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에 가자’사진전이 지난 11일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이라고 좋아했지만, 첫날부터 술에 취해 뻗어버렸다.

전시가 끝나는 열흘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첫 날은 가져 갈 짐이 많아 차를 끌고 나왔는데,

주차할 곳도 마땅찮은데다 빠트리고 온 게 있어 다시 집에 가야 했다.

 

그의 치매수준이다.

눈은 침침하고 귀는 안 들리고,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으니 산송장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산송장을 거두어주는 보살님께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충성뿐이다.

녹번동에 차를 두고 동자동에 들려 충무로로 와야 했다.

 

서울역에서 충무로까지는 회현역과 명동역 다음인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남산 길로 걷게되면 산책코스로 댓길이다.

스산한 늦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 산길을 걸었는데, 머리위로 황금 잎이 휘날렸다.

 

전시장 입구에 도착하니 김이하 시인이 나와 있었다.

김이하시인은 문단의 곽명우씨나 마찬가지다.

이젠 문단 뿐 아니라 화단이나 사단까지 넘나드는 예술 판 마당발이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은 전시장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날 장면이었다.

장터에 누가 어떻게 어울려 있을지 그 분위기가 궁금해서다.

그 첫 장면에 주술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카메라를 손에 쥐고 들어갔다.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고 정면을 향해 찍었는데,

의자에 앉으려는 김이하씨의 어정쩡한 자세 옆에는

대마 명예회복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현영애감독이 서 있었다.

좌측에는 ‘이숲’출판사 김문영 대표와 정영신씨가 있었다.

뭔가 미완의 느낌이 드는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뭘까?

 

한 쪽에는 현감독과 이조기영씨 등 함께 온 손님 몇 분이 계셨다.

지난 번 정선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반가운 분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화가 정복수씨 가족과 김 구, 김문호, 이나무, 양재문, 남태영, 임경일, 이윤기, 장영진, 김범준,

이수철, 박찬호, 김영호, 최인기, 최건모, 한상진, 이기형, 홍성미, 이홍순, 정윤순, 김수진, 김재희,

 박찬원, 김민영, 임홍택, 손은영씨등 많은 분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별도의 개막식은 없으나 다들 맞추어 오셨는데, 반갑기야 하지만 전염병이 걱정이었다.

만약 확진자가 생긴다면 갤러리 문 닫아야 할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들 목숨 걸고 찾아 왔으니,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할 것 아닌가?

묵은지 갈비찜이 맛있는 ‘김삼보’집으로 다들 자리를 옮겼는데,

곽명우, 남 준, 정장식씨는 뒤늦게 합류했다.

 

술 자리에서 많은 대화들이 오갔으나,

귀가 어두워 제대로 알아듣질 못하니 술 밖에 마실 일이 없었다.

일찍부터 홀짝홀짝 마신 와인이 화근인지,

소주가 들어가니 어질어질하며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드러눕고 싶었으니, 이제 봄날은 간 것 같았다.

 

2차는 생각도 못하고, 술자리 파하기가 무섭게 최건모씨 도움으로 택시에 실려갔다.

미안하면 그냥 자빠져 잘 것이지, 택시비 걱정하느라

“이럴 때 119 부르면 안 될까?하는 별 궁상을 다 떨었다.

집에 도착하여 바로 뻗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방한복을 벗지 않아 온 몸이 땀에 젖었는데,

빼지 않고 잔 틀니의 불쾌함에다 속까지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원님 덕에 나팔 두 번만 불었다간 뒈지기 십상이었다.

 

보살님이 데워 준 육개장으로 속을 풀고 다시 전쟁터에 나서야했다.

술 상무를 제대로 하라는 보살님의 지시를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살살 마시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몸이 편찮으니 사진 정리는 물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소식을 못 전해 부득이 연속 상영을 좀 해야겠다.

 

그 이틀 날은 삭은 표내지 않으려고 동동구리무도 바르고 나름의 정장을 했다.

그 꼴에 그 꼴인 것을 꾸물대다보니, 사진가 박옥수선생과 최정균씨가 전시장에 먼저 와 계셨다.

박옥수선생께서 장터사진을 돌아보더니, 오랜 추억담을 꺼냈다.

