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국제사진제’가 탄생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회를 맞았다.


강원도 정선에 집이 있는 덕에 사진제가 열리는 여름이면 오며 가며 빠지지 않고 관람하는 호사를 누려왔다.

개막식은 못 들린 때가 더 많았으나, 공교롭게도 참석했던 두 차례나 비가 왔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동강사진제는 영월 사진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윤주영씨의 공로가 크다.

강원도지사였던 김진선씨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성사되었는데, 음엔 다큐멘터리사진축제로 시작되었으나,

김승곤씨에서 김영수, 이재구씨로 운영위원장이 바뀌면서 그 구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의 핵심은 인간성 회복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황규태선생의 묵시록 그 이후전은 인간성을 상실한 현실에 대한 문명비판적 작품이었다.

오늘을 돌아보며,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고민하게 했다.

사랑의 시대라는 국제 주제전은 사랑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황규태, Usherette


 

현대사진의 경향을 보여주는 국제 주제전은 10개국 13명의 사진가가 참여했다,

특유의 시적 표현력을 보인 미국 사진가 알렉 소스의 초기작인 사랑을 찾아서와 리처드 레날디의 낯선이와의 접촉’,

이탈리아 파올로 벤츄라의 여행가방 속의 남자 2’야나 로마노바의 '기다림'등이 돋보였다.



국제주제전, 야나 로마노바, 기다림


 

또한, 전 세계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국제 공모전 '올해의 작가'는 캐나다의 천 화 캐서린 동이 선정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생전에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인물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모습과 함께 기록했다.



국제공모전- 올해의 작가상, 천 화 캐서린 동, 어머니

    

 

그리고 동강국제사진제의 또 하나 볼거리는 영월군의 주요 거리를 갤러리로 변신시키는 '거리 설치전'이다.

이는 공공미술 개념의 전시로 거리의 벽이나 계단에 설치되는데,

올해는 꿈과 희망의 영월이라는 주제로 단종과 정순왕후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다.



거리설치전, 송석우, 장릉 정자각

    


이번에 어렵사리 개막식에 참석한 것도 황규태 선생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인데,

수상전을 돌아보며 선생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생께서 국내에서 사진 상 한 번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국내외적으로 알려진 유명세나 작품 가격 형성도 만만찮다.

우리나라 사진사에 끼친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꾸준히 문제작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사진상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전시장의 황규태선생

 


먼저 우리나라 사진상의 선례부터 한 번 돌아보자.

숱한 잡음을 일으키다 없어져버린 '최민식사진상'은 포토포트폴리오 심사로 결정했으니,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은 없어져 유명무실한 상이되었지만, 그 당시 유명세 위주로 준 대표적인 상이 현대칼라에서 시상한 현대문화사진상

뒤 따라 ‘사진예술에서 시상한 이명동사진상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은 대한사협의 '이해선사진상', ‘대한항공조양호가 주는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모임에서 주는

온빛사진상등 여러 사진상이 있으나, 당시로서는 현대문화사진상’과 그뒤에 생긴 이명동사진상’이 주요 사진상이었.

문제는 현대문화사진상이나 이명동사진상의 역대 수상자를 보면 마치 순번을 정해 놓은 듯 비슷 비슷하게 받았다는 사실이다.

중견작가는 끼일 수도 없을 정도로 누군가 조종하는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런 사진상이었다.


    

 



그러나 ‘동강사진상은 좀 달랐다. 처음부터 원로보다 중견작가 위주로 주었는데,

눈여겨 볼 것은 공교롭게도 육명심선생 직계제자인 최광호씨와 이갑철씨가 1-2회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그 많은 작가 중에 두 사람이 먼저 발탁된 것이 우연치고는 좀 그랬다.

사진이 좋아 그렇겠지!”라고 판단하기엔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3-4회는 갑자기 원로인 김기찬씨와 최민식씨로 수상 세대가 바뀐 것이다.

