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둘러싼 대립 사회 고질병 보여줘
거친 울분 표현보다 정제된 예술미 절실

 

민주화 투쟁 시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걸개 그림 하나가 미술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가 창설 20주년을 맞아 본행사 개막(9월5일)을 앞두고 마련한 특별전에 내걸릴 작품 하나를 전시 유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과거 민중미술이 풍미하던 시절 갑론을박의 풍경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치권 등 우리 지도층이 보여 준 처참한 행태들이 다시금 민중미술을 호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는 늘 걸개그림이 등장했었다. 투쟁의 최전선인지라 표현도 거칠고,직설적이고 전투적이었다. 미학적 논의는 차후의 일이었다.

‘광주 정신’을 승화한다는 차원에서 마련한 이번 특별전에 초대된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는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해준다. 여성 작가인 그는 1차 세계대전엔 아들을, 2차 세계대전엔 손자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겁먹고 놀라 두려움에 가득 찬 모습의 세 아이를 두 팔을 벌려 품에 안고 있는 작품은 강렬하다. 적의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우리가 전쟁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건 아니다”라고 절규하는 듯한 울림이 전해질 뿐이다.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또 어떤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우리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외치는 듯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모습에서는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대변이 느껴진다. 민중 판화가들이 그를 모델로 여겼던 이유다. 그 힘은 강한 ‘순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전시가 보류된 작품으로 시선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북한 삐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라고까지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다. 현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음에 대한 작가 나름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척박한 우리 현실의 반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전시를 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재단이 대토론회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것은 해결책이 못 된다. 또 다른 논란만 부를 것이다. 벌써부터 ‘꼼수’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오고 있지 않은가. 상황만 모면하려는 생각들만 많아서는 안 된다. 작가와 작품 선정은 큐레이터의 책임이고, 작품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라는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성숙해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전시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대립적 양상들의 배경엔 우리 사회 고질병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각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에 성공유산을 가진 이들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기득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혁명의 완성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데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순수, 진실성의 추구가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 그 출발점이다.

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없는 자기 부정의 순수가 있어야 한다. 새빨간 색은 꼭 새빨간색으로만 표현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옅은 빨강을 통해 새빨강을 드러내 줄 수 있는 게 미술이고 예술이다. 희미한 빨강으로도 더 감동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정제된 예술적 승화다.

중국 명나라 황실의 후예인 팔대산인은 청나라에게 나라가 망한 허탈감과 원한을 그림으로 승화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 어디에서도 거친 울분을 볼 수 없다. 다만 새의 눈을 백안시(흰 눈동자)로 표현함으로써 깊은 울림으로 승화시켰다. 사람들을 그의 슬픔에 더 공감케 했다는 팔대산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해준다. 이제 우리 사회도 순수가 필요한 시대다.

세계일보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김동석 개인전 '씨앗...1mm의 희망을 보다'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16일까지

 

김동석 ‘씨알의 꿈-1015’(사진=가나아트스페이스)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중견화가 김동석이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씨앗...1mm의 희망을 보다’를 연다.
작가의 12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주제는 ‘씨앗’으로 신작인 ‘씨알의 꿈’연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씨앗(씨알)의 여정이 인간의 삶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했다”며 “사람들이 씨앗처럼 자기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씨앗’을 오브제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02-734-1333. XML

I like pizza 4 - Utopia 3

공기평展 / KONGKIPYUNG / 孔基枰 / painting

2014_0827 ▶ 2014_0902

 

공기평_I like pizza 4 - Utopia 3 –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45.5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428a | 공기평展으로 갑니다.