 

지금은 돌아가신 사진가 문선호선생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무렵인 75년도 이야기였다.

그 당시 문선호선생의 스튜디오에는 박선생을 비롯하여 이창남씨가 일했는데,

쉬어야 될 년 말에 지방촬영명령이 떨어져, 새벽에 찾아간 곳이 여수장이었다고 한다.

장터 사람들의 순박함에 끌렸던 그 때가 그립다는 것이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이동한 강행군이라는데,

년 초에 밥 사먹을 곳이라도 제대로 있었겠는가?

촬영 길에서 돌아 온 즉시 찍은 필름을 현상해 보고는 다시 찍으라고 내려 보냈단다.

최선을 다 하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장터사진에서 그 때 그 사람과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 무엇을 말 하는가?

장터는 바로 그리움이었다. ‘사람 사는 정’ 말이다.

 

한참 후에는, 누군지 아리송한 분이 “날 알겠는 기요”라며 반갑게 다가왔다

마스크 위를 살펴보니 사진가 강위원씨 같은 느낌은 들었으나,

대구에 계신분이라 아닌 줄 알았다.

인사까지 나눈 터라 다시 물어보기도 민망했는데, 마침 팜프렛 한 권을 꺼내주었다.

 

진짜 강위원씨 맞았다. 뵌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근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아직 경일대학교에서 사진 가르킵니꺼?‘라고 물었더니,

정년퇴임한지가 십년이 넘었단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팜프렛은 지난 주 대구에서 열었던 ‘팔공산의 향기’ 사진전이었다,

실린 사진에서 자연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바로 사진가의 마음이기도, 전하고자하는 메시지 같았다.

처음이면서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라 기념사진도 찍었다.

 

뒤 이어 ‘스마트협동조합’ 서인형씨를 비롯하여 최석태, 황경하, 박건주, 이영미,

이미경, 정종열씨 등 조합의 일개 분대가 밀어닥쳤다.

 

사진들을 돌아 본 후 ‘보은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젠 술을 아껴 마셔야 했다.

신사동 ‘뮤아트’에서 마실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살아남기 힘들더라.

 

좌우지간, 전시 덕분에 반가운 분들은 많이 만났다.

이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살아 생 전 뵐 날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김진하, 박신흥, 김준호, 주기중씨 등 뵙지도 못하고 다녀간 분도 여럿 있었지만.

셋째 날 부터는 가까이 있는 동자동 쪽방에서 대기할 작정이다.

행여 보살님 청춘사업에 방해 될지도 몰라, 서랍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켜 놓았다.

 

정영신의 ‘장에 가자’ 책은 여행부문의 베스트셀러다.

출판된 지 몇 일만에 다시 찍은 2쇄마저 품절되어, 일부 서점은 책이 없는 곳도 있었다.

전시장에도 주문한 책이 오지 않아 재고가 바닥났다.

10% 활인해서 판매하는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구입한 책을 전시장에 가져오면 작가 서명과 함께 작품사진(5X7규격)한 점을 선물로 드린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없는 것이 없는 장이 아니라, 없는 것이 더 많은 장이지만,

그래도 따끈따끈한 정은 살아 있다.

“장 구경 하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장이 아니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어제는 정영신씨 전시 준비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빠진 프린트를 위해 '스마트협동조합'부터 들려야 했다.

오후4시가 되어서야 '갤러리 브레송'에 들렸는데, 여러 명의 젊은 사진가들이

  ’‘The Last Dreamer’ 기획전을 철수하고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남진관장의 구상에 따라 프린트한 장터사진이 77장이나 되는데,

어떻게 펼쳐야 할지 난감했다.

대형사진에서부터 손바닥만 사진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가지가지였다.

그런 우려와는 달리 이미 펼칠 도면을 준비해 두었다.

 

김남진관장과 남태영씨에 의해 전시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하러 따라간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전시장을 오르내리며 죄 없는 담배만 죽였는데, 앞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다.

시내버스와 포르쉐 승용차가 부딪힌 경미한 사고였다.

 

승용차의 실수로 일어났지만 시내버스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버스의 후렌다만 살짝 긁혔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차에 탄 승객을 모두 내리게 했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중에 처리해도 될 텐데, 승객들 불편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 무렵, 인천에서 사진가 박춘화씨가 왔는데, 스카치위스키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멀리서 찾아 준 것만도 고마운데,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전시가 마무리되면 정영신씨와 자축파티나 벌여야겠다.

