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At First Sight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2022_0826 ▶ 2022_0930 / 월요일 휴관

 

강요배_산상 山上 On the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667cm_2022 (사진_양동규)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hakgojaegallery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학고재 오룸Hakgojae OROOM

 

원인(原人)과 원도(原道): 사람을 묻고 도리를 묻다.-강요배의 예술세계 - 1. 들어가는 말(자연과 역사) ● 이탈리아 철학자 갈바노 델라 볼페(Galvano Della Volpe, 1895-1968)는 그의 대표작 『취미비판(Critique of Taste)』에서 시에 관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괴테는 "최상의 시어는 결정적으로 역사적이다. ...핀다로스(Pindar)의 송가에서 신화와 역사적 요소를 분리시키는 일은 그들의 내면적 삶을 송두리째 잘라내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1) 델라 볼페는 시의 본질은 역사적이며 시공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소포클레스(Sophocles, c. 497/6-406/5B.C.)의 비극적 파토스는 그가 처한 물질적 토대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당연히 비평 기준은 역사적 토대에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델라 볼페는 200년간의 시어들을 분석하면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낭만주의 시대에 설정된 비평과 미학 개념을 역사적, 사회학적 차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현실로부터 초월했기 때문에 환상이라는 개념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시인들을 환상 속에 가둔 역사적 조건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역사적 조건의 정확한 진단과 해석으로부터 시인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통로는 회화 세계에서도 통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4-1945)의 그토록 유명한 선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 "모든 예술가는 이미 존재하는 시각적 가능성을 발견한다. 예술가는 그 가능성에 묶여있다. (밀접히 연관된다.)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어떻게 보는 것 자체가 역사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지층(optical strata)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미술사의 가장 기초적인 책무이다." 2) ●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이탈리아의 철학자와 스위스 출신 미술사가는, 마치 동일 인물인 것처럼 같은 관점을 시사한다. 전자가 말하는 역사적 조건과 후자가 말하는 시각적 가능성은 예술가를 어떠한 영역에 가둔다. 그 영역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은 시대에 구속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존중하면서 예술가와 마주해야 한다. ●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강요배(姜堯培, 1952-)라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강요배 작가에 대하여 '제주의 작가', '4·3 항쟁의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작가를 바라보며, 작가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하여 시대의 그릇된 역사인식과 사회 부조리와 맞서 싸운, 실천적 예술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속에 외부세계(인간세계)의 역사적, 사회학적 묘사는 1980년대 작품에서 마무리되며, 그 후 작품세계는 자연 풍경의 묘사로 집중되고 있다. 강요배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이 있다. ● "제주의 역사적 체험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 위에 담는 작품으로 유명하며, 자연의 풍경을 단순한 객체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심적 변화를 읽는 또 다른 주체로 다룬다." 3) ● 작자미상의 이 글에서 작자는 강요배의 세계가 제주의 역사적 체험의 묘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는데, 묘사하는 대상이 객관적 세계라기보다 주체로 다룬다고 설명한다. 이를 우리는 의경(意境)이라고 배웠다. 사전적 의미로 의경(意境)은 작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이 객관적인 사물이나 대상을 만나 융합하면서 생성되는 의미 또는 형상이다. 강요배의 회화세계는 의경의 세계이다. 예컨대, 강요배가 그리는 한라산과 내금강 중향성(衆香城)은 단순히 감상을 위한 대상으로서의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 물론 한라산과 금강산은 각각 우리 국토의 남쪽과 동쪽에서 우리들의 심성을 기르고 포옹해주었던 영적 대상이다. 우리는 생업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옳게 산다는 믿음 속에서 산다. 믿음은 진리가 되고 진리는 삶을 견디게 해준다. 진리는 역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한라산과 금강산은 우리의 흔들리는 믿음을 다잡아주었고, 역사 속에서 살아간 모든 사람을 지켜본 역사 속의 눈이다. 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초월한다. 작가에게 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으로서의 자연(自然)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강요배 작가가 표현한 한라산과 금강산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이자 심신을 바루게 해주는 거울이며 우리가 디디고 있는 대지의 얼굴이다. 우리는 그 대지에 속해있다. 우리는 대지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리고 강요배는 대지의 철학을 옹골진 획의 힘으로 표현한다. 강요배는 대지의 철학으로부터 발아되는 획의 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림의 획과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쉭쉭하고 소리 나게 선이 그어지지 않으면 그림이 안 그려지는 것 같다. 속도가 있어야 하고, 선들이 벡터를 가져야 하고, 강약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만지고, 자연 속에 살아봐야 그런 선이 나온다는 거다. 디지털 이미지나 사진 등 인간이 가공해 놓은 이미지로부터 출발하면 획이 나올 수 없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4) ● 강요배가 그리는 산과 풍경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의 자연(自然)이다.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면 자연의 바깥에 존재하게 된다(ex-sist). 자연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인위이며 문화이다. 서구의 풍경화는 대상을 객관화한다. 화가는 대상(자연)으로부터 분리된다. 이에 반해 강요배 작가는 대상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자연을 만지고, 자연 속에 살아봐야" 그릴 수 있는 의경으로서의 그림이다. 그 의경의 발원지는 올곧은 역사인식과 무한한 국토애(國土愛)이다. 자연(공간)과 역사(시간), 그리고 자아(주체)가 총체적으로 통합된 경계에서 획과 속도, 벡터와 강약이 더불어 용솟음친다. 거듭 말하자면 작가는 "단순한 객체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심적 변화를 읽는 또 다른 주체로 다룬다."

 

강요배_'바비'가 온 정원 Garden During Typhoon "Bavi"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520cm_2021 (사진_오권준)

2. 하이퍼 카오스(hyper-chaos)와 굳건한 토대 ● 하인리히 뵐플린의 말로 되돌아 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어떻게 보는 것 자체가 역사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 말은 헝가리 출신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heim, 1893-1947)의 가장 유명한 테제인 사유의 존재 구속성(Seinsverbundenheit des Wissens)을 상기시킨다. 사유(예술)는 내 몸이 속한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강요배 작가의 위대성을 확인하려면 작가를 지배하던 시공의 구속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강요배는 실천주의 예술가였으며 사회참여적 예술가였다. 강요배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경계는 내용과 형식 사이의 팽팽한 균형이었다. 내용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즉 세계관이며, 형식은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의 모험을 가리킨다. 모든 예술가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허들 경기를 한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제약과 장애물이 존재한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서 이미 존재했던 모든 형식을 피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화면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화면이 새로운 형식이 될 때 비로소 작가의 타이틀을 수여 받게 된다. ● 강요배 작가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우리나라 화단은 두 개로 분할되어 있었다. 큰 범주로 모더니스트 회화와 리얼리즘 회화였다. 문제는 한국 화단을 이끈 두 개의 바퀴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더욱이 모더니스트 회화는 순수주의(purism)를 표방해야 했다. 외부 세계의 모든 내용, 가령 인간의 삶의 문제나 정치적 사안은 배제되어야만 했다. 심지어 형상도 제거되거나 축약되어야 했다. 순수주의는 배타주의와 같은 말이다. 회화에 조각적 요소가 진입해서는 안 되며 조각에 회화적 요소가 투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주의라는 말에는 본질주의(essentialism)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모더니스트 회화를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회화의 본질이 평면성(flatness)에 있으며, 이는 철학적 진리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선은 리얼리즘 회화를 배격한다. 회화의 본질을 흐리며, 회화의 순수함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반대로 리얼리즘은 회화와 삶의 일치를 주장한다. 리얼리스트는 삶을 위한 회화에 헌신해야 하며, 순수주의라는 미명 아래, 현실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절실한 철학적 요청이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기에 강요배 작가는 리얼리즘 회화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서 헌신했다. 강요배 작가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순수주의 철학과 리얼리스트 회화의 삶의 철학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기 철학의 제1원칙을 세웠다. 우리는 그 원칙을 「미술의 성공과 실패」이라는 강요배 작가의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다. ● "이른바 고급미술이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예술 이념은 '순수주의'다. 순수라는 말은 보통, 삶의 모든 국면에서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순수주의 예술 이념에서의 순수라는 말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말도 좋은 말이다. 그것은 예술이 예술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예술다운 예술이란 어떤 뜻인가? 인간다운 삶,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나가는 데 예술의 본래 사명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삶을 외면하고 무의미한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말은 자유로운 인간성을 지키자는 뜻이다. 나아가 삶을 가장 값진 것으로 하는 데에 예술이 어떤 것과도 결탁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것은 예술의 가치와 그 힘을 믿고, 예술의 힘이 삶을 왜곡하는 갖가지 힘에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5) ● 순수주의와 자율성을 표방하는 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다. 그러나 작가는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지 못하는 예술을 경계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나가는" 예술만이 진정성이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인간다운 삶을 가꾸는 예술이 있을지언정 그 예술이 모두 의미 있고 위대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위대한 명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6) 모더니스트 회화에는 삶의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반면에 리얼리스트 회화는 개념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강요배 작가는 삶과 개념의 무게를 영원한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형식의 풍경화이다. 힘과 속도, 벡터와 강약이 더불어 용솟음치는 무대(arena)를 만들었다. 이러한 힘과 속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야말로 강요배 회화의 진수를 알게 되는 지름길이다. ● 나는 우리나라의 미술 현상을 극도의 카오스가 할퀴고 간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퍼 카오스의 현장이다.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예술의 본질과 책무를 망각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마름질한 외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투는 몸에 맞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무게로 인해 우리 스스로 움츠러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융프라우(Jungfrau)보다 한라산이 위대해 보이며, 우리의 혀끝은 칠리소스보다 고추장을 선호한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동시에 그 선호는 취미를 넘어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내적 필연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강요배의 예술철학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내린다. 내적 필연성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서 비롯된다. 이에 반해 여타 다른 작가들은 자기의 뿌리를 타국의 토양에 둔다. 즉, 타자의 세계관을 빌린다. 7) 타자의 세계관은 나의 세계관이 아니다. 타자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혼돈의 극치이다. 더군다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 자연에 대한 존숭을 망각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절망적인 것이다. 이를 우려했던 강요배 작가는 일찍이 자기의 세계를 일곱 단어로 표현하며 친지와 동료를 격려한 적이 있다. ● "따스하게 벗처럼 살면 어디든 중심이 되는 법이다." 8) ● 강요배의 철학은 불망(不忘)이라는 단어로 집약되며 무불경(毋不敬)이라는 진리로 드러난다. 불망은 시간(역사)에 대한 철학이며, 무불경은 현재 공간에서 접하는 모든 인연에 대한 존숭을 뜻한다. 불망과 무불경이 내면화될 때, 나의 내면은 중용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불망과 무불경이 사회적으로 실행될 때, 나를 비롯한 공동체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이것이 바로 강요배가 평생 간직했던 철학이자 예술을 실행하는 근거이다. 이러한 강요배 철학의 핵심은 놀랍게도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의 한 구절과 한 입에서 나온 것처럼 동일하다. ● "공자께서 여러 동쪽 오랑캐의 나라에 살고 싶어 하시자 어떤 사람이 "거기는 누추할 터인데 그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사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느냐?"" 9) ● 나는 여러 동쪽 오랑캐의 나라(九夷) 중에 제주(濟州)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군자는 특정 계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불망과 무불경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강요배의 삶의 철학은 예술적 테마로 표현된다. 강요배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정신을 담아서 현시하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또 다시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 "만일 미술이라는 것이 막대한 금력의 기반 위에만 구축되는 거대한 건조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기반이 무너질 때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미술이 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려 자라는 나무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쉽사리 죽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0) ● "막대한 금력의 기반 위에만 구축되는 거대한 건조물"과 "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려 자라는 나무 같은 것"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메타포이다. 전자는 하이퍼 카오스의 세계이며, 후자는 굳건한 믿음의 토대를 뜻한다. 전자의 시간이 100년이라면, 후자의 시간은 만세(萬歲)를 이룬다. 강요배가 그토록 아름다운 경계를 지향한 것은, 시간(역사)으로서의 불망, 공간(사회)으로서의 무불경을 화면에 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의 시원을 3,000년 전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경(詩經)』에 등장하는 「팥배나무(甘棠)」라는 시이다. ● "무성한 저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마셔요. 우리 소백님께서 자리하던 곳이랍니다. 무성한 저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꺾지도 마셔요. 우리 소백님께서 쉬시던 곳이랍니다. 무성한 저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구부리지도 마셔요. 우리 소백님께서 말씀하시던 곳이랍니다." 11) ● 시에서 가리키는 소백님은 주나라 무왕(武王, ?-1043B.C.)의 동생 소공 석(召公 奭, ?-?)을 가리킨다. 민중에게 소공은 불망의 대상이다. 무불경으로 민중에 다가갔으며 민중을 위한 경세를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공이 쉬었던 팥배나무 그늘은 당연히 후세대에게 불망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팥배나무는 객관의 대상이 아니다. 민중의 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로 자리 잡게 된다. 강요배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하게 닮았다. ● "1월 1일 새벽에 찾은 한라산 백록담은 마치 깊은 웅덩이에서 거센 바람이 올라오는 것 같아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웅장했다. 그 장엄함에 압도되어 같이 간 일행은 모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절을 드렸다." 12)

