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은 갖가지 병을 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 노숙자나 젊은 노숙인 중에 유달리 정신질환자가 많다.

 

내가 거주하는 쪽방 4층만 해도 8명 중 3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오랜 노숙생활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을 끌고 쪽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뇌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가능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에 들어온지 6년차인 최완석군의 증상은 그중 심한 편이다.

가끔 발작을 일으켜 고함을 지르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착하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방세를 빼고는 대부분 술값에 탕진하지만,

 돈 없는 노숙인들에게 베풀며, 복 짓는 일을 한다.

 

두 번째는 나이가 제일 어린 박상민군인데, 이 녀석은 불장난하는 별난 습관을 가졌다.

불낼까 염려스러운 것 외에는 심부름도 잘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일 년 전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쪽방에 들어 온 박종근군의 증상도 미미하다.

그런데, 정신질환자는 하나같이 바보처럼 착하다는 사실이다.

남 힘든 것을 두고 보지 못하며, 음식이라도 생기면 못 나누어 안달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은 쪽방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일체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우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고 몰인정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차라리 미친 사람이 훨씬 인간적이다.

 

베푸는 것은 물론, 먹지도 않고 돈만 챙기는 걸 보면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죽고 나면 남겨줄 자식도 없는데,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바보처럼 베풀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할텐데 말이다.

 

지난 26일, 준비해 둔 기념사진을 챙겨들고 나섰다.

식도락앞 골목에는 밥 얻으러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곳에서 이기영씨를 만나 부탁받은 영정사진을 전해주었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에는 여기저기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노인들만 사는 쪽방촌 공원을

왜 어린이공원이라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다.

 

이남기씨가 술 한 잔 마시라지만, 사양했다.

 

몸이 아프니 술도 독약처럼 보였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역에서 가장 고참인 김지은씨는 멋 부리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는다.

그 역시 정신질환을 가졌지만, 늘 즐겁게 산다.

 

그러니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 달라고 졸라대 피해 다녀야 할 지경이다.

 

 

한꺼번에 프린트하느라 바로 뽑아 주지 못하는,

마침 이기영씨 영정사진 만드는 김에 김지은씨 사진도 함께 만든 것이다.

 

'서울역광장'에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공사장 틈 은밀한 곳에 텐트를 쳐 놓았더라.

찍은 사진 중 시계를 주렁주렁 낀 사진이 제일 멋지다며 낄낄거렸다.

 

한 곳에는 노숙인들 선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나,

관련된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신나는 유행가로 유인했으나, 컵라면 나누어 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다들 먹는 일 외에는 관심 없는 듯 했다.

 

힘없이 광장 구석에 웅크려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노숙인 모습에서 인간 사육장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만 주면 짐승처럼 우르르 몰려드니까...

 

그들은 미치지 못해 천국 열차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바보처럼 미쳐야 사람답게 살수 있다면, 미치고 또 미쳐야한다.

 

사진, / 조문호

 

 

쪽방촌도 봄 바람은 분다.

아침부터 ‘동자동 사랑방’ 김정호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카메라 작동이 안 된다는며 좀 봐 달랜다.

 

세수하러 나갔더니, 밥 푸던 박종근씨가 ‘밥 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운지, 다들 나만 보면 밥타령이다.

 

공원에는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이리 좋은 날, 어찌 방구석에 처박혀 있겠는가?

 

몇몇은 봄바람 맞으며 햇볕을 즐겼고, 몇몇은 술에 젖어있었다.

 

이남기는 상민이 한테 괜히 심각한 척 말거는데,

누군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여 자세히 보았더니,

한 때 왕래가 잦았던 김창현씨였다.

아마 본지가 이 삼 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개인적인 신상만 물어보면 횡설수설하는 창현이 버릇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건강한 모습이라 반갑더라.

 

‘동자동 사랑방’ 사무실 앞에는 김정호이사장이 기다렸다.

짐작한데로 카메라 조작을 잘 못한 게 아니라, 고장 난 카메라였다.

