몸에 피가 솟구친다.
삶의 현실과 직결된 그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심미적 작품과는 격이 다르다.




지난 12일 열린 제9차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평소보다 빨리 나갔다.
광화문과는 달리 장소가 협소하여 군중 속에 파묻히면 찿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전1시 무렵 서초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가는데, 뜻 밖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우리들의 영원한 우상 방동규선생께서 사모님과 계셨는데, 첫 일진이 좋았다.

며칠 전 과도한 중량의 역도를 하다 근육이 파열되었다는 걱정스러운 말씀도 하셨다.


정영신 사진


방동규선생은 팔순을 넘긴 연세에도 아직까지 일하러 다니며 근육운동까지 하는 강골이시다.

백기환, 황석영씨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구라로 꼽히는 협객이다.
존경하는 선생을 촛불현장에서 만났는데, 어찌 인증 샷이 없을소냐.




서초 사거리 중앙에는 ‘광화문미술행동’ 팀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붓글 퍼포먼스를 벌일 대형 현수막 외에도 많은 깃발과 그림 현수막까지 준비해 두었다.

김준권, 김진하, 김 구, 김 억, 이광군, 송용민, 김영배씨가 이른 시간 부터 나와 있었고,

뒤이어 정복수, 김진열, 이흥덕, 김건희씨 등 많은 분들이 나타났다.



여지것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류연복씨는 진천에서 열린 개인전 때문에 나오지 못했지만,

장경호씨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살기에 다들 아파 누웠을까 걱정하더라.



참여 작가들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검찰개혁을 향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후통첩’, ‘악질검사 대청소’, ‘다음은 없다’ 등 다양한 글귀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독수리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경주 정비파씨의 판화를 바탕으로

김 구, 김진하, 송용민씨가 덧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림막 뒤편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니라 김진열 대학총장이 판화를 찍어주었다.

그 판화 작품들은 역사적 무게까지 더하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판화를 얻으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이 날 사진가들도 여럿 참여하였다.

정영신, 하형우, 양시영, 박윤호, 권 홍, 성유나, 임헌수, 김대희씨가 차례대로 나왔고,

뒤늦게는 전민조, 박옥수, 김문호씨도 나왔다. 다들 서초대첩의 종군기자들이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준비한 김밥 한 줄 얻어 먹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구씨 따라 갔더니, 다들 생맥주 집으로 들어갔다.

통풍에는 맥주가 쥐약이라 콜라나 마셨는데, 마침 김문호씨 연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가 김문호, 박윤호, 정영신, 하형우씨와 어울려 지난 주 식사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막걸리를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는데, 밥 값을 하형우씨가 계산해 버렸다.



덕분에 다른 분이 사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나니, 촛불광장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떨어져버렸다.

보조 건전지가 깡통이라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무기 없는 병사는 시체나 마찬가지다.

다음에는 기관총을 가져 올 각오였지만, 이 날이 최후통첩 보내는 마지막 집회가 아니던가?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함께한 동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눈도 어두운데다 귀 까지 어두워 핸드폰도 무용지물이었다.

인파를 헤집고 다니며 얼마나 헤맸는지, 진이 빠져 버렸다.

자리잡고 앉아 검찰개혁이나 외쳤으면 좋으련만, 돌아다니는 찍사의 팔자 아닌 습관을 어쩌랴!



최후통첩 날린 검찰개혁은 이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후통첩도 종료가 아니라 잠정중단으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납득할 만큼의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검찰이 저항하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에 이르기 까지 적폐청산의 길은 아직 멀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때까지 ‘광화문미술행동’은 함께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 국민문화제가 열린 4월7일의 광화문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4,3깃발제작소에서는 깃발을 만들며, 춤꾼 양혜경씨의 넋전 굿이 열렸고,

또 한 켠에는 성효숙씨의 '붉은 꽃'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 많은 부스에서 4,3항쟁에 대한 다양한 행사를 벌였으나, 4,3에 관한 책을 파는 부스도 많았다. 