두 분 다 충분히 받고도 남을 분이지만, 갑자기 원로 위주의 수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5회부터 성남훈, 김아타, 강홍구, 이상일, 강용석, 오형근, 노순택, 이정진, 구본창, 정주하, 김옥선, 정동석씨가 차례로 받아

몇몇 사람이 좌지우지한 예전의 사진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로는 함량미달의 작가도 더러있었지만, 딱 부러지게 자격 규정해둔 것도 없으니 시비 걸 수 없었다.

누가 심사를 해도 가까운 분을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수상에 대한 뚜렷한 명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아쉬운 것은 힘을 실어주어야 할 신진작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신진작가도 아니지만, 그나마 노순택씨 정도로 위안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갑자기 원로사진가 황규태 선생께서 받게되어 좀 의아 했는데,

행여 뒷방에 계신 원로사진가들이 욕심 내지 않을까 염려되어서다.

물론, 황규태 선생처럼 눈부신 성과를 보이는 현역이라면 쌍수로 환영하겠지만,

이제 관록으로 주는 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이란 그때 그때의 문제 작가에게 주어져 창작활동을 돕는 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개막식에는 만나기 껄끄로운 사진가들이 많아 맨 뒷자리 구석에 혼자 앉았는데, 갑자기 육명심선생께서 옆자리로 오신 것이다.

모처럼 만나 뵈어 반갑기는 했으나, 최민식사진상의 문제점을 까발린 죄로 뵐 면목이 없어 만나뵙기 꺼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 사건에 직계제자인 최광호씨가 수상자로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그만 시상식이 끝나버린 것이다.

다들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위에 앞으로 나가고 있어 황급히 일어나야 했다.

황규태선생 수상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렸으나,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그런데, 개막식이 끝나고 커피숍에서 만난 황규태선생께서 상금을 주최 측에 기증하셨다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물론 사진계 발전을 위해 내 놓은 선생의 뜻은 높이 사겠으나,

오래 전 김아타씨가 상금을 내 놓아 젊은 사진가들에게 욕먹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렵게 작업하는 후배 사진가들에게 부담 주는 그런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여론이었다.

차라리 가난한 후배들을 위해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운영하는 온빛 사진상’ 같은 곳에 기증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혜택을 주는 것이 훨씬 빛날 텐데 말이다.

문제는 주최 측인 영월군에서 은근히 바라게 되면, 심사위원도 가난한 작가보다 돈 많은 작가를 선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몇 년 전의 일이다.

잘 알고 지내는 '동강국제사진제'의 운영위원 한 분으로 부터 상을 받게 되면 상금을 주최 측에 기증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가난한 나로서는 명예 따위야 아무 소용없는데, 상금이 없다면 구린내 나는 상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받지 못해 없던 일이 되고 말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며 운영위원들이 주최 측의 사주를 받거나 눈치를 본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동강국제사진제'의 운영해 대해 한 번 짚어보자.

수상자전이나 주제전 등의 본 전시는 발전해 가고 있으나, 강원도사진가전은 이제 고려해 볼 전시다.

국제전에 걸맞지 않는 구태한 전시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반복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과연 강원도에 내놓을 만한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무슨 뚜렷한 주제도 없이 마치 아마추어 동아리 전 같은 전시로 국제전에 티를 남긴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차라리 전국의 신진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획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원도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결국 나만 욕먹지만어쩔 수 없다.

사진판이 잘 못 돌아가도 다들 입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젊은 후배 사진가들에게 더러운 것은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지인의 말처럼, 철부지고 바보.

철부지는 겁이 없고, 바보는 곁눈질 않는다.

 

사진, / 조문호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황규태,  '묵시록 그 이후' 전시장


제17회 동강국제시진제 도록 표지








 

 


동강사진상 수상전, 영월‘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6월 26일 (화) 00:25:11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황규태선생



황규태선생은 우리의 영원한 오빠다.

연세는 팔순을 넘겼지만, 행동이 젊고 생각이 젊기 때문이다.

기존상식을 희롱하고, 고상함에 야유를 던지는 자유분방한 작업 스타일에다 생활습관까지 젊은 작가 빰 치는 현역이다.