용산의 소니코리아 AS점에 가라고 전화번호 주었다.

 

골목은 도시락 배달하는 봉사원들의 발 길이 분주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식도락’앞엔 많은 사람이 기다렸다.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비참한 건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먹어야 사니까...

 

2년전만 해도 ‘식도락’은 점심 같이 먹던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 나누어주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줄 옆에 앉아 있던 이기영씨는 영정사진 한 장 찍어 달랜다.

 

오년 전 동자동 성민교회 다섯 쌍 결혼식에서

결혼사진 찍어주었는데, 오년 만에 영정사진이라니,

너무 빨리 가는 건 아닌가?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때라 그런지, 그곳도 컵라면 타려고 긴 줄이 서 있었다.

술 마시는 노숙인은 밥도 필요 없다.

 

술 기운으로 버티며 천국행 열차를 기다린다.

어디가 아픈지. 웅크려 자는 노숙인 밥을 비둘기가 훔쳐 먹었다.

문둥이 코 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그런데, 엊그제 YTN뉴스에서 노숙인 현황을 상세히 소개하더라.

‘홈리스행동’에서 대통령인수위에 제공한 자료라는데,

일정한 거처가 없는 노숙인과 쪽방주민이 전국에 1만4천여명이란다.

그 중 노숙인은 9천여 명으로 5년 전보다 21% 줄었다고 한다.

 

문제는 여성 노숙인이 점차 많아진다는데 있었다.

노숙인 네 명 중 한 명이 여자라는데,

남자보다 여자의 노숙이 더 힘들다는 것은 말해 뭐하겠는가?

 

새 정부에서 ‘노숙인 없는 대한민국’ 좀 만들어다오.

무대뽀 대통령이라면 그 것 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자유와 평화를 외쳤던 히피문화가 새삼 절실해 진다.

물질문명에 망가진 자연과 인간성을 되살리는 문제는 이 시대 절대 절명의 문제다.

 

돈에 밀려 최소한의 존엄마저 상실한 노숙인을 친환경적인 삶으로 안내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지키고 자연도 살리는,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다.

 

지난 주말의 서울역광장은 따스한 햇살따라 노숙인이 많았다.

인근 교회에서 제공한 텐트로 서울역 광장에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때 마침, 코로나에 감염되어 떠난 빈 텐트 하나가 끌려 나오고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 인근 교회 빈터에 텐트촌이 잠시 생긴 적은 있지만

서울역 광장에 공공연하게 텐트가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다시서기 지원센터’ 건물 주변의 20개를 비롯하여

경의선 2번 출구와, 1호선 2번 출구 앞의 텐트를 합하면 35개나 된다.

오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의 바람막이와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노숙인 확진자들에게 독립된 공간이 절실했다.

확진자들의 재택 치료 방침이 나왔을 때, 집 없는 노숙인은 해당될 수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 머물던 노숙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병상 대기 순서에서 밀려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

노숙인들은 죽음조차 거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까운 용산역 부근에도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용산역 구름다리 밑 빈터에 노숙인 텐트가 들어선 것은 8년 전이다.

풀숲이 우거져 사람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그 곳에 노숙인30여명이 살고 있다.

 

[용산 텐트촌]

다른 노숙인 쉼터와 달리 이곳은 공동체 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먹고 자는 간단한 일이라도 노숙인 스스로 해결할 때,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밥은 얻어먹지 말고 해 먹어야 한다.

 

[용산 텐트촌]

가끔은 물질의 탐욕에서 벗어난 히피 정신의 노숙인도 만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밀려 난 사람과 스스로 택한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지만, 이치를 깨우친 도인처럼 여유롭다.

 

[용산 텐트촌]

사회에서 밀려 난 노숙인도 처음엔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치지만,

흐르는 세월 따라 불안과 조급증도 서서히 사라지고 담담해 진다.

욕심 부릴 건덕지가 없으니. 무소유의 가치도 알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삶의 가치를 안겨주는 일이 중요하다.