 

강요배_중향성 衆香城 Junghyangseo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333.3cm_2019 (사진_오권준)

3. 천하일신론(天下一身論) ● 연도를 알 수 없는 어느 해의 1월 1일 새벽에 작가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바라보았다. 깊은 웅덩이에서 올라온 거센 바람은 과학과 객관적 사유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자연과 나와의 신비한 교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교감은 일행과의 공통적 체험이었다. 이러한 교감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자연과 내가 주객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경험은 주어지지 않는다. 보통 이러한 교감은 자연과 내가 같다고 믿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이러한 교감은 천지와 내가 하나라는 천지일신(天地一身) 사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사람들과 내가 하나라는 천하일신(天下一身) 사상으로 변용된다. 급기야 천지(우주)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 신뢰(仁)로 발전된다. 강요배 작가는 인간에 대한 낙관적 신뢰, 즉 인(仁)을 추구하며, 인간다움의 참된 의미를 묻고 그린다. ● "소통에 이르는 길은 인간 긍정 과정을 통과한다. 허구적 전달세계와 억압구조에도 불구하고 삶의 도처에서 생동하는 올바른 삶의 모습과 인간성을 발견하고 드러내어 서로 나누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삶의 실천자가 도처에 있다. 삶은 늘 오늘의 일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이 사람에게 있다. 여기에 인간다움도 있는 것이다." 13) ●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영원한 과정 속에서 예술이 피어난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사유방식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대부분 반항(反抗), 추비(麤鄙), 선정(煽情), 장려(壯麗)의 내용으로 나타난다. 동아시아의 예술에서 이러한 파격의 역사는 서구의 그것보다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양한다. 인간다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사유에서 최상의 제1원인은 자연(自然)에 귀속한다. 노자(老子, ?-?)의 사유가 대표적이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른다. 땅은 하늘을 따른다. 하늘은 도를 따른다. 그리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따른다"라고 14) 말했다. 진실로 사람은 대지를 따라야 한다. 대지 없이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대지는 하늘을 따라야 한다. 하늘이 대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도리, 즉 우주법칙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우주는 스스로 그러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우주가 운영하는 법칙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대지이며, 대지는 하늘이고, 하늘은 법칙이고 법칙은 자연스럽다. 사람과 대지와 하늘과 도리는 같은 것이다. 삶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강요배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가 여기에 있다. ● 사람과 자연이 본래 하나라는 관념은 동아시아에서 장구하게 유지되었던 사유방식이다.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天人之際)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禮樂刑政)로 구체화된다. 자연(우주)이 사람을 기르는 것을 가리켜 인(仁)이라 한다. 모든 사람의 본성(性)은 선(善)하며 인(仁)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나와 타인과 자연은 인(仁)을 통하여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이에 대해 정명도(程明道, 1032-1085)는 우리의 사체(四體)와 우주의 유비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 "의서(醫書)에서 손발이 마비된 것을 가리켜 불인(不仁)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가장 좋은 설명이다. 인(仁)이라는 것은 천지만물을 하나로 여기기에 무엇 하나 자기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자기라고 여기니 이르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만일 자기에게 있지 않은 것이라면 자기와 관여하지 않게 된다. 만일 손발이 불인하다면 기운이 통하지 않게 되어 손발은 자기에 속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성인의 공용이다. ...배우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인(仁)을 알아야 한다. 인(仁)이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대상(萬物)과 하나 되는 것(同體)을 말한다." 15) ● 정명도 사상의 연원은 상고시대의 전설적 인물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가 지었다는 『택경(宅經)』으로까지 소급된다. 황제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형세를 자기 몸으로 여기고, 대지에 흐르는 샘물을 자기의 혈맥으로 여기고, 대지는 자기의 살과 피부처럼 여기고, 초목은 자기의 머리털처럼 여겨야 한다"라고 16) 가르친다. 천지와 자기, 타자를 하나로 여기는 마음은 후대로 지속하여 이어진다. 가령, 천하가 하나라는 관념은,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의 양지(良知)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 "사람이라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다. 천지의 모든 것은 본래 나와 한 몸인 것이다. 사람들의 고난과 그 여파 중 그 무엇 하나 나의 아픈 통증 아닌 것이 있겠는가? 내 몸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17) ● 천지가 사람과 만물을 낳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을 가리켜 인(仁)이라 한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우주가 운영되는 법칙을 인(仁)으로 보았다. 우리의 마음(心身)에도 인(仁)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의 마음에 하늘(天)이 숨어있다. 마음 속 하늘을 찾는 것이 바로 강요배가 오랫동안 걸어왔던 예술의 길이자 삶의 요체이다. 나의 몸은 자연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자연과 타인과 과거와 미래와 연동되어 움직이는 대신(大身)이다. ● 「산상(山上)」에서 웅혼하게 넘실거리는 운무는 사람이 마땅히 함께 해야 할 기상이며, 「만매(晩梅)」에서 피어오르는 향취는 모든 사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마음을 상징한다. 「독조(獨鳥)」의 움직임은 스스로 그러한 세계의 참모습, 차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풍설매(風雪梅)」는 고난으로부터 되레 아름다운 모습을 극화시키며, 사람에게 가야할 길을 가르쳐준다. 「장밋빛 하늘」은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거는 하늘의 목소리이다. 태풍이 할퀴고 간 정원을 표현한, 「'바비'가 온 정원」은 시공과 인연의 착종(錯綜)과 생멸의 순환을 상징한다. 이처럼 강요배 작가가 그린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늘(天)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만명(晩明) 시기의 사상가 고반룡(高攀龍, 1562-1626)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 "사람은 하늘을 아는 것보다 긴요한 것이 없다. 하늘을 알기 위해서는 감응(感應)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하늘이라는 것은 저기 푸르고 푸른 하늘을 가리킬 뿐이다. 저기 아홉 개로 포개있는 하늘 이상의 높이와 저기 아홉 겹으로 켜켜이 쌓여있는 땅부터 나의 피부와 털, 뼈와 골수에서 우주 끝까지, 하늘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내가 하나의 선한 마음을 동하면 하늘이 반드시 알고, 하나라도 불선한 마음을 먹으면 하늘이 반드시 안다. 하늘은 또 어리하지 않아서 선함을 보면 반드시 보답한다. 불선함을 보면 반드시 그 불선함에 보답한다. 감응이라는 것은 형체와 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선함이 감하면 선함이 응수하게 된다. 불선함이 감하면 불선함이 응수하게 된다. 무릇 자감자응(自感自應)이 어째서 하늘을 이른다는 것인가? 어째서 하늘은 반드시 안다고 말하는 것인가? 자감자응(自感自應) 바로 그것이 하늘인 것이며, 또 그것은 사물, 사건과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하는 주체와 응하는 주체가 따로 있다면 이는 둘인 것이다. 오로지 둘이 아님에 (하늘은 만사에) 착오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 복을 짓는 것이며, 불선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 화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화복(禍福)은 자기가 구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알았다면, 선을 행하고 악을 거하는 뜻이 반드시 정성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악은 정화되고 선은 순전해질 것이니,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바로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8)

 

강요배_구룡폭 九龍瀑 Ⅲ Kuryongpok 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81.5cm_2019 (사진_오권준)

4. 맺는말(지천(知天)의 회화) ● 자감(自感), 즉 내가 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자응(自應), 즉 하늘이 바로 안다. 선을 행하고 악을 거하는 뜻이 지극히 정성스러워지면, 내재한 선이 드러나고 악은 정화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의 사람은 그 자체로 하늘이다(人乃天). 이 말은 공자(孔子, 551B.C-479B.C.)가 지었다는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나오는 문장을 재해석한 것이다. "역(易)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드디어는 천하의 일을 통한다. 천하의 지극한 신비로움이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 19) 강요배 작가 역시 동아시아 사상의 장구한 역사에 동참하여 본인의 사상을 구성했고 예술의 바탕으로 삼았다. 강요배 작가의 사상이 갖는 깊이를 우리는 다음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우리는 자연을 통과해서 하늘을 찾아가야 한다. 또 천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 본연의 어떤 좋은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천'일 텐데, 그것이 바로 마음 깊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 깊은 곳에 '천'이 있다. 이곳이 인간이 도달할 곳이다. 예술가를 비롯한 만인은 '천'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천'에 도달하는 순간 우주 보편성에 도달한다. 사람은 '인트로스펙션(introspection, 자기 성찰)을 통해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천'의 곡조를 듣는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회화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나는 회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우주의 단독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는 것을 꿈꾼다." 20) ● 마을에 유전되는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공동체가 간직해온 역사에 대한 평가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공동체 선인들의 정서와 잠언(箴言)이 함축되어있다. 전설은 유년기 소년에게 상상의 공간을 개척하도록 도와준다. 상상의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로 구체화되더라도 시들지 않고 현실에 개입한다. 세계와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4․3의 잔혹한 스토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아름답고 예민하되 건전했던 작가에게 커다란 마음의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 앞서 보았던 것처럼 작가는 처음에 역사와 현실을 그렸다. 그리고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히 예술형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와 역사, 사람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세계에 대한 학습의 집체(集體)였다. 지난한 여정을 통하여 작가의 세계는 변모하게 된다. 작가는 사람의 소리로부터 땅의 소리로 나아가더니 급기야 하늘의 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느껴서 천하의 일에 통한다는 것(感而遂通)이 곧 하늘의 소리일 것이며, 하늘은 "모든 사람이 우주의 단독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기를 바랄 것이다. 따라서 강요배의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의 진면목에 바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강요배 작가의 풍경은 우리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늘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우리는 그림에서 보았던 진리를 현실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그것을 넓혀야 한다(人能弘道). 이것이 강요배 작가가 그림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즉, 그림으로 말하는 강요배 작가의 사상이다. ●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노래한다. "강물이여! 계곡을 따라서 흐르는구나. 불사주야(不舍晝夜) 흐르는구나. 너는 고요한 나의 이야기에 말을 건다. 속삭이는 음악소리이구나." 21) 시의 화자는 강물 흐르는 소리로부터 내면의 소리를 취하여 의미로 충만한 멜로디를 구성해낸다. 이내 자연과 화자는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경지로 승격한다. 강요배의 거의 모든 그림 역시 자연과 화가를 하나로 이어주며, 나아가 시공과 인연, 사람과 도리의 의미를 체현한다. ■ 이진명

