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늙은이들을 인생의 도서관이라 말했던가?

인사동 추억의 파편을 건져 올리려 늙은이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인사동에서 시인학교10여 년 운영하다 말아먹은 정동용 시인,

구름에 달 가듯이를 운영하다 달 가듯 떠도는 사진가 김수길씨,

인사동에서 태어난 만담가 장소팔씨의 아들 장광혁씨,

인사동을 번질나게 드나들며 인사동의 추억을 쌓아 온 안동해씨,

천상병시인을 지독히도 따랐다던 허태수목사 등 여러 명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지난 24일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제는 오래된 인사동 사진 자료 찾느라 잠 못 이루다 아침에서야 잠에 빠졌는데,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방문을 열어보니 교회 젊은이들이 도시락을 가져왔는데, 벌써 점심때가 되어버렸다.

세수라도 해야 할 텐데, 화장실 들어 간 사람은 알을 까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않았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도시락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 부랴부랴 인사동에 나간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추억할 장소부터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추억하려는 장소는 흔적도 없이 다 바뀌어 버렸다.

빗길을 헤집고 다니는 나그네들의 발길만 분주했다.

 

약속한 인사아트프라자전시장에 갔더니,

일을 주선한 노광래씨가 먼저 도착해 장광혁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 사진 찍기가 불편했지만, 당사자들이 추억하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짜증스러웠다.

 

인사동에서 40여 년 손수레를 끌고 다닌 분을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정동용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난한 자는 여전히 가난할 뿐이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조해인 시인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축축한 비가 술 생각을 재촉했지만, 허기가 져 더 다닐 수도 없었다.

술안주 삼아 도시락을 까먹으니, 김수길씨와 정동용씨가 차례로 등장했다.

 

분명 술이 약은 약이었다.

배고픔과 짜증스러운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기억에서 불러낸 인사동 벗들을 안주 삼아 옛이야기로 위안했다.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인사동의 하루였다.

 

사진, / 조문호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100일 앞둔 지난 20일 정오, 보신각에서 열 두번의 종이 울렸다.

 

김발렌티노가 준비한 이 행사는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100일 동안 김수영시인을 기리는 다양한 일을 벌인다고 한다.

 

인사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 하는 김발렌티노의 문화사랑은 남다르다.

‘인생은 아름다와라’ 대표라는 직함을 내걸고 지구별청소부로 나선 것이다.

 

얼마 전 생계에 어려움에 처한 그가 종로구청 환경미화원 공채에 응했다고 한다.

면접시험에서 “종로구를 반질거리는 자기 머리처럼 깨끗하게 하겠다”고 말했다기에 한바탕 웃은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의 열성이 인정받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데,

그가 하는 일은 청소에 국한되지 않았다. 청소 업무 외에도 의미 있는 일들을 계속 찾아 나선다.

 

3ㆍ1운동 100주년기념 100일 순례를 비롯하여 윤동주탄생 100주년 기념 100일 시음악제도 열었고,

올해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김대건 신부를 위해 그가 걸어간 스물다섯 짧은 생애를 묵상하며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발렌티노의 문화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남다른 시 사랑에 대한 글을 한 번 들어보라.

 

“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한다. 특히 윤동주 시인과 김수영 시인을 사랑한다.

윤동주를 읽으면 더러운 피가 맑아지고, 김수영을 읽으면 식은 피가 뜨거워진다.“

 

지난 20일은 김수영 시인(1921. 11.27~1968. 6.16)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100일 기도 첫 날이었다.

이 날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정오에 맞추어 보신각 타종 행사를 벌인 것이다.

 

시인 류미야, 사진 찍는 소설가 정영신, 문화기획자 김석준, 경제학자 백영현, 현대무용가 김남식, 배우 이윤정,

문화기획자 전은진, ‘인사아트플라자’ 대표 박복신, ‘르프랑’ 대표 강현숙, 김발렌티노 등 10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김수영시인 100주년을 알리는 홍보용 동영상은 김병천 감독이 찍었고, 스틸사진은 내가 찍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없어 조용히 치러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타종도 세 사람씩 세 차례에 나누어 열 두번을 쳐야 했다.

 

울려 퍼진 보신각 종소리는 분명 저승까지 날아가 김수영 시인께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다.

지난 8월1일 밤 10시경 청와대 앞을 지나갈 때, 김수영시인의 시가 빗속을 뚫고 노래로 완성되어 들려 왔다고 한다.

그 노래를 핸드폰으로 녹음하여 기타리스트 김광석씨에게 보내 악보로 옮겨 와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킨 것이다.

100일 동안 그 노래 가 담긴 엽서를 만나는 사람마다 전달하며 김수영 시인을 기리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전도사인 그를 도와주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숲’ 대표가 엽서 만장과 현수막 제작비를 부담해 주었고, 행사에 참가한 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인사동 ‘르프랑’ 강현숙대표 등

몸으로 마음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는 한 김발렌티노의 문화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지구별 청소부 김발렌티노의 문화활동을 응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류형도의 누드-조형적 구성전이 818일부터 31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1층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20일 정오 무렵 김수영시인 100주년을 기념하는 종각 타종행사 갔다 오는 길에 인사아트프라자에 잠시 들렸다.

