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백주년기념 민족예술큰잔치에 초대된 '영산줄다리기'





2019년 03월 03일 (일) 16:03:27

정영신 장터사진가 


매년 삼일절을 맞아 경상남도 영산에서 열렸던 줄다리기가 삼일절 백주년을 맞아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부대행사로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지난26일 청계광장에서 줄 비나리를 시작으로 새끼줄을 꼬고 엮어 말아 거대한 두 갈래의 몸줄을 만들었다.



▲ 비녀목으로 암줄과 수줄이 한몸이 되었다. Ⓒ정영신


중요무형문화재(26호) ‘영산줄다리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민족의 대동놀이다. ‘영산줄다리기’는 마을의 화합을 위하여 500여 년 동안 그 명맥을 유지해온 문화유산으로 우리민족의 혼을 당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지난달 26일 줄비나리 축원을 하고 있는 변우균씨 Ⓒ정영신


또한 용신앙에 바탕을 둔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 굿으로 1969년 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되어, 대한민국 문화유산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산줄다리기는 용을 상징하는 250센티미터의 폭에 40메타의 긴 줄로 암줄과 수줄을 고정시키는 비녀목을 꽂아 연결한 후, 수많은 젓줄에 매달려 승부를 겨룬다.


▲ 영산줄다리기 보존회사람들이 새끼줄에 물을 묻히고 있다. Ⓒ정영신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을부터 짚을 준비해 두었다가 정월대보름을 맞아 새끼줄을 꼬고, 여기에 풍물패가 어울려 신명을 일으키며 줄을 만드는데 200명이상이 모여 준비한다. 여기에 줄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소금과 물을 뿌리고, 줄이 터지지 않도록 밟아주는 과정을 거친다.



▲ 줄을 단단하게 하기위해 소금을 뿌리고 있는 모습 Ⓒ정영신


이번 한겨레 큰 줄 당기기 집행위원장이자 ‘영산줄다리기 보존회’를 이끌어가는 신수식씨는 “우리고향사람들은 줄다리기를 하지 않으면 한해농사를 시작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만큼 줄에 대한 열정이 크다.


▲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줄을 단단하게 여미고 있다.Ⓒ정영신


영산은 독립만세를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외친 성지로서 우리조상들의 정신이 이 줄 속에 담겨있다. 오죽했으면 일본인들이 우리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와해시키기 위해 줄다리기 인원을 제한했겠느냐, 영산줄다리기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모든 마을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줄다리기를 준비하면서 한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암줄과 수줄이 만나기 위한 과정 Ⓒ정영신


이번 영산 큰 줄다리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줄을 만드는데 쓰이는 볏짚을 구하지 못해 전라도에서 공수해온 점과, 사람 손으로 해야 할 일을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기계가 동원되어 안타까웠다. 전통 줄다리기는 온 몸으로 줄을 당기기 때문에 상대를 앞질러 가지 않고, 뒷걸음을 많이 쳐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줄다리기다. 3.8선에서 줄다리기를 해 우리가 뒷걸음으로 북한을 껴안으면 그게 바로 평화통일이 아니겠느냐? 우리 영산에서는 암줄과 수줄의 성패로 한해 농사를 점친다”고 말했다.



▲ ‘영산줄다리기 보존회’를 이끌어가는 신수식 Ⓒ정영신


특히 이번 3.1 백주년기념 ‘영산 큰 줄다리기’는 “서울시민들과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잘 마무리되었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인사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 말뚝이와 함께 세종대로로 진입하는 모습 Ⓒ정영신


동부줄과 서부줄로 나눠 청계광장에서 출발한 두 줄이 풍물을 지피며 세종대로에 진입하자 서낭대 싸움과, 말뚝이춤으로 기 싸움을 벌였다.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는 비녀목에 꽃은 후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 말뚝이와 시민들이 줄을 진행시키고 있다. Ⓒ정영신


많은 시민들의 함성아래 치러 진 줄다리기는 신명난 풍물소리와 출렁이는 깃발이 힘겨루기의 박진감을 더해 주었다. 동부 줄과 서부 줄은 남성과 여성을 상징해 서부 줄이 이기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 동부줄과 서부줄이 풍물과 함께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정영신


영산줄다리기는 우리나라 줄다리기의 시초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지나면서 잠시 단절되었지만, 1963년 3.1문화제에 재현된 후, 3.1민속문화제 때마다 매년 열리고 있다. 이번 ‘영산 큰 줄다리기’로 우리농촌이 삶의 근본이 되고, 암줄과 수줄은 ‘민족통일 줄’과 ‘생명평화 줄’이 되어 시민들 마음에 우리민족의 공동체를 인식시켰다.



