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발언’ 창립 40주년을 맞아 노년의 민중 화가들이 다시 뭉쳐 세상에 말 걸고 있다.

 

암울한 유신시절이었던 80년도 창립된 ‘현실과 발언’은

81년 ‘도시와 시각’전으로 서울을 비롯한 광주와 대구에서 순회전을 가진바 있다.

이듬해에는 ‘덕수미술관’에서 ‘행복의 모습’전을 열었는데,

‘그림과 말’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 때인 82년이었다.

10년 동안 활동하다 90년 해체되었지만, 작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화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 토론하고 연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미술(美術)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 케테 콜비츠의 말처럼,

미술에서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다.

자유롭게 발언하는 소통의 기능을 통해 삶의 맥락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당대의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미술로 표현하며 시대와 소통했다.

 

당시 회지 제호였던 '그림과 말'을 그대로 내 건

'그림과 말 2020'展이 지난 1일부터 삼청로 ‘학고재’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 판화, 설치, 사진 등 106점을 내건 전시에는

작가들의 청년기 작품과 최근작을 비교할 수도 있는데,

다들 젊은 시절의 열기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용태, 최민씨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윤범모씨가 빠진

강요배,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박불똥, 박재동, 성완경, 손장섭, 신경호,

심정수, 안규철, 이태호, 임옥상, 정동석, 주재환씨 등 열여섯 명이 참여했다.

 

‘코로나19’ 광풍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피하기에 개막식엔 참석 못하고,

지난 7일에야 전시장에 들릴 수 있었다.

 

본관 중앙에는 심정수씨의 조각 ‘사슬을 끊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억압받는 청년의 초상으로,

사슬과 장벽을 끊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다른 전시와는 달리 전시 공간 한 곳에 ‘진행형 프로젝트 룸’을 설치하여

작가들이 작업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라.

 

그 날은 전시작가인 김건희, 노원희, 박불똥, 박재동씨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취재 나온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와 사진가 양시영씨도 만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룸은 전시가 진행되는 한 달 내내 작가들이 오가며

작품 활동을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공간이다.

 

작가들이 동시다발로 프로젝트 룸에서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데,

나온 작가가 자기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앞사람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고,

재해석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임옥상씨는 전시 기간 동안 "내달려라, 그림!"이라는 주제의 관객 참여 형 작업을 펼친다.

즐겨 다루는 흙 위에 드로잉을 하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겨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관람하는 것 외에도 참여 작가를 여럿 만날 수 있어 좋다.

작업을 지켜보거나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간 날은 박재동화백이 관람객의 초상화를 그리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원희 작가는 관람객에게 바느질 작업을 지도했다.

그 날은 먹을 복이 있는지, 한 쪽에서 김건희, 박불똥씨가 피자 파티를 준비했더라.

 

전시장을 둘러보니, 현실사회를 향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으나,

민주화 영향인지 표현 방식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진보 성향인 민중미술가들의 이념적, 정치적 색채가 잘 드러났다.

 

신경호씨의 '꽃불(화염병)-역천(逆天)‘과

5월18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작품 '넋이라도 있고 없고-초혼'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빨갱이의 상징 깃발 같다'며 압류 당하여 20여년 만에 돌려받은 작품이었다.

 

1980년 군사정권의 공포를 그 당시 나온 ‘쭈쭈바’의 광고 문구로 풍자한

‘얼얼덜덜’을 선보인 김건희씨는 지난해 그린 촛대바위 연작을 내 걸었다.

 

김정헌씨는 폐공장을 배경으로 버티고 선 큰 나무를 그렸다.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란 제목을 붙였다.

1982년 작품은 미래를 위해 달리는 건강한 노인의 모습을 담은 '행복을 찾아서'가 걸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씨는 '바이러스' 연작으로 방송인 김어준씨를 그리기도 했는데,

검찰, 언론개혁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모든 그림은 말을 한다. 속삭임으로든 침묵으로든. 그러나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의 아픔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범죄였다.”

 

민정기씨의 ‘1939’에는 절정의 색채를 뽐내는 인왕산에

‘천황폐하 만세 조선총독부교무국’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캔버스에 음각으로 표현된 문자의 주변은 상처처럼 불그스름하게 표현했다.

일제 만행의 아픔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신관 입구에 들어서면 이름 없이 목숨을 잃는 근로자를 기리는

이태호씨의 '무명 사망 근로자를 위한 비'를 만날 수 있다.

작품 중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에게 수여한

반어적 의미를 담은 '상패' 연작과 짱돌도 전시되어 있다.

 

임옥상씨는 흙에 귀의 한 듯하다.

대지를 닮은 배경 위에 먹선을 힘차게 그은 ‘흙’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구작 '신문-땅굴'은 제3땅굴을 발견하여 보도한 신문을 재료로 만들었다.

신문 콜라주 위에 성에 낀 듯 뿌연 막을 씌워, 국민의 눈을 가리려 한 군부독재의 만행을 비꼬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 4·3항쟁을 알리는 역사화 연작을 그려온 강요배씨는 

가을 제주 오름에 핀 물매화와 들꽃의 자줏빛을 표현한 ‘노야(老野)’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역사 이념논쟁을 비판한 박불똥씨, 신목(神木)과 자연 풍경을 추상화한 손장섭씨,

휴지와 폐비닐 등을 사진으로 담는 성완경씨, 빈 액자를 내 건 주재환씨 등 볼만한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전시기간 동안 부대행사도 열린다.

오는 11일은 이태호씨 진행으로 '1980의 발언과 2020의 발언' 1차 토론회가 열린다.

25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2차 토론회가 열린다.