 

한 때는 물질문명을 기피한 히피운동이 바람을 탄 적도 있었다.

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히피운동은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었다.

 

['우드스톡' 음반 자켓에 사용된 사진/ 스크랩]

특히 69년 미국 뉴욕 주 설리반 카운티 베델에서 열린 ‘우드스톡’은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히피 그리고 자유와 평화‘라는 메세지를 내건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에는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프린, 제퍼슨 에어플레인, 산타나. 재니스 조플린, 멜라니 사프카,

존 바이즈, 알로 거스리, 라비쌍거, 조 카커 등 내노라 하는 세계적 뮤지션들이 대거 참석했다.

 

[우드스톡 사진 / 스크랩]

약 50만명이나 되는 어마 어마한 사람들이 몰려

삼박 사일 동안 야외에서 자유롭게 축제를 즐겼으나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해피 스모그 자욱한 기적의 향연장이라는 뒤늦은 소식과 현장사진에 입이 쩍 벌어졌다.

가보지 못해 안달하던 청춘의 회한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배 문화에 저항하고, 반전 운동을 상징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우드스톡 사진 / 스크랩]

히피라는 어원은 여러 가지로 추측하나 해피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타당성 있어 보인다.

아쉽게도 돈에 병든 기존 질서에서 히피문화는 뿌리 내릴 수 없었다.

그 잊혀 가는 히피문화가 새삼 떠오른 것은 빈민들의 주거문제도 절실하지만,

날로 심각해져 가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불을 지필 필요가 있다.

 

시골에는 객지로 떠나버린 빈 마을이 도처에 늘렸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골짜기가 더 좋다

지자체와 환경부, 복지부가 협력하여, 특정지역에 히피 촌을 만들어 보자.

먼저 가난한 예술가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들이

지자체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낙원을 만드는 것이다.

 

오갈 곳 없는 노숙인이나 빈민부터 입주하는 것이 순서지만, 처음엔 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외지로 쫓아낸다는 선입견 때문인데, 좋은 환경만 마련된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원시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와 석유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주거공간을 만들어,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가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그만 움막과 토굴, 그리고 약간의 텃밭을 제공받아

서로가 협력하는 공동체를 끌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질서와 행정을 돕는 공무 차량과 대중교통 외에는 차량 출입도 제한하고,

대중교통도 인근 읍 소재지까지만 운행하면 된다.

 

돈맛에 병든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얽매이는 곳 없는 사람이라면 나서 볼만한 일이다.

잘만 가꾼다면 낙원이 따로 있겠는가?

원시의 삶을 지향하는 예술혼들이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아무나 따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낙원 말이다.

 

그리고 친환경적 소재로 알려진 대마도 이곳부터 개방하여 활용하자.

어차피 대마의 실체가 알려져 더 이상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 아니던가?

나무를 베지 않고도 얼마던지 종이와 밧줄을 만들 수 있고,

에너지 자원에서부터 인체에 유용한 약제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효능을 가진 신비의 약초로 검증된 지 이미 오래다.

기득권을 가진 재벌 농간에 정치적으로 놀아 난 통탄할 일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표 잃을까 눈치 보는 정치인들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아마 히피 촌이 제대로만 만들어 진다면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다.

유명세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제2 제3의 히피촌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에서 해방된 빈자들의 낙원을 만드는 꿈같은 일을 현실로 바꾸는 일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간밤에 눈이 내렸다.

며칠 전에는 노숙인이 거리에서 얼어 죽었다.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합숙소를 기피해서다

요즘 들어 노숙인과 쪽방촌 사는 빈민들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없는 자에게 코로나는 더 가혹하다.

 

난, 송년회 술타령하다 정초부터 헤매고 있으나

잘 곳이 없어 생사를 헤매는 노숙인들도 많다.

 

서울역 광장엔 밤새 내린 눈이 서서히 녹고 있었고, 노숙하는 분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서울역 ‘다시서기센터’에 들어가 몸을 녹이는데, 조해인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제주에서 변순우씨가 올라와 ‘응암동콩나물국밥’에 있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금방 방전되는 고물 핸드폰이라 공짜 폰으로 바꾸라지만, 그냥 쓴다.