 

'인사아트프라저' 박복신대표가 마련한 오찬회에 참석하고 내려오니

1층 전시장에 조각가 박상희씨와 노광래씨가 있었다.

이종승화백도 만나 함께 전시를 관람했다.

 

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운 대작들이 관람자의 시선은 끌었지만, 마음의 울림은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도 코로나와 무더위에 지친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한 번쯤 아름다운 여체에 빠져보심도 괜찮을 듯....

 

박상희, 노광래씨와 유담에 들려 팥빙수에 더위를 식힌 후, ‘SK허브홍수표대표 사무실로 찾아갔다.

 

이 분은 사진가 한정식교수의 고등학교시절 제자라 만나기만 하면 한선생 안부부터 묻는다.

한때는 한정식선생도 이 오피스텔에 계셨으니, 떠나고 나니 그리운 모양이다.

 

홍수표씨는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해 내 사진파일에 남아 있는 게 한 장도 없었다. 

“죽고나면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에 끌려 정자 앞에서 처음으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조문호

 

박복신 (인사아트프라자 대표)

 

십일 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인사동 이야기’는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다.

인사동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간과 인사동 옛 이야기로 엮은 사진집인데, 당시 출판과 함께 인사동 ‘북스갤러리’에서 ‘인사동, 봄날은 간다’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책은 전시기간동안 절반 이상이 팔려 나갔고, 삼사 년 지난 후에는 완전 절판되어 더 이상 구입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저자에게 한 권 남은 사진집마저 도둑맞게 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다.

 

2015년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전농동588’전시를 열며 그동안 발행한 사진집을 견본으로 내놓았는데, 그 책이 감쪽같이 사라 진 것이다, 그 당시 전시장을 지키던 공윤희씨가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 사이에 없어져, 입장이 난처해진 공윤희씨가 CCTV를 돌려 본 것이다. 그런데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책을 몰래 가져간 분은 잘 아는 원로 선생이셨기 때문이다. 하기야! 예부터 책 도둑과 꽃 도둑은 도둑이 아니란 말도 있지 않는가? 그 문제는 두 사람만 아는 영원한 비밀로 묻어버렸다.

 

‘빛깔 있는 사람들’이란 부제를 단 ‘인사동 이야기’는 신경림 시인을 비롯한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억하는 공간에서 찍은 입상사진 110여점과 오래된 인사동 풍정사진 40여점, 그리고 인사동을 추억하는 작가들의 글 47편 등 총 244페이지로 구성된 책으로 가격은 20,000원이었다.

 

 

게재된 입상사진 110여점은 2007년 인사동 ‘공화랑’에서 가진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에 전시한 사진이었다. 뷰카메라로 찍어 한지에 디지털 프린트한 사진인데. 파주 헤이리에 있는 ‘인물박물관’에서 5점, 오산 ‘막사발미술관’에서 4점 구입한 것 외에는 대부분 찍힌 분들에게 실비로 제공하거나 기증하여 제고를 한 점도 남기지 않은 유일한 전시였다.

 

사연이 많은 사진집이지만 절판되어 저자도 갖지 못한 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노광래씨가 인사동 자료를 구하다 알게 되어 개정판을 발간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어려운 출판사 사정을 감안하여 선 구매 독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연락했는지 저자에게 확인하는 전화도 여럿 걸려 왔다.

 

아마 책에 실렸던 분들에게 전화를 한 모양인데,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해 선 구매를 부탁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책이 나왔을 때도 전시 안내 외에는 책 판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어떤 분은 절판된 후에야 책을 구해달라고 안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노광래씨를 원망할 수 없는 것은 단지 인사동을 사랑하는 애착에서 책을 다시 찍고 싶어 선 구매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 책이 복간된다고 해서 노광래씨에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2년 전 ‘진인진출판사’와 새로운 인사동 사진집을 출판하기 위해 계약까지 해둔 상태라 다른 곳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음 달 ‘노숙인’사진집이 나와 마무리되면 새 인사동사진집에 매 달릴 작정이었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정리하여 새 책 제작에 올인 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나, 노광래씨의 열성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재판을 찍으려면 그대로 펴 낼 것이 아니라,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사진을 추려내고 인사동과 관련 있는 분 중에 누락된 분을 추가로 촬영하여 개정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광래씨가 몇몇 분들에게 연락하여 촬영 스케줄까지 잡아 두었다.

 

오늘 오전 노광래씨를 만나 인사동에 사진 찍으러 따라 나섰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박복신 대표와 방귀식씨를 만나 차 한 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뒤늦게 ‘명신당’ 필방 이시규씨와 섬유공예가 최정인씨도 만났다. 오늘은 세분을 촬영했는데, 꼭 들어가야 할 박재동씨와 김진하씨도 연락해야 할 것 같다. 촬영스케줄을 잡아야 할 텐데, 워낙 바쁜 분들이라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인사동 추억을 불러내어 삭막해 가는 인사동에 봄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는 오래전 인사동 전시와 출판에 관련된 기사를 모아두었다.

https://blog.daum.net/mun6144/405

 

최소리의 ‘두드림으로 그린 소리-겁’이란 색다른 전시가 지난 2일 인사동 ‘KOTE 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그 날은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아는 작가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가 남 준씨와 화가 조신호씨도 만났다.

