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난 오래된 사진은 아득한 기억의 저장고다.

반세기가 지난 삶의 기록들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볼수록 정겨움이 더하는 우리의 역사다.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 쪽방 침대 밑에 쌓인 책을 정리했다. 7년 가까이 집어넣기만 하고 나오지는 않았으니, 빈틈 없이 꽉 차 버린 것이다. 버릴 책과 옮길 책을 분류하다 2017년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에서 가져 온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다시 보는 청계천도록을 찾은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삶을 취재하러 왔던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께서 찍은 청계천의 오래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노무라 모토유키 선교사가 찍은 청계천 등 두 분의 사진만 청계천의 중요한 사료로 남았다. 국내 사진가들은 집 구경 하듯 지나치며 찍은 사진들은 간혹 있으나, 청계천 빈민들의 삶에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두 분의 사진을 대할 때마다 부끄러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분들이 대신했는데, 그 무렵의 우리나라 사진가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살롱사진에 빠져 기록의 중요성을 방기한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것은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역사의 순간은 다시 찍을 수 없는 것이다.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특별전 ’가까운 옛날의 자화상‘에도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청계천 사진이 걸린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들어 온 지 숱한 세월이 흘렀으나 여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진전이 열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우리의 역사보다 더 소중한 작품은 없다는 말이다.

 

구와바라 시세이 / 조문호사진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은 1964년 일본의 화보 잡지인 太陽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다. 선생이 한국 현실에 가장 광범위하고 깊숙하게 관여한 시점이 1965년이었는데, 한국을 찍은 사진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천 사진도 이 무렵에 집중적으로 촬영된 것이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이라는 신념을 평생 구현한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은 일본의 중금속 공해 사건을 다룬 미나마타 병을 앓는 사람들을 찍어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나, 그에게 사진가로서 결실을 맺은 것은 한국에 대한 기록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청계천 사진 외에도 기지촌 주변의 양공주에서부터 우리가 방치한 한국 사회의 이면사를 깊숙이 기록했는데, 사십여 년에 걸쳐 십 만장이 넘는 방대한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들은 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빈민들의 리얼한 삶이 담긴 현장이라 보면 볼수록 가슴 뭉클해지는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이 찍힌 65년이라면 진학을 앞두고 서울에서 방황하던 시절이 아니던가?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 청계천 밤길을 걷다 좁은 골목에서 혼이 난 기억이 생생하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아낙에게 떠밀려 들어간 곳이 사창가였는데, 뺏긴 가방을 찾기 위해 시달린 순간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하수구의 악취가 진동하는 청계천의 첫 대면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그 당시의 청계천 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록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청계천도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달동네에 다름 아니었다. 사진에 담긴 장면에는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거나, 빨래를 너는 모습, 때로는 연탄재나 오물을 버리는 평범한 일상이 담겼다. 보면 볼수록 정겨운 장면인데, 마치 무대 세트장 같다.

 

당시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께서 투숙한 곳이 남대문로 그랜드호텔이었다고 한다. 남대문에서 광화문을 향하는 곳에 있던 그 호텔은 청계천까지 걸어서 약 600미터 정도의 거리다. 명동이나 수하동을 거쳐 청계 2가 방향으로 걸었다는데, 낮에는 사람이 없어 이른 아침에 집중적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지저분한 청계천도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는 놀이터 였는데, 사진에는 복개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이주는 물론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세기 전 청계천 변 사람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담긴 이 사진들은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피난민들의 삶의 현장이자, 급변해 온 서울의 한 도시공간이다. 다시 한번 청계천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사진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그와 같은 비유는 무의미하다. 지나간 버린 하나의 사실과 현장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와바라 시세이-

 

/ 조문호

 

구와바라 시세이 / 조문호사진

 

최인기 '노량진수산시장' 사진집

눈빛출판사, 184, 25,000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눈빛출판사에서 펴내는 오늘의 다큐일곱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오늘 발생한 사회 제 문제를 사진가들이 어떠한 관점으로 사진에 담아냈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집 총서다.