▲ 말뚝이 춤을 구경하는 시민들 Ⓒ정영신


특히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줄다리기가 끝나자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새끼줄과 꽁지줄을 잘라갔다. 영산에서도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긴 편의 짚을 한웅큼씩 잘라 자기 집 지붕위에 올려놓으면 한해 집안이 평안하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소에게 먹이면 소가 튼튼하게 잘 크고, 이 짚을 거름으로 쓰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 승리한 쪽의 줄을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자르는 모습 Ⓒ정영신


또한 시민들의 참여로 펼쳐진 영산 큰 줄다리기는 두 동강이 난, 우리의 역사를 이어주는 거대한 판 놀이였다. 100년 동안 우리 땅에서 벌어진 틈을 거대한 비녀목으로 연결해 암줄과 수줄의 교합처럼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 '3.1 백주년기념 민족예술큰잔치' 예술감독 최희완 민족미학연구소 소장 Ⓒ정영신






삼일혁명 100주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일제 잔재들이 각계 각층에 똬리 틀고 있다.

대한독립만세을 외친 33인의 순국선열과 일제 탄압을 맞서 싸우신 선열께서 얼마나 통탄하고 계실까?
일제에 부역한 친일세력의 잔재를 밝혀내어 뿌리 뽑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삼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열들을 기리는 행사가 지난 26일부터 3월1일까지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 탑골공원 등 여러 곳에서 펼쳐졌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3,1운동 100주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주최한 ’만북울림 문화제‘와
’3.1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추진본부‘에서 주최한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이 열렸다.





그 중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에서 준비한 ‘한겨레 큰 줄당기기’에 관심을 가진것은
고향의 ‘영산줄다리기’가 참여해서다.






'영산줄다리기보존회'를 이끄는 고향 친구인 신수식씨를 비롯하여 차재현, 황태암, 장상록,

김정식, 이일선, 차창규, 조찬호, 이철식, 윤호웅, 김건수, 김홍광씨를 만났다,
그리고 재경 동문인 김상현, 송장식, 이수만씨와 조창호, 김판호, 강판순, 이영태, 김대곤,

하영종, 김진규, 이상국, 배일윤, 이용기씨도 만났다.






그 외에도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을 진행하는 채희완, 장순향, 김봉준, 변우균, 안봉모씨를 비롯하여

김정헌, 박종관, 김이하, 정덕수, 정영철, 이수환, 정복수, 하형우, 김문호, 이만주, 김명지. 이희종,

리 반, 손병주, 성기준, 정영신, 여현수씨 등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만북울림 문화제‘에 참여한 ’몸북‘의 유진규씨를 바롯하여 유홍영, 윤시중, 김기상,

김발렌티노, 안재근, 전형근, 강지수, 양길호, 김종학, 황현성, 장성진, 김선미, 하택후,

홍윤경, 서승아, 서우림, 방관철, 한혜민, 고명희, 한준휘, 홍성표, 최원석, 위다은, 신지은,

김초원, 이소라, 김동효, 양철해, 이창준, 이유현, 이채은, 김태영, 하태웅, 김상인, 이요한,

김현신, 이성희, 최정산,  Ian John, 권제인, 박광선, 손건우, 고은별, 이은주, 윤혜경, 윤지원,

이두원, 최수라, 최수현, 이재돈, 김국원, 안상현, 정기욱, 문숙경씨도 만났다.