 

먼저 ‘인사아트프라자’의 박재동화백 작업실을 찾았더니, 1층에서 2층 입구로 작업실을 옮겼더라. 매번 갈 때마다 원고마감 시간에 쫒기셨는데, 이젠 개방되지 않은 곳이라 작업에 집중하기가 훨씬 나을 성싶었다.

 

그날 인사동 거리에는 처음 보는 악사가 가야금으로 흥타령을 연주하고 있었다. 색다른 분위기에 귀가 솔깃했으나, 지나치는 이들의 발길은 붙잡지 못했다. 확성기가 없어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킹을 해도 구색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최소리 전시가 열린 ‘KOTE 갤러리’의 넓은 전시장은 평면작품에서 부터 동영상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안쪽에서는 개막식이 열렸는데, 손님도 많았지만 일단 작품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리는 유명 록밴드 ‘백두산’에서 드럼 연주자로 활동한 적도 있는데, 그동안 십여 장의 음반을 냈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 G20 정상회담 등 여러 굵직한 행사에서 그만의 공연을 선보이거나 연출 또는 총감독을 맡아 유명세를 탔다. 자기가 개발한 소리금이란 악기로 독자적인 두드림의 미학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쪽 청력을 잃어가며 연주 대신 두드려서 그림을 만드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 것이다. 두드리는 것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를 자 없는 신들린 사람이 틀림없다. 신들렸다는 말이 미쳤다는 말과 상통하는데, 작가가 한 곳에 미친다는 것 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2019년부터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가 그곳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고 한다. 음악적 영감이 떠오르면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북채로 알미늄 판이나 종이, 캔버스 등 닥치는 대로 두드리고, 채색하고, 빛을 입혀가며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낸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지리산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제작한 ‘24절기’ ‘청학동 노을’ 등 120여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그가 음악에 드럼을 치듯이 리듬에 맞춰 철판을 향해 내리치는 모든 행위들은 예술의 표현형식을 완전히 해체한 전위적인 형태의 새로운 창작 행위이며, 마치 플럭서스 운동처럼 다이내믹한 요소를 철판 위에 각인시키는 행위는 전통적 미학에서의 조형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술까지 한 번에 제시한 것처럼 독자적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전시된 많은 작품들이 음의 파장이나 작가의 체취가 느껴지는 작품이 몇 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이고 독보적인 그의 작업은 높이 사지만, 소리의 파장을 평면에 나타내는 것이 컴퓨터에서야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실제 두드려 그림으로 재현해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온 몸과 정신력을 아끼지 않는 최소리의 집념과 끈기로 보아 언젠가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경지를 이루어낼 것으로 믿는다. 소리의 파장을 재현해 내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폭풍 같은 화음으로 큰 울림을 주는 날이....

 

전시장에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알듯 말듯 한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으나 다들 마스크에 가려 정확히 알아 볼 수 없어 눈인사만 나누었다. 한 쪽에는 마스크를 목에 걸친 인사동 광대 박완호씨 모습도 보였다.

 

이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한 이후 인사동에 최고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휴일 맞은 봄나들이 객으로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여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인사동은 예술가들의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으나,

전시는 물론 모임까지 줄어들어 예술인들의 발길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전시 보러 간 일 외는 사람만나 술 마신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지난 토요일, ‘말하고 싶다’ 지방전에 보낼 전시 액자를 갖고 나갔다.

‘인사아트프라자’ 입구에 있는 박재동화백 작업실에 갖다놓으라는

전시기획자 박 건씨의 메시지를 받아서다.

 

박재동화백의 인사동 작업실은 예술인들 사랑방이나 마찬가지다.

작년 9월 ‘인사아트프라자’ 제안으로 갤러리 입구에 차렸는데,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공간이지만, 종종 예술가들 만나는 공간을 겸한다.

 

그 날은 액자가 있어 ‘인사아트프라자’ 가까운 골목까지 차를 끌고 갔다.

비상등을 켜놓고 바삐 가져갔는데, 박재동 화백을 찾아 온 반가운 분이 계셨다.

촛불정국 때 광화문미술행동 일원으로 자주 만났는데, 사정상 성함을 거명할 수 없다.

앉았던 자리를 내주며 앉으라지만, 오래 머물 형편이 아니었다.

차 한 잔 나누지 못한 채 기념사진만 찍고 와야 했다.

 

인사동에 나왔으면 사람들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무엇에 쫓기 듯 바쁘게 사는데, 죽을 때가 가까워 진 걸까?

아무래도 일 년 넘게 몰아 부친 코로나가 만들어 낸 더러운 병인 것 같다.

 

하루속히 코로나가 끝나 인사동도 나도 정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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