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헌씨가 위령무를 추고 있다.


연고 없이 세상 떠난 이를 추모하는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동자동 조인형씨가 추모제단에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고 있어, 빈곤 활동가들이 집계한 올 해 사망자만 166명이란다.
실제론 서울에서만 300명 이상이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모제단


동자동 쪽방에 거주한 열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채, 이름만 남겼다.


추모객들

거리에서 죽은 노숙자는 시신이라도 제 때 수습되었지만,
방안에서 외롭게 죽어 간 사람은 시신 섞는 악취로 알게 되었다.


동자동 송병섭씨가 연영철씨에 대한 추모글을 읽고 있다.

동자동에선 가파른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은 두 사람 외에는 대부분 술 때문에 죽었다.

독약인줄 알지만 이승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동자동 조인형씨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서둘러 떠난 그들을 기억하러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갔다.
무대 앞 현수막엔 올해 죽은 홈리스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꼼꼼이 살펴보니, 아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구나 연영철씨는 옆방에 살던 후배가 아닌가.
4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는데,
돈이 없어 수술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고생만하다 올 여름 세상을 떠났다.


연영철씨가 입원한 중앙병원에 병문안 간 정선덕씨 2018. 4

병문안은 여러차례 갔지만, 서둘러 화장해 장례를 지켜보지 못했다.
살아 생전 더 따뜻하게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방문 앞에 앉은 연영철씨. 2017. 9

요리사 출신이라며, 언제가 맛있는 음식 한 번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말을 여려차례 했지만,

재료도 주방도 없는 쪽방에서 뭘 한단 말인가?


방에서 식사하는 연영철씨. 2018, 7

유달리 연예인들과 미녀들을 좋아해, 비좁은 방안에는 캘린더의 미녀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이제 부질없는 미련일랑 다 버리고 홀연히 먼길 떠나셨네요.


사진가 노은향씨가 보낸 내의를 전달받는 연영철씨. 2017.12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씨가 불러 준 ‘서울역 이씨’는 잘 들었는가요?
부디 모든 것 잊고 편히 잠드소서!


가수 정태춘씨가 홈리스추모제에서 '서울역 이씨'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는 지난 달 심장마비로 죽은 정용성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착하기 그지없는 녀석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어미는 어쩌라고 혼자 가버렸는가?



처음 만났을 땐, 사진만 찍으면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몇 번은 주었으나, 사진인들이 길들인 버릇 같았다.
그 이후부터 있어도 못 준다고 했더니, 더 이상 손 내밀지 않았다.


방안에 앉은 정용성씨. 2018, 9

항상 말은 없지만 잔정이 많아 만나기만 하면 배시시 웃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 안주도 먹으라며 사과조각을 쥐어주기도 했다.
어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어지간히 술에 쩔어 살았는데,
옥탑방으로 오르다 수 없이 넘어져 상처 아물 날이 없었다.


아래 층에 사는 정재헌씨가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다 설움에 북받쳐 울고 있다.

좌로부터 황춘화. 정용성, 정재헌씨 2018, 10


그런데 이 녀석은 나이가 아들 햇님이 또래인데, 날더러 늘상 행님이라 부른다.
하기야! 어미를 옆에 두고, 아버지라 부를 순 없지 않은가?


정용성씨 어머니 황춘화씨, 2019, 5


젊은 나이에 장가는 커녕 세상 맛도 모르고 갔으니, 더 슬픈 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장례를 치루고서야 알게 되었다.
빈소에서 아들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는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뒤늦게 만나서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냈다.


2017년 11월 동자동 추석잔치에서,,,

운다고 떠난 자식이 돌아 올 수 있겠냐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터지겠는가?
죽은 자식보다 황춘화씨가 더 걱정이었다.
이제 옥탑방에서 살지 말고 낮은 층의 작은 방으로 옮기라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죽은지도 몰랐던 전경희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 잊었는데, 올 2월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2년 전 대부도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한 적도 있었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술 광고 속의 미녀를 보며 “이쁜 여자 보니 춘정이 동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젊을 때 바람께나 피웠겠다“며 꼬리웃음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다.


