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예술인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이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시를 철수하고 가까운 녹번동 응일식당’으로 화가 칡뫼 김구, 장경호씨가 왔으니, 오라는 것이다.

 

마침 동자동으로 가려고 나서던 중이라 식당부터 먼저 들렸는데.

칡뫼 김구, 장경호씨도 직원들과 함께 작품을 철수했다고 한다.

전시 마무리를 도운 두 분에게 저녁 식사 대접하는 자리에 끼어 앉은 것이다.

 

서인형씨는 씨앗페기금마련전에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잘 마무리했다고 한다.

작품을 구매하거나 계좌로 후원해주신 분들도 고맙지만,

공연을 진행해주신 뮤지션을 비롯한 참여한 모든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나 역시 '씨앗페' 전시를 치루는 동안 걱정을 많이 했다. 

더구나 이번 전시에 사진가도 아홉 명이나 들어가 전시 공간만 차지할 것 같았는데,

20여 점의 판매작 중 사진이 네 점이나 팔려 천만다행이었다.

두 점은 모르는 분이 샀지만, 나머지 두 점은 사진가가 사주어 더 고마웠다.

 

사진을 구입해 주신 황규태 선생은 몸이 불편해 전시장에 나올 수도 없었으나,

씨앗페” 전시 포스팅을 보시고 사진 두 점과 그림 한 점을 사겠다고 연락해 온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를 돕는 일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하셨다.

기금 마련전 덕에 모처럼 통화를 했는데, 마무리하면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말씀하셨다. 

 

정영신사진

그래서 이튿날 선생이 계신 평창동으로 정동지와 찾아간 것이다.

약속한 식당에 먼저 나와 계셨는데, 요즘은 허리 협착증으로 외출도 할 수 없다며,

부산에서 열린 개인전에도 못 가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데, 픽셀 작업하느라 너무 오래 앉아 생긴 병 같았다.

하루속히 완쾌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활동하시길 바란다.

 

팔린 사진 / 정영신 / 전남, 강진 / 75x47.8cm / 1988

선생께서 작품을 구입해 주어 씨앗페기금 마련에도 보탬이 되었지만,

작가에게도 절반이 돌아가니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태 사진가가 사진가의 작품을 사준 일이 흔치 않은 일이라, 그 고마움을 깊이 새겼다.

 

팔린 사진 / 라인석 / 휘어진 세계로 부터 캠밸수프머시룸1 / 50X40cm / 2021

 

씨앗페에 성원해 주신 많은 분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사진, / 조문호

 

 

지난 30일은 예술인 '스마트협동조합' 정기총회 날이었다.

대의원은 아니지만, 술 냄새를 맡아 달라 붙은 것이다.

 

그날이 바로 코로나 감옥에서 해방된 날이 아니던가?

총회 끝날 시간에 맞추어 뒤풀이 집에 갔더니, 반가운 분들이 많았다.

 

서인형 이사장, 황경하 사무국장, 박권주, 김성은, 송수아씨 등

상근하는 분 외에도 최석태, 장경호, 김이하, 정영신, 민정기,

박태종, 이미경, 김은엽, 이영경, 이명신씨 등 많은 분 들이

총회를 끝내고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다들 몸 사리는 코로나 시국임에도 40명이나 참석했다고 한다.

전체 조합원 십 분의 일이 참석했다면 많이 나온 편이다.

 

스마트협동조합은 창립 삼 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음악연습실 운영 등 사업도 확대되었지만, 조합원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나 역시 가난한 예술인들이 받을 수 있는 여러 지원을 받았는데,

코로나로 힘 들어 하는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여태 예총이나 민예총’같은 예술단체 어디에서도 회원들 생계를 위해

도움 준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도움은커녕 회원들 갉아먹는 구조가 아니던가?

 

빈손으로 시작한 '스마트협동조합'이 불과 삼 년 만에 자리 잡은 것은

조합원들의 협력도 따랐지만, 서인형 이사장의 기획력과

황경하 국장의 추진력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찰떡궁합이었다.

 

올해는 음반 사업에 이어 출판 사업도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스마트협동조합' 인터넷신문도 창간 준비 중이란다.

 성장하는 '스마트협동조합'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아직 가입하지 못한 예술가들도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자.

예술인들의 권익을 지키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가난한 예술가들이 의지할 곳이 생겼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오늘 쪽방 격리에서 해방된 날인데, 이게 얼마 만이던가?

 

귀는 어두운데다 목소리까지 막혀 통하지도 않지만,

못난 사람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더라.

 

그런데 소주가 달달한 게 술술 넘어갔다.

술잔 주고받을 것도 없이 혼자 홀짝홀짝 마시며

사진 찍고 놀다 결국 맛이 가고 말았다.