황규태작,‘Untitled 1969-1972’



처음엔 다큐멘터리사진을 찍으며 신문기자로 일했지만. 7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며 작품성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타 장르에서나 볼 수 있는 초현실주의를 사진으로 실천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 처음 본 선생의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은 미술과 사진의 장르가 무너졌지만,

그 때는 비사진적이란 생각도 들었으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예언가처럼 지구환경과 문명의 위기를 경고하며, 종말적인 상황을 재현해 보였다.




황규태작,'Christina's World'



선생의 작품들은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 당시 보여 준 일련의 작품세계는 리얼리즘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한국사진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80년대 후반 유학파들이 귀국하여 ‘한국사진의 수평전’이란 새로운 사진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 위에 황규태 선생이 계신 것이다.




황규태작,'Evolution-Pixel'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는 엄두도 못 낼 시기였다.

표현방법으로서의 기술적인 문제에 앞서 임응식선생께서 주창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틀에 갇혀,

자칫 ‘낙동강 오리알’신세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황규태작, 'Babel'



선생은 사진의 표현 확장을 위해 온갖 실험을 거듭했다.

이중노출과 몽타주는 물론, 때로는 필름을 태워 이미지를 얻기도 했는데,

요즘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런 실험정신 덕에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황규태작, ' Monologue'



젊은 시절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쏘는 'Monologue' 작품에서는 입이 벌어졌다.

지구의 위기의식을 넘어 자멸로 향하는 메시지가 그렇게 강력하게 다가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지구환경의 심각성을 알아챈 예언가로서,

생태적, 환경적, 문명적인 비판의식이 선생의 작품 하나하나에 독사처럼 똬리 틀고 있었다.




황규태작, 'Reproduction'



선생께서 90년대 중반 무렵 선물한 ‘원풍경’ 사진집은 지금도 가끔씩 꺼내보는 나의 애장사진집 중 하나다.

그 작품들이 사진의 외도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사나이라면 외도도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이 본심 아니겠는가?



황규태작,'Melting the sun'



미국에서 하시던 사업을 접고 귀국하신 후에 보여준 쉼 없는 작품들은 후배 사진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진가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생께서 여지 것 그 흔한 사진상 한 번 못 받았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늦게나마 받게 되었지만, 상이란 것 자체가 웃기는 짜장면이다.




황규태작, 'Pixel,Big Brother'



이번 제17회 동강국제사진제의 동강사진상 수상자전으로 열린 황규태선생의 ‘묵시록 그 이후’전은

오래된 작품도 몇 점 있지만, 대부분 최근에 작업한 작품들이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Untitled 1969-1972’ 작품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운전석에 사람이 아니고 부엉이가 앉아 있었는데, 50여 년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황규태작,'Hi Daddy'



전시장을 들어서며 받은 느낌은 압도적이었다.
정면 벽을 가득 메운 눈동자 'Pixel,Big Brother'라는 작품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정신 차리라는 것 같았다.

사실은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인간이 감시 당 하는 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확대된 컴퓨터 픽셀로 만들어진 그 눈은 생명체의 눈이 아니라 생명체를 감시하는 눈이었다.

그러니 작품에 다가서면 대갈통 만한 픽셀이 드러나 도대체 무슨 형상인지 알 수 없었다.

가까이 가면 실체가 사라지지만 항상 멀리서 감시한다는 암시같았다.

사진이 아닌 컴퓨터 픽셀로 조형적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과학 문명의 종말을 과학의 힘으로 드러낸다는 의미도 걸 맞는 방법 같기도 했다.




황규태작, 'Usherette'



사람이 마네킹처럼 보이는 'Usherette'이란 작품도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인지, 기계 사는 세상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한 쪽 벽에는 만들어낸 복제 생명체들이 우글거리는 'Reproduction'란 작품 또한 주눅 들게 하였다.

태양은 녹아내리고, 생활쓰레기는 회오리바람처럼 지구를 덮치고 있다.