대부도 기념관에서 김정심씨와 기념사진 찍는 전경희씨, 2017.11

그 외 신기식, 이삼석, 최상섭씨를 제외하고는 동자동 살았지만, 모두 낯설더라.
평소 바깥 출입은 않고 방안에서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좌우지간, 모르는 분을 포함하여 비명에 간 166분의 이름 앞에 고개 숙였다.


홈리스 야학 합창단이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있다.


부디 아무런 원망말고, 그냥 팔자가 사나워 먼저 떠난다고 여기세요.

이 더러운 세상, 더 살아 무슨 영광을 보겠습니까?

고생스런 이승을 마무리하였으니, 저승에선 잘 산다는 믿음 하나로 위안 삼으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문호합장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동자동 쪽방에도 어김없이 봄바람이 분다.
지난 9일 오후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잔뜩 찌푸렸는데, 그런 날씨는 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찌푸둥한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더니, 이미 사람들은 젖어있었다.
비가 아니라 술에 젖어 세상시름 다 녹였다.
그들의 텅 빈 가슴 위로 꽃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를 반긴다.
세상에 여기처럼 인심 좋은 곳은 없을 게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그 철천지원수 같은 돈도 나눠 쓴다.
공원의 비둘기조차 빈자들의 술안주를 축낸다.





다들 취했으나, 정용성씨가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할 술이 떨어져 사왔겠지만, 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량에 맞추어 알아서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한 쪽에선 장기로 상대의 수를 탐색하였고,
한 쪽에선 욕설로 상대의 정을 확인하였다.
못할 놈들의 “씨발넘아”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생각 차이로 실랑이가 생기고 큰 소리도 나지만, 옆에 있는 경찰초소 보안관이 판결 내린다.






이 꿀꿀한 봄날에 어찌 술 생각이 없겠냐마는 술을 자재 했다.
‘알중’들의 술자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다.
요즘 노숙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질책을 여러 번 들었다.
노인들도 폐지를 줍거나 일 하는데, 뭐 좋다고 그런 놈을 찍느냐는 거다.
대꾸는 안하지만, “잘난 놈보다 못난 놈이 정겹다‘고 구시렁거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희망조차 잃은 사람이다.
그들의 죄라면 부모 잘 못 만나,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죄 뿐이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다.






술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 너무 나무라지 말라.
“새벽종이 울렸네”의 새마을 시대도 아니고, 죽자 살자 일만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런 욕심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뒤늦게 안면은 있으나 잘 모르는 아낙이 나타나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싫어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기본인데, 왜 다른 사람까지 찍지 말라는 것인가?
가끔 심통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체 대꾸하지 않는다.






이대영씨가 사진작가라고 해도 소용없고, 정용성씨가 기자라 해도 소용없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다 카메라만 꺼내면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은 황춘화씨의 “우리 편이야!”라는 혀 꼬부라진 한 마디가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우리 편이란 한 마디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세상은 편 가르기에 눈이 뒤집혔지만,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버리자“






노래 가사처럼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 다들 걱정되는 모양이다.
사진하는 정영신씨가 지난 12일 동자동을 방문했다.





내 사는 것도 보고 싶겠지만, 용성이 모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수면바지 두 개와 먹거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온 김에 송범섭씨와 장애인화가 윤용주씨도 만나보라고 했다.

 





그 들 살아 온 이야기 들어 보면 책 몇 권 읽는 것보다,
더 값진 공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방 아래층에 사는 송범섭씨 방부터 찾았는데,
그 방은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방이 작아 세 사람 앉으니, 꽉 찼다.






한쪽에는 약봉지가 줄줄이 놓여있고,
한쪽에는 나비 접기 위해 모아 둔 종이 봉지도 있었다.
이 친구는 늘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갖고 산다.





쪽방상담소 봉사요원으로 일하며, 틈만 있으면 희망의 나비를 만든다.
한 때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이젠 달라졌다.
얼마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아껴 적금까지 들며 꿈을 키운다.






