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이야기' 표지 / 눈빛출판사 / 가격 25,000원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이 나와 억지 춘향격으로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인사동을 다시 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 인사동은 서울의 수많은 동네 중에 한 동네에 불과하나 마치 고향 같았다. 긴 세월 예술가들을 만나 정신적 키를 키워 온 것에 비한다면,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보다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이 마냥 좋아 때론 아쉽기도 하고. 원망스러워 밉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어왔듯 인사동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돈에 병들어가는 사람이 미워져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제 돈에 병든 인사동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끔 인사동 골목에서 벗들을 만나 회포 푸는 것으로 위안하는데, ‘맛이 간 인사동을 그만 찍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들 말한다.

 

나에게 인사동은 병든 가족 못버리는 것과 같다. 고향이 싫다고 아닐 수 없듯이 인사동은 인사동인 것이다.

 

오랜세월 인사동을 기록해 왔지만, 예술로서 작품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각양각색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리풍경이나 전시장 풍경이 난무했고, 대폿집 정경을 비롯하여 인사동 향취가 묻어나는 사진도 있었다. 때로는 변해가는 인사동의 어두운 모습도 있었다.

 

수 많은 사진 중에서 '인사동 묵시록'이란 주제에 걸맞는 이미지만 골라냈는데, 백남준씨가 ‘예술은 사기다’고 말했듯이 이 또한 사기다. 사람이 별로 없거나 역광에 의해 무거운 분위기의 사진을 고르고 거기다 한술 더 떠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었다. 사진을 실제보다 어둡게 프린트하여 흥겨운 놀이를 귀신놀음처럼 음산하개 만드는 등의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이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기도 아무나 치는 게 아니더라. 먹고살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덫에 걸린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이 표현하려는 주관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찍는 게 상식이지만, 기록을 중시하는 사진가라면 편파적인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만약 신문기자가 주관적인 기사를 만든다면 기레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앵글 선택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다.

객관적인 기록사진을 찍는 자가 다소 주관적 사진을 골라낸 데 따른 변명을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다. 전시 의도는 눈 앞이 보이지 않는 인사동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삭막해 가는 인사동의 그늘이 짙은 것도 사실이고, 망가져 가는 현실에 실망한 시선도 한몫했다.

 

인사동은 긴 세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온 곳이다. 어찌 보면 예술을 공유하는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에 갔다가 반가운 사람 만나 즐기듯이, 다들 뒷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정 나누어 온 장소다. 혁명을 외치고 사랑과 예술을 노래하며 꿈을 펼친 곳이다.

 

세상 흐름 따라 장터 변하듯 인사동 역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가지만 망치는 것도 사람이다. 유명세에 힘입어 관광지화 되다보니 돈맛에 병든 것이다. 예술보다 돈 되는 상품이 인사동을 장악하는 현실은 전통가게와 전시장까지 밀어내고 있다.

 

돈이 무섭고 악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무자비하게 철거된 문화공간 ’코트‘가 대표적인 예다. 전시장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계약도 끝나지 않은 곳을 강제 철거했다. 용역업체를 끌어들여 고압수를 살포하며 입주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으니, 돈 앞에서는 법도 소용없는 무서운 세상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가게나 문화공간이 어려워도 군데군데 버텨나갈 것이고, 예술가들도 작품을 펼쳐 놓고 어느 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담론으로 꽃 피울 거다. 그래서 하잘 것 없는 인사동 노래라도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인사동 이야기’는 11년 전에 나와 절판된 사진집이다. 인사동에서 잔뼈가 굵은 노광래씨가 복간을 추진하다 개정판이 되었는데, 글과 사진을 일부 추가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내년에 출판할 예정인 인사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전시에 내걸 사진은 인사동의 현실을 말하는 40여점이 주를 이루는데, 책에 없는 사진이 더 많다. 그리고 한 쪽 벽에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상사진 10여점도 내걸기로 했다.

 

주제와 다른 입상 사진을 내건 것은 ‘인사동이야기’의 많은 지면을 인사동 사람들의 입상사진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본래 의도한 책 제목도 ‘인사동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사람들’이었다.

 

초판에 게재된 분들은 13년 전에 열었던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에 내 걸었으니, 추가로 촬영한 20여 명 중 일부라도 선보이려는 것이다.

 

각자가 추억하는 장소에서 찍었으니, 인사동의 특정 거리나 공간도 포함되었다. 사실 인사동이란 장소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켜나갈 전사이기도 하다.

