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쪽부터 헬레나, 안애경, 박세연, 유아, 소피아 / 어린이아트캠프에서



정선 일을 마무리 못한 채, 급히 동자동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난 번 어린이아트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미처 전해주지 못하기도 했지만,
필란드로 떠나기 전에, 헬레나양이 쪽방에다 작은 목침대를 만들어주겠다는
안애경씨의 전갈을 받은 것이다.

허겁지겁 돌아와, 전해 주어야 할 캠프사진부터 정리하느라 허리께나 돌려 댔는데,
어떻게 작업 끝 날 시간을 그리 잘 맞추었는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나타나 주었다.






목공예가 헬레나만이 아니라 미술감독 안애경씨와 미디어작가 유하, 소피아 등 네 사람이

지난 8일,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으로 몰려 온 것이다.
서로 나누어 짐을 올리기야 했지만, 그 몸집 큰 헬레나가 가조립된 목침대를 들고
좁은 4층 계단까지 땀 흘리며 낑낑대는 모습은 안 서러웠다

좋은 친구들의 연에 의한 도움이긴 했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솔직히, 나 혼자만의 특혜 같은 미안 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
아무튼, 어려운 사람들에게 백배 천배로 돌려 도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그 다짐으로 위안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쪽방 건물 3-4층을 관리하는 정씨가 문제를 제기했다.
방에다 임의로 선반하나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에 붙이는 선반이 아니라 독립된 침대라고 했더니, 장판에 자욱이 남는다는 억측을 펴기도 했다.

이런 개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으니라고...
이 건물이 사라지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전형적인 완장부대의 갑 질이었다.
보름 전에도 실수로 복도에 페인트를 쏟은 노인에게 우격다짐 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쫓겨 나고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는 사람이 집 주인인데, 어찌 관리인이 주인을 내 쫓을 수 있나?

이 친구는 완장부대의 갑질이 몸에 베어 그렇지만, 계란 후라이를 나누어 주는 등 잔 정은 있다.
다른 입주자와는 달리 많은 신경을 써 주어, 큰 소리 칠 형편은 아니었으나,
못된 버르장머리는 기어이 고쳐놓고 말겠다는 다짐도 했다.


네 사람이 달려 붙어 좁은 복도에서 목재들을 이어 붙였는데,
순식간에 멋진 침대가 만들어졌고, 남은 공간에 맞는 책상과 의자까지 들여왔다..
갑자기 쪽방이 호텔방으로 격상한 기분이었다.


방바닥에 앉아 일하다 허리 다친 걸 아는 안애경씨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편리함만이 아니라 쪽방의 공간 활용도까지 높아진 것이다.
침대 밑 공간이 생겼으니, 그 밑에 많은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공간이면 신혼살림 차려도 좋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수고하신 친구들에게 조그만 사례라도 하고 싶어 벽에 붙은 사진 중에 골라보라 했더니,
다들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만 골랐다. 이심전심이었다.
당장 프린트하여 선물할 순 없었지만, 안애경씨 편으로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다들 수고 하셨는데,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고 보낸게 아쉬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으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인 것 같다.
그들의 인정으로 엄청난 행복감을 느꼈으니, 그들은 분명 행복 전도사 임이 틀림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여름철 동자동의 쪽방은 잠긴 방이 더 많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지, 물가로 갔는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사는 광주식당 건물 4층은 절반 넘게 자물쇠가 잠겨있다.
하기야 잠자리가 자유로운 자들이 푹푹 찌는 쪽방에서 버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층에 남은 네 사람은 왜 떠나지 못했을까?
관리인 정선덕씨야 건물 관리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맞은편의 김응수, 최성길씨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까?
찾아 올 사람은 없으나, 나가기조차 귀찮은 모양이다.
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지 눈물이 난다.

