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품 앞의 윤용주씨

장애 화가 윤용주씨의 ‘쪽방촌의 봄’이 지난 8월5일 충무로 ‘갤러리 꽃피다’에서 열렸다.

 

동자동의 봄, 64.5X54.0 / 80만원

‘쪽방촌의 봄’은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작품이라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달빛 비친 가을날, 48.0X47,5 / 50만원

윤용주씨가 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 온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는 30대부터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작가로 살기가 만만찮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위해 건설 하청 업체를 운영했으나, IMF를 맞아 부도를 낸 것이다.

 

동자동의 저녁, 67.5X64.5 / 80만원

어렵게 이어가던 일용직마저 끊기자 술에 빠져 살았다.

노숙과 고시촌, 쪽방 촌을 전전한 체념의 세월은 몸을 보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온갖 질환에 시달렸는데,

8년 전부터 합병증으로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한 것이다.

 

고가도로, 64.5X54.0 / 80만원

윤용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추석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왼쪽 다리는 남았으나, 점점 썩어 들어가 체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것은 예술의 힘이었다.

한 사람 눕기도 빠듯한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만난 2016년 9월의 윤용주씨 모습

작업공간도 열악하지만, 20여 년 동안 손을 놓았던 그림이 쉬울 리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결과 서서히 빛을 발하며,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쪽방에서 그림 그리는 윤용주씨 모습, 2017년 5월,

그림에 옛 솜씨가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실렸다.

2017년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을 수상하며 재기한 것이다.

 

후암동성당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찾은 동자동 사람들과의 기념촬영. 2017년12월

그해 12월 ‘후암동성당’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다웠다.

 

산수유마을 / 128,5X90.7 / 200만원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은 아름답다 못해 처절했다.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엿보였다.

 

이번에 마련한 ‘쪽방촌의 봄’은 세 번째 열린 개인전이다.

지난 5일 열린 개막식에는 아산농장 가는 주말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충무로의 '갤러리 꽃피다'

월요일 오후 무렵 전시장에 들렸는데, 마침 작가가 지키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려 온 산수화나 꽃그림에서 진일보한 삶의 주변풍경도 여러 점 걸렸다.

그림도 좋아졌지만, 군데군데 팔려 나간 빨간딱지가 붙어 더 좋았다.

 

진달래의 꿈 외 / 54,3 X 48.0 / 각 50만원

윤용주씨는 2년 전부터 ‘동자동 사랑방’ 대표를 맡으며, 어려운 노숙인을 돕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이번 전시도 주민자치단체인 ‘동자동 사랑방’ 기금 마련이 목적이다.

 

구례의 봄 (좌측) 97.5X 67,7 / 100만원

그리고 윤용주씨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사진가 김 원씨 덕이다.

화구를 사주며 재기의 불을 지핀 것도 그였지만, 세 차례의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이보다 더한 자선이 어디 있겠는가?

 

동자동에 살다 보면 여기저기 먹거리를 갖다 주거나 빈민을 돕는 자선가들이 더러 있지만,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런 자선은 흔치 않아, 귀감이 될만하다.

 

월하(왼쪽 첫째) 70,0X63,8 / 80만원

26점이 전시된 ‘쪽방촌의 봄’은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많은 관람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마을공동체 ‘동자동사랑방’의 2023년 제14차 정기총회가 

지난 15일 오후2시부터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열렸다. 

 

2008년 결성된 ‘동자동사랑방’은 지난 15년 동안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쳐, 

삭막한 세상에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공동체다. 

 

동자동 주민들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기다 보니, 서로 도와 병원에 함께 가기도 하고, 노숙인들의 쪽방촌 안착을 돕기도 한다.

중요 활동으로는 밥상공동체인 ‘식도락’을 운영하며, 한가위나 어버이날에는 마을 잔치를 벌여 주민들을 위안한다.

이밖에도 비좁은 방에 선반을 달아주거나 정기적으로 마을 청소도 하고, 주민들에게 법률상담을 주선하기도 한다. 

