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문화부 ‘문화 거점 재생사업’으로
ㆍ서울 구의취수장·부천 소각장 등 공연·전시·예술가 거주 공간 변모
ㆍ장기 운영계획 없으면 도로 ‘폐물’



버려진 산업시설이 문화시설로 재탄생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방치된 근대의 유산들이 도시의 새 얼굴로 거듭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 1970~1980년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1차 산업시설 중 수명을 다해 방치된 곳을 선정해 문화산업 거점으로 삼는다는 취지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11곳이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다. 2010년 내구연한이 다 되어 가동을 멈춘 경기 부천 삼정동 쓰레기소각장, 신축 이전으로 버려진 백령병원, 안산스마트허브(반월국가산업단지)의 복지관 등이다. 이들 시설은 시민을 위한 전시공간, 문화교육시설, 예술가 거주 공간 등으로 바뀔 예정이다.

 

거리예술 창작공간으로 바뀌는 구의취수장 리모델링 조감도(아래)와 이곳에서 지난해 열린 거리 공연. | 서울문화재단 제공

 

 

서울문화재단은 강북취수장 신설로 폐쇄된 구의취수장을 거리예술 창작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높이 18m에 이르는 개방형 공간이 있어서 거리예술, 서커스 등 규모가 큰 공연에 적합하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1930~1940년대 지어진 인천항 물류창고는 창작 스튜디오·공연장 중심의 인천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으로 바뀌었다. 대구 중구 수창동의 연초제초창 별관 창고는 지난해 대구예술발전소로 문을 열었다.

서구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 같은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2000년 문을 연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양조장, 도살장, 탄광, 제철소 등이 문화시설로 거듭나기도 했다. 산업혁명의 유산을 문화적으로 재활용하는 유럽의 사례는 뒤늦게 산업화를 이룬 한국 사회에 좋은 모범이 된다.

산업시설 리모델링은 대체로 원래 시설이 갖는 역사성을 간직한 채 진행된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도축장을 개조해 만든 거리예술센터는 공간 이름에 옛 흔적을 남겼다. 연습실은 ‘돼지들의 영혼’, 다목적홀은 ‘큰 도축장’이다.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은 물류창고 시절의 거친 벽면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천 소각장을 개조해 만드는 미래문화플랫폼은 높이 30m에 달하는 소각 공간을 활용할 예정이다. 미래문화플랫폼의 컨설턴트를 맡은 류효봉 노리단 대표는 “보통 극장은 가로가 길지만, 소각 공간을 활용하면 세로가 높은 무대를 만들 수 있어 인터미디어 작품 등 기존 공연과는 다른 색다른 작품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아트플랫폼 전경(위)과 내부 모습. | 바인건축사사무소 제공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의 운영 계획이 있는지 여부다. 이는 한국에서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지원받는 문화 사업이 겪는 일반적 고충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시설은 자치단체장의 치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적 득실에 따라 계획이 요동치는 경우가 잦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설계한 황순우 바인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사업이 지연되거나 사업 취지 설명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급히 건물을 지었으나 운영은 부실한 경우도 있다. 류효봉 대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도 이 같은 프로젝트가 종종 추진됐지만 정부 예산으로 하드웨어를 마련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콘텐츠는 부실한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완공된 뒤 운영권을 둘러싸고 여러 단체가 알력을 빚는다거나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으로 지역민의외면을 받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하드웨어 마련을 서두르기보다는 수차례의 시범 공연을 하는 등 시간을 두고 공간 활용을 연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동희 서울문화재단 축제기획팀장은 “거리예술 창작공간은 기획 단계서부터 예술가들의 의견을 많이 들었고, 지난해 9월 거리예술단체들의 신작 공연을 유치해 여기서 느낀 점을 설계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황순우 대표는 “이 같은 프로젝트는 단순히 건물을 뜯어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장소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랜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 백승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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