* 각주1) Galvano Della Volpe, (trans.) Michael Caesar, Critique of Taste (London: New Left Books, 1979), p. 25.2) Heinrich Wölfflin, Principles of Art History: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Style in Early Modern Art (Los Angeles: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2015), p. 93.: "Every artist finds certain preexisting 'optical' possibilities, to which he is bound.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Seeing as such has its own history, and uncovering these 'optical strata' has to be considered the most elementary task of art history."3) 「Doopedia」 강요배(두산백과, 2014, 작자미상).4) 강요배, 『풍경의 깊이』(돌베개: 파주, 2020): 52쪽.5) 강요배, 「미술의 성공과 실패」, 같은 책: 255-256쪽.6) 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Wolff to Kant Vol.6 (Burns & Oates: Wellwood, 1999), p. 247.: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7) 프랑스에서 수입된 노마드니, 리좀(rhizome)이니, 상징계(象徵界, symbolic)니, 에로티시즘이니, 사변적 리얼리즘(speculative realism)이니 하는 말들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 현실과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맞는 경우보다 많다.8) 강요배, 앞의 책: 66쪽.9) 『論語』 「子罕」: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10) 강요배, 앞의 책: 286쪽.11)『詩經』 「國風․召南․甘棠」: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芨.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12) 강요배, 앞의 책: 182쪽.13) 강요배, 앞의 책: 263쪽.14) 『老子』 25章: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15) 程明道, 『二程遺書』 卷2上: "醫書言手足痿痺為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 以天地萬物為一體, 莫非己也. 認得為己, 何所不至? 若不有諸己, 自不與己相干. 如手足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學者須先識仁. 仁者, 渾然與物同體."16) 黃帝, 『黃帝宅經』 卷上 「凡修宅次第法」: "以形勢為身體, 以泉水為血脈, 以土地為皮肉, 以草木為毛髮."17) 王陽明, 『王陽明全集』 「答聶文蔚」: "夫人者, 天地之心; 天地萬物, 本吾一體者也. 生民之困苦茶毒, 孰非疾痛之切於吾身者乎? 不知吾身之疾痛, 無是非之心者也."18) 高攀龍, 『高子遺書』 卷3 「知天說」: "人莫要於知天, 知天, 則知感應之必然. 今人所謂天, 以為蒼蒼在上者云爾, 不知九天而上, 九地而下, 自吾之皮毛骨髓以及六合內外, 皆天也. 然則吾動一善念而天必知之, 動一不善念而天必知之, 而天又非屑屑焉, 知其善而報之善, 知其不善而報之不善也. 凡感應者, 如形影然, 一善感而善應隨之, 一不善感而不善應隨之, 自感自應也, 夫曰自感自應, 而何以謂之天? 何以謂天必知之也? 曰自感自應, 所以為天也. 所以為其物不貳也. 若曰有感之者, 又有應之者, 是貳之矣. 惟不貳, 所以不爽也. 然則人之為善, 乃自求福, 為不善, 乃自求禍, 故曰: "禍福無不自己求之." 知此, 則為善去惡之意必誠, 惡浄而善純, 人乃天矣."19) 『周易』 「繫辭」 上: "易无思也, 无為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20) 강요배, 앞의 책: 306쪽.21) Johann Wolfgang von Goethe, "An den Mond":     "Rausch, Fluss, das Tal entlang,     Ohne Rast und Ruh',     Rausch, flüstre meinem Sang     Melodien zu!"

 

강요배_장밋빛 하늘 Rosy Sk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7×227.5cm_2021 (사진_오권준)

천기(天機)의 관조, 나선형적 사유 - 1. 천기(天機)의 감응 ● 『장자』 제2편 「제물론」에는 대지에서 일어나는 바람인 지뢰(地籟)와 사람이 부는 피리소리인 인뢰(人籟)가 모여 우주적 바람인 천뢰(天籟)를 불러일으킨다는 우화가 있다. 이는 고대적인 자연관이자 세계관의 하나로서 우주적 시간의 흐름, 에너지의 팽창이 소용돌이처럼 나선형의 율동으로 움직이는 순환 원리를 상징한다. '바람'이 일어나며 내는 소리는 제각각 다르며, 각 존재가 저마다 저절로 움직여 천기(天機)에 감응한다. ● 강요배의 회화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반에 걸쳐서 드러나는 천기(天機)의 감응력은 우주와 사람의 길을 담은 '윤도(輪圖)'에 근거하여 세상의 이치를 해석하는 집안의 정서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창작 원리의 근저에 천기(天機)의 운행을 마음의 움직임으로 살피는 천문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고, 오랜 관찰과 사유의 결과가 회화 화면에 다양한 시간성의 반영으로 드러난다. 때(時)에 따라 달라지는 달, 바람, 구름, 해의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하고 몸 안의 감관을 통해 포착된 그 심상(心象)을 되새김질하며, 실재의 풍경에서 추출된 기억의 모티프가 상상적 세계로 확장하는 강요배의 회화세계는 구상에서 반추상, 실재와 상상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선형적 사고의 회전운동으로 나아간다. ● 1976년 첫 개인전 『각(角)』 이후, 2022년 26번째 개인전을 맞이한 강요배의 개인전이 '첫눈에'라는 타이틀로 초가을의 문을 여는 것은 새로운 계절의 기미, 맨 처음 순진한 마음의 회복을 상기시킨다. 이번 개인전 출품작은 총 30점으로, 나와 우주와의 마주침, 나와 자연과의 대화, 그리고 생태 환경 속에서 포착된 제주섬의 일상의 정경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회화에서 시간성의 탐구를 지속해온 작가의 관심이, 회화 화면의 구성, 재료 사용 방식에서 그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 늘어난 것이 이번 개인전의 특색 중 하나다. 특히 올해 신작인 「월식」(2022)은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을 이루는 때,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비친 현상을 주홍빛으로 표현하여 달과 지구, 어둠 속의 두 존재의 만남의 순간을 세 층위의 색상의 차이로 단순화시켜, 색면추상 그 자체의 심미적 효과와 정서적 환기력을 충족시킨다. 각자의 궤도에 돌고 있다가 우연한 시기에 마음의 마주침으로 인해 서로의 세계로 침잠해들어가는 첫 만남의 마음의 교감을 연상시키는 월식의 장면은 검은색과 주홍색 사이의 벌어진 틈새에 음양이 교착하여 일어날 상황이 흰 여백으로 예비되어 있다. ● 거친 바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이후의 밝아져오는 때를 담은 「구름 속에」(2021), 태풍이 불어닥치기 직전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아침의 조도(照度)를 표현한 「'장미'의 아침놀」(2021), 밝아오는 햇살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장밋빛 하늘」(2021) 등 강렬한 색조 변화로 천(天)의 흐름이 순환하는 순간을 색채 운동성으로 표현한 색면추상은 아크릴 물감의 수성의 특징을 잘 살린 작가의 기량이 극대화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푸른 하늘에 뜬 달 「정월(正月)」(2022), 「흰 해」(2022), 「비천(飛天)」(2022) 등에서 회화의 붓질은 힘을 덜어내고 회화의 표면 위에 자신이 본 것, 해와 달, 흰 구름 자체의 느낌을 관객에게 직접 가닿게 한다. "최고의 기교는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노자의 말이 적합해 보이는 「비천(飛天)」(2022)은 「천고(天高)」(2017)의 깃털처럼 가벼운 구름보다 한층 자유로이 흩날리는 기운으로, 고구려 벽화의 천장에서 볼 수 있는 상서로운 기운의 문양처럼 기류(氣流)의 스침이 날렵하다.

 

강요배_배나무꽃 Blossoming Pear Tre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22 (사진_양동규)

2. 산수적 경계, 화면 포치의 정면성 ● 강요배의 회화세계에서 자연과의 만남은 대자적(對自的) 풍광을 조망하는 자아와 대상과 대화하는 정물과의 사귐으로 구별될 만큼 율동감 있는 기세(氣勢)의 풍경 화면과 단순하고 소략한 소품 정물로 나뉜다. 한라산 백록담의 분화구를 부감적인 시각으로 담은 「산상(山上)」(2022)은 10여 차례 한라산 정상에 오른 작가의 기억을 되살려 여러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실재의 환영적 공간이다. 화산 분출로 생긴 거대한 구멍 움부리를 신비스럽게 표현한 「움부리-백록담」(2010)에서는 신화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산상(山上)」(2022)의 회화세계에서 백록담은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광활한 풍광이 펼쳐져 있다. 또한 「대지 아래 산」(2021) 역시 어느 지역을 특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광대한 시점으로 조망한 먼 산의 형체가 비정형적 붓질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장소성이 뚜렷한 제주지역의 산을 역사적 장소, 신화적 장소로만 대상화하지 않고, 심미적 대상으로 관조하여 회화의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 효과로 보인다. ● 2021년 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기념전에서 선보였던 「쳐라 쳐라」(2021), 「'바비'가 온 정원」(2021)에서 회화 화면은 격렬한 기세의 표현이 화면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홍도 Ⅱ」(2018)는 홍도를 휘감은 붉은 구름으로 지명의 장소성과 자연의 숭고함을 중첩시킨다. 1998년 북한에 방문했을 때 본 금강산 풍경을 세 번째 그린 「중향성(衆香城)」(2019), 「구룡폭(九龍瀑) Ⅲ」(2019)에서는 같은 화제(畫題)를 다시 그리면서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금강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金剛山圖)」의 구도로 같은 화제(畫題)의 다른 판본을 시도하며 과거의 자신의 회화에 대한 도전의식을 보여준다. ● 반면, 「풍설매(風雪梅)」(2022), 「눈 속에서」(2022), 「배나무꽃」(2022) 등은 작가의 작업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의 일상적 모습을 관찰하여 대상을 화면 중앙에 포치시켜 대상과 작가, 대상과 관객이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듯이 정관적(靜觀的) 구도로 설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독조(獨鳥)」(2019), 「새 한 마리」(2019), 「소향(素向)」(2019), 「꽃 두 송이」(2019), 「봄볕」(2022) 등 화조(花鳥), 정물을 다룬 회화에서는 마치 팔대산인(八大山人)의 화면처럼 과감한 생략, 대상의 정면 포치를 통해 여백과 공간구성에서 현대 문인화적 분위기가 회화 전면에 감돈다.

3. 매체특정적 색채표현 ● 강요배는 초기 유화, 펜화, 삽화를 제외하고 다수의 작품을 아크릴화로 제작해왔다. 마음의 무늬, 즉 심상(心象)을 추상화하려는 작가에게 일필휘지의 수묵화가 더 어울릴 듯싶지만, 아크릴을 애용한다. 이는 작가의 창작 태도, 기질적인 성향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작가는 오전에는 인문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실제 작업은 하루 3-4시간 몰두하는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몰입되는 순간에 단박에 그리고, 또 수정하며 작업의 결과를 확인한다. 물의 농도를 조절하며 색감의 변화를 다루는 기술적 방법론을 다양하게 터득한 작가는 자신의 성향에 잘 맞는 매체특정적 색채표현, 표면의 질감 처리로 수묵화 같은 아크릴화 효과를 내는 데 성공하여 강요배의 아크릴화의 특장점을 차별화하고 있다. 이러한 매체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접은 종이 붓이나 말린 칡뿌리, 빗자루 등 보조도구인데, 작가는 화면의 질감, 결을 다듬을 때 주로 사용한다. ● 강요배의 회화세계를 표현할 때 서양화 재료로 동양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그리는 작가로 말하기에는 다 수렴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 전통적인 문인화와 현대미술, 추상과 반추상, 구상과 비구상 몇 개의 키워드로 압축시켜도 설명되기 어렵다. ● 우주적인 기류의 변화를 색면의 변화, 색감의 차이로 치환하여 색채 운동감을 부각시킨 색면추상은 강요배의 회화세계를 민중미술의 서정적 정서나 제주 지역미술의 풍토성을 반영하는 대표 화가의 타이틀에 포획시켜온 관성적 평가에서 나아가, 통시적 현대미술의 또 다른 경향으로 바라보게 한다. 강요배의 회화적 실험은 나선형적 사유 회로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르적 분류를 벗어나 미술에서 '그리기'라는 가장 오래된 고대적이고 원시적인 표현방식의 형식적 실험이 20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재적 응답으로 보인다. ● 첫눈에, 첫 마음에 무엇이 낚일 것인가?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 김정복

 

강요배_독조 獨鳥 Lone Bir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19 (사진_오권준)