 

‘인사동 이야기’ 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124명의 입상사진을 바탕으로 강민시인을 비롯한 43명의 작가가 쓴 48편의 인사동에 관한 시와 추억담이 있고, 인사동 사진도 37점이 중간 중간 들어있다. 책값은 25,000원이다.

 

이 전시는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인사동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신명난 굿판 한 번 벌이자.

 

사진, 글 / 조문호

 

요즘은 너무 바빠 불알에 요령소리가 날 지경이다.

전시 치루느라 정신 차릴 겨를도 없었는데, 또 다시 전시 아닌 전쟁을 치루어야 할 판이다.

여기 저기 바쁘게 쫓아 다니다보니 반가운 사람도 많이 만났다.

 

어제는 '눈빛출판사' 예술산책으로 교정보러 갔는데, 사진평론 하는 진동선씨가 와 있었다.

둘 다 부산에서 올라 온 처지라 어찌 사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한동안 병원에서 고생하다 살아났다는 뜻밖의 소식도 전해주었다.

사진평론집 출판을 위해 왔다는데,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사진집이 나와 전시까지 준비해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16일부터 정영신의 ‘장날’전이 '돈화문박물관마을'에서 열리기도 하지만,

24일부터 나의 '인사동 이야기'도 '나무화랑'에서 열린다.

 

얼마전 노광래씨가 추진한 ‘인사동 이야기’ 복간이 생각보다 늦어졌기 때문이다.

‘노숙인, 길에서 살다’현수막 전시 때 싸 잡아 출판 기념회까지 열 작정이었는데,

한 분이라도 더 찍어 제대로 된 개정판을 만들려는 욕심이 문제였다.

 

사진원고가 지체된데다 책 만드는 ‘눈빛출판사’까지 요즘 일손이 모자란다.

출판사 운영이 어려워 파주로 옮긴 후로 이대표 혼자 살림 살아가며 책을 만들어야하니

날짜 맞추기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달 하순경 책이 나온다는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전시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적자를 무릅쓰고 내주는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아니겠는가?

사진은 못 팔아도, 책이라도 한 권 팔려는 속셈에서다.

 

문제는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시에 들어 갈 경비야 차지하고라도, 요즘 몸이 말이 아니다.

보름동안 전시 치루느라 퍼마신 술병 후유증으로 빌빌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죽지 못해 움직이는 산송장에 가깝다.

 

그렇다고 정동지 돕는 걸 포기할 수도 없지만, 아는 분들 행사도 어찌 모른척 할 수 있겠나?

근 한달 가까이 돌아 다니며 찍은 사진이 첩첩이 쌓였지만 그대로 처박아 둔 것이다.

이미 시기를 놓쳐 포스팅할 필요도 없는 것이 태반이라 정리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이 포스팅도 근 열흘 동안의 사진과 이야기를 짜집기 한 것이다.

 

며칠 전 정동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시할 '장날' 사진을 프린트하니 좀 옮겨 달라는 기별이었다.

'스마트협동조합'으로 가보니, 때 마침 김문호씨가 와 있었다.

예술인 등록하는 일이 까다로워 도움받으러 왔다는 것이다.

짐부터 옮겨놓고, 서인형이사장과 어울려 전으로 시작해 전으로 끝나는

전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녹번동 정동지 집으로 이어졌다.

 

김문호씨는 나를 처음 만난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부산에 계셨던 사진가 최민식선생을 만나러 갔더니, '서울에 있는 조문호를 만나 보라' 했단다.

그래서 이석필, 안해룡, 김봉규, 추연공, 이한구씨등 여러명이 규합하여 ‘사진집단 사실’이란

동아리를 만들었고, 김문호씨와는 충무로에서 같은 사무실을 사용한 인연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이튿날은 아산에서 ‘공유공간 마임’을 운영하는 김선우씨가 녹번동 집으로 찾아왔다.

정동지가 ‘장날’전을 보조할 장터 소품 좀 알아보라 부탁한 모양인데,

어디에서 구했는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왔더라.

골동 가게에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 있어 깜짝 놀란 것이다.

 

옛날 아리랑 성냥각에서 부터 손저울, 됫박, 체 등 귀한 것들만 챙겨왔다.

김선우씨는 안 되는 게 없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무조건 밀어부치는데는 선수다.

늦도록 노닥거리다 아산으로 돌아갔는데, 자정이 넘어서야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주말에는 정영신씨와 가을 나들이 겸 장터 촬영을 떠났다.

