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진가 조문호가 강원도 두메산골을 찾아 다니며 만난 농민들의 사진집

 

"우리네 사람들의 아름다우면서도 조금은 슬픈 이야기"

 

강원도 산골을 처음 찾은 것은 이름조차 낯설던 동강이 시끌벅적 세간의 관심을 끌던 때엿다.

정선에서 시작되는 조양강 줄기를 따라가며 화전민들이 살던 마을을 찿았다. 그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산과 강에 막혀 척박하게 살아 온 농민들과 난나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들이 누구인가를 가슴 깊이 새겼다.

그들과 삶을 같이하며 찍기로 작정하고 만지산 자락에 눌러 앉았다.

이 땅의 정기를 받고 살아 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 비롯된 두메산골 사람 찾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의 서문에서-

 

 

제목 :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 : 조문호

발행일 :2004년 12월 22일

규격 : 230mm X 170mm / 150 면

가격 : 20,000원

출판 : 눈빛출판사

 

 

-목차-

 

(서문)두메산골 사람들의 초상 / 박영택(미술평론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금방 싫증이 난다 / 박인식 (소설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 / 배평모 (소설가)

(작업노트) 두메산골 사람들에 대하여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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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선사시대 유적지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비경,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분포하는 작지만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강은 영월댐 건설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른바 있다. 비록 동강댐 건설계획은 백지화되었으나,

                                              동강변 주민들에게는 지우지 못할 상처를 입힌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전문 사진작가인 저자가 동강일대의 비경과 동강변 주민들의 주민들의 꾸미없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진솔한 속내를 함께 담아낸 포토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외지 사람들에 의해 변해 버린 주민들의 인심'을 안타까워 하지만,

                   큰 소동 뒤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강처럼 선량하고 넉넉한 주민들 본연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발행일 : 2000.9.22

                                                                            2쇄 : 2000.12.15

                                                                            규격 :225mmX153mm

                                                                            가격 : 7.500원

                                                                            저자 : 조문호

                                                                            펴낸곳 : 도서출판 명상

 

-목차-

1. 프롤로그 / 사람이 살아야 동강이 산다
2. 용탄리 . 광하리
3. 귤암리
4. 가수리
5. 운치 2리
6. 운치 3리
7. 고성 2리
8. 덕천리 I
9. 마하리
10. 문산리
11. 거운리
12. 삼옥리
13. 에필로그
14. 참고문헌

 조문호   

 

소개 :
1947년 경남 창녕 출생.
개인전으로 아시안게임 기록전(1986), 동아미술제 초대전(1987),
민주항쟁 기록사진전(1987), 전농동 588번지 기록사진전(1990),
불교상징전(1994), 전통문양 초대전(1995), 동강 백성들 기록사진전(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전(2002),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2007), 신명 설치사진전(2008), 산을 지우다 사진전(2008) 등을 개최하였다.
단체전으로 낙동강 환경사진전(2001), 우리 사는 이 땅 환경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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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읍 용탄리 이석택(72) / 2003,7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 남운열(75세) / 2003,5

 정선읍 귤암리 유월선(71세) / 2003,8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 김옥녀 (73세) / 2003,5

정선읍 북실리 유돈희 (82세) / 2000, 4

 삼척시 도계읍 점리 전해원 (73세) / 2003,7

 정선군 동면 화암리 전동욱(84세) / 2003,7

 정선읍 애산리 윤종숙(62세) 2004,9

 정선군 북면 고양리 윤병철(70세) / 2004,9

 정선군 북면 고양리 정순교 (78세) / 2004,9

삼척시 도계읍 점리 김초월(75세) / 2004,9

 삼척시 도계읍 점리 이옥순(63세)

 정선읍 가수리 이명옥(71세) / 2000,4

 삼척시 도계읍 차구리 이연자(82세) / 2004,9

 삼척시 도계읍 점리 김초월(75세) 2004,9

 정선읍 귤암리 조용식(69세) / 2003,10

 정선군 북면 고양리 김규하(81세), 이춘흥(68세) / 2003,5

 평창군 진부면 진부리 이종석(58세) / 2001, 9

 정선읍 귤암리 이선녀(48세) / 2003, 8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김성회 (52세) / 2003,8

 

 

 

 

 

 

 

 

 

 

 

 

 

 

 

 

 

 

 

 

 

 

 

 

 

 

 

 

 

 

 

 

 

 

 

 

 

 

 

 

 

 

 

 

 


장에가면 아내와 흩어져 각자의 일에 몰입하지만 좁은 장바닥을 돌다보면 여러차례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순간적으로 내 카메라 화인드에 등장할 때도 있다.