Discussion on the Origin of Humanity (原人) and Origin of the Way (原道): Inquiring about Humanness and the Right Way of Existence - The Artistic World of Kang Yo Bae - 1. Introduction: Nature and history ● In his most important book, Critique of Taste, Italian philosopher Galvano Della Volpe (1895-1968) quoted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who "declared that 'the highest lyric is decidedly historical,' and that if for instance you tried 'to separate the mythological and historical elements from Pindar's Odes,' you would find that 'you had cut away their inner life altogether.'" 1) As such, Della Volpe said the inherent nature of poetry is historical and cannot escape the control of space-time. For instance, the tragic pathos created by Sophocles (c. 497/6-406/5 B.C.) cannot free itself from the material conditions or ideology to which Sophocles was exposed, and hence, criticism should be based on historical backdrop. Della Volpe also argued, based on his analysis of 200 years of poetic language, that critical and aesthetic concepts, defined in Immanuel Kant's day (1724-1804) and the romantic period, should be replaced with historical and social concepts: Romantic poets did not pursue fantasy because they transcended reality, but there were certainly historical conditions that confined them to fantasy. According to Della Volpe, only correct diagnosis and interpretation of historical conditions of the times can open a channel to understanding a poet. And this channel also works in the world of painting. In this regard, we should be reminded once more of the famous declaration by Heinrich Wölfflin (1864-1945): ● "Every artist finds certain preexisting 'optical' possibilities, to which he is bound.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Seeing as such has its own history, and uncovering these 'optical strata' has to be considered the most elementary task of art history." 2) ● Della Volpe, the Italian philosopher, and Wölfflin, the Swiss-born art historian, were contemporaries and offer the same viewpoint, as if they had been the same person. The former's historical conditions and the latter's optical possibilities both confine artists in a certain sphere, which is a way to view the world. More focus should be paid to the statement,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which means the way one sees the world is confined by the times in which one lives. This is a premise that needs to be respected whenever we consider the work of any artist. ● And now we encounter Kang Yo Bae (1952-), the most important artist of our times. The general recognition of Kang is the artist for Jeju and of the April 3 Uprising. We still see him as an activist artist who worked against disinformed historical perceptions and social irregularities throughout the 1980s and 1990s. In fact, the historical and social descriptions of the outside (secular) world were found in his paintings only until the 1980s, after which his work has focused on natural landscapes. The following quote helps us understand his artistic world: ● "(The artist is) known for his works that portray on canvas Jeju Island's historical experiences and natural beauty. He looks at the natural landscape not as a mere collection of objects, but as a subject that represents the emotional changes of another subject (the artist)." 3) ● In this article, the uncredited author explains that the world created by Kang depicts Jeju's historical experiences and natural beauty, and the objects of depiction are dealt with as subjects rather than as objects. We know this to be yijing (意境), which the dictionary defines as meanings or forms created when the author's subjective feelings and thoughts meet and combine with persons, things or events in an objective context. Kang's world of painting is characterized by yijing. For instance, Jeju's Hallasan Mountain and Junghyangseong in the Inner Geumgangsan area in Kang's paintings are not just beautiful mountains to be admired as objects. They have spiritual existences that nurture our mind and embrace us at the southern and northern end, respectively, of the Korean peninsula. We do not live simply to exist but in the belief that we live in the right way. This belief becomes truth and that truth makes our lives bearable. It also reveals itself through history. Hallasan and Geumgangsan are the eyes of that history, bolstering our belief when it is shaken and witnessing every person who has lived on the peninsula throughout history. Mountains predate mankind and outlive us. To the artist, they embody nature itself, as it is naturally. The two mountains as rendered by Kang are the underlying force that allows us to exist, the mirror that rejuvenates our minds and bodies, and the face to the earth upon which we stand. We belong to this earth and cannot live apart from it. Kang expresses the philosophy of the earth with the force of powerful strokes. He explains this power as arising out of the philosophy of the earth as follows: ● "The stroke and speed are critical in painting. Painting doesn't seem to go well for me if the lines are not drawn in a way that makes a "swoosh" sound. There should be speed and lines should be with vectors and dynamics. What's certain is that such lines can be drawn only after having observed, been in touch with, and lived amidst nature. Such strokes cannot come from manmade things like digital images and photographs. This makes a huge difference." 4) ● Mountains and landscapes painted by Kang correspond to nature as it is of itself. When separated from nature, man "exists" outside it (ex-sist). Existence of this sort is artificiality and culture. Western landscape paintings externalize objects and the artist is separated from the object. In contrast, Kang becomes one with the object of nature. His paintings are that of yijing which can be painted only after "having been in touch with and lived amidst nature." The origin of yijing is a correct historical understanding and infinite love of his native soil. On the boundary where nature (space), history (time) and the self (subject) integrate, strokes and speed soar together with vectors and dynamically. To point out again, the artist deals with nature "not as a mere collection of objects, but as a subject that represents the emotional changes of another subject."

2. Hyper-chaos and a solid foundation ● Let us give one more thought to Wölfflin's statement: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Seeing as such has its own history." This is reminiscent of "existential determination of thought (Seinsverbundenheit des Wissens)," the most important thesis of Hungarian-born sociologist Karl Manheim (1893-1947). This suggests that thought (art) cannot escape the foundation to which one's body belongs. To properly see the greatness of Kang Yo Bae, we need first understand the determination of space-time that rules over the artist. ● As we all know, Kang used to be an activist artist who was active in social issues. The boundary he has pursued throughout his life is a tight balance between substance and form. Substance refers to a way of viewing the world, namely, a worldview, while form refers to an adventure in a novel viewpoint no one else has shown. No artist runs a 100-meter sprint: Rather, they jump over hurdles as painting involves restrictions and obstacles. They must avoid every form existing in art history and present images never seen before. When this image becomes a new form, its creator is only then given the title of "artist." ● South Korean art circles in the 1980s, when Kang was still young, were largely divided into those that followed after modernist and realist painting styles. The problem was that the two wheels that drove the Korean art world originated from the West. Moreover, modernist painting advocates purism, excluding everything belonging to the outside world like problems people face and political issues. Even more, shapes have to be omitted or simplified. Purism amounts to exclusionism. It argues that painting should not feature sculptural elements and vice versa. Purism also alludes to essentialism. Theorists who tout the modernist style contend that the essence and philosophical truth of painting lies in flatness. ● This line of thought rejects realist painting for its obscuring of the essence of painting and blemishing its purity. On the other hand, realism applauds the oneness of painting and life. At the time, this was the most earnest philosophical request: That realists should dedicate themselves to painting to improve life and not turn their back on reality for the sake of purism. During this confusing time, Kang devoted himself to practicing the philosophy of realism. He based the first principle of his own philosophy on the fact that there is an abyss that cannot be crossed between the purist philosophy of modernist painting and the philosophy of life in realism. We can find that principle in his essay "Success and Failure of Art": ● "The artistic ideology upheld by "high-end" art is purism. Purity mostly has a positive ring to it in all aspects of life. In purist art, it denotes "autonomy of art," which is also good. This means that art should be artistic. Then what is artistic art? This signifies that the inherent mission of art resides in building a humane life, a meaningful life. Art does not involve looking away from real life and repeating meaningless acts. Autonomy of art refers to keeping the human quality of freedom. Further, art should not collude with anything in granting life the highest value. This requires believing in the value and power of art and that power not being repressed by forces that distort life." 5) ● Art that advocates purism and autonomy is art for the sake of art alone. Kang is wary of any art that does not enhance the value of life. He sees that only art that nurtures "humane and meaningful life" is genuine. Nevertheless, even when art nurtures a humane life, it is not always meaningful or great. At this point, we need to recall the great thesis of Kant: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 6) Modernist painting lacks the content of life while realism fails to accumulate concepts. Kang has ceaselessly striven to achieve an ever-lasting balance between the weight of life and concept, developing his landscape of a new form—an arena where power and speed surge together with vectors and dynamically. The shortcut to understanding the essence of Kang's paintings is to look into the source of power and speed. ● I think the art phenomenon in South Korea is what is left after devastation during extreme chaos—it is a scene of hyper-chaos. Almost every artist is oblivious to the essence and duty of art and wears a coat fashioned by Western society. This coat does not fit us, and more, we shrink under its weight. To the eyes of we Koreans, Hallasan is greater than Jungfrau and our tongues prefer gochujang (traditional red pepper paste) to chili sauce. This applies to painting, too: Korean DNA prefers paintings by Korean painters. At the same time, this preference is intrinsically inevitable and can therefore be more than individual tendency and gain universal recognition. This is where Kang's philosophy of art is rooted. Inner inevitability derives from none other than affection for and faith in people. Conversely, other artists place their roots in foreign soil—in other words, they borrow the worldview of others.7) But others' worldview is not ours. Seeing the world only through the eyes of others results in extreme chaos. Moreover, it hollows out affection for and faith in people, and reverence for nature. This is reason for despair. Concerned about this, Kang early on described his world in seven words (in Korean), encouraging his relatives and colleagues: ● "If you are warm-hearted and friendly, you will become a center of everywhere." 8) ● Kang's philosophy can be summarized as buwang (不忘: "never forgetting") and exhibits itself through wubujing (毋不敬: "never be in any moment without reverence"). The former is a philosophical view of time (history) while the latter pertains to reverence for every connection one makes here and now. When these two ideas are internalized, a state of equilibrium can be maintained in one's inscape. When these two ideas are practiced in society, the community, which includes oneself, becomes the center of society. This is the philosophy Kang has upheld all his life and the foundation upon which he practices his art. Surprisingly, the core of Kang's philosophy is as if spoken by the author of a passage from the "Zihan" chapter of the Analects: ● "The Master wanted to settle among the Nine Wild Tribes of the East. When someone said, "Perhaps it will be hard to tolerate their lack of refinement," the Master responded, "If a true gentleman were to settle among them, there would soon be no worries about lack of refinement."" 9) ● I believe Jeju to be among the "Nine Wild Tribes of the East" and a "true gentleman" to refer not to someone from a specific class of society but to those who internalize and practice buwang and wubujing. Kang's philosophy on life is expressed in all sorts of artistic themes. To him, painting is more than an aesthetic object: It is a vessel in which to place and display the spirit of his philosophy. As such, the artist provides another surprising statement: ● "If art is something like a gigantic structure built only upon the basis of the immense power of money, it will crumble down the moment the basis is gone. When it is like a tree that takes root and grows in the minds of people, it will not easily be killed and disappear." 10) ● "A gigantic structure built only upon the basis of the immense power of money" and "a tree that takes root and grows in the minds of people" together create a starkly-contrasting metaphor. The former relates to a world of hyper-chaos and the latter to the foundation of an ardent belief. When the time given in the former case is 100 years, the latter case makes up 10,000 years or an eternity. The reason Kang has sought so much after the beautiful boundary is to represent on canvas buwang for time (history) and wubujing as space (society). We can find the origin of this art in a poem from 3,000 years ago: "Gangtang (甘棠: Sweet Pear Tree)" featured in the Book of Songs: ● "O leafy tree of sweet pear! Don't clip or cut it down, for once our Duke lodged there. O leafy tree of sweet pear! Don't clip it or break a twig of it, for once our Duke rested there. O Leafy tree of sweet pear! Don't clip it or bend a twig of it, for once our Duke spoke there." 11) ● The duke in the poem is Shi, Duke Kang of Shao (?-?), a younger brother of King Wu (?-1043 B.C.), the founding king of Zhou. To the people, he is the target of everlasting remembrance (buwang) for he always treated them with reverence (wubujing) and truly cared for them as he governed. The shade of the sweet pear tree where he rested is naturally elevated to an object of buwang by later generations. The tree is not objectified: Instead it becomes something that induces changes in the minds of the people. This is exactly the same as Kang's attitude toward nature: ● "Baengnokdam, a crater lake that sits on top of Hallasan Mountain, visited at dawn on January 1st, looked grand with strong winds seemingly rising up from the deep water, making it difficult to keep the eyes open. Overwhelmed by that grandeur, all of us bowed deeply in the direction from where the winds were coming." 12)