몇일 전 출판된 4,3의 주역 김달삼을 비롯한 학살의 실체를 엮은 소설가 강기희씨의 ’위험한 특종‘도 선보였다.



 

그런데, 그 날 제주 4,3에서 학살된 원혼을 기리는 추모장에 난데없는 태극기부대가 등장하여 주변을 소란스럽게 했다.

행사부스를 사이에 두고 판을 벌이는 형태에서 좌우의 갈등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4,3의 원혼들이 얼마나 통탄했겠는가?




이날 행사장에는 배인석 민예총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유순예, 양혜경, 성효숙, 안해룡, 마문호,

양 동, 양시영, 김이하, 마기철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아, 샛바람이여~

아, 그때 그 벅찬 해방의 감격이 막
맑고 밝은 희망으로 나부끼던 싱그러운 섬마을 마다
느닷없이 불을 싸지르고 집중사격으로
쓰러진 사람 사람들
자지러지던 어린 것은 시끄럽다고 쏴버리고
뭔짓이냐 이놈들아 뭔짓이냐 이놈들아 울부짓던
어머니는 첩자라고 갈겨버리고
그 범죄가 질서가 되고 역사가 되어 온 치욕
통곡마저 반역이 되던 세월
죽고 나서도 죽지 못한 원한이

마치 모래밭에 떠밀린 미역쪼가리마냥
몸부림쳐 일으킨 샛바람이여
이제는 몰아쳐 이제는 몰아쳐
저 반역의 역사를 발칵 뒤집어엎어라.

오늘도 흰구름이고 껌뻑이는 한라여
그때 그 찢겨진 참해방의 깃발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나부끼시라.
그날 그 피눈물의 싸움은
저만치 앞서가는 인류의 영원한 길라잡이라.

아, 천년만년 한결같은 변혁의 샛바람이여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제주43항쟁 70주년에 부쳐
백기완 /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세월호 참사 천일을 이틀 앞둔 지난 7일은 광화문광장에서 1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 퇴진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새해 첫 촛불집회는 포근한 날씨 덕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 곳 광화문광장은 토요일마다 다양한 퍼포먼스가 벌어져, 하나의 큰 예술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이제 상설전시장인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에 이어 블랙텐트 '광장극장'도 문을 열었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8시에 공연되는 광장극장 벽엔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란 현수막도 내 걸렸다.

판화가 이윤엽씨가 ‘광장극’이란 극장 현판도 즉석에서 썼다.

토요일마다 비주류예술가집단이 벌이는 ‘옳’ 시국퍼포먼스와 ‘광화문미술행동’이 벌이는 차벽공략 현수막전이 펼쳐져

광화문광장이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광장에 넘쳐난다.

그 날의 ‘옳’ 시국퍼포먼스 여섯 번째 주제는 ‘눈떠!’였다.

꼬깔로 눈을 가리고 장님 행세를 한 유진규씨와 멸치, 에이미신, 문성식, 박재범, 안현정, 오민정, 이명찬, 황현성씨가 나와

장님놀이 꼭끼오! 활갯짓으로 사람들을 일깨웠고, 박순영씨와 박미루씨는 바이올린과 북으로 흥을 돋구었다.

서예가 김기상씨는 ‘눈떠!’란 글과 눈동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이명찬씨는 ‘접촉'이란 마임도 보여 주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가 눈이 그려진 부채를 펼쳐보이자,

다른 장님들은 눈뜨라며 손바닥의 눈동자를 펼쳐 보이는 사회를 향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세 번째 추진한 경찰 차벽공략 프로젝트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도 진행되었다.

여태명씨와 정고암, 박방영 세 사람이 벌이는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로 시민들의 발걸음을 모았고,

판화가 오윤의 ‘칼노래’, 홍선웅씨의 ‘역사의 길’, 이철수씨의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류연복씨의 ‘따로 또 같이’.