밖에 나올 때만 사용하는데, 솔직히 없는 게 편하다.

 

응암동 콩나물국밥집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변순우씨도 모처럼 왔지만, 전화가 끊겨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갔더니, 변순우, 조해인씨 외에 김수길씨도 있었다.

그 사이 소주를 여섯 병이나 깠더라.

 

변두리시인에게 무슨 변수가 있었던 걸까?

만난 지가 한 오 육년은 된 것 같은데, 더 젊어보였다.

30여년을 동생처럼 지냈으나,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른다.

근황을 묻고 싶었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별것 있겠나?

 

팔 년 전에는 정동지의 제주 장터 탐방 길에 들려 신세도 졌다.

항상 윗사람에게 싹싹하고 아래로는 의리를 챙기는 정 많은 친구다.

 

그런데, 모처럼 제주에서 출두하신 변사또 신년 하례연에

수청들 기생이 없다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낯 술에 취해 노래방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갈 수 없었다.

고질병으로 헉헉거려가며 정초부터 악쓸 수야 없지 않은가?

 

새해 첫 만남이었으나, 방석집 추억을 곱씹으며 물러나야 했다.

다들 새해에도 재미있는 일 많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여성 노숙인은 왜 화장하고 담배 필까

 

단비뉴스 / 최유진기자

 

“저리 가세요! 내가 살벌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

짙은 화장을 한 채 담배 연기를 내뿜던 노미숙(가명∙48) 씨가 버럭 화를 낸다. 옆에 앉은 한 남성 노숙인 때문이다. 담뱃재를 털면서 노 씨는 “난 나이 많아서 괜찮으니까 당신 걱정부터 하라”며 “곧장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등을 떠민다.


▲ 지난 8일 여성 홈리스 노미숙 씨는 지하철 서울역 13번 출구 ‘따스한 채움터’ 앞
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그가 보는 거리 모습을 담았다. ⓒ 최유진


지난 8일 오후 3시 무렵 지하철 서울역 13번 출구 앞 거리에서 노 씨를 만났다. 하루 세끼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따스한 채움터’가 있는 곳이다. 그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아침 7시부터 종일 급식소 근처에서 지낸다. 배식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셔터를 내린 가게 앞이나 한적한 골목길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는 “(급식소에) 가까이 있어야 사람 몰리기 전에 빨리 먹고 나온다”며 “날이 추워져서 낮에 볕 쬐고 (배식) 기다리는 것도 얼마 못한다”고 말했다.


▲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 입구에는 배식 일정과 이용자 준수∙조처사항이 게시돼 있다.
노 씨는 매주 사나흘은 이곳에 찾아와 하루 세끼를 먹는다. ⓒ 최유진



“여럿이 자는 데는 안 가”

“지금은 길에 있기 딱 좋지. 해가 참 좋다니까. 겨울은 정말 너무 싫어.”

노 씨는 겨울이 무섭다. 추운 날씨에 해가 일찍 저물어 벌벌 떨면서 긴 밤을 지새야 하는 탓이다. 날씨가 춥지 않은 여름에는 바깥에서도 잠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부터는 그냥 밤을 새는 것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옷을 껴입고 종이 포장박스로 냉기를 막아 보지만 살을 에며 파고드는 냉기를 피할 수 없다. 밤은 왜 그리 길기만 한지, 벌벌 떨며 이제 새벽이 됐겠지 하면 겨우 자정이 지났을 뿐이다.