3. The self is one with all people (天下一身論) ● Kang Yo Bae climbed Hallasan and saw the lake at its top in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on January 1st of an unknown year. The blast of wind rising up from the deep water is a phenomenon that cannot be explained scientifically or objectively. In fact, it is not a simple phenomenon: It is a mysterious communion with nature and a common experience for the entire group. Such communion is not given to just anyone: One who believes they exist separately from nature as subject and object is not privy to such an experience. It is received only by those who believe they are part of nature. This communion arises out of the belief that the self is one with Heaven and Earth (天地一身) and develops into a belief that the self is one with all people (天下一身). The belief in Heaven and Earth (the universe) finally transforms into an optimistic trust in man, or ren (仁). Kang pursues this ren, or benevolence, and inquires about and paints the true meaning of humanness. ● "The path to communication lies through the process of developing a positive view of man. Despite the fictional world of delivery and oppressive systems, one should discover, reveal, and share (with others) the upright aspects of life and humanity that occur vibrantly everywhere people live their lives. People who lead their lives in a healthy way are everywhere. Life is always about today. Man has the power to be benevolent. This is where humanness resides." 13) ● Art blooms in the perpetual process of trying to understand humanness. This is a way of thought conceived in East Asia. Avant-garde art is mostly characterized as defiant, coarse, suggestive, and splendid. East Asian art has a longer history of such unconventionality than Western art but has refrained from it for its distance from the true human character. The utmost cause in East Asian thought is reversion to nature. The epitome of this is the philosophy of Laozi (?-?). He said, "Man models himself on Earth, Earth on Heaven, Heaven on the Way (dao 道), and the Way on that which is naturally so." 14) Man should truly follow the laws of Earth as he cannot exist without Earth. Earth should follow the laws of Heaven as Heaven is its origin. Heaven should follow the Way, namely, the laws of the universe. And the universe should follow itself as it is because the law by which it operates is natural. In other words, man is Earth, Earth is Heaven, Heaven is the Way, and the Way is natural: Man, Earth, Heaven, and the Way are the same. Life should be natural and that is true freedom. This is the world to which Kang aspires. ● The perception that man and nature are originally one has been maintained in East Asia since ancient times.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nature (天人之際) is concretized as that between people (as represented by rituals, music, punishment, and governance (禮樂刑政), the four requirements to educate the people). Cultivation of man by nature (the universe) is referred to as ren (仁) or benevolence. The nature of all men is originally good and inherently benevolent. Accordingly, the self, others, and nature are connected as one through ren. In this regard, Chinese philosopher Cheng Hao (also known as Cheng Mingdao, 1032-1085) offered an explanation through the analog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limbs of our body and the universe: ● "Medical books describe numbness in the hands and feet as "unfeeling" (不仁 buren): This is the best possible explanation. According to ren (仁), Heaven and Earth and all things are regarded as one, so that there is nothing that does not relate to the self. As such, there is nothing one will not do for them. If they do not belong to the self, one does not care, just as when the hands and feet are unfeeling, the qi energy does not channel through them and they no longer belong to the self. All sages do a kindness to and save many people. (...) A student must first understand ren, which means becoming one with all things without discrimination." 15) ● The origin of Cheng's philosophy dates all the way back to Zhaijing,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by the Yellow Emperor or Huangdi (?-?), a legendary Chinese sovereign from ancient times. He taught, "Consider the topography (of nature) as one's body, the springs of water flowing through the earth as one's blood vessels, the earth as one's skin and flesh, and the plants and trees as one's hair." 16) This mindset treats Earth and Heaven, the self and others as one and has been passed on to this day for posterity. As one example, this teaching laid the foundation for the "primary knowledge" (liangzhi 良知) notion of Chinese philosopher Wang Yangming (1472-1528): ● "Man is the mind of Heaven and Earth. Heaven and Earth and all things are originally one body with me. Is there any hardship or suffering of the people that does not pain me? One who is ignorant of the pain one's body suffers is one unable to discern right and wrong." 17) ● The consciousness of Heaven and Earth that gives birth to man and all things (天地生物之心) is called ren (仁). In East Asian thought, the law by which the universe operates is ren. Ren is inherent also in our minds, where Heaven is hidden. Seeking this Heaven in the mind is the path of art Kang has long trod and the key to his life. One's body is not an independent phenomenon, separate in existence from nature, but a fantastic entity (大身) that moves in sync with nature, others, the past, and the future. ● The vigorously surging cloud and mist, featured in his painting On the Mountain, represent the spirit man must have. The fragrance invisibly rising from Late Plum Blossom denotes the mind of Heaven and Earth giving birth to and nurturing all things. The movement in Lone Bird reveals the truth of the world in a way it naturally is without discrimination. Plum Blossom in Snowstorm dramatizes beauty despite hardship and shows the way man should follow. Rosy Sky features the sky as the voice of Heaven speaking, rather than simply a beautiful space. Garden During Typhoon "Bavi" depicts a ravaged garden, symbolizing the entanglement of space-time and connection, also the cycle of birth and death. As such, everything Kang has painted features the consciousness of Heaven. This is essentially the same as what philosopher Gao Panlong (1562-1626) of the late Ming Dynasty said: ● "Nothing is more required of man than to understand Heaven, and to this end, ganying (感應) or correlative resonance, is a prerequisite. By Heaven, people nowadays only point up to the wide blue sky. In truth, from the nine layers of sky and the nine layers of earth, my skin, hair, bones and marrow to the entire universe,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Heaven. Therefore, Heaven never fails to know every good intention I have, and every evil intention I have cannot be hidden from it. Also, Heaven is not foolish and never fails to respond to the good and evil it sees. Ganying is liken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a shape and its shadow. When good is sensed, good is returned, and when evil is sensed, evil is returned. Why is it said that zigan ziying (自感自應) amounts to Heaven? Why is it said that Heaven always knows? Because zigan ziying is Heaven itself and is not separate from anything or any event. If one subject senses, and another responds, then they are two separate entities. Only as they are inseparable, there is no error (on the part of Heaven in every matter). Consequently, doing a good deed is doing good to oneself and doing evil is harming oneself. Hence the saying: "Fortune and misfortune come from no place other than the self. If one knows this, one cannot help but be serious when considering doing good or evil. Then evil will be purged and good become perfect. One who reaches this level is regarded as Heaven." 18)

4. Conclusion: Painting that understands Heaven ● Everything I sense and think about (自感) is immediately known to Heaven (自應). As one becomes very serious when considering doing good or evil, one's innate good will be revealed and evil purged. One who reaches this stage is Heaven itself (人乃天). This is a reinterpretation of a passage from the "Xici" commentary in the Book of Changes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by Confucius (551-479 B.C.): "'Yi (易)' is without thought, without action. It is static and doesn't move. It eventually gains access to the truth of the world by sensing. If not for the most divine thing on earth, how could anyone participate in such a process?" 19) For his part, Kang Yo Bae envisioned his own philosophy out of the long-standing history of East Asian thought and founded his art upon it. The depth of his thought is revealed in the following passage: ● "We must find our way to Heaven through nature or the mind of Heaven. The place where certain good things inherent in man are gathered must be Heaven and this resides deep in the human mind. Heaven is deep in all things and all men: This is where man must reach for. I believe all men, including artists, must strive for Heaven. The moment of arrival at this Heaven is when one can attain universality. One's mind can be put at ease and feel natural through introspection. (...) People are moved by a painting because they hear the melody of Heaven naturally within them upon seeing it. I regard painting highly in this respect. I dream of each and every man, who is one solitary individual in the universe, painting the patterns of the mind in a natural and restful way." 20) ● Legends handed down in villages are not simple stories. They imply evaluation of community histories, ways of viewing the world, and sentiments and adages of those who lived in the community in the past. Legends encourage development of an imaginary world during early childhood. This imaginary world does not fade away even when reality catches up over the years, and even manages to intervene in life's reality. This is because it influences the direction of our eyes in looking at the world and its situations. The horror story of the April 3 Uprising does not fit the beautiful scenery of Jeju. It must have left a great mental wound on Kang, whose nature is beautiful and sensitive and whose mind is sound. ● As explained above, the artist began by painting history and the reality of it. To him, painting is more than an art form: It is a window of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history, and mankind, and an assembling of what he has learned about the world. His world has transformed through an arduous journey. He has come to understand the voice of man, then that of Earth, and eventually that of Heaven. "Gaining access to the truth of the world by sensing (感而遂通)" must pertain to the voice of Heaven and Heaven must want "each and every man, who is one solitary individual in the universe, to paint the patterns of the mind in a natural and restful way." When viewing Kang's work in this light, we should be able to immediately arrive at the true character of the world as seen by the artist. His landscapes show our history as well as the mind of Heaven. We should be able to confirm in reality the truth we see in his paintings and share and contribute to that truth through our lives (人能弘道). This is the artist's philosophy and what he wishes to present in his works. ● Goethe sang: "River! (You) flow through the valley without ceasing. You talk to my silent story. (You are) whispering melodies." 21) The speaker in this poem is inspired by the sound of the river flowing and composes a melody full of meaning. Nature and the speaker soon move up to a level where they become one through music. Nearly every one of Kang's paintings integrates nature and the artist as one and embodies the meaning of space-time and connection, man and the Way. ■ Jinmyung Lee

* footnote1) Galvano Della Volpe, (trans.) Michael Caesar, Critique of Taste (London: New Left Books, 1979), p. 25.2) Heinrich Wölfflin, Principles of Art History: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Style in Early Modern Art (Los Angeles: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2015), p. 93.3) Entry on Kang Yo Bae, "Doopedia" (Doosan Encyclopedia, 2014, author unknown).4)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52.5) Kang Yo Bae, "Success and Failure of Art,"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p. 255-256.6) 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Wolff to Kant Vol. 6 (Burns & Oates: Wellwood, 1999), p. 247.7) Seen from my experience, such terms imported from France as nomad, rhizome, symbolic, eroticism, and speculative realism suit the Korean reality less often than they fail to do so.8)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66.9) "Zihan (子罕)," Analects (論語):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10)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286.11) "Gangtang (甘棠)," "Odes of Shao and the South (召南)" chapter, "Lessons from the States (國風)" section, Book of Songs (詩經):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12)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182.13) Ibid., p. 263.14) Chapter 25, Laozi (老子):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15) Cheng Hao (程顥), Surviving Works of the Two Cheng Brothers (二程遺書) Vol. 2, Part 1: "醫書言手足痿痺為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 以天地萬物為一體, 莫非己也. 認得為己, 何所不至? 若不有諸己, 自不與己相干. 如手足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學者須先識仁. 仁者, 渾然與物同體."16) Yellow Emperor (黃帝), "Secondary Method of Site Repairing (凡修宅次第法)," Huangdi Zhaijing (黃帝宅經) Vol. 1: "以形勢為身體, 以泉水為血脈, 以土地為皮肉, 以草木為毛髮."17) Wang Yangming (王陽明), "答聶文蔚," Complete Works of Wang Yangming (王陽明全集): "夫人者, 天地之心; 天地萬物, 本吾一體者也. 生民之困苦荼毒, 孰非疾痛之切於吾身者乎? 不知吾身之疾痛, 無是非之心者也."18 ) Gao Panlong (高攀龍), "知天說" section, Surviving Works of Master Gao (高子遺書) Vol. 3: "人莫要於知天, 知天, 則知感應之必然. 今人所謂天, 以為蒼蒼在上者云爾, 不知九天而上, 九地而下, 自吾之皮毛骨髓以及六合內外, 皆天也. 然則吾動一善念而天必知之, 動一不善念而天必知之, 而天又非屑屑焉, 知其善而報之善, 知其不善而報之不善也. 凡感應者, 如形影然, 一善感而善應隨之, 一不善感而不善應隨之, 自感自應也, 夫曰自感自應, 而何以謂之天? 何以謂天必知之也? 曰自感自應, 所以為天也. 所以為其物不貳也. 若曰有感之者, 又有應之者, 是貳之矣. 惟不貳, 所以不爽也. 然則人之為善, 乃自求福, 為不善, 乃自求禍, 故曰: "禍福無不自已求之." 知此, 則為善去惡之意必誠, 惡浄而善純, 人乃天矣."19 ) Part 1, "Xici (繫辭)," Book of Changes (周易): "易无思也, 无為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20 )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306.21) An den Mond (To the Moon), a poem by Goethe:     "Rausch, Fluss, das Tal entlang,     Ohne Rast und Ruh',     Rausch, flüstre meinem Sang     Melodien zu!"