이상호씨의 ‘무제’, 박제동씨의 그림을 정찬민씨가 각을 한 ‘세월호 미 수습 이웃9인’, 이윤엽의 판화 복합판 등

대형 걸게 그림이 걸려 광화문광장을 판화가 펄럭이는 축제 광장으로 만든 것이다.

김준권, 류연복, 김진하, 김천일, 정복수, 이재민, 김 구, 김 억, 한상진씨 등 많은 작가들의 일사불란한 현장작업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그림판에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세종대왕상 뒤편 인증샷 배경막에서는 사진가들의 ‘그 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 초상사진 찍어주기도 이어졌다.

정영신, 엄상빈, 남 준씨도 나왔지만, 그 날 초상사진의 대부분은 양시영씨가 도맡아 찍었다.

오후5시 무렵에는 현수막을 미 대사관 앞의 경찰차벽으로 옮겨 갔으나, 국가 재산에 손 댈 수 없다며 경찰이 막아섰다.

그 많은 나라 돈을 거덜 내는 권력들이 국가재산 운운하며, 예술적 변신조차 용납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며 작가들이 현수막을 들고 서 있기도 했으나,

결국은 경찰을 배경 조형물로 세운 채, 땅 바닥 전시를 하였다. 블리리스트 예술가들의 탄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땅바닥 전시장은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박제동씨의 그림을 정찬민씨가 각을 한

‘세월호 미 수습 이웃9인’ 초상에는 애도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모여들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 날은 '광화문 미술행동'에 함께한 장경호, 이인철, 성기준씨 외에도 행사장 곳곳에서 많은 지인들을 만났다.

강 민, 방동규 선생을 비롯하여 하태웅, 김창규, 김창주, 고옥룡, 손병주, 이정환, 이점숙. 임경일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

오는 14일 열릴 12차 촛불집회도 시민들이 벌이는 예술행동은 이어진다.
더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 추모 3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라 추모영상 상영과 헌화도 있다.

‘민미협’의 광장 깃발전과 윤여걸, 류연복씨가 벌이는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한국민족춤협회’에서 보여주는 ‘백년의 바람춤’도 선 보인다.

사진가들의 인증샷 초상사진 찍어주기와 작가와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등

시민들의 예술적 저항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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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미술행동’에서 세 번째 추진한 경찰차벽 공략 프로젝트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가 지난 7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그런데, 온 종일 작가들과 시민들이 메달려 만든 전시막이 경찰의 방해 공작으로 길바닥에 깔리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시민들이 붙이는 스티커로, 스티커 범벅이 될 것을 미리 방지해 주는데도 막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준권, 류연복, 김진하씨 등 여러 명이 나서 경찰을 설득하였으나, 돌대가리 명령에 움직이는 끄나풀들이라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괜히 위에 놈 눈치 보느라 육갑 떨었으나, 설치물을 분실한 지난주에 비해 경찰이 지켜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할지, 욕해야 할지 헷갈렸다.

일찍부터 작가 정고암, 여태명, 박방영 세 사람이 벌이는 캘리그래피 퍼포먼스가 벌어졌고, 

판화가 오윤의 ‘칼노래’, 홍선웅씨의 ‘역사의 길’, 이철수씨의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류연복씨의 ‘따로 또 같이’.

이상호씨의 ‘무제’, 박제동씨의 그림을 정찬민씨가 각을 한 ‘세월호 미 수습 이웃9인’, 이윤엽의 판화 복합판 등

대형 걸게 그림이 만들어 져 광화문광장을 판화가 펄럭이는 축제 광장으로 만든 것이다.

서예가 여태명씨가 ‘광화문 축제’라 쓴 휘호에 이어 박방영, 정고암씨의 글과 그림이 대붓으로 휘갈겨졌고,

김진하씨는 ‘박근혜는 물러나라’라고 적기도 했다.

