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인사동 외출입니다.

지난 13일은 반야월선생 추모가요제와 최백호 ‘효교’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제법 가을분위기가 감도는 인사동의 오후는 몰려 온 관광객들로 붐볐고요.

이 날 부산시절에 만난 옛 친구들이 일찍부터 올라 와

‘아라아트’김명성씨, 무용가 안재은씨 내외와 어울렸습니다.

‘아라아트’에서 전시 작품들을 둘러보는 등 여기 저기 인사동을 돌아다녔습니다.

 

 

 

 

 

 

 

 

 

 

 

 

 

 

 

 




무더위가 수그러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는 처서입니다.
처서가 됐다는 것은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분기점이 처서인데, 가장 대표적인 속담으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처서가 되면 그만큼 날이 선선해지기 때문에 모기의 극성스러움도 덜해진다는 뜻이겠지요.

푸른 하늘아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만지산 풍경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렇지만 나의 가을은 이미 실종신고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으로 산소에 벌초도 해야지만 떠나지 못합니다,
구월 한 달 넘게 방구석에만 쳐 박혀 부지런히 일만 해야 할 처지입니다.
정선도 인사동도 잊어버린 채...

오래된 필름을 찾아 스캔 받고 수정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닙디다.

찍기만 하고 처박아 둔 자료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온 몸이 저리고 아프지만,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사진집을 출판하려는 계기를 떠나 자신의 반평생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그동안 관리해 온 블로거나 카페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처서였던 지난23일의 인사동거리는 주말이라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고,

한낮에는 날씨도 후덥지근했습니다.

거리에는 그림 그리는 화상들이 여럿 나왔고, 사람 광고판도 등장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글을 써 붙인 거리악사의  서툰 노래 소리가 소음에 날리지만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여기 저기 기웃거립니다.

술 한 잔하자는 벗의 당부를 물리치고, 아내와 처서음식 먹으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처서에는 애호박과 고추를 넣은 칼국수를 끓여먹는 풍습이 있었지요.

추어탕은 가을대표 보양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막힌 혈을 풀어준답니다.

그리고 가을 보약이라는 늙은 호박을 이용하여 죽을 끓여 먹으면 환절기 감기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처서 무렵 가장 맛이 좋다는 복숭아도 잊지 말고 챙겨 드세요.

 

 



인사동에 낭만과 풍류가 사라진지 오래다.

고서화점들이 몰려있던 70년대 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선생과

친구인 강 민, 민 영, 채현국, 황명걸, 신경림씨 같은 문인들이 관철동에서 옮겨오며 인사동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들어서는 술 때문에 먼저 간 사진기자 김종구, 서양화가 강용대, 이존수, 김용태, 시인 최영해씨와,

미국으로 이민간 최정자시인, 늙은 총각 구중관, 공윤희, 시인 김신용, 박종수, 조해인, 박중식, 김명성, 소설가 배평모, 

서양화가 이청운, 박광호, 최울가, 이목일, 전강호, 김언경, 도예가 김용문, 신동여, 사진가 이수영을 비롯해 

노광래, 김민경, 장익화, 장 춘, 이해림씨 등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으나,

유명세로 몰려드는 인파와 그에 편승한 장삿꾼들의 얄팍한 상혼에 인사동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게 된 것이다.

 

고풍스럽던 예전의 가게들이 화장품점이나 싸구려 중국산 민예품에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잡동사니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돈에 의해 변하는 인심과 흐르는 세월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사동 골목골목을 돌다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옛 기억을 소주잔에 부어 마시는

사라지기 직전에 있는 예술가들 몇몇은 남아 떠돈다.


하루라도 인사동에 나오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신다는 ‘인사동아리랑’을 노래하는 시인 강 민선생,

인사동에 사무실 얻어놓고 팔리지 않는 시집 만들며 노래나 부르는 음유시인 송상욱씨,

제주에서 무작정 상경한 후 대폿집 문간방 빌려 사무실로 쓰는 민속학자 심우성씨,

불편한 몸이지만 빠지지 않고 인사동 작업실을  지키는 사진가 한정식선생을 비롯해

극작가 신봉승, 임재경, 김동수, 이계익선생 등이 계신다.

 

그 외에도 사업장을 인사동에 둔 '아라아트' 김명성,'통인가게' 김완규, '옥션단'의 김영복, '유카리화랑' 노광래,

그리고 인사동에서 대폿집하는 '푸른별이야기' 최일순, '유목민' 전활철씨 처럼 생계와 연관되어 터 잡고 사는 분들도 있다.

