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날 12일 신도림 테크노마트웨스턴 베니비스 7층 그레이스홀에서

정주영씨의 딸 김소현양과 이규철, 양미순씨의 아들 이성표군이 화촉을 밝혔다.

 

철부지로만 알았던 ,정영신씨의 조카 소현양이 시집을 간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르다.

 

외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정영신씨 말로는 저승에서도 깜짝 놀랄 일이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때라 결혼식 올리기가 난감했으나,

일 년 전부터 예약해 둔 결혼식이라 어쩔 수가 없었단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라 식장에 50명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영신씨와 시간 맞추어 갔는데, 시골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서울 근교의 친척만 왔는데도, 신랑 측과 우인을 합하니 50명이 훨씬 넘었다.

그렇다고 인원수를 제한해 들일 수는 없으니, 위험한 결혼식이 아닐 수 없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하객이 누가 누군지도 몰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식순에 따라 예식이 진행되었는데, 하객들은 바짝 쫄았으나,

신랑 신부는 좋아서 연신 싱글벙글하네.

 

목숨 걸고 하는 결혼식인데, 사랑이야 얼마나 뜨겁겠나?

 

신랑 성표군이 신부 소현이를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요즘 노래라 모르지만, 노래는 정말 잘 부르더라.

 

또 한 가지 바뀐 풍정이라면 신부가 부케 던지는 장면이었다.

대개 신부가 될 여자 친구에게 던지는 것이 상례인데,

신랑이 될 남자친구에게 던진 것이다.

 

하기야! 순서에 남녀가 어디 있겠는가?

잘못된 관습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신랑 신부만 제외하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주례선생께선 기념사진 찍을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사진기사가 좀 벗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잠시 벗었다가 바로 쓰는 걸 보니, 코로나가 무섭긴 무서웠다.

 

신랑 신부 친구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찍었는데,

세월이 지나면 누가 누군지 알아볼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 낸 살풍경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척을 만났으나 밥도 한 끼 못 먹을 판이었다.

식당은 텅텅 비었는데도 다들 기념품으로 대체하여 그냥 가는 것이다.

 

정영신씨와 둘이서 밥도 못 먹고 돌아 왔는데, 마침 조카 지윤이로 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서 밥이나 먹자는데. 정영신씨 집 부근인 ‘풍년집’으로 정한 것이다.

 

김중호, 심지윤 내외와 딸 유원이를 만나 점심 겸 저녁을 먹게 된 것이다.

소주를 반주로 돼지 한 마리 잡았는데, 고기가 모자라 소까지 잡았다.

덕분에 고기를 포식하는 호강을 했는데, 조카가 계산을 해버렸네.

요즘 일이 많아 밥 살 형편은 된다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가족들이 한 자리 모여 뒤풀이 잔치라도 열 수 있도록 빨리 코로나가 물러가야 할텐데,

쉽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상표야! 소현아! 알콩달콩 잘 살그래이~

그날 주례선생께서 하신, 서로 배려하라는 말씀 잊지 말고...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금요일은 단오제’ 촬영하러 강릉 가야했다.
사진가 성남훈씨가 기획한 ‘100개의 카메라, 100개의 시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국관광공사' 프로젝트로 일 년 동안 계절별로 20명씩, 80명의 사진가가 투입되고,
동영상 20명 등 10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강원도 홍보기록’이다.
난, 포토그래퍼 10팀으로 이규철씨와 조가 되어 ‘강릉단오제’를 찍어야 했다.
단오제는 토요일부터 시작되지만, 하루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3시경 낙원동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느긋하게 어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무의도를 예술 섬으로 만들려고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와
경기민요 전수자인 예당문화원 조수빈원장이 찾아오신 것이다.
어제는 김도이씨가 오더니, 요즘 밥 사주겠다는 분이 많아 즐겁다. 

