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과 자기 수행" 서구서 주목하는 한국 모노크롬
크리스티·소더비서 최고실적…아트페어 매진
현대갤러리 정상화전, 국제갤러리 모노크롬전
이우환·정상화·박서보 등 1세대 재조명 활발

 

서울 성산동 작업실에서 비움과 치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한국 단색화 1세대 박서보 작가.   

[사진 제공=사진작가 박기호]

 

 

"이런 분위기는 2007~2008년 이후 처음이었어요. 중국 미술은 옛날만큼 핫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과 동남아 미술이 좋았지요. 한국 미술이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홍콩에서 전화를 받은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 사무소장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지난달 24~25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근현대미술 경매에서 이우환을 필두로 한국 모노크롬(단색화) 작품들이 추정가를 크게 웃돌며 팔렸다. 이우환 작품은 2007년 최고가 수준(100호 기준)인 20억원에 근접했다.

지난달 26일 홍콩에서 경매를 연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도 "이우환을 선두로 해서 정상화 윤형근 등 1세대 모노크롬 화가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K옥션 역시 최근 홍콩에서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 모노크롬 작가들이 해외 경매 시장과 아트페어에서 주목받고 있다. 모노크롬이란 단색만 사용하는 미술양식으로 1970~1980년대 한국 화단을 주름잡은 독특한 추상회화 양식이다. 서구에 미니멀리즘이 있고, 일본에 모노하가 있다면 한국에는 단색화가 있다. 통상 한국 단색조 그림을 영어식으로 모노크롬이라 일컫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뷰티`전을 기획한 이추영 학예사는 "한국 모노크롬이 서구 추상주의와 다른 것은 자기 성찰적이고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이라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서구 추상회화와는 확실히 다른 독특함이 있다"고 말했다.

 

하종현 ‘CONJUNCTION 07-21`

 

현재 해외에서 주목하는 한국 작가들은 이우환 하종현 정상화 정창섭 윤형근 박서보 등이다.

해외에서 활약은 사실 이우환 한 명뿐이었지만 최근 이들이 그룹으로 조명받고 있는 것이 최근 트렌드다.

모노크롬의 글로벌 가능성을 가장 먼지 인지한 인물은 해외 굵직한 아트페어를 섭렵하고 있는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이다. 그는 "지난해 런던 아트페어에서 단색화가 작품을 대거 가지고 갔는데 모두 높은 가격에 솔드아웃됐다"며 "올해 9월 광주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대대적인 모노크롬 그룹전을 열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내에서 수십 년간 단색화 전시를 주로 연 갤러리현대도 7월 정상화 전시를 열 계획이다. 정상화는 최근 홍콩에서 추정가의 두 배에 웃도는 가격인 5000만~6000만원에 팔렸으며 2차 시장에서 거래가 올스톱될 정도로 열기다. PKM갤러리도 윤형근 개인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모노크롬이 다시 부상하는 것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브랜드인데도 아직 가격이 저평가됐다는 인식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수요가 꾸준하고 안정적이라는 점도 외국 컬렉터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한때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은 젊은 작가와 극사실주의 작가들이 주도하는 양상이었는데, 판이 원로들로 구성된 모노크롬 작가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주도하는 이들은 중국, 유럽, 미국 컬렉터들로 파악된다.


조정렬 갤러리현대 대표는 "모노크롬 작가들이 해외에서 조명받는 것은 처음"이라며 "단순하지만 개념적인 한국적 추상회화에 외국 컬렉터들이 호응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모노크롬 부상은 서구에서 추상회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모노크롬 열기가 침체된 국내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매일경제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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