지난 정월 보름 대목장 촬영을 위해 떠났던 경북지역과 충청남도의 여러 장에서 찍힌 사진들을
모아보았는데, 할머니들이나 장꾼들을 인터뷰하는 모습도 있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나 물건을
사는 모습들도 잡혔다.

이 또한 그에게는 좋은 기록이기에, 팔불출 소리를 듣더라도 마누라 자랑 한 번 해 본다.

20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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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바쁜 여자

 

세상에 이 여자 보다 더 바쁜 여자있으면 나와봐라 그래요.
좌우지간 장터에만 내려 놓으면 찾아보기 힘들답니다.
장꾼들 인터뷰하고 사진 찍는 것만도 바쁜데,
동영상에다 기력 없는 할매들 까지 보살피니 말입니다.

장에만 가면 나는 안중에도 없는 그 여자가 야속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답니다.ㅎㅎㅎ

 

(2012.3,16 청양 정산장에서...)

 

 

 

 

 

 

                                                                                             

                                                                                               

 


"남지장에서 빰 맞고 영산장에서 화 푼다"는 말이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거나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등 장과 관련된 속어들이 많다. 그 만큼 가까운 지역끼리 돌아가는 오일장은 우리네 삶에 중요한 생활터전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장과 연결되었고, 지역 토박이 장돌뱅이들에게는 장의 성쇠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지난 보름 대목장 촬영지인 청도에서 만난 어느 장돌뱅이가 "영천장에서 울고 청도장에서 웃는다"는 말을 했다. 영천장에서는 장사가 되지 않았고 청도 새벽시장에서 재미를 보았다는 이야기인데, 장터를 찍는 우리도 같은 심정이기에 맞장구를 쳐준 적이 있다. 장사도 사람이 많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지만 사진도 마찬가지다. 날씨는 물론 주변상황에 따라 성과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천 금호장과 신녕장은 조그만 지역에 거대한 장옥을 짓고 있었다. 요즘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옥을 짓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많은 투자를 하여 고급스런 장옥들을 짓고 있다. 근사하게 지어 손님도 많고 장사만 잘된다면 좋으련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청송교도소가 있는 진보장은 객주와 아라리 난장을 쓴 소설가 김주영씨의 고향이라 진보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예산이 부족해 지붕도 못 올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신축 장옥도 "객주"의 배경지답게 옛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이라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잃어 버렸다. 그리고 서천 장황장은 외곽지역에 거대한 장옥을 지었으나 손님들이 없어 울상이다. 사람들이 장옥 주변의 난장에만 몰리고 장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입주 상인들은 장옥 입구에 비자루나 생활용품들을 널어놓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반면 청도장은 오래된 장옥이지만 컴컴한 새벽4시부터 서는 번개시장이 인기다. 농산물을 갖고 나오는 노인들과 상인들의 흥정으로 장터 입구는 새벽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인근지역인 부산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어떤 귀부인은 밴츠를 타고 와 할머니들이 갖고 나온 농산물들을 싹쓸이하기도 했고, 어떤 장돌뱅이는 자기가 갖고 온 중국산 도라지에 할머니의 국산도라지를 사서 뒤섞기도 하는 등 거래가 활발하지만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농민들은 새벽시장에서 농산물을 처분하고 일찍 돌아가는데 비해 장꾼들은 오후 늦게까지 장사를 하므로 다른 장에 비해 사람도 많고 거래도 많은 오일장이었다.