모처럼 호젓한 시간을 가졌으나, 머리는 온통 눈 앞에 닥친 전시 걱정뿐이었다.

전시할 마음을 먹었다가 취소하기를 여러차례 번복하니,

정동지가 ‘나무화랑’ 김진하 관장께 전화 걸어 전시할 날을 잡아버린 것이다.

이제 날자가 정해졌으니, 죽기 살기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있는 사진 골라 전시하는 건 어려울 것 없으나, 무슨 말을 하느냐가 문제다.

조그만 전시장이지만 인사동 정체성도 말하고 싶고, 흘러간 풍류도 되새기고 싶고,

암울한 인사동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 등 온갖 욕심만 난무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내년에 마무리할 ‘인사동 풍류 40년’ 출판전 때 하기로 하고,

며칠 동안 한가지에 집중해 사진을 찾아 보기로 했다.

 

지난 5일은 아침부터 연이어 연락이 왔다.

제일 먼저 케이비에스 이석재 피디 였는데, 오늘 만날 수 없냐는 것이다.

며칠 전 만난 자리에서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다른 방면으로 협조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분량의 연말 특집이라는데, 시달리는 시간보다 빈민들 내세워 잘 난채 하는게 쪽팔려서다.

동자동 사는 동안 여러 매체에서 요청해 온 인터뷰를 번번이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지만 당면한 재개발문제에서부터 고통받는 빈민들의 현실을 알려

개선하는 일 또한 소홀할 수 없는 일이라 ‘동자동사랑방’ 선동수 간사장을 추천했다.

필요하다면 노숙인이나 쪽방 빈민 중에 힘든 사람을 연결시켜 주거나

그동안 찍은 스틸사진은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일단락 지은 것이다.

 

전화 온 바로는 일전에 말한 노숙인 소개도 받고 싶고,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을 샀는데, 사인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빛출판사' 이대표 약속이 내정되어 있어 월요일 오전으로 미루었다.

두 번째는 부산의 함창호씨가 오후 세시경 서울역에 도착한다지만,

그 또한 저녁 시간으로 미루었다.

 

녹번동에 들려 정동지를 태우고 경인선 책거리부터 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진동선씨가 이규상대표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이대표가 파주에서 챙겨 온 교정본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더러 이름과 사진이 바뀐 것도 있으나 초판보다 편집디자인이나 내용이 새롭고 알찼다.

인사동에서 50년 동안 리어카 끈 이방웅씨와

‘그림마당민’에서 잔뼈가 굵은 미술평론가 곽대원씨 사진까지 넘겨주고 마무리했다.

 

마지막 교정은 메일로 하기로 하고, 함창호씨가 기다리는 인사동으로 갔는데,

함창호씨는 짐 내려 놓고 온다며 좀 늦겠다고 했다.

'유목민'에는 장경호씨와 이기정, 한상진씨 등 반가운 분이 여럿 있었다.

골목에 앉아 술 마시다 보니, 벽치기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정동용시인을 필두로 박건, 김수길, 백승호, 정영철, 황경애, 이인섭선생까지 줄줄이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인사동 주막 골목의 진미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함창호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눈 뒤, 자리를 옮겨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작업하는 주제는 사라지기 직전의 농촌가옥과 사람이었다.

농민들 사진은 입상사진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기존 사진과의 차별화가 난제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남은 농촌 옛모습은 곧 사라질 우리의 유산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한 때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을 찍어사진집을 출판한바 있지만,

20년이 가까워지니 당시의 풍경은 모두 바뀌었고, 사람도 세상 떠난 사람이 더 많다.

내가 찍은 사진이 흑백사진인 반면 함창호씨 사진은 컬러사진이었다.

 

사실적인 측면에서는 컬러사진의 리얼리티가 더 강하다.

나 역시 예전에는 흑백사진만 고집했으나, 지금은 컬러사진의 생생함을 더 즐긴다.

함창호씨가 페북에 틈틈이 올리는 사진을 보아 왔는데,

자연이 주는 녹색의 푸르름과 따뜻한 황토색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엇보다 틀에 갇히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화면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다보면 자기만의 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늦게 사진 세계에 빠져들었다지만, 기존 아마추어 사진과는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빠져들어 나름의 가치를 찾아내고 있었다.

 

머지않아 농촌에 대한 그만의 사진세계가 확립되리라 기대되었다.