세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며 희망과 좌절을 반복했지만,
모든 욕심 버렸으니, 더 이상 좌절할 것도 없다.






두 번째는 장애인화가 윤용주씨 방을 찾았다.
들여다보니, 좁은 방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 일전 성당에서 치룬 그림전이 성공적으로 끝나 의욕이 충천했다.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다리의 통증마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보라는 부탁도 했다.
그 정도 의욕이고 투지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다.






세 번째는 오층 옥탑 방에 사는 황춘화씨 방을 찾았다.
쪽방에서 두 명이 살 수 없어, 높고 가파른 옥탑 방을 얻어 사는 데,
방안에 있어도 입김이 절로 나왔다.






전기장판으로 간신히 온기를 유지하지만, 말이 방이지 창고나 마찬가지다.
두 모자는 큰 냄비에다 술국을 끓여놓고 있었다.






황춘화씨는 40여년 전 남편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여 어린 용성이를 안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 뒤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맞아 죽었단다.





자활봉사로 떠돌며 공중화장실 청소에서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마저 힘이 미치지 못하니,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젠 힘든 일을 할 필요는 없으나, 늘 아들과 술로 소일하고 있다.
함께 마시다 차례대로 쓰러져 자지만, 행복해 보였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이 혼자 사는 쪽방에서,
사랑하는 두 모자가 즐겁게 사니, 그 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 모두 술기운에 젖어 살지만,
서로 챙겨주며, 술도 조금씩 절제시켰다.
오히려 나더러 술 좀 적게 마시라며 용성이가 충고했다.






세 사람 살아 온 이야기만 옮겨도 책이 몇 권은 될 것이다.
정영신씨는 작은 위안이라도 주고 싶어 왔지만, 오히려 위안을 받은 것 같다.
어느 누가 그들을 보고, 세상에 불만이 있겠느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은 강경호씨가 ‘새꿈공원’ 입구에 술자리를 폈다.
아무리 아껴도 엉뚱한데 날아가니 술이나 마시자며 중국집에 짬뽕 국물까지 주문했다.
사연인즉, 화가 나 땅바닥에 내던진 술병으로 벌금을 190만원이나 물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유는 모르겠으나, 상대방에 피해 주지 않은 것 치고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으로 입건되어, 모아 둔 돈 탈탈 털어 벌금 냈다는 것이다.






강경호씨만이 아니라 착하기 그지없는 정용성씨도 경찰서 출석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아마 취중에 또 실수를 저지른 듯 했다.

다들 순간적으로 성질을 부려 일이 꼬인 것이다.
술기운에 저질러 놓고 뒷감당 못해 쩔쩔 메지 말고, 술을 끊던지 아니면 성질 좀 죽여라.






그 날은 이른 시간인데도 강경호씨 외에는 대부분 취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취해도 혈육의 끈끈함이나 살기 위한 밥그릇 챙기기엔 강한 집착력을 보였다.
특히 정용성씨와 황춘화씨 두 모자는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만취해 있었다.






어떤 이가 지나치며 장난삼아 용성이 머리를 툭 치고 가니,
용성이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상대방을 혼찌검 냈다.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사람이 어디서 저런 순발력이 나오나 싶었다.






목요일은 밑반찬 타는 날인데도 취해 있어 밑반찬은 탔냐고 물었더니,
그 때야 생각 난 듯 용성이가 벌떡 일어나 반찬 나눠주는 배급소로 달려갔다. 
개가 물어뜯어 반 토막 난 바지자락을 끌고 달려가는 용성이의 뒷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러나 두 모자가 허구한 날 술이 취해 걱정스럽다. 술 값에 드는 돈도 돈이지만, 망가지는 몸 때문이다.

당장 아파 드러눕게 된다면, 그 뒷 감당은 어떻게 할까?
술을 끊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 같다.

사진,글 / 조문호
















동자동 오층 집 옥탑 방에 사는 황춘화, 정용성 모자는 참 착하게 산다.
눈을 벌겋게 뜨고 설쳐도 살기 어려운 세상에, 착한 사람의 인생이란 보나 마나다.
이리 당하고 저리 당하며, 동대문에서 양동으로 마지막 쫓겨 온 곳이 동자동 옥탑 방이다.