김천일, 정복수, 이재민, 김 구, 한상진씨 등 많은 작가들의 일사불란한 작업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그림판에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광화문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침몰한 진실을 인양하라’, ‘이제 그만해라’, ‘세상을 바꾸자’ 등 많은 염원들을 그림판에 새겨 넣었다.

심지어 어머니 품에 노는 어린이까지 나와 ‘밭그내 대통령 아니다.’라고 적고 있었다.

모르쇠 일당들은 이 국민들의 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다.

세종대왕상 뒤편 인증샷 배경막에서는 사진가들의 ‘그 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 초상사진 찍기도 벌어졌다.

정영신, 엄상빈, 남 준씨도 나왔지만, 그 날의 사진은 대부분 양시영씨가 도맡아 찍었다.

이토록 사진가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여지 것 사진판의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으로 본다.

‘사협’이란 어용단체는 말 할 것도 없지만, ‘민사협’이란 단체도 개인 놀음에 휘둘려 식물인간 상태다.

오죽하면 다양한 예술인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지만, 사진인들의 불의에 대한 외침은 들어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안타까워 ‘社會寫眞集團’에 함께 하자며 페북에 올려놓았더니, 몇몇 분들만 동참의 뜻을 밝힐 뿐이었다.

색깔이나 인맥구성 등 판세를 살필지 모르겠으나, 이제 갑 질은 끝내야 할 시점에 그처럼 구차한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쨌든 이런 일은 총대를 맬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사진가로서 유일하게 광화문현장에서 몸 바쳐 뛰는 노순택씨가 딱 적임자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라 맡아 줄지 모르겠다.

벌써 여태명선생께서 단체 제호까지 만들어 주셨지만, 사진가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진가들의 지혜를 모아보았으면 좋겠다.


이 날은 위에 언급된 분 외에도 강 민,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장경호, 김 억, 이인철, 성기준, 김창주, 고옥룡, 손병주, 이정환,

하태웅, 이점숙. 임경일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고, 힘을 보탰다.

오후5시 무렵에는 현수막을 미 대사관 앞의 경찰차벽으로 옮겨 갔으나, 국가 재산에 손 댈 수 없다며 경찰이 막아섰다.

국민들이 붙이는 스티커는 묵인하면서도 예술인들의 설치물은 안 된다니, ‘블랙리스트 예술가’를 정말 우습게 본 것 같다.

그 많은 국가재산을 거덜 내는 권력들이 국가재산 운운하며, 예술적 변신조차 용납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며 작가들이 현수막을 들고 서 있기도 했으나, 결국은 경찰을 배경 조형물로 세운 채, 땅 바닥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 거리를 만난 기자들만 보더라도, 한심한 권력의 한계였다.

경찰이 전시물을 잘 지켜주니 ‘광화문 미술행동’ 팀은 오히려 편했다. 다들 몰려가 설렁탕으로 요기하며 막걸리에 목을 축였다.

돌아오니, 땅바닥 전시장은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박제동씨의 그림을 정찬민씨가 각을 한

‘세월호 미 수습 이웃9인’ 초상에는 애도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모여들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청와대 침투를 걱정해 일곱 시간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는 개가 들어도 웃을 뒤늦은 보도를 접하며,

저 따위 인간들의 뇌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망치로 한 번 때려 부숴보고 싶은 심정이다.


오는 14일에 펼쳐 질 네 번 째 ‘광화문 미술행동’ 차벽공략 프로젝트는 “응답하라 1987! 한 걸음 더 2017”이다.
설치 현수막으로는 최병수씨의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본인의 ‘87민주항쟁’사진 현수막도 걸린다.

그 때나 지금이나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며 죽었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래 이미지는 걸게로 사용될 사진이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30주기 추모 시민 퍼포먼스에도 많은 관심바란다.