 

성악하는 민정기, 박태종씨는 쩌렁쩌렁 좌중을 압도했고,

김이하 시인은 구수하게 축가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는 판에

감히 어찌 끼어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서너 개 남은 이빨 사이로 튜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목구멍은 막혀 파리 방귀 소리보다 작은 주제에 말이다.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진다는 말이 딱 맞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이란 구겨진 첫 구절부터 슬프게 만들었다.

아마 그건 노래가 아니라 벙어리 몸부림에 가깝다.

조지 피면 가치 웃고 조지 지면 가치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마지막 대목에서 결국 눈물을 짤아내고 말았다.

 

그 이쁜 처자들 많은 자리에서, 팔릴것도 없는 쪽을 다 판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오바 하지 않으려고 다짐에 다짐을 해도 술만 취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지 버릇 개 못 준다. 아마 죽어야 철들 것 같다.

 

사진, / 조문호

 

 

 

 

가끔 인터넷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찾아본다.

띠별로 몇 줄 적어 논 운세를 믿지는 않으나 재미로 보는 것이다.

운세가 나쁘면 그만이지만, 행여 좋은 운세라도 나오면 괜히 기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 날은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는 좋다 마는 김빠지는 운세였다.

 

지난 주말은 녹번동 정동지 집에서 개겼는데, 뜻밖에 손녀 하랑이가 찾아왔다.

아들 햇님에 안겨 온 손녀 하랑이가 그 날따라 사진 포즈는커녕 눈 맞추기도 싫어했다.

땡초 처럼 머리를 빡빡 민 할애비가 낯설기도 하지만, 무서웠던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잠들어 버렸다.

 

잠든 손녀의 천진한 모습에 빠져 행복감에 젖었는데,

손녀 빰에는 하랑이라 적힌 스탬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아들이 올린 하랑이 춤추는 사진을 보아

춤추는 멋진 손녀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결국 자리가 파할 때 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잠자는 손녀를 안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닭 쫓던 개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 내외가 가고 좀 있으니,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찾아왔다.

요즘 고 김용태씨 DMZ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미군부대 주변 사진관에서 수집한 기념사진들을

스캔 받는 작업을 정영신씨와 같이 해 녹번동에서 술 한 잔 할 기회가 잦다.

 

그 날은 정영신씨의 장터 기획전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와 스캔 받는 일은 뒷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야사에 대한 강의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비단 미술계뿐 아니라 잘 알려진 정사보다 뒷이야기인 야사가 더 흥미로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 번쩍 뜨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런 내용을 책으로 묶는다면 대박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 이사장과의 약속시간이 되어 그만 일어나야 했다.

 

스마트협동조합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푸짐한 안주에다 사무실에서 공수해 온 보드카로 술자리가 걸판졌다.

그러나 독주가 목구멍에 들어가니 금방 돌아버렸다.

 

평소에 마시는 진로를 주량에 맞추어 천천히 마셔야 하는데,

좋은 술이라며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제풀에 간 것이다.

술이 취해 할 말과 안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콩팔 칠팔 지껄인 것은 물론

술집 주인아주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추태까지 부린 것이다.

 

내 딴에는 만들어 준 술안주도 좋았지만,

가져 온 술을 영업집에서 마신데 따른 죄송함의 큰절이었으나

그만 몸매에 대한 칭찬까지 곁들이는 오버를 해버린 것이다.

절 받는 분의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던 것 같았다.

 

뒤늦게 정동지로부터 이야기 들어 알았지만,

필름이 끊겨 중간 중간 기억 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제 버릇 개주지 못한다는 정동지의 푸념에 감 잡을 뿐이었다.

 

다 같이 녹번동 집으로 돌아와서 손님들 앞에 대마불사주를 꺼내놓고 잠자리 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찍힌 사진을 보니 같이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진도 있었다.

그 이튿날 정동지에게 물어보니, 내복차림으로 한참 주접 떨다 잤단다.

 

아이쿠! 고려장 할 나이에 이 무슨 추태던가?

그 날 아침에 본 오늘의 운세가 딱 들어맞았다.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나이가 먹어가니 몸이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어저께는 정영신 동지가 치과에 수술 받으러 갔으나 퇴자 맞았다.

혈압이 높아 수술이 안 되니 내과부터 다녀오라는 것이다.

협압이 187이나 되는 고혈압인데, 본인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눈에 열이 많았지만, 눈병인줄 알아 안약만 넣었다나...

 

내과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고혈압에다 당뇨까지 있어 비상이 걸렸다.

약으로 위기는 넘겼지만,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병원을 멀리한 탓인데, 이젠 좋아하는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체중 관리는 열심히 하면서, 왜 그리 건강관리에 무심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게 약이라던 미련이 병을 키웠는데, 사돈 남 말 하는 격이다.