통장에 돈 한푼 없지만,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겨우 산다.
두 사람이 매일 마셔대는 소주 값도 장난 아니다.
한 달에 70만원 받아 23만원 방세 제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술값으로 날아간다.
이 험악한 세상에 취하지 않고 어찌 버틸 수 있으랴!






술이 슬픔을 날려주니, 매일 웃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마흔여섯이나 된 아들이지만, 여자라고는 엄마 밖에 모른다.
밤 낮을 술친구로 엉켜 사니, 두 모자는 늘 행복하다.
엄마 품보다 더 따뜻한 품이 어디 있겠냐?






지난 7일은 이른 시간부터 두 모자가 취해 있었다.
정용성씨가 나를 보자 자랑부터 해댔다.
“20킬로 쌀을 두 포나 받았어. 19일에는 김치도 10킬로 준대”
돈만 생기면 술값으로 탕진하니, 집구석에 먹을 게 남을 리 만무했다.






올 겨울을 날 수 있는 쌀과 김치를 해결했으니,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술이 좋아도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 살지 않겠나.
기분이 좋은지, 엄마는 술이 남은 데도 소주를 두병이나 사오고,
용성이는 담배 값 없다는 사내의 투정에 남은 삼천 원마저 꺼내 준다.



 


동자동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이 베풀며, 하루를 다 같이 즐기는 것이다.






두 모자가 주연으로 나온 술자리는 여러명이 조연으로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 쪽에서는 내일 벌어 질 축제 준비하느라 바빴다.
김정호, 김정길, 유영기씨가 무대에다 레드 카펫을 깔고 있었고,
'동자동 사랑방' 선동수간사는 차를 끌고와 짐을 실어갔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술 취한 두 사내가 싸움이 벌어졌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나, 스트레스 푸는 운동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싸우다 금방 술을 나누기도하니, 원한도 감정도 없는 그런 싸움이다.
그래도 싸움 판은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황춘화, 정용성 두 모자가 달라붙어 열심히 싸움을 말리는데,
사발통문 돌리던 쪽방상담소 정수현소장 까지 거들기 시작한 것이다.
연약한 여인네가 취객의 주먹질에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설까?
기어이 두 사람을 때어 놓으니, 죄 없는 술병에 분풀이를 해댄다.





시멘트 바닥에 축포처럼 터트린 맥주병으로 '동자동 블루스'의 막을 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는 황춘화씨 쪽방에 볼 일이 있어 올라갔다.
몇 일 전 내 방의 쌀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방가기 전에 줘야 편할 것 같았다.
쌀 포대를 안고 좁은 계단의 오층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려니 숨이 찼다.
쌀 포대를 계단에 내려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5층 정재헌씨 쪽마루에 정재헌씨와 정용성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용성이 녀석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그 꼴로 술을 마신 듯 해, 꼬라지가 거기 뭐꼬? 술 좀 거마 무라했더니,
계단 내려오다 넘어졌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을 비켜 가지 못하는 팔자인지 모르지만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했다.
가파른 계단이라 손잡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건물 주인에겐 통하지 않는단다.

 





가진 자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대개 빈민들의 고충이긴 했으나,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중재를 해 주던지,
아니면 상담소에서 직접 손잡이를 좀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일이다.
매일같이 술이 취해 오르내리는데, 여지 것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이 신기하다.
날카로운 시멘트에 부딪혀 그 정도 다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용성이 더러 쌀 가져왔다고 했더니, 냅다 달려가 옥탑 방까지 들어 올려주었다.
다친 용성이 때문에 속이 상했는지, 술 취한 황춘화씨는 방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이 대책 없는 두 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억장이 무너졌으나, 방법은 없었다.
술을 끊으려면 병원생활을 해야 하지만, 당사자의 의지도 병원비도 없다.






걱정만 남긴 채 돌아오려니, 용성이가 손을 내민다.