 

이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메멘토, 동백”도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6월 01일 (금) 00:25:11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일 ‘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월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상(象)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작품 앞에 선 화가 강요배


전시되고 있는 “상(象)을 찾아서”는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보여 줄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부 ‘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부 ‘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강요배,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그림의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강요배,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이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강요배,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며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삽화는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요배,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강요배,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자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단다.


이번에 전시한 ‘상(象)을 찾아서’는 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象'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다.

'상(象)’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강요배,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강요배,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 우레비, 2017 Acrylic on canvas 259


강요배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는 '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강요배,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쌘 제주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강요배,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그런데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뒤풀이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보는 마음이 찡했다.


6월17일까지 학고재(02-720-1524-6)에서 열리는 “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4,3항쟁을 그린 2부작 “메멘토, 동백”은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열린다.










 

622일부터 715일 까지 메멘토, 동백으로 이어져...



작가 강요배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1부 '우레비'를 관람하고 있다. 2017 Acrylic on canvas 259


 

전시되고 있는 ()을 찾아서622일부터 715일까지 보여 주게 될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 한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1부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2부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은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요나라 요), (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1부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현실과 발언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는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한겨레신문 삽화로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2부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4,3을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2부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제주의 자연을 찾아 나섰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1부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이번에 전시한 ()을 찾아서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 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

'()’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2부 토벌대의 '포로' 1992 Acrylic on canvas 97X162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2부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2부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씨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1부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뒤풀이가 있은 그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이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자리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마음이 찡했다.





그 날 참석한 분으로는 원로 손장섭,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신학철, 유홍준, 김정헌, 박재동, 임옥상, 민정기, 황의선,

우찬규, 윤범모, 장경호, 조경숙, 김환영, 허상수, 박홍순, 김영중, 김태서, 박 건, 박은태, 박불똥, 안창홍, 김준권, 최석태,

김종길, 이종구, 정동석, 이광군, 김정대, 성기준, 이지하, 마기철, 노형석씨 등이다.



    

 

617일까지 열리는 ()을 찾아서에 이어지는

4,3항쟁을 그린 메멘토, 동백오는 622일부터 715일 까지 열리니 많은 관람 바란다.

학고재(02-720-1524-6)

 

사진, / 조문호














































































































 

 

 

 


1부. 상(象)을 찾아서 Ⅰ. Just, Image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2018_0525 ▶ 2018_0617 / 월요일 휴관




강요배_수직 · 수평면 풍경 Vertical · Horizontal Scene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1.7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219g | 강요배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52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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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파고든 심상(心象), 추상(抽象)으로 꺼내다 ● 강요배의 제주 공간은 여유롭다. 새로 지은 작업실 귀덕화사(歸德畵舍)는 높고 널찍하다. 다듬지 않은 앞뜰에는 지천의 수선화와 홍매가 지고, 붉은 동백과 귀한 흰 동백꽃이 가만가만 떨어져 봄 숨을 쉰다. 운치로 가득 넘친다. 지난 4월 초가 그랬다. ● 올해 제주 4월은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촛불정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4·3항쟁 70주년 기념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제주도립미술관에 들르니 4·3항쟁 70주년 특별전으로 한중일 화가들의 『포스트 트라우마』 전시가 한창이었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강요배의 『불인(不仁)』(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기획전의 백미였다. 지난 30년간 강요배가 그려온 '제주 4·3항쟁 연작'의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새로 작업실을 짓고 그린 작품으로, 500호 캔버스 4장을 붙인 333cm×788cm 크기의 대작이다. 강요배의 역작으로 꼽을 만하다. 항쟁 후기 1949년 1월 17일 제주 북동쪽 조천 북촌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현장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마을 전체가 모두 한날 제사를 지낸다는 이곳에는 현재 애기무덤을 포함해 20여 기의 무덤이 남아 있고,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림 제목은 '하늘과 땅 사이에 어진 일이 없다'라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에서 따왔다고 한다.(老子, 『道德經』) ● 화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1월의 팽나무 잔가지들이 세찬 바람을 타고, 마른 풀이 엉킨 제주의 풍경이 전개된다. 언덕에는 학살이 지나간 후 스러져가는 불꽃들과 쥐색 연기가 인다. 타는 풀내음만이 붓 너울에 묻어나, 그때의 상흔을 처연하게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엔 죽인 자도 죽은 자도, 인간은 없다. 언뜻 보면 학살의 현장이라기보다, 그냥 회갈색조 바탕에 눈보라 이는 겨울 풍경화이다. 종이를 접어 물감 묻혀 쓴 강요배 특유의 선묘들만이 화면 구석구석 이리저리 성글게 흩날리며 여운을 풍긴다. 아픈 역사의 대지를 이렇게 녹여냈다.