 

예술로 빌어먹는 술꾼들이 외상술에 개똥철학 풀던 그런 대폿집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으나

그 시절의 낭만과 풍류를 못 잊어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인사동을 배회하거나,

그 때 그 사람들이 그리워 만날 날만 기다리는 유목민들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 시인 조준영, 화가 장경호, 이청운, 연극배우 이명희,

뮤지션 김상현씨 같은 인사동파 예술가들이 있기에 모두들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편하게 죽치고 앉아 회포를 풀 장소도 마땅찮거니와, 모두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

가끔 지인들이 전시회를 열거나 출판기념회라도 하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호사는 누리지만,

술자리 분위기가 예전 같잖다. 이 것 저 것 눈치보여 마음이 편치 않은데다, 신나게 놀 수가 없다.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부지런히 사진은 찍어왔지만, 이젠 기력마저 떨어진데다, 

그 동안 찍어 모아 둔 사진 정리할 일이 더 급하게 되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은 잘 이해될지 모르지만,

낭만과 풍류가 있었던 당시의 인사동 문화는 질퍽하면서도 따뜻한 정으로 이어져 있었다.

모두들 주머니는 비었으나 밤새 외상술 마셔가며 예술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노래했던 것이다.

이제 모두들 가버리거나, 떠나고 싶어도 마땅히 갈 곳마저 없어,

그 흐릿해 가는 추억만 까먹는 사람들이 인사동을 떠돌 뿐이다.

그래! 이런 케케묵은 감상들을 널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늙었다는 것 일게다.
결국 늙으면 죽는 것이겠지만, 저승에서 만나게 될 선생님들 뵐 면목이 없다.

 

지난 사진첩을 뒤적이며, 그 때 그 시절의 추억들을 꺼내본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 / 글 : 조문호

 

 

 

 

 

 

 

 

 

 

 

 

 

 

 

 

 

 

 

 

 

 

 

 

 

 

 

 

 

 

 

 

 

 

 

 

 

 

 

 

 

 

 

 


봄 꾀꼬리를 형상화한 궁중무용 ‘춘앵전’이 지난15일 오전10시부터 오후10시까지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궁중무용 여민(與民)마당’으로 이름붙인 이 날 공연은 시민과 춤꾼이 함께 어우러져 춘앵전을 펼치는 1부와, 궁중무용협회의 회원들의 순서인 2부, 박은영 궁중무용춘앵전보존회 이사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복원 재현한 춤으로 ‘순조기축년 자경전 야진찬’이란 궁중무용의 순서인 3부로 나누어져 진행되어다.

박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4)는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궁중무용을 궁에서 해방시켜 거리로 내보내는 게 목적"이라며, 외국인들에게 늘 보여 줄 수 있는 상설공연장을 인사동에 만들기 위해 이번 잔치를 주선하였다고 한다.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앵삼(鶯衫)을 입고 화관을 쓴 채 오색 한삼(汗衫)을 양손에 끼고 추는 우아한 춤사위는 광복절을 맞아 인사동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과 외국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달부터 용돈이 불어나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정부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으로 올려줘 고맙기는하지만,
그러다 나라가 거덜나지 않을지 염려된다.

강 민선생과의 오찬약속에 인사동으로 나가며, 밥값은 내가내기로 작정했다.
약속장소인 포도나무집에는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김가배, 신동명선생 그리고 여행작가 정선모씨가 함께 계셨다.
오뎅탕과 복분자를 주문하였으나 음식도 나오기도 전에 신동명시인께서 계산해 버렸다.
급히 나오느라 은행에 들리지 못해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없는 신세를 빨리 면해야 할텐데...

뒤늦게 이행자시인이 나타났다.
이행자시인은 술이 거나해지면 대화가 과거형으로 돌아간다.
옛날에는 어떠했고, 누구와는 어떻게 지냈다는 등 별 재미없는 이야기 일색이지만,
가끔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동요를 불러주는 애교도 있다.
그 날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은, 이행자시인이 50여 년 동안 왼쪽 무릎 없이 버텨왔다고 한다.

멀쩡한 다리로도 걷기 힘들어 짜증 부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위기를 바꾸려 느닷없는 이행자시인의 애정 편력을 물었는데, 그 답이 걸작이었다.
“연가는 많이 불렀지만 히트곡이 없다”는 것이다.

오후8시부터 시작되는 ‘넋전 아리랑’을 보고 가려니,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전시장도 가고 사진도 찍었으나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통인가게 대표 김완규씨도 만났고,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도 만났다.