돈 좀 달라”는데, 냉정해져야 했다.
그 간절한 눈빛을 거절하지 못해 주어 온 것을 후회했다.
그 돈으로 소주 사 마시니 내가 알콜 중독을 도운 격이다.
이제 돈은 줄 수 없다고 잘랐더니,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돌아서는 마음이 아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절대 신은 없다. 있다면 그건 사기일 뿐이다.

착한 놈은 고생하고, 나쁜 놈이 잘 사는 더러운 세상 아니던가?

일층으로 내려오니 구멍가게 앞에 이준기씨와 강완우씨가 있었다.
술이 한 잔 된 이준기씨가 반갑다며 하소연을 풀어놓더라.
어떻게 배붙이고 살던 서방을 교도소에 집어 넣냐?는 것이다.
사연인즉, 친구가 아내에게 손 지검을 했는데, 경찰을 불러 구속시켰다는 것이다.
좁은 방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다보니 화가 났겠지만, 참아야 했다.
다 돈 없는 이들의 서러움이다.






동자동엔 한 가닥 희망을 가지며 참 사람과, 절망을 술로 잊는 사람만 산다
알콜에 중독되거나, 몸과 마음을 심하게 다친 저승 대기자들이다.
하기야! 난 담배 중독자니, 남의 말만도 아니다.
오래 사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오늘 아침 문재인씨가 대통령 되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알았다.
반가웠지만, 홍준표 득표의 쪽팔림과 심상정 몰락에 마음이 엿 같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며, 점심 먹으러 ‘식도락’으로 갔다.

빵으로 때울까 생각하다, 오늘 세월호 리본을 만든다기에 내려간 것이다.
다행스럽게 입맛도 없는데, 식도락에서 국수를 끓여 놓았다.
요즘 쓸 수 있는 이빨이 아래위로 두 알 뿐이라 밥 먹기가 영 힘든데,
물 국수라 잘도 빨려 들어갔다.

난순 여사가 비벼 먹는 비빔국수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도 욕심이라며, 눌러앉아 리본 만들기를 기다렸다.






허미라씨를 비롯하여 김정호, 선동수, 박정아, 유한수, 김호태,
김창헌, 이인자, 강병국, 조남철씨 등 일꾼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세 번째 만들었으나, 아직도 다들 서툴다.
규격화를 거부하는 인간 본능이라 믿고 싶었다.

모두들 세월호에 가득 찬 진흙을 호미로 퍼내는 심정으로 리본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새로 뽑혔지만, 아무도 정치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많은 주민들이 정의당을 지지했기에, 비참한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와 힘을 모아 적폐를 하나하나 청소할 것으로 위안했다.






먹을 것이 마땅찮아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베지밀 한 박스를 사왔다.
4층까지 기어 올라와서는 쪽방에 퍼져버렸다.
한 숨 자고 일어나 빵에다 베지밀 까지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오후 아홉시가 넘었지만, 동내 산책이라도 나가야 했다.
밤에는 술 마시는 회사원들 뿐이라 잘 나가지 않지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형님이라 불렀다.
돌아보니 정용성이었다. 이 녀석은 지 애비 벌 되는 놈을 늘 형님이라 부른다.
불렀던 사연인즉, 지 애미와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두 모자가 술을 너무 좋아해 매점에서 소주 두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는,
아들은 시원한 공원에서 마시자 하고, 애미는 쌀쌀하니 방에서 마시자며
서로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지원군으로 불렀던 것이다.

다들 반 술은 되었지만, 나만 말짱해 일단 중재안을 내 놓았다.
30분만 마시고,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사실은 내가 더 술이 고팠기 때문이다.
용성이 녀석은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는 분명 투쟁가였으나,
가사에는 압박과 설음에 해방된 민족까지 뒤 섞인 묘한 노동가였다.
반세기 동안 정치꾼들의 놀음에 길들어 온 우리민족의 자화상이 아니라 자화가였다.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오로지 잘 사는 것만 지향해 온 민초들의 슬픈 노래였다.