그리 말하는 난 왜 나가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사실, 컴퓨터가 없으면 사진정리는 물론,
세상과의 소통이 되지 않아 쪽방을 뜨지 못한다.
핑게 없는 무덤이 없으나, 컴 중독 증세에 가깝다.


8월5일이 울 엄마 제삿날이라 7월말에 정선가기로 했으나
일이 생겨 또 이틀간 연기 했다.

오늘은 찍은 사진 정리도 미룬 채, 보따리를 쌌다.
사진이고 컴퓨터고, 모든 걸 접어버렸다.
벌써 마음은 정선 만지산에 가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웃 사람들에 비해 더위를 못 견디는 이유를 뒤늦게야 알았다.
고참 들은 날씨의 이치에 순응하였고, 난 무슨 극기 훈련하듯 맞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더운 시간엔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다 잘 때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그 곳에 자리를 깔아버렸다,

그들은 더위를 피해 다녔고, 난 버팅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정선 별장으로 피서나 갔다 오자.
허물어지기 직전의 별장이지만, 그 곳은 울 엄마가 묻힌 산중이 아니던가?
떠나기 전에 해둘 일을 체크하며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또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컴퓨터 식히는 팬 도는 소리에 나까지 돌아버릴 것 같다.






컴퓨터를 끄고, 천국으로 통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은 시원하기 그지없고, 서울의 두 얼굴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옥상은 건물 관리인이 사용하는데, 더운 여름철만 잠깐 개방해 주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팬티만 걸친 비쩍 마른 알몸에 카메라와 담배까지 피워 물었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보신다면 과관이었을 것이다.






서울역 건너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 거대한 빌딩 틈으로 쪽방들이 코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가진 자들은 그 코딱지를 떼고 싶어 안달이지만, 어림없다. 어차피 함께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다.

어리어리한 빌딩은 사람냄새 대신 돈 냄새로 가득하지만, 쪽방 구석구석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옥상에는 화초대신 고추와 방울도마도가 달려있고, 군데군데 빨래도 걸려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3층에 사는 유씨가 소주와 새우깡을 들고 올라왔다.

이열치열이라듯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위 아래를 들락거리며 마신 소주가 다섯 병이나 되었다.

옥상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해, 급하게 마셨더니 어질어질했다.

방으로 내려와 더위도 잊은 채 정신없이 잔 것까지는 좋았는데,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다.
냉수 들이키는 소리가 수채구녕 물내려 가는 소리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강제퇴거 이웃 문화제’가

지난 7월 19일 오후7시부터 동자동 ‘새꿈 어린이 공원’에서 열렸다.

이윤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은 가난한 이들의 터전을 빼앗아 거리로 내 쫓고 있으며,

쫓겨난 이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저항은 합법적인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쪽방에서 강제로 쫓겨나야하는 빈민들의 연대활동을 강화시켜,

주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빈민들 지역을 돌아가며 진행하는데, 그 네 번째 이야기가 동자동에서 열렸다.

‘빈곤사회연대’ 윤애숙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강제퇴거금지법’에 대한 이원호씨의 강연이 있었고,

동자동 주민으로는 김병택씨와 임수만씨가 나와 실제 사례를 이야기 했다.

김병택씨는 건물안전진단을 위해 비워달라는 요구에 맞서, ‘동자동 사랑방’의 협조로 물리쳤다고 했다.


이날 행사 준비는 ‘동자동 사랑방’의 허미라 활동가와 선동수간사, 이상준씨와 김창현씨 등

많은 주민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협력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누굴 위해 만든 자리인데, 주최 측에 태클을 거는 주민이 있는가하면, 욕지거리를 퍼 붇는 사람도 있었다.

술이 취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잘난 채 나서고 싶어서다. 그리고 주민들의 참석률도 저조했다.

심지어 ‘동자동 사랑방’ 임원조차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조합장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행사였다.

