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우포의 아침'



지난 1일 터키에 초빙교수로 가 있는 김용문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인사동 나왔으니, 대포 한 잔 하자는 전화였다.






이틀 전, 인사동 출입을 자제하며 사람을 가려 만나겠다는 결의문에 가까운 글을 올렸건만, 안 나갈 수 없었다.
그는 30여 년 동안 인사동에서 어울려 온 ‘인사동 사람들’ 원조가 아니던가.
‘사나이 명세 개 명세, 자고 나면 새 명세’란 말이 딱 맞았다.

몇 일을 참지 못한 채, 결심 자체가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담배 못 끊는 것이나 사람 못 끊는 것이나 똑 같은 이치다.
의사가 담배를 끊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에 가까운 말에도 피우듯이,
인연을 끊는다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초저녁부터 인사동으로 들어서다, 초입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를 만났다.

정영신씨 상가에서 만난 후 처음이라 같이 술 한 잔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마루’에서 열리는 김기춘씨 전시회 부터 들렸는데,

전시 작가인 김기춘씨를 비롯하여 배병수씨도 와 있었다.






김기춘씨는 내 고향 옆 동내인 ‘우포늪’으로 간지가 7년이 되었다는데,
전시된 사진도 ‘우포늪’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추측은 했지만, 우포늪의 생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곽봉수, 김갑진, 김경화, 김권하, 이상근, 추향자씨 등 화가들과 어울려 여는

단체전이라 그런지, 사진보다 그림에 가까웠다.
‘마루’의 ‘빛그늘 초대전’은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김용문씨가 기다릴 것 같아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목민’은 밖이 보이도록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놓았더라.
천상병선생께서 막걸리 드시며 윙크하는 오래된 내 사진을

투명판에 프린트해 붙이겠다는데, 공정이 까다롭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 때까지 주인공이 오지 않아, 최건모씨와 먼저 자리 잡았으나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김용문씨가 나타나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반가운 분들이 모여 들었다.
최종선, 공윤희, 김명성, 이인섭, 유진오씨가 나타났고, ‘풍류사랑’에서 넘어 온 ‘민미협’ 팀들도 속속 등장했다.
최석태, 최병수, 이인철, 김명희, 김정환, 심정수씨 등 십여 명이 모여드니, 술집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귀국한 김용문씨는 인사동 여관방에 짐을 풀고 묵는 중이라 했다.
오는 13일부터  '통인갤러리’에서 막사발전이 ‘열린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 듯, 그도 삭아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져 그런지, 말아 올린 상투가 애들 고추처럼 작아 졌더라.






그날의 이야기 거리는 ‘세계막사발미술관’이었다.
완주 삼례에서 ‘막사발미술관’을 폐관한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으나,
그 때가지 이전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터키에서 ‘막사발미술관’을 옮겨가겠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김명성씨의 야심찬 프로젝트도 들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어야겠다.
김명성, 김용문, 최근모씨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취기가 올라 합 바지 방귀 새듯 사라졌다.






늘 인사동에서 술 취해 나오면 갈등을 느낀다.
동자동으로 갈 것인가? 녹번동으로 갈 것인가?
유행가 가사처럼, 차라리 미아리로 가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9일 오후2시 무렵의 동자동 놀이터엔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보는 젊은이가 나타나 동자동 어깨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 방에 날아갈 것 같았는데, 계속 깐죽댔다.
욕설을 해대며 “한 판 떠 자”는 것이다,
겉 모양보고 싸우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만만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사라졌지만,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오후 여섯시에는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에서 오픈한 후원주점을 찾았다.
남영역 건너편 슘 호프에서 열린 후원주점에는 많은 분들이 몰려들었다.
비급여 의료비나 의료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동자동주민들을 위한 행사였다.

의료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에는 우건일 조합장과 박정아씨를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종업원으로 나서고 있었는데, 술집 분위기가 좋았다.
시나리오작가 최근모씨, 사회복지사 김성규씨와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는데,
반가운 사람 한 분이 나타났다. 사진가 김 원씨였다.

뒤늦게, 오래 전부터 동자동을 찍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 번 만나 보려던 참이었다.
빈민을 향한 작업에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서로의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하고 헤어졌다.

오후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메라 셋팅이 잘 못되어, 그 날 찍은 사진들을 모두 망쳐버렸다.