그리고 쪽방에서 돌아가신 어르신을 위해 마을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간 망자를 기리며, 

살아 남은자의 권리를 위해 반 빈곤 연대활동을 펼치는 등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는 주민모임이다.

 

다만 참여하는 주민이 일부에 불과해 안타까움을 더해 주는데,

이것은 희망을 잃은 주민과 희망을 가진 주민으로 나누어진 동자동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온 종일 방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사랑방이라도 들락거리며 활동하는 분들은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므로 외로움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정기총회도 참석 회원보다 위임회원이 더 많은 것은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매사에 의욕을 잃어가는 것이라 더 안타깝다.

 

정기총회에는 윤동주 공동대표의 인사에 이어

박승민간사의 22년 정기총회 결과보고와 활동보고 및 재정보고가 이어졌다.

 

이어 김호규 감사의 2022년 감사보고가 상세하게 보고되었다.

예산집행이나 영수증수취와 보관이 완벽하게 처리되었음을 밝혔고,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랑방의 미래를 함께 꿈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표선출 안은 양정애, 윤용주 공동대표가 연임되었고,

2023년 예산안은 수입 지출 공히 65,500,000원으로 상정 가결되었으며,

선동수간사장의 총회기록보고에 이어 이원영씨 등 외부인사 소개와 인사도 이어졌다.

 

눈에 띄는 사업계획으로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치루지 못한 마을장례를 재개하여 주민들의

조문을 받을 수 있게 하거나,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위한 대외활동에 더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동자동 사랑방’의 발전과 주민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온전하고 신속한 추진을 바라는 쪽방 주민들의 집회가 지난 13일 오전 11시부터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사는 동자동, 내가 살아갈 동자동‘이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집회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2021 홈리스 주거팀‘, ’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동자동에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대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을 비롯하여 선동수 간사장, 박승민 활동가, 김호태, 양정애씨 등 3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오전 7시30분경 세종시로 출발했다.

 

10시 30분경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상임활동가를 비롯한 여럿 명이 먼저와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들 서둘러 나오느라 식사를 못한 터라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부터 했다.

 

국토교통부 청사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찿아 온 단체의 집회와 갖가지 현수막으로 어수선했다. 누군 ’저런다고 들어줄까?‘지만, 옛 말에 ’우는 아이부터 젓 물린다’란 말이 있듯이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것 같더라. 여기저기 우산을 배치하는데, 우산에는 각기 다른 글자가 적혀있었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씨 진행으로 시작된 주민 좌담회에는 동자동의 김호태, 백광현, 김영자, 앵정애씨가 나와 여러 가지 애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김호태씨는 비가 오면 방에 물이 흘러 방 주변으로 도랑처럼 물 고인 흔적이 남아 있다며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점은 어느 쪽방 건물이나 비상구가 없다고 했다. 만약 불이라도 나면 다닥다닥 붙은 쪽방 건물들은 가파르고 좁은 출입 계단뿐이라 대형참사를 면키 어렵다고 말했다.

 

백광현씨는 건물주인들의 횡포를 꼬집었다. 어느 날 방문마다 안전진단을 이유로 방을 비우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강제퇴거 시키고는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양정애, 김영자씨는 동자동은 고향 같은 동네인데, 재개발 소식에 큰 희망을 품고 산다고 했다, 우리도 이웃과 어울려 커피라도 한 잔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며 좋아했는데, 혹시라도 잘 못 될까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유행가 ‘안동역에서’와 ‘내 나이가 어때서’에다 ‘서울역에서’와 ‘공공개발 어때서’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 부르는 순서가 되었는데, 대표 가수로 차출된 백광헌씨의 노래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동자동에서

 

동자동에 갇혀버린 허무한 세월이여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을 생각하며

남은 인생 희망을 품는다~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

길고도 험했는데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공공주택 사업아~

지금에야 집 같은 집 꿈을 꿔 본다.