 

그나저나,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마시다 보니 주량을 초과해 버렸다.

마침 장경호씨와 함창호씨가 비슷한 연배인데다 둘다 경남고등학교 출신이라

두 사람을 붙여놓고 줄행랑 친 것이다.

 

거지 팔자에 대리기사까지 불러 뒷자리에서 비스듬히 누워 편하게 돌아왔다.

바쁘게 쫓아 다닌 하루였지만, 반가운 분들 만나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인천의 성냥공장'이 입에 달삭거렸지만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참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술타령 세월에 몸도 마음도 늙어갔다.

 

먼저 떠난 분도 여럿 눈에 밟힌다.

 

이계익선생 아코디언 연주에 민영시인이 분위기잡네.

 

어린애처럼 퍼 먹이는 장춘이 모습도 정겹다

 

류연복이 가려는데 장경호는 왜 놀래나?

 

고헌이는 쌍팔년도 춤으로 똥 폼 잡고

 

성질 급한 황석영은 술 컵을 날리네

 

누군 뒷동산 아지랑이 부르며 넘어가고

 

누군 따라 불러 동네 시끄럽다.

 

장기도 가지가지 악기도 가지가지

 

인사동 밤무대는 걸판지다.

 

 낭만, 로마네꽁띠, 무다헌, 부산식당, 사동집,  

아리랑, 여자만, 유목민, 푸른별, 풍류사랑,

가는 곳마다 풍류가 넘쳤다.

 

세월 따라 모두가 변해간다.

 

떠도는 사진만 야속타 원망하네.

 

그 때가 그립고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름의 밥벌이를 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많은 직종이 어울려 사는 것이 세상이치다.

손님이 있으면 가게 주안이 있듯 주인이 있으면 심부름꾼도 있다.

 

이방웅씨, 2020년 인사동에서...

인사동에는 갤러리에서 부터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점들이 장사를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전시하는 예술가도 작품 팔러 나온 장사에 다름 아니다.

전시장에는 큐레이터에서부터 작품설치나 작품을 옮기는 일꾼도 있다.

 

이방웅씨, 2019년 봄 인사동에서..

그런데, 인사동에서 리어카로 작품 옮기는 일만 50년 동안 한 분이 있다.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이방웅씨인데, 젊을 때부터 평생 리어카만 끈 셈이다.

 

가끔 인사동을 지나치다 만나게 되지만, 한 번도 통성명 해본적은 없다.

끼리끼리 놀아서가 아니라, 일로 연결되지 않으면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참기름 등 양념을 밥집에 제공해 준 할머니도 그 일을 반 평생 했다.

 

2021, 7. 반 평생을 인사동에서 양념 장사 해 온 할머니

지난 22일 작심하고 그를 만나러 종로세무서 뒷골목을 찾아갔다.

리어카는 골목입구에 두고 노봉기씨가 운영하는 지하 공방에서 일거리 연락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하루 10만원벌이는 된단다.

매일 번 돈을 할멈한테 갖다 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살았는데,

그동안 아들 둘 공부시키고 장가까지 보냈다며 웃으신다.

 

지금은 리어카로 작품 옮기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도 인사동과 낙원동을 오가며 일하는 분이 다섯 명이란다.

이방웅씨가 인사동에서 최고참인데, 단골이 많아 그중 벌이가 나은 편이라고 한다.

작품이나 상품을 조심스럽게 다뤄 가게 주인들이 믿고 맡긴단다.

행여 인사동에서 짐꾼이 필요하다면 전화해 상부상조하세요.

[이방웅씨 전화 010-2335-8774]

 

직업에 귀천이야 없지만,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 돈이 없으면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꼼수를 부리거나 투기하지 않으면 집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아니던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평등이란 말은 말짱 개소리일 뿐이다.

 

그다음은 요즘 인사동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김발렌티노를 만나러 갔다.

일하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 거리를 돌아다니다 뜻밖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잘 몰랐는데, ‘이숲출판사‘ 김문영대표였다.

인사동을 걷다보면 가끔 반가운 분 만나는 것이 인사동 걷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사진, 글 / 조문호

 

 

 

며칠 전 모처럼 김명성씨 댁을 찾아갔다.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작품 전해주러 갔는데,

때마침 김상현씨와 임성익씨 등 여러 명의 손님이 와 있었다.

 

중국집에 요리시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벽에 걸린 이청운씨 그림 두 점이 유독 눈길을 끌었.