 

정동지만 나무랄 일이 아니라 하루 사이 나도 비슷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머리가 아팠으나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신 줄을 놓는 이변을 당했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열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이 끊겨 버린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렸으나, 처음 당한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죽어도 이처럼 편하게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얼마 후 정동지와 함께한 자리에서 내가 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운전하는 도중 그런 상황이 온다면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정동지가 나보다 더 놀란 것 같다.

정동지도 몇 년 전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진 적이 있었으니까...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서인형씨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모양인데, 당장 병원 가야한다며 전화가 빗발쳤다.

동자동 갈 채비를 하는 중에, 박건주씨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가자며 건주씨 차에 타라는데, 빼도 박도 못해 끌려가듯 병원에 갔다.

실려 간 병원은 ‘스마트 협동조합’과 협약을 맺은 ‘녹색병원’이었다.

 

병원에서 진료 일정이 맞지 않아 다음 날로 검진날짜를 미루자,

하루라도 늦출 수 없다는 정동지 고집에 응급실에 들어간 것이다.

갑자기 환자가 되어 병상에 드러누웠는데, 의사가 묻는 말만 답하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간호원이 피를 빼거나 혈압을 재는 등 바쁘게 움직였으나 모른 체했다..

여기 저기 끌고 다니면서 시티촬영에다 갖가지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

 

간호원과 조무사가 소근 대는 밀어에서부터 다른 환자의 신음소리까지

귀에 들려 모든 소리가 저승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 까지 잡혀 있었으니, 한 시간은 더 걸린 것 같았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세 사람이 붙들려 아무 일도 못 본 것이다.

 

그 이튿날 검사는 MRI검사라는데, 대형 세탁기 같은 곳에 머리를 집어넣어 돌리는데, 정신이 없었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려야 했는데, 오래 살다보니 별 검사를 다 받아 보았다.

그런데,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문제는 저혈압에 의한 증상이라고 했다.

정동지는 고혈압이고 나는 저혈압이니 섞어버리면 둘 다 정상이 될 것 같은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사형선고 아닌 집행유예선고를 받아 저승에서 이승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아프지 않고 편안히 눈감았으면 좋겠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피자연합’과 예술인들이 모인 ‘스마트협동조합’을 연이어 찾아갔다.

 

 

요즘은 이래저래 협동조합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영신씨가 ‘피자연합’과 ‘스마트협동조합’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나도 총각시절 ‘부산농협’과 ‘김해농협’을 전전하며 밥벌이를 했으나,

금융 업무를 맡아 협동조합이란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다녔다.

뒤늦게 그 방면 전문가 서인형씨를 만나 협동조합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 프랜차이즈 ‘피자 유니온’은

‘미스터 피자’의 갑 질에 지친 점주들이 본사와 가맹점이 상생하는

프랜차이즈 모델을 만들기 위해 창설했다고 한다.

 

 

지난 9일 정오 무렵, 방이동에 있는 ‘피자연합’ 매장에 들렸다.

그 곳은 ‘피자연합’ 정종열 조합장이 운영하는 매장인데,

‘고추장불고기피자’와 ‘간장불고기피자’라는 새로 나온 피자를 홍보할 제품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피자라면 서양빈대떡 정도로만 알았던 문외한이 뒤늦게 피자 맛도 알게 되었다.

‘피자연합’에서는 국내시장의 98%를 장악하고 있는 방부제 덩어리 수입 밀에서 벗어나

자연드림이 공급하는 우리밀로 도우를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최고 품질의 프랑스 유레알 치즈와, 식용유가 아닌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등

좋은 재료만 사용하는데다 새로운 피자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서인형씨를 비롯한 몇몇 가맹사업자들이 모여 회합하고 있었다.

 

 

그날 자정 무렵에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한 때 수시로 녹번동 집을 들락거리던 장춘씨가 3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아, 죽었다는 소문까지 떠돌던 터라 깜짝 놀란 것이다.

오죽하면 귀신이 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밤늦도록 은둔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 보낸 것이다.

 

 

11일은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사진스튜디오를 개설한다고 했다.

전 날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설거지하다 그릇을 두 개나 깨버렸다.

그것도 정영신씨가 가장 아끼는 그릇만 깨져 난감했지만, 어쩌랴!

간밤에 나타난 귀신 아닌 귀신에 홀려 정신을 놓은건지 모르겠다.

 

 

서둘러 장춘씨가 사온 수박 한조각과 얻어 온 피자를 챙겨 실고 ‘스마트협동조합’으로 달려갔다.

짐이 있어 차를 끌고 갈수밖에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진가 이정환씨가 입구에 나와 있었다.

 

 

개설한 스튜디오에는 박권주씨가 장비를 시험하고 있었고, 황경아씨와 백인혁 팀장이 돕고 있었다.

