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무릉도원’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776cm



화가 임옥상씨의 ‘바람 일다’전이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민중미술 1세대작가로서, 그림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삼척동자도 알만한 대가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도 여럿 있다. 자연현상에서 인간으로 옮겨간 무렵에 발표한 종이부조 작품들이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달동네의 밤풍경, 고단한 삶의 표정과 한이 담긴 ‘귀로’와 ‘보리밥’

그리고 기분 나쁜 사내의 눈빛이 선한 ‘보리밭’도 있다.

다들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으로 활동할 무렵의 작품들인데,

그 뒤 2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끝내며 보여준 '아프리카현대사'전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문명에 짓밟힌 아프리카의 고통을 우리 역사에 빗댄 작품으로,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일단 작품 크기에 주눅 들었던 기억이다.





‘여기, 흰 꽃’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776cm



그 뒤에 발표된 ‘일어서는 땅’의 연작들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간간이 언론에 소개된 이미지만 보았다.

특히 공공미술에 나서며 설치,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재다능한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편으로 그를 아끼는 작가들은 걱정스러워 하기도 했다. 아마 그 끼를 한곳에 집중해 줄 것을 원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같은 민중미술작가들에게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권력과 돈은 민중미술에 독이니까...




‘윌리암 모리스’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182cm



그런 그가 6년 만에 대규모 전람회를 연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더구나 지난겨울 함께 싸웠던 촛불시위현장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전시 열림식이 있었던 지난 30일, 전시장입구에서 김윤수, 유흥준씨를 만나기도 했고,

일찍 자리를 뜨는 신학철, 장경호, 백기완 선생도 만났다.

이번 전시에 대해서는 유홍준씨를 비롯하여 윤범모, 김홍희씨 등 세분의 미술평론가가 평을 하였기에

두 말하면 잔소리에 불과하겠지만, 솔직히 개인적인 느낌을 털어놓고 싶다.

그러나 이 글을 쓴지가 몇 날이 지나도록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린 것은 남의 잔치에 초치는 일은 아닌지,

행여 당사자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지만, 달콤한 말보다는 쓴 말이 약이 된다는데 위안을 가졌다.

그리고 두루뭉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란 말을 가장 싫어하기도 하고...




‘삼계화택-불’ 2016 종이에 파스텔 336X480cm



전시장에 들어서며 마주친 대작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가끔 본 듯한 역대 대통령의 초상을 가면 형식으로 박제화시킨

‘가면 무도회’는 시각적 즐거움도 있지만, 부패한 정치권력을 신랄하게 풍자, 비판했다.

 

목탄 드로잉작업인 ‘상선약수’도 좋았다.

현장감을 살려내기 위하여 목탄의 번지기 효과로 마치 현장 스케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상선약수’는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다룬 작품이고,

‘삼계화택’은 용산화재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 첨예한 시대적 풍속화’였다.




‘상선약수-물’ 2016 종이에 목탄 336X480cm



그리고 서울 풍경을 새롭게 주목한 관념적 실경산수이자 현대판 무릉도원도 있었다.

북한산 자락의 하얀 꽃을 그린 ‘여기, 흰꽃’은 하얀 종이를 붙여 이팝나무의 쌀밥을 연상시켰고,

또 목화솜으로 상상력을 작동시켜. 촛불 시민의 꿈을 그려 넣었다.

마지막 하나, ‘광장에, 서’ 작품이다.

작년 겨울 광화문 촛불 시위 현장을 소재로 30호 캔버스 108개를 이어 붙인 대작 중 대작인데,

무수한 원형 패턴으로 촛불파도를 묘사한 작품이었다.

시위 현장에 있었던 감동적인 장면들과 생생한 시위 기록 사진들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한 장대한 파노라마였다.



‘광장에, 서’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360X1620cm



그러나, ‘광장에, 서’는 시대 증언의 산물로 더 이상의 해설이 필요 없고 불가능한 작품으로,

임옥상씨의 기념비적인 역사기록화라고 극찬한 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대작일수록 진한 감동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비록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광화문 현장을 지켰던 한 사람으로서, 그 때의 울림이 강하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가 여럿 있겠으나 그 중 하나가 리듬 즉 역동감 아니던가?

작품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이력에 미치지 못하다는 말이다.






전시장은 원로 작가에서부터 각계각층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우리나라 최고 상업 화랑 ‘가나아트’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김병기, 고 은, 염무웅, 정희성, 김정헌, 박현수, 윤범모, 박진화, 김태서, 김정환, 심정수, 장사익,

박흥순, 송 창, 이기웅, 최 열, 최효준, 심정수, 배병우, 정고암, 김영중, 조신호, 김영호, 강주리,

장지우, 이도윤, 박영애, 김보영, 노광래, 이지하씨 등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국회의원 정세균씨와 종로구청장 김영종씨 같은 정치인의 모습도 보였다.






그 날 전시 축하 음악회에서 열창한 장사익씨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되는 ‘귀천’노래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민중미술의 권력화가 싫어서일까? 문화 권력의 실체가 보여서 일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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