 

 

 

이 책은 서울시민의 집단기억이 숨 쉬고 있는 노량진 구수산시장이 선진화와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어떻게 풍비박산되었고,

그곳을 생계의 터전으로 살아온 시장 상인들의 삶이 변모하였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에게 수산물을 제공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는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간다. 1928년 서울역 염천교 근처에 경성수산주식회사가 생겨난 이래 서울의 대표적인 이 수산시장은 1975년 한국냉장()이 시장을 인수해 노량진으로 장소를 옮긴다. 겉으로 보면 싱싱한 해산물의 도소매가 이뤄지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날 것 같은 수산시장이지만 2002년 공기업 민영화가 시작되면서 갈등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 수산물유통체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현대화사업이 추진돼 2016년부터는 신시장에서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40퍼센트 가량의 구시장 상인들은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노량진 구수산시장 부분존치와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여오고 있다.

 

 

 

이 사진집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인기씨가 지난 3년 동안 노량진 구수산시장 상인들의 생업과 투쟁 현장을 기록한 컬러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비린내 물씬한 수산시장과 활기 있는 상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킹 크랩을 자랑스레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손님이 뜸한 틈을 이용해 좌판 옆에서 잠이 든 할머니, 수조에 생선을 넣는 청년 등 수산시장의 일상적인 장면들로 이 사진집은 시작된다. 연탄난로에 발을 녹이는 할머니, 주문한 음식을 머리에 이고 배달 가는 식당 아주머니 그리고 장이 파한 후 한데 모여 여흥을 즐기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현대화 이전 구시장의 평온한 모습을 보여준다.

'

 

 

그러나 그들의 생계 터전은 현대화와 법을 앞세운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경찰의 비호 아래 용역들이 들이닥치고 상인들은 이들과의 힘겨운 공방 끝에 202010월 지하철이 다니는 25천 볼트 고압선 위 육교로 쫓겨나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생업에 열중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주변 동료 상인들과 어울려 살아온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이 갈등과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사진가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기록하였다. 결국 이 사진들은 국가와 사회가 소시민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고 투쟁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직권남용에 대한 분노의 서사인 것이다.

 

 

 

지난 64일 오후630분경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사진집 출간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개막되었다.

 

 

 

전시장에는 사진가 최인기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엄상빈, 김보섭, 김문호, 정영신, 김동진, 김영호, 곽명우씨 등의 사진가들이 함께하여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전시와 사진집출간을 축하했다.

 

 

 

이 전시에는 다큐멘터리 은석 감독이 촬영한 '시장으로 가는 길' 도 함께 방영되었다.

 

 

 

눈빛의 이규상대표는 작가를 소개하는 인사말에서 사진가이기 이전에 투쟁현장의 전사로서 최인기의 부지런한 모습을 전하며 키가 작아 용역 깡패들 가랑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촬영 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는데, 진짜 그는 못 말리는 전사고 못 말리는 찍사다.

 

 

 

60년대 말 청계천을 기록한 빈민들의 성자 노무라목사의 영향을 받아 사진의 길로 들어선 사진가답게 특정 도시공간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을 기록해 왔다3년 전에는 '청계천 사람들'이란 주제로 노점상들의 투쟁을 다룬 전시와 사진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삶의 투쟁을 기록한 이번 사진집 표지 사진은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식칼을 허리 뒤에 감춘 크로즈 업 사진 한 장으로 전체 투쟁의 내용은 물론 사진집에 실린 상인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쓰는 표현 방법이지, 당사자와 같이 살거나 함께 투쟁하는 사진가는 잘 선택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왜냐하면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인기의 표지 사진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 상인의 현장 모습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당사자와 함께하는 사진가는 일상적 기록 이외의 사진가적 욕심을 버리는 것이 도리이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사진 앵글을 과장하는 트릭이나 연출은 일체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6-70년대 청계천 사진이나 최인기 사진이 대표적으로 당사자와 함께하는 사진인데, 튀는 사진이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민중들의 삶은 원래 자극거리가 없어 지루하고 따분하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값진 진실 하나를 일깨워주고 있다. 세상에 따분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되고, 또 싫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대개 지루하거나 따분한 것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찍은 평범하고 소소한 기록들이야 말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가치를 발휘해 인간 삶의 중요한 역사적 단서와 함께 사료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출판과 전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진가 최인기씨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라.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어떤 사진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 제가 지속해서 전시와 출판을 하는 이유입니다. 가난은 드러내 공론화시킬 때 해결이 모색된다는 것도 평소 제가 가진 지론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사진전은 13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빈민운동 사진가 최인기씨, 6월 25일 종자동에서]



지난 25일, 빈민운동가이자, 사진가인 최인기씨가 동자동을 방문했다.
청계천 사진집이 나왔다며, 책을 한 권 가져 온 것이다.
어렵게 만든 사진집이라 사고 싶었으나, 기어이 주겠다는 것이다.