 





시원한 대구탕으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사창가에 올라가 한 잔하자는 것이다.
팔년도 없는데 사창가는 무슨 사창가냐고 했더니,
사진을 창작하는 집이란다. 꿈보다 해몽이 그럴듯했다.
그러면서 가게에 들려 믹스커피 한 박스를 사왔다.
“우메! 내가 믹스커피 중독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좁은 방에서 커피마시며,
시시껄렁한 한담을 나누었다. 좀 애로틱한...
듣기가 좀 거시기한지 조수빈씨는 가곡 ‘비목’을
민요로 편곡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아 난감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차피 사창가에서 일 치룰 것 아니면 빨리 일어나야 했다.
강릉 갈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낙원동에서 이규철씨 차로 서너 시간 달려 강릉에 도착했다.
현장 부근에 근사한 여관 잡아두고, 근사한 식당에서 한 잔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이규철씨가 홀 애비로 지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독거의 편한 점도 있지만, 그 외로운 밤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촬영스케줄이 잘 못 짜여 있었다.
우린 정해진 일정 따라 움직였지만,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볼거리가
대부분 다음 날부터 잡혀 있었다.
강릉단오와는 무관한 ‘동래야유’ 탈춤과 초등생들의 ‘강릉관노가면극’이 고작이었다.
하루 더 머물면 되겠으나, 일요일 정오에 약속이 있어 밤늦게 돌아와야 했다.
정해진 소재가 없어 보이는 대로 찍었는데. 마음이 조급하니 보이지도 않았다.

찍힌 사람들에게 동의서를 받기 위해 ‘관광공사’직원이 따라다녔으나,
그가 무료할 정도였다.






돌아다니다 공연준비 중인 아리마당에 들려 반가운 분도 만났다.
삼척엠비시 황지웅 피디가 취재 나와 있었다.
동자동에 한 번 가겠다고 벼루다 아직 못 갔다며,
오래 전 서울역과 영등포 홈리스를 취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의 촬영모습이나 프로필사진도 몇 장씩 찍어야해,
이규철씨의 촬영모습을 관찰하였는데,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삼각대는 물론 드론까지 챙겨왔더라.
다행히 이규철씨가 하루 더 체류하여 보충하겠다기에 한 시름 놓고 돌아왔다.






작년에는 20년 전에 찍은 무당들을 만나 사진을 전해 주지 않았던가.
굿 보러 일부러 찾아 갔었는데, 이번엔 목전에 두고도 그냥 와야 했다.
세상만사 다 연이 있는 것 같았다.
강원도 홍보기록을 위해 소지라도 한 장 올려야하는데...

사진, 글 / 조문호

단오제 사진은 의뢰 받은 사진이라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 나가는 게 습관이 되어 토요일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지난 토요일은 집회가 없었지만 나갈 채비를 했는데, 마침 ’눈빛출판사‘의 이규상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류가헌‘ 전시장에서 만나 점심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다.

사실 ’류가헌‘이 옮긴지가 제법 되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더구나 나도 출품한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지 않은가.

첫 날 일이 있어 못 들리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것이다.

길눈이 어두워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가보니 촛불집회 때마다 들락거린 청와대 가는 청운동이었다.

전시장에는 황규태선생을 비롯하여 이규상, 이규철씨가 나와 계셨고, 뒤이어 석재현, 박진영, 하지권씨도 만났다.

다들 반가웠으나 황규태선생을 뵈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몇 일전까지 ‘류가헌’에서 열었던 황선생님 개인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좋은 전시를 못 본 건 내 손해인데, 스스로의 게으름을 자책해야 했다.






2관에서는 강제훈씨를 비롯한 13명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찍은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었고,

1관에서는 사진가 이규철씨가 컬렉션한 ‘我 之 我’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년 한 장씩 20년 동안 모은 작품 20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진가가 매년 사진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이기에 허턴 작품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잘 알려진 작품도 있었는데, 사진보는 안목이 덜한 분은 믿고 살만한 작품들이었다.

전시된 작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작가와 연결시켜 주는데, 부담 없는 가격이라 제법 팔렸다고 한다.

또한 사진집을 구입한 분께는 작품사진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고 있었다.

사진 컬렉션에 다시 한 번 관심 갖게 하는 좋은 사진나눔운동이었다.






이규상, 황규태 선생과 전시장 옆에 있는 떡 만두국 집에서 식사를 하고 ‘광화문광장’까지 걸어왔는데,

경복궁 앞길에는 유난히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여느 때와 달리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이순신동상 부근에는 ‘사회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인사동터줏대감 강 민시인과 방동규선생이 계셨고 옆에는 미모의 소설가 김단하씨의 모습도 보였다.

술 한 잔 하자는 강 민선생의 말씀에 간재미집으로 안내했다.

방배추선생의 구수한 옛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방동규선생 사모님께서 광장에 기다린다는 전갈이 받고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사드저지 및 세월호 진상규명, 적폐청산의 날‘이란 퇴진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사진가 고 헌씨의 모습도 보였고, 무대에는 장순향교수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앞에 닥친 대선에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는 분은 이재명, 심상정 후보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드철회는 물론 모든 진상규명과 적폐가 청산될 때까지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광장’을 문화예술난장으로 만들어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전진기지로 만들자.