'몸북' 단체사진(유진규 페이스북에서 스크랩)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진가 박옥수, 최광호씨와 김정숙씨도 만났지만,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분주하게 돌아 다니느라 차도 한 잔 못 나누었지만, 다들 반가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삼일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26일부터 3월1일까지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 탑골공원 등 여러 곳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공식적인 추념행사 외에도 ‘3,1운동 100주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주최한 ’만북울림 문화제‘와

’3.1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추진본부‘에서 주최한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전국에서 약 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북과 장구 등 우리악기를 갖고 나와 만북을 울리며 신명을 일으켰고,

생명평화제전 열 두 마당에서는 전통연회형식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등 많은 구경거리가 열렸으나, 

그 중 눈길을 끌며 마음을 모은 것은 ‘한겨레 큰 줄당기기’였다.





매년 삼일절 마다 경상남도 영산에서 열렸던 줄다리기가 삼일절 백주년을 맞아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행사로 서울광장으로 올라 온 것이다.

지난26일부터 청계광장에서 줄 비나리를 시작으로 새끼줄을 엮고 말아 거대한 두 갈래 몸줄이 만들어졌다.





이번 ‘한겨레 큰 줄당기기’는 두 동강 난 우리의 역사를 잇는 거대한 판 놀이로 연출되었다.

암줄과 숫줄은 ‘민족통일 줄’과 ‘생명평화 줄’로 나뉘어져 한민족 공동체 정신을 각인시켰다.

100년 동안 벌어진 틈을 암줄과 수줄로 연결하여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큰 뜻을 품었다.

우리의 전통 줄다리기는 상대를 앞지르지 않고, 뒷걸음치며 끌어 껴안아 둘이 하나 되는 것이다. 



 



3월1일 오후세시부터 청계광장에서 동부 줄과 서부 줄로 나누어 출발한 두 줄이 풍물을 지피며 세종대로에 진입했다.

서낭대 싸움의 진잡이로 신명을 일으키는 가운데,

거대한 비녀목으로 두 줄을 교합하자 시민들의 함성 속에 역사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서낭대와 깃발로 기싸움을 벌이며 “이어~차, 이어~차” 힘겨루기를 한 결과 암줄의 승리였다.





영산줄다리기 전승자인 신수식씨는 “암줄이 이겼으니 풍년이 들겠다”면서

"오늘은 어느 편이 이겼다는 승부보다 모두가 화합하는 의미로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시민들은 줄다리기가 끝나자 암줄의 젓줄을 잘라갔다.

영산에서도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긴 줄을 잘라 자기 집 지붕위에 올려놓으면 한해 집안이 평안하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다,

소에게 먹이면 소가 잘 크고, 거름으로 쓰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한겨레 큰 줄당기기“ 연출로 전래된 영산줄다리기와는 약간 바뀌어 진 부분도 있었다.

줄에 올라타는 장수대신 말뚝이가 올라 춤을 추었고, 줄다리기 시작과 끝을 알리는 총소리도 없었다.

화합으로 이끌어 통일을 이룬다는 의도였지만, 영산 줄다리기의 백미는 승부다.

서로 이기려는 승부욕이 애살과 신명을 끌어내는데, 승부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흥미가 반감된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지켜 본 50여 년 전의 줄다리기로 한 번 비교해 보겠다.

마을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각각 대장, 중장, 소장으로 나누어 세 명의 장수를 선발하였다.

그들의 지휘로 모든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그들이 풍물패와 줄꾼의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물주였다.

그 당시는 장수가 이동하면 말을 탔는데, 진잡이를 비롯한 줄 싸움이 얼마나 치열 했는지 모른다.

서부대장의 목검은 두 동강이가 났고, 동부대장은 말에서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평소에는 서로 친한 사이지만, 줄다리기 동안은 원수처럼 적대감을 가져 승부욕에 불태우는 것이다.





주민들의 애살로 만들어진 줄을 지키느라 밤을 지세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여성들에게 큰 낭패 당할 일이지만, 그때는 여자가 줄을 넘으면 진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래서 줄을 넘지 못하도록 밤 세도록 지킨 것이다. 유교의식에서 비롯된 속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했으니, 꼭 여성을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포수가 쏜 신호탄으로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마른 논에서 이는 흙먼지와 함성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젓줄(곁줄)이 끊어져 나뒹구는 사람이 여기 저기 생겨나고, 밀리고 당기기가 한 동안 반복되었다.