강요배_수평선 Horiz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8


너울대는 종이 붓의 제주 진경화(眞景畵) ● 강요배는 일반적인 붓보다 빗자루, 말린 칡뿌리, 종이를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고향 제주에 내려와 제주의 자연을 그리면서, 투박하고 성근 제주의 땅과 돌과 풀, 나무에 어울리는 도구를 나름 개발한 것이다. 1994년 『제주의 자연』 전(학고재 갤러리) 뒤부터 20년 이상 종이 붓을 줄곧 써왔다. ● 켄버스 옆에는 몇 상자씩 종이 붓이 쌓여 있다. 종이 붓은 대롱도 없고 털도 없다. 종이 붓의 선과 터치는 손이 가는 대로 잘 따라오지 않을 법하다. 어떨 때는 종이 붓과 손이 따로 놀거나, 의도하지 않은 자국이 종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흐물흐물 거리기 십상일 터인데, 강요배의 캔버스에는 종이 끝을 스친 물감이 빠르게 이미지를 형성한다. 때론 선들이 거칠게 서걱대거나, 춤추듯 쉭쉭 하며 신명이 넘쳐 있다.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 붓 터치들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흥에 겨워 현란하다. 완연히 강요배식 종이 붓 화법을 창출한 셈이다. 2016~2018년에 그린 이번 전시의 30여 점은 종이 붓 씀씀이가 최고조에 이른 듯하다. ● 「항산(恒山)」은 한라산 정상의 설경을 500호에 담은 대작이다. 귀덕 작업실 마당에서 동쪽에 솟은 모습이다. 반은 자색 그늘의 설산이고, 반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힐긋힐긋 드러나 있다. 풍경을 덮은 종이 붓 자국들은 이제 달인의 경지이다. 옆으로 흐르면서도 상하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리듬을 타 있다. 손길을 따른 우연의 색선들이 필연으로 그렇게 붓 길을 만들었다. ●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우뢰비(雷雨)」, 큰 파고의 「보라 보라 보라」, 바닷가 개펄의 「개」, 해변 벼랑에 몰아치는 「치솟음」이나 「물부서짐(碎水)」, 구멍 바위로 불어 닥친 「풍혈(風穴)」, 마을 신목인 「풍목(風木)」, 이번 겨울의 「폭풍설」, 제주 백사장의 푸른 바다 「수평선」, 초록바다에 뜬 달 「수월(水月)」, 앞마당 홍매의 「춘색(春色)」 등도 눈길을 끈다. 역시 종이 붓질의 득의작(得意作)들이다. ● 이들은 어느 특정 지역이나 공간을 사생하기보다 머리에 선명하게 남은 이미지로 재구성했으니 엄밀하게는 관념화인 셈이다. 더욱이 「우뢰비(雷雨)」는 주역의 괘상(卦象) '해(解)'로, 「보라 보라 보라」는 '환(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은 강요배가 평생 눈에 익히며 가슴 깊이 파고든 '심상(心象)'이자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이다. 그런 측면에서 관념화가 아닌, 분명 제주를 기억한 진경화(眞景畵)라 할만하다. ● 짙은 구름 사이 노을빛 쏟아지는 「풍광(風光)」, 저녁노을의 「파란 구름」, 겨울 동트는 「동동(冬東)」, 서리 내리는 계절 「상강(霜降)」의 노을 하늘, 가을의 높은 하늘 「천고(天高)」 등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하늘 그림도 마찬가지 진경이다. 「풍광(風光)」에 표현된 짙은 구름 틈새는 하늘을 나는 봉황새답다. 붓질은 날갯짓을 따라 스피디하고, 찰나의 노을빛 연노랑색은 찬연하다. 「동동(冬東)」의 새벽하늘은 날개를 편 용오름 같다. 미끈한 표면의 「천고(天高)」에 흐르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되는 모양새이다. 필자와 강요배는 학고재 후원으로 1998년 8월 평양지역과 금강산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강요배는 당시 확인한 고분벽화의 구름무늬가 그냥 상상한 도안이 아니라, 관찰한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抽象)해낸 결과물임을 재확인했다며 즐거워했다. ● 초록빛 「흑산도」는 사생화의 맛이 물씬해 좋다. 흑산도의 전형적인 암반의 벼랑 풍광이 아니라, 능선을 오르다 굽어본 숲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그림의 능선 너머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한 정약전의 유배지였다. 화면 가득 채워 포착한 시선이 강요배 답기도 하고, 새로운 구도로 다가온다. 여행이 준 선물이다. 

 