경산 하양장도 장옥 신축으로 하천변에 임시장터가 마련되었는데, 장꾼들도 많고 찾는 손님도 많았으나, 새 장옥으로 옮겨지면 어떨지 지켜 볼 일이다. 포항 송라장이나 죽장장은 사람들이 적어 머지않아 사라질 장터이지만 옛 장옥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다 날씨까지 받쳐주어 좋은 사진들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경주 양남장은 바닷가에 서는 몇 안 되는 장인데, 어물장수들이 생선찌꺼기를 바닷가에 버리자 갈매기가 떼거리로 몰려 와 장관을 이루었다.

이번 보름 대목장 순례는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진 긴 여행이었다. 별 어려움 없이 일정대로 마친 건 좋으나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가 주저앉아 당황했다. 그 것도 일을 끝낼 때까지 잘 버텨주다 서울톨게이트를 들어와서야 멈춰 섰다. 오랜 세월 너무 혹사시켜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자동차로 태어나 전국을 골고루 많이 달려보는 것이 자동차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행복이리라 위안도 해본다. 구급차에 실려 간 병원에서 모두들 폐차시키라는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새로이 구입할 형편도 못되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어 전국 장터 순례를 끝내는 올 연말까지만 버텨 달라고 빌어본다. 아직도 전국 600여 지역의 오일 장터 중 130여 곳이 남았지만, 예정대로만 진행되면 2013년 12월에 장터프로젝트의 전체 윤곽을 짤 수 있게 된다. 그 때 함께 고생한 자동차도 정선 만지산 자락에 영구히 보관할 계획이다.

2013.3.2

 

 

 

 

 

 

 

 

 

 

 

 

 

 

 

 

 

 

 

 

 

 

 

 

 

 

 


 

지난 3일부터 대목장 촬영으로 전라도 해안지방에 6일간 다녀왔다.

여지껏 숱한 지방 나들이를 했지만 이번 촬영처럼 힘들고 성과 없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폭설로 앞당겨 출발한 것도 문제지만, 작업에 임할 때마다 지켜왔던 공과 사의 분명한 구분과,

오직 일에만 몰입해야하는 무술적인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떠나기 전에 촬영지 관공서에 문의할 일을 비롯해 준비할게 많은데,

갑자기 방문한 손님으로 일 순서가 헷갈리기 시작했고, 폭설까지 내려 너무 서둘렀던 것도 탈이다.

인사동에 들려 저녁이나 먹고 출발하라는 손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또 하나의 실수였다.

인사동에서 오후 아홉시에 출발하여 목적지인 해남장에 익일 오전7시에 도착하였으니 무려 열 시간을 눈길에서 헤메야 했고,

눈 내리는 장터 풍경을 연상하며 위안했던 기대도 산산히 깨졌다. 그 쪽 지역은 날씨가 포근해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시간의 변속 운전으로 오른쪽 어깨에 심한 근육통이 시작되었고, 아내는 눈병과 생리통에 시달리면서도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첫 도착지인 해남 우수영장에서 닭 잡아 파는 난전을 보며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숱한 닭 집 풍경들을 만나왔지만 그 날따라 웅크린 닭들이 주는 메시지가 달랐다.

한 곳에 몰입하다보면, 죽음에 질려 웅크린 닭처럼 불안에 떨 겨를도 없을 것이란 말이다.

이판사판 후회도 후퇴도 없다는 각오가 일었다.

 

 

 

 

강진장은 장옥 안에 경품으로 내건 자동차가 진열되어 있었다. 변해가는 신판 장터 풍경이었다.

보성 회령과 복내를 거쳐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광양 옥곡장이다.

옥곡장은 일년전에 촬영했던 곳이지만, 아내가 광주은행 사보에 연재하게 될 첫 지역이라 주변 정보수집을 위한 행보였다.

옥곡장에 도착하니 이미 파장이라 한산하였고, 상인회장을 만나러 간 아내는 장꾼 몇 명과 어울려

숯불에 구운 조기를 안주로 소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장기가 돌아 시커멓게 탄 조기지만 한 마리 잡았는데, 어느 여인이 나를 찾아 왔다.