다들 논 턱에 힘을 실어 버텼는데, 그 긴박한 순간들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한 쪽이 끌려가 지더라도 모두 이겼다고 풍물을 지피며, 한데 어울리는 한마당을 이루었다.

자기편이 이겼다고 우기면서도, 줄은 이긴 상대의 줄을 잘라가는, 웃기는 짜장면도 속출했다.

승부로 시작되어 승부로 끝났지만, 결국은 대동놀이에 의한 화합이었다.





3,1절 행사인 줄다리기는 세종대로와 광화문일대의 도로가 차단된 가운데 열린 엄청난 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한 축제 한마당이었는데, 그 현장에 중요 언론사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다.

물론, 전날 북미회담 결렬에 따른 시사성에 기인했겠지만,

냄새나는 곳으로만 몰리는 똥파리 근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심지어는 엉터리 보도까지 따랐다.

오후 두 시가 넘어 점심 식사하러 프레스센터 옆의 중국식당에 들어갔는데, 마침 티브이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앵커가 삼일절 기념행사를 소개하며 오후4시부터 열릴 줄다리기를, 줄다리기가 열렸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편향되고 왜곡된 엉터리 언론을 하루 종일 끼고 사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번 삼일 혁명 백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영산줄다리기는 성공적인 한마당이었다.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부대가 벌이는 격렬한 시위가 맞서는 상황이라 아쉽기는 했으나,

이것이 오늘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아니겠느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축제 마당에 참여한 시민들과 태극기부대 시민들이 줄다리기로 한 판 승부를 겨루면 어떨까? 

줄다리기를 흥겹게 하는 승부욕을 극대화하면서도 결국 화합하여 하나가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꿈에 불과한 일이지만, 꿈이라도 행복해진다.






영산에서 올라온 신수식씨를 비롯한 ‘영산줄다리기보존회’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더구나 3월3일 영산에서 치뤄 질 줄다리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사용할 짚이 없어 전라도에서 짚을 사왔다는데, 그 짚 값이 무려 4천만원이라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축제가 열리는 4일 동안 좁은 여관방에 머물며 줄 만드는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다.

줄 옮길 받침대를 조립하고 해체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다들 칠순이 지난 늙은인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더구나 총책을 맞은 신수식씨의 사명감 넘치는 활약상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 많은 대중을 상대로 줄을 이해시키며, 한 마당으로 이끌어 내는 솜씨가 경지에 달해 있었다.

아마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 몸살로 자리에 더러 눕지 않을까 쉽다. 다들 고생은 했지만, 장하고 장하다.





아무쪼록, 영산줄다리기가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 줄이 되기를 축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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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 조성국(1919-1993)선생은 ‘한국민예총‘ 초대 공동의장을 역임하신 분으로,

영산줄다리기(당기기)의 기능보유자였다.



'창녕을 사랑하는 사람들'카페에서 스크랩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 태어 난 선생께서는 일제 때 맥이 끊겨 잊혀져가던

영산줄다리기를 되살려 마을 놀이로 자리 잡게한 장본인이다.





영산줄다리기는 애살에 의해 만들어지고, 진잡이로 신명을 일으키며 답합으로 이끄는 대동문화다.

선생께서는 198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지방대에서 줄 바람을 일으켰는데,

그 신명난 대동놀이로 삼일독립정신을 일깨우며, 민주화에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10여 년 동안 영산중학교에 근무하는 등 향토교육에도 기여하셨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며, 양파 품종을 개발해 보급하는 등 농촌경제를 일으키려는 향토애도 대단하셨다.

창녕이 양파 주산지가 되도록 이끌며 '양파재배법'(1972)을 비롯한 여러 권의 문화관련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난, 조성국선생님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영산중학교 은사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친구 분이라 어린 시절 기억들이 너무 새록새록 하다.

학기가 바뀌어 교실에 들어와 처음 하신 말씀은 아직까지 기억난다.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얽은 자신을 소개하며, “곰보도 정이 들면 구멍구멍마다 든다”며 웃기셨다.





