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없는 덕분에 산책시간이 좀 많아졌다.

산골짜기서 차 없이 산다는 게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앞만 보고 달리던 일상에서 다시 한 번 뒤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빨리 빨리 보다 천천히 살자는 말은 자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현장을 쫓아다니는 다큐멘터리사진가에게는 그럴 여유도 없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십년 넘게 전국의 장터와 인사동을 기록하러 다니다보니 대인관계는 물론 집안 형편도 말이 아니다. 이젠 신용카드 없는 신용불량자에서 자동차마저 멈춰 섰으니, 완전 무장해제 된 기분이다.

요즘 정선 만지산 ‘사진굿당’에서 버스 정류소까지 2킬로 남짓한 산길을 자주 걷는다. 일하는 시간이 좀 줄긴 하지만, 대신 걷거나 버스 기다리는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십오 년 넘게  만지산을 오갔으나 이렇게 꼼꼼하게 자연환경을 관찰한 적은 없었다. 과히 생활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모든 게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먼 산도 자세히 보니 미세한 숲의 일렁임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뼝대의 속살이나 형상들은 어느 조각가도 흉내 못 낼 걸작들이었다. 길섶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의 속삭임과 흐르는 강물소리의 절절함에 이르기 까지 자연환경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 전국 장터도 대부분 찍었고, 인사동도 대충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사진원고를 정리해 출판사에 넘기는 일만 남았으니, 진짜 천천히 살아 볼 작정이다.

장모님 생신날에는 기차타고 갈 작정인데, 텃밭에서 뽑은 채소와 카메라, 옷 보따리 등 짐이 많아 걱정이다. 장에 나오는 노인들처럼 봇짐, 등짐 짊어지고 가야할 처지지만, 벌써부터 그 날의 기차여행이 기다려진다.

아래 사진들은 지난 15일 오전9시 무렵의 윗 만지산길이다. 집에서 귤암리 버스정류소로 가며 만난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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