강요배_치솟음 Upri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94cm_2017


정겨운 일상과 귀덕 친구들 ● 강요배는 요즈음 사생에 잘 나서지 않는다. 대신 작업실이나 주변에 찾아드는 자연의 벗들을 일상과 함께 즐겨 그린다. 삶 가까이에서 만나는, 소소하고 정겨운 그림들을 이번 전시에 여러 점 선보인다. 화실을 오가는 고양이, 왜가리, 까마귀 등과 뜰에 피고 지는 꽃과 나무 등의 친구들 상(象)은 또 다른 추상(抽象)이다. 눈에 띈 사물을 마음에 품었다가 추상화해낸 그림이다. ● 빨간 열매가 달린 먼나무에 수돗가에 쌓인 눈 그림 「수직·수평면 풍경」, 푸른 그림자 드리운 나목의 눈 밟기 「답설(踏雪)」, 겨울 하늘에 매달린 붉은 감 「동시(冬柿)」, 눈밭을 차오르는 왜가리 「으악새」, 잠시 개울가에 둥지를 튼 「한조(寒鳥)Ⅰ」 「한조(寒鳥)Ⅱ」, 흰 눈밭의 까마귀 떼 「설오(雪烏)」 등은 겨울 향기가 가득하다. 올겨울 유난스레 눈이 많았던 설경 속 이미지를 놓치지 않은 강요배의 눈썰미와 따스한 감성을 엿보게 한다. ● 「답설(踏雪)」의 옥색 푸른 그림자는 순간을 포착한 전형적인 인상주의풍이다. 단숨에 묘사한 「설오(雪烏)」의 까마귀들 동세는 흰 여백과 더불어 마치 수묵으로 그린 선화(禪畵)다우며, 강요배 추상론의 형상미에 근사하다. 특히 「한조(寒鳥)Ⅰ」 「한조(寒鳥)Ⅱ」의 웅크린 왜가리는 자세 그대로 강요배의 자화상일 법하다. ● 절친이 될 뻔한 검정고양이 「오지 않는 길양이」와 노란 귤 사이 검정고양이의 「봄잠」 그림은 맑은 화면에 봄기운이 나른하며 정겹다. 역시 선화(禪畵)의 맛을 풍긴다. 「백일홍」 「흰모란」 「춘색(春色)」의 홍매 등에 구사된 자연의 색깔이나 대상 색 면의 질감에는 꽃내음이 묻어난다. 「두부, 오이」는 비릿하며 단내 상큼하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갖고 싶은 그림이다. 즐기는 술안주를 소재로 삼아서인지, 이 소품 두부와 오이 정물은 강파른 현실에 맑은 치유의 향기로 다가온다. ● 이처럼 강요배는 귀덕 생활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상(象)을 찾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읽는다. 강요배의 성정性情이 잘 드러난 그림들이다.민중미술에서 회화의 본질로 다가서 ● 최근 캔버스에 쏟은 강요배의 사유와 몸짓은 강요배 회화의 속성이 그렇듯이 프랑스에서 발전해 세계화된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기반으로 삼는다. 강요배의 요즈음은 일본을 통해 인상주의 배운지 100여년 만이다. 고희동에 이어 김관호가 1916년 두 여인의 해질녘 목욕장면을 담은 대동강변 「석모(夕暮)」(동경미술학교 졸업작품이자 일본공모전 문부성미술전람회 특선작)를 기준으로 볼 때 그러하다. 이후 오지호와 김주경, 도상봉, 이대원 등으로 내려오며 우리 땅의 사계 경치과 풍물을 통해,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일구었다. ● 강요배는 빛과 색의 회화성뿐만 아니라 땅의 역사와 자연의 형질, 추상의 길까지 선배들보다 한발 진보해 있다. 1980년대 민중작가로, 1990년대 제주4·3항쟁 연작을 완성해낸 화가로, 독서와 사색을 통해 강요배는 진정한 인상주의적 자기 기풍을 창출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회화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생각한다. ● 강요배의 종이 붓 그림은 유럽 인상주의 회화를 완성한 거장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의 1910~1920년대 「수련」 연작을 떠오르게 한다. 화면에 가득 찬, 분방하게 튀는 붓질 선묘가 특히 그러하다. 「불인(不仁)」 「항산(恒山)」 「우뢰비(雷雨)」 「보라 보라 보라」 등은 대작의 위용이나 감명에서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서 실견했던 대형 「수련」 연작에 못지않다. 모네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 눈을 떴을 때 받은 빛의 찬연함을 상상하며, 1890년대 이후 「건초더미(wheatstack)」나 「수련(nympheas)」 같은 연작들에 몰두했다. 이들은 결국 현대회화에서 추상(abstract) 표현의 원조로 재평가 받는다. ● 강요배의 화론은 내면에 들어온 심상(心象), 주역으로 해득하려는 괘상(卦象), 내 생각을 남과 공감하고 공유하며 공동체의 추상(抽象)을 추구한다. 이렇게 동양예술론에 근사하며, 생애 첫 빛을 기억해내려던 모네보다 차분하다. 캔버스 전면에 풀어낸 종이 붓의 흔적들도 서양 마네의 뻐신 붓질보다 한층 유연하다.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이다. 단연코 강요배 회화를 한국화라 할만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능란해진 강요배의 종이 붓은 이제 그를 떠나지 않았나 싶다. 도가의 무위(無爲)나 불교의 무상(無相)의 경지를 찾아선 듯하다. 「우뢰비(雷雨)」 같은 작품의 빗물 표현은 민요나 산조의 허튼 가락처럼 산란하다. 자연스레 일렁이는 강요배의 종이 붓 숨결은 퍼지 논리(fuzzy logic)의 불규칙한 정형성과 유사하다. 추상표현주의 화풍의 올 오버 페인팅(All-over-painting)과도 닮은꼴이다.


강요배_파란 구름 Blue Clou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3cm_2017

 

 

절정기를 맞은 상(), 추상(抽象)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을 찾아서'이다. 여기서 상은 '코끼리 상'이다.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 시절의 상형문자는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이다. 뼈의 외물을 사람마다 다르게 그리는 데서 상상想像(想象)이라는 단어가 파생했다고 한다.(韓非子, 解老編) '형상(形象)'에서 ''은 눈에 보이는 것(Form), 상은 마음에 남은 것(Image)을 말한다. 또 강요배가 최근 천착했던 주역(周易)64괘도 하늘의 여러 징조(徵兆)들을 상()으로 파악한 것이라 한다. 이처럼 상()은 뇌리에 남은 마음의 이미지이자 하늘이 펼치는 조짐(兆朕)의 흔적이니, 강요배 회화에 딱 맞는 아젠다(Agenda)이다. 이번 작가의 글 "사물을 보는 법"에 그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강요배는 '나만의 시선 안에 있고, 심적 여과 과정을 거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되살아난' 형상에서 찾는 '강렬한 요체' 또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명료함''추상(抽象)'이라 한다. 현대미술 사조에 대입한다면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도 그 범주에 들겠지만, 강요배는 '추상(抽象)'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묵죽도나 사군자 그림을 추상화의 한 형식으로 본다. 맞다. 우리 옛 화가들은 거의 사생보다 기억으로 외워서 그렸다. 동양화론에서는 이를 '마음에서 쏟아내 그리다', '사의(寫意)'라고 했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蘇東坡)'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가슴에 대나무를 길러야 한다''흉중성죽(胸中成竹)'의 사의론을 폈다.(蘇軾, 篔簹谷偃竹記) 중국 근대회화의 큰 스승인 제백석(齊白石)'삼라만상이 머리에 들어 있는 것 같다'라고 제자들이 술회한다. 단출한 구성과 형상의 사의 그림 문인화는 물론이려니와, 한국미술사의 거장 겸재 정선(謙齋 鄭敾)도 주로 마음에 담은 실경이나 금강산 유람을 추억하며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 최근 강요배는 절정기를 맞은 듯하다.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 2015) 제주에서 가진 회고전 시간 속을 부는 바람(제주도립미술관, 2016)에 이어 이번 학고재 갤러리의 ()을 찾아서전까지, 계속해 새로이 대작들을 선보여 왔다. 이들은 모두 강요배의 수행과정에서 인생과 사유와 회화가 통합의 길에 들어섰음을 일러준다. '몸 안의 천()과 마음',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뽑은 '추상(抽象)'과 정수(精髓)'()'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아래는 작년 '해석된 풍경'이라는 기획전 도록에 실린 강요배의 인터뷰이다. "...자연물은 몸 밖에 있고, 천은 몸 안에 있습니다. 장자도 하늘은 마음속에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자연을 통과해서 하늘을 찾아가야 합니다. 천심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천의 곡조를 듣는다는 거예요...저는 회화를 통해...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는 것을 꿈꿉니다." "...50대 이후15년 동안 저는 내면에 있는 천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천의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그림에서 자연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의 문이랄까..."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은 오인되어 왔습니다. 라틴어를 봤더니 abstract에는 떨어져서 끌어낸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무도 그렇게 추상화하는 겁니다..., 에센스. 이건 효율성이에요. 향은 정수에 닿아 있습니다...이것은 많은 것을 커버하고, 모든 갈등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마술적이에요." (김지연, "회화, 을 만나는 과정" 강요배 인터뷰, 해석된 풍경, 성곡미술관, 2017.)