큰 일 났다! 전시 보러 강원도 가자.




황규태작, 좌위로부터'Sightseer', 'New Eyes Grafted','Mutation', 'Dogman','The Bio Buddha',


이 전시는 9월21일까지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린다.








  

  

  

  

 







‘금보성아트센터’초대전‘아리랑 환타지’29일까지 열려 
2018년 04월 23일 (월) 17:46:25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day.co.kr


사진가 양재문의 초대전 ‘아리랑 판타지’가 오는 29일까지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양재문의 사진은 전시 제목에서 의미하듯 한국적 환상이다. 민중의 삶이 꿈틀대는 움직임과 새벽의 고요함이 어우러진 양재문의 사진은 가장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다. 색의 흘림과 감춤으로 만들어진 그 이미지가 이국적이지 않고 한국적인 것이, 어디 전통 춤꾼이 펼치는 춤사위라는 데만 있었겠는가? 그 이미지에는 우리민족의 한과 기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양재문, Arirang Fantasy_01

우리 춤은 고요한 가운데 서서히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고,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이 드러나는‘정(靜)중(中)동(動)의 미학이다. 은은한 감춤의 미가 그토록 매혹적인 사실을 어디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느린 셔터로 잡아 낸 흔들리는 동작의 이미지가 마치 꿈결처럼 환상적으로 펼쳐져, 얼핏 한지에 살며시 번지는 물감처럼 애잔하다.

▲양재문, Arirang Fantasy_02

춤꾼이 춤사위에 자신의 기를 풀어 놓기 시작하면, 작가 양재문은 그 춤꾼의 기를 받아 자신의 색으로 다시 풀어낸다. 그 색은 요염한 여인네의 교태미가 되기도 하고 정숙한 여인네의 숭고미가 되기도 하며 한국적 색으로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 춤꾼의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가 작가에게 전이되어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양재문, Arirang Fantasy_13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표현할 이미지를 예견하듯이 사진가 역시 셔터를 누르기 전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예견한다. 뿜어내는 기가 합일점을 찾아 작품으로 탄생하기 까지는 수없이 반복하는 인내가 뒤 따를 수밖에 없다. 예술에 끝이 없듯, 양재문 작업 역시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양재문, Heavenly Dream_32

양재문은 오래전부터 우리 춤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낸 배태랑 작가다. 20여 년 전에 보여 준 ‘풀빛여행’의 그 몽환적 춤 여행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몇 년 전 보여 준 ‘비천몽’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어, 한 폭의 수묵채색화처럼 아름다웠다.

▲양재문, Heavenly Dream_36

긴 세월동안 한국 전통춤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온 작가가 이번에 보여 준 ‘아리랑판타지’는 역동성이 개입된 것이 또 다른 변화라면 변화다. 1미터에서 4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 군무(群舞)를 통해 여지 것 볼 수 없었던 강한 역동성을 나타 낸 것이다. 집단적 신명성을 끌어내기도 한 그 사진은 마치 우리민족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은 환청도 일으켰다. 그 함성에는 동학의 울림도 있고 광주항쟁의 원한도 뒤섞여, 보는 이를 선동하는 것 같다.



▲양재문, Heavenly Dream_41

서문을 쓴 사진평론가 이경률씨는 이렇게도 말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전통무용의 율동과 그 환상은 자신의 무의식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말하자면 환상의 향연으로 나타난 흐린 춤사위는 지나온 삶의 회한과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이미지로 전이된 것들임과 동시에 응시자 각자의 심연에 내재된 기억을 자극하는 일종의 자극-신호(stimuli-signal)가 된다. 예술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재문, Heavenly Dream_44

작가가 경험한 희미한 기억의 실타래는 익명의 무용수가 추는 춤의 환상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율동이 지시하는 삶의 침전들 즉 삶의 뒤안길에서 발견한 무의식의 시선과 반향이다.”

▲사진가 양재문씨. ⓒ조문호

이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금보성아트센터’(02-396-8744)에서 열린다.
 
