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드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예술 감독 안애경씨가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 퇴비장 만드는 일에 손을 걷어 붙였다.

그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연환경에 유달리 애착이 많은 작가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으려, 장바구니에 유리컵을 챙겨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오래 전 우연히 문화비축기지를 지나치다 떨어지는 낙엽을 쓰레기로 버리려 포대에 담는 것을 목격한 후로

그 곳에 퇴비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거름이 되지만, 공원관리인들은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시멘트 길을 밟는 것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는 것이 훨씬 좋으련만, 낙엽은 떨어지기가 무섭게 쓸어버린다.

엄청난 쓰레기더미와 공해문제에 직면하는 오늘, 모든 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에 앞서 스스로 작은 일이라도 생활 속에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첫 작업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문화비축기지에서 나오는 자연퇴적물들을 끌어 모아,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퇴비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공원을 비롯한 공공장소가 무조건 깨끗하고 사적인 편리함만 찾는 장소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낙엽을 비롯하여 자연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버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구조가 되어야 한다며,

앞으로 시멘트를 걷어내어 나무를 심는 등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이어 갈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26일 문화비축기지에 퇴비장을 만든다는 안애경씨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살며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거기서 어떠한 일을 하며,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몰랐기에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오전 10시 무렵,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맞은편에 있는 문화비축기지에 도착했는데, 탱크식 건축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축구장 22개의 크기라는 넓은 부지에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무슨 문화가 비축되어 있는지 궁금증도 발동했다.

입구 쪽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사용되는 콘테이너 박스가 연결되어 있었고,

주 건물은 커피매장의 휴식공간과 전시장이 만들어져 있었으나, 퇴비장 작업으로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 바로 옆의 나대지에서 안애경씨와 필란드 디자이너 HENRIK ENBOM 등 몇 명이 열심히 퇴비장을 만들고 있었다.

지지대인 나무를 땅에 박은 후 철망으로 돌려 원형의 퇴비장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곳에 집어넣을 버려진 갈대와 지푸라기도 모아두고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퇴비장을 만든 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입주 작가는 악취가 나면 어떻게 하냐며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다들 자연을 생각하기보다 일신의 편리함이나 생활화되어 온 관습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못 견디는 게 체질화 되어 있었다.


 

마침 공원관리인이 쓰레기 한 점 없이 깨끗한 시멘트 길을 강력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모터소리의 굉음도 시끄러웠지만, 그 먼지가 작업장까지 날아왔다.

안애경씨가 만류하여 그만두었지만, 이 모든 것이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대표적 사례다.

일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이거나, 아니면 흙먼지 하나 없는 말끔한 길을 만들겠다는 잘 못된 생각이다.

그들 이야기로는 조금만 지저분해도 바로 민원이 들어 온 다는 것이다.

눈치 보는 공무원이나 결벽증 걸린 시민이나 문제가 있기는 다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이동 했는데, 그 인근에는 식당이 없어 월드컵공원전시장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가야 했다.

산책길로서는 적당한 거리지만, 다리 불편한 노인 걸음으로는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가면서 유심히 바라 본 거리 풍경의 모순점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무슨 금지 팻말이 그렇게 많고, 무슨 감시카메라가 그렇게 많고, 또 규제 안내는 그리 많은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들만 사는 유치원 같았다.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현수막도 있었다.



여지 것 금연이란 팻말은 숱하게 보았지만, ‘음주청정지역이란 현수막은 처음 보았다.

성교청정지역이란 팻말은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하기야! 아침에 버스 타고 지나치다 구시대의 유물 같은 돌비석을 보지 않았던가.

마치 새마을 운동 구호 같은 바르게 살자란 글귀의 돌비석이 은평 사거리에 있었는데,

그런게 서울시내 한가운데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각설하고, 퇴비장 만드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안애경씨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는데,

오후 다섯시 무렵에야 철망으로 만들어진 퇴비장 여섯 개와 나무로 된 퇴비장 하나를 완성한 것이다.

만드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 속에 갈대와 잡초들을 집어넣어 이렇게 사용하라는

본보기까지 남기는 안애경씨의 모습이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같았다.


 

작업이 끝난 후, 안애경씨는 미리 준비한 술과 잔을 끄집어내어 축배를 들었다.

무슨 술인지는 모르지만, 달콤한 그 맛에 사람 사는 맛을 느꼈다.

혹시 그 지역은 음주청정지역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쓰레기 대란이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 자연퇴적물은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가급적 포장이 간소화된 상품만 구입하는 등 시민 스스로 환경에 대한 인식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항상 자연환경부터 생각하길 바란다.

 

안애경씨 말처럼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라.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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