 

강요배가 쏟아낼 향내 그림들 이번 전시작품들은 강요배가 마음으로 파고드는 심상(心象)에서 가슴으로 보듬어 단순해진 추상(抽象)에 몰입해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심 없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무관심성', 그리고 주관적 미감정이 객관화되는 주관적 필연과 보편, 곧 모든 이들에게 '공통감각'이 되는 취미판단 같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미학 개념을 소화한 듯하다. 이번 만남에서 강요배는 주역보다 '무관심성'이나 '공통감각'의 칸트 얘기를 유난히 입에 올렸다. 그러면서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이 남들도 공감하고, 모든 이가 그렇게 부담 없이 그림 그린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지금 강요배의 삶 풍경이 이번 그림들처럼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 강요배가 앞으로 얼마만큼 쏟아낼 향내 나는 그림들을, 부러워하며 한밤중 별무리 가득한 귀덕화사(歸德畵舍)를 나왔다. 이태호

    

강요배_항산 恒山 The Eternal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333.5cm_2017



Vol.20180525a |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9월24일까지 학고재 전관에서 열려

2017년 08월 21일 (월) 04:34:45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얼마 전부터 민중미술이 새삼 뜨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뒤늦게 미술의 가치를 알아챘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민중이란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백성의 삶과 아픔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꿈 Dream, 2013, 캔버스에 유채, 조화 Oil,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259x388cm

작품을 배경으로 선 송창 작가. (사진=조문호)


민중미술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들끓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80년대부터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운동에 의해 예술이 사회를 향한 발언으로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성완경, 김정헌씨 등 10여명의 미술인들이 힘을 모아 ‘현실과 발언’이란 운동을 펼칠 즈음,

송창을 비롯하여 박흥순, 이명복, 이종구, 전준엽, 천광호, 황재형씨도 ‘임술년’이란 민중미술 단체를 만들어 나선 것이다. 



▲송창, 굴절된 시간 Refracted Time + 미사일 Missile, 2016, 포탄에 아크릴릭, 우레탄페인트, 조화

Acrylic, urethane paint, artificial flowers on bombs, 가변크기 Size variable


80년대의 한국 정치사는 강압적인 독재 정치를 일삼아온 지배 권력과 이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시민들은 물론 예술가들의 격렬한 투쟁으로 얼룩진 시련의 역사였다.

그 핍박과 가난에도 버텨 온 민중작가들이 뒤늦게나마 인정받아 화단의 주체가 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학고재’에서 “꽃그늘”을 보여주는 송창 역시 이미 작품 값이 만만찮은 민중미술의 대가

신학철, 황재형, 이청운, 강요배씨와 함께 어깨를 겨눌 수 있는 핵심 작가이다.



▲송창, 그곳의 봄 The Spring of That Place, 2014, 캔버스에 유채, 조화 Oil,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194x379cm


송창은 전쟁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인 분단의 풍경을 그리며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파주, 연천, 포천, 철원 등지의 전쟁의 상처가 또렷한 도시를 여행하며 상처의 딱지를 하나하나 채집한 것이다.

틈이 나면 공원묘지와 추모공원에 놓인 낡은 조화도 수거했다. 비바람에 얼룩진 조화를 씻어내 작품에 덕지덕지 붙였는데,

그 꽃들이 그가 그린 유화 속에 다시 피어난 것이다. 전쟁과 죽음 속에 피어 난 조화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꽃들 사이사이로 유골과 날카로운 쇠못의 자취들이 번득거린다.

냉기 어린 분단의 땅 위에는 음울함과 희망이 뒤섞인 채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작가는 분단의 현실과 안타까운 죽음에 바치는 헌화라고도 했다.



▲송창, 꽃그늘 Flower-Shade, 2017, 나무 실탄박스, 연습용 포탄 및 실탄, 조화

Wooden ammunition box, projectiles and ammunitions, artificial flowers, 가변크기 Size variable


전시장 본관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품 ‘꿈’이 웅장한 힘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경기도 연천 지역의 주상절리다. 용암이 굳어 알려진 곳이지만,

송창은 이곳에서 현재의 모습이 아닌 과거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을 본 것이다.