공공개발~ 눈물이 난다

 

공공개발 어때서

 

야~야~야~ 공동개발 뿐이죠

우리는 공공개발 원해요~

마음은 하나요 공공개발 뿐이죠

건물주가 우리 집 지어 줄까요~

물이 새도 나몰라

방세만 받으면 끝

돈만 아는 집 주인들 뿐이죠~

세입자 사는 건 관심들도 없고요

오로지 방세만 받으면 끝

싫으면 나가라

우리들은 투명인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요~

 

이어 발언에 나선 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가까이 지내던 전 이사장 유영기씨와 아끼던 후배 한정민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사람이 죽어도 금방 알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건물주들은 사람이 죽어도 나몰라라 하며 오직 방세 받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며, 이젠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의를 다졌다.

 

‘동자동 사랑방’ 윤용주 대표는 공공주택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쪽방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은 공공주택사업추진 조직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당사자 의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양동쪽방 주민회’ 용명중 위원장은 충분한 물량공급으로 개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우리도 교도소 독방 같은 쪽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연대 발언으로 나선 세종장애인차별철페연대 문경희 대표의 설움을 토해내는 울부짖음은 듣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김정호, 윤용주, 김영국 주민대표가 차례대로 낭독하며 국토교통부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어 ”공공개발 환영한다. 적정면적 제공하라. 임대주택 확대하라“란 글이 적힌 우산을 펼쳐 들고 청사 주변을 행진하는 가두퍼레이드를 펼쳤다. 아마 청사에서 일하던 담당자들이 내려보았다면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행진을 마친 뒤 주민 몇 분이 차례대로 청사를 바라보며 요구 사항을 외쳤는데, 마지막 발언에 나선 김정길씨는 ‘쥐하고 바퀴벌레와 사는 열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이젠 정부에서 개발업자나 투기꾼들 배만 불리는 민간개발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공공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서민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십억의 돈이 권력자 로비 자금이나 사례비로 나가는 등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대장동 사건을 지금 겪고 있지 않는가? 동자동 공공개발을 시범으로 전국으로 확대 추진하길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요구서 전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흔들림 없이 신속히 추진하라

 

지난 2월5일 발표된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에는 전국 최대의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과 같이 살아가기에 쪽방촌을 떠나지 못했던 쪽방 주민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것이 아닌 보다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큰 의미를 두고 추진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번 사업이 쪽방촌 주민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자로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과정에 쪽방 주민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업추진 조직(TF)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공동주택사업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 논의 구조에 주민(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보장하여 당사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쪽방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번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쪽방 주민을 시혜와 공급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 공공임대주택 입주 후에도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 갈 수 있도록 개발계획에 동자동 주민 자치 조직의 활동 공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동자동 사랑방’과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는 풀뿌리 주민 자치 조직으로 2007년부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쪽방촌의 유일한 주민 자치 조직으로 지난 10년 이상 지역에서 주민 협동공동체 실현을 위해 힘써 온 주민조직들이 개발 완료 후에도 계속 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사무실)과 주민 스스로 다양한 마을 행사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터, 공원)이 확보 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3, 충분한 물량 공급으로 이번 개발 범위 안에 포함되지 못한 동자동 인근의 쪽방 주민들을 포함 할 수 있는 물량을 공급하여 최악의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임대주택 1,250가구가 충분한 공급량인지에 대해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사업 지구의 경계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범위 밖의 쪽방 주민들과 고시원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이번 계획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함께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쪽방은 사라져야 한다.

 

반지하나 고시원보다 못한 것이 쪽방이다. 지난해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에는 남대문로5가(양동), 돈의동, 창신동, 전농동 쪽방촌이 남아 있고 대구와 인천에도 쪽방촌이 있지만, 이곳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추진 계획은 없다. 쪽방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속에서 건물주들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쪽방은 노후하여 오래전부터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건물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 남아 있는 쪽방촌에 대한 주거 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해결해야 한다.