장에 돌아다니는 모습이 심상찮아 사주를 봐 주기 위해 찾았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이끌려 간 곳은 시장 변두리의 초라한 대폿집이었다.

점쟁이의 이름은 이영애(56세)씨 였고, 이십여 년 동안 그 곳에서 식당을 한다는 것이다.

나를 앉히고는 큰 숨을 내쉬며 손금을 보기 시작하더니 대뜸 내 뱉는 말이 "짜집기 인생이군" 했다.

“사람 좋아 사는 건 힘들지만 이름 석 자는 남기겠고, 올해부터 슬슬 풀린다”는 것이다.

점쟁이의 입에 발린 소리라 치부하면서도 풀린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복채로 막걸리 한 병만 사라지만, 찾아 나선 아내에게 불려 나와야 했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정신이 살짝 나간 팔자 센 무당이라"지만 막걸리 한 병 값 내놓지 못한게 영 게름직했다.

 

보성 예당장에서 시작하여 장흥 대덕, 영암, 완도장까지의 촬영은 순조롭게 마쳤으나 셋째 날 부터 고행이 시작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루 종일 찍은 곳이라고는 장이 들어서던 진도 의신장과 마지막 파장 무렵 찍은 고흥 동강장이 전부였다.

완도 고군장은 사라졌고, 군의장은 장날이 바뀌어 헛걸음 쳤다. 이동거리가 큰, 그 먼 거리를 헛 탕 친 것도 억울하지만

네비게이션마져 헷갈려 반나절을 뺑뺑 돌다 결국은 도선료 물고 배에 실려 고흥으로 나와야 했다.

"하다보면 이런 날도 있을 수 있다"는 아내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도 의신장, 이세재(62세)

 

다음날 첫 촬영지인 고흥 봉래면으로 차를 돌렸다.

봉래면은 우주위성발사 기지가 있는 지역으로 나로호의 성공발사를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TV도 신문도 보지 않는 우리로서는 그 현수막을 보며 위성발사가 성공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봉래면에 있는 조그만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 한 대 맞고 식당에 들렸더니, 봉래장은 새벽 5-6시에 장이 선다고 했다.

컴컴한 시간에 장이 열린다는 것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일찍 나와보았더니 칠흑같이 어둡고 추운 곳에서

꼼지락 꼼지락 짐을 챙기는 장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찍 와야 좋은 자리 잡제”라는 장꾼의 말에 정말 돈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섯째 날 첫 촬영지인 해남의 땅끝마을 송지장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던 눈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것도 운이 없었던지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곤 딱 한 장 얻은 게 전부였다.

보성장은 새 장옥이 거의 완공되어 입주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고, 옥곡장은 설이 지나면 장터를 변두리로 옮기고

그 자리에 새 장옥을 세운다고 했다. 그런 장옥 짓는다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서둘러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꾼들이 외면하는 장옥짖기에 열을 올리는 지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장흥장에서는 여지껏 만난 장꾼중 나이가 제일 어린 백재훈(19세)군을 만났다.

일찍부터 아버지 일을 배운다는 백군의 착한 모습에서 사라져가는 장터의 마지막 희망과 새롭게 변해갈

내일의 장터를 그려본다.

 

 

2013.2.14

 

 

 

 


 