늙어면 죽어야지...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0일은 통의동과 인사동을 오갔다.
대전에서 전시중인 정복수씨와 울산에서 올라 온 오세필씨로 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먼저 정복수씨를 만나러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통의동 ‘인디프레스’로 갔다.


경복궁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을 접어더니 장경호씨와 유근오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 술 마시다 담배 피우러 나온 모양인데, 반가움보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깝게 지낸 사이지만,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일 년 가까이 등 돌리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했으니, 이제 화해가 된 듯싶었다.

술집에 채현국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분이 있다지만, 약속시간이 늦어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좀 있다 보자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정영신, 오세필, 최백호씨를 비롯한 열 여명의 모르는 여인네들이

커피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세필씨 부탁으로 아침 일찍 전시 안내하러 간 아내를 길에서 만난 것이다.

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 그리고 ‘아라아트’의 브레인 워시전을 거쳐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인디프레스’로 왔다는 것이다.

인사만 나누고 정복수씨가 기다리는 전시장으로 급히 갔더니, 조금 전에 나갔다는 것이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며 돌아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전시장 옆 ‘메밀꽃 필 무렵’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 곳에는 교장선생님인 정복수씨 부인도 함께 있었다. 몇일 전 대전 전시장에서 뵙기는 했으나, 반가웠다.

미색도 출중하지만, 정복수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정복수씨가 반평생 신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인 덕이었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기 바쁘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미술 평론가 최석태, 유근오씨와

화가 장경호씨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소주나 마실 것이지, 남 따라 장에 간다고 잘 마시지 않는 막걸리를 마셨더니, 금방 취했다.

아마 맞은편 미녀 눈길 닿는 게 쑥스러워 벌컥벌컥 마셨던 게 원인이 아닌가 짐작된다.

김정대씨와 합류하여 어딘가 이차를 간듯한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오세필씨와 인사동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김명성씨의 전화를 받고서야 자리를 옮겼는데, 그 자리에는 이성 구로구청장을 비롯하여, 최백호,

박인식, 오세필, 김명성, 최석규, 정영신, 임태종씨 등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카메라불도 꺼졌지만, 술이 취해 횡설수설해대니, 옆에 있던 아내가 가자며 눈치를 주었다.

왜 술만 취하면 오버하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뭉친 불만을 술이 밀어내는 걸까?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5일 오후 늦게 인사동에 갔다.
지난 번 오프닝 때 못 갔던 김석주씨 전시도 보아야하지만,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동거리에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는지, 전경들의 행군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인사동에 중요한 사태라도 벌어질 것  처럼, 주말의 복잡한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외곽 길을 두고 복잡한 길로 버젓이 활보하는 것은, 시민들이나 관광객의 불편도 불편이지만,

일종의 위압감을 조성한다.

    


 

전시가 열리는 나무화랑부터 들렸더니, 김석주씨를 비롯하여 춘천의 김윤기씨와 설치미술 하는 이혜련씨가 함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몽따쥬와 꼴라쥬 기법을 통해 서로 어울리고 결합하는 뜻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수 없이 많은 손가락의 단절된 형상은 현 상황의 비유이자 단절을 넘어 통일에 대한 얽힘과 연대의

중요한 고리라고 작가는 말했다. 또한 사물과 지도의 병치를 통해 지역갈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작가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니, 김석주씨가 술 마시러가자며 서둘렀다.

이혜련씨와 함께 두대문집으로 옮겼는데, 좀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김석주씨는 물론 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이혜련씨 까지 농아작가였기 때문이다.

수화라고는 술 마시는 흉내 정도이니, 사사건건 종이에 메모해 생각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런데, 김석주씨의 주량은 소주 다섯 병이라 했다.

얼마나 빨리 마셔대는지, 덩달아 취해버렸다.

















최근모씨로 부터 전화가 와 먼저 일어났으나, 약속장소인 유목민은 문이 잠겨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 날이 휴일이었다.










최근모씨와 포도나무집’으로 옮겨 한 잔 더했다.


최근모씨는 인사동에 관한 시나리오를 준비한다며 자문의 자리를 만들었으나,

이미 인사동 사람들블로그를 통해 인사동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몰랐던 은평구 청소년들의 오래된 사진아카이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으나, 그가 내게 보여 준 책을 가져 와 버렸다.

술이 깨어 자세히 볼 작정이었으나, 아마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 같다.

 

사진,/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