국어와 농업을 가르쳤는데,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유달리 기다려졌다.

가끔 여러 학생에게 각자의 대사로 연결하는 연극형식을 취하기도 했는데,

수업의 지루함을 해소시키며 머리에 주입시키는 선생의 교육방식은 틀에 박힌 다른 분들과 사뭇 달랐다.

한 번은 내게 여자 배역을 맡겼는데, 너무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 친구들로 부터 웃음을 산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선생님께서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당분간 못 나오신다고 했지만, 동내 소문은 “빨갱이로 잡혀 갔다”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더니 교원노조에 연루돼 구속되었다고 하셨다.

석방되어 해직된 후로는 농사꾼으로 변신해 양파재배와 줄다리기를 정착시키는데 이바지했다.





그 이후 고향을 떠나 와 잊고 있었는데, 1970년대는 인간문화재의 권익과

올바른 전통 계승을 위해 '한국인간문화재연합회' 결성을 주도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이후 어느 날, 서울에서 열린 ‘민예총’ 창립총회에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고은시인과 미술평론가 김윤수선생, 조성국선생. 세분이 '민예총' 초대 공동의장으로 선임되었고,

신경림시인은 사무총장, 실무를 관장하는 사무처장은 김용태씨가 맡게 되었다.





너무 반가워 이런 저런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블로그에 올리려 찾아보니 한 장도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선생의 사진자료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된 필름이라 정선에 쳐 박아 둔 모양인데, 필름 찾아 스캔 받는 일이 찍는 일보다 더 급한 것 같았다.





문화운동, 지역운동, 사회운동으로 기여한 공적이 큰 분이지만, 세상에 덜 알려진 것은 틀림없다.

부산대 명예교수 채희완씨는 장일순선생과 조성국선생께서 닮은 데가 너무 많다고도 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시며 당대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인품까지 꼭 같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꼭지는 ‘3,1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에 참여한 영산줄다리기를 소개하는 면이다.

그러나 오늘의 줄다리기가 있도록 만든 조성국 선생에 대한 자료가 너무 없는데다,

공적에 비해 너무 알려지지 않아 선생님 이야기부터 늘어 놓게 된 것이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3,1일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3,1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에

영산줄다리기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진즉 듣고, 행사를 기록하기 위해 찾아 간 것이다.

더구나 조성국선생님께 줄다리기를 물려받는 신수식씨는 초등학교 동창이 아니던가.

참여한 보존회 회원 대개가 고향 선후배인데다 사촌까지 있었다.





신수식, 차재현, 황태암, 장상록, 김정식, 이일선, 차창규, 조찬호, 이철식,윤호웅, 김건수,

김홍광씨 등 향에서 열 두 명이 올라왔는데, 두세 명 외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들 몇 십 년을 떨어져 늙어 왔으니, 모를 만도 했다.





덕분에, 같은 서울 살지만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고향 동창까지 만난 것이다.

김상현씨와 송장식씨를 만났고,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3월1일이 되면

더 많은 고향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해마다 3,1절에 맞추어 열리는 영산 3,1문화제는 어떻게 하고 왔는지 물어보았더니,

서울 광화문줄다리기가 끝나는 즉시 내려 가야한다고 했다.

정말 불알에 요령소리 나게 됐다.





가닥 줄은 영산에서 가져왔지만, 엮고 밟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니 옛날 생각도 났다.

줄다리기를 전수받은 신수식씨의 능란한 지휘와 통솔력은 조성국선생을 너무 닮아 있었다.

기능에 이어 선생님의 정신까지 이어 받은 게 너무 장하고 고마웠다.





첫 날은 숙소에 띠라가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오랜만의 회포도 풀었다.

술 자리에는 서울 ‘에이스다원’ 대표이사인 오정혁씨와 직원 한 분이 합류하였고,

이차로 옮긴 ‘봄 여름 가을 겨울’에는 본 축전의 예술감독인 채희완씨도 오셔서 함께 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듯이 기분좋게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1절 백주년을 맞는 오늘 다들 청계광장으로 나가자.

‘3,1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의 하이라이트인 줄다리기가 오후3시 부터 열린다.