사진,글 / 조문호





































































































































































 
















































































인사동에서 열리는 정영신의 장날 오가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일찍부터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오셨습니다. 맛있는 점심 사 주겠다면서요.

아내와여자만에서 쌈밥 얻어먹고, 허리우드에서 커피도 마셨습니다.






전시장으로 돌아오니 부산에서 최혜영씨와 사진가 김지연, 시인 김생나씨가 오셨고,

사진가 양시영씨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과 넋전 춤을 추는 양혜경씨를 모시고 오셨습니다.

심선생께서는 신궁장여관이 리모델링한다며 숙소를 옮긴다는 말씀을 들었으나,

어디로 옮겼는지 궁금했는데, ‘종로오피스텔로 옮겼다네요.












반가운 만남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래층의 공창호씨가 장구경 하러왔고, 좀 있으니, 가수 최백호씨도 왔습니다.

잇따라 강 민선생께서 시인 천성우, 이혜선, 김정남선생과 함께 다시 오셨네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강민선생의 옛 친구 박병선선생도 지나치다 올라 오셨는데,

구수한 냄새에 끌려 왔더니, 옛 친구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끝 날 시간이 가까워 오니, 곤충사진가 이수영씨가 나타났습니다.

유민목에 장경호씨가 있다는 귀뜸을 전했더니, 거기서 기다리겠다며 먼저 일어났습니다.

뒤따라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안미숙 내외가 오셔서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로 소주 한 잔 했습니다.

소주 딱 두병만 까고 유목민으로 옮겼더니, 이수영, 장경호, 공윤희씨가 마시고 있더군요.

막차시간 놓치지 않으려는 이수영씨 따라 일어남으로 하루를 잘 넘겼답니다.









 

그 이틑 날은 미디어아티스트인 이상만회장께서 일찍부터 오셨습니다,

연이어 연극연출가 기국서, 울산의 기와장 오세필, 건축가 임태종씨가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이 날은 장흥에서 이대흠시인과 성은정내외 분이 오셔서,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답니다.

이대흠시인은 아내의 장날사진집 서문을 쓴 인연이라 더욱 기다렸는데,

첫인상처럼 무척 다정다감한 분이더군요. 시간 만들어 장흥에도 꼭 한번 들릴 작정입니다.

















전날 밤, 술이 취한 상태에서 밤을 꼬빡 새웠는데,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쪽 구석에 누워 잠들어 버렸는데, 이대훈, 노인자 내외분이 오셔서 자는 모습을 찍어,

칠순의 아기천사라는 제목까지 달아 카톡으로 날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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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문화의 날이라 밤 열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으나, 술친구 채근으로 더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 날 페북에 공지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밤 여덟시에 문을 닫는 실수를 그만 저질렀습니다.

공교롭게도 사진가 박영환씨가 뒤늦게 다녀 간 흔적이 방명록에 적혀 있더군요.

확인했을 때는 이미 때 늦은 후회였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에 안절부절 하였으나, 결국 젊은 후배에게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 날은 유목민에서 이대훈, 노인자씨 내외와 거나하게 마셨습니다.

옆 자리에는 임태종씨가 친구들과 있었고, 김명성, 이상훈씨도 있었답니다.

좀 있으니 오세필씨가 국민은행에 있는 노처녀 지점장 최명숙씨와 김용식 부장 등 여성분들과 나타났습니다.














일행이 있어 먼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인사동 곳곳에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한 번 버스킹에 나서자며 길모퉁이 자리잡아 퍼질러 앉았습니다.

난 모자만 내려놓은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으나, 이대훈씨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우아한 노래에 한참 빠졌는데, 눈을 뜨보니, 모자에 천원짜리 지폐가 한 장 담겨있더군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때 놈이 먹는 꼴이 되었는데, 왜 그렇게 기분 좋은지 휘파람 불며 돌아왔답니다.

하하하~

 

사진 : 정영신, 조문호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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