그를 알게 된지는 동자동에 들어 온 이후였으니, 한 이년 가까이 되었다.
노점상 집회나 근로자 집회에 가면 항상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차를 대접하거나 밥을 샀다.
보나마나 돈 안 되는 사진 찍으며 빈민 운동하느라 어려울 것은 뻔한데, 
신세지는 것이 결코 편치는 않았다.
아마 어려운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그의 천성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펴낸 청계천 사진집은 사진이기 전에 최인기의 삶 자체였다.
그는 사진을 예술의 사진보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알리며
저항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핍박받는 노점상을 대변하며, 그들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 모든 것에는 사람이 우선하고 있었다.

원로사진가들이 찍은 오래된 청계천 판자촌 사진들이 지나치며 찍은 사진이라면,
노무라 목사의 청계천기록을 이은 그의 사진은 주민의 한사람으로 온 몸으로 찍었다.
그 책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청계천이 바뀌는 과정 과정에서,
빈민들을 핍박한 내용이 일지처럼 적혀 있었다.
잘못된 도시정책에 저항해온 이들의 사진 역사책이었다.

이명박은 청계천복원공사를 강행하며 가난한 노점상과 철거민을 내 몰았다.
오세훈은 시민들의 추억과 삶의 공간인 동대문운동장을 허물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설 때마다 죽어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뿐이었다.
그 밀고 당기는 긴박한 순간순간을 최인기의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난, 최인기를 사진가로서 보다 빈민운동가로서 더 좋아한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빈민들의 열악하고 핍박받는 현실을 기록하며
주민들과 함께 싸워 온 지칠 줄 모르는 그 투지를 좋아한다.

청계천은 최인기가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같은 곳이다.
아버지는 청계천에 있는 출판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신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삼일아파트의 옥상과 복도는 그들의 놀이터였다.
도시를 돈으로만 보는 인간들은 빈민들의 삶은 물론
최인기의 유년기 추억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짓밟히며 공동체가 파괴되는 악순환을 지켜본 것이다,

도시 공간의 공공성은 권력 있는 한 두 사람에 의해 구성 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함께 논의되었을 때 성립할 수 있다.
이제 낡은 청계천과 을지로의 골목도 우리 문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가 되어야한다. 화려하고 새 것만 좋은 것은 아니다.
정책입안자들도 가진 자보다 없는 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최인기는 “저는 이 사진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편하지 않음을 통해 이 공간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합니다”고
작업노트에 적고 있다.


사진집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지만, 지속적인 빈민 기록을 위해 한 권 구입 합시다.



“청계천사람들”, 삶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청계천


펴낸 곳 : 리슨투더시티
270페이지, 가격 35,000원







전쟁으로 피폐한 삶을 산 1956년도의 청계천 천막촌 풍경이다.
청계천 어느 지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추운 겨울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곤궁한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힘들어도 불만조차 털어놓을 수 없다.
환경은 열악하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서로간의 인정은 더 따뜻했을 것이다.
물질이 풍족해진 요즘이야말로 인정은 메마르고, 사는 게 흉악스럽게 변해버렸다.

옛날에는 단순히 머리만 깎던 이발소가 지금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자정이 넘도록 회전등이 돌아가는 걸 보면, 늦은 시간에도 손님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대개들 발 씻겨 주고 안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춘까지 풀코스로 이루어진다.
이름만 이발소일 뿐이지 사창가나 마찬가지다.
바깥을 지켜보는 CCTV로 경계들을 하지만, 경찰도 단속에 손을 놓은 듯하다.

재미있는 요지경이라, 가끔은 시절을 되돌리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1956년 이해문 선생께서 찍은 사진으로, ‘한국사진의 재발견’(눈빛출판사)에서 옮겼다.

문득, 지나간 것이 그리운 날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줬던 ‘들장미 소녀 캔디’가 그려진 빨간 책가방, 짧은 스커트와 단짝을 이루던 흰색 면으로 된 팬티스타킹하며, 학교 가는 길 작은 문방구에서 50원, 100원에 팔던 불량식품까지. 이러한 것들이 새록새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런 날.

