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시, 뭉크展

어릴 적 가족 잃은 아픈 기억으로 고통받고 괴로운 사람을 주로 그리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타냈던 뭉크,
평생 불안에 떨며 불행하게 살아 인간이 겪는 외로움 잘 묘사했어요

1863년 12월, 북유럽의 겨울답게 몹시 춥고 스산한 날이었어요. 노르웨이 뢰텐 지역의 허름한 방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당시 산모는 결핵을 앓았고, 태어난 아이도 너무나 허약했어요. 부모는 곧장 세례를 받기 위해 신부(神父)를 불렀습니다. "이 아이가 의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그리고 죽음 또한 그의 삶과 같기를…." 신부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내려주는 축복치고는 지나치게 우울한 말이었지요. 이 아이가 바로 외롭고 상처 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입니다.

 

 

 

뭉크는 어려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어요.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10여년 뒤 누나인 소피마저 같은 병으로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뭉크가 엄마처럼 따랐던 소피는 죽기 전, 침대 곁에 있는 의자에 앉고 싶어 했대요. 병으로 오랫동안 누워 있었기에 의자에 제대로 앉아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이내 피곤해진 그녀는 '침대에 눕혀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의자에 앉은 채 숨을 거두었지요. 뭉크는 소피가 숨을 거둔 그 의자를 평생 간직했다고 해요. 이렇게 일찍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뭉크는 늘 죽음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뭉크 자신도 어려서부터 류머티즘, 열병, 불면증 등을 앓았고요. 뭉크가 느낀 두려움은 그가 남긴 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곁에는 공포와 슬픔, 죽음의 천사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내가 놀고 있을 때에도, 봄날의 햇살 속에서도, 여름날의 찬란한 햇빛 아래에서도 늘 나를 따라다녔어요. 잠에서 깰 때면 여기가 혹시 지옥이 아닐까 두려워서 주변을 한참 살피는 습관이 있었어요."

작품 1은 뭉크가 자기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에요. 어두운 배경 앞에 선 남자의 등 뒤로 실제 사람보다 더 큰 검은 그림자가 서 있어요. 이 검은 물체는 금방이라도 남자를 집어삼킬 듯한 위협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지옥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것은 혹시 지옥의 괴물이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옥죄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뭉크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절규'에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어요. "두 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댔다. 죽을 듯이 피로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난 가슴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고 지나가는 거대하고 기이한 절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다짐하듯 말합니다. "나는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내 그림 속 인물은 살아 숨 쉬고 그걸 느끼며, 고통받고 사랑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에드바르 뭉크, '절규'.

 

하지만 그런 뭉크에게
도 달콤한 사랑이 찾아왔어요. 연인인 툴라는 보통 여자들처럼 뭉크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지만, 뭉크는 남편,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어둠의 그림자와 싸워야 했고, 마음속에 깃든 정신적 고통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작품 2를 보세요. 여자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남자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머리를 감싸며 등을 굽힌 채 돌아서 있네요. 결국 뭉크는 연인 툴라와 헤어지고 말아요.

작품 3은 삶과 사랑을 주제로 하여 뭉크의 그림 가운데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저 멀리 물 위로 달이 떠있고, 달빛 아래에서 남녀가 쌍쌍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짝을 기다리는 듯 수줍게 서 있는데, 아마도 인생에서 젊고 순진한 시기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가운데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남자와 춤을 추고 있어요. 사랑과 열정의 단계이겠지요. 오른쪽에는 검은 옷의 여인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 여인은 늙음과 외로움, 그리고 지혜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뭉크는 평생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살다 간 화가였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인간이 겪는 고통과 외로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그림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580-1300


출처 / 조선일보 / 이주은 |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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