 

공기평 블로그_blog.daum.net/bohemianart0326               blog.naver.com/kcong032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제1전시장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이태리 전통 빵이었던 피자는 미국으로 이민간 이태리언들에 의해 상품으로 개발되어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미국 체인점 스타일로 변형 보급되어 현대인의 피할 수 없는 기호식품이 되었다. 이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으로서 콜라, 햄버거와 더불어 전 세계 사람들이 손쉽게 사먹는 패스트푸드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한국도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내의 국가로서 주한미군 창설과 더불어 피자 역시 함께 유입되어 왔으며 88서울올림픽 전후로 더욱 서구화된 결과 중 하나로 피자체인점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나이 40대 밑으로는 모두 어리거나 젊은 시절에 피자를 맛들이게 되었으며 언제 어디서든 1판으로 간편하게 여럿이서 나눠먹을 수 있어 공동체적인 한국 성향에도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간식거리가 되었다. ● 그럼, 공기평 작가에게 피자는 특별히 무엇인가? 50년대 후반 출생한 작가에게 피자는 조금 낯선 음식이다. 주된 입맛이 결정된 어린 시절에 접하지 못한 토마토소스에 모짜렐라 치즈가 가득 든 피자는 거의 40세에 이르러서야 처음 접한 음식이라 다소 생소하고 체질적으로 와 닿는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 하지만 햄버거와 콜라의 달콤하고 중독적인 향료에 길들여지듯이 미국 체인점의 피자는 다가가기 쉽고 빠르며 맛 또한 매력적이다. 이태리 피자의 얇고 비교적 간단한 토핑에 비해서,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스타일은 두툼한 빵 위에 소스, 치즈, 다른 토핑 모두가 푸짐해 8분의 1쪽씩 떼어 먹어도 제법 접시에 가득히 담아져 미국인의 양에 맞도록 탐욕스럽게 부풀려진 미국식 체인점 피자이다.

 

 

공기평_I like pizza 4 - Utopia 3 -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45.5cm_2014
 
 

작가가 그려낸 피자는 바로 이 미국 스타일로, 절제미라고는 없이 끝없는 욕구를 자극하여 소비를 촉진시키는 바로 자본주의식 욕망의 맛이다. 그래서일까? 작품 내 피자의 기본 색감은 밝은 핑크로 미국을 또한 대표하는 아이스크림 상표가 채택한 색이 대부분이다. 피자의 세계는 굉장히 풍요로우며 그 안에서 치즈 속에서 질척대고 아니 스스로 그 안에 동화되어서 치즈같이 녹아 내리는 사람들은 밝게 채색되어 있고 행복스러움에 싸여있다. 잘 포장된 산업화된 도시에서 깔끔한 피자집에서 신나게 피자와 콜라를 먹으며 살아가는 착한 도시인들의 모습이다. ● 작가는 분명히 외친다. 'I like pizza.' 그리고 이 주제는 'Utopia'라고. 피자를 먹고 사랑하고 꿈꾸는 현대인들의 삶을 유토피아와 같은 밝다 못해 눈이 부시는 색채와 만화적인 도식화로 유쾌하게 그려냈다. 피자라는 낙원의 세계에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고 대체로 알려졌지만 여기서는 그저 낙원의 열매로만 보이는 새빨간 사과, 풍성한 포도와 이것으로 빚어낸 포도주, 빵이 널려 있으며 알록달록한 집과 교회 같은 건물들이 보인다. 그 땅 위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쉰다. 윈드서핑 대신에 치즈서핑을 신나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빨간 낙원의 열매를 여유롭게 낚아내기도 한다. 피자 낙원의 뒤 배경은 모두 하늘색이고 피자 낙원은 부유하거나 부상 중으로 보인다. ● 자체가 낙원이나 결코 정착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치즈와 함께 녹아 내리고 있다. 작가가 말하듯이 현대 인간은 피자를 먹으며 유토피아를 꿈꾸거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고 있지만 이는 자기기만일 뿐이다.

