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큐레이터 김지연씨

"못 박고 차에 작품 싣고…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론 '노가다'"
"언어로 소통하는 게 지겨워 이미지 소통하는 미술 선택"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큐레이터요? 화려한 직업인 건 맞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만나기 쉬워요. 하지만 실제로는 '노가다'에요. 직접 벽에 못을 박고 차에 작품을 싣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 걸요."

전시 기획자를 통칭하는 큐레이터는 원칙적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관리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전문 인력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화랑에서 근무하는 갤러리스트와 아트딜러, 아트디렉터, 아트마케터, 아트매니저 등을 통칭해 큐레이터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일견 화려해 보이는 직업이지만 사실 큐레이터는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에 가깝다. 단순히 전시를 기획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일까지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정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큐레이터의 고충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독립 큐레이터 김지연(42)씨는 "그래도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아도 되고, 문화장르가 '업'이라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합천 해인사 일대에서 전통 사찰과 자연, 현대미술의 조화를 모색한 '해인아트프로젝트 2013 마음'전에서 큐레이터를 맡은 것을 비롯해 아트쇼 부산 2014 예술감독,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 큐레이터, '지리산프로젝트2014: 우주예술집' 실상사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해 왔다.  

 

주로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된 예술 프로젝트다.

 

"미술관처럼 정제된 공간 안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저는 솔직히 싱거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권력을 비판하는데 미술계의 최대 권력인 미술관 안에 걸린다? 그건 미술의 본분은 아닌 것 같아요."

 

성신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학부 시절 미국 연수를 갔다가 우연히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다른 연수생(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의 동생)을 만나 미술에 눈을 떴다고 한다.  

 

"국문과 공부를 하면서 문학적인 수사가 싫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수사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언어로 소통하는 게 지겨웠죠. 하지만 미술은 보면 이미지로 바로 소통할 수 있잖아요. 다른 언어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죠. 지금도 계속 (미술에 대해) 글을 써야 하니 언어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요. (웃음)"

 

1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이후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이 기획을 맡은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호랑이는 살아있다'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제1회 미디어시티 서울'에서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감독을 맡은 '전광판 프로젝트'에 인턴으로 참여하며 실무에 뛰어들었다.  

 

2001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조교로 2년간 근무하면서 당시 강사였던 조각가 정현·한국화가 유근택을 비롯해 동료 조교였던 장지아 등 수많은 작가와 널리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출발은 사실 갤러리스트였다.

 

김 씨는 2003년 대형 화랑 중 하나인 가나아트센터 기획팀에 입사했다. 가나아트가 인사동과 평창동에 모두 4곳의 전시 공간을 운영할 때였다. 당시 기획실장은 미술사학자 최열이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한 번에 전시 2∼3개를 고민해야 했고 작품의 반입·반출 확인, 작품 목록 정리, 우편물 발송까지 전부 한 명이 맡아서 해야 했다.

 

평일에 오후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날이 비일비재했고 주말도 대부분 반납했다. 김 씨의 어머니는 딸이 하도 집에 안 들어오니 "돈을 얼마나 번다고 그렇게 타락한 생활을 하느냐"고 했다고 한다.  

 

당시 가나아트는 비교적 선도적으로 미술계의 비수기인 여름과 겨울에 어린이 전시를 기획해 선보였다.  

 

김 씨가 '반복'을 주제로 기획해 2004년 1월 선보인 어린이전에서는 한 작가가 자신의 설치 작품이 놓인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의 작품을 전부 들고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보다 어린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데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전시장 한쪽이 통째로 빈 상황.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작가의 작업실에 찾아가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 김씨의 사과에 마음이 풀어진 작가는 작품을 도로 갖다놨다.  

 

"작가가 이렇게 무섭구나, 작가와 기획자의 기 싸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됐죠. 물론 그때는 제가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었지만요. 하하."

 

2006년께 미술시장이 좋아질 무렵, "화랑에서 일하면서 시장을 모른다"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왔다. 전시를 기획하고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기획팀과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협업) 등을 진행하는 마케팅팀이 나뉘어 있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사실 화랑의 핵심은 작품 판매다. 어떤 작품을 전시하느냐보다 어떤 작품을 얼마나 팔았느냐에 더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김 씨도 본의 아니게 당시 작품 판매 업무도 병행해야 했다.

 

"사실 그때는 가만히 있어도 작품을 사려는 사람이 많았어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작품이 팔려나갈 때였죠. 한번은 손님이 딸에게 물려주겠다고 해서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작가의 작품을 팔았죠. 그런데 작품을 판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의 한 화랑에 그 그림이 나왔어요. 안에서 엄청나게 혼났죠. 그때는 그냥 팔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좋은 손님인지 단순히 투기 목적으로 사는 손님인지 구분해야 하는 걸 몰랐죠."  

 

김 씨는 "작품 판매를 하면서 장사의 매정함을 알게 됐고 시장 생리가 나와는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마저 쓰려고 가나아트를 그만둔 김 씨는 얼마 있다가 고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학고재갤러리에 들어갔다.

 

고낙범·노순택·양아치의 3인전 기획을 시작으로 고려불화와 이용백, 감로탱과 신학철, 겸재 정선과 이세현 등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춘추'전 등을 기획한 김 씨는 지난 2012년 9월 학고재갤러리를 나와 독립 큐레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씨는 "제도 안에서 세상을 얘기하는 것 말고 세상 안에서 미술을 얘기하는, 현장성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큐레이터를 맡았던 해인아트프로젝트와 지리산프로젝트 등이 그런 식이다.

 

"사실 작가들은 자본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물론 더 좋은 공장에 맡기면 작품이 더 잘 나올 수는 있겠죠. 작품의 퀄리티(질)가 돈과 비례한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죠. 작업의 완성은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역과 연계된 예술 프로젝트의 성패는 사실 예산 규모보다 얼마나 지역 안에서 지속성을 갖고 꾸준히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김 씨는 "지리산 실상사에서도 작가들이 무리해서까지 작업을 잘 해줬다"면서 "작가가 어떤 개념을 실현할 때 돈이 없어도 노동력을 가지고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들이 돈을 들이지 않는 작업을 하게 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작가들에게 아티스트비는 더 챙겨줄 수 있는 시스템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최근 정부가 오는 2018년까지 미술시장을 6천30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건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작가를 차근차근 지원하는 화랑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돈만 투입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미술관과 화랑 간에 긍정적인 네트워크도 형성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죠."  

 

그는 가나아트 시절부터 신진 작가 발굴에 많은 역할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주제 의식의 방향과 맞는지, 그 작가의 작업을 내가 공감할 수 있는지, 나를 설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에요. 이른바 '똘끼'가 있어야 작업도 계속 가더군요. 정직성, 장지아 등은 제가 계속 주목하는 작가입니다."

 

김 씨는 천경우와 김월식 등의 작가를 꼽으며 "늘 좋은 피드백을 줘 프로젝트를 맡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인성이 착한 작가가 좋아요. (웃음) 예전에는 작가의 인성과 작품은 무관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저희끼리는 일종의 '블랙리스트'도 있어요. (웃음) 이 기획자와 갈등을 빚은 작가는 어김없이 다른 곳에서 다른 기획자와도 또 갈등을 빚기 마련이거든요. 주변을 두루 살피면서 작업하되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일정 탓에 아직도 박사학위 논문을 쓰지 못했다는 김 씨는 "앞으로 (박사 논문 주제인) '비물질'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며 "정신성이 비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전시를 통해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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