남성 노숙인들은 추위를 피하려고 없는 돈으로 소주라도 한 병 사 마시고 잠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 술기운이 떨어지면 잠이 깬다. 여성 노숙인은 그럴 수도 없어 해 지고 새벽까지 열 서너 시간을 추위와 싸우며 견뎌야 한다. 그렇게 밤을 새고 나면 온 몸이 망가진 듯 쑤시고 아프다. 노 씨는 “(겨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돈 없어서 찜질방 같은 곳도 가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겨울이 와도 차라리 떨며 밖에서 지내지 ‘응급 잠자리’는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한다. 노숙생활을 시작할 무렵 일시 보호시설을 찾았다가 불쾌한 일을 당해서다. 불쾌한 정도면 괜찮은데 위험한 곳이 많다.

“요 근처에 여자만 자는 방도 있고, 잘 수 있는 데는 꽤 있지. 근데 나는 여럿이 같이 자는 데는 안 가. 차라리 길에서 잘 거야. 여자 방에 갔더니 험한 꼴 안 당하려면 할머니랑 끌어안고 자래. 싫다고 홀에 있는 카우치(couch)에서 잤지. 근데 남자 셋이 돌아가면서 옆에 와서는 이상한 소리 내고… 그게 완전 성희롱이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 다시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길거리나 지하도 등도 불안하긴 하지만 그나마 도망이나 칠 수 있어 한데서 자는 것이 편하다는 얘기다.


▲ 서울역 광장에 누워있는 남성 노숙인들.
노 씨는 이곳 광장에서 떼 지어 술 마시던 남성 노숙인들에게 거북한 농담을 들은 이후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최유진


거리에서도 쉼터에서도 불안한 여성 노숙인


▲ 서울역 광장 한쪽에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가 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거리상담(아웃리치), 응급구호, 일시보호시설 연계 등을 지원한다. ⓒ 최유진


“여자들은 ‘다시서기센터’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한 네다섯 명? 남자에 비해서는 적지. 근데 나는 그냥 돈 생기면 찜질방이나 PC방으로 가. 애들이 많잖아. 일단 덜 무섭고....”

노 씨는 맞은 편에서 쳐다보는 남성 노숙인들 거동을 살피며 속삭였다.
“진하게 화장하고 담배도 피우면 (남자들이) 쉽게 못 보는 것 같아. 못 피우는 담배를 그래서 입에 물고 있는 거야. 조금 남은 돈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 가서 씻고 화장을 하지.”

그는 “PC방도 이상한 사람 오긴 하는데 조용한 데 자리잡으면 잘 만하다”며 “이제 돈 좀 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손을 털었다. 저녁 6시가 다가오자 ‘따스한 채움터’로 향했다. 그를 지켜보고 서있자 가라는 손짓을 계속했다.

“옷 넣을 봉지 하나도 사야 한다니…”

“친척 집이 멀긴 한데, 갔다 오긴 했어요. 계속 있기가 그러니까 그런 건데, 갈 곳이 있긴 있는 거죠. 여기 내가 왜 있냐면, 그냥 편하니까 있는 거예요. 나도 애도 있고, 학교도 다녔고 지금 잠깐 이렇게 된 거지. 친척 집에 가면 되는데, 여기가 편해요.”


▲ 서울교통공사는 철도안전법 제48조 ‘역 및 열차 내 노숙행위 금지’에 따라
역 안에 노숙인이 다른 시민에게 피해를 줄 경우 퇴거 명령을 내린다. ⓒ 최유진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손잡고 거리를 거닌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 어디선가 드르륵 바퀴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온다. 낡아 다 떨어진 캐리어와 빵빵한 비닐봉지를 이고 다가오는 한 여인이 있다. 사람들은 힐끗 눈길을 주고서 이내 분주히 제 갈 길을 간다.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놓고 외면하기도 한다. 그는 젊음의 거리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다.

지난달 중순 서울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에서 김성아(가명∙42) 씨를 만났다. 그는 거리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래 씻지는 못했다는 고백을 들으며 노숙 기간을 그저 짐작해볼 수밖에 없었다. 비닐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냐고 묻자, “친척이 겨울 잠바 몇 개 챙겨준 걸 갖고 다닌다”고 했다. 낮에는 따뜻한데 새벽녘으로는 추워서 이불 대용으로 갖고 다닌다는 거였다. 그는 “요즘은 편의점에 가도 봉지를 돈 주고 사야 된다고 하는데 큰일”이라며 “(봉지가) 찢어질 것 같아 튼튼한 가방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날이 추워지면 다시 친척 집에 갈 것이라고 했다.