광화문광장으로 줄을 옮겨 4시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되니, 다들 신명난 한 판을 벌여 보자.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사진, 글 / 조문호



























































































 

 

 

 

아! 이게 얼마 만인가?
산소에 조상님을 모셨지만, 고향을 등진지가 어언 십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한 때는 영산에서 열리는 삼일민속문화제를 기록하기 위해 해마다 다니기도 했으나,

카메라장비를 행사장에서 몽땅 도둑만나면서 그 작업은 중단되었고, 발길마저 멀어진 것이다.


 

 



늘 돈 안 되는 사진 찍느라 고향마저 잊고 살았는데, 지난 13일은 모처럼 기회가 생겼다.

영산초등학교 45회 친구들의 모임이 매년 8월15일마다 고향에서 열렸으나,

광복절행사와 겹쳐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이틀 앞 당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내장에 적힌 이승을 떠난 친구들의 이름 나열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죽기 전에 친구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찾았다.

시간이 맞지 않아 고물자동차까지 끌고 내려갔으니, 친구 만나는 대가도 수월찮게 든 셈이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지라 만년교 돌다리를 건너 남산부터 올라갔다.

‘고향 길은 밤에 가도 돌에 채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오르는 산길이 편안하고 고즈넉했다.

마을 곳곳을 살펴보며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 올렸다

제일 오래된 기억으로는 한국전쟁통의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울 엄마 등에 업혀 남산 밑 미나리깡 뚝길을 가는데, 총 맞아 피 흘리던 군인이

물 좀 달라며 엄마치마를 부여잡았고, 옆에서는 그냥 가라고 총부리를 흔들었다.

등에 업은 나를 앞으로 돌려 업고, 내 뛰는 울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아직까지 벌떡거린다.

 

 

 


 

두 번째 기억은 50여 년 전, 제1회 영산삼일문화제의 기억이다.

올 해로 56회라니 반세기가 지난 일이다. 그 때의 하이라이트도 역시 줄다리기였다.

동부 대장은 아버지가 맡았고, 서부 대장으로는 아버지의 친구인 하점원씨가 맡았다.

우리 집은 동부 팀의 거점이 되어 몇 날을 술과 음식 장만하느라 정신 없었다.

줄다리기 행사를 지금처럼 운동장에서 벌인 것이 아니라 영산 큰 들에서 벌였는데, 줄의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하점원씨는 아버지의 친구지만, 진영을 나누고 부터는 원수처럼 으르렁 거렸다.

장수에게는 말이 제공되었는데, 말을 탄 채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했는지,

서부대장의 목검은 두 동강이가 났고, 아버지는 말에서 떨어지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포수가 쏜 신호탄으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는데, 마른 논에서 이는 흙먼지와 함성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곁 줄이 끊어져 내동댕이치는 사람이 여기 저기 생겨나고, 계속 밀리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한 동안 진행되었다.

다들 논 턱에 힘을 실어 버텼으니 쉽게 끌려가지 않았는데, 그 긴박한 순간들은 정말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옛날에는 보름날 행사로 열린 줄다리기와 쇠머리대기가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삼일문화제에 맞추어 열렸는데,

영산의 지식인이었던 조성국 선생이 계셨기에 올 곧은 전승이 가능했다.

중학생시절에는 국어교사로 계셨는데, 한 번은 “빨갱이라 붙들려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잘 아는 아버지에게 여쭈었더니, 별일 아니라 곧 석방될 것이라 하셨다.

문화의 힘으로 대동단결을 이루어내는 리더십이나 영산을 양파 주산지로 만드는 등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다.

한 때는 '민예총'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고, 지역문화와 농업 발전의 양축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분이다.

 

 

 


 

영산은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삼일 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줄다리기, 쇠머리대기의

중요무형문화재를 비롯하여 구계목도, 문오장 단오제 등 많은 전례 민속놀이의 전승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낙동강전투의 마지막 보루로 치열한 격전을 치룬 곳이라 남산위에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인간도 아니었던 전두환시절에는, 영산에서 유적을 발굴하다 이변이 생긴일도 있었다. 

