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눈이 내렸다.

며칠 전에는 노숙인이 거리에서 얼어 죽었다.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합숙소를 기피해서다

요즘 들어 노숙인과 쪽방촌 사는 빈민들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없는 자에게 코로나는 더 가혹하다.

 

난, 송년회 술타령하다 정초부터 헤매고 있으나

잘 곳이 없어 생사를 헤매는 노숙인들도 많다.

 

서울역 광장엔 밤새 내린 눈이 서서히 녹고 있었고, 노숙하는 분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서울역 ‘다시서기센터’에 들어가 몸을 녹이는데, 조해인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제주에서 변순우씨가 올라와 ‘응암동콩나물국밥’에 있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금방 방전되는 고물 핸드폰이라 공짜 폰으로 바꾸라지만, 그냥 쓴다.

밖에 나올 때만 사용하는데, 솔직히 없는 게 편하다.

 

응암동 콩나물국밥집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변순우씨도 모처럼 왔지만, 전화가 끊겨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갔더니, 변순우, 조해인씨 외에 김수길씨도 있었다.

그 사이 소주를 여섯 병이나 깠더라.

 

변두리시인에게 무슨 변수가 있었던 걸까?

만난 지가 한 오 육년은 된 것 같은데, 더 젊어보였다.

30여년을 동생처럼 지냈으나,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른다.

근황을 묻고 싶었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별것 있겠나?

 

팔 년 전에는 정동지의 제주 장터 탐방 길에 들려 신세도 졌다.

항상 윗사람에게 싹싹하고 아래로는 의리를 챙기는 정 많은 친구다.

 

그런데, 모처럼 제주에서 출두하신 변사또 신년 하례연에

수청들 기생이 없다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낯 술에 취해 노래방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갈 수 없었다.

고질병으로 헉헉거려가며 정초부터 악쓸 수야 없지 않은가?

 

새해 첫 만남이었으나, 방석집 추억을 곱씹으며 물러나야 했다.

다들 새해에도 재미있는 일 많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보섭씨의 사진전이 열렸다.

개막식에 가 있는데, 인사동으로 빨리 넘어 오라는 전화가 번갈아 왔다.

제주에서 온 변순우씨도 기다리고, 김명성씨는 기국서씨와 함께 있단다.

 

뒤풀이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사진 몇 장 찍고 빠져 나왔다. 급해 택시를 잡았더니 시간이 더 걸렸다.

유목민에 도착하니, 기다리다 지친 변순우씨는 술 취해 여관에 들어 누워버렸고,

연출가 기국서씨와 박 철, 김명성, 이승철시인이 유목민골목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안쪽에는 전활철, 이상영씨가 분주히 오갔고, 공윤희씨는 거나하게 한 상 차려놓고 있었다.

 

기국서씨는 극단76’의 창단 40주년을 맞아 신작 리어의 , 지난 20일 대학로 무대에 올렸단다.

'76단'은 연희단 거리패, 학전, 연우무대와 함께 대학로 연극시대를 이끈 핵심 극단이다.

예술 감독인 기국서씨를 비롯해 동생인 기주봉, 송승환씨가 창단해 관객모독등의 대표작들을 만들어 냈다.

선돌극장’에서 공연되는 리어의 역은 리어왕을 40년간 연기하고 은퇴한 노배우의 이야기로,

58일까지 이어지니 한 번 구경하러 오란다.

 

좀 있으니 방동규 선생께서 '유목민' 골목에 등장하셨다.

방동규선생은 이름보다 별명이 더 잘 통한다. 방동규 하면 몰라도 방배추라면 왠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백기완, 황석영선생과 함께 조선의 삼대 구라 중 한 분 아니던가.

양산에 있는 채현국선생 학교에서 일하셨는데, 그만두고 올라오셨단다.

하기야 얼마나 살지 모르는데,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산 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방선생께서 김명성씨 칭찬을 많이 하셨다. 인사동 예술가들을 보살펴 온데 따른 치사였는데,

자고로 사나이는 그릇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이 적으면 질질 흘려 주변이 더러워진다는 말씀이셨다.

그리고는 벽에다 下學而上達라는 글을 쓰셨다.

아래로부터 배워 위를 통달한다는 공자말씀인데, 너무 좋아하는 고사성어였다.

 

이어 박 철시인의 기타반주에 노래가 흘러나오는 흥겨운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방동규선생이 듣고 싶은 노래를 박 철씨가 정확히 모르는 게 있었다.

제목은 기억 나지 않고, 가사 에 그냥 십팔번으로 불러주세요라고 나오는 작부 신세타령인데,

나도 입에 뱅뱅 돌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김명성씨는 송상욱 선생을 불러야 한다며

난리법석을 떨었으나 집에 들어가신지 오래 된, 송선생을 모셔오기는 더욱 힘들었다.

 

뒤늦게는 강성수, 고용욱, 김기영, 이상훈씨 등의 술꾼들이 차례로 등장하였고,

충무로 김보섭전시 뒤풀이에서 놀던 아내 정영신도 찾아왔다.

신나게 놀았지만, 집에 돌아갈 시간만 되면 맥이 빠진다. 술 마시다 편하게 죽는 수는 없을까...