  




김상환씨의 'HIDDEN DIMENSION'전이 지난 19일부터 5월4일까지 증산동에 위치한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22일 사진가이자 ‘서울문화투데이’ 기자인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전시가 열리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를 방문했다.

김상환씨를 만나기 위해 진즉부터 약속해 두었으나, 마침 갤러리 관장 박재호씨도 있었다.





일단 전시된 사진들은 보는 이의 눈길을 압도했다. 사진이 아니라 하나의 묵화처럼 보였다.

사람이 손으로 그리는 묵화도 그처럼 파격적인 선을 그려내지 못할 것 같았다,

작가의 끈질긴 집념에 의한 심미안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으로, 자연의 원초적 에너지가 꿈틀거렸다.





바다의 물성을 형상화한 사진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여인의 머리카락 같기도 하고,

때론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격동적인 느낌만은 아니었다.

심연의 골짜기로 끌어들이는 형상도 있고, 눈 덮인 설산 같은 이미지도 있었다.






김상환씨는 다른 사람처럼 바닷가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 깊숙이 들어가 찍는다고 한다.

돌진하는 배에 의해 바다가 갈라지고 흩어지며 격한 진동을 일으키는 파동의 세상을 찍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하는 바다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형상화하였다.






김상환씨는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란 사진가로, 늘 바다를 바라보고 살았다.

그에게는 바다가 삶의 공간이자 명상의 장소였으며,

바다사진을 찍기 시작한지는 10년쯤 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한다면 누구나 기록적인 접근에 앞서 주관적 예술사진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 역시 오랫동안 천착해 온 바다를 통해 현실 너머에 있는 세계를 상상하며, 하나의 놀이로 즐겼다고 한다.






그는 사진가이기 전에 역사학자다.
추측컨대, 바다를 고고학적 관점에서 지켜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물과 자연의 본질, 현실 속에 감추어진 바다의 본성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달 14일까지 이어지는 김상환씨의 'HIDDEN DIMENSION'전에 많은 관심과 관람을 바란다.

오는 4월28일(토) 오후5시부터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에 시간을 맞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포토그래퍼 갤러리코리아" / 서울 은평구 증산서길 65 / 전화 010-5157-5753



사진, 글 / 조문호





















바다,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 다음달 14일까지 이어져 
[서울문화투데이 / 스크랩] 2018년 04월 23일 (월) 20:07:51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바다는 누군가에겐 일상의 무대지만 또 다른 이에겐 그리움과 회한, 미지의 것들에 대한 갈망과 생명의 근원이다.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로 불변의 질서를 간직하고 있는 무한대의 공간이다. 바다가 자신의 삶의 공간이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명상의 장소라고 말하는 사진가 김상환의 ‘Hidden Dimension’전이 지난 20일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 에서 열렸다.

바다에 서면 마치 발가벗은 듯 살아 숨 쉬는 온전한 자신을 느낀다는 그는 인위적으로 조작한 리얼리티가 제거된 바다라는 오브제를 다양하게 표현했다. 전시장에는 까슬까슬한 먹의 농담이 묻어나는 수묵화가 펼쳐져 있고, 바람결에 순환하는 풀숲더미와 거처를 잃고 헤매는 울부짖는 야수 같은 사물덩어리가 혼돈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이게 뭐지?’ 하는 낯선 물음표가 동행하며 그의 작품이 제각각 말을 걸어온다.


 

▲ ‘Hidden Dimension'의 김상환사진가 Ⓒ정영신



 

괴테는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기에 대해서 말해 주지만 인간은 자연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의 품안에 살면서도 자연의 이방인이다’고 했다. 그에게 바다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자아를 비우는 공간이다. 잔잔히 흐르는 물빛바다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결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결이 다른 결에게, 그리고 다른 수많은 결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 지어지는 운동성을 발견하면서 꿈틀거리는 삶을 마주한다고 한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검은 바다의 우연성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분석하고 객관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됨으로써 불변의 질서를 가진 바다를 지워나가면서, 바다 스스로의 움직임을 형상화시켰다. 또한 의식과 무의식세계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관람자에게 내면의 정서를 보여주기 위한 기억의 파편을 단순한 흑백으로 재구성하였다.