▲ 지난달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에서 만난 김성아 씨가 늘 갖고 다니는 보따리.
비닐봉지에는 친척집에서 얻은 겨울 외투가 들어있다. ⓒ 최유진


쓰레기장 옆 ‘안전 잠자리’

김 씨는 마로니에공원 ‘어딘가’에서 잔다고 했다. 그는 “공원에 행사가 많으니까 심심하지 않다”며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근데 거기도 생각보다 남자들이 많이 자는 것 같은데... 내가 어디서 자는지 알면 어떡해? 일단 친척집 가기 전까지는 임시로 있어야지, 임시로.”

그는 “누가 날 따라다니지 않는지 걱정된다”며 “(캐리어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 것 같다”고 우려했다. “쓰레기장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잘 다가오지 않아 해코지를 안 할 것 같다”며 “그래서 잠바 싸매고 쓰레기봉지 옆에서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신대방역에서 만난 여성 홈리스 박한이(가명) 씨는 가방 세 개를 갖고 여러 지하철역을 돌아다닌다.
공책에는 ‘남구로 월세 뺏겼다’는 내용이 반복해서 적혀 있다. ⓒ 최유진


남에게 피해 안 주려 해도 씻을 곳 없어

지난봄 서울 서초역 인근 한 커피전문점에서 겪은 일이다. 여자화장실을 가려던 사람들이 문을 열어보고는 곧장 자리로 되돌아왔다. 화장실에는 티슈에 물을 적신 채 발을 닦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한참 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바닥에는 머리카락 한 움큼이 뭉쳐 있었는데, 그가 쓸어 모아 놓은 것이었다. 그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마음 편히 씻을 곳은 없는지 묻고 싶었다. 봉지에 양말을 챙겨 넣는 그를 붙잡았다. 커피 한 잔 하시겠냐는 물음에, 그는 소리쳤다.

“여기 아니면 어디 가라고? 씻을 데가 없어.”
묵직한 책가방을 메고서, 빨랫감을 담은 봉지를 들고서 그는 급히 사라졌다. 아무것도 묻지 못했지만, 괜히 그를 도망치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 지난 3월 을지로입구역에서 만난 여성 홈리스 김미영(가명) 씨에게 어디서 씻는지
물었지만 “몰라”가 대답의 전부였다. ⓒ 최유진


전국 여성노숙인 2900여명, 거리에도 120여명

보건복지부의 ‘2016년도 노숙인 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노숙인은 전체 노숙인의 25.8%로 전국에 2,929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거리노숙인은 6.4%로 128명이다. 이 실태조사 결과에는 찜질방, PC방, 만화방 등에서 쪽잠을 청하는 이들은 포함돼 있지 않다.

사람들은 노숙인을 보면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됐누” 하면서 노숙인을 은근히 탓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노숙인들도 좋아서 거리로 나앉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집에서 나와 거리를 떠돌고 있을까?

서울역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노미숙 씨는 한때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했다. 이후 학원을 운영했다. 서울 강남에 오피스텔을 갖고 있을 정도로 수입이 좋았다. 그러다 사업이 잘 안돼 실패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사업 실패하고 오갈 데 없어 나왔는데, 노숙 생활을 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노숙인 쉼터나 보호센터 봉사자나 관리자들 말을 들어보면 노숙인들이 홈리스가 되는 과정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잘살던 사람들이 노숙인이 되는 일은 별로 없고, 대체로 서민이나 중산층 가장들이 은퇴하거나 사업에 실패해서 거리로 나앉는 경우가 많다.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퇴직금을 식당이나 자영업에 투자해 경험부족과 경기부진으로 실패하고, 그걸 살려보려고 집까지 담보로 잡혀 다 날리고 홈리스가 된다는 것이다. 집이 없어지면 자녀들은 가까운 친척집에 맡기거나 아내와 함께 처가에 맡기고 가장인 본인은 어디에도 갈 데가 없어 거리로 나앉는다는 것이다.