당신은 어쩌면 아득하고 정겨운 것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쯤은 바삐 변해가는 세상에 속도를 맞춰야 했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그 시절에는 너무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시간을 멈추고 싶고, 되돌리고 싶다. 이는 아마, 늙는다는 것의 두려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아날로그 여행 주소

▪ 회현지하상가: 서울시 중구 충무로1가 52-41 회현지하쇼핑센터
▪ 청계천 판자촌(청계천문화관):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527-4, 02-2286-3410
▪ 청계천 책다방(서울문화재단):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255-67, 02-3290-7000
▪ 청계천 청혼의벽: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540, 02-2290-6807
▪ 인사동 토토의 오래된 물건: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69-2, 02-725-1756
▪ 인사동 쌈지길: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
▪ 인사동 별다방 미스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44 2층, 02-739-0939



                                              오래된 추억을 판매하는 '회현 지하상가'

 

아침에 출근해 점심을 먹고 문득 시계를 들여다보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싶을 정도로 하루는 빠르게 흐른다. 어디 하루뿐이겠는가. 일주일이 그렇고, 한 달이 그렇고, 일 년이 그렇다. 영원할 것 같던 젊음도 언젠가는 한낱 작은 추억거리가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

그래서일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옛것이 그립고 가끔은 마음을 애잔하게 울리기도 한다. 내 젊은 날을 함께했던 추억의 물건이 그리운 날이면 에디터는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회현 지하상가를 찾는다.

1978년 처음 문을 연 회현 지하상가는 지난날 화려한 명성을 누리던 곳이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최근, 시간마저 비켜간 이곳은 ‘옛 추억을 찾을 수 있는 보물섬’ 같은 곳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오래된 시간을 그대로 담은 물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회현 지하상가에는 오래된 LP를 취급하는 가게가 아홉 곳이나 된다. 음악이라면 어디 내놔도 빼놓지 않을 지식을 자랑하는 이들이 가게를 운영한다.

주소 : 서울시 중구 충무로1가 52-41 회현지하쇼핑센터



                                                      청계천에서 만난 60년대 우리네 삶

 

 

60년대 판자촌을 기억하는가? 60년대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청계천 두물다리를 찾아가자. 청계천 문화관 건너편에 위치한 판잣집 테마촌에는 우리의 지난 삶을 추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그 시절 판자촌은 청계천변을 따라 두서너 평 남짓의 방들이 수상가옥처럼 다닥다닥 즐비해 있던 곳이다. 지금처럼 편리하고 풍족하고 화려하지 않았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넉넉하고 따뜻했다.

물론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세상 참 많이 각박해졌다”는 소리는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작은 것을 얻고도 행복했고,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미덕이 있었다. 좁은 방에서 오순도순 모여앉아 서로의 눈을 보았고,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발을 디딘 판잣집 테마촌은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고 고요하다. 스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청계다방’은 행인들을 위한 작은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워보였다. 다방은 옛날 방식 그대로 꾸며져 있어, 세련된 맛은 없지만, 추억을 회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청계다방 옆문을 열면 60년대 교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오랜만에 보는 오르간과 난로 위에 곱게 포갠 양철도시락이 정겹다.

교실바닥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나무를 사용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대청소가 있는 날이면 책상을 뒤로 밀어 놓고 왁스를 칠하고, 각자가 집에서 가져온 걸레로 바닥이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윤을 냈었는데… 어느 날은 실내화를 신지 않고 교실을 뛰어다니다 나무 가시가 발바닥에 박혀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울었던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그 시절에는 너무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시간을 멈추고 싶고, 되돌리고 싶다. 이는 아마, 늙는다는 것의 두려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쪽 문을 열면 광명상회로 연결된다. 작은 공간에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이 진열돼 있다. 종이인형, 팔각성냥과 못난이 삼형제, 어린 시절 단돈 50원, 100원이 없어서 못 먹었던 불량식품 달고나, 쫄쫄이가 눈앞에 보인다. 하나하나 바라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려지는 입가의 미소. 왜 지나간 것들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곳에서는 그 시절의 오래된 교복과 교련복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것들을 입고서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가능하다면 곱게 차려입고 열여섯 꽃다운 나이로 돌아가 보길. 이와 함께 지난날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연탄가게 살림집은 최소한의 갖출 것만 갖춘 좁은 방으로 어려운 살림살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살려냈다.

주소 :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527-4 문의 : 02-2286-3410


                                                             특별한 프러포즈 ‘나와 결혼해 줄래?’


 

판자촌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두물다리’를 만날 수 있다. ‘두물다리’는 과거 청계천 지류가 합류되던 지점으로,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두물다리라 이름 지어졌다. 실제 다리의 형상도 서로 만나는 모양으로 되어있다.