 

 

 

공기평_I like pizza 4 - Utopia 3 – 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45.5cm_2014

 

 

이번 작품의 제목은 「I like pizza」로 다소 모순적이다. 「FunnyFunny」 시리즈 이후 작가가 강하게 표현하는 주제와 회화 방식은 현대인의 모순성에 근거한다. 「FunnyFunny」 시리즈는 경쾌한 색감과 동작성과 입체감을 살린 부조화된 형식, 단순화된 군상과 사물은 얼핏 보이기에는 그 자체로 즐거운 미학을 표방한다. 마치 이전 그가 줄곧 천착해 온 지리산 시리즈의 묵직한 주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벽한 가벼움과 유쾌함으로 포장된 것을 조금만 벗기면, 바로 그의 내면적 고민과 성찰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 「지리산」 연작의 사실적인 인물과 산의 묘사는 그 자체로 시대의 아픔과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면, 「FunnyFunny」 시리즈와 최근 「I like pizza」 시리즈에서는 표현방식의 극명한 변화와 함께 현대인의 가벼움과 행복을 거죽으로 시대와 삶을 풍자적으로 희극화시키며 더 처절한 통찰을 부조형식의 두께만큼 덮어놓고 있을 뿐이다. ● 「I like pizza-Utopia」에서 작가는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방식보다 더 강력한 메타포로 반어적이고 모순적인 형태로 그의 변함없는 주제의식을 더욱 인상깊게 피력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 자본주의의 폐단, 그리고 환경파괴, 기아, 전쟁 등의 세계문제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고민은 그의 굴곡진 삶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유토피아를 그린 화려하고 밝고 경쾌한 그림들은 우리에게 처음에겐 미소를 선사하지만 조금 더 다가가 주시하면,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현재 이 자리가 진정한 유토피아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명애

 

 

공기평_I like pizza 4 - Utopia 3 –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4
 

「I like pizza」 연작은 2009년 브레인팩토리의 개인전에서 두툼한 피자 빵 위의 도핑 대신에 인생을 담아 세계문제를 다루어 발표하면서 시작 되었다. 「I like pizza 1」연작이 발표 될 당시에는 커다란 평면의 화면에 만화적인 캐릭터가 난마처럼 복잡하게 피자 위에 얽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FunnyFunny」 연작의 입체표현 방식이 「I like pizza' 연작의 화면에 도입 되었다. ● 「FunnyFunny」연작은 평면에서 얇게 파 들어가 입체를 만든 고대 이집트 고분벽화의 부조(릴리프)표현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완전평면의 화면에 착시효과를 이용하여 올록볼록한 부조처럼 보이도록 붓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FunnyFunny」연작이 처음 발표 되었을 당시에는 평면회화의 죽음이 선언 되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평면회화가 공격을 받고 있을 즈음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평면 회화를 버리고 설치나 영상, 미디어아트, 하이테크미술에 경도된 시기 였다. ●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평면회화 만을 고집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FunnyFunny」연작이 탄생 되었던 것이다. 피자는 현대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케쥬얼한 음식이다. 한 판을 몇 쪽으로 나누어 여러 명이 먹을 수 있어 나눔의 미학이 있고, 여러 쪽이 모여서 공통의 가치를 확인 할 수도 있다. 또, 빵 위에 올리는 도핑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점이 현대의 가치관과 일치한다. 일상적인 현대의 삶은 단순하며 반복적이다. 그 단순함을 위하여 정해진 몇 가지 색상만을 선택하였다. ● 「I like pizza 2 - Utopia」는 피자 위에 남북한의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 되었던 역사적, 장소적 공간인 지리산을 세우고 그곳에 민족 화해의 낙원을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로 시작 되었다. 말하자면 지리산」연작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이번 전시는 그 동안의 여러 연작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반영 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피자 위에 치즈처럼 녹아 흐르는 사물과 인간상은 소모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특성을 담은 것 이다.