Observation of the Heavenly Mechanism and a Vortex of Thought - 1. Resonance with the heavenly mechanism ● "Equality of Things" (Qiwulun 齊物論), the 2nd chapter of Chuang-tzu, features an allegory where the wind from Earth (dilai 地籟) comes together with the sound of the flute played by mankind (renlai 人籟), creating cosmic music (tianlai 天籟). This is one of the ancient views of nature and of the world and symbolizes a cycle where the flow of time and expansion of energy in the universe move in a whirlpool-like vortex. Winds rise, making different sounds, and each existence moves on its own to resonate with the heavenly mechanism (tianji 天機). ● Resonance with the heavenly mechanism, apparent in Kang Yo Bae's paintings since the early days, is closely related to the emotional environment of his family, who interpreted the world through a geomantic compass of information on the ways of the universe and man. On the foundation of his artistic process lies the thinking of an astronomer, who looks at the operation of the heavenly mechanism through the eye of the mind. The results of lengthy observation and contemplation are revealed as various temporalities on canvas. Kang carefully observes even the slightest changes occurring with the moon, the wind, clouds, and the sun over time, ponders on their mental imagery captured through the body's senses, and develops motifs of the memory extracted from actual scenery into an imaginary world. His world of art crosses between figurative and semi-abstract, reality and imagination, carrying out a rotary motion of vortex thinking. ● With his first solo show, Angle, in 1976, Kang's solo show in early autumn 2022 is his 26th. Entitled At First Sight, it ushers in the new season and reminds us of the restoration of a mind back to its innocent beginnings. The show presents a total of 30 works somewhat evenly divided into the three themes of an encounter between one and the universe, a dialogue between one and nature, and daily scenes to be viewed in the natural environment on Jeju Island. One thing that sets this show apart is that Kang, who has shown constant interest in temporality, presents a larger number of works where change is clear in terms of composition and in how the materials were used. For instance, the orange Lunar Eclipse (2022) is a painting of the shadow of the earth cast on the moon, when the sun, the earth, and the moon align in a straight line. The meeting of the moon and the earth, two entities in the dark, is simplified as three different layers of color to create the aesthetic effect of color field abstraction itself and to evoke the emotions. The scene of an eclipse suggests a communion of feelings at the first encounter between two entities, each moving in their own orbits, meeting each other at a timing that is unexpected, and beginning to permeate the world of the other. The gap between the black and the orange remains as a white blank to prepare for what will happen in the future with the mixing of yin and yang. ● The color field paintings in this show include In the Clouds (2021), which depicts the sky brightening after a gale has swept through; Morning Glow of Typhoon "Jangmi" (2021), representing the exceptionally burning red illuminance of the morning just before a typhoon hits; and Rosy Sky (2021), which is filled with the energy of a brightening sun. Together, they represent moments when the energies of Heaven circulate, with a feeling of motion in the paintings achieved through the juxtaposition of intense colors. Here the artist masterfully put to use the water soluble nature of acrylic paint. On the other hand, in paintings like First Month of Lunar Year (2022), White Sun (2022), and Flying in the Sky (2022), Kang is more relaxed in his strokes and conveys what he saw and felt about the sun, the moon, and the white clouds that he painted on canvas to the viewers to the viewer through the picture screen. In Flying in the Sky, which seems an example of Laozi's saying, "Great skillfulness seems clumsy," the white forms drift much more freely than the featherlike clouds in The Sky Is High (2017)Pl. 1. The air currents flash across as deftly as the auspicious patterns seen on the ceiling of an ancient Goguryeo tomb.

2. Boundaries as seen in landscape painting and frontal placing of objects ● Encounters with nature in Kang Yo Bae's paintings are depicted either as landscapes with rhythmic force (featuring the self-viewing nature existing on its own) or as small, simple, still life paintings (dialogues with an object). On the Mountain (2022) portrays the Baengnokdam crater on top of Hallasan Mountain from the air, and is an illusionary rendering of the actual place Kang reenacted from different scenes in his memory of having climbed to the top at least ten times. While Umburi - Baengnokdam (2010)Pl. 2, a mystical representation of the gigantic hole from a volcanic eruption, is shrouded in a mythical atmosphere, the same crater in On the Mountain looks vague and instead a vast scene unfurls and spreads out freely. In Mountain under the Land (2021) as well, the mass of a distant mountain set in a broad view and without the need to specify the location, is expressed with less defined brushstrokes. It seems that the artist did not objectify mountains in Jeju as historical or legendary locations with a strong sense of place, instead choosing to paint them as aesthetic subjects while experimenting with a different form of painting. ● In Strike Strike (2021) and Garden During Typhoon "Bavi" (2021), presented during the 21st Lee In Sung Art Prize Recipient Exhibition at the Daegu Art Museum in 2021, savage forces electrify the canvas. In Hongdo Ⅱ (2018), the red clouds that engulf Hongdo ("Red Island") emphasize both the sense of place and the sublimity of nature. Junghyangseong (2019) and Kuryongpok III (2019) are third renderings of the same motifs since his 1998 visit to Geumgangsan Mountain in North Korea. These demonstrate Kang's willingness to take on challenges even with his own paintings, recalling his memories of the mountain and painting different versions. His Junghyangseong takes after the composition shown in Jeong Seon's General View of Geumgangsan from 1734. ● Meanwhile, Plum Blossom in Snowstorm (2022), In the Snow (2022), Blossoming Pear Tree (2022), and other works—all from Kang's daily observation of trees near his atelier—feature objects in the center of the canvas to complete a work that is contemplative in nature, where the artist and the object, or the viewer and the object, face each other and engage in communication. Paintings which depict birds, flowers or fruit like Lone Bird (2019), A Bird (2019), To the White (2019), Two Flowers (2019), and Spring Sunshine (2022) are highlighted by an atmosphere of a modern literati painting with its blanks and composition. Objects are frontally placed and the scenes include bold omissions as seen in works by Chinese painter Bada Shanren (c. 1626 - 1705).

3. Color representations peculiar to the medium ● Besides some oil paintings, pen-and-ink sketches, and illustrations from the early stages of his career, Kang Yo Bae has mainly painted with acrylic. It seems that ink wash painting, dashed off with quick strokes, better suits an artist striving to render mental imagery in an abstract way. Despite this assumption, Kang prefers acrylic painting, which appears to be deeply rooted in his perspective on the creative process and personal tendency. On most days, Kang reads in the morning on a variety of fields, such as the humanities and natural sciences, and spends only three to four hours in painting, during which he creates quickly while fully engrossed in thought or feeling, making the necessary corrections later. Well-versed in various techniques to obtain the desired colors by adjusting water concentration in his paint, he paints with acrylic as if making an ink wash painting, using color representation and texture treatment on the surface peculiar to the medium that suits his tendencies. This is what makes his acrylic paintings unique. He also uses folded paper brushes, dried kudzu roots, brooms, and such as auxiliary tools to enhance the feel of the canvas and add variety to the otherwise monotony of the medium. ● The description of Kang Yo Bae as an artist who creates paintings using Western painting materials and adding Oriental painting elements does not fully explain his art. Terms like Oriental and Western painting, traditional literati painting and modern painting, abstract and semi-abstract, figurative and non-figurative are also insufficient. ● Kang's color field painting represents the changes in cosmic energy flows with the transition of fields of color and different impressions of it to emphasize a sense of motion. It allows us to regard Kang's practice not only as an outcome of Minjung Art's lyrical sentiments or the local characteristics of Jeju regional art, which is the established view confining him, but also as another diachronic trend in contemporary art. His challenging practice in painting moves fluidly along the circuits of vortex thinking. The picture screen invalidates the genre distinction between Oriental and Western paintings and reveals that the act of "painting"—the most ancient and primal method of expression, is still valid in the era of the 2020s. ● What will be caught "at first sight" and by an "innocent mind from the beginning"? I hear the sound of the wind. ■ Jeongbok Kim

 

Vol.20220826a |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현실과 발언’ 창립 40주년을 맞아 노년의 민중 화가들이 다시 뭉쳐 세상에 말 걸고 있다.

 

암울한 유신시절이었던 80년도 창립된 ‘현실과 발언’은

81년 ‘도시와 시각’전으로 서울을 비롯한 광주와 대구에서 순회전을 가진바 있다.

이듬해에는 ‘덕수미술관’에서 ‘행복의 모습’전을 열었는데,

‘그림과 말’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 때인 82년이었다.

10년 동안 활동하다 90년 해체되었지만, 작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화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 토론하고 연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미술(美術)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 케테 콜비츠의 말처럼,

미술에서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다.

자유롭게 발언하는 소통의 기능을 통해 삶의 맥락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당대의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미술로 표현하며 시대와 소통했다.

 

당시 회지 제호였던 '그림과 말'을 그대로 내 건

'그림과 말 2020'展이 지난 1일부터 삼청로 ‘학고재’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 판화, 설치, 사진 등 106점을 내건 전시에는

작가들의 청년기 작품과 최근작을 비교할 수도 있는데,

다들 젊은 시절의 열기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용태, 최민씨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윤범모씨가 빠진

강요배,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박불똥, 박재동, 성완경, 손장섭, 신경호,

심정수, 안규철, 이태호, 임옥상, 정동석, 주재환씨 등 열여섯 명이 참여했다.

 

‘코로나19’ 광풍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피하기에 개막식엔 참석 못하고,

지난 7일에야 전시장에 들릴 수 있었다.

 

본관 중앙에는 심정수씨의 조각 ‘사슬을 끊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억압받는 청년의 초상으로,

사슬과 장벽을 끊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다른 전시와는 달리 전시 공간 한 곳에 ‘진행형 프로젝트 룸’을 설치하여

작가들이 작업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라.

 

그 날은 전시작가인 김건희, 노원희, 박불똥, 박재동씨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취재 나온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와 사진가 양시영씨도 만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룸은 전시가 진행되는 한 달 내내 작가들이 오가며

작품 활동을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공간이다.

 

작가들이 동시다발로 프로젝트 룸에서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데,

나온 작가가 자기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앞사람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고,

재해석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임옥상씨는 전시 기간 동안 "내달려라, 그림!"이라는 주제의 관객 참여 형 작업을 펼친다.

즐겨 다루는 흙 위에 드로잉을 하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겨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관람하는 것 외에도 참여 작가를 여럿 만날 수 있어 좋다.

작업을 지켜보거나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간 날은 박재동화백이 관람객의 초상화를 그리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원희 작가는 관람객에게 바느질 작업을 지도했다.

그 날은 먹을 복이 있는지, 한 쪽에서 김건희, 박불똥씨가 피자 파티를 준비했더라.

 

전시장을 둘러보니, 현실사회를 향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으나,

민주화 영향인지 표현 방식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진보 성향인 민중미술가들의 이념적, 정치적 색채가 잘 드러났다.

 

신경호씨의 '꽃불(화염병)-역천(逆天)‘과

5월18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작품 '넋이라도 있고 없고-초혼'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빨갱이의 상징 깃발 같다'며 압류 당하여 20여년 만에 돌려받은 작품이었다.

 

1980년 군사정권의 공포를 그 당시 나온 ‘쭈쭈바’의 광고 문구로 풍자한

‘얼얼덜덜’을 선보인 김건희씨는 지난해 그린 촛대바위 연작을 내 걸었다.

 

김정헌씨는 폐공장을 배경으로 버티고 선 큰 나무를 그렸다.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란 제목을 붙였다.