아내와 골목을 빠져 나오니 푸른 별의 최일순씨가  의정부 천상병선생 행사에 가자며 채근이다.

내일 선약이 있어 갈 수도 없지만, “김병호가 장난치는 동안은 낄 생각 없다고 전하라 했다.

 

사진,/ 조문호






















































 

지난 19일 정오 무렵, 제주 사는 변순우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웃에 있는 조해인씨 집 부근의 ‘산호다방’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불과 500미터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커피숍에 밀려난지 오래된 다방이라기에 도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했다.

 

지하로 들어가는 너절한 입구를 보며, 보나 마나 짐작은 되었다.

대낮인데도 술 마시는 손님이 두 테이블이나 있는 걸로 보아

다방이라기보다 술집에 더 가까웠다.

한가롭게 쉬는 남정네들도 있고, 의자에 누워 곤하게 자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변순우씨와 조해인씨도 일찍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빠 나 쥬스 한 잔 마실게"

옆에 있던 다방레지의 꼬드김을 들으니

오래 전 끊긴 필름이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지하실의 퀴퀴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시골 다방을 연상시켰다.

실내는 푸르둥둥한 형광 빛을 받은 대형수족관이 칸막이 노릇을 하고,

옆 좌석의 소리를 가려주는 음악은 흘러 간 옛 노래 일색이었다.

때로는 느닷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튀어나와 잠자는 격정을 건드리기도 했다.

 

마담과 레지가 교대로 오가며 술시중을 들어 번잡스럽기는 했으나, 술은 잘 넘어갔다.

변순우씨는 치과에 일이 있어 올라 와 앞니 만 몇개 달랑거리며 술을 마셔댔다.

뒤늦게 부천에서 중고차매매상사를 운영하는 신영철씨가 찾아왔는데,

원로영화배우 신영균선생의 자손답게 신영균씨를 빼 닮았었다.

그리고 조해인 시인의 명상집이 8월경 ‘해냄출판사’에서 나온다는 소식도 들었다.

 

마치 술병에 구멍 난 듯 순식간에 맥주 열 몇병과 소주 세병을 비웠다.

오랜만에 음숭한 생각마저 들어 꼬불쳐 둔 ‘팔팔’까지 입에 털어 넣었다.

어느 한 곳에 힘이 쏠리면 쉽게 뻗지 않는 효과는 있지만, 괜한 호기를 부린 것이다.

낯 술에 취해 모두들 헤어졌는데, 텐트 친 가랑이를 움추린 채,

동내사람 볼까 조심스럽게 돌아와야 했다.

 

그 곳 ‘산호다방’은 도라지위스키 한 잔 시켜놓고 시시덕거렸던

80년대의 다방풍속 그대로였다.

시덥잖은 한 시절의 풍속이지만, 지나고 보니 아련한 향수는 있었다.

불현듯 최백호씨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생각났다.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사진,글 / 조문호

 

 

 

 

 

 

 

 

 

 

 

 

 

 

 

새해 첫 날, 제주에 귀향 갔던 변 사또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형! 내일 서울 올라가니 얼굴 좀 봅시다”
반갑기는 하지만, 년 초부터 술에 젖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난 2일 오후7시가 지나서야 인사동에 있는 ‘유목민’으로 나갔다.
‘유목민’ 입구에는 변순우씨와  조해인 거사, 보훈처에서 일하는 나재문씨,

별나라로 간 강용대의 동생 강용석씨가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유일하게 담배 피울 수 있었던 ‘유목민’마저 이제 금연령이 내렸나보다.
하기야 새해부터 업소에서 담배 피우다 걸리면, 업주도 상당한 벌금을 문다니

그냥 내 버려 둘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국산담배를 피워왔으나, 새해 첫날부터 오르지 않은 양담배를 어렵게 샀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몸 생각해 안 피우는 사람이 많겠지만,

대부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마지 못해 피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담배에다 세금 폭탄을 내리다니,... 

국민건강을 위해 담배 값을 올렸다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피울 사람은 한 갑에 만원씩 해도 피운다.
올해부터는 아예 담배 농사지어 만들어 피울 생각이다.

괜히 정초부터 담배 때문에 열 올렸나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변순우씨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마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에 나오는 할아버지 패션을 연상시킨다.
빨간 자켓에 도리꾸찌 모자를 눌러 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가 빠져 말이 샌다.

뒷자리에는 유진오씨가 노랗게 구운 두부안주를 시켜놓고 혼자 고독을 씹고 있었다.
뒤늦게 노광래씨가 합류하였지만, 년 초라 그런지 ‘유목민’도 한가했다.
제주에 귀향 간 변순우씨는 장기간 자동차를 방치한 죄로 벌금을 물게 되었단다.
그 사건을 해결하러 서울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적당한 취기로 어깨가 펴진 이들의 이야기가 펄펄 날아다니고, 감정도 달아 올랐다.
그러나 담배 없는  술자리는 앙코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담배 피울 수 있는 ‘사랑방 모텔’로 옮겨 한 잔 더 하자지만, 그냥 줄행랑쳤다.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김명성씨가 더욱 그리운, 그런 하루였다.

 

사진,글 / 조문호

 

 

 

 

 

 

 

 

 

 

 

 

 

 




 

뒤늦게 글맛에 푹 빠진 변두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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