그리고 이 행사가 열리기 전에 ‘동자동 사랑방’의 운영위원회의가 열렸다는데,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고,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는 즉각 '쪽방타운' 카페에 올려 전 조합원들이 알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누가 어떤 안건을 발의하였고, 누가 방임하였는지, 조합원들도 알 권리가 있다.

그냥 자리만 메우는 핫바지 임원이라면 물러나고, 몸 바쳐 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젊은이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더위에 쫓겨, 밖으로 나가야 했다.
쪽방 컴퓨터 앞에 쪼그려 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골목에서 만난 유한수씨는 김원호씨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군인을 길들여 왔던 ‘충성’이란 개소리를 외쳤는데, 그게 누굴 위한 충성이었던가?

국가에 헌신해야한다는 것이 몸에 베었지만, 그건 기득권자들을 위한 미친 짓이었다
단지, 무료한 일상에 웃기 위한 행위였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았다.






조인형씨는 고물 티브이 한 대를 해부하고 있었고,
조두선씨와 박성일씨 등 몇 명은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새꿈 공원에는 정재헌, 이대영씨가 이미 취해 있었는데,
술이 약이던가? 술 취한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었다.
절망에 익숙해지면 술과 담배를 끼고 사는 법이다.
세상이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사는 게 너무 공평하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돈을 주체 못해 별 지랄을 떨지만,
더워도 물놀이 한 번 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
동자동 사람들에게 신바람 일으킬 일은 과연 없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여름철 쪽방은 해수욕장을 방불케 한다.
더워서 다들 벗고 사니, 비쩍 마른 놈은 남사스럽다.
옷을 걸치면 금세 땀에 젖어버리니,
내색은 안 해도 누가 찾아오면 욕바가지다.
그래서 여름 쪽방 방문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내가 사는 쪽방은 옥상 밑이라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바깥 통행에 지장을 주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하고
창은 옆 건물과 붙어, 있으나 마나다.
더운 바람이 윙윙 도는 선풍기소리조차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갈까도 생각했으나 포기했다.
명분은 나대신 누군가는 이 방에서 곤욕을 치러야 한다지만,
솔직히 방 구하고 이사하는 절차가 귀찮아 못 간다.






어제는 쪽방 4층 복도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408호에 사는 정씨 영감이 페인트를 복도에 쏟았는데,
그걸 지운다며 퐁퐁(세제)을 통째로 부어버린 것이다.
건물 관리하는 이가 발을 동동 그렸으나, 소용없었다.
물을 퍼부어 물난리가 났는데, 거품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 정씨 방은 방이 아니라 창고나 마찬가지다.
그 좁은 방에 온갖 물건들을 놓아 누울 틈도 없다.
고물 티비가 아슬아슬하게 짐 위에 놓여있는데,
무너진다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이 들어 하나하나 버려야 하건만, 왜 저렇게 살까?





그 방만 보면, 더워 못 살겠다는 내 말이 엄살 같다.
사람이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강력한 마약 한 방으로 황홀하게 잠들 수 있는 안락사를 허하라.
의미 없는 고통의 삶은 죽는 것만 못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해 가을 동자동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실시하는 도시락배달에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급식소에 갈 수도 없을 만큼 힘들어하는 동자동 빈민 중 300여명을 정해, 매주 두 번씩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다.

이곳은 알코올 중독자였던 허 근 신부님이 주도하시는데, 그는 ‘중독 해결사’로도 유명하다.

의지할 곳 없이 허물어진 이들이 다시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사신다.

매번 후원과 봉사하는 분들의 정성으로 도시락이 만들어지고, 동자동 구석구석 가난한 이들에게 배달되어졌다.

그 당시 내가 기록한 봉사현장 사진들과 글을 SNS에 올렸는데, 봉사하는 분들이 노출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관련 내용을 모두 내리고, 배달봉사까지 자제해 달라는 사무장의 말에 아쉽게도 발길을 끊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는 취지는 백번 맞는 말이나 각박한 세상에 한 가닥 희망이라도 전해주려는

기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이루어졌던 모든 기록들은 그 순간부터 백지가 되어버렸다.

