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저평가 세계시장서 소외
문화리더십 없어 덩달아 사고 파는 악순환 고리 끊길


 

“생선장수보다 못하다.” 20여년간 갤러리 일을 해 온 한 화상(畵商)의 자조 섞인 말이다. 시장 좌판에서 몇년만 장사를 해도 단골들은 생선장수가 골라주는 ‘신선도’를 신뢰하고 사주는데, 자신들의 단골인 컬렉터들은 그러지 못하다는 얘기다. 화상들의 말이 컬렉터들에 잘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예전엔 화랑 위주로 그림이 거래됐다. 미술품 경매사들이 생기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공개된 시장에서 입맛에 맛는 그림을 골라 살 수 있게 되면서 화랑의 그림 거래 비율은 50% 이하로 추락하고 있다. 화랑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화랑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태생적 한계를 꼽기도 한다. 초기 고미술 화랑가에선 도굴꾼이 전문가 행세를 했고, 현대미술 화랑들은 집사 수준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컬렉터를 이끌 수 있는 문화적 리더십은 기대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서양의 그림딜러들은 달랐다. 몰락한 왕족이나 귀족들이 생계를 위해 자신들이 향유하고 있던 미술품을 내다 팔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품 딜러로 자리를 잡았다. 고품격 문화를 이끌었던 당사자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안목과 식견은 신뢰를 받았고 미술시장에서 문화적 리더십으로 작용했다.
중국 청대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한 무리의 화가들인 ‘양주팔괴(揚州八怪)’도 문화적 리더십의 산물이었다. 대운하와 소금 거래로 경제적 번영을 이룬 중국의 상업 도시 양저우(揚州)에는 명나라 중기부터 부호들의 후원으로 전국의 시인 묵객·화가들이 몰려들었다. 양주팔괴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판교(鄭板橋)는 만년에 양저우에서 그림 장사를 했을 정도다. 이들의 문화적 리더십이 양저우 미술시장의 풍요를 가져온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 전반의 리더십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다. 문화도 미술시장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미술이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세계 미술시장에 비해 침체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요인도 전문가들은 문화적 리더십 부재에서 찾고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대표적인 사례로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의 작품 가격을 들 수 있다. 국내에서 괜찮은 작품조차도 3억∼5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한 미술전문가는 작품가격에 ‘0’ 하나가 더 붙어도 과하지 않은 가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세계미술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인물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얘기다.

오는 11월 중국의 베이징에서 백남준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국내의 기획자와 중국 주류 미술계 인사가 함께 마련하는 전시다. 중국 미술시장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관심 속에 마련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백남준 작품을 오랫동안 거래해 온 한 화랑 관계자는 중국사람들에게 작품을 헐값에 다 뺏기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를 계기로 국내의 푸대접이 개선되길 기대하고 있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의 문화 리더십에라도 의존하겠다는 심정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백남준 작가가 누군가. 서구의 기술문명 비관론을 넘어선 작가가 아닌가. 기술문명에 동양적 미래 낙관론을 처방한 것이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품을 보자. 태초부터 인류의 밤하늘에 유일한 빛의 원천이었던 달과 별빛을 환기시켜 준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인공빛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바쁜 삶에서 사라진 ‘기억의 빛’이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차가운 빛을 가지고도 달빛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중국 미술시장에서 백남준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한국 컬렉터들은 벌떼처럼 덤벼들것이라고. 그만큼 한국 미술시장의 문화 리더십이 취약하다는 말이다. 누가 사면 덩달아 샀다가 누가 팔면 모두가 던져버리는 것이 한국 미술시장의 현주소다. 이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세계일보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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