 

최후의 주거 쪽방. 쪽방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제되고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공공주택사업으로 쪽방촌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시혜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토부는 이상의 요구를 반드시 수용하기 바란다.

 

2021년 10월 13일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 촉구 국토부앞 집회 참가자 일동

 

 

 

 




쪽방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 다들 걱정되는 모양이다.
사진하는 정영신씨가 지난 12일 동자동을 방문했다.





내 사는 것도 보고 싶겠지만, 용성이 모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수면바지 두 개와 먹거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온 김에 송범섭씨와 장애인화가 윤용주씨도 만나보라고 했다.

 





그 들 살아 온 이야기 들어 보면 책 몇 권 읽는 것보다,
더 값진 공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방 아래층에 사는 송범섭씨 방부터 찾았는데,
그 방은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방이 작아 세 사람 앉으니, 꽉 찼다.






한쪽에는 약봉지가 줄줄이 놓여있고,
한쪽에는 나비 접기 위해 모아 둔 종이 봉지도 있었다.
이 친구는 늘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갖고 산다.





쪽방상담소 봉사요원으로 일하며, 틈만 있으면 희망의 나비를 만든다.
한 때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이젠 달라졌다.
얼마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아껴 적금까지 들며 꿈을 키운다.






세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며 희망과 좌절을 반복했지만,
모든 욕심 버렸으니, 더 이상 좌절할 것도 없다.






두 번째는 장애인화가 윤용주씨 방을 찾았다.
들여다보니, 좁은 방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 일전 성당에서 치룬 그림전이 성공적으로 끝나 의욕이 충천했다.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다리의 통증마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보라는 부탁도 했다.
그 정도 의욕이고 투지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다.






세 번째는 오층 옥탑 방에 사는 황춘화씨 방을 찾았다.
쪽방에서 두 명이 살 수 없어, 높고 가파른 옥탑 방을 얻어 사는 데,
방안에 있어도 입김이 절로 나왔다.






전기장판으로 간신히 온기를 유지하지만, 말이 방이지 창고나 마찬가지다.
두 모자는 큰 냄비에다 술국을 끓여놓고 있었다.






황춘화씨는 40여년 전 남편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여 어린 용성이를 안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 뒤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맞아 죽었단다.





자활봉사로 떠돌며 공중화장실 청소에서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마저 힘이 미치지 못하니,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젠 힘든 일을 할 필요는 없으나, 늘 아들과 술로 소일하고 있다.
함께 마시다 차례대로 쓰러져 자지만, 행복해 보였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이 혼자 사는 쪽방에서,
사랑하는 두 모자가 즐겁게 사니, 그 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 모두 술기운에 젖어 살지만,
서로 챙겨주며, 술도 조금씩 절제시켰다.
오히려 나더러 술 좀 적게 마시라며 용성이가 충고했다.






세 사람 살아 온 이야기만 옮겨도 책이 몇 권은 될 것이다.
정영신씨는 작은 위안이라도 주고 싶어 왔지만, 오히려 위안을 받은 것 같다.
어느 누가 그들을 보고, 세상에 불만이 있겠느냐?



사진, 글 / 조문호


























윤용주씨의 한국화전이 지난 3일 후암동 천주교회를 장식했다.

전시장엔 이른 시간부터 주민들의 축하 발길이 이어졌다.
‘동자동사랑방’ 선동수 간사장을 비롯하여 조두선, 강동근, 유영기, 이난순씨 등
많은 분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전시를 축하하고 있었다.






윤용주씨는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했으나.
다들 그냥 가져가지 않았다. 하나 같이 어려운 처지인데도
몇 만원씩이라도 모아 서로 정 나누고 있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여지 것 많은 전시를 보아 왔지만, 이 보다 더 성공적인 전시는 없었다.
이번 전시에 30여점을 내걸었으나 여섯 점만 남았는데,
그마저 가져가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작품의 질이 높고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근사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들도 한두 점 팔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시장마다 파리 날리는 실정인데다, 전시가 끝나도 작품을 집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용주씨 전시는 달랐다.