 

▲ ‘Hidden Dimension'2012 Digital Pigment Print (사진제공 : 김상환작가)



김상환 사진가는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역사학을 연구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지만, 카메라를 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다와 관련된 자연, 사람, 환경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 왔다.

특히 이번 작업은 바다라는 거대한 오브제가 충돌하는 몇 개의 힘들, 즉 시간, 운동, 방향, 진동이 드러난 결과물이다. 우연적이지만, 끊임없는 시도로 만들어낸 필연적인 형상들로, 눈앞의 것을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려는 몽상가적인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 ‘Hidden Dimension'2012 Digital Pigment Print (사진제공 : 김상환작가)




현실 속에 숨겨진 세상이 바다라며, 파도와 작가가 상대적으로 바라본 움직임이 만든 숨겨진 차원을 필연적인 현실로 드러내고 있다고 작업노트에 밝히고 있다.

“숨겨진 차원의 문이 열리면, 바다는 또 다른 세상. 어느새 난 낯선 세상에 발을 딛고 서있다. 어릴 적 갯가에서 듣던 이야기 속의 바다세상이 눈앞에 서고, 현실에서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들을 만난다. 신화의 장면들을 스치는가 하면, 온갖 사물과 자연의 본질이 드러나는 듯 착각을 하게 된다. 바다를 지나 다시 갯가에 당도해도 여전히 느껴지는 그 파동의 여진들. 시나브로 차원의 문이 닫히며 현실로 돌아온다.”



▲ ‘Hidden Dimension'2012 Digital Pigment Print (사진제공 : 김상환작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물결에 고정된 작가의 시선과 몸이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눈앞에 보이는 바다이미지의 실체들이 조금씩 지워지면서, 현실을 딛고 서 있는 순간 또 다른 차원의 출입구와 맞닥트린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은 바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해 평소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바다의 물성이 뜻하지 않은 충돌과 마주쳐 형상을 재현한다. 그 작품은 우리에게 신선한 경험과 낯섦과 또 다른 수수께끼를 안겨준다.



▲ ‘Hidden Dimension'2012 Digital Pigment Print (사진제공 : 김상환작가)



그는 “어떤 의도나 목적성보다 바다라는 사물을 내방식대로 해체시켜 내방식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10년째 작업해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바다는 그냥 바다일 뿐이다. 파도나 포말이 아니라 바람이나 숲의 움직임처럼 흐르는 물을 고체화시키며,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변이를 즐겨보는 놀이였다. 카메라로 본다는 것은 의미를 던져볼 수 있는 작업이었다. 바다를 갖고 놀만큼 놀았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어떤 의도나 목적성보다는 차가운 사진을 찍고 싶다는 김상환작가의 ‘Hidden Dimension’전은 서울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 (010-5157-5753)에서 다음달 14일까지 이어진다. 또한 오는 4월28일(토) 오후5시부터 작가와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다.




▲ ‘Hidden Dimension'2012 Digital Pigment Print (사진제공 : 김상환작가)



사진을 보는 내내 나희덕시인의 ‘바다’가 따라다녀 여기에 옮겨본다.

 

바다를 저리도 뒤끓게 하는 것이 무어냐

파도를 깨뜨리는 뼈 부딪는 소리

채 마르지 않아 뚝뚝 흘리며

저 웃고 있는 푸른 살이 대체 무어냐

욕망의 물풀이 자라나는 기슭,

떠온 이보다 쫒겨 온 이가 많은 뱃전,

비틀거리며 발 디뎌온 생활,

그로부터 파도처럼 밀려온 사람들이여

그들의 뼈가 부딪칠 때마다

물결, 불꽃의 물결 늘 움직여

왜 자꾸만 나를 살고 싶게 하는지

왜 이리도 목마르게 하는지

아는가, 뒤끓는 바닷 속에 몸을 던진 사람들이여













  



  



  




  





늘 메고 다니던 카메라 가방이 사라졌다.

