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 지방에 촬영간 정영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장흥인데, 촬영에 문제가 생겼어!

짐이 많아 움직일 수도 없으니 좀 와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일주일 정도 체류할 것이라며 짐을 잔뜩 싸가지고 갔는데, 뭔 일인지 모르겠다.

하던 일이 있었지만, 감히 지존이신 동지의 말을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오.


 

대충 마무리하고 나서니, 오후5시가 되어버렸다.

내일 전시장 들릴 곳이 있어 밤늦게라도 돌아 올 작정으로 출발했는데,

서울을 빠져나가려니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변속으로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디쯤 오셨냐?“기에 도착하면 한 밤중일 것 같다니까,

우리 집 옆 대나무 숲 민박집을 잡아놓을 테니, 천천히 오라는 것이다.

힘들어도 숙박비 줄이려 당일치기를 생각했으나,

난데없는 지원군 덕에 하루 밤을 장흥에서 묵게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 밥도 먹지 않고 밟았는데, 도착하니 밤11시가 가까웠다.

네비게이션이 없어 전화로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민박집이 아니라 마동욱씨 집이었다.

정영신, 마동욱씨와 함께 그의 아내 김영숙씨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늦은 시간까지 자지 못하게 해 송구스럽기 그지없으나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느냐?


 

김영숙씨는 저녁 못 먹은 걸 눈치 채고 저녁상을 차려 주었는데,

얼굴에 철판 깔아 눈 지긋이 감고 허급지급 먹어 치웠다.

바지락 국에다 갑오징어, 열무김치 등 반찬 수는 적으나, 그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시장기도 한 몫 했겠지만, 여지 것 그토록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영숙씨는 제 작년 쯤 인사동의 마동욱씨 전시 오프닝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지만,

음식 솜씨가 이렇게 좋은 줄은 미처 몰랐다.

음식 솜씨도 보통이 아니지만, 두 내외가 찰떡궁합이었다.

여지 것 아침상 한 번 거른 적 없이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챙긴다는데,

마동욱씨는 마누라 복을 타고 난 사람이었다.


 

난 지방촬영가면 아는 분들에게 좀처럼 연락하지 않는다.

빠듯한 촬영 스케줄에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서다.

지난 번 강진촬영 때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더니,

페북을 본 마동욱씨가 어떻게 지척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있냐며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영신씨가 연락한 것 같았다.


 

마음 마씨라 본래 마음이 좋은지 모르지만, 마동욱씨는 사람 좋기로 유명하다.

그에게 신세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변을 잘 챙긴다.

벌어 놓은 돈도 없으면서, 욕심 없이 사는 그의 모습에 존경감이 일었다.

덕분에 그가 얻어놓은 대나무 숲 속의 민박집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가야 한다며, 내일 못 본다고 헤어졌으나, 그만 늦잠이 들어 버렸다.

오전 아홉시 무렵, 민박집을 지나치던 마동욱씨가 차를 보고 다시 연락해 온 것이다.

본인은 이미 식사를 했었고, 우리는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했으나,

기어이 밥 먹으러 가자는 성화에 따라나서야 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듯한 우리식당이란 밥집으로 데려갔는데

이곳 역시 진수성찬으로 차린 반찬이 모두 맛있었다.

전라도에서도 음식 잘하는 장흥 여인네들 음식솜씨를 제대로 맛 본 것이다.


 

마동욱씨와 헤어져 서울로 차를 몰았는데,

정영신씨는 이왕 온 김에 하루 더 지체하여 시골장터 좀 돌아보자고 했으나,

박은태씨 전시 보려면, 오후 다섯 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며 우겼다.

시간이 좀 남을 것 같아, 가는 길에 장흥 용산장과 강진 성전장만 들리기로 했다.


 

먼저 장흥에서 지척에 있는 용산장 부터 들렸다.

용산장 역시 사라져 가는 장터의 한숨이나 파는

장꾼 몇 사람이 나와 장을 지키고 있었다.

먼저 용산장 입구에 있는 장터식당부터 들렸다.


 

이 식당 주인 백외자씨는 정영신씨와 동갑내기인데,

작년에 정영신씨와 친구하기로 약속하고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은 사이다.

음식 맛있다는 칭찬에 갓김치를 바리바리 싸주는 고마움에 감읍해 친해졌는데,

마치, 친정 엄마처럼 뭘 먹이지 못해 안달 하더니, 또 몇 가지의 김치를 싸 주었다.

다양한 김치를 이렇게 맛깔나게 담는 사람도 보지 못했지만,

작년에는 장터 사진집으로 답했으나, 이번엔 뭣으로 답해야할지 고민되었다.


 

이어 강진 성전장으로 옮겼는데, 공교롭게도 찾아 간 곳이

오늘 서울 가서 봐야 할 전시의 주인공인 화가 박은태씨의 고향이었다.

그 전에는 비스듬히 버틴 장옥 한 채가 장터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때의 장옥은 사라져버리고, 어울리지 않는 천막 식 장옥에

동네 사람 몇몇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헐벗은 옛집들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오래된 장옥이라도 보존하고 있었다면, 향수나 추억이라도 팔 텐데,

이젠 살 사람도 팔 물건도 아무 것도 없었다.

어디, 여기만의 아쉬움이겠는가? 면소재지에 위치한 대개 오일장의 현실이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지루한 운전이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실상, 얼마 전 강진 갈 때도 정영신씨가 목적을 말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의 여정으로 혼자 떠난 이번 촬영 역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더구나 촬영에 차질이 생겨 사흘 만에 돌아와야 했으니,

이젠 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일이 진척되면 말하려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평생을 장돌뱅이로 살아 온 현역 장꾼 몇 명을 밀착 취재하여

그 사람의 생활 전모를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번 영랑시인 기념관에 도슨트로 일하는 이재광씨를 만난 것도

취재 대상에 걸 맞는 장꾼을 추천 받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추천한 여인이 흔쾌히 허락하여 촬영에 들어갔는데,

하루 찍고, 이틀 날 새벽에 못하겠다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깊이 파헤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동네 이장이 큰일 난다며 못하게 말렸다는 것이다.


 

닷 세 동안 그 여인이 사는 콘테이너 박스에서 기거 할 약속에,

그 여인도 좋아했다는데, 갑자기 이변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바꿀 때까지 일단 철수해야 할 것 같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있으나, 그 장꾼에게 이야기 거리가 너무 많아

꼭 취재하고 말 것이라는 각오도 덧 붙였다.


    

나 몰래 추진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며 어깃장을 놓았지만,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첫날엔 이재광씨도 만났다고 한다.

그 분의 차로 장흥 펜션으로 안내하여 숲 해설가 김동호씨도 소개해 주었고,

해남의 설화다원까지 찾아가 마승미씨를 비롯한 소리꾼들과 어울려

판소리까지 들으며 찡하게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재광씨는 지난번에도 이곳 저 곳 안내해 주며 사람도 소개해 주었는데,

이번에도 신세를 많이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장흥은 음식도 맛있지만, 인심까지 좋으니,

사돈 볼 사람은 기어이 장흥사람 찾으라고, 동네방네 소문내야겠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