모처럼 정염을 불태울 밤을 만들어준 박춘화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럭저럭 전시준비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 쪽 벽에는 오래된 흑백사진이 차지했고, 벽면마다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장에 오기도 하지만, 먹는 사진으로 한쪽 벽을 채우기도 했다.

난장에서 장사하는 모습 등 정감 있는 장터 분위기가 두드러지도록 만들었다.

 

김관장의 전시기획력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다시 한 번 혀를 내 둘렀다.

불과 두시간 만에 모든 전시준비를 끝낸 것이다. 수고한 분들과 밥 먹으러 갔다.

정영신, 김남진, 남태영씨 등 네 명이 ‘김삼보’에서 묵은지 갈비찜을 시켜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어 개막 뒤풀이 집으로 낙점해부럿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 난 사진가 손은영씨가 밥값을 계산해 버렸네.

이 원수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고맙고 예쁘서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미투가 겁나 참았다.

운전 때문에 술 마시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정영신씨의 ‘장에 가자’ 전시는 20일까지니, 충무로 나오는 걸음에 놀러 오세요,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의 ‘장에 가자’ 사진 산문집 출간을 기념하는 전시가 2020년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립니다.

 

전염병으로 특별한 오프닝 행사는 없지만, 전시기간동안 빠짐없이 작가가 지키고 있어 저자와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많은 관람있기를 바랍니다.

 

‘경향신문’의 사람과 사람 인터뷰 기사에 이어 어제는 국악방송에서 한 시간에 걸쳐 생방송을 하는 등 정영신씨가 요즘 바쁘게 불려 다니는데, 출판된 ‘장에 가자’ 책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습니다. 출판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재판을 찍어 베스트셀러 후보군에 들 정도입니다. 아마 코로나로 대인관계가 단절되니 사람 사는 정이 그립나 봅니다.

 

장돌뱅이 사진가 정영신씨가 그동안 장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바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시골 오일장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유산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터와 유적을 연관시켜 장터가 문화 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하였는데, 각 지역별 역사와 인물, 특산물 등 일곱가지 주제로 분류해 전국 22개 장터를 다루었습니다. 찍어둔 기존의 장터 사진을 두고 다시 발품팔아 찍은 따끈 따근한 사진들입니다.

 

책값은 18,000원이지만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10% 활인된 16,200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 오실 때 구입한 책을 가져오시면 서명은 물론 작품사진(5X7) 1장도 증정해 드립니다.

 

네이브에 '정영신 장에 가자'를 검색하니 책에 베스트 셀러라는 빨간 딱지가 붙었네요. 

전국의 오일장 풍경 담는 ‘장돌뱅이 사진가’ 정영신씨

 

[경향신문]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34년간 시골장을 취재해온 사진작가 정영신씨는 “시골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희로애락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
그 매력에 빠져 ‘34년 한 우물’
지역 유산·풍속사 등 곁들여
문화관광의 허브 가능성 타진

 

담양장에는 대나무로 만든 의자부터 침대까지 100가지가 넘는 죽물(竹物)이 넘쳐난다. 김장철이면 토굴 새우젓이 유명한 홍성 광천장으로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들고, 겨울철 구례 산동장엔 산수유 열매로 장 안이 온통 새빨갛다.

스스로를 ‘장돌뱅이 사진가’라고 칭한 정영신씨(62)는 “서로 다른 모습의 시골장은 사람들의 삶을 진열하는 창”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34년간 오로지 시골장터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온 작가다. 그의 발길이 닿은 전국의 장터만 640여개에 이른다. 전작 <시골 장터이야기> <한국의 장터> 등으로 주목받았던 정씨가 최근 저서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이숲)를 출간했다

 

 

<장에 가자>의 책표지.

 

 

지난 2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전작들이 시골장에 대해서만 다뤘다면 이번 책은 23곳의 시골장들을 그 지역의 문화유산·유적과 함께 소개하는 한편 장터가 문화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씨가 오일장이라고 불리는 시골장에 매료된 것은 1986년 즈음이다. 소설가를 꿈꿨던 그는 신춘문예에 몇 차례 응모했다가 고배를 마신 뒤 인간사를 연구하고자 시골장을 찾았다.