여러 번 보았지만, 보면 볼수록 더 좋았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청운씨 명작만 모은

전시라도 한 번 하면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판화전을 열기 위해 작가 측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마침 초창기 중앙미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외에

중요한 작품은 작가가 갖고 있다니 볼만한 전시가 될 것 같다.

 

좋은 작품은 나누어 갖는 의미도 있지만,

오랜 투병에 지친 이청운씨 병원비라도 보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투병하느라 그림에 손 놓은 지가 오래되어 판화에 서명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잘 성사되어 이청운 화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누가 늙은이들을 인생의 도서관이라 말했던가?

인사동 추억의 파편을 건져 올리려 늙은이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인사동에서 시인학교10여 년 운영하다 말아먹은 정동용 시인,

구름에 달 가듯이를 운영하다 달 가듯 떠도는 사진가 김수길씨,

인사동에서 태어난 만담가 장소팔씨의 아들 장광혁씨,

인사동을 번질나게 드나들며 인사동의 추억을 쌓아 온 안동해씨,

천상병시인을 지독히도 따랐다던 허태수목사 등 여러 명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지난 24일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제는 오래된 인사동 사진 자료 찾느라 잠 못 이루다 아침에서야 잠에 빠졌는데,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방문을 열어보니 교회 젊은이들이 도시락을 가져왔는데, 벌써 점심때가 되어버렸다.

세수라도 해야 할 텐데, 화장실 들어 간 사람은 알을 까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않았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도시락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 부랴부랴 인사동에 나간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추억할 장소부터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추억하려는 장소는 흔적도 없이 다 바뀌어 버렸다.

빗길을 헤집고 다니는 나그네들의 발길만 분주했다.

 

약속한 인사아트프라자전시장에 갔더니,

일을 주선한 노광래씨가 먼저 도착해 장광혁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 사진 찍기가 불편했지만, 당사자들이 추억하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짜증스러웠다.

 

인사동에서 40여 년 손수레를 끌고 다닌 분을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정동용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난한 자는 여전히 가난할 뿐이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조해인 시인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축축한 비가 술 생각을 재촉했지만, 허기가 져 더 다닐 수도 없었다.

술안주 삼아 도시락을 까먹으니, 김수길씨와 정동용씨가 차례로 등장했다.

 

분명 술이 약은 약이었다.

배고픔과 짜증스러운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기억에서 불러낸 인사동 벗들을 안주 삼아 옛이야기로 위안했다.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인사동의 하루였다.

 

사진, / 조문호

 

 

 

최정인 (섬유공예가)

지난 18일 '인사동 이야기' 사냥 길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인사동 민중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해 온 김진하관장 만나러 가는 길에발렌티노를 만났는데,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축하 대잔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휴관 중에도 불구하고 김진하관장과 화가 박 건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모처럼 반가운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중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 온 것이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일 정오무렵, 종각 타종 행사를 시작으로 100일 동안 축하대잔치를 연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는데,

기타리스트 김광석씨가 곡으로 옮겨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도 뒤늦게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며칠 사이 새로운 점포가 여럿 들어섰다.

'나무화랑' 건물 일층에 있던 ‘보물창고’가 사라지고 무엇을 파는지는 알수 없으나

‘블랙다이아’라는 간판을 단 새로운 매장이 마무리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보갤러리'가 있던 건물이 재건축되어 건물 전체가 ‘더스타갤러리’란 간판을 달고

개관전으로 서달원씨의 ‘面’이 열리고 있었다.

 

버스킹에 나선 젊은이들의 연주 솜씨들도 날이 갈수록 세련되어 거리가 한층 젊어졌다.

 

두 분 시간 뺏은게 너무 미안해 모처럼 술 한 잔 대접하기 위해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된장비빔밥에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김진하씨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옛날 인사동 다방에서 이루어졌던 나까마들의 그림 거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귀가 번쩍 뜨이는 인사동 사료라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불화가 장춘씨가 나타났다.

네명 인원 초과로 떨어져 앉아 자리 파하기만 기다리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세 사람이 막걸리 두 주전자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달짝한 툇마루 막걸리는 술술 넘어가는 대신, 뒤늦게 취기가 오르는 위용을 알아 더 마실 수도 없었다.

 

정영신사진

반가운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마신 술자리라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 두 화가 사이에 늙은 개 한 마리 끼인 꼴이었다.

 

술이 취해 준비해야 할 골목전시 현장 확인 하느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술만 취하면 개로 돌변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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