가끔 도시락을 배달하는 분들을 거리에서 만나면 지난 날이 생각났다.

당시 두산 박영만 회장께서도 도시락 싸는 봉사에 참여하셨다. 지난 달 우연히 페친이 되어 반갑기 그지없었는데,

그 당시 찍은 사진들을 모두 폐기시켜 사진 한 장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마침 두 장씩 모아둔 인물사진 파일을 뒤져보니 허건 신부와 박용만 회장의 사진이 각각 나왔다.

변변찮은 사진이지만 다시 꺼내, 유쾌한 모습으로 인식되었던,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사진,글 / 조문호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해결하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도끼 상소를 올렸다.
21개 노인·복지단체로 구성된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는

13일 오전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자치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도끼 상소 퍼포먼스를 펼치며 시정을 촉구했다.

2014년 7월 기초연금 제도 시행 후 네 번째이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처음이었다. 

 
도끼 상소(持斧上疏)는 조선시대 대궐 앞에서 도끼를 둘러메고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것으로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도끼로 목을 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날 오전10시 경, 도끼상소에 함께하기 위해 ‘동자동 사랑방’으로 나갔다.

김호태 대표와 김원호, 김영진, 강명국, 유한수, 김창현, 김정호, 조인형, 류종희, 김정길 씨등 열 한명이 나갔는데,

‘노년유니온’,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에서 나온 50여명의 빈민들도 현장에 모여들었다,





일찍부터 오건호, 고현종, 김윤영씨 등 빈민운동가들이 나와 더운 날씨에도 부지런히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얼굴에 고인 땀방울을 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난, 40만 수급노인에 해당되는 빈민 당사자라

나오기 싫어도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저들까지 왜 저렇게 고생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문재인대통령께서 이 간절한 빈민들의 상소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40만 기초생활수급 노인을 대표한 김호태(84·용산구)씨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초연금 30만원 약속은 노인들에게 희망을 줬지만,

그대로 내놓아야 하는 40만 수급 노인에게는 절망과 배신의 상처만 남겼다"며

"대통령이 기초연금의 잘못된 현실을 살펴 수급 노인들도 정당하게 기초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바로 잡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한 노인을 외면하는 정부가 어찌 민주정부, 복지정부일 수 있냐는 탄식들도 흘러 나왔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하지만,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소득 60만원 이하) 노인은

기초연금 혜택에서 제외시켜 왔기에, 오랫동안 어렵게 사는 노인들의 빈축을 사 온 일이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경우 매달 25일 기초연금을 받지만, 다음달 20일 기초생활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 당했다.

기초연금이 소득에 걸리는 탓이다.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보충성 원리’에 따라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를 공제한다지만,

정작 노인 계층 간 형평성이 깨지는 문제에 대해선 모른 척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현행 20만원인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연계한 기초연금을 소득 산정에서 제외한다는 명시적 약속은 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가장 가난한 늙은이들’을 대표하는 상소인으로 동자동의 김호태씨를 비롯하여 김원호, 김정호,

조인형, 강명국씨가 나섰는데, 도끼로 바구니를 치니, 그 안에서 상소문이 나왔다.

상소문에는 수급노인들에게 절망과 배신의 상처를 남긴 현실을 살펴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뒤 이어 문제인 대통령의 가면을 쓴이가 나와 상소문을 받아들고, 노인을 대표한 김호태씨와 프리허그를 하였으나,

그게 퍼포먼스가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난한 약자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인지라 시정 요구를 물리치지 않고 검토하여 수용할 것으로 믿는다.

이 외에도 사각지대에서 수급혜택을 못 받는 더 어려운 빈민들도 많고,

가진 자들이 위장하여 혜택 받는 등 별의별 일들이 많으니, 잘 헤아려 좋은 정책을 수립하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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