26일 새벽 네 시, 알람소리에 선잠을 깼다.
5박6일 동안 경상남도의 여러 장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는 차창에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별 문제될 건 없다.
카메라 젖을 우려 외에는 비 오는 날의 환경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데다,
현장감을 중시하는 다큐멘터리사진에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무주를 지나 덕유산 방향으로 달릴 무렵에야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검은 구름을 뚫고 내려 비치는 햇살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촬영길에 나설 때 마다 만나는 일출이지만 날씨와 장소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산하에 매번 감탄한다.
희망의 하루를 점쳐 주는 자연의 선물이지만 고속도로에 차를 세울 수 없어
보기만 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첫 촬영지는 합천군 묘산면에 소재한 조그만 시골 장터였다.
아침 여덟시에 당도하니, 조용한 장터로 "탱~탱~탱~" 굉음을 울리며 경운기 한 대가 들어온다.
할아버지의 경운기에 내다 팔 농산물과 더불어 할멈까지 태워 나오셨다.
촉촉하게 젖은 장바닥엔 몇 몇 사람만이 오 갈 뿐,
빈 장옥에 매달린 메주가 한가로운 시골 장터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작업 현장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장터의 지형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촬영장소를 물색하는 일이다.
대개 인근 건물 옥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루트를 알아내 아내의 촬영을 도와주고,
내가 필요한 장터 사람을 찾아 나서지만 그리 만만치만은 않은 일이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난장을 벌이는 장소도 어울려야 하고,
찍어도 인적사항을 알려주지 않으면 헛수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산청의 생초장은 장에 사람이 없는데도 장옥을 짓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토목공사를 누가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남해에서 진주, 하동, 산청까지 여러 장터를 거쳐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함양 마천장을 마지막 장터로 정했으나 도착하니 벌써 장이 끝나 버렸다.
마천은 요즘 곶감 깎는 일손이 달려 오전에만 잠깐 장이 선다는데,
이처럼 김 빠지는 일도 더러 만난다.

“시간은 돈이다”란 말을 요즘처럼 절감한 적은 없다.
대개 여덟시에 개장해 오후 네시 무렵 끝나는 장터를 네 군데 정도 촬영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작은 면소재지 장들은 한 시간 정도면 작업을 마칠 수 있지만,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 아침식사는 건너뛰고 점심은 운전하며 군것질로 때우는게 일상처럼 되버렸다.
체력을 유지해 작업을 이어가려면 초저녁부터 쉬는게 좋은데, 그마저 맘대로 않된다.
둘째 날은 창원에서 사진가 조성제씨와의 약속이 있고,
다음 날은 마산에서 화가 이강용씨 아뜨리에 개업식에 참석해야하니 말이다.

이강용씨 개업식에 가서는 늦은 시간에 음식을 급하게 먹은게 탈인지,
그대로 식탁에 엎드려 잠든 게 탈인지, 다음 날 심한 복통을 앓았다.
아픈 배를 움켜지고 운전하며 “왜 이렇게 강행군을 하는지?” 자문해 본다.
장터가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한다는 절박함이 원인이었다.
작업하는 기록들은 후손들에게 남겨질 소중한 사료이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하다.
다큐멘터리사진에서는 사진가의 사명감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사명감이 없으면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들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장돌뱅이 노릇 일주일동안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찾아 간 스무 다섯 군데 장에서 열 명의 장터 사람들을 찍을 수 있었고,
아내는 경상남도 장터의 많은 자료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번 장터 순례의 색 다른 풍경으로는 정치바람이 시골 장터까지 밀고 들어와
진종일 선거 유세 차량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다지 많지도 않은 시골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별의 별 짓을 동원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선거 유세차량의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뽕짝 스타일의 CM송이 죽여준다.
"인물도~ 정책도~ 박근혜가 죽여요!”

 

2012.12.4

 


 

지난해 12월 초순 경상남도의 통영장을 찾았습니다.
부산 하단장을 촬영한 후 가덕대교를 지나 해저터널 그리고 거가대교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습니다. 만원이나 하는 통행료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통영 주변의 섬들과 바다풍경을 여러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였습니다.

통영시 중앙동에 있는 통영전통시장은 오일마다 장이 서지만, 활어시장은 상설시장이었습니다.
특산물로는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통영 굴맛은 빼 놓을수가 없답니다.

통영시장을 돌아다니다 활어시장 뒷골목 언덕에 자리 잡은 “동피랑마을”을 찾았습니다.
구불구불한 시장 뒷골목을 오르다 보면 강구항이 한눈에 보이는 동피랑 마을이 나오는데,
그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달동내 같은 마을을 철거해 동포루를 만들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에서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 벽화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예술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알려지기 시작했고.
"착한 남자"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세를 더하게 되었답니다.

요즘 지자체에서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시장에 문화를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는데,
유명세를 얻은 동피랑마을과 인접한 통영시장을 관광코스로 연결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3.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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