1년간 장터를 돌아다닌 후 장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재밌어 그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정씨는 말했다.

 

 

2011년 충남 예산장

 

 

“당시는 우리나라 경제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장도 엄청나게 변화를 겪던 시기였어요. 장터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니 시대상의 변화가 읽혀지고 인류사의 풍경이 보였어요. 이때부터 장터의 매력에 빠져 한 우물만 팠습니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에게 시골장은 ‘그리움’과 ‘따뜻함’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 장날이면 장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신기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밥집을 하는 친구네로 놀러가곤 했다.

전국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엄마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10여년간 알고 지낸 충북 영동장의 ‘엄마’는 2008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더 이상 안 계셨다. 정씨는 “그날 사진 한 장 못 찍고 온종일 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2012년 경남 김해 장유장

 

 

아울러 시골장은 ‘희로애락’과 ‘숭고함’이다. 정씨는 “아흔이 넘은 할매가 아픈 남편을 리어카에 싣고 와 옆에서 간병하면서 장사하는 모습 등을 보면 삶의 위대함마저 느껴졌다”고 말했다.

시골장에서 문화유산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공교롭게도 시골장의 쇠락 때문이다. 유통산업의 변화와 농촌사회의 고령화 등으로 시골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정씨는 “시골장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시장의 현대화 개선도 필요하지만 장터에 그 지역 문화유산과 풍속사를 곁들여서 문화의 옷을 입혀주면 장터를 찾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 전남 곡성 옥과장

 

 

선조의 거울이자 아이들의 미래
코로나에 밀려 더 빨리 사라질까
마음도 발길도 급해집니다

 

그는 향후 기회가 되면 시골장들을 지역별로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고 밝혔다. 전남 강진 등 시골 농가에서 농부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농작물이 재배돼 장터에 나오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장터는 우리 선조의 거울이자 박물관이고 아이들의 미래예요. 스러져가는 시골장들이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더 빨리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어서 제 마음이 더 다급해집니다.”

 

오는 11~20일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사진전 ‘장에 가자’가 열린다. 정씨가 찍은 77점의 장터 사진들이 전시된다.


 

프로젝트 ‘장에 가자2’ 정선전시를 어렵사리 끝 마쳤다.
27일간 서울과 정선을 오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일반인들의 참여를 확대하기에는 한계를 느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전시 문화에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하는 큰 숙제만 남긴 셈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지역 사진인의 비협조적인 자세다.
주최 측인 정선문화원에서 정선군청 홈페이지에 ‘장에 가자’ 초상사진 퍼포먼서 안내를 했는데,

그곳에다 비난하는 댓글을 올린 것이다.
정선 사진의 대가로 자처하는 스스로의 존재를 몰라주는데 따른 불만인지 모르지만,
전시는 보지도 않은 채,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 와 실소를 머금게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협회원’이란 과대망상적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정선문화원의 전시작가란 말에 공식 인증된 작가 타이틀을 공개하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사진작가란 말이긴 하지만, 사협 회원이 아니니 촬영기사라는 것이고,

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면 자기같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논지였다.
한 사진인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우물 안 개구리 격인 일고의 가치 없는 글이었으나,

아마추어 공룡 집단 '한국사진작가협회'의 병폐를 보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었다.
회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사진교육은 뒷전으로 한 채,

숱한 공모전으로 회원들과 감투 늘리기에만 급급하더니, 이제 그 한계점에 달한 것 같았다.

나도 20여년 전 ‘한국사협’이라는 회보 편집장으로 그 조직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공모전비리는 일상이었고, 조직의 패거리적 병폐에 한계를 느꼈다.

그 당시 이사장이었던 고 문선호씨가 나의 ‘87민주항쟁’전시 추진에 제동을 건 적도 있었다.

사진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어떻게 격려, 지원은 못할망정 전시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직서를 내 던지고 강행했지만, 사협이란 단체가 본래 힘 있는 정치에 아부나 하는 그런 어용단체인 것이다.