요즘 날이 갈수록 깜빡 깜빡 잊는 일이 잦아 졌다.
아는 분을 만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난처하기 짝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귀가 어둡고 말이 어눌한 것은
쓸데없는 일에 나서지 말라는 뜻일 테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세상사 하나하나 잊으라는 것이겠지만,
문제가 생기니 문제인 것이다.




지난 19일 급히 정선 만지산집에 다녀 올 일이 있었다.
도봉산 이벤트 벌일 날이 닥아 와, 옛날식 뷰카메라를 챙겨와 개조해야 했다.
정선까지 가서 카메라만 챙겨 오기엔 억울한 감도 있었다.




지천에 늘린 나물은 차지하고라도 두릅이라도 좀 따 가고 싶었다.
조금만 딴다고 시작했지만,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다.
마침 시기도 적절하여, 한 시간이 금세 지나 버렸다.
서둘러 돌아왔으나, 서울오니 오후 아홉시가 되었다.




사는 게 뭐가 그리 급한지, 서너 시간을 차 한번 세우지 않고 달린 것이다.
차 때문에 녹번동에 갔더니, 정영신씨는 화순 운주사에서 열릴
한정식선생 전시 오프닝에 갈 것이라며 짐을 챙기고 있었다.
두릅을 전해주고 동자동에 가려는데, 내 가방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몸에 메고 다녔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 가방에 돈은 몇 푼 없지만, 각종 신분증이나 교통카드가 든 지갑도 있고,
동자동 쪽방 열쇠에서부터 사진자료를 담은 유에스비까지 들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렵게 장만한 카메라가 있지 않은가?




두릅 따러가며 방에 두고 갔을까? 아니면 밖에 있는 탁자에 놓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5월 초순경 야채 심으러 갈 때 찾아오면 되겠으나,
방안에 두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밖에 있다면 누가 가져갈지도 모르지만, 비가와도 큰일이다.
그보다 가방이 없으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자리에 누웠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 날 밝기 무섭게 정선으로 달려간 것이다.
도착하니, 오전 여덟시 쯤 되었는데, 진입하는 조양강변이 너무 아름다웠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찾았는데, 찾지도 않은 카메라가 있을 수 없었다.
한심스러운 생각이 더니,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집에 도착해 찾아보니, 카메라는 방에도 밖에도 아무데도 없었다.
온 집안을 샅샅이 살피다보니, 평소 지나치던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 ‘만지산 서낭당 축제’ 때, 전시한 봉화 신동여씨의 도예작품도 보였고,
눈에 익은 작물도 싹을 튀 우고 있었다.




더 이상 간 곳이라고는 두릅 따러 간, 산 비탈뿐이었다.
어제 갔던 길을 따라가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갑자기 눈이 번쩍 띄었다.
난데없는 두릅나무 가지에 그 가방이 걸려 있지 않은가.
두릅 따다 글리 적 그리니, 가방을 거기다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이런 바보가 어디 있을까? 보호자 없인 꼼짝 못하는 어린애나 뭐가 다른가.
씁쓸하긴 했지만, 가는 세월을 어쩔 것인가?
가방을 찾아 기분은 좋았으나, 긴장감이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카메라였는데, 나무에 걸린 가방에서부터
눈여겨 본 사물들을 찍으며 내려 온 것이다.




차에 있는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되돌아보니, 잠간의 건망증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길에 뿌린 기름 값도 기름 값이지만,
운전하느라 시달린 장장 일곱 시간은 어쩔거냐?

한 곳에서 편하게 살지, 왜 이리 먼 정선을 오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서울 쪽방은 본가이고, 정선 움막은 별장이라 변명해 왔는데,
오래전 ‘통인가게’ 관우선생께서, 한 말이 생각났다.
“제일 관리하기 힘든 것이 첩과 별장”이라고...