1982년 작품은 미래를 위해 달리는 건강한 노인의 모습을 담은 '행복을 찾아서'가 걸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씨는 '바이러스' 연작으로 방송인 김어준씨를 그리기도 했는데,

검찰, 언론개혁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모든 그림은 말을 한다. 속삭임으로든 침묵으로든. 그러나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의 아픔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범죄였다.”

 

민정기씨의 ‘1939’에는 절정의 색채를 뽐내는 인왕산에

‘천황폐하 만세 조선총독부교무국’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캔버스에 음각으로 표현된 문자의 주변은 상처처럼 불그스름하게 표현했다.

일제 만행의 아픔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신관 입구에 들어서면 이름 없이 목숨을 잃는 근로자를 기리는

이태호씨의 '무명 사망 근로자를 위한 비'를 만날 수 있다.

작품 중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에게 수여한

반어적 의미를 담은 '상패' 연작과 짱돌도 전시되어 있다.

 

임옥상씨는 흙에 귀의 한 듯하다.

대지를 닮은 배경 위에 먹선을 힘차게 그은 ‘흙’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구작 '신문-땅굴'은 제3땅굴을 발견하여 보도한 신문을 재료로 만들었다.

신문 콜라주 위에 성에 낀 듯 뿌연 막을 씌워, 국민의 눈을 가리려 한 군부독재의 만행을 비꼬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 4·3항쟁을 알리는 역사화 연작을 그려온 강요배씨는 

가을 제주 오름에 핀 물매화와 들꽃의 자줏빛을 표현한 ‘노야(老野)’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역사 이념논쟁을 비판한 박불똥씨, 신목(神木)과 자연 풍경을 추상화한 손장섭씨,

휴지와 폐비닐 등을 사진으로 담는 성완경씨, 빈 액자를 내 건 주재환씨 등 볼만한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전시기간 동안 부대행사도 열린다.

오는 11일은 이태호씨 진행으로 '1980의 발언과 2020의 발언' 1차 토론회가 열린다.

25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2차 토론회가 열린다.

 

이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메멘토, 동백”도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6월 01일 (금) 00:25:11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일 ‘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월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상(象)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작품 앞에 선 화가 강요배


전시되고 있는 “상(象)을 찾아서”는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보여 줄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부 ‘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부 ‘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강요배,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그림의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강요배,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이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강요배,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며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삽화는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요배,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강요배,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자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단다.


이번에 전시한 ‘상(象)을 찾아서’는 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象'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다.

'상(象)’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강요배,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강요배,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 우레비, 2017 Acrylic on canvas 259


강요배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는 '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강요배,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쌘 제주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강요배,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그런데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뒤풀이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보는 마음이 찡했다.


6월17일까지 학고재(02-720-1524-6)에서 열리는 “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4,3항쟁을 그린 2부작 “메멘토, 동백”은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열린다.










 

622일부터 715일 까지 메멘토, 동백으로 이어져...



작가 강요배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1부 '우레비'를 관람하고 있다. 2017 Acrylic on canvas 259


 

전시되고 있는 ()을 찾아서622일부터 715일까지 보여 주게 될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 한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1부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2부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은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요나라 요), (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1부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현실과 발언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는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한겨레신문 삽화로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2부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4,3을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2부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제주의 자연을 찾아 나섰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1부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이번에 전시한 ()을 찾아서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 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

'()’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2부 토벌대의 '포로' 1992 Acrylic on canvas 97X162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2부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2부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씨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1부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뒤풀이가 있은 그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이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자리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마음이 찡했다.





그 날 참석한 분으로는 원로 손장섭,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신학철, 유홍준, 김정헌, 박재동, 임옥상, 민정기, 황의선,

우찬규, 윤범모, 장경호, 조경숙, 김환영, 허상수, 박홍순, 김영중, 김태서, 박 건, 박은태, 박불똥, 안창홍, 김준권, 최석태,

김종길, 이종구, 정동석, 이광군, 김정대, 성기준, 이지하, 마기철, 노형석씨 등이다.



    

 

617일까지 열리는 ()을 찾아서에 이어지는

4,3항쟁을 그린 메멘토, 동백오는 622일부터 715일 까지 열리니 많은 관람 바란다.

학고재(02-720-1524-6)

 

사진, / 조문호














































































































 

 

 

 


1부. 상(象)을 찾아서 Ⅰ. Just, Image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2018_0525 ▶ 2018_0617 / 월요일 휴관




강요배_수직 · 수평면 풍경 Vertical · Horizontal Scene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1.7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219g | 강요배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52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마음을 파고든 심상(心象), 추상(抽象)으로 꺼내다 ● 강요배의 제주 공간은 여유롭다. 새로 지은 작업실 귀덕화사(歸德畵舍)는 높고 널찍하다. 다듬지 않은 앞뜰에는 지천의 수선화와 홍매가 지고, 붉은 동백과 귀한 흰 동백꽃이 가만가만 떨어져 봄 숨을 쉰다. 운치로 가득 넘친다. 지난 4월 초가 그랬다. ● 올해 제주 4월은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촛불정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4·3항쟁 70주년 기념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제주도립미술관에 들르니 4·3항쟁 70주년 특별전으로 한중일 화가들의 『포스트 트라우마』 전시가 한창이었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강요배의 『불인(不仁)』(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기획전의 백미였다. 지난 30년간 강요배가 그려온 '제주 4·3항쟁 연작'의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새로 작업실을 짓고 그린 작품으로, 500호 캔버스 4장을 붙인 333cm×788cm 크기의 대작이다. 강요배의 역작으로 꼽을 만하다. 항쟁 후기 1949년 1월 17일 제주 북동쪽 조천 북촌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현장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마을 전체가 모두 한날 제사를 지낸다는 이곳에는 현재 애기무덤을 포함해 20여 기의 무덤이 남아 있고,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림 제목은 '하늘과 땅 사이에 어진 일이 없다'라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에서 따왔다고 한다.(老子, 『道德經』) ● 화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1월의 팽나무 잔가지들이 세찬 바람을 타고, 마른 풀이 엉킨 제주의 풍경이 전개된다. 언덕에는 학살이 지나간 후 스러져가는 불꽃들과 쥐색 연기가 인다. 타는 풀내음만이 붓 너울에 묻어나, 그때의 상흔을 처연하게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엔 죽인 자도 죽은 자도, 인간은 없다. 언뜻 보면 학살의 현장이라기보다, 그냥 회갈색조 바탕에 눈보라 이는 겨울 풍경화이다. 종이를 접어 물감 묻혀 쓴 강요배 특유의 선묘들만이 화면 구석구석 이리저리 성글게 흩날리며 여운을 풍긴다. 아픈 역사의 대지를 이렇게 녹여냈다.



강요배_수평선 Horiz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8


너울대는 종이 붓의 제주 진경화(眞景畵) ● 강요배는 일반적인 붓보다 빗자루, 말린 칡뿌리, 종이를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고향 제주에 내려와 제주의 자연을 그리면서, 투박하고 성근 제주의 땅과 돌과 풀, 나무에 어울리는 도구를 나름 개발한 것이다. 1994년 『제주의 자연』 전(학고재 갤러리) 뒤부터 20년 이상 종이 붓을 줄곧 써왔다. ● 켄버스 옆에는 몇 상자씩 종이 붓이 쌓여 있다. 종이 붓은 대롱도 없고 털도 없다. 종이 붓의 선과 터치는 손이 가는 대로 잘 따라오지 않을 법하다. 어떨 때는 종이 붓과 손이 따로 놀거나, 의도하지 않은 자국이 종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흐물흐물 거리기 십상일 터인데, 강요배의 캔버스에는 종이 끝을 스친 물감이 빠르게 이미지를 형성한다. 때론 선들이 거칠게 서걱대거나, 춤추듯 쉭쉭 하며 신명이 넘쳐 있다.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 붓 터치들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흥에 겨워 현란하다. 완연히 강요배식 종이 붓 화법을 창출한 셈이다. 2016~2018년에 그린 이번 전시의 30여 점은 종이 붓 씀씀이가 최고조에 이른 듯하다. ● 「항산(恒山)」은 한라산 정상의 설경을 500호에 담은 대작이다. 귀덕 작업실 마당에서 동쪽에 솟은 모습이다. 반은 자색 그늘의 설산이고, 반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힐긋힐긋 드러나 있다. 풍경을 덮은 종이 붓 자국들은 이제 달인의 경지이다. 옆으로 흐르면서도 상하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리듬을 타 있다. 손길을 따른 우연의 색선들이 필연으로 그렇게 붓 길을 만들었다. ●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우뢰비(雷雨)」, 큰 파고의 「보라 보라 보라」, 바닷가 개펄의 「개」, 해변 벼랑에 몰아치는 「치솟음」이나 「물부서짐(碎水)」, 구멍 바위로 불어 닥친 「풍혈(風穴)」, 마을 신목인 「풍목(風木)」, 이번 겨울의 「폭풍설」, 제주 백사장의 푸른 바다 「수평선」, 초록바다에 뜬 달 「수월(水月)」, 앞마당 홍매의 「춘색(春色)」 등도 눈길을 끈다. 역시 종이 붓질의 득의작(得意作)들이다. ● 이들은 어느 특정 지역이나 공간을 사생하기보다 머리에 선명하게 남은 이미지로 재구성했으니 엄밀하게는 관념화인 셈이다. 더욱이 「우뢰비(雷雨)」는 주역의 괘상(卦象) '해(解)'로, 「보라 보라 보라」는 '환(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은 강요배가 평생 눈에 익히며 가슴 깊이 파고든 '심상(心象)'이자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이다. 그런 측면에서 관념화가 아닌, 분명 제주를 기억한 진경화(眞景畵)라 할만하다. ● 짙은 구름 사이 노을빛 쏟아지는 「풍광(風光)」, 저녁노을의 「파란 구름」, 겨울 동트는 「동동(冬東)」, 서리 내리는 계절 「상강(霜降)」의 노을 하늘, 가을의 높은 하늘 「천고(天高)」 등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하늘 그림도 마찬가지 진경이다. 「풍광(風光)」에 표현된 짙은 구름 틈새는 하늘을 나는 봉황새답다. 붓질은 날갯짓을 따라 스피디하고, 찰나의 노을빛 연노랑색은 찬연하다. 「동동(冬東)」의 새벽하늘은 날개를 편 용오름 같다. 미끈한 표면의 「천고(天高)」에 흐르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되는 모양새이다. 필자와 강요배는 학고재 후원으로 1998년 8월 평양지역과 금강산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강요배는 당시 확인한 고분벽화의 구름무늬가 그냥 상상한 도안이 아니라, 관찰한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抽象)해낸 결과물임을 재확인했다며 즐거워했다. ● 초록빛 「흑산도」는 사생화의 맛이 물씬해 좋다. 흑산도의 전형적인 암반의 벼랑 풍광이 아니라, 능선을 오르다 굽어본 숲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그림의 능선 너머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한 정약전의 유배지였다. 화면 가득 채워 포착한 시선이 강요배 답기도 하고, 새로운 구도로 다가온다. 여행이 준 선물이다. 

