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잠자리 한 모퉁이에 이처럼 요강을 두었지요.
화장실이 멀기도 했지만, 애들이 잠결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어두워 요강을 뒤집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단한 삶의 장면이지만, 가족들이 각 방을 사용하는 요즘보다 정겹습니다.
어머니 옆에, 그의 비슷한 꼬맹이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가 이해문씨의 가족인 듯합니다.

옛날 스트로보는 램프 터질 때, 퍽 소리가 났는데,
얼마나 깊은잠에 빠졌는지, 그냥 잠들어 있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난리 났을 것입니다.

어디 간 큰 남자가 아내의 자는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 댈 수 있겠습니까?
분명 미치지 않고는 이런 짓 못합니다.
이런 미친 분이 계시니까, 사진으로 옛 추억도 떠 올리고요.

60년대 곤궁한 삶의 잠자리 모습으론, 유일한 사진이 되었네요.
이게 바로 역사 아닙니까?

‘한국현대사진가선’ 이해문 사진집에서 옮겼다. 





전쟁으로 피폐한 삶을 산 1956년도의 청계천 천막촌 풍경이다.
청계천 어느 지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추운 겨울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곤궁한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힘들어도 불만조차 털어놓을 수 없다.
환경은 열악하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서로간의 인정은 더 따뜻했을 것이다.
물질이 풍족해진 요즘이야말로 인정은 메마르고, 사는 게 흉악스럽게 변해버렸다.

옛날에는 단순히 머리만 깎던 이발소가 지금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자정이 넘도록 회전등이 돌아가는 걸 보면, 늦은 시간에도 손님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대개들 발 씻겨 주고 안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춘까지 풀코스로 이루어진다.
이름만 이발소일 뿐이지 사창가나 마찬가지다.
바깥을 지켜보는 CCTV로 경계들을 하지만, 경찰도 단속에 손을 놓은 듯하다.

재미있는 요지경이라, 가끔은 시절을 되돌리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1956년 이해문 선생께서 찍은 사진으로, ‘한국사진의 재발견’(눈빛출판사)에서 옮겼다.




옛날에도 다방이나 빵집 같은 손님 받는 가게들이
나름대로 멋지게 보이려고 생활 용품으로 장식들을 하였답니다.


정범태 선생께서 1958년 북창동에서 찍은 빵집 앞에는 달구지 바퀴가 놓여 있고,
1956년 이해문 선생께서 찍은 '종점다방' 문에는 물지게가 걸려 있습니다.
물 길러 가다 잠시 걸어놓았는지는 모르나 하나의 장식이 되었습니다.

잠시 들려 찐빵도 사먹고 싶고, 다방에 들어가 도라지 위스키에
다방마담과 농담 따먹기도 하고픈 그런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은 '정범태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눈빛출판사)에서 옮겼고,
아래 사진은 '한국사진의 재발견'(눈빛출판사)에서 옮겼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