작품은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은 생생함이 느껴진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포연 자국과 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미처 다 짓지 못한 교량의 모습이 전쟁의 폐허를 재현하고 있다.



▲송창, 연천발-원산행 From Yeoncheon to Wonsan, 201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21x259cm


‘연천발 원산행’이란 작품은 고향을 지척에 둔 망향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그리고 지난해 작업한 '운명'은 북한 미사일과 연천 주상절리를 대치시킨 것이다.

북한 포탄이 떨어졌던 곳을 그린 그 작품은 아름다워도 꽃그늘처럼 그늘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품들은 대체로 농밀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기념비적 주제를 다룬 몇 작품들에서 그런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 예인 “그곳의 봄”(2014)과 “등록문화재 408호”(2014)는 서부전선에서 전사한 유엔군의 시신을 화장하던

화장장 시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화장장에 흩뿌려져 있던 조화를 작품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비판하며

사라지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송창, 등록문화재 408호 The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umber 408, 201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27.3x241.8cm


그는 한 때 독산동 근처 시흥의 산동네와 당시 난민 천막촌이 자리 잡고 있던 강남, 그리고 난지도 매립지 등을 그리기도 했다.

철거민과 빈민들의 끔찍하고 잔혹한 생활상 즉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슬프고 가슴 아픈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시가 토해내고 밀어낸 더러운 쓰레기 산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지도-매립지’(1984)는 황량한 매립지를 배경으로 격앙된 인간 군상이 그로테스크하게 뒤엉킨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립지와 군중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송창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것이다.

아름다웠던 난지도의 풍경은 오간데 없고 검붉은 하늘과 대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만 남았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붉은 쓰레기 더미 너머로 푸른 신도시의 풍경도 어렴풋이 보인다.



▲송창, 난지도-매립지 Nanjido - Landfill, 198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12.1x291cm


사회의 어둡고 부조리한 부분을 작품 속에 담는 온 송창은 회화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사용을 통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한 편으로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침울하고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푼 희망도 담겨 있다.



▲송창, 운명  Destiny, 2016,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81.8x287.3cm

열일곱 번째 열리는 송창 개인전 “꽃그늘”은’학고재‘(02-720-1524)전관에서 40일에 걸쳐 열리는 대형 전시다.

전시구성도 송창 작업 세계를 연도순으로 살펴볼 수 있게 펼쳐 놓았다.

본관은 조화를 사용한 2010년 이후의 신작 위주로 전시되고,

신관 지하 2층에서는 ‘매립지’ 시리즈를 비롯하여 분단을 다룬 2010년 이전의 대표작과 초창기 작품을 전시한다.

대작중심의 신작에서부터 초창기 작품에 이르기 까지 총38점이 전시되고 있다.


오는 9월24일까지 열린다.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
Painting as Tangible Vestige of History

손장섭展 / SONJANGSUP / 孫壯燮 / painting
2017_0517 ▶ 2017_0618 / 월요일 휴관



손장섭_동도에서 서도를 보다 Looking at Seodo from Dongd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291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411g | 손장섭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5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소격동 70번지)

Tel. +82.(0)2.720.1527

hakgojae.com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 손장섭의 2000년대의 회화 ● 2000년대 손장섭의 작업은 나무들과 자연 풍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그를 민중미술 작가로 분류하도록 만들었던 1980년대 역사화 연작과 비교해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손장섭의 작품 전반에 관한 글은 성완경, 『삶의 길, 회화의 길: 손장섭』(샘터아트북, 1991)을 참조. 손장섭의 1980년대 역사화 연작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삶의 길, 회화의 길』에서 4장 「조선총독부」와 7장 「역사의 창」 연작을 참조.) 그렇다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차이 혹은 변화는 어떻게 이해되어야만 할까? 작가 손장섭은 초기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했던 민중미술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미술적 실천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탐구하고 재현하는 주제들의 변화가 그의 작가정신과 작품세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손장섭_울릉도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in Ulleungd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12


사실 자연사물과 풍경은 민중의 역사와 삶을 표현하였던 1980년대의 역사화 연작 시기에서도 손장섭의 주요한 탐구대상이었다. 이 시기에 이 자연 풍경은 당시에 손장섭이 주제적으로 그려냈던 민중들의 삶의 터전과 환경으로 등장하였다. 말하자면, 손장섭에게 자연 풍경은 현실의 삶과 역사에서 유리된 관조적 대상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역사가 전개되고 있는 터전이자 그 역사가 배어있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손장섭이 나무와 풍경을 그리는 것 자체는 민중미술로부터의 탈피가 아니라 반대로 민중미술을 실천하는 손장섭 고유의 방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손장섭_인천 남동구 은행나무 Maidenhair Tree in Namdong-gu, Inche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2000년대 나무 연작과 풍경화 연작은 1980년대 작품들과 비교하여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1980-90년대 풍경화에서는 풍경과 민중의 삶이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가령 「그물 손질하는 어부」(1989)와 「개울가 고추밭」(1990)과 같이 이 시기의 풍경화는 농부와 어부가 일하는 풍경이나 노동의 장소를 주로 다루었다. 또는 분단의 풍경과 일하는 사람들을 한 화면에서 결합시킴으로써 (가령 「철책과 굴조개 따는 여인들」(1990)), 작가는 한국의 자연 속에 첨예하게 살아있는 분단의 역사를 형상화해낸다. 반면에, 2000년대 작품들에서 나무와 자연 풍경은 하나의 배경이나 터전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중심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손장섭_산신목 Tree of the Guardian Spirit of a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08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앞에서 말했듯이 손장섭에게 자연은 민중의 삶과 역사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손장섭의 2000년대 작품은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에 자연은 민중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민중은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작품들에서 자연은 민중의 삶의 배경이 아니라 민중 자체와 동일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소위 민중의 삶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요소들은 거의 사라지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 자연이 곧 민중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중을 이해하는 작가 손장섭의 시선은 자연을 바라보고 그리는 시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손장섭_변산 신목 Sacred Tree in Byeonsa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13