전두환 조상 중 한 사람이 영산의 사또로 있다 떠날 때 만들어졌다는 공적비가 하나 출토된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덕에 남산의 전적비가 세워졌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세 번째 기억은 남산 밑 냇가에서 물놀이하다, 수식이 형이었던 신쾌식씨로 부터 혼줄 난 일이다.

물웅덩이에 있는 나를 향해 넓은 판지를 던져 물밑에 깔았는데,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려야 했다,

자칫하면 익사로 연결될 번한 끔찍한 일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기억으로는 연극도 한 몫 했다. 제목은 기억에 없지만, 

국군으로 분한 이순경선생의 절망스런 절규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각인되어 남았다.

그리고 친구 조성호가 연지 못가에서 불었던 트럼펫 소리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얼마나 낭만적인 분위기에 동했는지, 그 때부터 트럼펫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하금순의 꾀꼬리 같은 노래 소리도 생각났다.

 

 

 



사회에 첫발을 디뎌 ‘농협’에서 일했던 일도 떠올랐다.

'부산농협'에서 '김해농협'을 거쳐 고향까지 흘러들었는데,

애인이 찾아 와 함박산 약수터 여관에서 하룻 밤 지낸 적이 있었다.

자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층 창문으로 날라 온 벚꽃 잎이 알몸 위에 흩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 녀는 잊었으나, 그 당시의 행복감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직장의 무료를 달래기 위해 문 닫은 정미소에다 음악감상실을 차렸는데, 주로 시골 교사들이 단골이었다.

주말이면 부산에서 친구들이 몰려 와 날밤을 까기도 했는데, 이런 저런 추억에 빠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결지로 정해진 도천면의 ‘한우마당’을 물어물어 찾아 갔더니, 이미 20여명의 고향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구자훈, 김공조, 김이만, 김종석, 김종호, 문영태, 신규식, 신수식, 윤상고, 윤성관, 이상영, 이석중, 이세중,

이수만, 임성택, 조대권, 조성호, 황정철, 김순남, 하금순, 허영숙 등 하나같이 반가운 얼굴이었는데,

나만 늙은 줄 알았으나, 다 같이 늙어가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대권이가 “이빨이 와 그렇노?”라며 걱정스레 묻길래 “니 웃길라고 몇 개 빼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개구장이 같은 어린 시절은 오간데 없고, 다들 늙은이가 되어 점잔만 빼고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일을 보존하거나 전수하고 있는 신수식, 조대권, 김공조를 위시하여

문영태, 윤상고 등 고향을 지키는 고추 친구라고는 다섯 명 뿐이고,

서울, 부산, 마산은 물론, 인천, 구리, 성남, 충남 당진, 전남 영암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다.

 

 

 


 

반가운 친구가 한 둘이 아니었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겁도 없이 주는 대로 여기저기 술을 받아 마셨다가 일찍부터 맛이 가 버렸다.

성호와 금순이는 노래까지 불렀으나, 난 이가 빠진데다 목소리까지 쉬어 끼일 군번이 아니었다.

몸 생각하느라 다들 술을 아껴 먹었는지 모두 멀쩡했는데, 성호와 나만 곤드레 만드레가 되었다.

‘꽃은 반만 핀 것이 곱고, 술도 반만 취한 것이 좋다’는 말도 있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다들 술 마신 후 차를 끌고 가야하는데, 왜 난데없는 도천면에서 모였는지 모르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친구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고향을 찾았다면,

고향에서 즐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 먼 길을 고기 먹으러 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예전에는 이차로 부곡온천에 방을 잡아 밤늦도록 놀며 못 다한 아쉬움을 풀었는데,

한 낮에 술자리가 파하니,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늙어가는 징표인가?

 

 

 


 

한심한 생각이 들어, 나 혼자 영산의 곳곳을 살피고 다녔다.

예전에 살았던 고향집도 찾아보고, 음악실 했던 정미소 자리도 가보고,

잡초가 무성한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용서를 빌기도 했다.

결국은 부곡온천에 여장을 풀고 독수공방 지냈지만...

 

“친구야! 제발 오래 살 생각만 하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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