정말 일하는 것 보다 노는 게 더 힘들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유목민’으로 오라는 공윤희씨의 전화가 왔다.
'유목민'에는 공윤희, 전활철, 김왕기, 김명성, 신현수씨가 있었고, 뒤늦게 노광래씨를 비롯하여 

무세중, 무나미선생도 오셨다. 몸이 편치 않으니 술 맛도 없지만 즐겁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마신 술이라고는 ‘포도나무집’에서 마신 복분자2잔, ‘예당’의 막걸리2잔,
‘어머니가 구워주신 생선구이’에서 소주2잔 등, 몸 생각하느라 술을 찔끔찔끔 마셨으나,
결국 마지막 들린 ‘유목민’에서 취하고 말았다.

 

 

 

 

 

 

 

 

 

 

 

 

 

 

 

 

 

 

 

 

 

 

 


할머니 고쟁이에서 꺼내는 꼬깃꼬깃 접은 쌈지 돈을 받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쌈지는 우리에게 보물단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겨운 이름으로 십년 전 문을 열었던 ‘쌈지길’이 이젠 인사동의 명물이 되었다.

이름은 쌈지길이지만 골목길을 수직으로 올려지은 4층짜리 건물인데, 건물 안 ‘ㄷ’자형 마당에서 이어지는

나선형 통로에 갤러리, 전통 공예점, 전통 식당과 찻집 등이 오밀조밀하게 쭉 늘어서 있다.

쌈지길은 건물을 오르는 경사길을 ‘오름길’이라 부른다. 제주의 오름을 연상케하는 한 오름, 두 오름, 세 오름,

네 오름 하는 이름들이 정겹다. 네 오름을 오르다 보면 여기 저기 작은 공간들이 다가온다.

이리로 빠지면 작은 정원이고 저리로 빠지면 계단길이고, 조금 더 오르면 바닥이 나무 길로 바뀌다가 또 흙길로 바뀐다.

건물을 휘감고 도는 경사로가 4층까지 연결되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옥상의 하늘정원에 도착한다.

그 곳은 작은 정원이지만, 인사동의 하늘을 안을 수 있는 곳이다,

 

쌈지길의 첫 번째 매력은 하늘정원에서 인사동 곳곳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화적 재미난 요소나 이야기 거리가 흘러넘친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늘렸고, 건물 곳곳에 휴식공간들도 많아 잠깐 쉬기에 안성마춤이다.

그래서인지 인사동을 찾는 젊은이들이 대개 한 번씩은 들리는 관광코스처럼 되어버렸다.

 

유료이기는 하지만 지난해부터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곳에 신기한 볼거리는 물론 사진 찍을 곳이 많아 방학을 맞은 애들 데리고 한 번쯤 가볼만하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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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길은 청춘들의 문화소통 공간입니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인사동들리면 꼭 찿는다는 곳이지요.

전주 청년몰과 비슷한 분위기의  쌈지길은 인사동을 대표합니다.

전통 먹거리를 파는 좌판, 대학생 공방 같은 정감있는 장소도 있고,

커다란 장미나무와 같은 사진찍기 좋은 장소가 많답니다.

 

모두들 서울을 빠져 나가는 피서철에 서울로 돌아왔다.
전시 오프닝을 비롯한 몇 가지 일로 8월5일까지 체류할 작정이다.

지난 7월31일, 서울에 도착하자 말자 아내와 함께 인사동으로 나갔다.
오랜만이라 갈 곳, 볼 것도 많지만, 김명성씨와의 약속이 있었다.
비에 젖은 촉촉한 인사동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아라아트’에서 김명성씨를 만났다.
그리고 전인미, 김은경씨 등 '아라아트' 직원들과 함께 조계사 뒤편에 있는 생고기집에 들려 소주 한 잔 했다.

그 곳에서 개선장군처럼 등장한 한나라당 간부 김철기씨도 만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유목민'에 들려 전활철, 공윤희, 김대웅씨도 만났다.

 

 

 

 

 

 

 

 

 

 

 

 



태풍이 몰려온다는 7월9일의 인사동은 불쾌지수가 꽤 높았다.
그날따라 모금 나온 학생들은 많았으나 손님들이 적었다.

인사동엔 까딱이를 비롯해 유별난 거지들이 많이 찾아든다.
모두들 얻어먹어도 너무 당당하다.

오늘 만난 거지의 구걸하는 자세는 그의 행위예술 수준이었다.
그렇게 구걸해서 소주 한 병으로 허기를 메운 뒤 꾸벅 꾸벅 졸고 있다.

 

같이 술 얻어먹는 거지팔자지만, 나보다는 훨씬 배짱 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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