그렇다면 이 나무와 풍경을 통해 그려지는 민중은 어떠한 것인가? 1980년대 역사화 연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민중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 억압에 저항하는 전투적 모습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손장섭이 그리고 있는 저 나무들과 산들처럼 민중은 침묵 속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침묵은 어떤 무능력이나 수동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로, 그 어떤 저항보다도 강력한 저항, 그 어떤 능동적인 행위보다 더 능동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요란하지도 않고 아우성치지도 않지만 500년을 넘게 한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며 존재하는 저 나무들, 그것은 역사와 삶의 주체인 민중의 모습 자체인 것이다. 손장섭은 저 나무들과 자연 풍경 속에서 민중이 자연과 함께 가지고 있는 이 생명력과 힘을 포착해낸다. 이 근원적 힘은 고요하지만 역동적이다. 작가 손장섭은 여기에서 어떤 정신적인 숭고함을 보고 있는 것이다. ■ 유혜종


Painting as Tangible Vestige of History: SON Jang Sup’s Paintings from the 2000s ● Son Jang Sup focuses on trees and landscapes in his works from the 2000s. These works may feel rather unfamiliar compared to Son’s well-known history paintings from the 1980s, which categorized him as a Minjung artist, an artist of the people. How should this visible distinction or transition between the two groups of works be interpreted? Is it that Son is deviating from his defining earlier Minjung art and practicing a new path for his oeuvres? While this appears to be so, the transition of his works’ subjects does not signify the alteration of his overall artistic practice and oeuvres. ● In fact, nature and landscapes were Son’s primary subject even in the 1980s, the period in which he created the historical painting series. The nature and landscape in his works from this period were the foundation of life and of his principal subject, the people. In other words, nature was not an introspective subject disengaged from life and history; instead, it served as a site and foundation of ongoing life and history of the people, the grounds from which this ongoing life and history has been unfolded. With this perspective, Son’s painting of trees and landscapes is not breaking away from Minjung art. Instead, it is Son’s unique method of practicing Minjung art. ● Nonetheless, Son Jang Sup’s tree and landscape series from the 2000s are clearly distinct from his earlier works. In the earlier landscapes, nature and the people’s lives are directly united, usually depicting the site of labor for farmers or fishermen. Examples are seen in his Fishermen Tending Their Nets (1989) and The Pepper Farm by the Brook (1990). In another aspect, Son fuses the scenery of national division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with laborers into one picture screen, as seen in Security Fence and Women Picking Oysters (1990), embodying the acute reality of the division in his work. However, trees and nature themselves become the main subject matter in Son’s more recent works, rather than just background or the grounds for the people’s labor and living. ● So how could this shift be interpreted? As mentioned before, nature in Son Jang Sup’s work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history of the people. In Son’s recent works from the 2000s, nature shifts from a background for the people’s life and becomes the people themselves. For that reason, the elements that signify or are directly related to the lives of the people disappear in his works. In short, Son’s understanding of the people is reflected in his works through his observation and representation of nature. ● With this idea in mind, what is the meaning of the people depicted as trees and landscapes? The people are not depicted as oppressed or suffering, nor as resisting and antagonistic, as they were in Son’s historical paintings from the 1980s. Instead, the people are depicted as silent as the trees and mountains in his later work. However, this silence does not imply incapacity or passivity. In fact, it signifies just the opposite. The silence represents the most powerful resistance and the most determined and energetic force of the people. The calm and non-boisterous tree that exists and protects itself in one place for over 500 years is the very image of the essential force of history and life: the people. Son Jang Sup grasps the vitality and strength of the people and symbolically equates it to nature’s force and strength, a force evident in his trees and landscapes. His work captures this essential power as silent and tranquil, yet always as dynamic, embodying the spiritual sublimity of this force in his work. ■ Hyejong Yoo



Vol.20170517e | 손장섭展 / SONJANGSUP / 孫壯燮 / painting





봄바람 부는 지난 4일 오후5시 무렵, 경복궁 옆 ‘학고재’로 민중작가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 날은 그림판 낭만선생 주재환씨의 회고전 “어둠속의 변신”이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기괴한 형색으로 나온 사람들은 대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민중예술의 핵심이었다.

끼면 끼, 쌈이면 쌈, 술이면 술, 다방면에 달관한 동지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봄 사건 나부렀다.

 





아는 사람들을 즐겨 찍는 나로서는, 완전 물 만난 것이다.
전시를 연 주재환선생, 그리고 손장섭, 신학철, 강요배, 민정기, 임옥상, 김정헌, 성완경, 장경호,

박불똥, 류연복, 최석태, 박진화, 박 건, 이인철, 이태호, 이강군, 박흥순씨 등 '민미협' 작가들을 비롯하여,

백기완, 신경림, 강 민, 구중서, 채현국, 방동규, 무세중, 이수호, 김종규, 우찬규, 김승환, 박현수, 민충근,

김양동, 박영숙, 심정수, 박시교, 정희성, 정동석, 임진택, 무나미, 윤범모, 곽대원, 김준기, 박 철, 김영재,

두시영,  박대부, 지미정, 장유정, 이도윤, 신학림, 김종철, 성기준, 양원모, 김태서, 정정엽, 정필주, 노형석,

조경연, 채원희, 김영중, 마기철씨 등 문화예술 각계에서 한 가닥 하는 분들이 다 모여들어, 사진 찍느라 바빴다.