청계천의 끝자락에 위치한 두물다리는 아기자기한 생김새 때문에 유니세프가 어린이 다리로 지정했다. 다리를 걷다가 조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하트 조형물로 된 ‘love in seoul’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걷다 보면 인연의 끈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연결해 줄 것 같은 이 문구는 실제로 이곳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프러포즈 장소임을 알려준다. 어느 날, 연인이 청계천 두물다리로 당신을 이끈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로 두물다리 바로 아래 위치한 ‘청혼의 벽’ 때문이다.


청혼의 벽에서는 청계천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감동적인 동영상, 혹은 노래 등으로 근사한 프러포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러포즈의 진행 방식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청혼자가 청혼무대로 걸어와 버튼을 누르면 워터스크린 위로 영상이 흐르며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고백을 들은 상대가 승낙 의사를 밝히면 아름다운 조명과 음악이 흐르며 분수가 가동된다. 2007년 12월 이후 수많은 커플이 청혼의 벽에서 프러포즈를 했고, 여전히 연인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신청자들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540 문의 : 02-2290-6807


                                                                    

                                                                    책多방에서 감성을 마시다

 

 

두물다리를 건너면 서울문화재단 청사가 보인다. 그곳 1층에 위치한 책多방은 서울 시민 누구라도 쉬어갈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에디터가 이끌었던 곳을 거쳐 찾아와도 되고, 2호선 용두역 5번 출구에서 나와 두물다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도서관이다. 무료한 일상, 오후 2시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처럼 소박하지만, 기운을 주는 곳이다.

베이지톤으로 이뤄진 따뜻한 색깔의 목재와 부드러운 조명이 다정하고 포근하다. 조선시대 서가의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한 평 남짓의 정육면체 북 큐브 안에 들어가 글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볏짚으로 꽈서 모양을 낸 한국적인 느낌의 도톰한 방석에 앉아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온통 내 세상이다. 조용한 공간 안에 살며시 들어오는 가을 햇살도 제법 평온한 분위기를 만든다. 책은 우리의 삶을 한 템포 느리게 해 준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에게 책은 엄마의 품과 같은 휴식을 선물한다. ‘온고지신(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이라는 말처럼 지난 우리의 삶과 책에는 우리가 고민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255-67 문의 : 02-3290-7000


                                                                         인사동에서 만난 옛것

 

서울 종로에는 유난히 예스러운 것들이 많다. 특히 인사동 거리는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됐을 만큼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이 때문인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인사동.

발길 닿는 곳 모두가 구경거리지만, 오래된 물건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토토의 오래된 물건’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1970년까지의 물건들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못난이 삼형제, 불량식품, 딱지 등 어린 시절에 사용했거나 가지고 놀던 물건들이 한 가득이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입장료 1,000원 받습니다”라고 카운터 앞에 쓰인 손 글씨에서 주인아저씨의 재치 또한 느껴진다.

이곳을 빠져나와 좀 더 세련된 한국을 즐기고 싶다면 ‘쌈지길’로 향하면 된다. ‘쌈지길’은 ‘ㅁ’자 마당을 둘러싸고 골목을 감아올린 듯한 구조로, 계단을 오르며 층마다 다른 콘셉트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통가구, 먹거리, 화랑, 전통공예, 생활용품 등 물건을 감상하며 구매도 가능하다. 이렇게 발품을 팔며 구경하다가 허기지면 ‘별다방 미스리’에 들려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해 보자.

철제 도시락에 흰 쌀밥과 계란프라이를 얹고, 분홍색 소시지 부침과 볶음김치, 김 정도가 반찬의 전부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싸주던 도시락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다.

인사동 토토의 오래된 물건
주소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69-2
문의 : 02-725-1756

인사동 쌈지길
주소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

인사동 별다방 미스리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44 2층
문의 : 02-739-0939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취재 김효정 기자(kss@egihu.com) 촬영 권오경 사진기자

 

 

지난 8월15일 인사동에서 서울시청으로 가며 만난 풍경이다.
서울 중심부에 이렇게 멋진 개천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천변 곳곳에는 가족들과 연인들이 발 담구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고,
한 쪽에는 젊은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가 분위기를 돋구고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것 하나는 정말 잘 했다.
박수에 취해 청계천에서 4대강으로 내려 간 것이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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