단 하루 전시로 이만한 관객이 다녀가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주인을 찾아 벽에 걸린다는 사실이다.






모든 작품을 팔아도 큰돈은 아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이젠 작가 윤용주 만의 색깔을 찾아 작품의 질을 높이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또 다른 윤용주씨의 변신을 기대하며,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2017년 12월 04일 (월) 19:34:54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두 발 없는 지체 장애인 윤용주(54세)씨의 한국화전이 지난 3일 후암동 천주교회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절망의 늪에서 다시 일어 선 흔치 않은 전시라 주변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 윤용주, '산하' 73x 53cm (국제장애인미술대전 특선작)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 온지가 13년 된 한국화가 윤용주씨의 인생은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세월이었다.

전시장마다 좋은 전시가 한 둘이 아니지만,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다웠다.



    

▲ '포도' 45x53cm



아름다운 진경산수를 먹물로 풀었는데, 대부분 화려한 꽃이 어우러진 채색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이 핏빛인양 처연하게 보이는 것은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서렸기 때문일 것이다.



    

▲ '만추' 59x56cm



그는 IMF가 만들어 낸 희생양이다. 전주에서 건설회사 하청업체를 운영하다 부도가 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술로 한탄의 세월을 보내다 가족에게 버림당했고, 서울의 고시촌과 쪽방 촌을 전전하며 죽지 못해 연명해 온 것이다.



    

▲ '단풍' 45X35cm



기나 긴 체념의 세월은 건강을 돌 볼 여유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그의 종합병원 수준인데,

몇 년 전 합병증에 의해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해 볼 때만 해도 오른쪽 다리만 절단하였으나, 이젠 두 다리를 모두 잃은 1급 지체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 전시작품 앞의 작가 윤용주씨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에게도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30대에 화가로 활동한 이력을 알게 된 사진가 김원씨가 그림을 그려보라며 사준 화구가 용기를 내게 했다.

20여년 중단되었던 한국화였지만, 그의 집념은 단숨에 세월을 되돌렸다.

한 사람 눕기도 불편한 그 비좁은 쪽방에서 틈만 있으면 붓을 잡았으니,

옛 솜씨가 다시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실려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들



지난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당당하게 특선으로 뽑히므로 자신감을 얻게 되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전시를 이틀 남긴 지난 1일 동자동 ‘새꿈공원’앞을 지나다 작가 윤용주씨를 만났다.

전시가 눈앞에 닥쳐 할 일도 많을 텐데, 자신의 발 역할을 해주는 전동휠체어가 고장 났다고 했다.

마침 봉사단체에 연락이 닿아 휠체어를 실어 보내고 있었는데,

표정도 밝지만 뚜벅 뚜벅 무릎으로 걷는 걸음에 힘이 실려 있었다.



    

▲ 전시를 앞 둔 윤용주씨가 바삐 걸어가고 있다



절망과 희망의 엄청난 차이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인간의 강한 의지 앞에는 몹쓸 병마도 무릎 꿇게 한 것이다.


지난 3일 후암동 천주교회에 마련된 전시에는 많은 쪽방 촌 이웃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고 있었는데,

작가 윤용주씨는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필요한 이웃과 나누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삶을 사는 동자동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전해주는 따뜻한 손길에는 정이 서려있었다.



▲ 축하하러 온 동자동 주민들과의 기념촬영



예술의 가치란 작품성만 논하며 구중궁궐에 갇히는 것 보다, 대중들이 같이 좋아하며 함께 나누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윤용주씨의 재기전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그의 작품에서 예술의 위대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day.co.kr






두 발 없는 지체 장애인 윤용주(54세)씨의 한국화전이
오는 3일 후암동 천주교회에서 개최된다.