남성 노숙인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홈리스가 되는 반면 여성 노숙인들은 경우가 좀 다르다. 노 씨처럼 사업실패로 홈리스가 되는 사례도 있지만 돌볼 사람이 없거나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 내팽개쳐 거리로 나앉은 이가 많다. 여성홈리스 12명을 인터뷰해 제작한 다큐영화 <그녀들이 있다>를 보면, 가정폭력을 피해 나온 이도 있고, 미혼모로 살다 생계가 한계에 이르러 나온 이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당장 보호가 시급한 정신질환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이다.

강민수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간사는 "노숙 생활이 오롯이 개인 책임만은 아니기도 하다"며 "알코올중독까지 이른 건 개인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저마다 사연을 들어보면 사업 실패나 가정불화, 사별 등 가슴 아픈 이유들이 있다"고 말했다.

"남성 홈리스는 자발적으로 집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를 개인 선택이니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생명까지 위험해진다. 실제로 거리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다. 어떻게 미리 손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구구절절 사연을 재고 따지기보다 생명을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보호 필요한 정신질환자도 많아

복지부 조사결과를 보면 여성 노숙인의 47.6%가 조현병, 우울증,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등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시설의 여성 노숙인들은 80% 이상이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신대방역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박한이(가명) 씨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는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서 끈임없이 무언가를 노트에 메모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가서 보니 ‘남구로 월세 뺏겼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적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여성 노숙인 중에도 상당수가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어 당장 보호가 필요한 상태에 있다. 노숙인의 개인적인 책임도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구멍 나고 고장 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드러나고 있다.

‘홈리스’와 ‘노숙인’은 같은 뜻이 아니다. ‘노숙인 등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노숙인 등’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한자 뜻 그대로 보면 ‘노숙인(露宿人)’은 이슬 맞으며 자는 사람이다.

강민수 간사는 “(노숙인에 비해) 홈리스는 집이 없는 사람, 즉 쪽방이나 고시원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까지 확장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만이 아니라 홈리스 지원정책이 생겨야 주로 PC방에서 잠을 해결하는 노미숙 씨 같은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서울시 홈리스 정책은 노숙인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불편해하고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리노숙인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지난해 노숙인 1,045명 임시 주거 지원…82.4% 노숙 탈출’. 2018년 2월 7일자 서울시 보도자료 제목이다.

‘2018 홈리스추모제’ 주거팀은 “서울시가 (노숙인 탈출에 그치지 말고) 더 나은 주거로의 상향 이동을 위한 후속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숙인을 거리에서 임시주거로 옮기는데 중점을 두지 말고, 임시시설 거주기간을 최소화하고, 임시거주하는 동안에도 노숙인들이 최소한 사람답게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숙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홈리스들을 위한 종합적이고 안정적인 보호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편집 : 김정민 기자

 

돈에 떠밀려 죽었다.

비정한 세상이 죽였다.

 

비참하도록 슬프게 죽었다

돈에 병든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내 주검에 침뱉지마라"

 

‘2021홈리스추모제’에서...

사진, 글 / 조문호

 

노숙인 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시기가 한겨울보다 갑자기 추워지는 이때다.

갈아입을 방한복은 물론 내복조차 없으니, 온종일 바들바들 떨며 지낸다.

 

세상살이 고달프다지만, 노숙인보다 더한 사람이야 있겠는가?

추위를 이기려고 술을 찾게 되고, 술이 술을 마셔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술 때문에 노숙인 임시대피소에도 들어갈 수 없는데,

저러다 길에서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들어 노숙하는 이들의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노숙의 길로 들어 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다 버려도 못 버리는 것이 바로 핸드폰이다.

어디 연락할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임에 중독되어서다.