전시장에 모여든 분들은 삼삼오오 와인 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으나,

잘 모르는 관람객들도 한 둘 끼어 있었다.

초대된 분들이야 주재환선생의 작품들을 훤히 알고 있지만,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해 주위를 서성거렸는데,

녹슨 못을 액자에 달아 놓은 ‘악보’라는 작품을 보며 누가 한마디 했다.


“이건 나도 만들 수 있겠네! 근데 재밋다.”








달관자가 내 뿜는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을 알아본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비꼬는 선생의 작품에는 곳곳에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다른 민중작가들의 결연함이나 비장함 같은 것과는 다르다.

오브제로 활용하는 못 쓰는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일용품에서 영감을 얻는 풍자적 비판들은,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하면서도, 그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발랄함이 탁월하다.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난해한 현대미술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하다.

80년도부터 2015년까지 제작한 50여점의 전시작들은 자본주의 비판에서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실업 등

어두운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시니컬한 위트가 찰라의 성찰을 꾀하게도 했다.

서문을 쓴 유혜종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밤은 주재환의 유화에서 중요한 주제이자 배경, 그리고 세계다. (중략)
그 밤의 풍경은 다른 한편으로 주재환의 유년 시절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중략)
주재환은 일상의 사물들과 현상들을 자신의 미학적 공간인 밤의 세계에 옮겨와

그것들을 새로운 감각적 환경에서 재 구성한다.“





올해로 일흔 여섯인 주재환선생은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일 세대다.
홍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 끝내고 그만 두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먹고 살기위해 야경꾼에서부터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일찍 체득하지 않았나 싶다. 그게 바로 작품세계로 연결되어,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인 그의 유회적 비판정신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80년도 ‘현실과 발언’ 창립전 참여를 계기로, 90년도에는 ‘민미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래 본선에 초청 받는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가 했지만,

개인전은 환갑이 되어서야 시작해, 그 동안 몇 차례 초대전을 가졌다.

이번 기획전은 작가가 그동안 무엇을 보았으며, 왜 싸웠으며,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 만나러, ‘학고재’에 봄나들이 한번 가자.
이 전시는 내달 6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글 / 조문호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3일 만난 주재환 작가.

등 뒤로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했던 ‘몬드리안 호텔’(왼쪽)과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보인다. 서영희 기자



  
민중미술이 올해 미술계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두 대표 작가의 개인전이 대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얼굴 시리즈의 작가 권순철은 “캔버스 하나로 결정적인 감동을 주고 싶다”며 지금도 회화를 고수한다. 주재환은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이 유쾌하다. 1980년대 시대의 고민으로 뜨거웠던 30대 청년들은 이제 칠순을 넘겼지만 시선은 여전히 현실에 닿아있다.

‘유쾌한씨’로 불릴 만큼 위트 있고 풍자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서울토박이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76). 회고전 ‘어둠 속의 변신’전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은 민중미술의 진원지였지만 당시 그의 작품에선 악동의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몬드리안 호텔’만 해도 그렇다.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인 빨강, 파랑 사각형 안에 나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을 비꼬듯 그려 넣어 서양에 어퍼컷을 날렸다. 주먹 불끈 쥔 노동자, 대지 위에 몸을 구부린 농부 등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풍기는 결연함이나 비장감과는 차이가 있다.

1990년대 동네 주변에서 주운 폐품을 활용해 내놓은 ‘쇼핑맨’ ‘짜장면 송가’에서도 한결 같이 위트가 넘친다. 2000년대 들어서도 도난을 막기 위해 ‘훔친 수건’이라고 인쇄한 동네 목욕탕 타월을 갖다 쓰기도 했고, 지난해 오브제 작품은 ‘삼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 세대의 좌절을 라면과 커피믹스를 사용해 표현했다.

자본주의 비판,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 실업 등 세월이 흘러도 현실을 주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민중미술 작가다. 칠순 중반인 지금까지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풍자와 위트다.

그런데 유독 회화는 어두우면서도 몽환적이다. 심연의 바다 혹은 밤의 어둠 같은, 짙은 파랑색이 주조색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유화만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성장과정이 밝지 않아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1960년 홍익대 미대를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신혼의 그는 생업을 위해 통행금지를 알리는 야경꾼 일을 2년간 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을 패러디한 작품은 직업적 경험의 산물이다.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검은 고래가 신호등으로 바뀌는 ‘신호등’ 같은 회화 작품도 그 때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녹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민중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생계 전선에서 뛴 게 계기가 됐다. 미술사학자 임영방 주간의 ‘미술과 생활’ 잡지 기자로 취직해 기획위원 성완경, 편집위원 윤범모 등 훗날 민중미술 이론가가 된 평론가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돼 출발한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가담했다. 미대 중퇴 후 20년간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미술과는 상관없는 일을 전전하던 그는 그렇게 미술로 돌아왔다.

일부 평론가는 주재환을 개념미술 작가로 부르기도 한다. 회화든, 오브제든 글씨와 설명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게다. 그는 “나는 개념미술 작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외형이 비슷하다고 서양식 개념을 갖다 붙이는 건 서구 추종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의 원조를 그림 속에 화제(畵題)를 곁들였던 문인화 전통에서 찾았다. 그는 “옛 그림의 곁들인 글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날씨, 당시 상황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냐”며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다. 관객에게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친절한씨’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어야 할 것 같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선에 초청 받은 바 있다. 4월 6일까지.


[스크랩] 국민일보 /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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