그 이후 사진과 교수들을 비롯하여 작가의식이 투철한 사진가들은 모두 사협을 탈퇴하여

‘민족사진가회’란 새로운 단체에 영입되었으나, 그 또한 사진가 김영수씨의 독주로 회원들의 결집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사실 작가들에게 단체는 중요치 않다. 공익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작가 개인으로서는 제약에 불가할 뿐이다.

‘예술인총연합회’ 산하 각 예술단체의 창립 배경도 결국은 부패 정권이 예술가들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일그러진 사진계 내막도 모른 채, ‘사진작가증’이라 적은 전대미문의 회원증 하나에 현혹되어 

가입한 다수의 피해자(사협회원)들을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공모사진이나 형식사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진으로 이끌 수는 없을까?
이 것 저 것 고민거리만 안겨준 정선 전시였다.

글 / 조문호

-아래는 군청 홈페이지에 올린 전석원씨의 글-

“정선문화원에서 시행하는 전시사업은 작가가 아니라
촬영기사라고 표기해야 맞습니다
아무나 같다가 붙이는 작가타이틀 말고
국가에서 공식 인증된 작가타이틀을 공개 해주시면,
어떤 공인단체에서 그런 일을 하는지 의문이 가서 묻고 싶습니다.
정선에 포크레인 공사를 정선문화원에서 무료로 다 해준다고 하면
정선에 포크레인 하시는 분들 포크레인 정선문화원에다가 다 세워놓고 항의 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문화 홍보와 마케팅이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추락시키면서까지 그렇게 절박하게 정선문화원을 운영 하는 것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정선문화원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를 제데로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 디지털아트분과 부위원장
(사)한국사진작가협회 강원도지회 사업간사
강원포토 대표 전석원 “

 

 



-정영신씨가 찍은 아래 사진들은, 전시가 끝나는 지난 15일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이다.-

대구에서 온 양기원씨, 부산에서 온 최종렬씨, 서울에서 온 이도영, 심재현, 이명화, 송민준, 손영주, 이해인, 박찬의씨 정선의 이하윤, 이진순씨, 그리고 무지개빛 청개구리라는 이은영, 엄세빈, 박상우, 박준우, 박용현, 전도연, 송영은, 김민지, 박종선, 김봉섭, 신윤택, 정우준, 임나경 학생 등

 

 

 

 

 

 

 

 

 

 

 

 

 





 

 

디지털카메라를 접하면서 낭만적 삶의 시대는 끝난 줄 알았다.

사진정리하며 인터넷에 몰두하다 보니, 아내로부터 컴퓨터 중독자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 역시 기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한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컴퓨터를 통해 소통하는 인연도 인연이려니와 사진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선에 있는 컴퓨터를 버리고, 정선 있을 때는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정선 갈 때도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양평으로 가는 국도 따라 쉬엄쉬엄 간다.

완전히 서울과 정선을 구분해 불편한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한 달에 열흘 정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는 정선의 삶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자연을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기는 하지만, 잡초와의 전쟁으로 진땀께나 흘린다.

서울에 올라와도 밀린 자료 정리하느라 밤잠 설치기는 매 마찬가지다.

대신 서울에서는 잠꾸러기처럼 늦게 일어나지만, 정선에서는 새벽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새소리에 깨어서는, 표도 나지 않는 일을 온 종일 하는 것이다.

 

지난 말일부터 8월3일까지 머문 정선 체류기간은 평소보다 더 바빴다.

낯에는 전시장에 나가 ‘‘장에가자’ 퍼포먼서의 초상사진 찍어주느라 시간 보내고,

집에 들어와서는 밭을 점령한 잡초 뽑으며, 화재로 불탄 문짝 단장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렇지만 하루 일을 끝내는 밤이 되면 아내와 함께하는 술잔 속에 하루가 스르르 녹아든다.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우리를 축복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인사동을 기록하는 서울생활도 보람은 느끼지만, 힘들어도 정선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행복하다.

수시로 변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에서부터 땀 흘리며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물맛까지 더 없이 좋다.

그렇지만 현실과 밀접한 디지털과의 불륜, 아니 불편한 이중생활을 접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처도 첩도 아무도 버리지 못한채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다.

 

이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작정이다. 어차피 함께 즐겨야할 동반자니까...