 

그러니 핸드폰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충전할 곳이 필요해

충전 연결코드가 있는 지하도 요소요소에서 온종일 죽치는 것이다.

그런데, 핸드폰 사용료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야 지하도에 머물러 추위도 덜한데다,

알콜에 중독되어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숙인 보다 백배 낫다.

다들 자리 뺏기지 않으려고 한 자리에서 버텨

지나칠 때 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도대체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안 갈까?

 

하기야!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핸드폰을 끼고 사는 세상에

그들인들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죽음의 골자기로 내몰린 노숙인을 걱정하는 정치인들은 왜 없을까?

복지공약을 밥 먹듯 쏟아내는 대선후보들이

노숙인들의 추위를 보살피려는 아량은 왜 베풀지 못할까?

당사자들 표야 없겠지만, 나라도 그런 후보에게 한 표 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월요일 오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쪽방 거지는 걱정할 것 없으나 길거리 사는 거지는 지랄 같다.

이불 삼은 종이 박스도 젖어버리지만, 몸 젖는 것보다 마음 젖는 것이 더 서럽다.

노숙인들이 비 오는 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이유다.

 

다들 비 피할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누군가 랩처럼 비닐을 몸에 감고 버티는 자도 있었다.

깡다구로 버티는 것일까? 아니면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것일까?

무슨 천형의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으로 살아야 할까?

 

 

그래도 지은이는 우산을 하나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을 돌아다녔다.

똑같은 노숙자지만 지은이는 낙천적으로 산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옷이 그 옷이지만 나름대로 바꿔 입어가며 멋을 엄청 부린다.

 

만들어 주기로 한 시진을 준비하지 못해 일부러 눈 마주치기를 피했으나

멀찍이서 보고 다가와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해준다.

다음엔 꼭 사진을 뽑아오겠다고 변명했더니,

밀린 사진이 석 장이라며 찍은 회수까지 기억했다.

 

지하도를 건너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인사를 한다.

그는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그를 왜 기억하지 못할까?

치매 환자라며 이름이 뭐였더라고 머리를 조아리니,

박완호예요 박완호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자칭 인사동 광대라는 자가 서울역엔 어떻게 진출했나?

하기야! 나 역시 인사동 찍사가 서울역 부근에서 놀지 않는가.

서울역광장은 거지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동자동으로 건너와 공원에 갔더니, 젖은 땅에 앉아 여럿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근 일 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던 유정희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젖은 자리에 끼어 앉았는데, 그동안 감방에서 몸조리하고 왔단다.

싸움판에 끼어 덤터기를 썼다는데, 폭력전과 별까지 달았다며 씁쓸해한다.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일 년 가까이 서류를 갖고 다녔는데

원고 마감하고 나서야 나타났다며 안타까워했더니,

형님!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뭐 필요합니까?”라며 오히려 섭섭해한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찍힌 사람들에게 사인받으러 다니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만약 찍힌 사람이 고소를 해도 이왕 단 별, 몇 개 더 단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 등 제삼자에게 줄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외면할 수 없었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머무는 곳이 일정치 않아 만나지 못하면 부득이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출감기념으로 소주 두 병 사 와서는 빗물에 칵테일해 마셨다.

그런데, 건너 자리에 있던 상일이가 내 옆으로 옮기더니 말을 붙인다.

다들 나에 대한 호칭을 형이나 어르신 아니면 사진작가라 붙이는데, 이 친구만 늘 사장님이라 부른다.

~ 배도 안 나오고 이래 삐적 말라빠진 사장이 어딧노?”라며 싫어해도 자기는 그 말이 편하단다.

 

오래전 상일이가 나온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구가 그 내용을 찾아주어 보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어려운 처지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들은 노숙하는 친구를 범죄자처럼 피하지만,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이 야박한 세상에 착하게만 사니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만, 몸이 축축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쪽방에 올라와 옷부터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가짜 미투로 독박 쓴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최효준씨가 쪽방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달짝한 복분자 술을 한 병 사왔는데, 부족한 알콜 농도는 복분자로 보충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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