 

 

 

공기평_I like pizza 2-Utopia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3×97cm_2012

 

공기평_I like pizza 2-Utopia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7×130.3cm_2012
 

피자 빵 위에 녹아 흐르는 치즈는 흐르는 강물처럼 계곡 사이사이를 누비고, 강태공은 세월을 낚아 올리듯 낙원의 사과를 끌어 올리고 있네. 허공에 솟아 오른 피자 위의 마을들은 녹아 흐르는 지붕을 이고, 바로크 풍의 고색창연한 가로등은 포도주와 빵을 비추며, 아이들은 치즈를 파도 삼아 윈드서핑을 즐긴다.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디오니소스가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배를 두드리고, 시간을 잊은 듯 포도주는 녹아 흐른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의 정원은 아담과 이브의 놀이터인가? 아!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건만 나는 오늘도 허망하게 낙원을 찾아 헤매네. ■ 공기평

 

 

공기평_I like pizza 2-Utopia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7×130.3cm_2012

 

 

Vol.20140827c | 공기평展 / KONGKIPYUNG / 孔基枰 / painting

 


영혼의 시, 뭉크展

어릴 적 가족 잃은 아픈 기억으로 고통받고 괴로운 사람을 주로 그리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타냈던 뭉크,
평생 불안에 떨며 불행하게 살아 인간이 겪는 외로움 잘 묘사했어요

1863년 12월, 북유럽의 겨울답게 몹시 춥고 스산한 날이었어요. 노르웨이 뢰텐 지역의 허름한 방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당시 산모는 결핵을 앓았고, 태어난 아이도 너무나 허약했어요. 부모는 곧장 세례를 받기 위해 신부(神父)를 불렀습니다. "이 아이가 의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그리고 죽음 또한 그의 삶과 같기를…." 신부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내려주는 축복치고는 지나치게 우울한 말이었지요. 이 아이가 바로 외롭고 상처 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입니다.

 

 

 

뭉크는 어려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어요.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10여년 뒤 누나인 소피마저 같은 병으로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뭉크가 엄마처럼 따랐던 소피는 죽기 전, 침대 곁에 있는 의자에 앉고 싶어 했대요. 병으로 오랫동안 누워 있었기에 의자에 제대로 앉아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이내 피곤해진 그녀는 '침대에 눕혀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의자에 앉은 채 숨을 거두었지요. 뭉크는 소피가 숨을 거둔 그 의자를 평생 간직했다고 해요. 이렇게 일찍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뭉크는 늘 죽음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뭉크 자신도 어려서부터 류머티즘, 열병, 불면증 등을 앓았고요. 뭉크가 느낀 두려움은 그가 남긴 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곁에는 공포와 슬픔, 죽음의 천사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내가 놀고 있을 때에도, 봄날의 햇살 속에서도, 여름날의 찬란한 햇빛 아래에서도 늘 나를 따라다녔어요. 잠에서 깰 때면 여기가 혹시 지옥이 아닐까 두려워서 주변을 한참 살피는 습관이 있었어요."

작품 1은 뭉크가 자기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에요. 어두운 배경 앞에 선 남자의 등 뒤로 실제 사람보다 더 큰 검은 그림자가 서 있어요. 이 검은 물체는 금방이라도 남자를 집어삼킬 듯한 위협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지옥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것은 혹시 지옥의 괴물이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옥죄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뭉크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절규'에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어요. "두 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댔다. 죽을 듯이 피로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난 가슴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고 지나가는 거대하고 기이한 절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다짐하듯 말합니다. "나는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내 그림 속 인물은 살아 숨 쉬고 그걸 느끼며, 고통받고 사랑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에드바르 뭉크, '절규'.

 

하지만 그런 뭉크에게
도 달콤한 사랑이 찾아왔어요. 연인인 툴라는 보통 여자들처럼 뭉크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지만, 뭉크는 남편,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어둠의 그림자와 싸워야 했고, 마음속에 깃든 정신적 고통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작품 2를 보세요. 여자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남자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머리를 감싸며 등을 굽힌 채 돌아서 있네요. 결국 뭉크는 연인 툴라와 헤어지고 말아요.

