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을 유달리 좋아했던 사업가 강선화씨가

지난 28일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부고를 접했습니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상주 : 김진규(아들)

빈소 : 서울성모장례식장23호실

발인 : 2021년 12월30일

 

지난 날을 추억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아래는 인사동에서 찍은 생전의 모습과

‘인사동이야기’ 사진집에 게재한 강선화씨 글입니다.

 

 

"인사동에서 만난 두 사람"

 

인사동은 친정집 같은 포근함이 있다. 숱한 세월 드나들며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화가 박광호씨와 사진작가 조문호씨를 꼽을 수 있다. 애잔하고 즐거운 두 사람의 상반된 기억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박광호씨의 그림과 그의 삶은 너무 애잔하다. 전람회장에서 만난 그의 삶도 기구하지만 벽에 걸린 그림들이 마음을 적셨다. 생선뼈만 그려진 그의 그림을 구입했는데, 볼 때마다 애잔한 감상에 빠져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조문호씨는 인사동 ‘풍류사랑’에서 소설가 배평모씨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몸 바쳐 최선을 다하겠다는 충성서약 같은 첫 인사로 어리둥절하게 하더니, 갑자기 술상 밑을 기어 내 앞으로 나와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개구쟁이처럼 좌중을 웃기는 그의 모습이 너무 신비스러웠다. 그의 절창 ‘봄날은 간다’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사람의 감정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한번은 ‘천포문학회’ 모임을 영월에서 가진 적이 있다. 시 낭송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결정판은 아침에 찍은 기념촬영이었다. 참석한 삼십 여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뜰 앞으로 모였는데, 대뜸 조문호씨가 “무슨 졸업사진 찍냐?”며 바지 지프를 내려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눈 깜짝할 순간에 모든 상황은 끝났다. 그 많은 사람의 표정이 천태만상인데, 내 생애 찍은 기념사진으로는 최고의 걸작이었다.

 

글 / 강선화

 




지난 17일은 인사동지킴이로 불리는 공윤희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예전 같으면 핸드폰을 꺼두어 대부분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나,
요즘은 너무 덥고 힘들어, 도망갈 핑계부터 찾는다.
인간이 어찌 이리 간사한지 모르겠다.






인사동 큰 길로 들어가다 뜻밖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화가 장경호씨와 민예총 사무총장 배인석씨를 만났는데,
장경호씨는 마치 죽은 여편네 돌아 온 듯 반겼다.
20여일 전 ‘유목민’에서 얼핏 보았지만, 
오월 ‘노모현 추모제’ 때 보고 못 만났으니, 두 달 가까이 되었다.






‘유목민’에서 보자며 헤어졌는데, 공윤희씨가 먼저 와 있었다.
공윤희씨는 맥주, 난 소주를 시켰는데, 하소연 할게 많은 것 같았다.
아우처럼 도왔던 후배의 배신감에 속이 상한 모양인데, "형이 참아야지 어쩌겠냐"고 했다.
나 역시 동자동에서 받은 배신감과 무례에 마음을 다쳤으나,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참고 다독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만을 잘 털어놓지 않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하소연 들으며 홀짝 홀짝 마신 술이 정량을 두 배나 초과해 버렸다.
단 둘이 앉아 대작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이렇게 많이 마신 적은 좀처럼 없었다.
그동안 술이 너무 취하면 사고를 쳐, 철저하게 조절해 왔기 때문이다.
그 무렵 임경일씨와 방인철, 김대웅, 강선화씨가 나타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강선화씨 모습에 그만 마음이 동했다.






환갑이 다된 할머니더러 강양이라 부르며 주접을 떨어댔다.
내 딴엔 젊은 여인으로 보인다는 알랑방구였으나,

듣는 입장에서는 다방 종업원 부르는 것처럼 들렸으니,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맞아죽지 않고 살아 남은 게 용하다. 
대개 앞에서는 웃어넘기지만, 돌아서서는 개망나니 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십 오년 전,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고부터 술도 절제하고, 오버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잡놈으로 여겨 온, 오래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적인 밝힘증이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껏 마시거나 노골적인 처신은 집에서만 하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떤이는 사람이 바뀌었다며,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술이 많이 취하면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최고의 희열인 성을 왜 터부시하냐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추하게 생각하고, 욕으로만 여기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냐?