사진, 글 / 조문호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갔다.
지난 14일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마동욱씨 사진전도 도와야 하고,

인사동 사진축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나, 장모님 병원 모시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후 6시 무렵의 인사동 거리는 여느 때와 달리 한산하였는데,
길거리에서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를 만나기도 했다.






‘토포하우스’에 들렸더니 이미 DP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작가인 마동욱씨를 비롯하여 엄상빈, 이규상, 박진화씨 등 몇몇 분이 계셨다.
작품들이 크고 많아 다소 답답한 느낌은 들었으나, 잘 정리되어 있었다.
좀 있으니, ‘한겨레’ 노형석기자도 들렸다.









그러나 서둘러 모임이 있는 ‘허리우드’로 자리를 옮겨야했다.
그 자리에 엄상빈, 이규상씨를 비롯해, 이규철, 이한구, 강제훈씨도 나왔다.
사진전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나왔고, 일할 사람들도 추천했다.
구체적인 기획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큰 틀만 짜고 헤어졌다.







엄상빈, 이규상, 강제훈씨와 마동욱씨가 있는 '토포하우스'로 찾아가,
이야기 나누고 있던 노형석씨와 함께 ‘사동집’에서 만두전골에 막걸리 한 잔 했다.
신방과에 제학 중인 마동욱씨 아들 마일훈군도 함께 했다.

마동욱씨의 파라만장한 삶과 사진이야기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으나,
문 닫으려 기다리는 주인장 송점순씨가 안 서러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노형석씨와 ‘유목민’에도 잠시 들렸다.
그 곳에서 김명성, 전활철씨와 어울려 소주 한 잔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으나, 막차시간이 임박해 더 머물 수 없었다.


사진,글 / 조문호
















내일 인사동 ‘토포하우스’에 열리는 마동욱씨 전시개막식에서 한 잔 합시다.


마동욱의 ‘고향의 사계’ 사진전
장소 : 인사동 ‘토포하우스’
일시 : 2016년 6월15일부터 21일까지
초대일시 6월15일 오후5시


 

7월3일 오후7시,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상훈씨의 ‘살기 품은 풍경’전이 개막되었다.
전시와 함께 눈빛 사진가선 열네 번째 사진집 ‘가자전쟁-미로의 벽’도 출간되었다.

가자지구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들은 포화에 물든 전장의 긴장감이 가득했다.
분쟁지역의 아픔에 앞서 한 사진가가 목숨을 걸고 기록한 장면 장면들이라 존경심마저 일었다.

 

전시장에는 김남진, 김보섭, 엄상빈, 이규상, 박종우, 신현림, 이규철, 박순기, 장 숙,

곽명우, 채승우씨 등 50여명의 사진인들이 사진을 관람하며 전시를 축하했다.

나는 김상훈씨를 처음 알았다.
신문, TV는 물론 사진잡지 한 권 사보지 않았으니, 사진뿐 아니라 모든 정세에 어두웠다.
10여일 전 아내에게 등 떠밀려 페이스북에 발 들여놓으므로, 이 전시도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사우들을 만나 술 한 잔 했는데, 사진상의 무성한 뒷이야기에 부화가 치밀었다.

아마추어 단체의 공모전 비리논란만도 부끄러운데, 프로들의 사진상까지 한몫한 것이다.

하기야 여지 것 수상자 명단이 오를 때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작품의 질은 차지하고 인맥으로 엮여온게, 오랜 사진사와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원로사진가들이 편 가르기를 하더니, 이젠 그의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았다.

어떤 원로사진가는 영향력 있는 큐레이트를 앞세우며, 모두들 끼리 끼리 논다.

그 기득권에 밀려난 아웃사이드들만 설 곳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나, 왕따가 두려워 말 못할 뿐이다.
나 역시 모두들 가까운 분들이라 망설였으나, 늦었지만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가?
제발! 사진찍는 사람들 쪽 팔리는 일은 그만하자.
이젠 소신 있게 일 하는 능력 있는 운영자들이 나서주어야 한다.

김상훈씨처럼 목숨 걸고 찍는 유능한 사진가들에게 힘 실어주는 사람 말이다.

돈 명예,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인가?
제발 우리 사진들을 넓은 안목에서 껴안아주자.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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