챙겨 간 수박과 피자로 환담의 시간을 나누기도 했는데, 뒤늦게 서인형 이사장이 나타났다.

 

 

스튜디오는 뮤지션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마련했다는데,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사무실을 사용하는 입주업체에서도 제품사진 찍을 일이 많다고 했다.

상생을 위해 협업하는 의미 있는 스튜디오가 될 것 같았다.

 

힘 가진 자의 갑 질이나 독주를 막고 함께 사는 방법은 협동조합뿐이다.

‘피자연합’이 ‘미스터피자’의 갑 질에서 벗어나 독립에 성공했듯이

‘스마트협동조합’도 예술인들이 상생할 수 있는 견인차가 되길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엔 아침부터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녹번동 정영신씨 다락방에 있는 대형 프린트기를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사무실로 옮긴다는 것이다.

 

그 기계가 인사동 '아트 온'에서 녹번동 다락방까지 온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장정 몇 명이 달라붙었지만 좁은 방 턱에 끼어 힘을 쓸 수 없었다.

 

다행히 나갈 때는 '앱숀'사무실에서 온 젊은 분들이 쉽게 빼낼 수 있었다.

협동조합르로 옮겨 놓은 프린트기를 보니 지난 일이 생각났다.

우리 손에 들어 온 사연은 뜻밖이었다.

 

8년 전 영일만친구 최백호씨가 인사동에서 그림 전을 열었는데,

그 개인전을 아라아트김명성씨가 추진한 것이다.

전시를 끝낸 최백호씨가 전시경비 보태라고 천만 원을 내 놓았는데,

김명성씨가 기어이 받지 않은 것이다.

 

그 돈이 왔다 갔다 하다 결국 내 프린트기 사주기로, 뜻을 모은 것 같다.

후배들의 고마운 뜻에 앱숀 프린트기가 생겼는데, 원님 덕에 나팔 불게 된 것이다.

 

정영신씨의 손놀림에 의해 정선 산천이 줄줄이 펼쳐 나왔고,

전국 장터가 왁자지껄 난장을 만들어냈다.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돈 쓰는 기계였다.

만만찮은 잉크와 종이 값 날려가며 어지간히도 떠벌렸다.

 

이제 그 기계도 8년차가 되니 내 몸처럼 골골한다.

얼마 전부터 컬러 사진이 안 되고 흑백만 된 모양인데,

문제 생긴 헤드를 수리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단다.

이제 수리하던, 새로 사던, 주사위는 스마트협동조합에 넘겨졌다.

 

그 날은 스마트협동조합 식구들이 함께 밥 먹는 수요일이었다.

처음으로 차린 공동 밥상인데, 주방 일을 도운 게 문제였다.

밥에 물을 많이 부어 죽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책임질 주방장이 없어 그렇다며 혼자 변명해댄다.

 

황경아씨가 가져 온 갓김치와 칼치구이,

정영신씨가 가져온 두룹나물에, 입만 가지고 간 나만 맛있게 먹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는 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 날 저녁부터 이틀에 걸쳐 정영신씨 집 환경미화작업이 펼쳐졌다.

방을 차지했던 프린트기가 빠져나갔으니,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아무리 코 구멍한 집이지만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변화를 즐기는 정영신씨 입장에서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을 거다.

 

미화작업이라 해도 이쪽 책장이 저쪽으로 가고

저쪽 책장이 이쪽으로 오는 수준이지만, 여간 신경 쓰는 일이 아니다.

김명성씨가 가져가야 할 대형 작품 여덟 점이 남아 마무리를 못했으나

다락방 삼면은 대충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책들을 버렸다.

일부는 정선으로 옮겼으나, 이젠 정선도 둘 곳이 없다.

그 날도 버릴 책과 남길 책을 구분하는

정영신씨의 판단에 따라 많은 책들이 운명을 달리했다.

 

그렇지만, 자의든 타의든 또 다시 책은 들어 올 것이다.

대개 버려지는 책은 사지 않고 얻은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사지 않는다면, 공짜는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한다.

자칫, 쓰레기 양산하는 일에 일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 버려지는 책이 아까워 고물상에 팔려고 모았는데,

정영신씨는 없는 사람 가져가게 그냥 밖에 내놓으란다.

세상에 니보다 없는 사람이 어딧노?”라고 했더니, 비시시 웃는다.

그래! 돈은 없어도 마음이 부자니, 니가 더 부자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선가 우리가 만든 책들도 이처럼 버려질 걸 생각하니,

세상만사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끼던 책도 싫어지면 버리듯이 모든 것은 언젠가 버려진다.

결국 인간조차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던가?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터넷 뒤져가며 책을 주문할 것이다.

제 버릇 개 못준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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