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전시 디스플레이에 쓸 재료 구입하러 청계천에 나갔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인데도, 육 만원이나 날아갔다.
자동차 정비소에 맡긴 차는 브레이크 라이닝 마모로 드럼까지 갉아먹었다는
연락에 골머리를 앓는데, 마누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 강 민선생님과 인사동 있는데, 점심 먹지 않았으면 ‘툇마루‘로 와”
마음이 딴 곳에 쏠려있어 밥 생각은 없었으나, 안 갈 수 없었다.
‘툇마루’에는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김가배시인과 소설가 김승환선생도 계셨다.
다들 식사가 끝나가는 중이라 급하게 된장비빔밥 한 그릇을 해치웠다.

식사 중에 나온 이야기는 김전대통령의 서거를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언론들은 김전대통령께서 변절해 합당한 과거사를 “통합과 화합의 승부사”로
추켜세우는 등, 국정교과서문제와 물대포 맞아 중태에 빠진 백남기씨에 대한
들끓는 여론을 덮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정치인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생전에는 박근혜를 신랄하게 비판해 왔기에, 현 정권에는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 가시가 뽑혔으니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렇지만 하나같이 장례식장에 나와
무릎을 조아리는 모습에 정치인의 비열한 양면성을 다시 한 번 본다.

고인께서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듯이,
별 짓을 다 해도 새벽은 올 것이다. 더 이상 고인을 욕되게 하지마라.

김영삼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영면을 빈다.


사진: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인사동이 변한 게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 탓이라지만,
사람 없는 인사동은 앙코 없는 찐빵이다 싶다.

30여년 전, 인사동을  찾을 때도 사람이 그리워 나왔고,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추억을 남기게 된 것 아니던가?

생각을 바꾸니 길거리의 관광객들이 다 아는 사람처럼 정다웠다.
어느 한 사람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알고 보니 다 같은 이웃이었다.


지난 4일, 낮술에 취해 거리를 돌며 기분 좋게 사진 찍었다.
낯선 사람을 불러 세우기도 했으나, 아는 분들도 여럿 만났다.

택시 잡을려는 뒷태에 끌려 “아주머니 사진 찍어요”했더니,
뒤돌아보는 분은 김가배시인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뿐 아니다. 연극배우 이명희, 화가 마기철, 장경호씨에다
판화가 정원철씨와 나무화랑 김진하관장도 만났다.

그날 수많은 행인들과 눈 마주치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말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도 눈웃음치며 아는 체 했다.


인사동을 한 바퀴 돌고난 후, 풍문여고 길로 북촌까지 걸었다.
'무명예술가들의 거리' 프로젝트 욕심에 답사 차 나선 것이다.

익숙한 골목이었지만, 일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니 더 멋졌다.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이지만, 인사동보다 아늑하고 정겨웠다.
선재미술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까지의 거리 분위기도 좋았다.


힘 있는 자들은 꿈 꾸지 않는데, 혼자 김칫국 마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도 사람인데, 좋은 일을 왜 마다하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최선을 다해 밀어붙일 작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달부터 용돈이 불어나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정부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으로 올려줘 고맙기는하지만,
그러다 나라가 거덜나지 않을지 염려된다.

강 민선생과의 오찬약속에 인사동으로 나가며, 밥값은 내가내기로 작정했다.
약속장소인 포도나무집에는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김가배, 신동명선생 그리고 여행작가 정선모씨가 함께 계셨다.
오뎅탕과 복분자를 주문하였으나 음식도 나오기도 전에 신동명시인께서 계산해 버렸다.
급히 나오느라 은행에 들리지 못해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없는 신세를 빨리 면해야 할텐데...

뒤늦게 이행자시인이 나타났다.
이행자시인은 술이 거나해지면 대화가 과거형으로 돌아간다.
옛날에는 어떠했고, 누구와는 어떻게 지냈다는 등 별 재미없는 이야기 일색이지만,
가끔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동요를 불러주는 애교도 있다.
그 날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은, 이행자시인이 50여 년 동안 왼쪽 무릎 없이 버텨왔다고 한다.

멀쩡한 다리로도 걷기 힘들어 짜증 부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위기를 바꾸려 느닷없는 이행자시인의 애정 편력을 물었는데, 그 답이 걸작이었다.
“연가는 많이 불렀지만 히트곡이 없다”는 것이다.

오후8시부터 시작되는 ‘넋전 아리랑’을 보고 가려니,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전시장도 가고 사진도 찍었으나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통인가게 대표 김완규씨도 만났고,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도 만났다.

정말 일하는 것 보다 노는 게 더 힘들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유목민’으로 오라는 공윤희씨의 전화가 왔다.
'유목민'에는 공윤희, 전활철, 김왕기, 김명성, 신현수씨가 있었고, 뒤늦게 노광래씨를 비롯하여 

무세중, 무나미선생도 오셨다. 몸이 편치 않으니 술 맛도 없지만 즐겁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마신 술이라고는 ‘포도나무집’에서 마신 복분자2잔, ‘예당’의 막걸리2잔,
‘어머니가 구워주신 생선구이’에서 소주2잔 등, 몸 생각하느라 술을 찔끔찔끔 마셨으나,
결국 마지막 들린 ‘유목민’에서 취하고 말았다.

 

 

 

 

 

 

 

 

 

 

 

 

 

 

 

 

 

 

 

 

 

 

 


시인 서정춘선생께서 다섯번째 백자예술상을 받았다.

백자예술상은 초정 김상옥선생께서 제정한 상으로 그동안 이원섭, 송하선, 오세영, 정완영씨등이 수상한 바 있는데,

이번 서정춘선생의 수상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인사동에서 마늘 장사하다 우연히 존경했던 초정선생을 만난 이후로 그의 시작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7일 오후4시부터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시인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민 영, 문효치, 송상욱, 이명수, 김윤태, 김명옥, 김가배, 신동명, 이소영, 조 명, 김현숙, 고정애, 이연분, 장건섭, 이채민, 함수곤, 허형만, 서정란, 박주영, 오세영, 강상기, 박추자, 강금희, 양인숙, 이병달, 김영복, 노광래, 편근희씨 등 많은 문인들과 지인이 참석하여 서정춘선생의 시상 수상을 축하했다.

서정춘선생은 부상으로 거금 천만 원을 받았는데, 완전 빈 집에 소 들어간 격이었다.
행여 술값에 탕진할까봐 주최 측에서 상금을 사모님께 전달했으나, 그는 시종 싱글벙글했다.

잔득 차려놓은 음식들을 보니 배는 고픈데, 서선생의 수상소감이 너무 길었다.

 

마지막으로 던진 사회자의 맨트가 걸작이다.
“시는 짧은데 소감은 길었다”고...

 

 

 

 

 

 

 

 

 

 

 

 

 

 

 

 

 

 

 

 

 

 

 

 

 

 

 

 

 

 

 

 

 

 

 

 

 

 

 

 





김가배 (시인)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대두 (시인)  (0) 2013.03.12
김순복 (시인)  (0) 2013.03.12
이찬범 (독도화가)  (0) 2013.03.12
헬레나 (영어강사)  (0) 2013.03.12
이인철 (서양화가)  (0) 2013.03.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