물론 불륜을 저지러자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인간의 성을 숨길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바꾸어야 할 법이나 관습이 한 둘이 아니지만, 남들이 외면하는 아래 세가지는 꼭 바꾸고 싶다. 

첫째 마약으로 잘 못 인식시켜 온  ‘대마초합법화’문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둘째는 식물인간처럼 의식 없이 사는 이들의 ‘안락사’문제다. 가족들의 고통이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병원업자들 손바닥에서 놀고 있다. 오죽하면 살리지는 못해도 죽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가? 

셋째가 인간의 아름다운 성생활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리자는 것이다.

전자의 두 가지는 공감하는 분들이 많지만, 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원죄가 도대체 무엇인가?






술이 너무 취해, 담배 피우러 밖에 나왔다.
보슬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는데,  장경호씨도 따라 나와 3미터 간격으로 쪼그려 앉았다.

쪽방이 더워 고생한다는 것을 눈치 챈 장경호씨가 “쪽방에서 그만 나와요”라며 말을 꺼냈다.

“야! 쪽팔리잖냐.”는 한 마디로 끝냈으나,

이미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의 화랑들이 새로운 작품들로 채워지는 수요일은 언제나 분주하다.
전시장들은 DP를 마무리하고,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고,
길거리는 축하 화분을 배달하는 사람이나 꽃다발을 안은 젊은이들이 총총걸음한다.

전시장마다 화환들이 화려하다. 이제 화환이나 화분은 가급적 보내지 말자.
돈 들여 보내봤자 짐만 늘리는 꼴이라 대개 반가워하지 않는다.

전시할 때마다 화분을 사양한다는 말들을 하지만, 기어이 보내는 분들이 있다.

울긋불긋한 꽃들이 작품 감상에 방해 될뿐더러 때로는 꽃 전시인지 작품 전시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렇게 받은 화분들이 아까워 집에 갖고 가지만, 한 번도 살려 본적이 없었다.
차라리 전시 도록이라도 한 권 사주는 게 작가들에 도움 되지않을까 생각된다.

‘미술세계갤러리’에서 열린 김반석씨의 ‘글 그림, 한글 품다’전시에는 많은 축하객들이 몰려 있었다.

흙, 모래, 종이 등 갖가지의 재료들을 사용한 독창성이나 작가의 자유로운 정신은 돋보이나, 

그 그림과 글들이 이루는 부조화스러움은 나만의 생각일까?

인사동거리에서는 미술평론가 최석태씨와 강선화씨를 만났고, 지하철에서는 정동석씨를 만났다.


2015,10, 7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였던 철학자 채현국선생의 팔순잔치가
지난 4일 오후6시경 인사동 '낭만'에서 열렸다.

최혁배, 강선화씨등 50여명이 참석한 축하연에서
평소 선생의 십팔번인 러시아민요 "볼가강의 뱃노래'를
열창해 축하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는 봄인데, 나들이객들의 옷차림은 아직 한 겨울이다.
어저께만도 추워 싸매고 다녔는데, 곧 바로 여름으로 접어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 16일 오후6시 무렵,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의 심정으로 인사동을 돌아 다녔다.
약속시간이 좀 이른 것 같아, '툇마루‘ 앞 벤취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무는데,
카메라 화인더에 반가운 분들이 등장했다.

강선화씨와 김구, 임경일씨가 골목에 접어들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반가워 ‘툇마루’에서 막걸리 한 잔 했는데,

임경일씨는 ‘청량리588’ 책에 사인해 준 내용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마누라 열심히 꾹꾹 눌러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취중에 쓴 글이라 기억도 없었다.

‘화신포차’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득달같아 오래 머물 시간은 없었다.
약속장소에는 장경호씨와 배성일씨가 먼저 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장경호씨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 취기가 올라 홍조 뛴 얼굴에 부티가 났다.
이야기인 즉 선, 없었던 치아를 복구해 제 모습을 찾았다는데, 참 부러웠다.
나도 썩어 문드러진 이빨 다 뽑아버리고, 틀이라도 해 넣으면 좀 나아질까?

뒤이어 장 춘씨가 합류해 ‘무다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반주로 노래까지 한 곡씩 불렀으나,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전시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요즘 조금만 취해도 맥을 못 춘다.
늦게까지 마셔야하는 장경호씨가 마음에 걸렸으나, 장 춘씨와 먼저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려는데, ‘인사동사람들’로 옮겼다는 장경호씨의 기별을 받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문화와 풍류를 즐기는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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