그런데, 돌아오는 운전 길은 긴장이 풀려 그런지 졸음이 쏟아져 죽을 지경이었다.
평소의 마구초까지 약발이 받지 않아, 열 번 넘게 차를 세워 원숭이 체조를 해야 했다.
그래도 차에 받혀 죽기는 싫어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양재문의 초대전 ‘아리랑 판타지’개막식이
지난 21일 오후3시경‘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전시장에는 김보성관장을 비롯하여 이기명, 김종호, 한선영, 제이안 리,
유병용, 한명숙, 소피아, 은효진, 김가중씨 등 많은 분이 참석하였으나,
오랜만에 만난 분들이 너무 많아 성함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희미해져 가는 것은 세상사 하나하나 잊으라는 것일 게다.
기억하지 못한 분들은 널리 양해하기 바란다.




개막식은 국악 공연장을 방불할 만큼,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신명난 한마당이었다.
양재문 작가도 한 소리했는데, 이러다 사진가에서 소리꾼으로 전업할지도 모르겠다.




전시된 양재문씨의 사진은 제목처럼 한국적 환상이었다.

색의 흘림과 감춤으로 형성된 그 이미지가 이국적이지 않고 한국적인 것이,

어디 전통 춤꾼이 펼치는 춤사위라는 데만 있었겠는가?

바로 그 이미지에 우리민족의 한과 기가 서려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의 삶이 꿈틀대는 움직임과 새벽의 고요함이 어우러진 양재문씨의 이미지들은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우리 춤은 고요한 가운데 서서히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고,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이 드러나는‘정(靜)중(中)동(動)의 미학이다.

은은한 감춤의 미가 그토록 매혹적인 것을 어디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느린 셔터로 잡아 낸 흔들리는 동작의 이미지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아 경지로 빠져들게도 하는데,

얼핏 한지에 살며시 번지는 물감처럼 애잔하다.




춤꾼이 춤사위에 자신의 기를 풀어 놓기 시작하면, 양재문은 그 춤꾼의 기를 받아 자신의 색으로 다시 풀어낸다.

그 색은 요염한 여인네의 교태미가 되기도 하고 정숙한 여인네의 숭고미가 되기도 하며 우리만의 색으로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 춤꾼의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가 작가에게 전이되어 ’아리랑 환타지‘로 승화한 것이다.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그리기 전에 표현할 이미지를 예견하듯이 사진가 역시 셔터를 누르기 전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예견한다.

그 기가 합일점을 찾아 작품으로 탄생하기 까지는 수없이 반복하는 인내가 뒤 따를 수밖에 없다.

예술에 끝이 없듯, 양재문씨의 작업 역시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양재문씨는 오래전부터 우리 춤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낸 배태랑 작가다.

20여 년 전에 보았던 ‘풀빛여행’의 그 몽환적 춤 여행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2년 전에 보여 준 ‘비천몽’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어, 한 폭의 수묵채색화처럼 아름다웠다.




긴 세월동안 한국 전통춤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온 양재문씨가 이번에 보여 준

‘아리랑판타지’는 역동성이 개입된 것이 또 다른 변화라면 변화다.

1미터에서 4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 군무(群舞)를 통해 여지 것 볼 수 없었던 강한 역동성을 표현한 것이다.

집단적 신명성을 끌어내기도 한 그 사진은 마치 우리민족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은 환청도 일으켰다.

그 함성에는 동학의 목소리도 있고 광주항쟁의 목소리도 뒤섞인 것 같았다.




전시 작품들을 돌아본 후, 지하 전시장에 다과 차려 놓은 곳으로 내려갔다.
막걸리도 몇 병 있었으나, 술은 아무도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이 건 술에 대한 모독이라며, 한 병을 혼자 다 마셔버렸다.
술은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혼솔은 진짜 찐 맛 없더라.




개막식 다음 날인 22일에도 전시를 보지 못한 정영신씨와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금보성아트센터' 김보성 관장을  만나 차 한 잔 마시며, 지난 이야기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리니, 시간나면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금보성아트센터(02-396-8744)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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