 


강요배_치솟음 Upri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94cm_2017


정겨운 일상과 귀덕 친구들 ● 강요배는 요즈음 사생에 잘 나서지 않는다. 대신 작업실이나 주변에 찾아드는 자연의 벗들을 일상과 함께 즐겨 그린다. 삶 가까이에서 만나는, 소소하고 정겨운 그림들을 이번 전시에 여러 점 선보인다. 화실을 오가는 고양이, 왜가리, 까마귀 등과 뜰에 피고 지는 꽃과 나무 등의 친구들 상(象)은 또 다른 추상(抽象)이다. 눈에 띈 사물을 마음에 품었다가 추상화해낸 그림이다. ● 빨간 열매가 달린 먼나무에 수돗가에 쌓인 눈 그림 「수직·수평면 풍경」, 푸른 그림자 드리운 나목의 눈 밟기 「답설(踏雪)」, 겨울 하늘에 매달린 붉은 감 「동시(冬柿)」, 눈밭을 차오르는 왜가리 「으악새」, 잠시 개울가에 둥지를 튼 「한조(寒鳥)Ⅰ」 「한조(寒鳥)Ⅱ」, 흰 눈밭의 까마귀 떼 「설오(雪烏)」 등은 겨울 향기가 가득하다. 올겨울 유난스레 눈이 많았던 설경 속 이미지를 놓치지 않은 강요배의 눈썰미와 따스한 감성을 엿보게 한다. ● 「답설(踏雪)」의 옥색 푸른 그림자는 순간을 포착한 전형적인 인상주의풍이다. 단숨에 묘사한 「설오(雪烏)」의 까마귀들 동세는 흰 여백과 더불어 마치 수묵으로 그린 선화(禪畵)다우며, 강요배 추상론의 형상미에 근사하다. 특히 「한조(寒鳥)Ⅰ」 「한조(寒鳥)Ⅱ」의 웅크린 왜가리는 자세 그대로 강요배의 자화상일 법하다. ● 절친이 될 뻔한 검정고양이 「오지 않는 길양이」와 노란 귤 사이 검정고양이의 「봄잠」 그림은 맑은 화면에 봄기운이 나른하며 정겹다. 역시 선화(禪畵)의 맛을 풍긴다. 「백일홍」 「흰모란」 「춘색(春色)」의 홍매 등에 구사된 자연의 색깔이나 대상 색 면의 질감에는 꽃내음이 묻어난다. 「두부, 오이」는 비릿하며 단내 상큼하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갖고 싶은 그림이다. 즐기는 술안주를 소재로 삼아서인지, 이 소품 두부와 오이 정물은 강파른 현실에 맑은 치유의 향기로 다가온다. ● 이처럼 강요배는 귀덕 생활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상(象)을 찾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읽는다. 강요배의 성정性情이 잘 드러난 그림들이다.민중미술에서 회화의 본질로 다가서 ● 최근 캔버스에 쏟은 강요배의 사유와 몸짓은 강요배 회화의 속성이 그렇듯이 프랑스에서 발전해 세계화된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기반으로 삼는다. 강요배의 요즈음은 일본을 통해 인상주의 배운지 100여년 만이다. 고희동에 이어 김관호가 1916년 두 여인의 해질녘 목욕장면을 담은 대동강변 「석모(夕暮)」(동경미술학교 졸업작품이자 일본공모전 문부성미술전람회 특선작)를 기준으로 볼 때 그러하다. 이후 오지호와 김주경, 도상봉, 이대원 등으로 내려오며 우리 땅의 사계 경치과 풍물을 통해,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일구었다. ● 강요배는 빛과 색의 회화성뿐만 아니라 땅의 역사와 자연의 형질, 추상의 길까지 선배들보다 한발 진보해 있다. 1980년대 민중작가로, 1990년대 제주4·3항쟁 연작을 완성해낸 화가로, 독서와 사색을 통해 강요배는 진정한 인상주의적 자기 기풍을 창출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회화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생각한다. ● 강요배의 종이 붓 그림은 유럽 인상주의 회화를 완성한 거장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의 1910~1920년대 「수련」 연작을 떠오르게 한다. 화면에 가득 찬, 분방하게 튀는 붓질 선묘가 특히 그러하다. 「불인(不仁)」 「항산(恒山)」 「우뢰비(雷雨)」 「보라 보라 보라」 등은 대작의 위용이나 감명에서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서 실견했던 대형 「수련」 연작에 못지않다. 모네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 눈을 떴을 때 받은 빛의 찬연함을 상상하며, 1890년대 이후 「건초더미(wheatstack)」나 「수련(nympheas)」 같은 연작들에 몰두했다. 이들은 결국 현대회화에서 추상(abstract) 표현의 원조로 재평가 받는다. ● 강요배의 화론은 내면에 들어온 심상(心象), 주역으로 해득하려는 괘상(卦象), 내 생각을 남과 공감하고 공유하며 공동체의 추상(抽象)을 추구한다. 이렇게 동양예술론에 근사하며, 생애 첫 빛을 기억해내려던 모네보다 차분하다. 캔버스 전면에 풀어낸 종이 붓의 흔적들도 서양 마네의 뻐신 붓질보다 한층 유연하다.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이다. 단연코 강요배 회화를 한국화라 할만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능란해진 강요배의 종이 붓은 이제 그를 떠나지 않았나 싶다. 도가의 무위(無爲)나 불교의 무상(無相)의 경지를 찾아선 듯하다. 「우뢰비(雷雨)」 같은 작품의 빗물 표현은 민요나 산조의 허튼 가락처럼 산란하다. 자연스레 일렁이는 강요배의 종이 붓 숨결은 퍼지 논리(fuzzy logic)의 불규칙한 정형성과 유사하다. 추상표현주의 화풍의 올 오버 페인팅(All-over-painting)과도 닮은꼴이다.


강요배_파란 구름 Blue Clou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3cm_2017

 

 

절정기를 맞은 상(), 추상(抽象)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을 찾아서'이다. 여기서 상은 '코끼리 상'이다.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 시절의 상형문자는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이다. 뼈의 외물을 사람마다 다르게 그리는 데서 상상想像(想象)이라는 단어가 파생했다고 한다.(韓非子, 解老編) '형상(形象)'에서 ''은 눈에 보이는 것(Form), 상은 마음에 남은 것(Image)을 말한다. 또 강요배가 최근 천착했던 주역(周易)64괘도 하늘의 여러 징조(徵兆)들을 상()으로 파악한 것이라 한다. 이처럼 상()은 뇌리에 남은 마음의 이미지이자 하늘이 펼치는 조짐(兆朕)의 흔적이니, 강요배 회화에 딱 맞는 아젠다(Agenda)이다. 이번 작가의 글 "사물을 보는 법"에 그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강요배는 '나만의 시선 안에 있고, 심적 여과 과정을 거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되살아난' 형상에서 찾는 '강렬한 요체' 또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명료함''추상(抽象)'이라 한다. 현대미술 사조에 대입한다면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도 그 범주에 들겠지만, 강요배는 '추상(抽象)'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묵죽도나 사군자 그림을 추상화의 한 형식으로 본다. 맞다. 우리 옛 화가들은 거의 사생보다 기억으로 외워서 그렸다. 동양화론에서는 이를 '마음에서 쏟아내 그리다', '사의(寫意)'라고 했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蘇東坡)'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가슴에 대나무를 길러야 한다''흉중성죽(胸中成竹)'의 사의론을 폈다.(蘇軾, 篔簹谷偃竹記) 중국 근대회화의 큰 스승인 제백석(齊白石)'삼라만상이 머리에 들어 있는 것 같다'라고 제자들이 술회한다. 단출한 구성과 형상의 사의 그림 문인화는 물론이려니와, 한국미술사의 거장 겸재 정선(謙齋 鄭敾)도 주로 마음에 담은 실경이나 금강산 유람을 추억하며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 최근 강요배는 절정기를 맞은 듯하다.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 2015) 제주에서 가진 회고전 시간 속을 부는 바람(제주도립미술관, 2016)에 이어 이번 학고재 갤러리의 ()을 찾아서전까지, 계속해 새로이 대작들을 선보여 왔다. 이들은 모두 강요배의 수행과정에서 인생과 사유와 회화가 통합의 길에 들어섰음을 일러준다. '몸 안의 천()과 마음',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뽑은 '추상(抽象)'과 정수(精髓)'()'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아래는 작년 '해석된 풍경'이라는 기획전 도록에 실린 강요배의 인터뷰이다. "...자연물은 몸 밖에 있고, 천은 몸 안에 있습니다. 장자도 하늘은 마음속에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자연을 통과해서 하늘을 찾아가야 합니다. 천심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천의 곡조를 듣는다는 거예요...저는 회화를 통해...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는 것을 꿈꿉니다." "...50대 이후15년 동안 저는 내면에 있는 천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천의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그림에서 자연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의 문이랄까..."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은 오인되어 왔습니다. 라틴어를 봤더니 abstract에는 떨어져서 끌어낸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무도 그렇게 추상화하는 겁니다..., 에센스. 이건 효율성이에요. 향은 정수에 닿아 있습니다...이것은 많은 것을 커버하고, 모든 갈등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마술적이에요." (김지연, "회화, 을 만나는 과정" 강요배 인터뷰, 해석된 풍경, 성곡미술관, 2017.)

 

강요배가 쏟아낼 향내 그림들 이번 전시작품들은 강요배가 마음으로 파고드는 심상(心象)에서 가슴으로 보듬어 단순해진 추상(抽象)에 몰입해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심 없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무관심성', 그리고 주관적 미감정이 객관화되는 주관적 필연과 보편, 곧 모든 이들에게 '공통감각'이 되는 취미판단 같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미학 개념을 소화한 듯하다. 이번 만남에서 강요배는 주역보다 '무관심성'이나 '공통감각'의 칸트 얘기를 유난히 입에 올렸다. 그러면서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이 남들도 공감하고, 모든 이가 그렇게 부담 없이 그림 그린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지금 강요배의 삶 풍경이 이번 그림들처럼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 강요배가 앞으로 얼마만큼 쏟아낼 향내 나는 그림들을, 부러워하며 한밤중 별무리 가득한 귀덕화사(歸德畵舍)를 나왔다. 이태호

    

강요배_항산 恒山 The Eternal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333.5cm_2017



Vol.20180525a |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삼청동 총리공관 안가에서 한 방 먹고 졸도한 후, 이인철, 박 건, 장경호 잔당에 납치되어 ’조선인민공화국‘ 안가에 실려 갔다.
그 곳에는 이중섭상 받은 강요배 내외를 비롯하여 주재환, 손장섭, 최석태, 박홍순, 이종률 등 빨지산 끼리 모여 술에 취해 흥얼대고 있었다.


소주 고문실에서 생맥주 고문실로 옮긴 것 까지는 좋았는데,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강요배 옆으로 손장섭 지도자 동지께서 파고든 게 발단 되었다. 나는 박홍순 고문관에게 당하는 사이라 시선을 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성 두발이 터진 것이다.

급작스러운 사태라 미처 대응 사격할 틈도 없었는데, 손장섭 동지께서 쏜 것이다. 키만 컸지 비실비실한 강요배 뼘에다 왕복으로 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총을 쏜 동지의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총 맞은 강요배의 찌그러진 표정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옆구리를 맞대고 앉았던 부인 표정을 보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어 벌어진 지도자 동지의 다둑거림으로 무마되어, 다시 술 고문이 재개되었지만, 총질 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 다음부터 나름대로 사태를 파악하느라, 고문을 당해도 취하지를 않았다.


“왜 쏘았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 전시된 강요배 작품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후배의 더 자랑스러운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아마 성에 차지 않았나싶다. 이제 강요배가 분발하여 더 좋은 작품 그려 입성할 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되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난 왜 저토록 뜨겁게 아껴주는 선배가 없을까?”



사진, 글 / 조문호




























‘용태형’ 추모식장에서 밤새도록 퍼 마신 술자리는 다음 날 백제 화장터 까지 이어졌다.

문화사가 유홍준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강요배, 류연복, 박흥순, 이인철, 이강군, 장경호씨 등 여러 명이 어울려 땅바닥에 술상을 차린 것 까지는 좋으나 제주에서 올라온 강요배씨는 술이 취해 땅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하였다. 안쓰럽게 지켜보던 장경호씨가 초코렛 한 조각을 전해주자 그걸 먹고 벌떡 일어나서는 힘자랑에 나선 것이다. 옆에 있던 가로등을 뽑겠다고 설치다 가로등이 꼼짝달싹 않으니 이젠 산비탈에 올라가 큰 소나무를 뽑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중국 심양에 사는 이강군씨가 걱정스러워 데려오긴 했으나,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천하의 강장사께서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까짓 가로등 쯤이야 간단히 뽑았겠지.
그러나 술 취한게 천만다행이야. 

만약 가로등이 뽑혔다면 공공시설 파괴로 경찰서에 끌려 갈 뻔 했잖아.


 

 

 





인사동에서 노제를 마친 '용태형' 시신은 백제 화장터로 옮겨져,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인상무상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용태형' 부디 극락왕생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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