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중에서


황명걸


아내가 제 멋대로 해석하는
일요일의 의미는 가관인 것이 ,
죽씬하게 낮거릴 하고 손맥이 풀려
나른해 자빠져 한 숨 잔 뒤,
해 떨어져 선선하면 밤 화장으로
명동엘 나가, 한일관이나 삼오정 같은 데서
'불백' 으로 잔뜩 몸보신하곤,
장장 두 시간 반의 70밀리 (벤허) 보고서
'새나라' 타고 훌쩍 집에 돌아와,
도너츠 구멍에 바나나 끼는 장난질 또 치며



.....이런 정서가 지금이야 더러 눈에 띌 뿐더러 장삿속으로 권장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철저하게 금기시되던 때다.
말하자면 시란 점잖고 진지하고 치열해야 한다.
한데,,,아무리 비유라 하더라도 아내를 동원해 망신을 시키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 시에서 그의 사생활을 유추한 독자도 없지 않았을 터로,
이 시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눈에 야비하고 추잡하고 음란한것으로 비쳤다.
나 역시 이 시에서 음습하고 부조리한 사회현실의 데포르메된 그림을 찾아 읽지는 못했다...
예컨대 잡놈기가 없으면 이런 시는 쓰지 못할 것이라고쯤 생각했었다.
나 같으면 용기가 없어 쑥스러워 못 쓴다.
그러면서도 왜 충격을 받고 당황했을까.
나로서는 촌에서 갓 올라온 시골뜨기로서는 어림도 없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자유분방한 발상이 부러웠을 것이다

.....이 시는 본질적으로 당시의 다른 사람들의 시와는 달랐다.

우선 도시의 감수성이다.
대체로 우리에게는 도시적 감각 또는 정서의 시가 많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끌린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군복 물들인 것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는 우리와는 달리
그는 유행하는 양복에 양말 색깔까지도 신경을 쓰는 것이 갈 데 없는 서울내기요,
라이터며 만년필도 이름 있는 것 아니면 가지고 다니지 않는 얌체였지만,
나는 그가 가진 도시 분위기가 차츰 좋아졌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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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걸의 "초가(歌)"




얼마나 맛좋을까.


고운 국수발 맑은 육수
갖은 고명에
배도 한 조각 떴겠다
꿩 완자도 한 알 얹혔으니,
눈치가 촉새 같은
계집이라도 곁에 있어
조금 초를 쳐 주면
그 냉면 얼마나 맛좋을까.



얼마나 잘 될까.


날로 헐벗어 가던 가난
사사건건 틀어져만 가던 일
난마처럼 뒤얽히던 생각
이런 불행한 사태들이
하나 둘 바로 풀리는 듯할 때,
감초하줌마같이 원만한
여편네라도 곁에 있어
좀 거들어만 준다면
그것들이 얼마나 잘 될까.



한데 얼마나 힘드냐.

어느 모임 어느 직장 어느 동네나
애써 성사시킨 일 그르치게 하고
겨우 차지한 자리 가로채고
멀쩡한 사람 헐뜯어 내리는
장화홍련의 계모년같이 고약한 심보의
초 치는 놈 있으니.
게다가 제 어미 장단에 춤추는
장쇠녀석 같은 놈 있으니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드냐.



초 치지 마라.

하긴 봉이 김선달이
쉰 죽에 초 쳐 팔아먹었다지만,
발끈한 청년이 변심한 계집의 얼굴에
초산 뿌려 앙갚음했다지만,
좋은 건 좋은 거고 초는 촌데
근량깨나 나가는 불알 찬 친구들이여,
남 망치고 저 망치는 초일랑
아예 칮 마라.

출전 : '창작과 비평'(1969. 봄호)



전 8연으로 되어 있지만 독립된 한 행을 그 다음 연에 붙여 읽으면 4단락으로 볼 수 있겠다. 이것은 내용상 다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얼마나 맛 좋을까', '얼마나 잘 될까'로 시작되는 부분이 초[醋]의 긍정적 측면을 말하고 있다면, '한데 얼마나 힘드냐', '초치지 마라'로 시작되는 부분은 초의 부정적 측면을 말하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알다시피 초는 조미료이다.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맛은 아니다. '냉면'에 적당히 초를 치면 맛이 한결 상큼해지겠지만, '쉰 죽'에 초를 쳐 팔아먹는다면 이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초친 놈'이라는 말이 있다. 난봉이나 부려서 사람 구실할 여망(餘望)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근량깨나 나가는 불알 찬 친구들이여, / 남 망치고 저 망치는 초일랑 / 아예 치지 마라.'라는 말로 끝난다. 이런 자들 때문에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드냐'고 화자는 반문한다. 이 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말이 어눌(語訥)하지 않고 초친 맛처럼 시원시원해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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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저고리, 검정치마 - 황명걸

 

 

흰 저고리 검정 치마 너무 아름다워 흠갈라

운을 떼지 못하다가

생 꽁지머리에 엷은 화장

둥근 어깨에 초승달 눈썹

이밥 눈에 박꽃 미소가

조선 미인의 전형이라서

매끈한 몸매 타고 흐르는

긴 고름끝이 춤추는 듯

걸음새마저 날렵하니

아, 내 사랑하고픈 여자여라

 

 