약속시간이 되어 다들 황춘화씨 따라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 방은 5층에서도 옥상까지 올라가야 하는데다,
계단도 가파르고 좁아 힘든 코스지만, 한 잔 더 마시려면 따라가야 했다.
소주와 안주가 담긴 오븐을 들고 올라갔는데, 다들 바빴다.

술 취한 용성이는 방 치우러 가는지 먼저 올라가 버리고,
황춘화씨는 4층에 있는 술꾼 정재헌씨 집부터 들어갔다.
이 양반은 술 취해 자고 일어나, 그 때야 허기를 메웠는지 이를 닦고 있었다.
이 판에 어울리면 힘들 것 같으니, 제발 제발이라 부르짖었다.






알 중 어미와 아들, 그리고 좃 중 셋이 모여 오붓하게 한 잔 했다.
술이 취해 오가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사이클이 맞지 않았다.
켜 놓은 텔레비 마저 사이클에 문제가 생겼는지 펄펄 거렸다.
내가 텔레비 죽이라니까, 이번에는 손바닥 만한 라디오를 켰다.

두 모자가 매일 같이 함께 술을 마시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대화의 칸막이처럼 켜 놓는 것이다.





대화 칸막이로는 내 노래가 더 좋다며 한 가락 뽑았다.
‘봄날은 간다’를 불렀는데, 목이 메어 그만 울음이 되어버렸다.
좃이 피면 같이 웃고, 좃이 지면 같이 우는 대목에 못 미쳐,
용성이 모자 앞에서 쪽팔리게 울어버린 것이다.
놀란 두 사람이 무슨 사연인지 의아해 슬픈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황춘화씨와 정용성씨 모자는 동자동에 들어 온지가 삼십년이 넘었다.
동대문에서 양동으로, 양동에서 동자동으로, 마지막 쫓겨 온 곳이 동자동이었다.
황춘화씨가 기초연금 70만원 받아 23만원 방세 제하고 사니 보나마나 뻔하다.
거기다 두 사람이 매일 마셔대는 술값도 장난 아니다.


얼마 전에는 술이 취해 넘어진 용성이가 허리를 다쳤단다.
술만 마시면 아프지 않은데, 술이 깨면 아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진단서를 끊어 제출하면 자기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 진단서를 끊어 왔다며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으나, 병명이 탈골이 아니라  알콜 중독에 의한 의존증이라 쓴 것 같았다.
수급자 자격에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 할 수 없는 환자는 분명해 수급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아니라면 모든 걸 적게 주고 피해가는 잘 못된 법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다.

황춘화씨도 몇 일 전 이웃집 개에 팔을 물려 붕대를 감고 있었다.
기사가 준 돈으로 첫 병원비는 치렀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걱정했다.
추측컨대, 그 기사라는 사람은 기자를 잘 못 알아들은 사진가 김원씨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몇 달 전 사진 찍지 말라며 화 낸 것을 사과했다.
난 잊은 지 오래되었으나, 그는 여지 것 잊지 않고 있었다.
'맞은 놈은 다리 펴고 자지만, 때린 놈은 오무려 잔다'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사는 꼴이 기가막혀 제일 필요한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쌀이라고 했다.
난 밥을 해먹지 않아, 내방에 있는 쌀 포대를 가져가라 했더니,
두 모자가 차례대로 내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착한 양을 굽어 살펴 인도하라”는 기도였다. 아~ 니미 기분 이상하데...





이미 자정이 지나 일어났더니, 황춘화씨도 따라 일어났다.

계단이 위험해 술 취해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아지매 걱정이나 하이소. 다시 올라 갈라 카마 힘든께 내려 오지마소“ 해도
기어이 따라 내려와 배웅했다. 법 없어도 살, 참 착한 모자였다.

어쩌면, 말년까지 마흔여섯이나 된 아들녀석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자식 놈이 그때까지 장가 안가고 밤낮으로 엄마 술친구 되어 줄 놈이 있겠는가?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서, 엄마와 살 부대끼며 사는 맛이 부러울 것이다.

헤어지며 잡는 손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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