 

 

사진 : 정영신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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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잠깐만 캠페인]

 

지난 3월9일부터 15일까지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전국5일장 순례기의 저자 정영신씨가 방송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많은 관심바랍니다. 아래는 캠페인 일정과 방송내용입니다.

 

 

[MBC 잠깐만 캠페인1] 장터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 / 3월 9일 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어느날 부턴가 무작정

푸근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우리네 장터를 순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5일장을 다니며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었는데요,

 

경기도 강화 풍물장에서 오랫동안

음식을 팔아오신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사는 거‘라구요.

 

장터에는 쉬지 않는 삶이 있고,

돈보다 귀한 사람살이의 정이 숨어 있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이나 다름 없습니다.

 

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2]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다. / 3월 10일 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요즘 많이들 가는 대형 할인점과는 달리

장터에서는 물건보다 사람이 중심입니다.

 

흥정을 하고 덤을 주고 받을 때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데요,

시골 장은 상품도 사고 팔지만,

훈훈한 인정도 함께 나누는 곳이죠.

 

어느 장터에서나 들리는

가장 우렁찬 소리는 뻥튀기 가게의

‘뻥~’하는 소리인데요,

이웃과의 정도 정감어린 이 소리에 맞춰서

더욱 커지고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3] 글쓰는 할머니 / 3월 11일 수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몇 해전, 진해 경화장터에서

야채 파는 전찬애 할머니를

처음 만났습니다.

 

장사를 하다 말고 할머니는

종이에다 뭔가를 열심히 쓰셨는데요,

알고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터에서 일하며

힘들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글을 쓰면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고 해요.

 

평생 장-돌뱅이로 살아온 분들 중에

숱한 고비를 지혜롭게 이겨낸 경우가 많은데요,

그 분들의 생생한 장터 인생 이야기에서

세상 살이를 배워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4] 사람을 만나러 장터에 나오다 /  3월 12일 목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하루는 충북 진천장에서

홍시감 몇 개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에게 여쭤봤어요.

'할머니, 이거 팔려고 장에 까지 나오셨어요? '

 

할머니는 ‘그냥 사람들 보고 싶은 마음에

나와봤어~~‘ 하시더라구요.

시골 장터에는 장날이 유일한 외출이고,

장에 나와야 친구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와 얼굴 보는 일보다는

문자나 전화에 익숙해져가는 시대지만,

장터 곳곳에서는 늘 반가운 만남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5 정도단 할머니 / 3월 13일 금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노래와 춤이 취미라는

정도단 할머니를 만난건

전남 진도 오일장에서 였습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손을 펼쳐 보이셨어요.

한 평생 맨손으로 칡을 캐는 바람에

거친 갈퀴손이 됐지만,

어머니로써 부끄럽지 않은 손이었죠.

 

우리네 시골 장터는 정 할머니 처럼

고단한 삶을 묵묵히 살아낸 이들의

땀과 눈물이 보석같이 빛나는 곳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6] 어릴적 장날은 축제날 / 3월 14일 토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장날은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었어요.

 

하얀 고무신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동네 어르신들 뒤로

장에 따라나설 때면,

얼굴엔 늘 웃음꽃이 피었는데요,

 

5일 마다 열리는 시골장의 정겨움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달콤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나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7] 시골 장터의 봄날 풍경 / 3월 15일 일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 장터에서는 봄소식을

봄꽃이 아닌 봄나물이 전해줍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원추리와 돌나물, 씀바귀...

이런 것들로 봄날 장터에는

봄나물 향기가 가득하지요.

 

겨울에 들렀던 경기 안성 5일장에는

봄나물을 캐 둘테니

봄에 꼭 다시 오라는 인정 많은

할머니도 계셨는데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봄나물 향기 맡으러 시골 장터로

향해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정영신,조문호의 ‘장에 가자’ 전람회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전시가 한 달간이나 이어져 지루한 감은 있지만, 언론사 나팔 덕택에 관람객은 꾸준했다.

 

지인이나 재방문 하신 분으로는 서양화가 문영태, 정복수, 장경호, 이길원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조각가 이재욱씨, 도예가 김용문씨, 시인 강 민, 김신용, 조준영씨, 시인 김수영씨 미망인 김현경선생,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부부가 재방문 하셨고,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께서는 매일같이 출근하셨다.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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