늦은날의 연가


불혹을 넘어서 난데없이 사랑을 배운다
모자란 찻삯을 얼굴 붉히지 않고 내던 날
부끄럼도 모른 채
이팔청춘 같은 사랑을 느꼈다

그날 밤 가을비가 추적 내리고
사랑인 듯 몸살인 듯 몸 부여안으니
그리는 정에 신열은 뜨겁지만
멀리 있는 이에게로 가는 눈이 맑아지던 걸

사랑은 참으로 영험한 것
어둠속에 귀머거리로 하여금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다시 듣게 하고
오랜만에 빗물 머금은 화초를 보게 한다

이제 삶의 빛으로 떠오르는
그이의 달래 얼굴이
어쩌면 사람 사는 일까지 다 깨우쳐준다

동에서 서으로 흐르는 한강 따라
나의 그리움 강동에서 강서로 간다

그대 향한 그리움에 티없어
아릿하게 저며오는 아픔은 견딜 만하고
훗날 깊은 상처에는 꽃이라도 필 법하여
늦게사 새롭게 사랑을 배우고자 한다.

 

 

 

 

<SEVEN DAYS IN A WEEK>

 

 

SEVEN DAYS IN A WEEK

 

중학 영어교재의 어느 한 귀절이 아니올씨다.

요일 따라 하나씩 색색으로 갈아입게 된

딜럭스 숙녀용 일주일분 팬티의 상품명이올씨다.

나의 아내가 애독하는 생리위생독본이올씨다.

줄줄 대하가 흐르는 여자가,

아래를 몹시 소중히 여기면서 마구 굴리는 그 여자가

유일무이한 도서목록으로 잡은 처세독본이올씨다.

 

(저녁 외출이 잦은 그녀는

성당의 앙젤르스가 은은히 들려오면,

뒷물을 하고

로코코풍 디자인의 곽에서 색팬티를 하나 꺼냅니다.

토실한 아래의 유연한 선이 그대로 살아난 팬티,

그 한 옆 위쪽에는 <순결>이라는 꽃이 수놓여져 있읍니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올 때는 꽃잎은 다 시들어져 있고,

다시 뒷물을 해야 합니다.)

 

 

<Seven days in a week>

 

딜럭스 숙녀용 일주일분 팬티의 상품명만이 아니올씨다.

나의 여자가 애독하는 생리위생독본만이 아니올씨다.

그 여자가 교제하는 모든 훌륭한 인사들의 처세독본이올씨다.

매일이 다르고, 매시가 다르며,

갑에게 다르고, 을에게 다르며,

그때그때 희비애락을 적절히 연기하게 하는

아주 편리하고 완벽한 연기지침서올씨다.

 

(요즘 시정에서는 이 책이 장기 베스트 셀러로,

사람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도 남들에게 뒤질세라, 사서 읽어는 보았읍니다만,

너무 어려워 그만 책장을 덮어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래도 한번은 꼭 통독해야 한다기에

의무감 같은 것으로 다시 책장을 들척거리기는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어렵기만 합니다.)

 

                                                                                <세대. 1967.9>

 

 

이런 짓거리

 

이런 짓거리는 어떨까?

눈길이 분주한 미스를 꼬여

ㄱ진 구석에 몰아붙이고는,

핏발선 눈알을 꽉

한 대 쥐어박아주면 어떨까?

에어컨이 잘 돼

짜증스런 사무실에서 ----.

 

이런 짓거리는 어떨까?

귓속말 좋아하는 미스터를 불러

귀 좀 빌리자 하고서.

벌렁대는 귀를 쭉

냅다 찢어주면 어떨까?

에어컨이 잘 돼

짜증스런 사무실에서 ----.

 

이런 짓거리는 어떨까?

입이 걸고 큰 사장님을 배알해

싹싹 두 손을 비비며,

헛기침하는 입에다가 철컥

걸레를 처넣어주면 어떨까?

에어컨이 잘 돼

짜증스런 사무실에서 ----.

 

이런 짓거리는 어떨까?

유난히 젖가슴을 드러낸 사모님을 뵈어

경의를 표해 머리 숙여,

희멀건 젖통 골짜기에다 슬쩍

풀어진 사꾸를 쑤셔넣어주면 어떨까?

에어컨이 잘 돼

짜증스런 사무실에서 ----.

 

이런 짓거리는 어떨까?

저 편리하기 이를데없는 연필깎개에

이 주체할 수 없이 난처한

열 손가락을 하나씩 넣어,

뾰족뾰족 깎아버리면 어떨까?

에어컨이 잘 돼

짜증스런 사무실에서 ----.

 

이런 짓거리는 어떨까?

112를 부르든가 117을 부르든가

청량리 뇌병원을 찾아가,

이런 짓거리는 어떠냐고

용용 놀려주면 어떨까?

에어컨이 잘 돼

짜증스런 사무실에서 ----.

 

*사꾸 : 콘돔

                                                                            <현실 1집. 1963.4>

 

 

            

韓國의 아이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
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난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
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
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
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
어미는 눈물과 한숨을
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
벼 몇 섬의 빛과 함께 남겼단다.
뼈골이 부서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 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허지만 그럴수록 아이야
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
누더기 옷의 아이야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
사내 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
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
보다 더 뼈골이 부숴지게 일을 해서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
너무 외롭다고 해서
숙부라는 사람 믿지 말고
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
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
맑은 눈빛의 아이야
빛나는 눈빛의 아이야
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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