동자동에 들어 온지가 13년 된 윤용주씨의 인생은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세월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진경산수를 먹물의 짙고 옅음으로 드러낸 수묵화도 있으나,
대부분 화려한 꽃이 어우러진 채색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이 핏빛인양 처연하게 보인 것은,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IMF가 만들어 낸 희생양이다.
전주에서 건설회사 하청업체를 운영하다 부도나며 비극은 시작되었다.
술로 한탄의 세월을 보내다 가족에게 버림당했고,
서울의 고시촌과 쪽방 촌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기나 긴 체념의 세월은 건강을 돌 볼 여유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그의 종합병원 수준인데,
몇 년 전 합병증에 의해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했다.
지난 해만 해도 오른쪽 다리만 절단하였으나,
이젠 두 다리를 모두 잃은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에게도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30대에 상업화가로 활동한 이력을 알게 된 사진가 김원씨가
그림을 그려보라며 사준 화구가 용기를 내게 했다.

20여년 중단되었던 한국화였지만, 그의 집념은 단숨에 세월을 되돌렸다.
한 사람 눕기도 불편한 그 비좁은 쪽방에서 틈만 있으면 붓을 잡았으니,
옛 솜씨가 다시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입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으로 뽑히므로 당당하게 재기하게 되었다.






전시를 이틀 남긴 지난 1일 동자동 ‘새꿈공원’앞을 지나다 그를 만났다.
전시가 눈앞에 닥쳐 할 일도 많을 텐데,
자신의 발 역할을 해주는 전동휠체어가 고장 났다고 했다.
마침 봉사단체와 연락이 닿아 휠체어를 실어 보내고 있었는데,
표정도 밝지만 뚜벅 뚜벅 무릎으로 걷는 걸음에 힘이 실려 있었다.






절망과 희망의 엄청난 차이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인간의 강한 의지 앞에는 몹쓸 병마도 무릎 꿇게 한 것이다.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쪽방사람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는 없을까?

내일은 후암성당에서 열리는 윤용주씨 한국화 보러가자.
다들 윤용주씨의 재기를 축하해주며, 대견한 그의 등 한번 두드려주자.
우리도 그림 한 점 방에 걸어두고, 희망 한 번 싹 틔워 보자.

사진, 글 / 조문호




이 사진은 지난 해 9월 촬영한 사진으로

그 때는 왼쪽 다리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을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역 주변의 쪽방에서 절망스런 삶을 사는 사람이 천 백명이나 됩니다.

그들의 곤궁한 삶에 관심을 가졌으나, 그 벽이 생각 외로 두터웠습니다.

오랜 세월 단절된 습성 때문인지,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더구나 외부의 노출을 꺼리는 그들로서는 사진 찍기를 단연코 거부합니다.

그 벽을 허물려면 많은 노력과 정을 쏟아 부어야 할 것 같네요.

 

지난 19, 동자동에 사는 장애인 윤용주(54)씨를 만났습니다.

그가 동자동 쪽방에 살게 된 것은 올해로 12년째라는데, 나이에 비해 많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천식과 고혈압, 당뇨로 고생해왔는데, 몇 년 전부터 합병증에 의해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했답니다.

지난해는 왼쪽다리를 잘라냈으나, 이젠 오른쪽 다리까지 옮겨갔답니다.

 

그는 IMF사태가 만들어 낸 희생자입니다.

그 이전엔 전주에서 건설회사의 하청업체를 운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가장이었습니다.

IMF 직격탄을 맞은 건설회사 도산으로 빚더미를 안게 되었고,

술로 한탄의 세월을 보내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여기까지 밀려왔답니다.

두 자녀를 키우는 전 처도 생활이 어렵다는 소문은 들어, 가족에게 전화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그냥 자식이나 한 번 만나는 게 소원이랍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그는 한 달에 50여만 원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으나, 병원비를 부담하기엔 어림없습니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니, 다리는 자꾸 썩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혹시 자선의 뜻이 계신 분은 아래로 연락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윤용주 : 010-2191-3477

서울시 용산구 후암로 57, 동자동 17-7 (16)

농협 302-0603-4335-41 (윤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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