작품 3은 삶과 사랑을 주제로 하여 뭉크의 그림 가운데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저 멀리 물 위로 달이 떠있고, 달빛 아래에서 남녀가 쌍쌍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짝을 기다리는 듯 수줍게 서 있는데, 아마도 인생에서 젊고 순진한 시기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가운데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남자와 춤을 추고 있어요. 사랑과 열정의 단계이겠지요. 오른쪽에는 검은 옷의 여인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 여인은 늙음과 외로움, 그리고 지혜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뭉크는 평생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살다 간 화가였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인간이 겪는 고통과 외로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그림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580-1300


출처 / 조선일보 / 이주은 |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지금까지 나는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로 인해 급변하는 서울의 속도와 높은 인구 밀도, 공사 소음, 잦은 이주에의 압력 등 한국 도시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공간의 성격을 성찰하여 회화의 형식에 적용하는 작업을 해왔다. 임시방편적으로 급변하는 사회를 캔버스 안으로 끌고 들어와, 붓질로 그어 구축하고-스프레이로 지워 무너뜨리고-다시 그어 재구축하는 행위를 통해 계속 무너지는 동시에 지어지고 있는 한국 도시의 단면을 회화의 형식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공사장은 한국 사회 현실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 할 만하다. 끊임없이 짓고 부수고 다시 짓는 이곳에서 기억의 지속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란 애당초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현실의 리얼리티에 입각하여 이를 추상적 회화형식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무언가 명확한 것으로 내세우기엔 너무나 쉽게 사라져버리고 무너져버리는 공간의 성격을 드러내기에 추상이 적절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공사장 추상>이란 제목으로 개최되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준비 기간 동안 수많은 어린 생명이 사라져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참사와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었다. 나 또한 두 아이의 엄마인데, 이 참사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이루 말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허망하고 무력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한동안 붓을 잡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기반과 체계 없이 구조적으로 허약한 상태로 경제적 성장만 추구해온 한국사회이기 때문에 일어난 끔찍한 재앙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가까스로 추스려 다시 붓을 들면서도 도무지 색이 아름답거나 구조가 단단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허망했기 때문이다. 마음 속 마저 황폐한 공사장인 것만 같았다.

 

 


- 정직성(1976- )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동대학원 석사, 박사 수료. <공사장 추상(2014)>, <어떤 조건(2013)>, <추상작동(2012)> 등 15회의 개인전. 매화를 기다리며; 정직성·조종성 2인전(2014), 한국 현대회화 33인전(2014) 등 참여.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12),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2012), Etro 미술대상 대상(2012) 등 수상.


CAKE

문형태展 / MOONHYEONGTAE / 文亨泰 / painting

2014_0604 ▶ 2014_0624

 

문형태_폭풍우 치는 마음_캔버스에 유채_45.5×27.3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1218h | 문형태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6월24일_10:00am~01:00pm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9(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물건, 기억, 사람, 감정과 생각, 그사이를 오고 갔던 상상들까지. 여기, 태어남과 동시에 시간의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당신과 내가 있어요. 큰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지 못해도, 마땅히, 누구나 잘 살아오고 있다고 축하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삶이란 매일 매일 설렘과 환희, 눈물과 축제, 미소와 쓸쓸함으로 토핑 된 『CAKE』만큼이나 달달 하니까... ■ 문형태

 

문형태_Family Slope_캔버스에 유채_33.4×45.5cm_2014

문형태_Redpine_캔버스에 유채_45×27.3cm_2014

문형태_Shine on you_캔버스에 유채_33.4×53cm_2014

문형태_Spaghetti_캔버스에 유채_34.8×27.3cm_2014

 

문형태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것들, 말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한다. 그것은 미래의 상상도 아니며 과거의 추억도 아니지만, 발이 커져서 신지 못하게 된 장화나 열광했던 음악, 그리고 잃어버린 마음과 잊혀 버린 사람들까지… 모두 그의 잠재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지나온 삶에 대한 기록이자 그날그날의 일기이며 자신의 삶의 모습이다. 문형태는 이별의 연속인 우리들의 삶이지만 이러한 이별조차도 우리가 살아 있음 그 자체에 대한 숭고함과 축복, 그리고 희망이라는 그의 메시지들을 이번 전시 『CAKE』을 통해 표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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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40606h | 문형태展 / MOONHYEONGTAE / 文亨泰 / painting



 

      최인선(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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